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UME OF Ally, Lee201-21, Wolpyeong-dongSeo-gu, DaejeonPhone : 123-4567Education1989-resentBusinessExperience200420032002LANGUAGE AbilityPersonal Grew up BackgroundReferencesCHUNGNAM UNIVERSITY, UNIVERSITY, DAEJEONCandidate for a degree in English &English Literature in February 2005.In the upper 25% of class, in freshman year. Earned 30% of college expenses. In sophomore year, in the upper 5% of class, received an all-expenses paid scholarship.ASSE (Asia Science & lab Instrument Exhibition)Work as an English interpreter, especially represented for Science Park, one of the leading companies of the participant.ISBLLED 2004(International Symposium on Blue Laser and Light Emitting Diode)Interpretational role in Academic conference. Aided representatives of key company in communication, translating from English into Korean and vice versa. Role required fast and accurate interpretation in a professional environment.Goethe institute Exhibition for German culture and LanguageGuide for the Exhibition and let Korean people know about German cultureAnd LanguageWCG(World Cyber Games)2002International role in a big conference and competition as an interpreter.Help all the players and staffs from other countries (about 60 countries) know Korean culture.KT(Korea Telecom)institute for Foreigners.Help foreign trainees accept Korean environment and the comfortable life in Korea. Also translating Korean into English.Learning Chinese attending a institute, supervised by CNUComplete Goethe Institute Seoul, master highest course. Chosen a best student of the course and get a scholarship. (2003~2004)Gain a gold medal of a good students’ for Japanese in high school.Teaching children in a Sunday school.Tutoring English to students* Fluent in English and Korean*Took courses in English Business WritingVisited to Philippines as a volunteer, representing CNU, half month.Persona references available upon request.
파시즘은 살아있다!‘자유로부터의 도피’. 파시즘에 열광적이었던 독일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좀더 나름대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의 시각은, 바보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들을 이해 할 수도 없다. 왜 그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 했는가?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를 버거워 하는 역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들을 이상한 사람취급 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것이 파시즘이기에.파시즘이란 이탈리아어인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묶음[束]이라는 뜻이었으나, 결속 ·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파시즘이 대두하게 되는 일반적이고도 보다 광범위한 배경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위기적 양상은 모두 파시즘의 배경이 된다.그러나 여기에서 당시 상황의 파시즘이 일어난 경위와 사건 등을 밝히는 것은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할 듯 싶다.좀 더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대전 전후의 이탈리아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었을 뿐이 아니라, 지금 세계 곳곳에서도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란 항상 그렇듯이 양의 탈을 쓰고 미화되어 찾아온다. 운동권 학생을 모집할 때에도, 그들은 멋진 춤과 단결된 민족의식의 고취 등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을 하는 사이에 혹은 의식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찾아오는 이데올로기.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약간의 사회주의를 혼합한 형태이다. 초기 파시즘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모순점을 보완한 새로운 형태로 인식되었지만 결국그것은 홀로 설 수 없었고 절충과 배제를 통한 하나의 Mix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여전히 파시즘에 빠지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초기의 논점으로 돌아가서 왜,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 하는가? 가장 자명한 사실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로 인해 지게 되는 책임이라는 막중한 짐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 즉 어떤 막강한 권력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책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적으로 따져본다면 이는 인간의 본성 중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우리는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를 일종의 정신병이나 광적인 도착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로이드는 이것이 인간의 잠재된 본능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정의 했다. 즉 대중이 파시즘에 미치는 까닭은, 잠재된 그들의 마조히즘의 발현이요, 그에 맞물려 무솔리니나 히틀러와 같은 인물은 새디즘적요소, 즉 대중에게는 어떤 카리스마로 비춰질 수 있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정권을 희구 하는 추종자들이 산재해 있다. 그들은 다시 독재 체제로 들어가길 바란다.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도, 그들은 억압의 고통 속에서 어떠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파시즘의 영향권 아래 놓일 수 있는 확률이 다분하다. 장유유서를, 충효를 외치는 우리나라의 이념은 지도자 제일 주의 , 지도자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파시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시민은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장유유서를 외치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현실이다.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아가 확립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의식은 바뀌어 져야 한다. 넓은 안목과 시야에서 좀 더 깨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국민이 되기를 소망한다.친구이자, 나의 생각을 열어주는 통로인 영국인 친구와 함께 궁동 거리를 걷다가 우리는 ‘히틀러’라는 술집을 발견했다. 친구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저 술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여느 한국인처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다. 그게 뭐? 어때서? 그런데 그의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 상호명에 히틀러의 이름을 쓰는 것인지 이해 할 수 가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란다. 그것은. 실제로 그 술집을 소유한 사람이 파시스트여서 그랬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도 여느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뭔가 그가 주는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기 위해, 그 상호를 사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지 몽매한 일인지, 외국인의 시각에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그는 꿈에도 생각 지 못했으리라. 히틀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유럽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는 유태인과도, 유럽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니면 그저 역사의 한 발자국으로서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히틀러의 추종자 뿐 아니라 우리세계에도 파시즘은 있다. 우리의 의식이 어느 정도 무딘지 알 수 있었던 계기였다. 나 조차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그 상호에서. 눈을 뜨고 싶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눈을 떴으면 좋겠다. 확실히 파시즘은 아직도 존재하고, 우리는 강가에 혼자 나온 어린 아이처럼 도사리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메노키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가-얼마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동생의 처를 되찾겠다는 명분을 세워 트로이를 공격한 미케네의 아가멤논왕은 그리스의 동맹국가들의 수많은 군사와 함께 트로이를 정복하려 한다. 그러나 한번도 정복된 적이 없는 트로이 성은 난공불락이었고, 그리스의 수많은 병사들은 명예를 위해 싸우며 죽어간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극중 아가멤논은 이렇게 말한다. “명예는 나의 것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싸워 죽어가도 누가 그들을 기억하는가? 오직 아가멤논, 내 이름이 기억될 것이고, 내 이름만이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 역사는 병사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비록 몸바쳐 싸운 것은 그들이었을 지라도, 역사는 왕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훌륭한 건축물에도, 명예로운 전투에서도, 모든 역사는 역공이나 병사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로지 왕들 만을 기억할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역사나 전투에 뛰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이와 같이 현대인들은 주어진 많은 자료들로 인해 그 자신들이 역사를 꽤 잘 알 수 있다고 만족 할 지 모르나, 실제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역사가들에 의하여 부각되고 혹은 왜곡되며 삭제 된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혹은 권력에 의해, 역사는 감추어지고 변형되어 왔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지도 계급의 역사와 문화 중심으로 역사가의 시각에 의해 쓰여진 사료를 통해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지배층의 역사와 문화가 마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 인양 사료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종전의 흐름에 반향하는 새로운 시각의 역사로의 접근이 시작되었다. 지배계급 혹은 상층계급의 역사, 익히 알려진 모든 문화들의 소산만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민중의 역사 혹은 개인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미시사 라고 하는 이러한 연구는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성립 되었으며 ‘치즈와 구더기’의 저자 진즈부르그는 이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종전의 거시사가 전체적인 숲을 보았을지언정 구체적인 나무과정에서 작자는 메노키오가 읽은 문헌의 목록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 당시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 여러 종파와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러나 메노키오는 그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을 마르틴 루터의 사고를 그대로 수용한 것도 아니며, 그가 읽은 책들이 자신을 심문한 재판관과 똑같았을 지라도 나름대로 독특하게 해석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의 독자적 사고 방식은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소홀히 여겨온 민중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메노키오의 이단적사고와 독창성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 아니라, 그 같은 사고를 가능하게 한 지속적이고 심층 구조적인 민중 문화가 뒷받침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진즈부르그가 메노키오의 재판 기록에서 찾아낸 것은 사료상의 진심여부가 아니라, 사료의 담론 속에 억압된 민중 문화이다.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치즈와 구더기가 불러일으킨 가장 큰 쟁점은 대표성과 재현성의 문제일 것이다. 즉, 읽고 쓸 줄 알고 촌장의 지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던 메노키오가 민중문화를 과연 대표하는 농민이라고 할 수 있는 가라는 것이다. 즉 메노키오와 농민과의 거리를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서문은 이렇게 밝힌다. “메노키오가 농부의 전형이었다면, 진즈부르그는 그를 역사 쓰기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미시사의 사료가 거대하거나 대표성을 갖는 정형이나 전형이 아니듯이, 메노키오 역시 틈새와 간극의 인물로서, 상층 문화와 민중 문화가 교류하는 경계에 놓인 인물이다.” 즉, 이 경계 사이로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둘러싼 다층적인고 입체적인 역사적 구조체를 추적해나가는 것이 미시사의 특징이자, 진즈부르그의 방식인 것이다.메노키오의 본명은 도메니코 스칸델라.(Domenico Scandella) 어떠한 연유에서 그렇게 불려지는 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는 이 책에서 줄곧 메노키오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는 1532년(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발간된 해이다.) 몬테레 알레 Montereale에서 출생했다. 이 도시는 프리울리 라 강력하고 지혜로운 자가 하느님입니다"라며 자연의 태초의 상태, 즉 혼돈 속에서 인간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는 하느님은 자연을 기반으로 탄생한 인간들의 선각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그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신이라기보다는 성 요셉과 성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에 불과하며 단지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신뢰 받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이러한 신념을 갖고 있는 메노키오가 인간이라는 동등한 위치에 서열을 두고자 하는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민중들의 무지를 경멸하며 일부러 라틴어를 사용하는 성직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메노키오는 그들에게 하는 고해성사는 나무에 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차라리 스스로에게 자신의 잘못을 되묻는 행위가 훨씬 효과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이듬해 5월 '악마의 심성(?)'을 가진 그는 남은 생애동안 옥살이 할 것을 선고 받는다. 2년 후 자신의 죄를 뉘우치겠다는 명목으로 풀려났으나 다시 수도사가 되겠다는 사람에게 그 일은 '동냥아치의 일'이라며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결국 1599년 말 사형선고를 언도 받는다.메노키오는 재침례교와 루터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사료되기도 한다. 그는 온갖 부를 가지고 있는 성직자들을 가난한자를 억압하는 권력일 뿐이라 생각하고 모든 의식은 그야말로 상업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 의식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저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의 모든 독창적이고 황당 한 생각들의 원천이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이다. 그가 탐정과 같이 실마리 찾기를 이용하여 발견해 낸 것은 그가 그런 사상들을 허름한 서점에서 산 싸구려 책들과 빌려온 책들 그리고 주위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으나, 그 자체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여 모든 생각들을 굳혀 나간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기 만의 사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책의그의 주장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인간에게 육체와 영 그리고 영혼이 있다는 그의 말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듯하나 계속되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기로를 잃고 만다. 육체의 죽음으로서 영혼도 죽고 영만이 남아 하나님께로 간다고 대답하였던 그의 말은 끝내 영과 영혼은 같다는 엉뚱한 귀결을 내리기도 하니 말이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들은 진즈부르그의 의도에 좀더 귀를 기울였을지 모르나 나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이 메노키오라는 사람의 견해에 대해 황당하면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치즈와 구더기’.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선택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과 혼란을 동시에 제공하는 뜨거운 감자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서평을 쓰기 위해 나는 미시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고, 책을 읽는 내내 온갖 생각으로 나의 두뇌를 작동 시켜야 했다. 한마디로,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듯하다.어떤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책을 읽음으로써 행복해 지십니까? 책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지식이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알면 알수록 당신은 더 괴로워 질 것입니다. 문학은 당신을 고뇌하게 만들고, 그렇기에 지성인은 무지한 사람보다 고민이 많습니다. 라고. 아마도 영문학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음악의 여신 Muse가 자신의 머리에 가시로 만든 관, 즉 시적 재능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시를 쓰지만, 알면 알수록, 세상에 눈뜰수록 더욱더 괴로워 진다는 어느 여 시인의 말처럼,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에 눈뜨는 동시에 괴로워 짐을 발견했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다. 어려서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한번도 성경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그것은 이세상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성결하고, 진실되며 하나의 오점도 없는 것이라고 여겨 의심치 않아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책들, 그 중에서도 속어로 된 성경이라든지의 많은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이단에 관하여도, 성경에 나온 진실에 관하여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성경 그 이외에 다른 의견이나 사본들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은 존재했고 지금도 그러 할 것이다. 이단으로 규정되고 안되고의 문제, 즉 내가 사실로 믿어 왔던 것들이 사람에 의해 결정된 것이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사실 루터파도 처음에는 이단으로 간주되지 않았던가.당시 중세 시대에의 기독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단 재판관들이 어느곳에나 상주할 만큼 이단의 문제는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였고 그만큼 교황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교리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은 믿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로 성령의 계시에 의하거나 성경에 명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시대에 하층민 이면서도 이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던 그의 태도는 사뭇 마음에 든다. 비록 그의 이론이 모순 투성이라 할 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그의 용기도 높이 사고 싶다.또한 메노키오의 문제가 이토록 화두에 올랐던 것은 그 당시 재판관들이 듣기에도 하층민에 속하는 한낱 방앗간 주인의 머리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표출되었다는 것이 놀라웠을 뿐 아니라 메노키오의 생각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요즘 나에게 많은 생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새로 사귄 친구 Daf와의 대화이다. 그는 영국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웨일즈 지방에서 온 Welsh이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크리스찬이며 현재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언제나 그와의 대화는 나를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 하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며칠에 걸쳐 끙끙대며 읽는 동안 그는 내게 책의 내용에 대해 물었다. 내가 기독교의 진리에 관해 그리고 내가 책을 읽고 고심하는 부분에 의해 이야기 하자, 그는 너무나 쉽게도 대답한다. 물론 성경은 사람에 의해 왜곡된 부분도 많고,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교회에서 은폐하고 있는지. 가장1
혁명?! 쿠데타?!러시아 혁명은 그 나라에서 전제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어난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니다.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난 이 혁명으로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체제의 분열을 갖게 되고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대대적인 사건이었다. 이 혁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축으로 한 양극체제로 들어서야 했고 그 후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건설했으며, 구 소련의 붕괴가 되기까지 온 나라를 이데올로기상의 적대적 관계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 혁명은 맑스 - 레닌주의 이념체계의 한 부분으로서 또는 그에 대한 의도적 거부로서 이루어져 왔으며, 또한 그 혁명으로 태어난 소련의 정치 사회 체제가 변화함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왔다.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관한 논의가 정치나 이념논쟁의 수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더욱이 러시아 혁명은 영국이나 프랑스 혁명과는 달리 미리 마련된 각본을 가지고 있었던 혁명이며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는 혁명이라는 사실 때문에 러시아 혁명에 대한 학문적 조명은 정치의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해빙과 데탕트 덕분으로 소련 내에서도 혁명의 문제에 관해서 학문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약간 허용되었고, 소련과 서방의 학계간의 학술 교류가 시작됨에 따라 러시아 혁명에 관한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도입했다. 이 시기에는 제삼세계에서의 혁명운동의 자극으로 러시아 혁명 뿐 아니라 맑스주의 이론과 혁명 문제 전반에 대한 세계학계의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러시아 혁명에 관한 나의 생각을 기술하는 일은 조야 한 배경지식과 역사의식을 가진 내게는 확실히 난제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더구나 분단국가라는 체제 아래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진 민주 자본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과 무관심을 야기 시킨 것이 사실이나, ‘역사는 당대 사’라고 했던 교수님의 말씀에 동조하며 조금은 이성적인 식견으로 다시 한번 사회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러시아 혁명이 그토록 중요시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러시아 혁명을 프랑스 혁명만큼 중요한 역사사의 한 획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일까.시대상황을 살펴보자. 아직까지 유럽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노선을 가진 러시아는 후진국의 반열에 낄 수밖에 없었다. 전제정과 농노제의 유지는 기존 봉건 사회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 빈곤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10월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볼셰비키 혁명은 러시아의 체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체제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구 소련의 실패를 예로 들며 그것의 비현실성을 이야기 한다. 개인적인 나의 입장은 그것이 성립되었을 경우 유토피아의 실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지금의 러시아는 이빨이 뽑힌 사자이다. 더 이상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또 이데올로기 적으로 미국과 맞설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자유주의 노선을 타던 첫 혁명 때의 그들은 어쩌면 지금 까지 점진적인 발전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니콜라스 2세는 국민들을 너무 사랑했나 보다. 그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진압했다면 대세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 터였다. 안타까운 것은 농민들이 후반부에 볼셰비키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은 레닌이 내세운 현실적인 개혁안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 일 것이다. 즉각적인 평화, 소비에트로의 권력집중과 임시정부의 해산, 토지의 국유화, 군대-경찰제도의 폐지와 같은 급진적인 그의 4월 테제 선언은 임시정부의 무능력에 실망하던 농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였을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공약에 지나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을 공약.레닌이 일으킨 것은 혁명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권력 집중만을 꾀한 하나의 쿠데타에 불과 한 것이다. 맑스가 이야기 하는 사회주의와 레닌의 그것은 다르다. 맑스는 재산이 없는 즉, 무자본의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시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분명히 경고했으나 레닌은 그를 무시했다. 그가 진정으로 꾀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가장한 또 다른 전제, 즉 독재 였을 것이다. 망명중인 그에게 혼란스러운 조국의 상황은 어쩌면 가장 큰 권력장악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능력과 재능을 타고 났다. 인격적으로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 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회든지 아는 자와 모르는 자,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힘의 논리이다. 레닌 역시 그 자신이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우매한 농민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추구를 달성한 것 뿐이다. 아직도 사회주의의 이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가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사회주의가 수정되어질 수 있는 가가 아니라,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고 어떤 순간에도 그 욕망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는 건설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구 소련은 아직도 혁명의 합법성을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고 하나의 쿠데타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름답고 영원한 것들은 왜 시간이 흐르면 덧없이 사라져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한때 그렇게 아름다웠던 연인도, 그토록 융성했던 왕국도, 풍미하던 이론도 영원한 것이라고는 지상에 없다. 아니, 모든 것은 덧없기에 아름답고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 당시의 이별의 고통은 끝이 없고, 삶의 고초는 괴롭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늘 그 추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항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늘 지나간 일이었기에 첫사랑은 아름답고 소유할 수 없기에 과거는 아름다운 것이다. 첫사랑을 해 본일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많이 들어봄직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나는 머뭇거린다.첫사랑......내게도 과연 첫사랑이 있었던가? 이렇듯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내게는 마음저린 첫사랑은 찾아오지 않았었나 보다.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이라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첫사랑이 이루어진 커플은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겔 테다. 이미 소유한 것은 더 이상 갈망의 대상도 그리움의 대상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에.비록 내가 가슴 아린 첫사랑을 하지는 못했어도, 나로하여금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와이 슈운지의 작품, 러브레터 .깜깜한 저녁,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에 숨막히는 적막속에 고요히 돌아가는 필름. 숨죽여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면을 응시하는 소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내 모습이다. 그렁그렁 눈에 눈물을 머금고 열중하고 있는 이 영화는 무엇인가? 바로 이제부터 이야기 하려는 러브레터 다.나는 고등학교때 제 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어릴적부터 국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고 그만큼 흡수력도 빨랐던 나는 당연히 일본어를 좋아했고, 또 그 반에서 톱을 달렸다. 20대였던 일어선생님과 나는 감성이 통했고 (물론 여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내게 이런저런 정보와 자료들을 많이 제공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엇 때문에 많은이의 공감을 산 것일까?그것은 아마도 감독의 의도하에든 아니면 부지불식간에든 그 영화에 내포된 인간 본연의 감성들이 우리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인간은 늘 결핍을 느낀다. 모태에 있었을때의 평온함은 어머니와 자신의 몸이 하나라는 착각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소유한 상태라고 느끼게 하지만 모태를 탈피에 세상에 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아이는 이제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것 을 잃어버리게 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억압된 아이는 잃어버린 그 무엇, 바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그 무엇을 찾아 온 생애를 헤메게 된다. 고통이 없는 평화의 세계. 어머니의 품과 같은 그 세계를 인간은 늘 그리워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얻을 수 없고 인간에게 늘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늘 욕망을 가지고 산다. 욕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채울수 없는 것이지만 죽는 순간에 그 욕망은 채워 지게 된다. 따라서 프로이드의 쾌락원리의 극치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통해서 인간은 어머님의 품과 같은 갈등과 고통이 없는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 충동, 그리고 삶 충동, 그리고 늘 무엇인가를 희구하는 욕망과 결핍, 또한 억압에 의한 신경증과 도착, 그리고 애도와 상실. 그리고 반복. 정신 분석학에서 설명하는 그 모든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에 관한 요소들이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는 곳곳이 나타나 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요소들은 영화를 백번 본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알든 모르든 우리가 공감을 느끼는 것은 의식의 세계 저편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영화속의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우리 마음을 동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여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메는 목마른 두 여인이 있다. 히로코와 이츠키라는 두 여인. 놀랍도록 닮은(사실 영화에서는 똑같지만) 두여인에게는 각기 어떤 목마름이 있을까. 모든 영화와 소설이 그렇듯이 훌륭한 복선과 암시는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가 된다. 영화의 시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영화 전체의 스. 실제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 늙은이의 죽고싶다는 말은 항상 거짓말이라고 하듯이 우리는 실제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 닥칠때는 언제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힘이 들 때 우리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아이러니인가. 아마도 그것은 프로이트가 쾌락의 극치는 죽음이라고 말하듯이, 우리의 무의식 중에도 죽음은 모든 고통을 해소해 우리를 엄마의 품과 같이 안락함으로 인도하는 왕도라는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때로 죽음의 위협 앞에 살기를 그토록 희구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잠재된 또하나의 삶 충동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늘 죽음 충동과 삶 충동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곤한 일상을 끝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느끼는 한없는 평화, 우리는 때때로 이대로 영영 잠들었으면 하고 느낀다. 이것은 바로 죽음 충동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햇살에 눈을 떳을 때,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금 분주한 삶으로 뛰어간다. 우리를 눈뜨게 하고 자리에서 일으키는 힘, 바로 이것이 삶 충동이다. 히로코가 눈속에 누웠던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연인이 그곳에 누워있을 거라는 믿음. 아직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이 일으킨 동일시와 죽음충동의 혼합일 것이다. 즉, 처음에 그녀는 그를 느끼고 싶어서, 그의 마음은 어떨까 느끼고 싶은 동일시를 일으켜 설원에 눕는다. 그리고 숨을 참는다. 죽음 체험. 하지만 그 산에서만, 그녀가 그와 동일시를 꾀했을까? 모든 생활에서 그를 잊지 못하는 그녀를 볼 때 그녀는 아마도 그가 죽은 직후부터 그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동일시의 일환으로 죽음을 꿈꾸어 왔을지 모른다. 그와 다시 하나가 되는 길은 죽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또한 그를 잊지 못해 생기는 온갖 괴로움은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모두 잠재울 수 있으므로. 두가지의 충동으로 인해 그녀는 그 자리에 누워서 죽음 연습을 해 본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끝까지 숨을 멈추고 죽지 않는다. 다시 숨을 내뱉은 후 삶 죽음뿐이다. 추모식에서의 이츠키의 모습은 오히려 담담해 보인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던데.. 그래도 이기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모습인데, 연인 히로코는 오히려 아직 그를 묻지 못하고 있다. 부모가 담담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애도를 마쳤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아직 그를 애도 할 줄 몰라 상실의 아픔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신경증에 걸렸다. 애도는 덧없음을 이기고 다시 새살이 돋는 가장 근원적인 삶 충동이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면, 애도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고 싶거나 남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이것이 우울증이다. 그녀는 중간 단계에 있다. 히로코는 이츠키의 어머니와 함께 먼저 묘지를 나온다. 그리고 죽은 연인의 집에 들러 그의 중학교 앨범을 뒤적이다 그가 살았던 오타루의 주소를 손목위에 적는다. 지금은 국도가 되어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히로코는 죽은 연인에게 가망 없는 편지를 쓴다.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나 나는 공감이 간다. 흔히 죽은 부모에게 편지를 날리는 소년소녀가장의 이야기를 기억하듯이. 우리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을줄 알면서도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헛된 희망이 아직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의 편지에 답장이 온다. 이츠키에게서 온 답장.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줄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 이츠키의 유령과, 사실은 알수 없는 그 실체와 편지를 계속 교환하고 싶어한다. 끝내 그것이 동명 이인임을 알고 무척이나 실망하는 그녀의 모습속에, 그녀의 덧없는 희망이 보여진다. 그러나 답을 보내는 이츠키는 유령이 아닌 죽은 연인과 이름이 같은 여자였다. 히로코와 너무나 닮은 여자 이츠키. 그러니까 여자 이츠키와 히로코는 외모가 같고, 연인과는 이름이 같다. 연신 기침을 하는 여자 이츠키. 사실은 그녀도 병자이다. 이츠키의 병은 감기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끝나지 않아서 나타난 병이었다. 그녀역시 히로코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히로코와 이츠키. 이 둘은 분명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애도 기억속에서 관객은 그녀의 숨은 사랑을 발견해 낸다. 마치 남자 이츠키가 빌려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란 책의 제목처럼. 이츠키는 말한다. 그애는 도서관에서 아무도 안보는 책을 무수히 빌려, 책 뒤에 자신의 이름을 적던 이상한 아이 였다고. 둘이 함께 일하던 도서관에서 남자이츠키는 자신의 이름을 책 뒤에 써서 여자 이츠키에게 가져와 대출했는데 매번 남들이 안보는 어려운 책들이어서 그녀는 의아해했다. 왜 그것이 자신의 이름임을 알지 못했을까. 그녀의 기억속에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시험지 뒤의 그림이 바로 여자 이츠키 였음을, 그리고 독서 카드뒤의 이름도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음을 알수 있다. 또한 많은 추억속에 사랑은 남자 이츠키 뿐 아니라 여자 이츠키에게도 흐르고 있었음을. 그런데 왜 그녀는 그런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었을까. 분명 그 후에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도 이츠키는 첫사랑이었음이 분명한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녀가 기침을 멈추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에대한 애도의 결핍이다. 아직도 이츠키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아직도 그녀에게 상실의 아픔일 뿐, 애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척 행동하지만, 그녀는 무의식 아님 어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아버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애써 그 기억을 잊으려 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기침을 유발하고, 사랑 할 수 없게 만들고, 또한 그 당시의 기억조차 잃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히로코와의 러브레터 를 통해서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 상처를 치유한다. 애도할 줄 몰랐던 그녀는 억압되었던 기억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면서 하나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왜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남자 이츠키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대신 책을 반납해 달라고 하고서 전학 가 버린다. 한번도 제대로 표현해 본적 없던 사랑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 버린 것이다. 작별의 시간, 슬퍼 할 시간도 없이 아버지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