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990년대의 한국은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을 통해 계속적인 고성장 속에서 세계 11위의 무역대국, OECD 가입국,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는 등 아시아의 용으로 각광받으면서 제3세계의 발전 모델로 연구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대외신인도 추락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 부도유예협약, 화의, 법정관리, 계속되는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한은 외환보유고의 고갈 등 일련의 사태 이후 1997년 11월 21일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요청하기에 이르고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합의 이후 공황에 의한 경기후퇴가 더욱 심화되어 총체적인 국가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변동성의 급등 및 외환보유고의 급감 형태로 표출된 우리 나라 외환 위기에 대하여 지금부터 그 원인을 국내외적 요인들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본론금융위기의 원인(1) 취약한 경제구조이번 사태의 원인 중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인한 부실 채권의 증가 때문에 금융기관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아, 한보, 진로 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인해 해당 기업들에 대출해 준 금융기관들의 부실 여신 증가로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임도가 하락하였고 이에 따라 종전에 자동 연장되던 단기 외화 차입금의 연장이 중단되었다. 부도방지 협약과 법정관리에 의한 채권의 동결조치는 금융기관의 부실 여신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뒤늦게 부도방지협약의 대상이 된 종금사의 경우 부실 여신의 증가를 막기 위해 스스로 대출 조기 회수를 서둘렀고, 그로 인해 대기업들의 도산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부실 여신이 더욱 증가하였다.(2) 정부규제기업에 대한 정부규제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들이 기업의 부도 증가와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주식의 발행과 차입이 있다. 차입은 회사채 등의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과 금융 우리 나라의 기업금융제도는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 등 직접 금융을 간접금융에 비해서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주식 발행을 통해 조달된 자기자본의 수익에 대해서는 법인세가 부과된다. 따라서 주식발행은 차입에 비해 자본비용이 높다. 이 외에 주식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최근 몇 년간의 영업실적이 좋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주식을 발행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 현실은 주식발행을 통한 자기자본 확보를 제약하는 요인들이었다. 반면에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은 일정한 정도의 신용이나 담보만 있으면 비교적 신속, 용이하게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업들은 직접금융 보다는 차입을 선호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제도들의 문제는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높인다는 데 있다. 특히 회사의 재무상황이 나빠질수록 주식발행을 통해서 자기자본의 비율을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제도는 오히려 그런 기업일수록 자기자본을 확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차입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게 하여, 부도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하는 악순환을 유발하였다. 물론 차입은 부도의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기 쉬운 경영자들을 독려하여 효율적인 경영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즉 법으로 경영권을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 차입에 따른 적당한 정도의 부도위험을 안고 있는 기업과 부도 위험이 작은 기업이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한다면 전자의 기업이 경쟁에 승리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기업들의 차입 성향은 그 정도를 넘어 섰는데, 그 원인은 주식발행에 대한 지나친 규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규제로 우리 나라의 금융기관들, 특히 은행들은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와 종업원들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여왔다. 주인이 없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인 소유지분을 4%로 제한한 것과 금융기관의 영업활동에 대한 수많은 규제 때문이다. 그 결과 은행이 상업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자금의 집행, 대규모 대출에 대한 정치적 결정 때문에 자신이 재량권을 가진 사항들에 대해서도 이윤이 아니라 안전만 추구하여 신용평가에 의한 여신보다는 담보와 지급보증을 위주로 해서 여신을 운영하여 왔다. 그 결과로 재벌들이 대규모의 상호지급보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이 초래되었다.또한 시설자금을 제외한 기업의 해외 차입은 은행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해 왔다. 이것은 은행의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관치 금융의 온상이었다. 기업이 직접 해외로부터 직접 차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면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평가나 회계정보의 투명성이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대출자의 신용이나 경영상태에 대해 민감한 외국의 금융기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투자의 안전성과 회계정보의 투명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을 통해서만 해외차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도입하면서도 관치금융의 폐해는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3) 동남아의 통화위기1997년 7월에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홍콩증시의 폭락, 일본 은행들의 연쇄 도산 등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금융경색을 가져와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부족 초래하였다. 1997년 말 G-10 국가 은행들의 해외대출중 동남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9%차지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통화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이들은 대출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자금운용비중을 급격히 낮추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자금회수 압력이 가해졌다.또한 동남아 통화위기로 인해 국내 금융기관들이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자산들을 회수하지 못했으며, 그것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4) 정부의 정책 실패경상수지 적자가 반드시 일시적인 교역조건의 악화와 투자율 증가로 인한 현상으로만 파악하여, 환율을 적시에 평가절하 시키지 않은 것은 정부의 커다란 실수라 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된 것은 앞절에서 언급한 수출단가의 급락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뿐만 아니라, 소비재 및 에너지 수입 증가, 무역외수지 적자 확대, 그리고 저효율-고비용구조의 심화되었기 때문이다.에서 볼 여 높았던 반면에, 1996년에는 소비재 수입이 21.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것은 자본재 및 원자재 수입의 증가율의 2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소비재의 수입증가기여율도 1995년 10% 내외에서 1996년에는 20%까지 급증하였다. 세부품목으로는 의류(39%), 신발(35%), 가구(30%), 승용차(3000cc 이상 98%) 골프용품(76%) 등의 수입이 급증하였다. 총소비지출 중 수입소비재의 비중이 1993년 4.1%에서 1996년 5.4%로 상승하였다. 한편 에너지 수입액이 1993년, 1994년 2-3%였던 것이 1995년과 1996년에 23.2%, 27.4% 각각 증가하였다. 주요 품목별 수입동향(전년대비, %){199419951996총수입22.132.011.3소비재수입증가 기여율24.611.727.89.321.219.4원자재수입증가 기여율14.835.432.650.710.245.5자본재수입증가 기여율32.153.032.540.110.035.1무역외 수지의 악화가 또 하나의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3년과 1994년 무역외 수지 적자가 20억달러 정도였던 것이 1995년과 1996년 각각 36억달러와 77억달러로 대폭 확대되었다. 여행수지 적자가 1993년에 6억달러에서 1995년 12억달러, 1996년 26억달러로 증가하였다. 운수보험 수지가 같은 기간에 7억달러, 0.5억달러, 17.4억달러로 각각 증가하였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누적되어 온 것은 고비용-저효율의 구조에 따른 우리나라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한편, 환율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외국투자자들이 한국경제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계속 보내게 되는 징후는 되었다. 외국투자자들은 이것을 원화의 구매력 패러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환율이 궁극적으로는 조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그 조정이 지연되면 될수록 더욱 더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한편 환율변동을 분석하는데에 경상수지를 관찰하는 외국투자자들은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실질환율절상이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수출증가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한국정부가 언젠가는 원화를 평가절하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외국투자자들이 언젠가는 평가절하될 것으로 예측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원화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급격하게 감소시킨 주원인은 아닐지라도 신뢰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또 국내물가 안정을 꾀하려는 목적에서 원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국가에서는 환율이 상승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의해서 물가불안이 초래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는 환율이 상승한다해도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른 우려는 불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잘못된 환율정책의 더 큰 피해는 중앙은행의 외환매도 개입에 의한 통화긴축의 부작용이었다. 통화긴축은 그렇지 않아도 높은 국내금리를 더욱 높여서 기업부도사태와 경기침체를 심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환율안정정책은 경제안정 추구의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환율을 안정시킬 것이 아니라 환율을 변동시키는 가운데 물가안정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하면서 원화의 조기절하를 유도했어야 했다.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외채가 주로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되었고 이 금융기관의 외채가 대부분 정부지급보증이 없는 순수 민간채무였기 때문에, 만일 채무기업들이 도산하고 금융기관들의 재무구조가 악화된다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것은 재정 및 통화정책이 상대적으로 건전하였고 경상수지적자도 그리 크지 않았던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게 될 수 있는 통로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1997년 초까지는 외국투자자들이 외채지표를 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다가, 대기업들의 연쇄도산이 발생하기 시작한 1997년 2/4분기부터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