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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학] 도서관 사례조사 평가B괜찮아요
    1. 서 론도서관의 3 대 요소는 직원 ,자료 ,시설이다 .흔히 도서관의 3 대 요소를 말할때 직원 ,자료 ,시설의 순서로 나열하는 것은 3 대 요소 중에서도 중요성이 높은 순서를 앞에 둔 의도이다 .그런데 3 대 요소의 하나인 시설은 나머지 요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서관 관계자들의 관심에서 가장 먼 요소인 듯 하다.일례로 문헌정보학 관련 논문을 살펴보더라도 직원이나 자료 ,이용자에 대한 논문은 부지기수이나 시설을 다룬 논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도서관 시설의 핵심적인 부분인 도서관 건축만 보더라도 이에 관한 연구는 문헌정보학보다 오히려 건축학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물론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부분들은 건축학의 영역임에 틀림없으나 ,도서관 건축계획에 있어 기능적 영역들은 반드시 문헌정보학에서 지원되어야 할 내용이다 .도서관 건축에 대한 도서관인들의 관심이 부족한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의 이유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전문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과 같이 규모가 작은 도서관은 독립 건물로 존재하지 않고 모기관의 건물의 일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둘째 ,독립된 건물인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의건축은 지금까지 도서관의 건축이 도서관전문가나 실무 사서가 아닌 도서관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행정진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학도서관의 건축계획에서는 종종 실무 사서의 참여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대학 본부의 시설과나 자문교수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공도서관은 더욱 열악하다. 운영주체인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자치단체의 행정진들의 준비에 의해 도서관 건물이 먼저 세워지고 ,심한 경우 자료까지 채워진 후에서야 사서들이 채용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렇게 되다보니 도서관 건물의겉모습은 그럴싸하나 내부가 도서관 활동에 전혀 적합하지 않게 배치되기도한다 .이를테면 도서관의 본질적인 기능에 부합하지 않는 일반열람실이 도서관의 중심부에 배치되고 그 공간면적도 비대하게 배분되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최근에 지어진 부산여자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의 설계에서부터 완공된후의 기본계획 및 평면계획, 세부계획을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조금이나마 향후 도서관 건축계획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2. 본 론시설 현황- 대지 위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74- 161 번지 외 95 필지- 지역 지구 :자연녹지지역- 용도 :교육연구시설- 연면적 : 5,796.04 ㎡- 규모 :지하 1 층 ,지상 5 층- 최고 높이 : 23.80m-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외장 :화강석 버너구이, 커튼월출입구와 배치- 배치 계획①공간구성은 도서관 업무 및 자료이용에 효율적이고 ,전반적 운영에 있어 경제성이 고려되어야 한다.②자료이용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용면적 (경사로 ,계단 ,복도 ,로비 ,화장실 등 )의 면적을 최소화하되 ,공용면적이 갑갑한 느낌을 주지 않아야 한다.③출입자가 많은 1층 주 출입구에는 학구적인 감흥을 유발시킬 수 있는 분위기로 적절한 면적의 중앙로비를 둔다 .적절한 면적이라 함은 건물면적의 손실과 로비로서의 기능의 반비례를 고려하여야 한다.④평면계획에서 중점은 개인학습공간인 자유열람실과 도서관 본연의 기능인 자료실의 배치를 구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형레벨의 자연환경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출입구를 각각 지하 1 층과 지상 1 층으로 분리하였다 . 또한 도서관과 기타 기관 (전자계산소 및 문헌정보과 )의 동선을 분리하였다.⑤단면계획으로는 자료반납의 편의를 위하여 대출자료실을 1,2 층에 두고 ,자료의 관외대출이 불가능한 참고자료실과 연속간행물실을 3,4 층에 두되 단행본 성격이 있는 참고자료실을 3층에배치하였다. 이용자들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사무공간과 이용 충성도 (동선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를 견디고 찾아가는정도 )가 강한 멀티미디어실은 최상층인 5 층에 배치하였다.⑥각 층의 용도 및 각실의 배치는 다음과 같이 한다.층 별각 층 별 용 도지하1층어린이 도서관, 소극장 MALIC Hall, 포켓볼 Nice,노래방 Harmony, 베이커리 Cafe Gauto, 복사실1대출자료실1, Gallery MALIC, 가방보관실, 자유열람실2대출자료실2, 교수열람실, 브라우징룸, 자유열람실3참고자료실, 만화자료실, 스페셜컬렉션, 네일아트,국제회의장 Coral Room, 음료휴게코너4연속간행물실, 茶자료실, 스터디룸1~4, 전자계산소 시스템실5멀티미디어실, 수서정리과, 보존서고, 기자재보관실, 도서관장실, 전자계산소사무실,전사계산소장실옥상MALIC Park⑦평면배치⑧출입구 배치-도서관으로 진입할수 있는 출입구는 4군데가 있고, 출입구 위치와 모습은 아래 도면, 사진과 같다. 동선(이용자, 자료, 관원)①건물의 수직 주동선은 경사로 (램프 )로 한다 .계단을 이용하는 데 따른 피로도를 줄이고 장애인의 편의 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다 .② 건물의 1 층 주 출입구를 두곳으로 분리한다. ( 도서관이용자와 관원의 동선을 분리)③건물의 1,3 층은 BDS(Book Detection System;자료분실방지시스템 ) 2 기를 두어 반드시 이용자의 가방 을 가방보관실에 보관하고 BDS 를 통과한 후 자료실 내로 진입하게한다. 2,4 층은 1,3 층 출입문 통과 후 보조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④1,2,3,4 층 자료실에는 주 출입문을 두어 BDS 가 설치된 1,3 층은 출입문을 개방한다 . 2,4 층도 유사시 출입이 가능하도록 1,3 층과 동일한 규모의 출입문을 설치하되 평시에는 폐문을 유지한다 .⑤BDS 를 통과한 후에는 1- 4 층 자료실간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실내에 개방형 보조계단을 각 실의 안 내카운터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둔다 .⑥화장실은 BDS 영역 밖에 둔다 .⑦지하 어린이도서관은 1 층 주 출입구와 지하출입구에서 BDS 를 통과하지 않고 출입할 수 있어야 하며 도서관 휴관일에는 지하출입구를 통해 어린이도서관을 이용할 수있도록 1 층과 지하 자유열람실 사이 , 자유열람실과 지하의 기타 시설물 사이에 개폐장치를 둔다. (어린이도서관이용자와 동선을 분리시킨다)⑧건물외부에서 탑승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투명 (누드 )엘리베이터를 건물에 설치한다 .엘리베이터가 순 간적인 고장으로 멈출 경우 외부에서 고장 사실을 즉각 파악하여 탑승자의 공포감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며 ,부수적으로는 엘리베이터 탑승시 외부 풍경의 조망을 제공한다 .⑨ 동선계획-지하1층< 주요 이동 동선> -1층-< 이용자동선, 가방미소지자동선, 관원 및 자료 이동동선> 1층 부 출입문은 관원 및 자료의 이동 동선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도서관의 휴무일날 자유 열람실을 이용하는 이용자를 위하여 출입문 좌측으로 긴 복도를 내어 자유열람실을 이용할수 있게 하였다. 1층에는 2개의 자유열람실과 갤러리한곳, 대출자료실1이 배치되어 있다. 자유열람실은 도서관 휴무일에도 이 용할수 있도록 자유열람실로 접근할수 있는 출입구를 2곳을 두었으며 그리고 학교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들어올 수 있는 도서관 뒤쪽의 출입구에서도 1층으로 바로 들어올수 있는 출입구를 두어 어느 방향에서도 접근하기 쉽도록 동선계획과 출입구 배치가 되어있다.1층에 위치한 대출자료실로 진입하기 전에 가방보관실에서 가방을 보관한뒤 자료실에 들어갈수있도록 되어 있으며 대출자료실 구조는 BDS 구간을 지나고 나면 오른쪽으로는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좌측으로는 서적들이 배치를 하고 있으므며 2층으로 이동할수 있는 계단이 대출 자료실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상층으로 이동함에 있어 편리함을 도모하고 있다.-2층-< 이용자 동선> 2층으로 이동하는 동선은 주로 1층 대출자료실에 설치되어 있는 내부계단을 통해서 이지만 도서관의 운영 상 2층 출입문을 개방 할때에는 1층로비에서 램프를 통해 2층으로 이동할수 있다. 그리고 1층의 부출입문 을 통과후 관원 및 자료의 이동동선으로 이용되는 수직 이동경로인 계단을 통해서도 휴일 및 도서관 휴무 날에는 자유열람실 이용을 할때에 이용할수 있도록 되어있다.-3층-< 이용자 동선> 국제 회의장의 위치를 도서관 이용자의 동선과 겹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관원 및 자료 이동동선으로 쓰 이고 있는 1층 부출입문을 통해 올라오는 계단 쪽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할수 있게 동선구조를 사용하였다.-4층-< 이용자 동선, 관원 및 자료이동 동선>
    공학/기술| 2003.09.26| 21페이지| 1,000원| 조회(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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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백과 두보 평가A좋아요
    중국 당대의 최고의 시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두보와 이백을 말할 것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 다양성과 창조성 등이 가장 뛰어났다고 볼 수 있는 당대에서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이백과 두보는 중국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것이다.이 두사람은 같은 시대의 시인이면서 누구의 시가 더 뛰어난지를 가릴 수 없을 많큼 시의 최고봉을 누리며 이백을 시의 시선(詩仙), 즉 시의 신선이라 불렀고 두보를 시의 시성(詩聖),즉 시의 성인이라 받들어 칭하였다. 그러므로 두보와 이백의 시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그 차이점을 살펴봄으로써 두 시인의 시 세계를 더 잘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두보는 온유하고 돈후한 성격을 지닌 유가적 인물이라 한다면 이백은 낭만파의 기재로서 호방하고 거리낌없는 성격을 지닌 도가적 인물이라 할 수있다. 이처럼 두 시인의 성격이 다르듯 그들의 시또한 많은 차이점이 있다.이백은 자신의 감정과 낭만을 스스럼없이 노래한 개인주의 시인인 반면 두보는 사회와 민중을 노래한 애국시인으로 간주되었고, 두보는 인생과 사회에 관심을 기울인 데 비해 이백은 자연과 술을 사랑하면서 절구(絶句)에 뛰어났다. 그러나 두보 또한 이백과 마찬가지로 도교에 심취하여 도사를 찾아다녔고 협객을 좋아하여 술을 즐겼으며, 이백도 사회와 백성을 걱정하는 무수히 많은 사회시를 남겨, 그 차이점 못지 않게 공통점도 많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이백과 두보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1. 이백먼저 이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백(701~762)은 字가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靑蓮)이라 했으며, 스스로 취선옹(醉仙翁), 광인(狂人)이라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시선(詩仙)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는 무수한 중국시인 가운데 두보와 더불어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천재시인으로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西縣]에 살았으며,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 ·남릉(南陵:安徽省) 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 ·원단구(元丹邱) ·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세상을 홀로 떠다니던 그는 40여세에 즈음하여 잠시 관직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다시 방랑길에 접어들었다. 바로 이때 그는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 44살, 33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아주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나 당의 역사는 물론 중국사의 향방을 바꾸어 놓은 安綠山(안록산)의 난(755-763)에 관여하여 형벌을 받게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때 그는 다시 유랑의 길에 올라, 마침내 762년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詩仙(시선)」이라 불리는 이백은 생애를 거의 방랑길에서 보냈으며, 주로 낭만적인 성향의 시를 1천 수 이상 남겼다. 그의 시는 대개 시풍이 호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 사용이 명쾌했으며, 그 사상적인 기반은 도교였다. 비록 낭만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당시의 귀족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짙게 담겨져 있다.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이백은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여,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이백은 천재시인이었으며, 실각한 정객이었고 사람을 칼로 찌르기까지 했던 협객이기도 하였고, 가정에선 무책임한 남편이요, 아버지였고 사회에선 권력자에게 오만하여, 재주를 풀지도 못하고 저버린 사람이다. 또한 달의 친구였고 술속의 신선이었던 사람이다. 기이한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행동, 유교적 세계관에 대한 과감한 도전, 이단아적인 기질이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세상안에 살았던 시인이라 평할 수 있다.즉,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백의 시세계는 도가적 경향이 강하였으나 정치적 포부도 대단하였고, 공명심도 강렬해 유교적 바탕도 가지고 있었으며, 호방한 성격에서 우러나는 낭만주의 시풍이 특색이다. 서정성이 뛰어나 논리성이나 체계성보다는 감각과 직관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풍류를 즐겨 술과 달을 소재로 지은 시가 많고 소녀의 염원을 노래한 것 또한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이 때문에 퇴폐적이고 쾌락주의적 면모가 풍긴다는 평가도 있다.2. 두보이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보(712~770)는 이백과는 다른 경향을 지닌 시인이었다. 이백이 쁨을 드높이 노래했다면, 두보는 인간의 고뇌에 깊이 침잠하여 시대적 아픔을 깊은 울림으로 노래했다. 두보는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으로 字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으로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본적은 후 베이성[湖北省]의 샹양[襄陽]이지만, 허난성[河南省]의 궁현[鞏縣]에서 태어났다. 먼 조상 은 진대(晉代)의 위인 두예(杜預)이고, 조부는 초당기(初唐期)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이다. 그는 거의 관직에 기웃거리지 않고 일생을 가난과 방랑 속에서 보내며 약 1천4백수에 달하는 그의 시는 강한 사회성을 띠고 있었다.즉 부패한 사회와 비참한 현실, 불합리한 윤리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국가와 민중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그대로 노출시겼던 것이다. 특히 그는 시를 통해 안록산의 난 동안 전화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의 고통을 대변했다. 또한 이백이 현실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주력했다면, 두보는 보다 현실적인 소재를 보다 현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대조적인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시인은 서로 끈끈한 교분을 지니면서 지냈다.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된 지 1년 만에 탈출하여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갔으므로, 그 공에 의하여 좌습유(左拾遺)의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관군이 장안을 회복하자, 돌아와 조정에 출사(出仕)하였으나 1년 만에 화저우[華州]의 지방관으로 좌천되었으며, 그것도 1년 만에 기내(畿內) 일대의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간쑤성[甘肅省]의 친저우[秦州] ·퉁구[同谷]를 거쳐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에 정착하여 시외의 완화계(浣花溪)에다 초당을 세웠다. 이것이 곧 완화초당(浣花草堂)이다.일시적으로는 지방 군벌의 내란 때문에 동쓰촨[東四川]의 쯔저우[梓州] ·랑저우[잗州]로 피난을 한 일도 있었으나, 전후 수년 동안에 걸친 초당에서의 생활은막료(幕僚)로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이로 인해 두공부(杜工部)라고 불리게 되었다. 54세 때, 귀향할 뜻을 품고 청두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하행하여 쓰촨성 동단(東端)의 쿠이저우[夔州]의 협곡에 이르러, 여기서 2년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협곡에서 나와, 이후 2년간 후베이·후난의 수상(水上)에서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둥팅호[洞庭湖]에서 5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평생 가난과 신병(身病)에 시달렸던 두보는 장안(長安)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였을 때 굶어죽은 어린 아들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고 또한 걸식을 했을 정도로 가난에 찌들었지만, 전란(戰亂)을 통해 일반 백성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조국 산천을 방랑하며 아름다운 산하(山河)와 고통스런 현실 사이에서 생각의 깊이와 넓이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두보(杜甫)의 시는 이백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다. 이백이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라면 두보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두보의 시 세계는 전반적으로 보아 아무래도 암울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의 작품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아(餓)--배고픔, 반(飯)--음식, 밥, 육(肉)--고기, 포(飽)--포식...... 이런 글자를 많이 사용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가난에 시달렸고 그러한 가난과 고통 그리고 실의(失意)에 대한 반발로 술을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이라면 이태백을 떠올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러나 두보의 작품에도 역시 주(酒)자가 예상외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술을 일컬어 고민을 없애주는 약이라 했거늘 이런 사실로도 두보의 침울한 심적 세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두보의 작품에 암울한 색채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는 까닭은 그의 내면적인 감정과 사상이 현실과는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국과 동포, 가족과 형제 친지는 물론 고국 산천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지극히 사랑했던 두보로다.
    인문/어학| 2003.06.03| 5페이지| 1,000원| 조회(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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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평가A+최고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 책은 읽는 내내 콧등이 시리고 마음이 저린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언제 부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게 된 한 가정에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는 가족들에게 이제껏 잊고 살아왔던 가족의 소중함을 되찾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몇 년전에 읽었던 소설 아버지 와 비슷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이 책은 전체적 내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과는 또 다른 감동과 슬픔, 사랑등을 느낄 수가 있었다.우리네 어머니들처럼 한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시어머니, 남편, 자식들만을 생각하는 어머니 김인희 의 모습은 미련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사랑으로 비춰졌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 어머니의 자화상 이기도 하다.이런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과 삶을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의 진부한 소설로 느껴 질 수도 있으나 내용 중간중간 우리 일상속의 어머니의 모습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고 가까이 있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채 그 소중함을 잃은 후 비로소 후회한다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짚을수 있기에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지루함과 식상함이 아닌 감동을 주는 것이다.진정한 의미의 문학은 교훈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이 잘 조화 되어야 한다고 했던가...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을 때 책속에 동화 되어 함께 등장인물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감동으로 표현되는 재미와, 읽고난 후에 참된 가족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 해보게 만들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교훈적 역할도 함께 하고 있으므로 참다운 문학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 책에는 몇가지 방식의 사랑이 나타난다.먼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랑..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시대가 변하고 흘러도 그리 평판치만은 않은 관계라 할 수 있다. 시집온 이후에는 두 눈 시퍼렇게 뜬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나이가 들어서는 정신을 추스르지 못한 채 노망으로 며느리만을 의지하게 되는 시어머니지만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며느리..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욕을 하며 행패 부리는 일이 일상적이지만 정작 이런 시어머니가 가장 의지하고 믿는 것은 며느리이고 그런 다툼속에서 이 둘은 더 이상 고부관계가 아니라 엄마와 딸,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버린 것이다.이것은 얼마전에 본 영화 정 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매서운 시집살이를 시키시던 시어머니께서 나중에 남편에 다른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오자 내 며느리는 너밖에 없다 며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며느리에 대한 사랑과 그보다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시어머니에게는 더 이상 인희는 며느리가 아닌 딸로써 존재 하는 것이다. 또 책 내용 중 후반부에서 자신이 죽은 이후의 시어머니를 걱정하며 이불로 눌러서 죽게 하려 한 며느리의 모습은 살인의 모습이 아닌 진정으로 시어머니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요즘은 시부모뿐만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부모마저 늙고 병들면 버리거나 학대하는 일이 많아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신 고려장 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변해버린 이 사회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하지만 우선 이렇게 말하는 나부터도 병든 할머니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사실이다. 거의 10년동안 할머니께선 중풍으로 누워만 계시는데 처음엔 자주 찾아뵈서 말벗도 해드리고 소변도 받아드리고 했으나 시간이 점점 흐르고 누워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금은 겨우 인사만 드린채 바쁘다는 핑계로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런 나이기에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적이고 눈물이 났던 장면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과 대화에서였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몸을 씻겨드리며, 나 가거든 혀를 깨물어서라도 얼른 따라 오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피가 섞인 내 할머니조차 외면하는 나인데 나중에 나의 시어머니께서 병으로 누워 계신다면 난 과연 어떻게 할까... 많은 반성을 해본다.다음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들 수 있다.부모는 자식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지만 자식들은 그 사랑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가까이 있는 것 일수록 그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처럼 우린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긴다. 특히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은 개인주의 사상에 젖어 부모나 형제, 가정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에게도 평소에 잘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랑은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다하지 못한 자식의 도리를 후회하며 조금더 살아주시길 바라는 모습처럼 정수의 모습처럼 우리 마음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기다려 주지않는다 라는 말을 뼈져리게 실감하고 나는 나중에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그리고 정박사가 그의 노모에게 모질게 대하고 나서는 금방 돌아서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공감을 하였다.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허물까지도 감싸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님이기에 우리는 자주 그분들에게 맘과는 달리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아서면 1초도 안되서 후회하는 것이 자식들의 마음일 것이다.또 다른 사랑을 말하자면 부부간의 사랑이다.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특별히 확인 하려 하지 않고 단지 늘 곁에 있는 다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사이.. 사랑보다는 정으로 살아간다는 그것이 부부가 아닐까 싶다.김인희와 정박사가 그러하고 근덕과 그의 처가 그러하다.늘 무뚝뚝하고 물음에 잘 대답도 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할 뿐 많은 부분 아내에게 기대어 살았왔고 힘든 순간 진심으로 아내를 위하는 것이 정박사의 모습이자 바로 우리 한국의 남편의 모습일 거란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병든 아내를 구해보겠다고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내가 소망하던 집을 곱게 단장하고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정박사, 젊을때는 바쁜 남편으로 외롭게 지내고 나이가 들어서도 밖에서 남편과 제대로 외식 한번 해 본적 없지만 마지막을 남편과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인희, 노름과 폭력으로 아내를 못살게 굴지만 자신에게 돈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아내에게 보여주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칠고 투박한 사랑의 근덕, 그런 남편을 끝까지 믿어주며 그 곁을 지켜주고자 하는 우직한 사랑을 가진 근덕 처... 이 모두에게서 평범한 부부의 사랑과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독후감/창작| 2002.12.07| 3페이지| 1,000원| 조회(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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