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교육 ◈1. 시대적 배경고려말 외교정책을 둘러싸고 귀족간의 대립이 오래 계속되었다. 요동정벌에 불합리성을 제시하고 회군을 탄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함락시키고 실권을 장악했다. 실권을 장악한 이 성계는 차례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1392년 마침내 왕위에 올라 새 왕조 조 선을 건국했다. 이성계는 집권과정에서부터 친명외교, 억불숭유, 사전개혁 등 의 정책을 채택했으며, 이는 집권 후에도 일관된 정책으로 지속되었다. 태조 는 1394년 서울을 한양으로 옮기고, 군제를 개혁하고, 법제를 정비하고, 사찰 에 대한 특권을 빼앗고 도첩제(度牒制)를 강화하는 한편, 성균관과 향교를 일 으켜 유학을 장려하였다. 태종은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국가의 기틀을 더욱 다졌고, 세종은 이런 바탕 위에서 재위 32년(1419-1450)동안 찬란한 치적을 쌓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때 창제된 훈민정음은 교육사 뿐만 아니라 민족 정 신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조선의 정치제도는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했으나 태종 때 두 차례 (1401.1405)의 관제개혁으로 조선의 관제가 정비되어 500년간 그 틀을 유지했 다. 조선의 사회는 양반 사대부가 집권층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우리의 역사 상 가장 엄격한 신분적 계급 질서가 유지되었으나, 후기에 오면서 세습 양반 의 수는 증가하고 관직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은 신분제는 정치적·사 회적 혼란의 한 원인이 되었고, 엄격한 신분질서도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조 선시대의 신분 계급은 대체로 왕족·양반·중인·양인·천민으로 나눌 수 있 다. 이와 같은 계급질서 속에서 교육은 과거를 통한 입신 출세를 위한 주된 수단이 되었고, 조선의 교육은 지나치게 유학(성리학)만을 숭상하여 과학기술 의 발달이나 생산 기술의 향상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조선의 학문적 수준은 매우 높은 것이었고, 학문과 예의를 숭상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을 낳았다.한편 임진왜란 이후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의서 비롯된 것이다.2) 4학4학은 고려말의 5부학당(혹은 4부학당)이 계승된 것이다. 4학은 성균관의 부 속학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향교와 비슷한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었다. 따라 서 학제와 교육방침은 성균관과 별로 차이가 없었으나, 유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는 없고 명륜당과 양재만을 갖춘 순수한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성균관이 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다. 입학자격은 양반자제로서 10세 이상을 원칙으로서 10세 이상을 원칙으로 하며 15세가 되어 학문이 우수하면 성균관에 입학할수 있었다.3) 왕실교육기관왕실의 임금과 세자 및 종천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 경연과 세자시강원과 종학등이 있다.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곳으로 유학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쳤 다. 그리고 종학은 왕족, 즉 종친의 자제를 교육하는 곳으로 세종 10년에 처 음으로 종학을 세워 대군 이하가 취학하게 하였다.4) 향교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지방에 보급되기 시작한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었으 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향교의 구조는 문묘와 명륜당과 양재를 고루 갖추고 있어 성균관의 축소판이 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소학·4서·5경을 중심으로 하고, 근사록·제사 의 강독과 제술 및 습자가 있었다.임학자격은 16세 이상의 양반 또는 향리의 자제를 원칙으로 하였다.향교는 문묘에 제사하고, 유학을 가르치는 외에 지방의 향풍을 순화하고 지 방의 백성을 계도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이런 목적으로 향교가 주관하여 실시하던 행사에는 향음례·향사례·양노례 특별강습 등이 있다. 향교는 조선 중엽까지 대단히 융성했으나,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된 곳이 많으며 그후 서원이 발달하면서 더욱 쇠퇴하여, 점차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 은 쇠퇴하고 문묘에 제사지내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5) 기술교육기관기술교육기관은 유학 이와의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기예와 생산기술을 가 르치는 곳으로, 크게 잡학교육과 공장교육으로 나눌수 있다. 잡학교육기관은 각각 그 소속된 관야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그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서원들이 마구잡이로 설립되어 향교의 쇠퇴를 가져온 원인이 되었고, 중앙에 정쟁이 생기면 서원이 이에 가담하여 끝내는 당쟁의 온상이 되는 등 여러 가 지 폐단이 많았다.2) 서 당서당은 고려시대에서 매우 발전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여 가장 많고 가장 긴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은 전적으로 사설교육기관이며 그 설 립과 폐지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서 그 규모와 수준과 성격도 매우 다양했다. 서당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4학과 향교에의 입학을 목적으로 한 초등 정도의 사립 교육기관이였다. 그러나 국민 대중의 문자교육과 그 마을의 도덕적 기풍 을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항약과 계도 대부분 이 서당을 중심으로 발전해 갔다.4. 교육사적 의의조선시대는 14세기말부터 19세기말에 걸친 서양 근세사에 해당되는 시기로 서구에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근대 과학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바탕으로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고, 아울러 국민교육제도의 발전을 보았다.이 시기에 한자와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한민족의 전통적 문화와 교육제도는 더욱 발전하여 고유의 민족문화를 확립했고, 향교와 서원 및 서당 등을 통한 전통적 교육의 발전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서당과 같은 사림 서민교 육기관의 발달은 교육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그 교육사적 의의가 크다.또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비록 상류계층에서는 외면했으나, 형성과 서민 들 사이에 중요한 의사 전달의 매체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도 문자의 독창성과 과학성으로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었고, 나아가서 독자적 인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역시 교 육사적인 의의가 크다.▷▶개화기의 교육1. 시대적 배경조선은 오랫동안 성리학을 정치적 지도 이념으로 하고 중국 대륙과의 사대적 외교를 통하여 체제를 유지해 왔으나, 말기에 이르러 대내적으로 집권층의 갈 등과 사회적 혼란, 대외적으로는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조류와었다. 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세운 통변학교와 정부가 세운 육영공원은 외국과의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 지게되자 현실적 필 요에 의해 만들어진 외국어 교육기관이다.정부가 본격적으로 근대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학제를 마련하고 정책 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일이다. 갑오개혁은 비록 일본의 강압에 의한 타율적 개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하나 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1892년 12월에 제정하여 이듬해 1월7일에 공포한 홍범14조에서는 각 기관의 직무와 권한을 확정하고, 징세는 법정 세율 에 의할 것, 우수한 자제를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과 기예를 배워오게 할 것, 문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어서 1895년 2 월에는 고종이 이른바 교육입국조서 를 발표하여 종래의 유고의 경서 중심 교육을 지양하고, 덕·체·지 3양(3養)을 힘쓰고, 허명과 실용을 분별하여 실 용에 교육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3) 민족 선각자들에 의한 교육 구국운동개화와 더불어 열강의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고 정부는 일관된 정책 방향을 잃고 흔들리게 되어 국권이 점차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뜻있는 민족의 선각 자들은 국민계몽을 통한 국권회복을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했다. 이들 민족 선각자들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국민의 각성 을 통한 민력의 양성에 있다고 보고,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문명하고 부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는 신념아래 각종 문화운동, 강연회, 토론회, 육 영사업 및 민중교화사업 등을 전개했다.4) 종교계의 교육 활동이 시기 종교계의 활동은 기독교계와 불교계의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개화와 더불어 입국한 서양 선교사들은 첫째로 그들의 교세 확장을 위 한 교리의 전파가 주된 목적이였으나, 그와 더불어 기독교가 가진 평등사상과 인도주의적 정신에 입각하여 조선사회의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과 더불어 발달된 서구 문물을 전파하고 기독교 정신에 투결함으로써 조선은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겨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0년 8월 29일의 한일합방은 단기 4243 의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의 주권을 상실하게 하였고 2000만 우리 겨레는 노예 상태로 떨어져 이후 35년간 일제의 질곡에서 신음하게 되었다.2. 일본 제국주위 식민지 교육의 전개 과정1) 일제 식민지 교육정책의 특징무단주의적 식민지 정책과, 동화주의 정책, 간접통치, 방임적 식민지 정책의 네 유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식민지 민족 을 착취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제의 한반도에 대한 식 민지 정책은 의의 어느 유형보다 간혹하고 잔인하며 교활하기까지 했다.2) 전개과정1 무단적 식민지 교육 정책기 (1910-1919)1910년 8월 19일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은 조선 으로 명칭을 바꾸고, 총 칼로 협박하는 무단적 식민지 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충량한 국민을 만 드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하여 헌병이 경찰을 대신하고, 교원까지도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공포 분위 기를 조성했다.2 유화적 식민지 교육 정책기 (1919-1938)사이또 총독의 새로운 식민지 정책은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조선어 신문의 발간을 허용하고, 관습을 존중하며, 조선인 관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한다고 하는 속임수인 문화정책 이라는 미명하에 은폐된 유화정책을 펼쳤다.3 전시 동원을 위한 황민화 교육 강행기 (1938-1945)전시 동원체제에 맞추어 한반도에 대한 전시 동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37년 도지사 회의에서는 국체명징, 선만일여, 교학진작, 농공병진, 서정쇄 신등의 다섯가지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1938년 3월에는 국체명징, 내선 일체, 인고단련의 3대 강령을 바탕으로 하는 제3차 조선교육령은 한민족의 문 화적·정신적전통을 말살하고 철저하게 황국의 신민으로 예속시케려는 민족 말살정책이였다.3. 주권 회복을 위한 민족교육 운동국권을 상실하교 일 크다.
◈ 조선시대의 교육 ◈1. 시대적 배경고려말 외교정책을 둘러싸고 귀족간의 대립이 오래 계속되었다. 요동정벌에 불합리성을 제시하고 회군을 탄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함락시키고 실권을 장악했다. 실권을 장악한 이 성계는 차례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1392년 마침내 왕위에 올라 새 왕조 조 선을 건국했다. 이성계는 집권과정에서부터 친명외교, 억불숭유, 사전개혁 등 의 정책을 채택했으며, 이는 집권 후에도 일관된 정책으로 지속되었다. 태조 는 1394년 서울을 한양으로 옮기고, 군제를 개혁하고, 법제를 정비하고, 사찰 에 대한 특권을 빼앗고 도첩제(度牒制)를 강화하는 한편, 성균관과 향교를 일 으켜 유학을 장려하였다. 태종은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국가의 기틀을 더욱 다졌고, 세종은 이런 바탕 위에서 재위 32년(1419-1450)동안 찬란한 치적을 쌓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때 창제된 훈민정음은 교육사 뿐만 아니라 민족 정 신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조선의 정치제도는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했으나 태종 때 두 차례 (1401.1405)의 관제개혁으로 조선의 관제가 정비되어 500년간 그 틀을 유지했 다. 조선의 사회는 양반 사대부가 집권층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우리의 역사 상 가장 엄격한 신분적 계급 질서가 유지되었으나, 후기에 오면서 세습 양반 의 수는 증가하고 관직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은 신분제는 정치적·사 회적 혼란의 한 원인이 되었고, 엄격한 신분질서도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조 선시대의 신분 계급은 대체로 왕족·양반·중인·양인·천민으로 나눌 수 있 다. 이와 같은 계급질서 속에서 교육은 과거를 통한 입신 출세를 위한 주된 수단이 되었고, 조선의 교육은 지나치게 유학(성리학)만을 숭상하여 과학기술 의 발달이나 생산 기술의 향상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조선의 학문적 수준은 매우 높은 것이었고, 학문과 예의를 숭상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을 낳았다.한편 임진왜란 이후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의 영향과 서양 문물의 전래와 일부 지식인의 반성으로 인하여 실용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실학 (實學) 운동이 일어나 근대화의 싹을 엿볼 수 있었다. 실학운동은 그 후 개화 사상으로 연결되어 교육 근대화의 사상적 맥을 잇게 하였다.2. 관학(官學)조선시대의 교육기관과 학제의 시본 틀은 고려의 것을 계승했으나, 이를 더 욱 발전시키고 장려했다. 정부에서 관장하는 교육기관으로 성균관·4학·왕실 교육기관·향교 및 기술교육기관 이다.1) 성균관(成均館)성균관은 고려말부터 국자감의 명칭을 개칭하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조 선시대에도 계승하여 사용했다. 그러나 간혼 학국·태학·국자감·반궁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최고의 국가 교육기관인 성균관은 태조 7년(1398)에 지 금의 성균관대학교 자리에 건립되었다. 성균관의 시설물은 문묘와 명륜당이 가장 중요한 건물로, 문묘는 공자와 72현을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명륜당은 대강의실이다.학칙과 생활에는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원점절목, 권학사목, 학교사목 등 여 러 가지 규칙이 있었으며, 이 규칙들에는 교육과정과 성적 평가방법 및 일상 생활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다.한편 성균관은 유생에게는 자치활동에 대한 자유가 주어져 있어서 스스로 대 표를 선출하고 대표의 주재 하에 재회를 열어 필요한 사항을 결정하였다. 이 는 유생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학자를 존중하는 기풍에서 비롯된 것이다.2) 4학4학은 고려말의 5부학당(혹은 4부학당)이 계승된 것이다. 4학은 성균관의 부 속학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향교와 비슷한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었다. 따라 서 학제와 교육방침은 성균관과 별로 차이가 없었으나, 유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는 없고 명륜당과 양재만을 갖춘 순수한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성균관이 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다. 입학자격은 양반자제로서 10세 이상을 원칙으로서 10세 이상을 원칙으로 하며 15세가 되어 학문이 우수하면 성균관에 입학할수 있었다.3) 왕실교육기관왕실의 임금과 세자 및 종천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 경연과 세자시강원과 종학등이 있다.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곳으로 유학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쳤 다. 그리고 종학은 왕족, 즉 종친의 자제를 교육하는 곳으로 세종 10년에 처 음으로 종학을 세워 대군 이하가 취학하게 하였다.4) 향교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지방에 보급되기 시작한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었으 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향교의 구조는 문묘와 명륜당과 양재를 고루 갖추고 있어 성균관의 축소판이 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소학·4서·5경을 중심으로 하고, 근사록·제사 의 강독과 제술 및 습자가 있었다.임학자격은 16세 이상의 양반 또는 향리의 자제를 원칙으로 하였다.향교는 문묘에 제사하고, 유학을 가르치는 외에 지방의 향풍을 순화하고 지 방의 백성을 계도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이런 목적으로 향교가 주관하여 실시하던 행사에는 향음례·향사례·양노례 특별강습 등이 있다. 향교는 조선 중엽까지 대단히 융성했으나,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된 곳이 많으며 그후 서원이 발달하면서 더욱 쇠퇴하여, 점차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 은 쇠퇴하고 문묘에 제사지내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5) 기술교육기관기술교육기관은 유학 이와의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기예와 생산기술을 가 르치는 곳으로, 크게 잡학교육과 공장교육으로 나눌수 있다. 잡학교육기관은 각각 그 소속된 관야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그 교육을 담당하는 자나 학생은 모두 중인 계층 이였으며,역학·율학·의학·천문학·명과학·지리학·산학· 화학·도학·악학·자학·무학이 있었다. 그리고 공장교육으로는 제조업에 종 사하는 자로서 경공장과 외공장으로 구분된다. 공장들의 기능별 직종은 98종 이나 될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고, 대부분 세습적이며, 사회적 신분은 천인 출 신에서 점차 양인들로 교체되어 지위가 다소 향상되었다.3. 사학조선시대에는 관료제도가 발달되고 양반계급의 증가로 인하여 교육에 대한 수요도 더욱 증가하여 관학과 더불어 사학도 더욱 발전하고 번창했다. 고려시 대의 12도가 쇠퇴한 후에 조선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사학인 서원이 등장하 여 발전하였고, 고려시대부터 있던 초등교육기관의 성격을 띈 서당은 조선시 대에 더욱 발전하였다.1) 서원
◈ 프래그머티즘과 교육 ◈1. 개관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상주의나 실재주의와는 달리 프래그머티즘은 20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철학들은 진리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선험주의와 진리가 인간 경험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진리의 독립성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프래그머티즘은 진리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시험적인 것, 또는 가설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래그머티즘에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행동 결과를 검증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프래그머티즘에서는 과거의 형이상학적 사색을 거부하는데, 이에 속하는 사람들로서는 피어스(Charls S. Peirce, 1839~1914),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드(George Herbert Mead, 1863~1931), 듀이(John Dewey, 1859~1952)등이 있다.프래그머티즘에서는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운동하고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프래그머티즘의 이론을 완성시킨 듀이는 변화에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의미가 있는데, 유위변전(vicissitudes)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프래그머티즘의 형성은 1890년대 말부터 시작한 미국의 진보적 교육운동과도 일치한다. 프래그머티즘적 전망은 진보적인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사회 개혁적 생활태도에 적합한 것이었다.2. 듀이의 철학적 배경과 교육듀이는 프래그머티즘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듀이는 사람들 간에 공동의 경험과 관심을 함께 나누는 집단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사회의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듀이가 민주적 방식으로서 강조하고 있는 참여적 사회 와 철학에 과학적 방법 을 적용한 것은 이러한 것으로부터 시사를 얻었을 것이다.1984년에서 1904년까지 시카고 대학교에서 그는 특별하게 대학실험학교(University Laboratory School,1894-1904)를 운영했는데, 이 경험이 교육이론을 형성하고 철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었다. 이 실험학교는 관리하고 지시하는 방법과 수단에 대한 탐구가 모두이다.2 유기체의 환경과의 상호작용듀이의 실험주의적 철학은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으며 발전을 한다. 듀이의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1학습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과 충동을 지닌 생물적 사회적인 유기체이며2학습자는 자연적이며 사회적인 주거지나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3학습자는 개인적인 본능적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며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는 적극적 존 재이며4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개인은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고, 그로 인하여 문제의 상황에 부딪치게 되며5그 환경으로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전반이 곧 학습이라고 본다.듀이의 생각을 최근에 교육 생태학적으로 해석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주의적 자연주의가 강조된다. 즉, 인간 유기체는 통합적인 사회적 생물 물리학적 환경(an integrated social and biophysical environment)'과의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존재이다. 듀이의 사상에서 자연주의적 요소는 루소의 낭만적인 것과는 달리 인간을 사회적인 면과 자연적인 면으로 분리하여 파악하려는 이원론적 접근을 거부한다. 또한, 인간을 자연과 대립된 개념으로 파악하여 투쟁적인 존재로 보는 것도 반대한다. 한편 듀이의 환경적 상호작용의 개념은 환경 공해 문제, 자연자원의 보존문제, 위기에 처해 있는 생물의 보존, 그리고 무기의 통제 문제 등의 생태학적인 안목과 감수성 으로 확대하여 진다.3 듀이의 인식론듀이는 관념론적인 접근을 비판하고, 성장의 개념으로 교육을 접근하여 상대적, 상황적 진리를 주장하고, 유기체의 발전과 진화에서 그 주된 시사점을 찾고 있다. 전통적인 철학 세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궁극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적은 달성된 후에 또 다른 목적을 찾아서 추구하는 과정을 거친다. 결국 진리란 상황적인 적합성(또는 적절성)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주장한다. 그 적합성은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에게 최대로 면, 하나의 아이디어는 실제 경험 속에서 검증되어질 때에만 그 타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4. 프래그머티즘의 교육론1 현상유지와 재구성의 기능듀이는 교육이 보존적인 성격을 갖기도 하며 또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교육은 어른들의 유산을 미성숙한 집단인 어린이에게 전달함으로써 문화적인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보수적이다. 문화유산을 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은 문화 유형을 재생산해 내면서 그 자체를 영속화하게 된다. 듀이에 따르면 어린이는 문화적 도구와 방법을 획득하고 활용함으로써 소속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 교류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교육은 수단적이며 과정적이다.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인간의 문화도 늘 변화하고 있다고 듀이는 생각한다. 즉, 과학적임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변화의 과정과 변화의 방향을 지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2 경험을 공유한 학교듀이에 의하면 학교는 세 가지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문화 유산을 단순화하고, 정화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단순화는 복잡한 문화를 학습자의 성숙성이나 준비성에 맞게 적합한 학습단위를 선정하는 일이고, 문화유산을 정화하는 일이란 학교가 인간의 성숙을 해치는 요소를 문화 유산으로부터 제거하고 인간의 성장을 고무 격려하는 문화적 요소를 선택하여 전달하는 일이며, 문화 유산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란 선택한 문화 유산을 통합하여 인간의 경험의 핵심에 놓이도록 조화롭게 구성하는 일이다.듀이에 따르면, 학교는 단순화되고 정화된 균형을 이룬 통합된 사회이다. 그곳에서 학습자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온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생활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곳이 된다.문제 해결 학습은 개인화 되고 인격화된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다. 집단적 경험은 참여자가 그들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협동적인 활동이다. 함께 나누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장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욱 커지는 것이다.3 민주적 태도 형성으로서 교육듀이가 생각하는 을 통찰하게 되며, 그리고 그 결과가 지적 상징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게 된다.경험을 재구성하는 일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측면을 갖게 된다. 모든 개인은 개인적인 경험을 갖지만 동시에 인간의 경험은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모든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집단도 또한 과거에 만들어진 경험을 지니고 있는 데, 개인이든 집단이든 현재의 순간은 과거의 개인적 집단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인간이 경험을 재구성하여 결국 궁극의 불멸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지식은 절대적인 확신에 의해서 얻어지는 궁극의 존재가 아니라 타당성 있는 검증을 통하여 얻은 일반화를 거쳐서 형성된다.5. 종 합프래그머티즘, 특히 듀이의 사상에서 보면, 그의 철학은 기존의 교육사고 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즉, 기존의 절대적 불변의 진리관을 실험적인 탐구로 대치시켜 놓았다. 넓은 의미로 과학적인 방법이 지식 탐구의 방법이 되었고 사회적 지식 또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듀이는 학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협동체인 공동사회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기구로서 인식했다. 듀이의 교육철학에서는 교육과 학교교육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많은 이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주요 개념은 경험의 재구성, 성장, 직접적 활동, 문제해결, 반향적 사고 등이다.◈ 진보주의와 교육 ◈1. 개관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실용주의를 모태로 하여 미국에서 전개된 교육운동의 하나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과거의 전통적인 교육이 성인중심 교육 내지는 교사중심 교육이었던 것을 비판하고 이를 아동중심 교육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아동중심 교육사상은 아동중심 교육사상으로 루소 때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페스탈로치와 프뢰벨을 등을 거쳐 계승 발전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와 꽃을 피우게 되었다.미국에서는 듀이(Jone Dewey)가 중심이 되어 진보주의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교육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 후 듀이의 신봉자들이 진보주의교육연합회를 라 촉진한다.여기서 민주주의와 성장과 교육은 서로 상호관련되어 있어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교자체가 민주적이어 한다는 것이다.3. 킬패트릭킬패트릭(William H. Kilpatrick)은 듀이가 실험학교에 도입한 문제해결학습(problem solving method)을 발전 시켜 「구안법」(The Priject Method)을 적용한 인물로 구안법이란 사회환경 속에서 전심전력을 다하여 행하는 목적지향적 활동을 의미한다.이는 준비성의 법칙, 연습의 법칙, 효과의 법칙에 의거하여 이론화 된것이다. 그에 의하면 구안법은 1 목적을 고정2 과정을 안내3 충동 또는 동기를 제공그는 구안법의 네 가지 형태를 제시했다.·구성적 또는 창조적 구안·감상 또는 즐거움을 위한 구안·문제구안·그리고 연습 또는 특수학습 구안을 제시한편 그는 교육의 중심개념으로 생활, 문화, 인격, 그리고 지성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교육이란 목적지향적 활동을 통한 인격교육으로 정리된다. 그가 제시한 교육의 중심개념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첫째, 생활이란 살기 좋은 생활 을 의미하는 것으로 물질적이 아닌 도덕적으로 살기 좋다 는 것과 만족을 주는 생활을 의미한다.둘째, 문화란 사회적 유산을 뜻하는 것으로 누적된 문명의 자본 이다. 또한 이는 조상들 이 보다 나은 생활방식을 위한 고귀한 공헌이라고 본다. 킬패트릭은 인류문화의 발 달을 인간성격의 신성성(神聖性), 비판적 사고, 실험적 과학의 단계의 세 단계로 나 누어 설명하였다.셋째, 살기 좋은 생활과 좋은 문화를 통해서 훌륭한 인격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 다. 또한 그는 여기서 바람직한 인격형성을 위한 일곱가지 생활 및 학습의 원리를 제시했다.1 바람직한 인격형성을 위해 개인은 그 환경 속에서 살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2 개인은 이와 같은 새로운 행동을 자기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3 인격형성의 내적요소 배양을 위해 교사나 부모가 아동의 태도나 감정에 유의하여야 한 다.4 개체의 성장의 따라 교사나
비타민과 무기질에 대해서...1. 비타민◈ 비타민의 기능 ◈비타민의 체내기능은 매우 광범위한데, 대부분은 효소나 또는 효소의 역할을 보조하는 조효소의 구성성분이 되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무기질의 대사에 관여한다. 생물체의 생명현상은 생체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연쇄적인 화학반응에 의하여 유지되며, 이 일련의 생화학반응들은 효소라고 하는 유기촉매가 존재할 때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또, 효소는 화학반응에 직접 참여하는 물질이 아니므로 자신이 도움을 주는 화학반응에 의하여 완전히 소모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비타민의 필요량은 매우 소량으로 충분하지만, 이 소량의 필요량이 공급되지 않을 때 생명현상의 유지에 필요한 체내 영양소의 대사가 지장을 받게 된다.비타민은 무기질과 같이 전혀 에너지를 내지 못하나 3대 열량소가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산화되어 에너지를 발생하려면 비타민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 즉, 비타민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효율적인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유기화합물로서 동물과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정상적인 식품에 극히 소량 존재하고 사람이 매일 필요로 하는 비타민의 전체 양은 약 20 mg에 불과하나 식사에 결핍되었거나 적절하게 흡수되지 않으면 결핍증세를 초래한다. 그것은 비타민이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반드시 식사에서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타민류에는 한번에 많이 섭취하면 그것이 간장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조금씩 사용되는 것(비타민A ·D)과 여분의 것은 모조리 오줌[尿]으로 배출되어 버리는 것(비타민B ·B ·C, 니아신산)의 2가지가 있다. 따라서 후자를 매일 섭취해야한다.무기질 식품이나 생물체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원소 중에서 탄수화물, 지방질, 단백질 등의 유기질 형태로 존재하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소인 칼슘,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 인, 황, 염소, 철, 구리, 요드, 망간, 코발트, 아연, 등의 총칭.이들 원소의 함유량은 매우 적지만, 그 작용은 극히 중요하다.교적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비타민 C는 질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보통 성인 남자의 하루 식품섭취량은 건조된 무게로 약 500g 정도이며, 이 중 약 200mg, 즉 섭취한 식품의 1/2,500 정도가 비타민 섭취량이 된다. 이 양은 작은 완두콩만한 크기로 상상하면 된다. 몇몇 비타민들은 동물이나 사람의 장내 세균에 의하여 합성될 수 있다. 장내에서 합성된 이들 비타민이 인체에 공헌하는 정도는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비타민 K와 같은 경우, 항생제를 다량으로 사용한 어린이에게서 세균의 전멸에서 오는 결핍증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1) 수용성비타민비타민 B 복합체에는 B1, B2, B6, B12, B13 등이 있는데, 효모 등에 비교적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어느 것을 추출해도 대개 혼합되어 나온다. 그 중에서도 B1이나 B2가 비교적 많으므로 순수한 것 대신에 조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조제품에는 다른 B군 비타민도 혼입되어 있으므로 B2나 B2 이외의 B군 비타민의 대용으로 이 조제품을 써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니아신·비오틴·판토텐산·폴산·콜린 등도 B복합체 속에 섞여 있을 때가 있다.1 비타민 B1 : 미색의 결정체로서 티아민(thiamine)이라고도 한다. 비타민 B1은 체내에서 인산 2분자와 결합한 형태인 TPP(thiamine pyrophosphate)가 되어 탄수화물 대사과정 중에 조효소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TPP는 탈탄산효소(decarboxylase)의 조효소로서 포도당의 중간 대사물질인 피루브산과 시트르산 회로 중 α-케토글루타르산으로부터의 산화적 탈탄산반응(oxidative decarboxylation)에서 이산화탄소가 이탈되어 나오는 것을 돕는다. 비타민 B1이 결핍되면 당질대사가 진행되지 않아서 피루브산과 젖산 등의 포도당 중간 대사물질이 혈액과 조직 내에 축적되어 식욕감퇴·피로·체중감소·정신불안 등의 증세가 초기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동물의 다발성 신경염, 사람에게서는 각기증세로 발소로 작용한다. 특히 아미노산으로부터 다른 케토산으로의 아미노기의 전이, 황을 함유하는 아미노산으로부터 SH군의 제거, 아미노산으로부터 이산화탄소의 제거 및 아미노기의 제거 등 생체 내 반응의 효소에 대한 조효소로 아미노산과 단백질대사에 광범위하게 작용한다. 결핍증세는 니코틴산이나 비타민 B2 결핍증세와 비슷하다. 즉, 초기에는 눈 주위·눈썹·입 가장자리·혀의 염증으로 시작하여 현기증·구토·체중감소·정신불안·빈혈·신석·경련 등의 증세로 진행된다. 장내 세균에 의하여 합성되어 장에서 흡수 이용되기 때문에 사람에게 결핍되는 일은 거의 없으나, 알코올 중독·경구피임약이나 결핵치료제인 INH의 복용으로 인한 체내 비타민 B6 효과의 감소로 결핍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효모·밀·옥수수·간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4 비타민 B12 : 흡수성 암적색의 결정(結晶)으로 시아노코발라민(cyanocobalamin)이라고도 한다. 조혈(造血) 메커니즘에 관여하며, 아미노산대사에서 조효소 작용을 한다. 이것은 생체 내의 핵산 합성에 필요하므로 부족하면 합성이 잘 되지 않아 적혈구의 세포분열이 안 되므로 적혈구는 커지고 수는 현저하게 감소되는 거대적혈구성 빈혈에 걸린다. 악성 빈혈을 예방하는 외적 인자로서 식물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고, 동물의 조직, 특히 간·신장에 많으며 굴에도 많이 들어 있다.5 비타민 C : 수용성인 흰색 결정체로서 항괴혈병성 인자(抗壞血病性因子), 즉 안티스코르부트산(antiscorbutic acid)으로부터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이라 명명되었다. 탄화수소의 유도체로서 생체조직 내에서 산화·환원되면서 영양소대사를 돕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또한, 생체의 세포를 접합시키는 시멘트와 같은 물질인 콜라겐(collagen)의 형성과 유지에 필요하다. 따라서 결핍되면 세포 사이의 콜라겐이 감소함으로써 혈관벽이 약화되어 신체의 아무 부분에서나 출혈이 생기며, 치아와 잇몸의 구조가 변화하고, 관절의 확대 및 출혈로 인한 빈혈 등 괴혈졌기 때문에 현재는 독립된 비타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9 니코틴산 : 니아신이라고도 한다. 흰색 결정체로서 식물조직에 들어 있고, 동물조직에는 주로 니코틴아미드 상태로 들어 있다. 니코틴산은 탈수소효소의 조효소인 NAD와 NADP를 형성하여 생체 내의 산화·환원반응에 관여한다. 생체에서 NAD나 NADP를 조효소로 요구하는 탈수소효소는 수백 종으로서,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대사과정 중에 광범위하게 작용한다. 즉, 니코틴산은 모든 조직세포의 정상적인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결핍증으로서 펠라그라(pellagra)가 나타난다. 초기에는 피로·식욕감퇴·체중감소로 시작하여 피부염(dermatitis)·설사(diarrhea)·지능저하(dementia) 등 D자로 시작되는 펠라그라의 3대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항펠라그라성 요인(pellagra-preventive factor:P-P factor)이라고 한다. 니코틴산아미드는 동물체 내에서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으로부터 합성된다. 따라서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결핍증이 생기지 않는다. 효모·육류·간·두유에 많고 우유나 달걀에는 적으나 트립토판이 많으므로 결핍증의 예방에 유효하다.⑩ 폴산(folic acid) : 엽산(葉酸)·폴라신·PGA 등으로도 불린다. 동물의 영양장애로 인한 빈혈(대혈구성 빈혈)을 치유시키는 작용이 있다. 시금치 등 녹색잎으로부터 추출되었기 때문에 엽산이라고 하지만, 이 밖에 간 등에도 많고, 그 화학구조가 결정되어 인공적으로 합성이 가능해졌다. 원숭이의 빈혈예방인자인 비타민 M이나 닭의 빈혈예방인자인 비타민 Bc도 이 폴산과 같은 것이거나 또는 그 유도체(글루탐산을 다시 결합한 것)이다. 폴산은 사람의 빈혈 치료에 쓰인다. 예를 들면, 임신 중의 빈혈이나 소아의 대혈구성 빈혈 등의 치료제로서 유효하다. 그 화학구조는 푸텔리딘핵(核)과 파라아미노벤조산 및 글루탐산이 결합되어 생긴 것이다.⑪ 이노시톨(inositol) : 동물의 지방간에 대한 예방치료의 효과가 있고, 위장운동을 결합이 하나 더 많은 3-디히드로레티놀(3-dehydroretinol)을 말한다. 이들 비타민 A는 식물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식물은 카로틴(α-, β-, γ-carotene)과 크립토크산틴(cryptoxanthin)이라고 하는 황색 또는 주황색 물질을 스스로 합성할 수 있는데 이들은 동물체 내에 들어와 쉽게 비타민 A로 전환되어 이용되기 때문에 비타민 A 전구물질(provitamin A)이라고 불린다.비타민 A 전구물질들은 체내 흡수율이나 활성이 비타민 A보다는 매우 떨어진다. 비타민 A는 눈 망막의 간상세포에 존재하는 시홍(視紅)이라는 붉은 자색의 감광물질의 구성성분이 된다. 시홍은 어두운 곳에서의 시각과 관계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비타민 A 섭취량이 부족하면 시홍의 생성량이 점차 감소되어 야맹증이 된다. 또,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상피세포와 점막이 변성되어 각화(角化)가 진행되고 눈의 각막·입·소화기·호흡기 등의 점막을 해치게 되므로 비타민 A를 항건조안염성 비타민이라고도 한다. 생선 간유와 황색·주황색·녹색의 채소나 과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2 비타민 D : 현재 D2, D3, D4, D5, D6, D7 등을 포함하여 적어도 10개의 자연물질이 비타민 D의 활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식품함량의 관점에서 실제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은 D2와 D3이다. D2는 에르고칼시페롤(ergocalciferol), D3는 콜레칼시페롤(cholecalciferol)이라고 불린다. 젖먹이 동물의 체내에서는 7-디히드로콜레스테롤(7-dehydrocholesterol)이 합성될 수 있으며 식물은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을 합성할 수 있는데, 이들은 각각 자외선의 조사에 의하여 비타민 D2와 D3로 전환될 수 있는 비타민 D 전구물질이다. 따라서 낮에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비타민 D가 체내에서 합성되어 이용된다.비타민 D의 주요기능은 칼슘 흡수에 필요한 단백질(calcium-binding protein)의 합성을 자극함으로써 장에서 많다.
[스포츠 마케팅에 대하여...]기업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한 도구로써 광고가 미디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 가고 있으며, 미디어의 입장에서 광고는 재정원으로 그 위치가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기업은 매년 엄청난 돈을 광고에 쏟아붓고 있으며, 경쟁사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더욱 효과적인 광고를 제작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포화상태에 있는 시장상황과 질적 격차가 크지 않은 제품들은 기업이 스폰서쉽과 같은 새롭고도 혁신적인 방법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스폰서쉽은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 지난 몇 년간 선진국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각광받는 툴로 등장하였다. 스폰서쉽과 광고의 차이점은 매우 뚜렷한데, 스폰서쉽은 방송광고나 인쇄매체 광고와는 달리 인위적으로 창조된 환경에서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기존의 정서적 환경 아래에서 실시된다. 스포츠 스폰서쉽의 경우 이러한 환경은 스포츠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스포츠는 그 사회적 가치와 폭넓은 미디어의 관심을 바탕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정책을 위해 이상적인 활동공간을 제공해 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경기 또는 자동차경주와 같은 스포츠이벤트는 어떠한 사회적 사건 보다도 많은 흥미를 유발하는 등,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커다란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스폰서쉽 활동을 위해 현재까지 실시된 여러 연구들을 살펴보면 스포츠 스폰서쉽 분야 참여를 위한 기업의 기획, 조직 및 실행, 통제체계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스폰서쉽에 관한 정보부족에 그 원인이 있으며, 따라서 효율적인 스폰서쉽 컨셉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스포츠 마케팅의 정의 ◈스포츠마케팅은 나이키,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르까프 등 스포츠의류 및 용품 생산업체에게는 매출과 직결되는 마케팅활동이고, 프로스포츠팀과 경기연맹keting with Sports)의 두 분야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각각 구별하여 의미를 새겨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스포츠의 마케팅은 스포츠 경영학계 즉,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시각으로 관람 스포츠와 참여 스포츠 산업의 경우 보다 많은 관중이나 회원을 확보하려는 활동이고, 스포츠 제조업 부분에서 스포츠 용품이나 시설 및 프로그램 등을 판매하기 위해 행하는 마케팅 활동이며, 각종 스포츠 단체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집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의미한다. 다음은 스포츠를 이용한 마케팅의 개념이다. 이것은 경영학의 마케팅 및 기업의 관점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스포츠 마케팅은 엄밀하게 스포츠 스폰서쉽이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스포츠 스폰서쉽은 기업이 현금이나 물품 또는 노하우나 조직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스포츠스타, 팀, 연맹, 협회, 스포츠행사를 지원하여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여러가지 목표를 달성할 목적으로 기획, 조직, 실행, 통제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스포츠마케팅은 바로 이 스포츠 스폰서쉽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광고 또는 판매촉진적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으며, 스포츠를 이용해 실시되는 것인 만큼 광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간단한 메시지만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한계점도 있다. 즉, 스폰서쉽은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라기 보다는 보충적으로 함께 쓰여져야 할 보충적 도구인 것이다.◈ 기업환경의 변화와 스포츠마케팅 ◈1. 시장환경90년대 후반에 접어든 현재 국내시장도 점차 선진국형으로 변화되어 전체 시장규모의 정체 또는 축소를 특징으로하는 ‘포화시장’에 근접해 가고 있다. 가전제품과 자동차시장의 경우 가구당 보급율은 이미 포화상태에 가까와졌으며, 다른 제품시장도 부분적으로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한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제품 생산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제품간 질적 격차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제껏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졌다. 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해야만 경쟁사 제품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최근 국내광고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세세한 제품정보를 전달하기 보다 소비자에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95년의 WTO체제 출범도 기업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변화를 준 큰 요인중 하나이다. 국내시장의 개방으로 제품판매 경쟁은 더 이상 국내기업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기업과의 사활을 건 투쟁이라 할 만큼 격화되어 가고 있다. 국내기업도 이제는 국내시장만을 대상으로한 광고, 홍보, 판촉 등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혁신적 커뮤니케이션 둘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해 졌다. 스포츠는 이러한 시장상황을 극복하는데 가장 적절한 매체로서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2. 사회적환경사회적 가치지향의 변화는 기업 커뮤니케이션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해방 후 6.25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는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특히 기업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소득수준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GNP)이 53년에 지구상의 최빈국에 해당하는 67달러에서 95년에 10,076달러로 약 150배 증가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문턱에 서있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도시가구의 소비지출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교양오락 및 교육 부문 지출이 ‘63년의 6.2%에서 ’95년에 14.4%로 두배가 훨씬 넘게 증가하였다. 이것은 스포츠를 포함한 여가활동비 지출도 역시 대폭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주당평균 근로시간의 변화추이를 보면 80년에 50.4시간에서 95년 45.8시간으로 4.6시간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여가시간이 거의 10% 정도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여가시간의 상당부분을 경기장을 찾거나 TV를 통해 스포츠를 관람하기도 하고, 생활체육 또는 레저스포츠에 직접 참여하는가 하면, 스포츠센타 또는 동호회를 이용해 취미생활을 즐기고 건강증진에도 많은 노력을 기사회제도의 하나가 되었다. 국민들은 날마다 대중매체를 접하고 여가시간의 상당부분을 대중매체를 이용하며 보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3년 우리나라 국민의 신문구독율은 70.5%, 잡지구독율은 24.1%, TV시청 인구비율은 94.8%였다. TV의 선호 프로그램과 신문의 관심부문에서 스포츠는 각각 11%와 12%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양적 증가는 스포츠마케팅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는데, 먼저 TV의 경우를 살펴보면 공중파 방송인 기존의 KBS1, KBS2, MBC 이외에 SBS를 포함 5개의 지역민영방송이 생겨났으며, 위성방송 2개 채널, 스포츠 전문채널인 KSTV 포함 29개 케이블 채널이 있다. 신문은 스포츠 전문지 3개(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가 있고, 5대 일간신문을 중심으로 섹션화가 가속화되어 스포츠면도 최소 2개면씩 배정되어 있다. 이외에 라디오방송국도 숫적으로 증가일로에 있으며, 스포츠 전문잡지 포함 잡지의 총 숫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4. 전통광고의 문제점기업에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광고하나만으로 인지도 및 이미지 제고나 매출 증대라는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에도 각종 매체의 수천가지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광고 수용력에는 한계가 있고, 폭주하는 광고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해 방송광고는 부담을 덜 주고 기억에 남기 위해 소비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즉 호감을 주고, 재미있으며 신뢰감까지 주는 광고물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광고에서 제시한 편익(Benefit)이 실제로 제품을 구입해 사용해 본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경우가 되풀이되면 광고 전체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은 인기연예인이 주종을 달리 가상의 공간(영화, 드라마 등등)을 통해 알려진 것이 아니라, 스포츠(경기)라는 현실의 승부세계를 통해 유명해진 경우이므로 소비자에게 신뢰성을 심어 주는데 훨씬 유용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전통광고는 제작비 및 매체비용 면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 광고모델의 출연료는 세계적 스타를 능가할 만큼 폭발적으로 상승하였고, 매체광고료도 매년 지속적으로 비싸지고 있다. 이러한 광고료의 폭등에 비해 스포츠를 이용한 광고 또는 스포츠 스폰서쉽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고, 효과 면에서도 전통광고를 오히려 능가하는 등 그 활용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마케팅 효과 ◈기업은 스포츠마케팅 활동을 통해 자사 및 자사제품의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유지하려는 기본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외에도 사회적 책임의식 또는 참여의식의 부각이라든지 고객 또는 거래업체들에 대한 환대(Hospitality)를 위해서도 스포츠마케팅을 활용하며, 임직원의 사기진작 및 애사심 고취 또는 기존의 광고, PR, 판촉활동을 지원하는데도 유용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스포츠마케팅은 이와같이 일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얻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제품판매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내에서 스포츠마케팅 효과를 과학적 방법으로 조사한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대기업 소유의 몇 몇 (준)프로팀이 매체노출도를 광고비용으로 환산, 팀의 운영비와 비교해 효과를 수치화한 경우는 있다. 선경증권 여자농구단은 95~96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하여 약 103억원의 홍보효과를 얻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산정방식을 보면, 3대 TV방송사의 8회 생중계(낯방송 평균광고료 15초당 100만원)와 4대 중앙일간지에 232단에 걸쳐 704cm 크기로 기사화(신문 1단1cm 3만원)된 것을 합쳐 120역원의 광고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서 구단 운영비용 17낮 뺀 103억원을 순수익으로 본 것이다. 작년 연말에 한보그룹 멧돼지씨름단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