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을 헤메는 거대한 수레기분이 좋지 않을 때 “늪을 헤메는 거대한 수레”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또, 따분한 이야기나 늘어놓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책을 펼쳐보니 나에겐 의외의 재미와 감동과 느낌을 가져 다 주었다. 책 전체 인터페이스가 깔끔한 것이 좋은 느낌이었다.우선 나는, “늪”을 잘 접해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 늪이란 어떤 곳인가를 알아보려 하였지만, 이 책은 그런 따분한 늪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지금 현재 늪처럼 생태 환경적인 곳을 다녀와 그곳의 느낌을 전해 주려는 책이었다.나는 늪이던가, 바다라 던 간에 그런 장소보단 산과 나무로 둘러 쌓여진 곳이 좋다. 그래서인지 늪의 이야기 보단 산에 관련된 단원에 더 세세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꼭 시간이 있을 때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그 첫 번째 장소가 소광리 였다.그곳은 금강송이 골짜기와 등성이를 온통 뒤 덮고 있을 정도로 장관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손길을 닿아 상처를 입은 곳도 있지만, 자생력으로 그 깊은 멋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자생력. 이것은 수업 시간에서의 익히 들었던 단어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 아닌가?책의 사진 속 에서 웅장한 자연의 모습에 몇 몇 사람들은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 웅장한 자연속의 한 부분인데 그 커다란 자연을 괴롭히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자연의 무서움을 모른 채 말이다.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이 좋은 소나무들을 용재로 쓰기 위해 마구 벌췌 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춘향목”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55년 영동선이 개통되자 경북 북부와 강원 남부에서 생산된 소나무 원목이 대도시 목재상으로 반출되기도 하였다 한다.다행히 지금은 천연 보호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시련이 있어도 지금 현재는 원시림의 모습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한다.태고 적부터 고스란히 간직 해 온 깊은 맛은 잊어버리지 않고 말이다.정말로 초등학교 때의 “참 잘했어요! 도장 백 개라도 찍어주고 싶은 심정이다.정말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시간이 있을 때 찾아가 보고 싶은 두 번째 지역은 바로 문경이다.문경읍의 주흘산 이란 곳이다.문경이 외가가 상주라서 자주 찾아가 보았 던 곳이다.그리고 사진에서 본 온천도 들어가 이용해 보았다. 원래 문경의 온천은 한 곳이었는데 과거 문경시장의 비리로 바로 맞은편에 더 큰 규모로 하나가 더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각설하고, 문경의 주흘산은 웅장하다.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은 너무나 멋지게 솟구쳐서 그 기세에 기가 눌릴 정도이다. 주흘산의 바로 백두대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산세가 험해서 인지 사람의 발길이 잘 닳지 않아 재밌는 광경들을 쏠쏠히 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절벽과 절벽 사이 협곡의 이끼로 덮힌 바위의 일 엽초들이 바로 그것이다.
..PAGE:1【그리스 신화】~에로스(Eros)와 프시케(Psyche)~..PAGE:2에로스(Eros)사랑의 신으로서 로마신화의 쿠피드(Cupid)에 해당한다. 에로스는 정열의 신일 뿐 아니라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고대미술에서의 에로스는 등에 날개가 달려 있고, 활과 화살을 지니고 다니는 미남 청년으로 묘사되었지만, 갈수록 점점 어려지는 경향을 보여 헬레니즘 시대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었다.에로스는 두 종류의 화살을 가지고 있는데 , 이중 화살촉이 황금인 화살에 맞은 사람은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화살촉이 납인 화살에 맞은 사람은 차갑고 냉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에로스의 이 두 종류의 화살로 인하여 올림푸스에 수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PAGE:3프시케(Psyche)뜻은 "정신(精神), 나비". 에로스(Eros)의 연인.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와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던 그녀는 아프로디테의 질투를 받게 된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로 하여금 프시케에게 골탕을 먹이라고 그를 보내지만 오히려 그는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잘못하여 자기 화살에 찔려버렸다.) 프시케는 시어머니가 될 아프로디테의 온갖 방해를 슬기롭게 해쳐나가 끝내는 다른 신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아프로디테도 설득하게 된다...PAGE:4♡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옛날 어느 나라에 세 딸을 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다. 두 언니도 아름다웠으나, 특히 막내딸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소문은 먼 나라에까지 퍼져 그녀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이 나라로 모여 들었다.그녀의 모습을 보고 경탄한 그들은 이제까지 아프로디테에게 쏟았던 경의를 그녀에게 바쳤다. 이렇듯 사람들의 정성이 이 젊은 처녀에게로만 쏠리자, 아프로디테의 제단을 돌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어 황폐해지고 말았다. 처녀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그녀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그 발밑에 화관이나 꽃을 뿌렸다...PAGE:5자연히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신전을 참배하는 자들의 수가 급 우선 잠든 Psyche의 입술에 쓴물(있는 것을 없게 하는 물) 두어 방울을 떨어뜨렸다.이로써 Psyche의 입술은 어떤 사내의 얼굴도 붉히게 할 수 없었다. 그런 후에 Eros는 다시 Psyche의 어깨에 금화살촉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마침 그때 자고있던 Psyche가 큰 눈을 뜨고 Eros쪽을 바라보았다. Eros는 한편으론 놀라고, 또 한편으론 너무 아름다워 무심결에 Psyche을 찌르지 못한 화살을 치운다는 것이 자신의 손을 찌르고 말았다.그 순간 Eros는 Psyche를 보고 사랑에 빠져서 쓴물로 제 상처를 해독하는 것도 잊고 오히려 Psyche의 머리카락에 단물(없는 것을 있게 하는 물)을 뿌려, 그 아름다움을 거두기는커녕 한층 더 아름답게 해주었다...PAGE:7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은 이후 프시케는 자신의 미모에서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사실 모든 눈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모든 입이 그녀를 칭찬했으나, 왕이나 귀족 청년은 물론 평민들 중에서도 누구하나 청혼하는 이가 없었다. 평범한 아름다움을 가진 두 언니들은 모두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Psyche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자신의 미(美)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의 운명을 두려워한 부모들은 아폴론의 신탁에 문의했다...PAGE:8신탁의 대답은 그녀의 남편은 날개가 달린 무서운 괴물로써 바위산 꼭대기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Psyche는 운명에 순종하기로 하고 산에 올라갔다. 산에 혼자 남게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던 Psyche를 서풍의 신 제퓌로스(Zephyros)가 꽃이 함빡 핀 골짜기로 인도해주었고 그녀는 점점 마음이 진정되었다.그곳은 아름다운 숲이 있었고 더 들어가자 굉장한 궁전이 있었다. 궁전에 들어간 Psyche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목소리로 그녀를 안내하는 하인들의 시중을 받았다...PAGE:9Psyche의 남편은 어두운 밤에만 찾아왔고 날이 밝기 전에 떠나갔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사랑에 충만하였고 그녀의 마음에도 같은 애정을 he를 보러 오는 것을 허락했다.언니들이 궁전에 찾아왔을 때 Psyche는 목소리만 들리는 수많은 시종들로 하여금 언니들의 시중을 들게 하여 목욕도 하고, 음식도 먹고, 여러 가지 보물도 자랑하였다.동생의 화려한 생활에 질투심을 느낀 Psyche의 언니들은 남편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만드는 질문을 계속했고, 남편은 무서운 괴물이며 언젠가 Psyche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들의 말에 개의치 않으려 했으나 Psyche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PAGE:11그리하여 프시케는 남편이 깊이 잠들었을 때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와 등잔불을 켜들고 남편을 비추어보았다.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무서운 괴물이 아닌, 신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신이었다. 금빛 고수머리가 눈처럼 흰 목과 진홍빛 볼 위에서 물결치고 있고, 이슬에 젖은 두 개의 날개가 어깨에 달려 있었는데, 그 반짝이는 깃털은 마치 봄꽃처럼 부드러웠다...PAGE:12..PAGE:13Psyche는 남편의 모습을 넋을 잃고 보다가 그만 등잔의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을 Eros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에서 깬 Eros는 말 한 마디 없이 흰 날개를 펴고 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Psyche는 정신없이 남편을 따라 나갔다. 그러자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기가 사랑의 신 Eros라는 걸 밝히고, 슬픈 어조로 이별의 말을 했다."오, 어리석은 프시케여,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결국 이 정도란 말인가. 나는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대를 아내로 맞았는데, 그내는 나를 괴물로 여기고 내 머리를 베려고 했구나. 가거라 언니들에게로 돌아가거라. 내 말보다 그들의 마을 더 믿었으니 당연하지 않으냐. 나는 그대에게 다른 벌은 주지 않겠다. 오직 그대와 영원히 이별할 따름이다. 사랑과 의심이 어찌 한곳에 있을 수 있으리?"..PAGE:14"이제는 영원히 그대와 이별할 수밖에 없소. 사랑이란 신뢰가 없는 곳에서는 자라날 수 없는 것이니까."..PAG Psyche는 신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산꼭대기에 있는 어느 신전을 보았다.Psyche는 남편인 Eros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몇 날 며칠을 그 신전을 깨끗하게 정리하였다.신전의 주인은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였다. Demeter는 며칠동안 Psyche가 열심히 신전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Psyche에게 Eros를 만나는방법을 알려주었다.*데메테르(Demeter)☞☞..PAGE:16Psyche는 Demeter의 충고대로 Eros의 어머니인 Aphrodite에게 직접 용서를 구했다. Aphrodite는 여전히 분노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고, Psyche를 종으로 삼아 여러 가지 시련을 부과했다.첫번째 시련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비둘기의 모이(밀, 보리, 양귀비, 좁쌀)를 같은 종류끼리 가려 놓으라고 했다.엄청나게 많은 일거리에 손댈 엄두도 못내고 Psyche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Psyche가 가엾다고 생각한 Eros는 개미들에게 Psyche를 도와주도록 하였다. 일이 모두 끝난 것을 보고 Aphrodit e는 Psyche에게 남편을 꾀어냈다고 화를 내었다...PAGE:17두번째 시련은 황금으로 된 털을 가진 사나운 양의 털을 깎아 오는 일이었다. 양의 수도 너무 많고, 그 양들은 인간세상의 순한 양이 아닌 인간을 공격하는 양이었다.Psyche는 절망하여 강가에 앉아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 생각하고는 강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이때 그녀를 측은하게 생각한 강의 신이 갈대를 흔들면서 양이 물을 먹는 장소를 가르쳐 주고는 저녁에 그곳에 가면 가시나무 가지에 많은 황금 털이 걸려 있으니 이를 모아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세번째 시련은 발 디딜 곳이 없는 천길 만길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로부터 물을 길어오라는 것이었다.Psyche는 넋을 잃고 눈물을 흘리면 폭포만 바라보았다. 때마침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부리로 물 항아리를 채어 가더니 폭포에서 물을 떠다 주었다...PAGE:18네번째 시련은 명계(冥界)에 내려가서 페르세포네(Pe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절대 Persephone의 상자를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페르세포네(Persephone): 지하의 여왕☞☞..PAGE:19탑의 가르침대로 온갖 위험을 이겨낸 후 천신만고 끝에 지하의 여왕 Persephone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Persephone는 Psyche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면 선뜻 '아름다움'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내주었다.절대로 도중에서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욕심에 Psyche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그러자 달콤한 '잠'이 빠져 나와 Psyche를 잠들게 했다. Psyche는 잠자는 시체가 되었고 지각도 움직임도 없는 시체가 되었다...PAGE:20천상에서 자기를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감수하는 Psyche의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 있던 Eros는 잠을 끌어 모아 다시 상자 속에 가두고, 자기의 화살로 Psyche를 가볍게 찔러 깨웠다.잠에서 깨어난 Psyche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Eros를 발견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PAGE:21Eros는 곧장 올림포스로 가서 Zeus에게 Psyche와 자기가 정식으로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애원했다.☜☜프시케를 신으로 만들려고 제우스를 찾아간 에로스..PAGE:22Zeus는 두 연인을 위해 Aphrodite를 설득하여 마침내 그녀도 승낙하였다.Zeus는 Psyche를 천상의 회의에 참석케 했고 불로 불사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주었다.이리하여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Psyche는 마침내 Eros와 결혼하게 되었다...PAGE:23*프쉬케의 네가지 시련의 상징*▶▶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지만, 여성 심리를 분석하는데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프시케의 첫 번째 시련은 산처럼 뒤섞여 쌓여있는 여러 가지 곡물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이 시련은 한 무리의 개미들이 나타나서 여러 곡식들을 분류해 주었다.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잃어버린 전통조경을 보고나는 예전에 동양 조경사 수업을 듣고 솔직히 이 동영상을 한번 보았던 경험이 있다.그때도 이와 같은 리포트를 써 낸 적이 있었다.그때도 우리나라 조경인들의 한심함과 일본인들의 교모함에 분개를 했었고 이번에 도 시청을 하고 난 후 똑 같은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동안 이러한 것을 잊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이 동영상은 한국,일본 그리고 중국의 조경을 비교해 가면서 우리나라 현재의 조경에 일본과 중국의 조경이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 전통조경을 빼앗아 가고 그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래서 나는 먼저 한,중,일 조경의 특징을 먼저 비교해보고 우리나라 전통조경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알아 보겠다.먼저 난 우리나라 전통 조경에 대해 말을 하고 싶다.일본과 중국 조경을 먼저 설명하는 것은 있을수도 없고 우리나라 조경이 제일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제일 먼저 위대한 우리 전통 조경을 설명하겠다.우리나라 전통 조경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곳은 경주에 있는 안압지이다.특히 방지라는 연못의 형태가 우리나라의 전통 조경의 가장 큰 형태인 직사각형의반듯한 연못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 볼수도 없다.그리고 이러한 방지의 형태는 다른 경복궁이나 여러 사찰이나 일반 민가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또 하나의 특징은 바른층 쌓기로 돌을 반듯하고 곧게 쌓아 올린 담이나 연못의 형태가 아주 특징 적이다.그리고 우리 조경은 먼저 대문을 나서 좁은길이 들어서고 방지가 보이고,방지를 지나 좁은 숲길이다시 보이고 그 다음엔 넓은 숲길과 좁은 외나무 다리,그리고 계곡,마지막으로 광풍각 이런 형태로 개방 폐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 두드러 진다.또 다른 특징은 우리나라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 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넓은 마당과 확트인 전망 그리고 자연을 보고 풍류를 즐기는 조상들의 얼을 엿볼수 있는 문화가 아닌가 싶다.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나무의 생명성을 존중하여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놔 두었다는 것이다.짧지만 아주 간락하게 우리나라 전통 조경을 설명했다.다음으론 일본 조경에 대한 설명인데 일본 조경은 우리 나라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거의 극과 극을 달린다고 보면된다.일본 조경은 돌쌓기부터 들여 쌓기로 즉 돌을 눕히고 세우고 한 형태로 거북이와 학을 상징적으로 쌓았으며 연못에도 우리나라 방지에서 볼수 없는 연못 중간에 배가 떠다니는 형상을 한 돌들이 군대군대 놓여 있다.또한 돌에 이끼를 심고 돌사이에 창포를 심는 것도 아주 특징적이다.일본 정원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자연과의 조화와 확트인 전망을 말한다면 일본은 폐쇄적인 공간과 좁은 길 등 아주 답답한 느낌을 주는 조경이 특색이다.이러한 조경이 집앞에 되어있다면 답답해 죽을 것 같은데 일본인들은 이런것들이 좋은가 보다.또한 일본인들은 가지치기를 하는데 이것 역시 일본 기후의 특징인 한 일본 조경의 유일한 작업이라 말할수 있겠다.중국 조경은 돌쌓기는 다양한 모양의 태호석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며 웅장함과 거대함을 표현하였고 자연을 지배하고자는 의미가 두드러 진다.위와 같이 난 한국,일본,그리고 중국조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보았다.이 다음으로 내가 가장 분개하는 전통조경의 상실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일본 조경과 중국조경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 강제하에서 일본이 강제로 우리의 전통조경을 소멸시키 버리고 바꾸어버린 일본인에 대해서 화가나고 그것을 그대로 좋은 것 인 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우리 조경가들에게 화나 난 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일제 강점하에서 일본인들은 말과 글을 빼앗기 전에 전통조경부터 빼앗아 가버렸다.말과 글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얼이 조경을 빼앗아 간다는 생각은 아주 교모한 계략이었던거 같다.특히 우리나라 얼굴이라고 하는 경복궁에도 일본식 조경의 들여쌓기가와 석등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으며 더욱이 외암마을 이라는 곳에선 실제로는 일본 조경의 원칙하에 설계된 것을 일반인에게 전통 조경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니 더욱이 가슴 아픈 일이다.또한 연못도 일본식 돌쌓기 들여 쌓기가 되어있고 거기에다가 일본 연못의 특징인 거북섬과 학섬을 만들어 놓은 연못도 많다.특히 현충사와 독립기념관에 이러한 연못이 만들어 져 있다.현충사와 독립기념관이 어떠한 곳인가? 즉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잔일한 일을 했는가를 보여주는곳이 아닌가 특히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현충사에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놓다니 말도 되는 일인가?참으로 안타 까울수가 없다.이런 것 말고 또하나가 있다.바로 가지치기이다.가지치기는 나무의 존엄성을 중요시 한 우리나라에선 볼수도 없던 일이다.일본 기후의 특징으로 일본에서만 행해진 이러한 가지 치기는 현재 우리 가정에서 까지 가지치기가 행애지고 있다.더욱이 놀라운 것은 가치치기를 한 수목들의 부의 상징이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 아닐수 없다.위에서 알아본 많은 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아파트나 학교 캠퍼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자연대 조경학과 창문을 내다 보면 가지치기를 반듯하게 해 놓은 수목들도 여러 종류 보이고 좀 있으면 아저씨들이 톱으로 나무를 가지치기해 모양을 낼것이다.그런 아저씨들과 그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그것이 일본의 것이라고 과연 알고 있을까?
개구리왕자의 웰렌베르크 원고와 최종 원고를 비교하면서....난 이번 학습과제의 주제를 개구리 왕자로 정한다.먼저 개구리 왕자의 웰렌베르크 원고와 최종 원고를 비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웰렌베르크 원고와 최종 원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다.먼저 웰렌베르크 원고를 간략히 정리하면 작가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래동화를 꾸밈없이 그대로 작성하여 만든 동화를 말한다.다음은 최종판 인데 최종 원고는 웰렌베르크 원고에서 초판을 거쳐 최종 원고로 완성된 단계이며 시대를 거치면서 문화와 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많은 변화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시중에서 일고 있는 동화를 말한다.우리는 이제 웰렌베르크 원고가 무엇인지 최종 원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지금부턴 개구리 왕자에서 웰렌베르크 원고과 최종 원고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겠다.개구리 왕자는 최종 원고와 웰렌베르크 원고는 제목부터 차이가 있다.웰렌베르크 원고 에서는 공주와 마법에 걸린 왕자이고 최종 원고에서는 개구리 왕자이다.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제목이 간단하고 명료해 졌다는 것인데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빨라지자 사람들은 더욱더 간략하고 가슴에 와 닫는 제목을 찾기에 개구리 왕자로 오늘날에 불리어 지고 있는거 같다.그 다음으로는 내용 분량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최종 원고는 웰렌베르크 원고의 약 1.5배에서 2배 정도의 분량을 보인다.이 두 원고를 읽어보면 분량의 차이가 왜 이토록 심한지 알 수가 있다.먼저 웰렌베르크 원고는 내용이 아주 짧고 간략하여 줄거리를 읽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표현이나 묘사 기타 등등의 수사적 용법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주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동화는 어린이들이 읽고 그들의 감수성을 키워가고 정서를 맑게 해주어야 하는데 웰렌베르크 원고는 이러한 점이 많이 결여 된 거 같다.그러나 최종 원고의 분량이 그만큼 늘어나면서 앞 원고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예를 들어 성 가까이에서~보리수나무, 연못 이와 같은 수식어가 많이 붙어 문체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했으며 또한 햇님조차도~놀라울 정도였다 이 문장과 같이 수사적 표현이 많이 붙어 있으며 문학적인 색채가 많이 강해 졌으며 유연한 문체를 사용해 읽는 어린이들에게 이해를 더욱 쉽게 했으며 묘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감수성을 아름답게 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또한 웰렌베르크 원고에는 없지만 최종 원고에 더해진 부분도 더러 있다.
이슬람 제국의 역사개요이슬람 제국이란? 이슬람 제국의 형성과 발전 무하마드 시대 정통 칼리프 시대 옴미아드 왕조 아바스 왕조 이슬람 제국의 분열 동서 칼리프 시대 세 칼리프 시대 세 칼리프의 쇠퇴이슬람 제국이란7세기에서 동쪽은 13세기까지 서쪽은 15세기 말까지 인도 서부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지역을 무대로 흥망한 이슬람 제왕조의 총칭 이슬람 제국=사라센 제국 사라센 제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왕조가 존재한 것은 아니며,이슬람 제국 or 이슬람교주구의 별명으로 사용. 사라센은 1세기부터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사용한 아라비아인에 대한 호칭인 사라세니에서 유래이슬람제국의 형성과 발전 과정 1.무하마드 시대마호메트(570-632) 이슬람교의 창시자 및 전파자 이슬람교의 가르침으로 세계의 종교,정치를 변화시킨다는 가치아래 전쟁을 단행 메디아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음 메카까지 점령 뒤 아라비아 반도 까지 점령 이슬람 제국 건설 마호메트가 죽은 뒤 코란(이슬람교 성서) 편찬 5년 후 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 까지 점령메디아메카이곳이 아라비아 반도2.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마호메트가 죽은 뒤 바르크,우마르,오스만,알리 등 4명의 장로들이 교도의 총의에 의해 있따라 칼리프(후계자)로서 이슬람 교단을 통솔하던 시대. 바르크-마호메트 친구,아라비아 제부족을 제통일 우마르-시리아,이집트,이라크까지 정복하여 권력층과 군대를 몰아내고 도시와 농촌 사람들에게 자치를 허용,그들로 부터 세금을 거둠,이슬람력을 확립,이슬람교의 확립에 큰 공헌하였으나 원한 관계의 페르시아 노예에게 암살당함. 오스만-코란의 통일을 기하 알리-우마이야가(마호메트 숙부)와 대립 끝에 그를 배반한 하리지트파의 자객에 암살되어 무아위야의 세습왕조 시대로 넘어감.메디아메카이집트시리아이라크3.옴미아드 왕조세습 칼리프 시대 4대 칼리프 암살 후,옴미아드 가에서 세습(후 우마이야 왕조와 구분 되는 점) 전체주의 형태의 정치를 했으며 종교적인 경건이 희박해짐.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로서 중앙아시아를 제압하였고 북 인도를 침입,지중해를 공략하여 콘스탄디노플을 포위함.서코트 왕국을 멸망 시켰고 투르.푸아티 전쟁에선 패하나 에스파냐 제패에는 성공 아랍인 우월주의 정책실시-이란인과 시아파의 저항 초래에스파냐아바스 왕조(750~1258)옴미아드 왕조 뒤를 이음. 제5대 하룬 알라시드와 그의 아들 마문시대의 왕조가 전성기 비잔틴 국경 부근의 도시를 요새화하여 침공기지를 삼았음. 비잔틴 제국 깊숙히 친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함 칼리프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 체제 여러 관리직을 두어 카리프를 보좌 하기도 함 이라크를 중심으로 농업과 섬유 산업 크게 발달 바그다드는 당과 더불어 세계적 도시-경제적 번영을 의미 사회통합-신 앞에 신자의 평등,아랍인의 특권 폐지,이슬람 교도의 평등화 주장이슬람 제국의 분열동서 칼리프 시대 아바스 왕조-동칼리프 후 옴미아드 왕조-서칼리프(우마이야 왕조의 일족이 에스파냐로 도피 하면서 건설 된 왕조) 세 칼리프 시대 아바스 왕조,후 옴미아드 왕조,파티마 왕조 파티마 왕조-10세기 초 카이로에 시아파 이슬람교도가 건국 세 칼리프의 쇠퇴 아바스 왕조-9세기 말부터 쇠퇴,13세기말 몽고에 멸망 후 옴미아드 왕조-크리스트교의 압력 받음 파티마 왕조-셀주크 투르크족 으로 부터 공격 받아 멸망{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