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 잃어버린 이여! 샤갈의 화폭에 빠져보라”한 쌍의 젊은 연인이 도시 위를 흰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다. 남자의 초록셔츠와 여자의 검은 단발머리, 시인처럼 허공에 뜬 남자의 긴 발, 남자의 팔에 안겨 날개처럼 하늘을 젓는 여인의 긴 팔. 연인의 자유로운 유영(遊泳)아래 도시는 숨죽인 듯 고요하다.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한 여인이 순백의 전라(全裸)로 등을 돌린 채 마을 위에 모로 길게 누워있다. 여인은 가슴에 간직한 비밀(사랑)이 새나갈까 봐 턱과 두 팔을 옹송그려 제 가슴을 꼭 감싸 안고 있다. 돌아누운 여인의 눈부신 누드 아래 마을은 바야흐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샤갈이 왔다. 꿈의 연금술사, 아니 눈을 뜬 채 꿈을 꾸게 만드는 샤갈이 왔다 길래, 10월의 화창한 햇살과 함께 한걸음에 서울 시림 미술관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지붕 위를 걸어 다니고, 바이올린 주자의 얼굴은 초록, 뺨을 맞댄 연인의 얼굴은 파랑, 길이든 문이든 벽이든 탑이든 염소와 양과 수탉들이 숨바꼭질하고, 나무와 집들은 물구나무선 채 둥둥 떠다닌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뒤흔들어놓은 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초현실을 현실인 양 불러내놓은 듯한 샤갈의 그림들은 이상하게,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그것들을 이상하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고, 신비롭다고 감탄한다. ‘샤갈이니까’, ‘그래야 샤갈이지’ 라며 샤갈에 관한 한 서로 잘 통한다는 듯이 맞장구까지 친다.그 샤갈, 우리들의 샤갈이 서울에 왔다. 색의 발견자, 색의 마술사, 눈을 감아도 온통 색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샤갈이 이번에 정말 제대로 왔다. 80년에 걸친 샤갈 작품의 회고전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작가에게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평생 몇 번 만나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유대계 러시아 청년 모이세이 사하로비치가 파리에 도착한 직후 마르크 샤갈로 이름을 바꾸고 그린 1910년대 작품부터, 러시아 혁명기와 베를린 체류기와 미국 망명생활을 거쳐 남 프랑스 지중해 마을 생 폴 드 방스에 정착해 그린 1980년대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작가 마르크 샤갈은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화가이자 미술사의 독특한 위치를 지닌 작가이다. 98세의 오랜 삶을 통해 동심으로부터 무용과 꿈, 그리고 성경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현란한 색채와 형상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피카소의 표현을 빌자면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로 여겨지고 있다.나는 어떤 형태로든 나를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아마도 그것은 아직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믿고 따라야 할 나의 신념은 무엇인지와 같은 나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샤갈은 나와는 달리 자신을 표현하는데 능숙한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샤갈은 자주 자신의 그림에 등장했다. 에서는 연인 중 한 명으로, 이나 , 에서는 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로서, 그는 자기 작품 대부분에 등장했다. 심지어 뒤의 두 그림에서는 그가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처럼 자화상의 형태로든 화가의 초상 형태로든 혹은 연인으로든(혹은 종종 동물의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그림 속에 계속해서 자신이 등장하는 일은 마르크 샤갈에게 그림이 광범위한 의미에서 자전적인 고백과도 같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샤갈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연작은 성경의 교육적 기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입증하고 그의 연인들은 사랑에 대한 그의 신념을 보여주며, 그의 풍경들은 그가 거친 많은 여행과 만남에 대해 들려준다. 샤갈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의 세계, 아니 어쩌면 그의 세계들을 마치 거대한 소설처럼 펼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걀이 많이 부러웠다. 자신의 인생을 그토록 자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당당한 모습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샤갈처럼 멋지게는 아니더라도 나는 언제쯤 확신있게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습을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샤갈 그림 속의 인생을 통해 나의 삶도 반추해본다.
Ⅰ.머리말Ⅱ.한국 게임산업의 현황 및 발전 전망2.1. 한국 게임산업의 현황2.2.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 전망Ⅲ. 정부의 게임산업 육성 정책 및 제도3.1. 기본 정책(1) 국내 게임산업 비전(2) 목표(3) 전략3.2. 지원 정책 및 제도(1) 기본 사업(2) 문화관광부의 지원정책(3) 정보통신부의 지원정책(4) 산업자원부의 지원정책(5) 외교통상부의 지원정책Ⅳ. 한국 게임산업의 문제점Ⅴ. 정부의 게임산업 발전전략5.1.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요건5.2. 정부차원의 발전전략(1) 기본방향(2)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노력(3) 불법복제 단속 강화(4) 우수한 게임인력 양성을 위한 지원(5) 게임 개발사 육성의 필요성(6) 벤처자금 지원제도의 개선(7) 정부의 규제완화(8) 수출지원의 강화Ⅵ. 맺음말Ⅰ. 머리말게임산업은, 1972년 최초로 컴퓨터 게임을 비즈니스화한 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 전자?반도체?컴퓨터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와 멀티미디어 산업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사회?문화의 인프라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개인주의 지향의 생활문화가급속히 보급되고 있고 이러한 사회?문화 환경은 휴식과 놀이를 컴퓨터를 통해 즐기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산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육성의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게임산업은, 우수한 인력이 풍부한 우리나라에 적합한 아이디어 산업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첫째, 게임 산업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뉴 미디어 기술, 풍부한 게임소재 등의 결정체로 타 산업에 비해 적은 시설과 장비 투자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집약형 산업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다.둘째, 게임 산업은 강한 오락성과 대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게임소프트웨어는 사용자로 하여금 끊임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지속적인 수요창출이 가능하고 가상의 오락문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인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킨다. 또한었고, 게임의 고부가가치를 인식한 일부 전자관련 업체와 청계천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게임보드(게임기판)의 복제기술을 습득하여 게임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국내 아케이드게임의 본격적인 게임개발은 최근 몇 년 전으로 왕중왕(1994), 극초호권(1995), 삼국지4(1996), 아이런포트레스(1997), 레드호크(1997), 톰슨기관차(1997), 1998년에는 3차원 격투기게임 등의 게임이 출시되었으나 세계 1위의 게임 왕국인 일본 수준의 게임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이다.2002년 국내 게임 수출은 2001년도에 비해 8%가량 증가한 1억 4,080만 불에 이르는 것으로나타났다. 반면 수입액은 146%가 증가한 1억 6,096만 불로 수출액을 추월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온라인게임이 주력 수출품목으로 올라섰으며, 비디오게임이 수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한국게임산업개발원, 2003 게임백서, p.62.이다. 이는 전통적인 수출 주력품목인 아케이드게임과 주요 수입품목인 PC게임이 각각 시장규모축소와 함께 선두 자리를 넘겨준 것을 의미한다. 국내 게임시장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온라인게임이 6 . 7 %로 가장 높으며, 모바일게임이 5 . 3 %로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의 경우 급격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0 . 6 %로 플랫폼 중에서 가장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2년 세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은 1 . 7 %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 수치는 2001년(1.5%)에 비해 0.2%가량 증가한 것으로 국내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4년경에는 2 %를 넘어* 한국게임산업개발원, 2003 게임백서, p.64.설 전망이다. 한편 세계 주요국 내에서 한국의 게임산업 경쟁력으로는 온라인게임이 미국에 이어 2위 규모를, 모바일게임이 일본, 미국에 이어 3위 규모를 차지하고 있어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PC 게임의 수출산업화 촉진? 게임투자조합 설립을 통한 개발자금의 안정적 지원3.2. 지원 정책 및 제도게임산업의 육성 정책은 주로 문화관광부의 주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른 부처에서도 나름대로의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하려고 하고 있다.(1) 기본 사업? 기본 사업첨단매체 문화프로그램 개발? 컴퓨터게임산업 발전기반 구축- 게임전문인력 양성지원- 우수게임 사전제작지원- 국산게임 해외진출지원(2) 문화관광부의 지원 정책현재 게임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문화관광부로 일원화되어 있으며 문화관광부는 게임지원센타의 설립을 통한 일원화된 게임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정책내용은 다음과 같다.? 게임 산업 발전 기반 조성- 게임종합지원센타 설립을 통하여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첨단 게임 산업기 지로서의 역할 수행- 게임종합지원센터 일본사무소 운영(기후현 VR테크노센터)- 센터 부설 게임연구소 설립 추진- 게임플랫폼, 체험형 시뮬레이터, 첨단 복합영상단말기 등 연구개발지원- 게임용 가상현실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지원- 게임 개발에 적합한 투자재원을 확보하여 기술력을 보유한 유망 게임 개발업체 지원- 지역별 게임지원센타의 확충 및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지역 간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및 경쟁력 제고? 문화관광부 산하 게임종합지원센터의 지원제도- 우수게임사전지원- 게임 전시회 참가 지원- 첨단장비 지원(3D 스캐너, 모션캡쳐 장비)- 게임연구소 설립- 국산 게임물의 유통 및 마케팅을 지원할 게임센터 설립- 벤처창업준비지원? 게임산업 육성- 게임해외수출지원(주요 국제게임전시회 참가지원)- 게임아카데미 설립 및 운영- 우수게임제작지원? 게임벤처기업 창업육성- 벤처기업육성- 기술개발? 게임 제작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 우수게임 제작 지원 활동: 현재 게임지원센타 주관 하에 분기별로 우수 게임을 선정 사전 제작 최고 편당 3천만 원까지 지원- 국제 경쟁력 강화 및 해외진출 지원: 주요 국제 게임 전시회 참가 지원을 통하여 해외 경쟁력 강화 및 해외 않지만 이들 조차도 창자활동이 직업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활발한 아마추어 게임창작 활동을 촉진하는 공모전들은 소규모여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세계적인 게임전시회가 없어 일반인들이 쉽게 수준 높은 게임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도 하나의 문제이다. 또 하나는 게임 매니아 층이 넓지 못하여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개발되고 발전되는데 큰 장애를 갖고 있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게임관련 잡지들은 대부분 게이머들이 필요한 정보들을 다루고 있고, 카마슈트라(http://www.gamasutra.com)와 같이, 게임 창작에 대한 고급정보들을 다루는 잡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고급정보의 공유가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다.2. 개발자본금 확보의 어려움게임개발업체들은 콘텐츠의 고급화로 인한 기본 개발비의 상승에 따른 충분한 개발자본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2년의 개발기간동안 약 45억 원이 투입되어 개발되었다. 그러나 국내 게임개발사들의 영세성으로 인해 편당 10억 이상의 개발비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별히 기술평가전문기관이나 게임전문투자조합이 없기 때문에 개발자본금을 빌리려면 대부분이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제약으로 게임지원정책자금조차도 지원받기 어려운상황이다.* 자사기업경쟁력 악화요인 (한국게임산업개발원)3. 개발 방법의 전문화 부족게임개발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따라서 다양하고 복잡한 개발과정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전문적인 방법들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게임개발사들은 주로 경험을 중심으로 게임들을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소수의 개발사들만이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개발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철저한 시장조사와 소비자분석을 통해 게임개발 기획을 수립하고 효과적인 프로젝트 관리체계를 정립하여 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게임의로 지적할 수 있다.Ⅴ. 정부의 게임산업 발전전략5.1.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요건게임 콘텐츠 산업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핵심요소이므로 동 분야의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풍부한 인력확보가 최우선적인 산업발전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경우 약 60여 개의 멀티미디어 게임 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어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작가, 작곡가, 게임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다.게임 콘텐츠 산업은 모험성이 강한 벤처성 산업인 반면, 국내의 게임개발업체가 대부분 영세한 자본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내 중소업체들의 자금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벤처자본을 활성화하는 지원책 마련과 함께 게임개발의 기초연구 및 신규 개발 기술의 이용도를 높이는 공공자금의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한편, 게임 콘텐츠 시장의 유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요구된다. 다단계적인 유통체계를 가급적 단순화하고 소비자들의 수요접근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PC전문 대리점, 양판점, 편의점, 서점, 비디오 대여점 등과 같은 다양한 게임 판매 유통점이 개설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POS와 같은 현대적인 판매시스템이 하루속히 모든 업계에 도입됨으로써 건전한 거래관행이 구축될 수 있는 유통 인프라의 조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국내 게임시장에 상존하고 있는 게임 콘텐츠의 불법유통은 그나마 협소한 내수시장을 위축시키고 영세한 국내업체의 존립기반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불법복제의 지속적이고도 철저한 단속과 함께 불법복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제고시키는 노력이 요망된다.5.2. 정부차원의 발전전략지금까지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게임산업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반도체신화’와 같은 ‘게임신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부의 정책적인 발전전략에 관하여 제안하고자 한다. )1. 기본방향게임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인적자원의 유연화 전략을 위한 내부/외부 노동시장에 대한 인사 정책-GE 사례-오늘날 기업을 둘러싼 경제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WTO체제가 들어서고 이에 발맞춰 급속도로 세계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무한 경쟁 속에서 국제 자본은 지구촌 어디에나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이제 국내 경쟁뿐만 아니라 국제간 경쟁에도 대비해야 하는 입장에 서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과거의 경영관리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하지만 기업이 오늘날의 환경에서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국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경쟁력이란 기업의 원동력이며 기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개발되고 다듬어져야 할 숙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에도 기업들은 경쟁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 선진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력으로서 리엔지니어링과 벤치마킹을 큰 흐름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기본원리로부터 새로운 생산조직 혁신을 의미한다. 이 시점에서 노사관계 역시 큰 변화에 직면해있다.세계화·정보화의 추세는 노동의 유연성(labor flexibility)을 요구하고 있다. 경직적인 고용 보장은 세계적인 경쟁 체제에서 개별 기업들이 생존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보다 자유롭게 생산방식을 변화시켜 나가려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규제 수단을 잃어가고 있다. 아울러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다변화된 품질 지향 생산 체제, 고성과 작업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즉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하여 급변하는 그리고 첨예한 시장경쟁에 기초한 기업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노동의 유연성은 비교적 동일한 작업조직과 안정적 고용 및 보상체계에 기초한 포드주의 생산체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함에 따라서, 생산체제 자체의 유연성을 제고시켜 조직의 신축적인 대응능력을 갖추려는 경영전략과 관련하여 등장하였다(김장호, 1999; Mario, 2000).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최근의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린 생산체계, 규모축소, 외부 생산체계와의 연결망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혁신을 추구하고 있다(Harrison, 1994, 190쪽). 새로운 경영방식의 도입은 기업 특수적 직무를 수행하는 핵심 노동자를 제외한 노동력(예를 들어서, 시간제 노동자, 파견노동자, 하청업체 종사자 등)의 고용방식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고용형태와 산업별 노동시장구조를 변화시켰으며, 특히 시장 독점력이 높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업구조조정과 경영혁신방식은 노동시장 구조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이러한 기업경영방식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며, 기업이 유연적 생산체계를 도입할수록 노동시장 유연화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인력개발 전략과 밀접히 연관된 것은 종업원들의 채용과 해고를 통한 수량적 유연화(외적 유연성)와 개별 종업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의 폭을 넓히는 기능적 유연화(내적 유연성)가 있다.수량적 유연화는 먼저 채용과 해고에 있어서 기업의 자율적 결정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시장 변화에 맞추어 기업 내 인력 규모를 조절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이때 기업은 채용을 제한하거나 해고를 늘리는 방식으로 이를 시행한다.이러한 방법이 기업 경쟁력 제고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경쟁력 제고의 방법으로 기업들이 수량적 유연성에만 의존한다면 고품질, 고부가가치 창출 전략이 달성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수량적 유연성은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효율성은 확보해주지만 기술 축적과 인재 확보라는 점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능적 유연성의 확대가 중시된다.한편, 기능적 유연성은 기존의 분절화된 조직을 극복하고, 새롭게 직무의 범위를 확대하고, 다기능(multi-skills)을 추진하는 한편, 인적자원들의 기업 내 이동을 촉진시키는 전략이다. 기업 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기업들은 내부의 인적자원들이 해 왔던 일의 성격과 부서를 수시로 전환시켜 기업 외부의 충격을 내부에서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직업훈련과 능력개발을 위해 기업의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며 조직 내 경력개발 체계가 공고해야만 한다. 기능적 유연성의 증대는 결국 기업 내부 노동시장을 한층 강화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시장에서 수량적 유연성은 전통적으로 꾸준히 추구되어 왔으나, 아직 기능적 유연성은 유럽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지속적인 기업 성장과 고용 안정성 덕분에 기업이나 근로자 모두 기능적 유연성의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의 내부 노동시장이 아직 발달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인력의 활용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가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기업이 종업원 훈련에 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내부노동시장은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며,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외부 노동 시장에서 채용한다. 따라서 노동이동이 활발하게 되고 근로자들에게는 직장이동이 승진이나 임금을 올리는 유력한 방법이 된다. 기업에서는 계속 보유해야 할 우수 인력과 말썽 없이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된 낮은 능력의 인력에 관리를 집중하고, 중간층은 외부시장에 의존하는 방식인데(Pot, 2000: 153-156), 그만큼 기업에 운명을 거는 근로자가 적으며, 불만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
Ⅰ. 머리말얼마 전 국내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의 한 사람인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회고전이 열렸다. 에른스트 루비치는 프리츠 랑,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등과 함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부흥에 기여한 위대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표현주의 영화란 무엇인가? 표현주의란 20세기 초 주로 독일?오스트리아에서 전개된 예술운동으로 작가 개인의 내부생명, 즉 自我?魂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우선 회화에서 시작되어 다른 조형예술을 거쳐 문학?연극?영화?음악에까지 미쳤는데 특히 영화에서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미국의 마샬 맥루한은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정보는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하였고, 표현주의 영화는 맥루한의 화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맥루한이 말한 미디어 자체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음향, 색조, 영상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표적인 감독 3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독일 표현주의 영화(German Expressive Film)1.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배경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영화 산업을 거의 장악하게 되었을 때 독일에선 다른 예술 분야에서 유행하던 사조를 영화에 끌어들여 그들만의 독특한 영화 양식을 창조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그 당시의 영화정책상의 후원과 전후의 사회상까지 맞물려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영화 형식과 내용의 합치를 이루게 된다. 이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주변의 제 여건과 양식의 만남, 그리고 내러티브 속에 녹아들어 있는 그 당시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 증명해 준다. 영화 후진국이던 독일은 1차 대전 발발 후 적대국의 영화 수입을 대체하고 선진 영화의 제작을 위해 영화 산업에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대전 후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의 자부심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 또한 이루어지고 전쟁의 패배에 따른 기성 운 미술 경향이 대두됐고, 이런 새로운 양식들은 그대로 영화에 흡수됐다. 이렇게 형성된 표현주의 영화는 조작되는 서술구조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재배열하고 강화시킴으로써 현실세계를 초월하면서도 얽매이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심리적 주제에 못지 않게, 표현주의의 구체적인 특징은 외적 형식에서 표출된다. 건축학적 무대장치, 치밀하게 연출된 의상, 낭만적인 조명 등 무대 연출적 특징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당시의 영화들 중에서 독일영화를 판별해낼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화면에 담겨진 특이하거나, 웅장한 건축물 속에서 그와 어울리는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들은 독일 표현주의의 전형처럼 인식되었다.Ⅲ.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3인의 작품세계1.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 - 로베르토 비네(Robert Wiene)1919년에 제작된 로베르토 비네(Robert Wiene)의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Das Kabinett des Dr. Caligali)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이 작품은 원래 프리츠 랑(Fritz Lang)이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로베르트 비네가 감독을 맡았다. 영화의 서사와 시각적 특성은 당대의 가장 실험적 양상의 하나로 꼽히며 이후 수년간 지속된 표현주의 영화경향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살인범을 회상하며 얘기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추적 끝에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지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이제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은 사실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관객은 이제까지 보고들은 것이 미친 자가 꾸며낸 망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면서도 그가 정말 미쳤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관객의 의구심을 누르는 것은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다. 영화의 장면화는 현실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등 당대의 표현주의 회화의틀러의 등극을 예시했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2. 표현주의의 거장 -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drich Wilhelm Murnau)무르나우는 1888년 12월 28일 독일의 빌레펠트에서 태어났다. 철학과 문학 예술사를 공부한 그는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는데, 선전 영화를 만들기도 하다가 종전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뛰어든다. 그가 처음 독일 영화에 뛰어든 것은 라인하르트의 조감독을 통해서이다. 그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 Der Knabe in Blau』(1919)를 만들며 감독에 데뷔한다.무르나우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22년 작품인『노스페라투 Nosferatu, eine Symphonie des Grauens』이다. 표현주의 영화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빛과 어둠, 그림자를 활용하여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최초의 흡혈귀 영화로도 볼 수 있다. 또한 1924년 작품인 『마지막 웃음 der letzte Mann: The Last Laugh』은 그 영화가 개발해 낸 기술적인 면으로도 크게 평가받는다. 특히 이 영화에서 평가되는 부분은 잠재되어 있던 카메라와 내러티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것이다. 공동 주택에서의 결혼 파티 장면에서 쓰이는 카메라의 시점 쇼트는 그리피스의 편집과 함께 영화의 기초 문법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또 단 하나의 자막만이 필요할 정도로 『마지막 웃음』은 카메라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것은 이전의 영화들이 이르지 못한 경지였고 영화의 문법이 발전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웃음』은 독일 영화의 마지막 성과물이면서 장르의 한계 속에 갇혀 있지 않았고 새로운 이야기전달의 테크닉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는다. 『노스페라투』의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시작했던 그의 영화 세계는 결국은 『마지막 웃음』이라는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의 표현주의 영화인들이 그랬듯이 무르나우는 1925년 헐리우드로 가서 1927년 그의 마지막 표현주의적 영화인 『일출 Sunrise』를 제작『메트로폴리스』(1927)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했으며,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1890년 12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프리츠 랑은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을 전공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전하여 부상을 입고 요양 중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감독 데뷔 작품은 『혼혈아』(1919)이며, 그 후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신비적 분위기를 풍기는 표현주의 영화 『사멸(死滅)의 골짜기』(1921)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 후 탐정극 『마부제 박사 Dr. Mabuse der Spieler』(1922), 민족전설의 장대한 서사시적 영화 『니벨룽겐 Die Nibelungen 』 2부작(1924), 과학만능의 공상미래영화『메트로폴리스Metropolice』(1926), 병적 살인자를 쫓는 『엠 M』(1931) 등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표현주의 영화의 최고 걸작들이다. 작품제작에 큰 도움을 준 각본가인 아내 T.하르보가 그와 이혼하고 나치스에 입당하자 유대계인 그는 프랑스를 거쳐 193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2) 메트로폴리스를 비롯한 그의 작품세계제1차 대전 참전중 부상으로 후송되어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촬영감독 카를 프로인트와 귄터 리타우, 미술감독 오토 훈트와 에리히 케텔후트, 카를 볼프레히트 등 표현주의 영화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독일 최대의 촬영소 우파 스튜디오에서 3백10일에 이르는 대작 의 촬영 작업에 들어갔다. 미래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세계로 위해 당대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나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모두 무시했다. 그 대신 영화 전체를 거대한 건축적인 유기체처럼 설계하고 그 속에서 집단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구도,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그 사이로 늘어선 기형적인 세트, 그리고 기계적인 화면과 카메라의 이동으로 표현했다. 아마도 어떤 표현주의 영화도 이보다 더 표현주의 정신을 구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트로폴리스』는 위험한 결론으로 이끌린다. 그는 선동과 집단봉기의 계급투쟁의 결과를 공상과학영화라는 모호한 변명 속에서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가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끝나며, 혁명은 폭동으로 변질하고, 결국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두 사람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 제작자 월터 윈저였다. 13년 뒤 프리츠 랑은 괴벨스의 나치 선전영화 제안을 거절하고 할리우드로 가서 필름 누아르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메트로폴리스』는 1930~40년대 할리우드의 내러티브와 표현적 양식에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SF장르가 이 영화의 장면들을 차용했다. 그가 미국으로 가서 만든 작품으로는 『인간 사냥꾼 Man Hunt』(1941), 『교수형 집행관의 죽음 Hangman Also Die!』(1943), 『망토와 비수 Cloak and Dag-ger』(1946), 『빅 히트 Big Heat』등 도시범죄영화들이 있고 사회문제를 다룬『격노』(1936), 『암흑가의 탄흔』(1937)등 사회 비판적인 작품도 만들었다.Ⅳ. 표현주의 영화의 종말대부분 표현주의 영화의 종말을 말할 때 히틀러의 집권과 탄압을 그 큰 이유로 보고 있지만 표현주의 영화를 퇴색시킨 것은 헐리우드의 자본이었다. 사실 히틀러가 집권하던 1933년 이전에 이미 대부분의 표현주의 영화인들은 헐.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주장의사회적 문제점과 개선과제1. 동일노동·동일임금 주장의 배경O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이슈가 된 이유최근 비정규직의 인원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의 고용과 근로조건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약 50-60% 정도의 임금만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복지와 사회보험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의 경우 약 48%가 초과수당을 못 받고, 약 50%가 상여금을 못 받고 있으며, 32%는 퇴직금을 못받고 있다. 고용형태별 월평균임금 (2002년 8월 기준)구분금액(만원)전체남여정규직 (A)182202131비정규직 (B)9611677B/A53%57%59%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2.8)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업복지급여 실태 (단위: %)적용미적용부분적용잘 모름초과근로수당18.347.824.39.6상여금18.649.631.91.7퇴직금37.131.921.69.5주휴일69.614.310.75.4월차휴가57.831.96.04.3연차휴가49.635.79.65.2정기건강진단59.825.68.56.0주택자금대여11.366.02.819.8자료: 한동우(2002)에서 재인용O 동일노동·동일임금 주장의 내용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다음 조항을 넣도록 요구하고 있다.① 사용자는 근로기간 및 시간 기타 근로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고용 및 근로조건상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게 함.② 구체적인 임금 결정방법에 있어서, 사업주는 동일 사업 또는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지급하여야 하며, 근무형태의 차이를 불문하고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하여 통상근무자와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함.O 동일노동·동일임금 주장에 대한 경영계의 입장동일노동·동일임금 주장이 임금차별의 해소라는 명분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단순히 차별 해소 차원에서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직무급 임금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지닌 문제점 :① 실제 운용 면에 있어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동일가치노동의 평가 문제.② 개별기업의 노무관리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지 않음.③ 연공급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획일적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④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높일 가능성이 큼.3. 우리나라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적용 시 문제점O 임금의 공정성 측면공정성의 의미를 객관성에만 국한한다면 동일직무·동일임금보다는 직급과 호봉에 따라 임금이 자동 결정되는 연공서열형 임금제도가 더 객관적인 제도이다. 한편 공정성의 의미를 노력, 성과, 능력, 담당직무의 특성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본다면, 담당직무의 특성에 따라 보상액을 정하는 직무급이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무급은 직무평가와 임률 결정 과정에 객관적인 절차와 방법들이 사용되긴 하지만 노사간 합의 또는 주관적 판단도 함께 개입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특히 동일직무·동일임금는 조직 내의 직무간 임금차별은 해소할 수 있지만, 조직 간의 임금차별은 해소하는데 미흡하고 나아가 그런 차별을 고착시킬 위험도 있다. 그러므로 동일직무·동일임금은 그 자체만으로는 공정성을 충분히 갖춘 임금제도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고, 성과와 능력, 연공 등도 함께 고려하는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직무급을 적용하고 있는 구미의 기업들도 업적급, 능력급, 지식급(knowledge-based-pay)과 같은 부가급들을 많이 지급하고 있다.O 연공서열형 임금제도 하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 도입 시 문제점기존의 연공서열형 임금제도 하에서는 담당직무의 상대적 가치와 상관없이 근속년수(호봉)와 직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데, 만약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면, 동일한 직무를 하지만 호봉이 다른 두 직원은 임금을 조정해야만 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이 경우 낮은 호봉의 직원에게 더 많이 준다면 사측의 인건비 부담뿐만 아니라 고호봉 직원의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직무는 아닐지라도 동일한 가치의 직무를 하지만 호봉과 직급이 다른 두 직원이 있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엔 부서가 다를 수도 있고, 이미 호봉과 직급에 상당한 차이가 나있을 수 있으므로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따라 임금조정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4. 우리나라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 적용방안O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적용 문제정규직 채용에 따른 높은 부담과 많은 제약 때문에 비정규직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법으로 정규직 수준의 보호를 강제하면 기업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게 돼 오히려 비정규직의 전체 고용률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크다. 따라서 실제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는 각 사용자의 필요와 전략적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회사의 필요에 따라 고용은 유연하게 하는 대신에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회사도 실제 있다. 한편 사용자는 비정규직의 신분불안과 그에 따른 동기부여 미흡, 충성심과 애사심의 저하, 생산성 감소 등을 모두 인지하고 있으며,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고도 비정규직을 고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사용자의 의도를 법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고 또 무시하고 제도로 강제하면 다른 편법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O 기존의 연공급 하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적용직급과 호봉을 유지하면서 동일노동·동일임금 또는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직무평가 점수에 따라 기존의 임금을 조정해야 하는데 절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현재 직무의 특성을 반영하는 수당들을 여러 형태로 지급되고 있는데(직무수당, 직책수당, 객지수당, 벽지수당, 위험수당 등) 이것을 직무급제도에 맞게 개편하는 방법이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O 연봉제 하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적용연봉제에 동일직무·동일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이미 성과나 능력 같은 요소들이 반영되는 길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연봉책정 기준에 직무특성에 대한 평가결과만 더 추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봉제 하에서도 다양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따라서 승진급제도와 인사고과제도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설계하고 또 운영하여야 한다. 이를위해서는 노사공동으로 차별시정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인사제도의 설계시에 종업원의 다양한의견을 수렴하는 등 참여 확대 방식으로 전환을 필요로 한다.PAGE PAGE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