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지하철타다 (8장 남성과 여성)마가렛 미드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미국 인류학의 아버지인 보아스로부터 교육받았다. 독일에서 이주한 보아스는 미국대학에 처음으로 인류학 전공학과를 세웠다. 보아스의 첫 번째 표적은, 모든 문화를 장차 서구로 뻗어나가는 탄탄대로상의 역참으로 묘사하는 조합한 진화주의였다. 생물학적 차이가 문화차를 결정한다는 것은 낡은 인종주의 관점이었다. 보아스는 인종, 문화,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은 그 점을 당연시했다. 민족간의 유의미한 차이의 원인은 인종이 아니라 문화였다. 그들이 관심을 가진 문제는 문화가 어떻게, 또 어느 정도로 행동을 변형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보아스는 미국에서의 사춘기 체험의 본질은 그 문화 특유의 것, 즉 사춘기의 반항은 독립을 향한 좌절된 욕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시사하였다. 보아스는 미드가 다른 문화, 특히 보아스 학파가 20여 년 연구해왔던 북미 원주민 문화의 사춘기 체험을 조사해주기를 바랐다. 미드는 집중적 현지조사를 할 곳으로 외딴 마누아 제도를 선택했다. 미드에 따르면, 사모아 여성들은 조정과 긴장의 괴로움을 겪지 않고 아동기에서 사춘기, 성인기로 수월하게 이행하였다. 개별가족은 긴밀한 유대의 지역공동체에 뿌리박고 있으며, 아이는 다정하고 관대한 확대가족 내에서 자유롭게 오가며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의지할 수 있었다. 1931년에 포춘과 미드는 뉴기니의 세 다른 사회에 대한 2년에 걸친 현지조사를 시작했다. 미드는 문화유형들과 그에 따라 조성되는 특징적 인성에 대한 베네딕트의 아이디어를 탐구하고자 했는데, 특히 양성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아라페쉬족의 문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인성 및 역할은 똑같이 어버이같이 관대하고 다정하며, 가벼운 성적 특성만 갖는 식으로 양식화되었다"고 미드는 기록했다. 문두구모르족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점에서 아라페쉬족과 대조적이었다. 사나운 성격의 남성과 여성이 선호되었으며, 온화하고 다정한 남성과 여성은 문화적으로 용인되지 않았다. 이아트물족 사회에서는 성역할이 구별되어 있었다. 챔불리족도 이아트물족처럼 양성의 역할이 서로 뚜렷하게 달랐다. 학문적 입장에서 그들의 이론적 논쟁이 얻은 결론은 타고나는 기질의 레퍼토리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각 문화는 그러한 천성적 가능성 중에 일부를 골라 자기네 문화의 이념형을 구축하는데, 그 중에서 대조적인 두 기질형을 동원하여 남성-여성형을 대비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미드가 전도한 메시지는 이른바 문화상대주의의 대중판이었다. 인간은 유연하며, 비록 전적으로 아니지만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문화적 편차는 분명히 인종적 차이와 관계없으며, 성과 연령의 차이조차도 관습에 의해 상당부분 변경된다. 사람을 형성하는데 있어 양육은 유전보다 더 결정적이다. 다윈은 선택압력이 더 크고 강한 공격적인 남성과, 또 남성에게 매력적이며 강한 모성애를 지닌 여성을 선호하는 식으로 남자와 여자에 달리 작용했음을 시사했다.'남성과 여성'이라는 이 장에서는 성 차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남녀 성차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두 성은 서로 상이한 심리적 특징들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입장에서는 남녀가 보이는 지적 능력의 차이는 두 성의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우수한 공간 지각능력과 여성의 우수한 언어능력은 각 반구가 발달하는 정도와 속도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다음은 사회 문화적 원인이다. 이 관점에서는 성차를 생물학적 원인으로 설명하기 보다 남녀가 보이는 지적, 사회적 능력의 차이를 두 성이 다르게 경험해 온 사회적 학습의 영향으로 설명한다. 우선, 생물학적 원인이 비중있게 자리를 잡고 있는 지적 능력의 성차에 대해서도 일부의 연구자들은 반대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의 공간능력에 대한 우수성은 이에 대한 남아들의 훈련이 여아들에 비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간 지각능력은 한 개인이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주의를 돌아다님으로써 개발될 수 있는데,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이러한 활동에 제한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고 따라서 능력의 개발도 제한될 수 있다. 또한, 사회 문화적 입장에서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보이는 공간능력에서의 우수성은 모든 문화권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므로 생물학적 원인 규명은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이 입장에서는 남녀의 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도 사회문화적 요인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 예로 공격성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남아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공격적인 것이 수용되어지는 반면, 여아들의 공격성은 많은 경우 눌러지고 억압되어진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는 남아와 여아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공격 성향의 '표현' 정도를 다르게 하고, 이를 점차 상이한 정도로 굳어지게 하는 것이다. 난 그동안 어쩌면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하여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여자는 여자니까 아기를 키우고 가정의 일을 하는 것이고, 남자는 남자이기 때문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주 예전부터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지금과 바뀐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면 지금 현재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로마의 위대한 장군 막시무스는 전투마다 그의 군대를 승리로 이끌어낸다. 죽을 날이 머지않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막시무스를 총애하여 도덕적이지 못한 아들 코모두스가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한다. 그러나 코모두스는 이에 질투와 분노를 느껴 급기야 황제를 살해한다. 왕좌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게 된 막시무스는 노예로 전락하고 역시 노예인 쥬바와 함께, 검투사 출신이었던 프록시모에 의해 투기장의 검투사로 매일 훈련을 받는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새로 즉위한 황제 코모도스에 대한 복수 뿐이다. 검투사로서 매 경기마다 승리로 이끌면서 살아남자 그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높아 간다. 로마에 검투사 시합이 열리자 프록시모는 막시무스와 다른 검투사들을 데리고 로마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사랑했던 코모도스 황제의 누이 루실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놀라운 지략과 검투술로 어느새 로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 코모두스는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분노하지만 민중이 두려워 그를 죽이지 못한다. 드디어 막시무스는 예전의 부하들과 은밀히 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존경하던 황제를 살해한 난폭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한다. 아직도 막시무스를 사랑하고 있는 루실라는 자신의 아들 목숨이 위태롭자 동생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의 반란을 도우려하는데, 결국 실패하고 만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의 등을 찌르고 그것을 숨긴채 검투장에서 둘만의 대결을 펼치지만 결국 죽음을 맞는다. 막시무스 역시 루실라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이 영화의 빛나는 전투신은 영화 [Braveheart]와 [The 13th Warrior] 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서의 검투시합과 선을 대표하는 막시무스와 악을 대표하는 코모두스의 대결은 [Benhur] 를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는 정말 권선징악형의 남성위주의 영화이다. 남성의 위대한 힘, 야망, 음모, 영웅담 까지……. 이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은 별로 없다. 루실라가 동생에 비해 현명하고 선하다는 것을 영화 초반에 알게 되지만 거사를 앞두고 자신의 아들의 목숨이 위협을 받자 모조리 반란음모를 불어버리는 모습은 정말 짜증나기까지 한다. 뭐 좋은 의미에서 본다면 어머니의 모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거지만. 아무튼 막시무스의 위대한 생은 주변 다른 인물들의 도움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이런 위대한 영웅담은 남성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기가 쉽다. 아, 물론 이 영화는 막판에 막시무스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미 죽은 자신의 아내와 아들과 만나는 모습을 환타지적으로 처리하면서 여성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그들도 이 영화에 동화되도록 하고 있다.물론 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왕위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버지마저 목졸라 죽이던 코모두스가 단지 대중이 두려워 막시무스를 죽이지 못한 점이 설득력이 떨어지고, 배고파 날뛰던 원형경기장의 호랑이들이 금새 뻗어서 가만히 앉아있던 장면, 그리고 코모두스에 충성을 받치던 부하가 갑자기 확 바뀌어 막판에 명령을 거역하고 칼을 주지 않던 점입니다. 이런 단점들은 사실 이 영화의 웅장함에 묻혀버리기 쉽다.듣던 대로 영화 초반에 대단한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동원된 엄청난 물량과 엑스트라의 규모도 대단하고, 사정없이 숲을 불태워 버리는 것도 인상적이다. 문득 현대의 헐리우드에서나 가능할 이런 장관에 쓸데없는 상념이 끼어든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동원하여 자유자재로 지휘할 수 있는 권한과 한 오래된 제국의 황제가 누렸던 엄청난 권세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제국의 황제가 시민들의 진정한 즐거움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양으로 마련한 검투사 대회의 모습과 팔걸이에 올려둔 나의 팔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모습에 대하여.시끌벅적한 전투가 끝나고 나면 서서히 영화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주인공 막시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인적인 선인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중간에 잠시 자신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의 생명을 건 사투에 몰두하는 검투사 노릇을 하지만, 아무래도 다소 밋밋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감옥에서 코모두스의 누이 루실라에게 혹하는 듯한 모습은, 중간에 삽입된 영웅의 오래된 로맨스로 보기엔 너무나 설득력도 없고 인물의 성격에 대한 상승 효과도 너무나 부족하다.주인공의 극단에 서있는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에 비해 전형성을 약간 탈피하고 있으나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한 증오 때문에 세상을 다 파괴할 거라는 무서운 선언을 하더니 파괴하는 것이라곤 그의 아버지와 고작 검투사 몇 몇에 불과하다. 권력욕에 불타 온갖 악행을 거듭하리라 예상했던 관객에겐 다소 의외이다. 그의 행동만 놓고 본다면 그는 권력욕에 불탄다기 보다는 세상의 인기와 누이인 루실라의 사랑 뿐인 것 같다. 두렵기 보다는 오히려 딱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가 주최하는 검투사 대회는 마치 현대의 프로야구 경기 같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그의 행동은 마치 현대의 정치인들이나 연예인처럼 여겨진다.뭐니뭐니 해도 가장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인물은 루실라라는 여인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그녀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이나 막시무스와의 대면을 보면 그녀는 마치 꺼삐딴 리처럼 처세에 능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점점 막시무스에 대한 애정이 강조되고 사실은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변해간다. 황제가 된 코모두스가 그의 권력에 대항하는 모반자들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 의논하는 장면에 가서는 혼란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제 관객은 그녀가 과연 막시무스의 복귀를 원하는 것인지 코모두스의 편에 서려는 것인지 헤깔리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갑자기 영민함을 다 잃어버린 듯한 그녀는 쉽사리 배신까지 일삼더니만 결국 모든 상황이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