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나의 고민은 이라크 전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다원주의 사회가 되면서 합리적이 되가고 있고 상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추세이다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오히려종교의 힘을 빌려 전쟁을 치루고 전쟁에 대항하는 세력도 역시 종교의 이름을 빌리는 테러가 세계각지에서 일어나는 것에서 의문이 제기 되었다.앞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의 대결이 줄어들거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대립 저변에 문화적인 대립이 전제되면서 더욱 풀기 어려운 대립 구도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대립은 특별한 이해관계에 의한 것도 아니고 선천적이거나 혹은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면서 합리적인 힘에 의해서는 풀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그렇다면 앞으로 세계구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여기서 나는 미래의 올바른 흐름의 하나로 '다원주의'를 내세우게 되었다. 문화 대결 구도에서는 문화 저변에 관용과 인정의 질서가 요구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관용과 인정이 주요 덕목으로 채택되고 있는 다원주의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기도 하다.이러한 다원주의의 흐름속에서 어떻게 문화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는지(문화 다원주의 부분)를 점검하고 다원주의의 형성과 성격을 살펴보면서 다원주의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요구되는 전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1. 다원주의란 무엇인가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정초 되었던 19,20세기의 냉전시대를 거치고 탈냉전시대라는 모호한 정체성의 시기를 지나 다원주의는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혼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탈냉전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이면에는 이미 새로운 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1) 다원주의의 성립 배경다원주의는 현대에서 나타난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 분명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다원주의가 이렇게 주도적인 흐름을 띄게 된 것은 세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첫 번째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교통과 통 가지지 그 안에 담기는 것에 대한 성격까지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구니가 담아 넣는 내용물을 대신 할 수도 없다.세 번째, 다원주의는 모든 당위의 틀을 깨는 작용을 한다. 이것은 '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으로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것은 정치, 사회, 종교, 전통, 감정, 제도 등 모든 영역에 걸쳐서 적용되며 이러한 물음들은 개인의 원칙과 방식으로 재정의 된다. 전통적 태도는 과거로부터 지켜져 오던 습관이나 관습을 현재에서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받아들여지거나 인간이 꾸준히 발명, 발견 해온 생활습관을 받아들임으로써 항상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생활습관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것에 대한 점검, 평가 없이 그대로 답습되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역사는 올바른 것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전통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원주의에서는 이러한 전통에 대한 공격이 전통 파괴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른들은 항상 고리타분하고 젊은이들의 신선함만이 건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많이 팽배하고 있는 것도 거기에 대한 예이다. 감정적 태도의 재정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이러하다라고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것은 항상 개인차를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사랑은 밀착감을 느끼며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라는 식의 당연성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당연성은 과학적 증명이나 심리학적 고찰, 사회학적으로 재정의 되고 있다. 사랑은 뇌 호르몬의 분비에 불과하다 던지,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받아들이기 위한 눈가림이다 등으로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재정의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사랑한다’ 라는 고자 하는 사실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함을 비판적으로 이해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4)논의 합리성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이 그 자체로서 합리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이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인식적 합리성' '목적론적 합리성'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서로 연결시키기 위한 공동의 매개체 을 상정한다. 그것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에서 출현하는 ‘논의 합리성’이다. 논의 합리성의 매개 방식은 각각의 합리성들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반성적 태도에 있다. 즉, 인식적 합리성의 경우 인식하는 주체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 ‘목적론적 합리성’ 에서도 행위하는 주체는 자신의 합목적적 행위에 대해 반성적 거리를 취한다.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적 합리성’ 에서도 의사소통 행위자는 규범적 행위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이 반성적 거리 취하기는 곧 다른 논증참여자가 나의 견해나 행위의 타당성에 대해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 이것을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논쟁이란 문제가 되는 쟁점이나 결론에 대하여 타당성이나 의심이 가는 이유에 대해 서로 논의를 통해 상호 이해하게 되고 합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하이데거의 사회적,정치적 영향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지닌 쟁점이 있다고 하자. 한편에서 하이데거가 나찌 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이데거가 나찌 군복을 입고 찍힌 사진과 하이데거의 글에서 나찌를 선호하는 성격의 글을 제시함으로써 하이데거가 나찌주의자 였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다른 쪽은 민주적이거나 평등을 강조하는 성격을 지닌 하이데거의 글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거나 하이데거가 나찌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찍힌 것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 반대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논쟁한다’함은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개개인의 가치문제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인 것이다.2.다원주의의 분야별 논의1)문화 분야문화 다원주의는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분야의 다원화보다 더욱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문화 다원주의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다원주의는 이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이용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원주의를 선별적으로 이용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화 다원주의는 앞서 살펴본 특징상 모든 당위와 입장을 모두 해체시킴으로써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역설적으로 문화적으로 집단을 단결시키는 힘이 된다. 과거의 일정한 명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 흩어 졌다를 반복하게 될 것이고 그 블록화의 기준은 문화가 주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학자 헌팅턴의 저작인 ‘문명의 충돌’ 에 잘 나타나 있다.1980년대 말 공산 세계가 무너지면서 냉전 체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닌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고, 이에 대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상,종교,언어,역사,가치관,관습,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들은 부족, 민족 집단, 신앙 공동체, 국민,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탈냉전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국가군은 더 이상 냉전 시대의 세 블록이 아니라 세계의 일곱 내지 여덟 개에 이르는 주요 문명이다.) 냉전 시대에는 자유 세계, 공산권, 비동맹권(혹은 제 3세계)으로 세계를 구분했지만, 탈냉전시대에는 세계를럼 문화권간의 충돌은 더욱 심화되면서 현재부터 미래에 걸쳐 심각한 국제 문제로 대두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전쟁, 충돌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문화나 종교 등의 비합리적인 이유로 일어나는 전쟁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익 중심의 전쟁은 이익이 있는 범위에서만 진행되지만 문화 전쟁은 특별한 해결책 없이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치뤄지고 그 피해와 충돌의 끝은 예측을 불허한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에 대항하여 문화 다원주의는 더욱 더 기반을 공고히 해서 관용과 타자에 대한 인정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2)정치, 교육 분야다원주의는 기본적으로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상정해두고 수정하며 각자 자유로운 토론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2003년 한국에 참여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에서는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린 사회로의 지향은 정치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때까지 한국에서의 정치는 밀실정치로서 국민에게 항상 내세우는 명분은 따로 있고 핵심적인 결정은 소수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정치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켜줄 의무가 있고 솔직하게 말하는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대통령이 그럴 수 있느냐’라는 반응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참여를 지향하기 위해서 각종 토론을 활성화하고 권위를 배제하고 동등한 대화자 입장에서 참여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은 정부는 권력과 권위가 있어야하며 그것이 무너질 경우에는 국가기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참여를 위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성립시키려는 노력은 각종 이익단체, 정당등에 의하여 난관에 부딪혔다.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공개적으로 토론이 된다고 해도 대부분은 이렇다할 결론이 없이 상대방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한 채 끝나거나, 오히려 상대적 약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더욱 과격한 움직임으로 이어지.
서론본론Ⅰ. 미국 지배이데올로기의 사상적 배경1.앵글로 색슨 우월 주의와 명백한 운명 (manifest destiny)2.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군주론의 내용2) 마키아 벨리즘과 미국 사회Ⅱ. 미국내의 지배 이데올로기1. 법과 정의1) 시민은 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2) 시민불복종2. 경제정의 : 미국의 계급제도1) 미국의 세가지 계층2) 가난은 능력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3) 부의 올바른 분배3. 언론의 자유1) 헌법 수정 조항1조에 위배되는 법2) 국가 안보 > 자유3) 언론자유 쟁취4. 대의제 정치1) 흑인 해방 운동2)대의제 정치3) 평의회체제5. 공산주의와 반공주의1) 반공이 아닌 반공2) 공산주의의 비판목차계속Ⅲ. 미국의 세계 지배 이데올로기1. 전쟁1) 적에 대항한 전쟁2)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3) 반전의 표현2. 해외 원조1) 식량 원조의 실상2) 식량 원조는 또 하나의 미국 중심의 지배Ⅳ. 진정한 정의실현의 가능근거 탐구1.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1)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2) 전쟁의 유혹3) 폭력과 평화의 관계와 지향점2. 명분, 목적, 수단1) 명분과 목적, 수단의 불일치2) 올바른 목적과, 명분과 수단3. 정의가 실현된 사회는 가능할 것인가?Ⅴ.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1. 약자의 힘2. 시민 불복종1)대의제 민주주의와 시민불복종2) 시민불복종의 세계사3) 형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결론서론2003년도에 들어서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불과 작년까지 만해도 그저 일부의 운동세력과 지식인층에서만 존재하던 비판이 올해 들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미국을 비난한다. 오랫동안 수중에 잠겨서 드러나지 않은 실체가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사건을 통한 소파 개정을 위한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이것은 비단 시기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람들을 많은 수가 이번 계기를 빌어서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으로 대응하는 것이 해방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의 끝부분에 노랫말을 적어놓고 끝맺음을 하고 있다. "미덕은 폭력에 대항하여 일어난다/싸우러 가자. 전투는 빨리 진행되고 있다/이탈리아 사람의 마음속에서/그 폭력에 대항하는 미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2) 마키아 벨리즘과 미국 사회마키아 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군주는 어떻게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가' 에 대한 과정에서지배는 궁극적으로 백성을 이롭게 하기위해 생겨났다는 목적보다는 통치술을 강조함으로써근대에 이어 현대까지도 백성을 억압하는 지배를 합리화 시켜주는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미국 사회는 '군주국'을 표방하는 사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배사상에서는 부분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했다.첫째, 마키아벨리는 유토피아적인 꿈이나 낭만적인 희망 혹은 정의와 불의, 선과 악에 구애받기를 거부했다. 그는 현실정치를 주장하면서 '우리는 이루어져야할 것보다 이루어 진것에 더욱 집중을 해야한다'라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현실'은 현재 과학과 기술등 눈에 보이는 것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상이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구보다는 보이는 세계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사실이며 객관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표현으로서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현실이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우리는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정부 운영자와 일반 시민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분명히 다른 것이며 그것은 다른 목적에서 연유한다. 지배자는 국가의 영속과 그로 인한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는데 목적이 있고 각자의 시민들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이해한다. 지배자들은 효율적 지배를 위해 국가의 영속과 지배자들의 이익보존을 모두의 이해관계로 위장하게 된다.둘째, 마키아벨리는 무릇 군주는 사자와 여우 양자를 모두 닮아야 한다고 했다.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차원의 자원재분배가 이뤄져야한다. 결국 모든 경제와 정치와 정책, 사회 시스템 등은 국민에 의해서 운영되고 국민을 위해서 결정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정의 실현이라고 보았다.3. 언론의 자유1) 헌법 수정 조항1조에 위배되는 법헌법 수정조항 1조에 대한 고찰을 통해 진정으로 미국에서 정의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가? 헌법 수정조항 1조는"의회는 종교의 창시에 관한 법이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 또는 언론 혹은 출판의 자유나 사람들이 평화롭게 집회를 가질 권리,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이다.헌법에는 명시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는 이후 지배자들에 의해서 무시되고 그들의 통치에 효율성을 부가할 수 있는 법 조항들을 계속 통과시켰다. 그들은 '거주 외국인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외국인들을 경계하고 통제하였고 '치안방해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정부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서 법적으로 억압하고 감옥에 구금했다.2) 국가 안보 > 자유수정 조항 1조의 강력한 단어들은 전시 또는 준전시라는 소리에 묻혀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다. 국민들은 국가가 국가 안보에 위배되는 상황이 상정되면 어떠한 자유도 억압받고 침해받는 것에 대해서 참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 안보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는 현재에도 지배자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그들의 적 혹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항상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이러한 명분으로 전쟁을 반대하거나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을 퍼트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체포되었으며 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은 항상 탄압 받아 왔다. 결국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을 체포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지배자에게 대항하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을 축출하기 위해서 이용되었다.이러한 국가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운 지배체제의 유지하기 위해 법 조항 뿐만 아니라 경찰력까지 동원되었다. 비밀경찰은 국가 기밀이라는 말로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는지 알 하면 인도주의적인 전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만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3) 반전의 표현전쟁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애국심은 시대적 명령이 되고, 전쟁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반역자가 되어 침묵을 강요당하고 투옥 당한다. 전시상황은 비상상황으로 분류되어 어떠한 자유보다 국가안보를 중요시하게 된다. 이렇게 전제도 성립되지 않는 전쟁이 자유보다 인간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결과를 가져다주는가? 우리는 우리의 생명보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우리는 폭력사용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권리의 근거는 정의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폭력사용에 이용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강제 징집이나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우리가 전쟁을 저항하는 방법에는 폭력이 아닌 다른 대안적인 방법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전쟁은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반인륜적인 예에 속한다. 그 예로는 파업과 보이콧, 선전 등이 있으며 이것은 폭력보다 더 큰 힘으로 작동될 가능성을 가진다. 우리는 비폭력을 위한 대안운동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정의를 추구해야한다.2. 해외 원조1) 식량 원조의 실상미국은 해외의 평화와 저개발국가들의 기아극복을 위해서 식량 원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량지원은 강대국들의 저개발국을 돕고, 원조한다는 시선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들의 자급자족 경제를 저해하고 식량시장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식량자원은 한발, 전쟁, 천재지변 등 급박한 상태에서는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되는 식량지원은 오히려 식량자급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1977-82년의 식량지원은 세네갈과 감비아의 경우 전체인구의 1/4, 모리시우스와 소말리아의 경우 2/5, 탄자니아의 경우1/11, 방글라데시의 경우 1/6을 부양했다. 그러나 이 6년간에 이 지역에서 사실상 식량 부족은 없었다.식량지원은 대부분 '평화를 위한 식량'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의해 시행된다. 이 사업은 소위 미국의 은 나쁘고 평화는 좋다라는 가치를 역사 속에서 추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되고 우리는 평화를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역사 적에서 알 수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다.2. 명분, 목적, 수단1) 명분과 목적, 수단의 불일치사건/제도명분목적수단모든 전쟁자유, 평화국력 신장,힘의 견제등무력2차 세계 대전인종차별주의에 대항정복, 국력 신장전쟁히로시마 원폭전쟁의 종결국가위신강화,러시아 견제전쟁(원자폭탄투하)이태리의 에티오피아 침략로마제국의 영광 회복국가의 영광을 위해전쟁1차 세계 대전파시즘에 대항,유태인을 구함파시즘이 미국의 지배를 위협하므로전쟁이라크 전쟁후세인으로부터이라크국민 해방석유 이권 장악전쟁법제도정의피지배자들을 지배하기위해법FBI국민 보호, 불순분자 색출국민을 통제신상정보를 이용,미행, 도청등저자는 책 전체를 걸쳐서 미국의 지배계급의 명분, 목적, 수단의 불일치를 설명하고 비판하고 있다.(이러한 표의 구분은 책의 내용만을 임의적으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수 없이 존재하는 명분, 수단, 목적을 모두 다루지는 않았다.)명분은 지배계급이 어떠한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고히 내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국내외 여론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이뤄진다. 지배계급이 주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간을 위한 길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해 주리라는 약속을, 국외적으로는 전세계의 평화 혹은 어떠한 악으로부터 다른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러한 명분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 모두가 원하는 보편적인 정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은 수단을 통해서 지켜지지 못한다. 아니 당연히 지켜 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그것을 실현시킬 생각이 있어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할 뿐이지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목적은 지다.
{보 고 서* 목 차 *Ⅰ. 서론.......3Ⅱ. 중국의 전통 사상과 정서..... 51. 중국 전통 사상........52. 중국인의 정서와 특징..63. 중화세계의 순환사관과 일원적 세력균형..8Ⅲ. 중국의 대외 정책.............91. 중국의 전반적인 대외 정책..............102. 중국 경제 분야의 대외 정책............13Ⅳ.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 .......211. 중국과 한반도........212. 한중 수교 ...........223. 한중 교역현황........244. 한중 수교 후의 변화..295. 중국의 WTO가입문제와 우리와의 관계....30Ⅴ. 결론.......311. 중국내부의 어두운 그림자..............312.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323. 한국의 대응책 .......334. 앞으로 한중 경제 관계의 전망..........37인터뷰 ....요 요인이 될 수도 있다.중국인의 '만만디 기질'은 그들의 자연환경과 오랜 사회적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광할한 국토를 갖고 있는데다 옛날부터 봉건적 관습으로 인하여 사회적 유동과 지역적 이동이 어려웠고 이렇게 몇 천 년 동안 완만한 발전을 통해 온 소농경제와 봉건사회의 관습은 사람들에게 꾸물거리고, 소극적이고, 시간 관념이 부족한 많은 결점을 만들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의 문학자인 노신은 "중국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속도가 느리고 백살까지 살더라도 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고 개탄하였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욕속즉불달(欲速則不達)-빨리 하려고 덤비면 도달하지 못한다,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세 번 생각한 후에 행동하라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의 말을 되새기면서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신중히 처리하고 있으니, 우리는 중국에 대한 기대감이 앞서서 먼저 행동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다.4) 차부뚜어(差不多) : 낙천적 사고, 적당주의중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차부뚜어(差不多)'한 말을 자주 쓴다.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말하는 상황에 따라 "그저 그렇다", "비슷비슷하다", "보통이다" 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말이면서도 포괄적이고 함축성이 내포되어 있어서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내일까지 끝낼 수 있습니까?". "그 문제는 어려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보통 차부뚜어(差不多)라고 대답한다.그래서 호적은 일찍이「차불다 선생(差不多 先生)」이란 그의 작품에서 이렇게 결단성 없는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인 '차불다선생(差不多 先生)'은 매사에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十」와「天」자는 한 획 차이이므로 섞어 썼으며, 그가 급한 병에 걸려 하인이 불러온 의사는 일반 의사가 아니고 가축병을 고치는 수의사였는데 그에게는 똑같은 의사였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으며, 결국 죽게 되면서도 한다. 특히 상해 부근과 남부 만주지역은 상당히 발달되어 후에 모택동 시기의 공업화에 영향을 준다. 이시기가 모택동 시기에 영향을 준 것은 전쟁 후에 남은 산업시설이 아니라 근대적 부문에서 훈련받고 경험을 쌓은 노동자와 기업가, 그리고 근대적 제도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중국의 전통부문이 꾸준히 지속, 성장해 왔던 시기이다.2) 등소평 시대 이전의 경제발전 전략(1949∼1978)모택동 시대의 특징은 자력갱생원칙에 의한 발전전략이었던 반면에 등소평 시대는 대외개방을 기조로 하는 발전전략이었다. 50년대 초에 중국이 추구한 경제 발전 모델은 수입대체 전략에 입각한 스탈린식 경제 발전 모델이었다. 중국은 해방 후인 1950년대 초, 소련을 본 따 국영수출입공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외국무역에 대한 국가 통제와 보호정책을 일관해서 실행했다. 50년대부터 3년간에 걸친 국민경제의 부흥기에는 중앙인민정부의 무역부가 국내·대외 무역 양쪽을 일괄 지도 관리했다. 실제 거래에 있어서는 무역부에 속하는 중국수입공사가 대소련, 동유럽 무역을 관할하고 이윤은 전부 국가에 납부했다. 이와 별개인 중국수출입 공사는 자본주의국 및 기타 제국과의 무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역관리체제 아래서는 이미 경제발전에 따르는 수요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2년 5월에 들어와 대외무역부가 새로 설립되어 전국의 대외무역을 지도하는 동시에 통일관리하게 되었다.그러나 1차 5개년계획(1953-57)이후에 이러한 전략 대신에 자급자족형인 사회주의 동원체제방식에 입각한 경제 발전 모델이 도입되었다. 자력갱생이 발전 전략의 기본 원칙이 된 것이다. 이러한 원칙 아래 대약진운동{) 대약진운동은 과도하게 자원을 공업에 집중함으로써 산업간 특히 농공간 균형을 파괴하고 농업생산 기반을 와해시켰다. 중앙의 정책 결정자들이 과도하게 스탈린식으로 단기간에 중공업 기반구축을 추구함과 아울러 1957년에 추진한 부적절한 지방분권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 당시 농업생산격감 과 기근으로 인해 사천과 귀주에001년 상반기 국내총생산액은 4조 2,942억 위안으로 산업별로는 1차산업이 2.4%(경작지 축소 및 기후의 영향으로 곡식 생산량은 491만 톤 감소), 2차산업 9.7%, 3차산업 7%의 증가세를 보였다. 대외 무역총액은 1950년 11.3억불에서 1998년 3239억불로 늘어나 286배, 년평균 12.5%가 성장을 하였다. 무역 교역량은 1978년 세계 32위에서 1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중 수출액은 세계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외화보유액은 개혁개방초에는 8.4억불이었으나 1998년에는 1450억불로 세계2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상품의 내용도 1952년 농산물부산품 등 1차상품이 83.4%였으나 1998년의 상황은 전자제품, 경공업제품이 88.8%를 차지하고 1차상품은 11.2%로 낮아졌다.중국은 현재 수출을 주요 경제성장축으로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및 전세계 경제 침체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년에 이어 지속적인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이는 내수주도 경제모형이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한 수출부진 충격을 완화시켰기 때문 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정자산 투자가 전년 동기비 15.1% 증가하였으며 사회소비 품 판매액도 10.3% 증가하였다. 경제발전속도가 97년 이후 3년간의 둔화세에서 이처럼 다시 상승세로 반전한 것에 대해 중국 정부는 현 경제팀의 거시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제·경기 예측기관이 판강(樊綱), 모위스(茅于軾), 린이푸(林毅夫), 후안강(胡鞍鋼) 등 100명의 경제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75.8%) 경제학자들은 투자 확대, 수요 회복, 수출 증가, 물가 안정 등의 성과가 주로 중국 외적인 요소에 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자체적인 경기 추동력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것이다. 여하튼,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97년 이후 외환위기와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반면, 중국은 증가세가 둔화되긴 하였지만 7∼8%의 높은 성장률제 경제, 국제 분업 및 합작에 참여하여 중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접목을 실현시켜야 할 과정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매우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다. 한국은 일정 수준의 대외 투자능력, 선진 생산기술 및 기업 관리 방법과 공업화를 실현시킨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장점은 중국 경제 발전과 산업 구조 조정에 매우 필요한 경험인 것이다. 양국경제 발전의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한중 양국 기업간의 경제 관계에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고 양국경제 발전에 강력한 추진력으로 나타나고 있다.한중간의 관계는 자본 및 기술에 있어서 대 선진국가 의존도 감소라는 공동의 목표와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점차적인 증대 등의 상호 필요성과 발전 전략에 따라 협력을 확대하며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여 상호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2) 정치, 외교 분야한중 수교 후, 정치 외교 문제에 있어 양국 정부는 직접 혹은 간접적인 협력을 진행시켜 왔다. 양국이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 협력을 할 수 있는 것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긴장 상태 완화, 한반도 평화유지라는 점에서 정치 안정상의 공동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냉전 후의 각 국가 발전 과정 중 양국은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서의 복합 상호의존성을 증가하는데 공동인식을 갖고 있다.중국정부는 한국의 남북한 UN동시 가입 추진에 있어 건설적인 협력을 유지하였고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주도적 작용을 하였고, 향후 중국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정에 있어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써 사회제도가 같은 북한과 공식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양국의 경제 무역관계 등 증대시킴과 동시에 중국과의 정치 외교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대 북한 협상에 있어 일정한 대화창구를 확보하고 있다.또한 한국과 중국 양국은 모두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경계를 펴고 있으며 한국은 중국이 동북아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서방의 압력에 이다.
『 목 차 』Ⅰ. 들 어 가 면 서 ..Ⅱ. 본 론 1·서론ⅰ. 전 지구화, 전통, 불확실성ⅱ. 사회주의, 보수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ⅲ. 급진적 정치를 위한 분석틀ⅳ. 행위자의 문제Ⅲ. 본 론 2·제 7장. 적극적 복지, 빈곤, 그리고 삶의 가치ⅰ. 생산성 주의, 생산성ⅱ.복지국가에서 적극적 복지로ⅲ. 탈결핍사회의 복지ⅳ. 계급분할과 사회적 갈등ⅴ. 발생적 평등 모델Ⅳ. 본 론 3·제 8장. 생태학적 문제와 삶의 정치ⅰ. 인위적 위기사회ⅱ.생태적 정치ⅲ. 삶의 정치ⅳ. 심층생태학(deep ecology)ⅴ. 생태사회주의Ⅴ. 결론Ⅰ. 들어가면서..현대세계는 전지구화(globalization), 탈전통적 질서(post-traditional order), 인위적 불확실성(manufactured uncertainty), 인위적 위험(manufactured risk)의 세계이다. 이 사회는 원거리 조정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사회적 성찰성이 확대되는 세계이며 '영리한 인간들'의 세계이다. 많은 영역에서 정통적이고 순수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과학'과 '전문가'들은 정통적 의미에서의 권위를 상실한다. '과학'과 '전문성'은 대화와 비판에 열려 있다. 따라서 수많은 이견들이 개방되는 가운데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위험의 문제는 단순히 억제되거나 격리되거나 통제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현대사회를 분석하고 그 문제에 대처할 정치모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그는 정통 정치학 모델들을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사회주의는 과거 청산을 목적으로 하고 사회가 진보할 것을 믿는다는 점에서 계몽주의의 일환이다. 사회주의는 사이버네틱 모델을 취하고 근대적인 중앙통제를 전제하는 오류를 범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옹호하지만 보수주의와 유착되어 보수주의적 가치 보존을 지향하는 내적 모순을 안고 있다. 그리고 보수주의는 과거와 집단을 중시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되 전통적 방식으로 보존하려 한다. 하지만 인위적 불확신성과 인위적 위험은 과거 계몽주의적 통제 지post-trditional society)의 등장 배경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근본주의는 전통적 방식으로 수호된 전통에 다름 아니다. 근본주의는 '전통적 의미에 합치되는 의미에서의 전통'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근본주의는 결과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공식적인 진리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때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수호의 양식이다. 전통에서 중요한 점은 사실상 전통은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전통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결정적으로 하는 것으로 되어 가는 사회적 삶의 영역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종교의 근본주의뿐 아니라 인종, 가족, 성의 근본주의가 나타나고 있다.오늘날 전통의 변형은 전통적 방식으로 이해되는 자연의 소멸과 연관되어 있다. 인위적 불확실성은 의사결정과정에 개방되어 있는 삶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게 된다.현대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세 번째 기본적 변동은 사회적 성찰성(social reflexivity)의 확장이다. 사회적 성찰성이란 말은 미리 주어진 행동양식보다는 정보에 의해 점차 많은 것이 구성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미래 지향적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우리가 전통과 자연이 힘을 잃어버린 뒤에 살아갈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 세계가 행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찰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탈전통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의 조건과 연관된 모든 종류의 정보를 걸러 내야만 하고 그러한 여과과정에 근거하여 행위 해야 한다. 그것은 행위에 적용되면서 그 실재가 실제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회적 성찰성의 증대는 인위적 불확실성의 주요 근원인, 지식과 통제간의 탈구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다.성찰성이 심화된 세계는 영리한 인간들의 세계이다. 이전보다 더 지성적인 사회가 아닌, 전문가가 생산한 정보도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상의 행위과정에서 해석되고 운영되는 사회를 말한다. 또한 사회적 성찰성의 발전은 서로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전 지구적 상호작용 체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연대의 기원에 있다.가족적 삶의 맥락에서 능동적 신뢰는 상호간의 책임감(commitment)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책임감이 갖는 의미는 지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의무감을 인지하고 있다.(2) 우리는 정치적 질서의 공식적 영역과 비공식적 영역 모두에서 삶의 정치(life politics)라고 부르는 개념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좌파의 해방의 정치는 삶의 기회의 정치이며 행위의 자율성을 창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삶의 정치는 삶의 기회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스타일의 정치이다. 그것은 과거에는 자연과 전통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이제는 개인적·집합적 인간인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과 투쟁에 관심을 갖는다.(3) 사회적 성찰성의 일반화와 관련하여, 능동적 신뢰는 발생적 정치(generative politics)의 개념을 포함한다. 발생적 정치는 사회 전반에서 국가를 성찰적 동원과 연결시키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발생적 정치는 개인과 집단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 관심과 목표라는 맥락에서 개인과 집단이 무슨 일인가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정치이다.발생적 정치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를 지지하지만 이전처럼 국가와 시장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광범한 사회질서 속에서 개인과 집단이 취할 삶의 정치적 인사결정에 대해 물질적 조건, 조직적 틀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발생적 정치는 정부 제도에서의 또는 관련 기관에서의 능동적 신뢰의 형성에 의존한다.그렇다고 해서 발생적 정치가 만병 통치약이라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고, 어느 정도는 전체 국민들이 국가나 정부 기관과 동일한 '담론적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요한 정치적 딜레마와 갈등들이 새로이 생겨나게 된다.(4) 전 지구화하고 성찰적인 사회질서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맹점은 좀더 급진적 형태의 민주화가익을 추구하는 노동만을 노동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생산성 주의의 사고방식은 탈 결핍사회로의 이행 과정과 어긋나는 발상이다. 우리는 지불노동에 투하되는 시간의 감소와 가족 유형의 변화가 생산성 주의로부터 분리되어 생산성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해방적으로 될 수 있다. 생산성의 향상은 노동일을 단축시킨다. 이것은 노동 생산성은 시간의 투자로 인해 생겨난 보상이다. 테일러 주의에 따르면 과학적 경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의 기계화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의 생산성 향상은 한계를 가진다. 탈 결핍사회에서는 생산체계에서의 자율성과 유연성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현재는 노동의 생산성만큼이나 자본과 물적 자원의 생산성이 강조되고 있다. 노동의 생산성과 자본의 생산성은 자율성과 하의상달식 의사결정에 부합한다. 생산성의 경제적 지표만큼 사회적 지표의 중요성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경제적 능력의 측정만큼 개인의 독립적 존재로서의 자율성을 갖는 것을 중요시 여겨 져야한다.ⅱ. 복지국가에서 적극적 복지로복지국가란 일종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위기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안정과 위험의 균형을 맞출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문제가 제기 되어야하는데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복기국가나 기타 사회보장 제도는 한번도 우리가 생각한 만큼의 능역이나 보호성을 보여준 적이없다. 복지국가는 항상 우연한 시건을 처리하여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탈 결핍사회로의 이동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황동적이고 성찰적인 분위기의 환경으로 이동해왔다. 결국 복지제도는 복지 의존성, 복지 제도의 비효율적 결과들이 모두 현실로 나타났고 현재 복지 시스템에서는 성찰성이 강한 개인들을 적절하게 보호할 수 없다. 즉 복지 국가의 문제는 제정적 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관리의 문제 인 것이다." 우리는 희생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 현재는 권력의 시점이다. 현재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부정적 믿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처한다면 위험은 위험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행복의 추구는 능력과 기술 발휘의 즐거움이 있는 삶의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행복의 두 가지 적은 무관심이나 경멸로 빠지게 되는 도덕적 타락과 강제성이다.외부의 위험보다 인위적 위험을 지향하는 적극적 복지체계는 자기 목적적 자아를 양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기 목적적 자아는 자기 존중에서 나오는 내적 확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본적 신뢰에 기반한 존재론적 안전감으로 인해 사회적 차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아이다." 자아를 걱정하기 보다는 자아와 상호작용 하는데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은 역설적인 결과를 얻는다. 그녀는 더 이상 고립된 개인으로 느끼지 않으며 그녀의 자아는 더욱 강해진다. 자기 목적적 개인은 자신이 속해있는 체계 내에 정신적 에너지를 투여함으로써 개인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한다. 인간과 체계의 이러한 결함 때문에 자아는 복합성 수중이 높은 곳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는 결정과 훈련을 요한다. 삶에 대한 쾌락주의적이고 열락에 빠진 접근 방식의 경과가 최적의 경험은 아니다. 우리는 능력을 신장시킬 기술을 개발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현재보다 더 나아지게 한다. "안전성, 자기 존중, 자기 실현은 빈곤 층 뿐 만 아니라 부유층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고 이것은 생산성 주의에 의해 위태로워진다. 의존성 탈피는 탈 결핍사회에서 일반적인 목적이 된다. 복지 의존성의 극복은 생산성 주의에 대한 의존성 극복을 의미한다. 현재의 불평등은 더욱 확장되어 상위 층은 그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고유한 요새를 만들고 하층계급은 불안에 대한 전통적 방법의 의존은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발생적 평등 혹은 평등화 모델은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새로운 협약의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이것은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기반한 노력의 협상이 될 것이고 발전이 계속해서 초래한 해악들에 대처할 상호 책임성의 수용이 동력이 될 것이다.집합적 해악들에 대처하는 상호 책임성은 인위적 위험의 중요성이 증가함으로써다.
Thoreau가 어느 농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집 가장은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고 가난이 지겹다. 양복 한 벌을 장만하려면 한달 내내 일해야 하고 하다못해 버터를 사 먹기도 힘들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Thoreau가 말했다.『버터를 먹지 않으면 훨씬 여유로울 텐데요』21세기를 맞아 세상이 더욱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질 거라는 황금빛 미래를 꿈꿔오던 사람들도 대기업이 무너지고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다니던 직장에서 쫑겨나는 현실 앞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들이 만든 사회 안에서 주객이 전도 된 채 자신들의 방향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 주의에서 흔히 일어나는 물질문명사회의 병폐인 것이다.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것은 비단 한 두 해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국제 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전후해 실직자 등이 농촌을 찾는 귀농 현상이 두드러졌고 삭막한 도시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적인 생활 형태를 취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각종 환경 마케팅을 실시하였고 출판업계나 각종 건강 식품업계에서도 자연주의를 표방한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발빠른 걸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방에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최근 종영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연도 동양사상과 자연주의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Henry David Thoreau는 고향의 월든 호숫가에 혼자 힘으로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자급자족 생활을 한사람이다. 하루 두 세시간 농사를 짓고 옷은 입던 것을 깨끗하게 빨아 입었으며 농사지은 것으로 간소하게 식사를 했다. 대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자연을 관찰하며 보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Thoreau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들을 억지로 해가면서 명예나 지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에서 나는 열매를 먹으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큰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Thoreau의 자연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얼만큼의 효용성을 가질까?심리학자 마슬로(Abraham Maslow)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욕구의 계층 질서 곧 욕구단계는 5단계로 나뉜다. 가장 하위에 놓인 욕구가 생리적 욕구인데 배고픔과 목마름 등을 해소하려는 욕구이다. 그 다음이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 또 더 낮은 차원의 욕구가 채워지면, 더 높은 차원의 욕구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생활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 충족은 가능하나 더 상위의 욕구 그러니까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욕구들은 모조리 무시하는 것이 된다.사회, 국가가 왜 생겨났을까? 그것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임은 분명하다. 사람이 기본적 욕구의 충족과 함께 더 상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회와 국가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활과 국가의 발생은 필연적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당장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킨다거나 더 나아가서 무정부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이다.또 다른 예로 사람들이 이미 문명의 혜택을 본 후에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전기와 컴퓨터 그리고 전화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음에 행복함을 느낄까 반문해보게 된다. 실제로 귀농현상이Thoreau가 말하는 자연주의에는 태초에 인간이 자연적인 권리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 자유를 무제한으로 행사하고 향유한 자연의 상태가 있었다고 하는 가정이 성립된다. 그리하여 이 가정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우리가 돌아가고자 하는 자연은 어떤 모습이며,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만약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이제부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자연의 삶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Thoreau의 주장은 물질문명의 사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일이 지만 인간의 기본욕구와 물질문명의 발달 형태로 봤을 때는 너무 극단적인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그렇다면 지금 현대사회에서 Thoreau의 자연주의는 어떤 식으로 해석 될 수 있을까?우선 Thoreau의 검소한 생활과 친 환경 적인 태도를 받아들여야한다. 환경을 지키자는 명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사업들은 너무나도 반환경적이다. 그것은 그 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주체들은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당장 눈앞에 이익을 위해 사업을 강행하는 case to case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경우에도 멀리 내다봤을 때는 환경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지만 당장 2여 년간 중단되었던 공사의 적자문제나 공사후의 이익 그리고 대 공사가 진행되면서 얻을 수 있는 고용확장과 지역 경제 개발 등을 이유로 환경 보호론자와 정부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으로 논의 되어야할 인간의 생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넓게 봤을 때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환경단체를 만들고 끊임없이 환경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까이 우리 학교에서 본다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환경보호 단체 미추21 에서는 쓰레기 분리 수거 등 각종 친 환경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최근 숲을 깎고 정보센터를 만들려는 본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물푸레 언덕 지키기 서명운동 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발전소 건설 반대 지역 등 반환경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찾아가 그 실태를 직접보고 또 같이 환경 지키기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현장활동이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렇듯 국민들의 자발적으로 친 환경적인 사고를 가지고 환경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