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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프로이드의 저서 `꿈의 해석` 을 읽고
    꿈의 해석20016005치의학과 금기천‘미치광이 헛소리’, 바로 정신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로이드의 저서 ‘꿈의 해석’에 관한 발표직후의 평가이다. 현재의 그는 정신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의 그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은 ‘미치광이’ 였다. 현재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가 정신과학에 끼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상이한 평가를 받는 이런 프로이드가 궁금했고 그의 사상을 교과서로 읽어보는 상투적인 글이 아닌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었다. 마침 정신과학 강의를 듣는 와중에 교수님께서 프로이드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셨기에 그의 3대저서 중에 하나인 ‘꿈의 해석’을 읽어보았다.우선 그의 사상을 논하기 전에 그가 살아온 길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1856년에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래 정치의 뜻을 두었으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빈 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그는 신경, 정신 계통의 연구를 했으며 신경, 정신계통 환자와의 지속적인 접촉은 프로이드가 환자의 증상이 ‘무의식’으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찾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발표하였으며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생리학과 신경학으로부터 탈피시켜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였다. 특히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스스로가 평가하길 ’현재의 판단으로도 내가 운 좋게 해낼 수 있었던 모든 발견 가운데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꿈의 해석‘은 스스로가 평가한 것처럼 그의 사상의 정수가 녹아 있다.내가 프로이드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이유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사상은 그리 쉽지가 않았고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구절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깨어있을 때의 상기 능력의 지배권밖에 있던 무엇인가가 꿈속에서 상기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라는 구절이다. 예시까지 그는 설명해 놓았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공감이 드는 부분도 많았으며 읽으면서 수긍가는 대목도 있었다.특히 꿈이 하나의 소망 충족이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우리들의 첫 꿈은 확실히 소망 충족일 수도 이었으나, 어쩌면 다른 꿈은 공포의 실현일 수도 있고 어떤 반성의 내용일지도 모르며, 혹은 어떤 기억의 재현일수도 있다. 꿈은 종종 소망 충족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라고 하였다. 그가 서술한 대목에서 특히 ‘적나라하게’ 라는 단어가 공감이 갔다. 나의 경험을 빌리자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관계’가 꿈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프로이드의 해석을 빌리자면 이런 것이 바로 나의 ‘소망의 표현’이 꿈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하지만 프로이드의 소망과는 반대의 단어인 ‘왜곡’이 또한 꿈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표현하였다. 서로 의미가 다른 단어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지만 그의 설명에 이해가 갔다. 그는 이러한 ‘왜곡’을 일종의 ‘위장’으로 보았다. 특히 무의식에서의 검열을 통하여 한쪽은 꿈에 의해 표현되는 소망을 표한하고 다른 한쪽은 꿈의 소망에 검열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 검열을 통해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 처음에 이 부분의 해석을 두고 의문이 남았으나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은 우리의 소망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즉 나의 경험을 보아도 전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의 경험을 꿈을 통해서 한다. 다시 말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꿈꾼다던지 좋아하던 사람의 죽음이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꿈은 나의 무의식속의 검열 기관을 거친 것이다. 검열을 통해 꿈의 왜곡이 태어났다.하지만 나에게 그의 꿈에 관한 해석중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바로 ‘유아기’ 에 관한 그의 해석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설명을 예로 들어보자, ‘꿈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실례로서 아닐 수 있듯이 여러 소망의 충족이 병존하면서 꿈속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뜻, 하나의 소망충족이 다른 뜻, 다른 소망 충족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벗겨가면 제일 밑에서 최초의 유아기의 한 소망을 부딪치게 된다.’라는 대목이다. 프로이드의 사상은 많은 부분이 유아기적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항문적 경험’, ‘구강기적 경험’등 그의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유아기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프로이드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의문을 품었던 사상들이기도 한데 그의 사상을 접할 때마다 의문점은 커 가기만 한다. ‘과연 구강기적 행태와 항문기적 행태가 후에 성인의 성격 형성과 큰 관련이 있을까? 과연 어떻게 증명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유아기때 유아들이 어머니와의 성적인 관계를 생각을 할 것인가?’하는 의문들이 말이다. 아마도 객관적인 증명 수치나 데이터가 없으면 믿질 못하는 자연과학적인 생각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탓에 실험적인 연구가 힘든 정신과학에 의심을 품는 나의 행태 때문일 것이다.프로이드는 꿈의 상직적 표현 중에서 ‘성적인’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꿈속에 등장하는 것들이 성기가 일종의 상징으로서 꿈속에 나타난다고 믿었다. 책의 한 대목을 보면 확연해 진다. ‘꿈속에 나타나는 어린아이도 실은 성기인 것이다. 그 증거로 성인 남녀에 나오는 자신의 성기를 애무하면서 ’나의 작은 아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어린아이와 희롱하거나 어린아이를 업거나 하는 것은 흔히 자위행위의 꿈 표현이다. 꿈속에 나오는 경우는 거세에 대한 항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의문이 들면서 공감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뱀을 남성이 상징으로 생각하였으며 환자의 예를 들어 설명해 놓았다. 보수적이었던 유럽인들이 ‘미치광이의 해석’이라고 부를 만큼 파격적인 내용이기도 하면서 여러 의문을 던진다. 이런 식의 해석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의 성욕을 부인해 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남녀라는 기준은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아이는 한편엔 가장 순수하고 정화된 ‘정신적인’ 사랑을, 다른 한편엔 어리석고 표현 불가능한 육체를 짊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책을 읽으며 천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소위 기본적인 욕망들 말이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점을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만이 모른다고 비꼰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며 어쩌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5.12.05| 2페이지| 1,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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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 사회 계열]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
    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이 책을 처음 시작 읽을 때 그냥 의사로서 자신의 일생을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그냥 역사 속의 한 인물인 줄 알고 시작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노먼 베쑨의 위대성과 업적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비록 의사란 신분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 만인의 사표가 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보통 의사로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서양의 슈바이처 박사 그리고 우리 나라의 허준이라고 다들 말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존경하고 있는 슈바이처가 진정한 의료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희생을 한 것일까?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슈바이처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슈바이처의 환상이 깨어진다. 비록 그가 부귀 영화를 버리고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 흑인 원주민을 위해 의료봉사를 펼쳤지만 그 봉사 정신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슈바이처가 원주민을 보는 시각은 아프리카를 정복했던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백인 우월 주의 의식이 나타난다. 비록 그들을 위해 의료 활동을 펼치고는 있지만 흑인 원주민을 무시하고 편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노먼 베쑨은 진정한 의사로서의 자세를 지니고 환자를 대하였다. 그렇게 보면 우리 나라의 허준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얼마 전에 드라마 형식으로 허준의 일대기를 방송했었다. 얼마정도 허준에 대해 미화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진정한 의료인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출세보다는 민중의 건강에 힘쓰며 후대 사람들을 위해 '동의보감'이라는 의학 서적까지 집필하였다. 그러나 허준이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였지만 노먼 베쑨은 의료인으로서 주어진 역할뿐만 아니라 그 당시 암울했던 시기에 민중의 자유 쟁취를 위해서 노력한 혁명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그는 189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의료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외과 의사였다. 그리고 의사로서의 그 분야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화가, 군인, 시인, 비평가, 교수, 연사, 발명가 등 모든 분야에서 두루두루 뛰어난 만능 재주꾼(?)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인류를 위해 투쟁하며 지금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된 삶의 전환점이 있다. 바로 그가 결핵이라는 그 당시에는 한번 그 병에 걸리면 무조건 죽게 되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핵이라는 병마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즉 어떻게 하면 그 병마에서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고민 하다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법, 즉 자신의 한쪽 폐를 절개하는 수술을 감행한다. 그 수술로 인해 그는 그 병마에서 벗어나게 되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평생을 돌아보면서 의사로서 제한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롭게 얻은 생명에 감사하기 위해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즉 여기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의료인으로서의 제한된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 그 당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민중의 자유를 쟁취하는 범세계적인 일에 자신의 한 몸을 바치게 된다.노먼 베쑨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에서 의료인들이 그들의 직업 정신을 망각하고 오로지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지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서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다. 그 파업으로 인하여 죄 없는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심지어 중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어서 죽음까지 몰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읽었을 것이고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런 과연 현대 사회에서 그 선서에 맞추어 의사로서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해 보았다. 이 책 속의 한 부분에서 노먼은 이런 연설을 하였다. "우리 의사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이 돈을 싸 가지고 찾아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우리가 찾아가서 예방을 해야 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의사가 참다운 의료인으로서의 자세를 지니고 돈을 갈구하기보다는 병을 고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의술의 진전과 의료 기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 빈곤으로 인하여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번 의약분업 때 약사나 의사들은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까 봐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무시한 채 병원의 문을 다 닫아 버리고 대모를 하였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의 물결을 탄다고 해서 의료인들까지 그러한 사회적 흐름에 편승되어서는 안 된다. 의료인은 의료인으로서 자신을 신분을 자각하고 참다운 직업 의식을 가져야 한다. 즉 우리 의사들은 직업을 탐욕스러운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허준이나 슈바이처 처럼 사람과 질병만을 돌보는 의사는 과거 역사 속에서나 현대 사회에서도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노먼 베쑨 처럼 사람과 질병 그 뿐 아니라 사회까지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캐나다의 공중보건제도의 확립에 앞장섰던 보건의료운동가이며, 스페인의 반파쇼 투쟁, 중국의 신민주주의혁명과 항일투쟁의 최전선에서 종군의사로 몸바쳐 싸웠던 혁명가였다. 비록 그가 휴머니스트였지만 사회모순의 자각과 현실에서 싸우고자 하는 실천으로 인하여 그의 행적이 더욱 빛나고 있다. 정말 이러한 노먼 베쑨의 업적은 대단한 것 같다. 과연 얼마나 나 자신이 노먼 베쑨과 같이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나도 장래에는 치과 의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치대에 들어온 목적이 노먼 베쑨 처럼 사람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하기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비판한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들어 온 것이다. 베쑨은 모국가도 아닌 머나먼 중국 땅이라는 곳에 가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 부상당한 군사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리게 함으로써 인민의 승리를 이끌었다. 중국이 제국주의 일본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노먼 베쑨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뒷받침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후감/창작| 2002.05.29| 3페이지| 1,000원| 조회(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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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평전] 박에스더 평가A좋아요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016-477-6057 20016057 이창규박애주의자라는 말이 꼭 좋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는커녕 발로 걷어차 버리는 한심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박애스더란 인물을 보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와 같은 이들에겐 봉사라는 행복이 존재하며 행복은 마음속의 이익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에스더 그녀는 우리에게 봉사란 단비를 준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벽을 타파한 인물이다. 남녀 차별이란 벽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지금도 남녀차별이 남아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며 집안일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상당수 존재한다. 과거에는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넘어 그녀는 의사가 됐으며 환자들을 보살폈다. 지금부터 그녀의 행적을 과거부터 거슬러서 살펴보고자 한다.박에스더는 1876년 서울에서 아펜젤러 선교사 밑에서 일하던 아버지 김홍택의 넷째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서구사상에 눈을 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열 살 때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은 김점동인데, 세례를 받고 에스더라는 이름을 얻었고, 결혼한 뒤에 남편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가 되었다. 남달리 총명하였던 박에스더는 특히 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화학당의 스승인 로제타 홀은 그런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당시 이대병원의 전신인 보구여관의 의사였던 로제타 홀은 환자들을 진찰할 때 박에스더에게 통역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로제타 홀은 수술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불렀는데, 박에스더는 수술실에 함께 들어가 수술장면을 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러나 로제타 홀이 언청이를 말끔하게 고쳐주는 데 큰 감동을 받고 "나도 의사가 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로제타 홀을 도와 보구여관과 평양 광혜원에서 통역을 하면서 약도 짓고 환자들도 간호하던 박에스더는 열일곱 살 때 박유산과 결혼하여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식당에서 일하면서 뒷바라지해 주던 남편은 그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공부를 계속하여 1900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그 뒤 그녀는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여의사로 활동, 10개월 동안 3천여 명의 환자를 돌볼 만큼 헌신적으로 일했고, 틈만 나면 가마를 타고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서양의사가 찾아가면 도깨비 보듯 싫어하던 사람들도 그녀만큼은 부담없이 맞아주었다. 가마가 들어갈 수 없는 산골에는 당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환자를 치료해 주었는데, 그녀가 외과수술을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귀신이 재주를 부리는 듯하다"며 놀라워했다.1903년 즈음, 콜레라가 유행하자 사람들은 쥐가 콜레라를 옮긴다고 여겨 집집마다 문 앞에 고양이 그림을 걸어놓고 지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만큼 질병에 무지했는데, 그녀는 의술을 펼치는 한편 국민 의료 계몽을 위해 위생 강연도 했다.
    인문/어학| 2002.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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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평전] 로제타 홀 평가B괜찮아요
    난 인간이 선한 존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악한 존재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면 '이 세상도 살만한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선행을 베푸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내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사람은 나의 이런 면을 극복하는데 귀감이 될 사람이다.로제타 홀.......그녀의 행적은 너무나도 대단하다. 그녀가 한 선행 모두를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가 한 일은 너무나도 위대한 일이고 숭고한 행위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가 조선땅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다. 당시 조선에는 스크랜튼 의료선교사가 서민들을 위한 치료소인 정동병원을 만들었는데, 남녀를 구별하는 문화적 관습 탓에 여성을 진료하는 데에 큰 곤란과 당혹감을 겪었다. 여자는 아무리 중한 병이 들어도 남자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와 처방을 받으면 능히 고칠 수 있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진찰 한번 받지 못하고 죽는 예가 허다했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여성환자를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힘없고 소외된 여성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로제타 홀 선교사는 조선의 여성 맹인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맹인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홀 부인은 ‘뉴욕포인트’New York Paiod System라는 점자를 개발한 뉴욕 맹인교육학원의 윌리엄 웨이트 원장을 찾아가 점자구조를 배웠다. 그리고 뉴욕점자를 조선말에 맞게 고치고 조선어 교재를 점자법으로 복사했다. 교재는 조선말의 가, 나, 다, 라와 조지 히버 존즈 여사가 지은 ‘조선어 기도서’, 그리고 ‘십계명’이었다. 홀 부인은 빳빳한 조선 기름종이에 바늘로 찍어 점자를 만들었다. 평양으로 간 홀 부인은 1894년 ‘오봉래’라는 맹인여성에게 점자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도가 느리고 지루했지만 봉래가 점자로 조선 알파벳을 해득한 뒤에는 순풍에 돛단배 같이 빠르게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일년만에 봉래는 홀 부인이 준비한 모든 교재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점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말하는 것을 받아 자신이 직접 점자교습을 하게 되었다. 봉래가 글도 배우고 행복해진 것을 본 병원 환자들은 홀 부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맹인 소녀들도 받아 달라고 청했다. 홀 부인은 우선 새로 지은 어린이 병동의 방 하나를 교육장으로 내기로 하고 여기서 비로소 한국 최초의 맹인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이렇게 평양여자맹아학교가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맹인교육에 있어서는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홀 부인은 이 사업이야말로 국가의 장래가 달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도움을 구했다. 그는 미국에서 올 때 가지고 온 패물이며 옷가지 등을 팔아 경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맹인학교는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며 성장해 갔다. 1903년 일반학교인 평양정진학교 안에 정식으로 맹인여학교를 개설, 동양에서는 최초로 맹인통합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홀 부인은 맹인소녀들도 정상적인 소녀들과 함께 배워야 하며 여러 가지 운동이나 놀이에도 똑같이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문/어학| 2002.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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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복지] 구빈법의 억압적 성격
    구빈법이란 말 그대로 빈자를 구제하는 법을 말한다. 이 법은 빈자로 대표되는 최하층 사람들의 유랑을 막고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또한 부랑자들의 이동을 막고 관리함으로써 사회 불안 야기를 조기에 차단하고 방지하는 것 또한 이 법을 수립하는데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주요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이 존재하였다. 구빈법에 억압적 성격이 포함되었다는 사실 또한 이를 입증해 준다.구빈법의 억압적 성격은 우선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걸인에 대한 엄격한 관리이다. 걸인에게 구걸 허가증을 발급하여 동태를 관리, 감시하였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한 사생활 침해이고 자유 억압이다. 그러나 당시 노동력 확보와 사회 불안을 방지한다는 미명아래 무난히 시행될 수 있었다. 또 다른 구빈법에 대한 억압적 성격은 걸인에 대한 가혹한 처벌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걸인에게 형벌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형까지도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낙인을 찍는 형벌도 처해졌는데 'F' 자는 교구를 이탈하는 자에게 가해졌고 노동을 3일 이상 거부하는 자에게는 'V' 자가 찍혀졌다. 그리고 만약 'V' 자가 찍힌 자가 도망친다면 평생도록 노예가 될 수도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빼앗아가는 행위가 행하여 지고 있었다. 이 당시에의 구빈법이 억압적 성격을 가졌다는 근거는 또 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중세 시대의 작업장이라는 곳은 빈민들에게는 공포의 장소였다. 이유는 강제 노역장으로서 노역을 강요했고 노동력을 혹사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작업장 선서를 강요하여 노역에 대한 약속을 확인받았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서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의 사회 복지가 억압적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구빈법이 사회 복지의 역사에 한 장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억압적이고 비인도적이어서 만은 아니다. 구빈법을 실시한 이유 또는 배경이 순수하게 빈민을 위해서 시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불안 야기 방지를 하기 위해 구빈법을 실시한 궁극적 이유는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피지배층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구빈법이 철저하게 농업 지주들의 생각이 반영되었고 그들의 이해에 적합하게 제정되었다는 것은 앞서 말한 주장을 더욱 공고하게 해준다. 노동력의 지속적인 공급이라 말로 그 다시 농업지주들에게는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념도 사회 복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근대 초기 자유주의자들의 이념으로 으로 인해 법이 자유주의 이념에 좀 더 부합하게 개정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근대 초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이념 즉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삶과 사회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석유 파동이전까지만 해도 서구 유럽에서는 진보주의 사상이 큰 조류였고 그 사상에 입각하여 복지 정책이 수립되었으나 석유 파동이후로는 이러한 조류가 쇠퇴하고 신자유주의 사상이 큰 조류로 부상하였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많은 복지 정책들이 폐기되었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적합한 정책들이 수립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념은 사회 복지와는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회 복지가 인간의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정신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이것 마저 시대마다 달라진다면 사회 복지는 중심을 잃고 존립 여부마저 도마위에 올를 것이다. 모든 사회 복지 정책은 인간 존엄성 측면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2.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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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9일 일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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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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