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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계획서] 장수도시락 - 실버산업 평가A좋아요
    창업동기 (사업의지, 추진능력, 과제선정경위, 준비상황 등을 중심으로 기재)일본에서는 요즘ꡐ시니어 벤처기업ꡑ창업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에 따르면 시니어 벤처기업은 일본의 고령화 사회에 맞춰 생겨난 일종의 실버상품 전문업체들, 주로 노인용품, 고령자 편의대행업, 정년퇴직 기술인력취업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기존 정보통신 또는 IT분야 벤처기업과 구별하기 위해 ‘시니어‘ 란 접두어를 붙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인구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소비욕구 증대로 무시할 수 없는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노년층이다. 이제 65세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7.2%로 노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버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이렇다할 관련 비즈니스가 미비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국내 실버산업의 시장 여건은 성숙한 반면 아직 꽃피지 않은 미지의 시장인 셈이다. 특히 식사 문제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 많고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실버산업의 틈을 이용하여 중상류층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수”라는 슬로건으로 노인전문 도시락 택배사업을 하려고 한다.
    경영/경제| 2002.10.15| 18페이지| 1,000원| 조회(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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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 효사상의 고찰 평가A좋아요
    Ⅰ. 서론Ⅱ. 본론1절 효(孝)의 고찰(考察)(1)효(孝)의 자의적(字義的) 의미(意味)(2)효(孝)의 본질적(本質的) 의미(意味)(3)효(孝)의 근원(根源)과 발생(發生)(4)효사상(孝思想)의 전개(展開)2절 효(孝)의 근본정신(根本精神)과 실천(實踐)(1)봉양(奉養)과 공경(恭敬)(2)양지(養志)와 간언(諫言)(3)보신자애(保身自愛)와 현친(顯親)(4)효(孝)의 실천사상(實踐思想)3절 효(孝)와 인(仁), 의(義), 예(禮)(1) 인(仁)과 효(孝)(2) 의(義)와 효(孝)(3) 예(禮)와 효(孝)4절 종교적 관점에서의 효와 불효(1)유교적 관점(2)불교적 관점(3)기독교적 관점Ⅲ.결론Ⅰ. 서론인간은 혼자 태어나 성장하고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수많은 인간관계속에서만 가능한데 그러한 인간관계중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를 부모 자식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효는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유가에서는 모든 인간관계가 효에서부터 시작됨을 강조한다. 또한 효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근본적으로 인간의 도리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로 확대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효는 행인의 근본 이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의 시작 이라고 하였다.전통적으로 우리 가정에서 자식은 효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모시며 형제끼리는 우애하고 이웃과 화목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이렇듯 효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근본적으로 인간의 도리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흔히들 가정을 사회를 이루는 최소단위라 한다. 이 최소단위의 가정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는 국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는 사회의 근본인 가정을 효로써 존속, 발전 시켰으며 이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현대의 한국사회는 외래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효의 가 기초로 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주대(周代)의 기록에 나타난 효(孝)의 내용은 두 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고찰할 수 있다. 하나는 생존해 있는 부모에 대한 孝이며, 다른 하나는 선친이나 선조 등 죽은 자에 대한 孝이다. 살아 있는 부모에 대한 孝의 내용은 봉양(奉養), 존경(尊敬), 순종(順從)인 달효(達孝)이고 죽은 자에 대한 孝는 추모의 정인 추도(追道)로 표현한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추도(追道)는 살아 있는 부모에 대한 달효(達孝)의 연장이며 동시에 조상신 숭배의 표현으로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효의 두 가지 의미인 종교성(宗敎性)과 예교성(禮敎性) 발생한 것이다.(4)효사상의 전개1 상고시대의 효사상효의 근본사상은 일찍이 중국에서 발상된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라 할 수 있고, 다만 중국의 유교에 의해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화되기 이전의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의 감정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그러한 사랑과 감정을 어떤 제도로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은, 모든 민족이나 사회가 일치한다고 만은 할 수 없다. 그래서 효사상의 근원을 중국의 유가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효의식은 유교의 전래와 더불어 강화되고 체계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효사상이 부모나 조상에 대한 보은(報恩)의 감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효사상은 단군신화나 상고시대의 흔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고대 한민족이 지녔던 민족신앙의 모체인 단군신화를 보면, 옛날 환인의 아들 환웅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거늘, 아비는 아들의 뜻을 알고 있어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매 홍익인간(弘益人間)함직 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라고 한다. 이는 단군신화의 첫 대목으로서 부자의 윤리를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권장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였으며, 매양 수찰(手札)을 내림에 글의 뜻이 간절하여 풍속의 순화(醇化)를그 임무로 하였다. 또한, 성종은 무릇 국가를 다스림에 반드시 근본에 힘써야 할 것이며, 근본 되는 것에 힘쓰는 것은 효 이상 더 할 것이 없다. 그러하니 법칙은 육경(六經)에서 취하고, 규범은 삼예(三禮0에 의하여 한 나라의 풍속으로 하여금 효자의 문으로 돌아가게 하기를 바란다. 라고 하여 도덕정치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왕이 직접 국책으로 효를 장려했음을 알 수 있다.한편, 정종은 관료로서 부모가 원거리에 떨어져 있을 경우 일정 기간의 유급(有給)휴가를 주었으며, 충렬왕도 외관(外官)으로 있는 관리의 부모가 그 자식을 보고자 할 때에는 20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현종 11년에 부모가 80세 이상이 되면 군역을 면하여 부모를 봉양케 하고, 문 무관의 부모가 70세 이상의 고령이 되면 외관으로 보직하지 않으며, 그 부모가 병이 나면 200일의 간병(看病)휴가를 주게 했다. 복상(服喪)휴가도 충분히 주었으니, 이는 관료들이 부모에 효를 하는데 있어서 시범이 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또 고려에는 당율(唐律)을 본받아 처벌하는 고려율(高麗律)을 제정, 시행하였다. 고려율의 모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률에는 부모의 모살(謀殺)에 대한 조문이 있으나, 고려율에는 그런 조문이 없음은 존속모살(尊屬謀殺)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형률(刑律)조차 정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종 11년에 왕명으로 불충, 불효한 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불효죄인은 반역죄인과 함께 특사에도 포함되지 못하게 했다. 이와 같이 효를 장려하고 불효를 응징하였던 일은 효를 국가적 실천윤리로 확립하기 위함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이상과 같이 고려의 교육은 충효를 가장 중히 여겼으며, 효, 예, 신. 절의 등으로 사회를 교화하여 민심을 순하게 하고, 아름다운 풍속을 갖게 하였던 것이다. 한편, 유학과 함께 전래된 한자문화도 한민족의 고유사상과 문화에 흡수되고 우리의 고유한 혁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양반도 노동을 해야하며 과학을 배우고 서양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면서, 윤리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효의 개념이 변화되면서 윤리관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윤리관이 분화되어 가족윤리·국가윤리·사회윤리로 나누어졌고, 효, 충, 신을 덕목으로 하되 대상이 부자, 군신, 교우, 이웃의 인간관계로 나아갔으며, 효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으뜸가는 덕목으로만 변질되어갔다.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에서의 효의 본질적인 변혁을 보면, 첫째, 종교적인 면을 들 수 있다.본래 유교에서의 봉제사(奉祭祀)는 수많은 조상의 은혜에 의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는 것과 같이한다(事死如事生)는 정신으로 올려지는 의식으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던 교섭관계 를 계속 지속시킴으로써 가문의 영원한 생성질서에 참여하며, 죽음의 허무를 메우고 죽음의 불안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가진, 죽음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저의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의 도래로 부계적 가부장제도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전통적인 미덕의 중핵을 이루고 있던 봉제사 관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자체가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말한 것은 아니고, 기념 혹은 예배의 표현으로 대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죽은 후에 신이 내린 축복의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의 효는 부모가 생존하는 동안으로 한정된다.둘째, 형식적인 절차의 예의작법(禮儀作法)이 득세하게 되었고, 이것은 다시 권력으로 연결되어 효는 언제나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관계만이 있고 명령과 복종만이 남게 된 악습이 된 것이다. 그러나 효교육에 있어서는 개화기에 들어서도, 『논어』나『효경』등이 그대로 교과목에 들어 있어, 효가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는 사상은 그대로 준수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정교육에서의 효교육만은 언제나 게을리 하지 않았다.이와 같이 개화기에는 효의 개념이 변화되면서 윤리관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즉, 유하고 있는 도덕본능의 발휘, 갸륵하고도 숭고한 인간미가 조화있게 포괄되었다.(4) 효(孝)의 실천사상(實踐思想)효(孝)는 우리인간의 일상생활(日常生活)을 조화(調和)있게 하는 핵심(核心)이 되어 왔으며 효(孝)를 행하는 것이 인덕(人德)을 기르는 뿌리로 실천(實踐)되었다.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 영장(靈長)다운 삶의 근본(根本)이다. 사람의 인격(人格)을 나타내는 사람다운 기본행동철학(基本行動哲學)이며 요체(要諦)인 효(孝)에 예(禮)를 갖추어 시행(施行)하여야할 의무(義務)가 있으므로 효(孝)를 실천(實踐)함으로서 인생의 참 삶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효도(孝道)하고 우애(友愛)하며 공경(恭敬)하는 사람은 사람을 이루는 근본(根本)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참된 사람은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하며 어른을 공경(恭敬)하니 그것은 우리인간에게 제일 가는 근본을 이루는 참된 삶이며 행실(行實)인 것이다. 효행(孝行)은 인간의 제일 가는 근본(根本)을 실천(實踐)하는 삶이므로 이를 실천(實踐)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그 외의 일을 아무리 잘한다 하여도, 그 의미는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효(孝)의 근본정신(根本情神)은 무엇보다도 부모조상(父母祖上)을 충심을 다하여 섬김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생전(父母生前)에는 예(禮)를 다하여 공경(恭敬)하는 마음으로 충성(忠誠)스러운 마음으로 모셔야하고 돌아가셔서는, 슬픔을 다하여 예(禮)로써 깍듯이 정성(精誠)을 다하여 장례(葬禮)를 모셔야한다. 오늘날 효(孝)를 용돈이나 드리고 음식으로 보양(保養)하면 효(孝)를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진정 공경(恭敬)하는 마음으로 정성(精誠)을 다하여 봉양(奉養)하고 뜻을 받들어 마음이 편하시도록 모시는 것이 진정(眞情)한 효행(孝行)이라 할 것이다.공자(孔子)는 효(孝)의 참뜻에 대하여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그 뜻을 살펴볼 것이며,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행하시는 바를 살펴볼 것이니, 삼 년 동안 부모님 생전에 해가?
    인문/어학| 2002.06.13| 30페이지| 1,500원| 조회(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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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가면극의 비교] 한일 가면극의 비교
    Ⅰ. 서론일본은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반면, 오랜 과거로부터 내려온 미묘한 민족적 감정과 최근 근대사에 좋지 않은 기억으로 인해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관계적인 측면(문화적 측면)에서나 지리적인 측면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매우 가까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일 관계의 관계적인 측면(문화적 측면), 다시말해 한일 가면극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알아봄으로서 양국간의 관계가 밀접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우선, 한국의 가면극은 삼국시대에 유입된 산악(散樂)이 통일신라시대ㆍ고려시대ㆍ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하여 형성된 것이다. 이 산악(散樂)을 놀았던 놀이꾼들은 그 놀이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놀이꾼이었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대의 오기(五伎),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된 가무백희(歌舞百戱),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儺禮)에서 연행된 산대잡극(山臺雜劇)ㆍ산대잡희(山臺雜戱)등을 놀았다할 수 있다. 백희 또는 잡희라고 칭해졌던 놀이들은 중국에서 유입된 산악계통의 놀이이며, 조선시대에 이 산악 계통의 놀이를 놀았던 사람들은 궁궐의 나례나 중국 사신의 영접시에 동원되어 여러 가지 놀이를 펼쳤는데, 이 놀이꾼들 가운데 반인(泮人)이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산대놀이라고 하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이다. 반인들의 가면극인 산대놀이를 오늘날의 양주별산대놀이나 송파산대놀이와 구별하기 위해 본산대놀이라고 부른다.한국의 가면극은 그 기원과 발전과정에 의해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과 마을굿 계통 가면극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전자는 서울ㆍ경기의 송파산대놀이ㆍ양주별산대놀이ㆍ황해도의 봉산탈춤ㆍ강령탈춤ㆍ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ㆍ동래야류ㆍ통영오광대ㆍ고성오광대ㆍ가산오광대 등이 후자는 하회별신굿탈놀이ㆍ강릉관노가면극등이 전승되고 있다. 두 계통의 가면극은 기원과 형오는 후일에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도 사랑받아 군사들의 사기를 목적으로 적극 장려되었으며, 특히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자신이 시테를 연기하기 위하여 신작태합능 타이코우노오 라고 함.이라는 노오를 연출한 것은 유명한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에도시대(江戶時代)에도 노오는 다이묘(大名)들의 보호를 받아 무사의 식락으로서 번성했으며 또한 에도시대(江戶時代)에 들어서면 노오는 도쿠가와 막부에 직속, 의식을 위해 행해진 예능(식악 시키가쿠)으로 된다. 더욱이 희다(키타)유가 새롭게 인정되어, "사좌일류"로 칭해졌다. 이후, 신작은 없어지고 양식화가 진행되는 한편, 예를 더욱 연마하게 되었다. 歌舞伎(카부키)나 文樂(분라쿠)가 서민들의 연극인 것에 비해, 노오는 무사 계급의 것이었다. 이 때문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무가사회가 폐지되자 노오가 쇠퇴하는 운명을 감수하게 되었다. 명치유신이나 전쟁 등 수많은 혼란을 격었으나 황실을 비롯해 노오의 애호자가 많아 관계자의 노력으로 생명을 보존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오늘날 일본에는 노오의 성립당시부터 있었던 유파인 야마토를 계승하여 내려온 간제류, 호오쇼오류, 곤빠류, 곤고오류 등의 네류파와 에도시대(江戶時代) 초기에 새로이 성립되었던 기떠 등 여러 유파가 있다. 이들은 각각 전승하여 내려온 요오고구와 개성있는 연출양식으로 노오를 공연하고 있고 가옥형태로 된 노오, 고유의 무대를 재생한 노오가구당이 도쿄의 각처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에 산재해 있어 유파별 월례 발표와 부정기 공연이 행해진다. 최근에는 고전 예능의 재발견의 기운도 있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애호자가 늘고 있다.(2) 노오의 미어떤 전설이나 설화에 근거한 이야기를 피리, 고쯔즈미, 오오쯔즈미, 북 등 네 종류의 반주악기에 맞춰 특징 있는 곡조로 이야기를 노래하고, '시테(仕手)'라는 주연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소리와 춤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희를 해 보이는 예능이 바로 노오이다. 그리고 시테의 연희와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돕는 '와키(脇)'라는 ,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거리 이외의 모든 곡목을 포함한다. 여러 잡다한 종류를 포함한 것으로 사랑·질투·복수 등 인간적인 감정이 많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 속한 노가 가장 많고 문학과도 관련성이 가장 깊다고 할수 있다. 다섯 번째(기리노)는 하루의 상연곡 중 마지막거리로서 급(急)의 부분에 해당한다. 마지막 마당인 후막이다. 시원하고 팔팔한 템포가 빠르게 진행된다. 하루의 마지막에 상연하는 노오로 초현실적인 존재가 시테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다섯 마당 구성은 현대 노오에서는 흔치 않으며, 하루 한 종목 내지 세 종목의 프로그램이 보편적으로 상연되고 있다. 신 노오(神能)인 와키 노오는 축제나 경사 시에 상연되는 정도이다. 실제 노오의 연희 구성은 주연자인 시테가 일단 분장실에 들어가 휴식하고 다시 등장하는 복식 노오와 중간 휴식이 없는 단식 노오로 되어 있다. 연극으로 말한다면 이막짜리 구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한 마당짜리도 있는 반면 복식 노오의 어떤 것은 스물 두 마당으로 이루어진 변화가 많은 것도 있다. 노오 무대에는 일반 극장과 같은 여닫는 가로닫이막이 없고 기타 장치나 배경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사만으로 장면 전환을 한다할 수 있다.보통 노오를 크게 나눌 때 '현재 노오(現在能)'와 '몽환 노오(夢幻能)'로 분류한다. '현재 노오(現在能)'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노오를 말하고, '몽환 노오(夢幻能)'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이 형식은 우리나라 무당굿에서 사자와 대화를 하는 형식과 유사한 점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시간은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 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 불, 귀, 초목의 정령이기도 하다.(4) 노오멘(能面-오모테)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탈이라고 하는 가면을 노오에서는 '멘' 또는 '오모테'라고 하며, 그저 '노오멘(能面)'이적으로 억제된 노오의 세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히 호화찬란한 의상이다. 당시 일상용이었던 의상을 기본으로, 폭을 넓히는 등 손을 봐서, 무대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견제로 디자인은 주로 직선이다. 같은 모양이라도 적색을 넣으면 젊은 여성, 넣지 않으면 중년 이후라는 식으로 모양과 색채의 배합이나, 직조방식의 차이 등으로 구분·배역에 따라 나눠 사용한다. 또한 형태는 같아도 위에 요대를 하고 입으면 공가나 무장, 위에 대 없이 걸치듯이 입은 것은 여성이라 하여 역에 따라 착용법도 다르다고 한다.노오는 옛날부터 템포가 느리며 동작이 둔하다고 하여 지루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요쿄쿠도 무슨 의미인지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노오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은 양식화된 노오의 미(美)를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2. 쿄겡(狂言)(1) 쿄겡의 역사쿄겡(狂言)은 노오와 거의 같은 시대에 발생했으며 대조적인 이 두 연극은 하나의 세트처럼 공연되는 것이 일반 적이며, 유현의 세계에서 웃음의 세계로 관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이완시켜주는 것이 쿄겡의 역할이다. 가면을 쓰지않고 노오와 더불어 그사이 사이에 상연된 것으로 풍자나 해학을 곁들인 사실적인 내용을 담아 간간히 공연한 것이다. 등장인물은 노오와 다르게 귀족이나 역사상의 인물이 아닌 극단적으로 쾌활하고 밝은 太郞冠者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이며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웃음은 현대를 통해서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당시의 일상적인 대화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도 이해하기 쉽고 노오와 함께 걸어온 긴 역사속에서 세련된 "웃음의 예술"로 알려져 있다. 本狂言이외에 노오 사이에 해설적인 역할을 하는 間狂言(아이쿄겡)이나 축언성이 짙게 공연되는 삼바소오(三番三)등 특수한 쿄겡도 있다.쿄겡은 일본 중세에 태어난 연희이다. 노오(能), 분라쿠(文樂), 카부키(歌舞技)와 함께 일본 사대 연희의 하나로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외 공연도 빈번하을 말하며 노오와 노오 사이에 상연되는 것이다. 그저 쿄겡이라고 할때는 이 본쿄겡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대략 260종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있다. 두 번째로는 아이쿄겡(間狂言)으로 전장·후장으로 구성된 복식노오(複式能)에서 전장의 시테가 퇴장하고 후장이 시작될 때까지의 막간(幕間)에 상연되는 쿄겡이다. 노오 연희에서 노오의 주제와 내용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나레이터의 역할을 하며 노오 조연자와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노오와는 약간 이질적인 성격의 연기를 하는 칼잡이, 뱃사공, 수도자의 종복 등 신분이 낮은 역을 담당한다. 세번째가 삼바소(三番三)인데 경축, 경사를 위한 독특한 쿄겡으로 오곡풍요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쿄겡의 종류는 시테(노오와 쿄겡에서 주역을 맡은 사람)의 연희상 성격, 인물상, 작품 주제에 따라 구분되는데 유파에 다라 분류법이나 곡명에 약간의 상이점이 있다. 유파나 연구자에 다라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열 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다.와키(脇)쿄겡, 다이묘(大名)쿄겡, 타로가쟈(太郞冠者:고참하인)쿄겡, 무코(사위)쿄겡, 온나(女)쿄겡, 오니·야마부시(鬼·山 : 귀신·수행자)쿄겡, 슛케·자토(出家座頭:맹인예능인)쿄겡, 잡(雜)쿄겡, 마이(舞)쿄겡 등으로 나눈다. 그러면 대표적인 쿄겡의 경향 및 특색을 살펴보기로 하겠다.1)와키쿄겡(脇狂言)와키(脇)란 말은 '다음', '두번째'란 뜻이다. 노오에서는 '오키나' 다음에 상연되는 노오를 와키노오라고 하는데, 이 와키노오를 준하여 와키쿄겡이라고 부른다. 에도시대 노오가쿠에서는 정식으로 다섯개의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먼저 '오키나(翁)'를 상연하고, 다음에 와키노오(脇能), 두번째가 수라거리(修羅物), 세번째가 여인 거리, 네번째가 잡 거리(雜物), 다섯번째가 마지막 거리(切物)로 이상 다섯 가지를 차례로 상연했다.쿄겡은 이 다섯개의 노오 공연 사이에 세 번 내지 네 번 상연되었다. 또 삼번 노오인 경우에(즉, 노오 작품을 세 가지 상연하는 경우) 쿄겡은 노오 공연 사이에 한
    인문/어학| 2002.07.16| 24페이지| 1,000원| 조회(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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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일본의 성의식 비교 평가B괜찮아요
    일본인의 성의식에 관하여- 한국인의 입장에서-서론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처럼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반목과 경계의 대사인 동시에 반드시 배워야 할 나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과거 임진왜란 후 조선의 통신사 일행이 두려움을 갖고 일본을 방문하면서도 그들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나라로 일종의 우월감속에 그들을 평가한 2중적인 모습과도 상통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그 바탕에 오랜 역사를 깔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있는 일본에 대한 생각들이 어쩌면 과거의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에 따른 생각의 편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임진왜란., 2차세계대전, 경제동물, 회사인간…… 우리가 알고있는 이러한 외적인 모습만으로 우리가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정작 그 나라의 모든 영역 – 예컨데 풍습, 문화, 신앙- 을 편견없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이 그들에 대한 바른 생각과 이해가 올 수 있을 것이며, 그 바탕하에서만이 우리의 일본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이 점에서 “性”이란 상당이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각 사회나 민족이 지니고 있는 성풍속은 암암리에 그들의 생활, 역사, 본성을 알려주는 주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대 일본인의 성의식고대 일본인의 성위식은 “음양의 화합”이 창조와 새로운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중국 등 동양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인데 다만 다른 것은, 性喜의 표현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노골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받아들여 지고 있다는 점이다.또한 역사적으로 성을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의 고대 시가집 등에서는 성을 찬미하는 구절을 쉽게게 찾을 수 있다. 즉 일본은 중국, 한국 등 같은 동북아 권에서도 공통 문화권속에서도 특이한 자신만의 색깔을 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리하면 고대 일본인의 성의식은 성행위를 퇴폐적으로 본 것이 한국의 고대 :8세기에 기록된 일본 最古의 문헌”고사기”에는 일본의 국토가 신들의 성적인 결합에 의해서 생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비교할 때 일본인의 성에 대한 의식이 결코 음습하거나 터부시의 대상이 아닌 신성시의 대상, 생산적 행위로 기쁨과 축복의 대상으로 승화시킨 점이 특징적이라 할 것이다.이러한 성에 대한 일본인의 개방적인 의식은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의 선조들의 생각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조”에 나오는 “ 여근곡” 과 관련한 신라 선덕여왕의 묘사, “지철로왕조”편, 신라 의 기록을 보더라도 고대 한반도에서도 성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인 입장을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려시대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냇가에서 남녀가 부끄럼없이 목욕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있고, 궁중연회에서 불렸던 , 은 남녀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가사로 인하여 주자학일변도의 조선조에서 “남녀상열지사”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까지 하였다.2) 고대의학서적 의심방 :일본에는 천년전에 이미 성에 대한 의학서적이 있었다. 이는 한국에 비해서 심도있게 성의식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서, 당시 일본의 단바 야스노리가 중국 수, 당나라 의학서 200권에서 발췌, 번역정리한 “의심방”이라는 의학서적을 출간하였는데 이중에서 제 28권은 성생활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에는 “남과여는 천지의 섭리를 구현한 것이므로 그 교접에 있어서 일방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타이르고 30여가지 체위를 설명하는 등 현대의 어느 의학서적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본 성의 고전인 것이다.3) 성기숭배현상 :우리나라에서도 생산과 출산, 풍요, 풍수 및 음양과 관련된 남근숭배의 역사가 깊으며 현재에도 전국에 걸쳐 그 흔적을 찾아 볼 수있다. 일본역시 같은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는데, 성을 인간과 자연을 번성시키는 근원적인 신비스러운 힘으로 이해했던 고대 일본인에 성기 그 자체가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성많이 낳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을 가계존속의 명분으로 합리화시키는 등 남성중심의 성풍속을 낳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것을 환영하고 정착시킨 사회구조의 낙후성이 현대까지 잔재로 남아 전근대적인 성의식의 원인이 된다. 이 때를 전후로 일본인의 성의식, 문화가 더욱더 일본적이게 되는 몇 가지 계기를 들어보자.1) 일본매춘의 산역사 “요시와라’ :일본 유녀사에 있어 이정표를 긋는 공창, “요시와라’가 건설된 데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기인하였다.1590년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에도에 입성, 천황이 있는 교토를 압도할 수 있도록 도성과 시가지 건설에 거대한 부역을 일으켰고 전국에서 모인 일꾼들로 에도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공사장을 중심으로 사창가가 생겨나고 풍기문란이 날로 심해지자 이를 효율적으로 단속, 관리할 목적으로 생각한 방안이 에도 중심지에 공인된 공창을 만드는 것이었다.또한 에도 막부는 신킨코타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지방호족들을 볼모의 형식으로 일정기간 동안 강제로 에도에 거주하게 하였는데 에도에 거주하는 다이묘들에게 있어 객지의 유일한 배출구는 여자와 술뿐이었다.에도 중심지에 홍등가를 대규모로 조성하여 남성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를 공인했다는 것은 일본유녀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로 평가된다.막부는 여성을 생식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과 쾌락의 성을 담당하는 여성으로 확연히 구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현모양처를 강요하였으며 후자에게는 성을 상품화하도록 하였다.한국의 경우 조선조 양반을 대상으로 하는 관기, 기생의 신분이 있었으나 국가가 공인한 일본의 ‘요시와라’와는 그 규모나 영상이 사뭇 달랐다.2) 풍속화 “우키요애’ :고대 폼페이의 유적가운데에 벽 한 구석의 음화, 낙서를 통해서 현대인들은 당시 로마의 난잡했던 성문화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의 신윤복이 실명으로 그린 주로 기녀, 부녀자를 소재로 한 춘화도를 그린 것을 비롯, 민간의 음화, 신라의 토기인우리가 바라보는 현대 일본인의 성의식은 선정적이고 자유분방함에 있어 정체성의 혼란기를 겪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먼저 여대생 치마올리기 게임 등 선정성으로 가득찬 일본의 TV프로, 성인만화, 비디오, Sex shop, 근친상간, 남녀혼탕, 성의 상품화 등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일본인의 난잡한 성 모럴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일본에는 그들 나름의 Rule이 있다는 점이다.예컨데, 여성의 누드사진에서 음모가 보이면 안되는 것, 남녀혼탕이나 혼천욕에 있어서 수영복 등 최소한의 가릴 것은 가리게끔 하는 규정, 도색잡지의 판매에 있어서 연령제한을 두는등 “일본 나름대로의 테두리”안에서 성문화가 발달하고 있다.반면 우리는 “양지아래서의 철저한 금지”속 하에서도 음지아래에서는 일본보다 더한 양상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공창지대가 없지만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성을 살 수 있다. 일본의 성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원조교제”, “전화방” “터키탕” “ 일본성인만화” 등 음으로는 오히려 일본의 저속한 성문화에 집착을 보이는 듯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분명 무언가 우리에게 먼저 돌아다 보아야 할 것은 없는지 반성케 하는 대목이다. 요컨데, 일본의 성에 대한 관념을 한마디로 숭배라고 한다면 한국의 관념은 해학이다. 한국의 해학은 유교적인 금욕주의로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며 뒤로 호박씨까는 행위에 대한 풍자이다. 숭배가 노골화를 낳았다면 해학은 성행위를 감추는 내숭을 낳은 것이다.한국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지탱해온 것은 유교문화였다. 서방의 성의 자유화 및 개방화 물결이 급속하게 들어오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유교적인 성의식, 즉 성을 은밀하게 나누는 私的이면서, 금기적인 영역으로 바라본다든가, 남존여비의 이중적인 성문화는 아직까지도 우리의식을 상당부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유교문화에서 자유로와 보인다. 단적인 예로, 일본 여성에 있어 섹스는 스포츠로라운 것은 이러한 그들의 성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강간율을 낳았다는 것이다.이는 일본 보다 음란물에 훨씬 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성범죄율을 볼 때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4. 결론고대의 경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는 - 비록 그 표현양식이나 깊이, 방향성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이지만 -남녀관계의 기본이 성의 결합에 있음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밝혔었다. 그러나 에도시대가 들어서면서 -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환영하면서도 성을 천한 차원의 저급한 행위로 생각하는 2중적인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은 성생활이나 여자를 독점하고자 하는 발상에서 성을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도덕적으로 강제, 이를 미덕으로 권유해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결과는 양국에 있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났다. 성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불교나 유교를 같이 수용했던 양국이지마는 아직까지 한국은 유교적인 억압적인 성문화가 크게 자리한 반면, 일본은 세계적인 성개방국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었을까?근대화 당시 네덜란드 무역관 의사로 파견된 독일인 필립 시볼트는 일본인을 가리켜 “일본인은 중국인에 그 문화의 주요 부분을 많이 빚지고 있지만 일본인은 결코 중국인의 후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왜일까? 일본은 한국과 달리 한번도 문화적인 쇼크(Culture Shock)를 받아 본적인 없는 민족이다. 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그 섬들은 오랫동안 중국과 한국과 달리 자주적인, 지극히 일본인적인 사고와 문화의 민족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의식이라는 것이 그 민족의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발로라고 할 때 일본인의 성의식 역시 그 굴레를 그리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근대화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한일 양국은 너나할 것 없이 각자 자기의 정체성 - 예컨데 성의식- 의 혼란을 겪고 있다.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인의 성문화는 결코 우리와 비교할 때 저급한 것으로 속단할 성질이다..
    인문/어학| 2002.07.14| 7페이지| 1,000원| 조회(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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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 탐방기] 음식 탐방기
    향토음식 탐방기 (프로간장게장)1 도입어릴적 부모님께서는 고향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마을 뒷산에서 나물캐던 이야기, 겨울에 토끼사냥, 꿩사냥, 그 가운데에서도 빠지지 않던 음식은 “참게장”이었다. 명절마다 시골에 내려가서는 개울가에서 고기를 함께 잡아주시면서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어릴적 참게를 잡던 구멍을 보여주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아버님께서는 아직도 무척이나 게장을 좋아하신다.게장은 원래 민물게로 담갔으나, 귀해진 탓에 주로 서해안의 꽃게로 만든 게장이 주류를이룬다.민물게로 만든 게장 중에는 한 번 담가 1년이상 먹는 경북지방의 '참게장'과 담그자마자 먹는전남지방의 '벌떡게장'이 유명하다.2 본론가. 위치지하철 신사역에 하차하여 4번 출구로 나오면 줄지어 서있는 아구찜 식당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저마다 원조라는 푯말을 내걸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상하리 만큼 한곳으로만 손님들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데 바로 그곳이 "프로간장게장" 집이다.나. 유래, 일화목포가 고향이신 여사장님은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무용을 전공하신 발레리나였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친정 어머님께서 손맛이 뛰어나셨고 여러 고급 음식들을 많이 맛보고 자라나서 성인이 된 뒤에도 본인의 미세한 미각은 계속 유지가 되었다는데, 그리하여 자신의 입맛을 충족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고집하시다가 주위분들의 권유로 간장게장 집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83년에 시작하여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에는 고향인 목포를 따서 "목포집"으로 상호를 내 걸었지만 모프로야구 선수단이 우연히 방문한뒤 그 맛에 반해 자주 찾게되자 아예 상호명도 "프로간장게장" 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서울 강남구 신사동 4거리에 있는 '프로간장게장'(02-543-4126)은 20년 전통을 자랑한다.하일성씨등 프로야구 관계자와 선수들이 자주 찾자 상호를 '목포집'에서 '프로'로 바꿨다. 충남 서산 일대포구에서 나는 싱싱한 게만쓴다. 무,양파등 온갖 야채즙과 과일,버섯등을 넣고 간장을 달여 짜지 않고 삼삼한맛이 난다.지하철 신사역에 하차하여 4번 출구로 나오면 줄지어 서있는 아구찜 식당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저마다 원조라는 푯말을 내걸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상하리 만큼 한곳으로만 손님들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데 바로 그곳이 "프로간장게장" 집이다.83년에 시작하여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에는 고향인 목포를 따서 "목포집"으로 상호를 내 걸었지만 모프로야구 선수단이 우연히 방문한뒤 그 맛에 반해 자주 찾게되자 아예 상호명도 "프로간장게장" 으로 바꾸었다고 한다.다. 대표음식, 메뉴- 프로간장게장 (35,000 / 2인분 2마리)노랗게 알이 찬 꽃게의 철.`밥도둑’으로 불리는 짭잘한 게장,손으로 뜯어가며 푸짐하게 먹는 게찜이 생각난다.신사동사거리 KFC뒤 음식골목에서 간장게장으로 인기를 끌어온 `프로간장게장’(02-543-4126)의 서백자사장(59). 그가 20년전 이 자리에 고향의 향토식을 내세운 음식점 `목포집’을 열 때 손맛좋던 친정어머니가 추천한 음식이 바로 간장게장이었다. 당시 게장은 작은 민물게로 짜게 담은 참게장. 그러나 갈수록 참게수확이 줄고, 디스토마를 염려해 간을 강하게 한 게장이 서울사람 입맛에 맞지 않자 서사장은 살이 통통한 꽃게로 간이 슴슴한 게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80년대초 단골이던 프로야구선수들은이곳에 `프로게장집’이라는 명예로운 새이름을 지어줬다.”당일 준비한 게장이 떨어져 손님을 돌려보낼 때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원조로서의 위상을 확보한 서사장은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자신의 게요리 비결을 털어놓는다.게장간장의 경우는 야채와 과일을 써서 풍미를 내고, 항온의 냉장고에서 익히는 것. 게찜은 물에 양념을 해 그 향이 게맛에 섞이도록 한다. 게장에는 무게 350g정도의 살이 연한 중간크기 암게를,찜에는 800g이 넘는 커다란 숫게를 쓴다. 물론 모두 살아있는 신선한 것으로. 산란기인 8,9월에만 봄철에 산채로 급속냉동시킨 게를 이용한다. 빨간 고춧가루 양념에 무치는 꽃게범벅은 무침양념을 미리 만들어둔 후 먹기 직전 게를 버무리고, 만든 지 이틀안에 다 먹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게장살과 알을 발라 만드는 게알비빔밥은 밥맛을 돌려주는 손쉬운 음식으로 추천한다. *간장게장 암게 양파 마늘 새앙 사과 조선간장 진간장 멸치 1.냄비에 멸치 양파 마늘 새앙 사과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끓이면서 먼저 조선간장을 조금 넣고 후에 진간장을 넣어 간을 맞춘다. 2.재료가 푹 익으면 고운 채에 육수를 받쳐 식힌다. 3.식은 육수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게에 부어 냉장고에 넣어둔다.이를 3일후에 꺼내 육수를 따뤄 다시한번 끓여 식힌 후 붓고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가 이틀후에 먹는다. *게찜:찜통에 물과 함께 다진 마늘과 새앙을 약간만 넣는다.게는 씻어 등딱지만 벗기고 게의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살이 보이게 놓고 찐다.간은 하지 않는다.*게알비빔밥:넓은 그릇에 밥을 모양있게 담고,그위에 간장게장의 살과 알을 얹고 게장간장을 약간 뿌린다.그 위에 구운김과 깨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살짝 두른다.배딱지를 떼어내고 밥을 꾹꾹 눌러 먹으면 게장이 달리 밥도둑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담백한 꽃게에 짭짤하고 달콤한 간이 아주 잘 되어 있는 프로집의 간장게장 맛은 때때로 다른 반찬의 필요성을 잊게 만들곤 한다. 목포의 시장 이야기를 떠벌였는데, 참고로 덧붙이자면 주인 아주머니 고향이 목포라는 사실이다.- 매생이국 (8,000/1인분)목포가 고향인 주인 아주머니는 몇해전부터 매생이국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겨울에 매생이를 대량으로 들여왔다가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도록 끓여주는 것이죠... 매생이를 한 움큼 집어넣고 굴을 같이 넣어 시원한 맛이 배어나는 매생이국. 최고급 해초인 매생이를 숟갈로 떠먹으면 입안에서 보드랍게 녹으면서 단맛이 우러납니다..오늘은 먼저 겨울 분위기를 띄워보도록 하자. 한겨울 목포의 어시장에 나오는 해조류는 풍성하다. 목포의 밥상에서 감태를 빼놓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겨울철 해조류의 최고봉으로 치는 건 역시 매생이다.아마도 에 나온 매산태(초밑에 매 산태)가 오늘날의 매생이를 이르는 듯 하다. 정약전은 매산태에 대해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 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했다.이 집에서는 재작년 겨울부터 매생이국을 시작했다. 초겨울에 매생이를 대량으로 들여왔다가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도록 끓여주는 것이다. 매생이를 한 움큼 집어넣고 굴을 같이 넣어 시원한 맛이 배어나는 매생이국(8000원).최고급 해초인 매생이를 숟갈로 떠먹으면 입안에서 보드랍게 녹으면서 단맛이 우러난다. 국물은 멸치의 일종인 디포리, 다시마, 무 등을 넣어서 육수를 미리 뽑아둔다고 한다.뜨끈뜨끈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매생이국. 한겨울의 따뜻한 정취가 아닐 수 없다. 겨울이면 맛이 오르는 생선 중 하나가 갈치다. 갈치하면 제주도에서는 은갈치를 내세우고, 목포에서는 먹갈치를 으뜸으로 꼽는다.- 갈치조림 (40,000/대)겨울이면 맛이 오르는 생선 중 하나가 갈치다. 갈치하면 제주도에서는 은갈치를 내세우고, 목포에서는 먹갈치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남도식 갈치조림은 매콤한 맛이 강하다. 프로간장게장에서는 봄과 여름 사이에는 은갈치를 쓰고, 그 외에는 목포 먹갈치를 쓴다고 합니다.... 프로간장게장의 매운 양념 맛이 잘 밴 갈치조림은 맛있다.남도식 갈치조림은 매콤한 맛이 강하다. 프로간장게장에서는 봄과 여름 사이에는 은갈치를 쓰고, 그 외에는 목포 먹갈치를 쓴다고 한다. 양은 냄비에 발간 국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서울에서는 갈치값이 워낙 비싸 남도에서만큼 큼지막한 갈치를 구경하기 힘들지만 프로간장게장의 매운 양념 맛이 잘 밴 갈치조림은 맛있다. 무 하나하나에도 빨간 국물이 잘 배어들어 깊은 맛을 낸다. 고추, 파, 호박을 약간 얹어서 맛을 가미했다.갈치 속살의 담백함과 매콤한 조림 국물 맛이 잘 어울린다. 옥호가 프로간장게장이니 만큼 이 집의 간장게장(2만8000원) 맛은 탁월한 솜씨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는 약간 간을 짜게 하고, 겨울에는 약간 심심하게 할 정도로 철에 따른 배려가 담겨 있다.라. 평가음식의 맛가격서비스(친절도)분위기위생 및 청결53334마. 사진- 참고자료 –번호신문발행년월일면판글수 제 목12345문화조선조선동아경향2000-05-292000-05-231999-06-181999-03-201998-07-*************34545051230 요리 일류에게 배운다 / 간장게장 - 게찜2217 이봄이 지나면 제맛 못볼 찜·탕·게장… 수1110 서울시내 '남도의 맛' 소문난 집971 [여기가 맛집]간장게장요리 고양시 「예원」1561 음·식·피·서 ‘숨은 맛집 찾아라’/서울번호 신문 발행년월일 면 판 글수 제 목1 문화 2000-05-29 19 03 1230 요리 일류에게 배운다 / 간장게장 - 게찜2 조선 2000-05-23 37 45 2217 이봄이 지나면 제맛 못볼 찜·탕·게장… 수3 조선 1999-06-18 51 45 1110 서울시내 '남도의 맛' 소문난 집4 동아 1999-03-20 27 05 971 [여기가 맛집]간장게장요리 고양시 「예원」5 경향 1998-07-29 25 1561 음·식·피·서 ‘숨은 맛집 찾아라’/서울PAGE PAGE 1
    생활/환경| 2002.07.14| 7페이지| 1,000원| 조회(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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