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I. 서언-연구목적II. 본론1. 서거정의 생애와 문학관2.《태평한화골계전》저작동기3.《태평한화골계전》소재를 통해 본 작가 인식4.《태평한화골계전》의 이야기 방식과 웃음의 원리III. 결언-정리 및 요약I 서 언1.연구 목적四佳 서거정은 조선 전기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그는 출판사업을 주도하며 高文典冊을 양산했다. 특히 서거정에 대한 연구는 『동인시화』와 시문학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져왔다. 그에 대한 위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그의 문학사상을 조명해 볼 수 있었다.서거정의 문학사상은 문학본질에 대한 인식과 실용에 대한 인식의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할 수 있다.문학본질인식에서 그는 성리학적 인식체계를 수용하여 시문의 존재원리를 三才論, 性情論으로 설명하고 재도의 문학을 표방하였다. 문학의 본질인식에서 또 다른 핵심은 주기론적 문학론으로 나타난다. 그는 기적 우주관을 수용하고 문학의 구현을 기로써 설명하면서 문학에 대해 기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氣天賦論을 수용하면서도 천부론이 가지는 한계에 반발하고 적극적인 養氣論을 주장하였다.문학의 실용적 측면의 인식에서는 관료적 특징과 개방적, 자주성의 특징으로 대별해 보았다. 그는 관각문인적 입장에서 문학의 지향점을 설정하여 문학을 외래, 세교의 실리를 중시하는 경제석 효용으로 인식하고, 문학의 가치기준이 관각문학을 지향함으로써 窮而後工의 논리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사장의 가치를 중시했던 그는 표현론의 관점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김 회, 「서거정의 문학사상 연구」,1993, 단국대 대학원, 석사논문 i page그는 문학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여 성리학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골계전』을 짓기도 하면서 諸家의 문학을 널리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는 데 이는 그가 중국 지향적 가치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사·문화에 대한 자주적 인식을 바탕으로 문학에 대한 고유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인식함으로써 주목할 만한 진전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이렇듯 관각그에게 정치적 명분과 현실 인식에 대하여 깊은 고뇌와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그러나 그는 정치적 변동에 휘말리지 않고 해박한 지식과 가멸 찬 솜씨로 전대의 글을 총정리하여 신흥 왕조의 새로운 문풍을 일으키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법전과 역사서, 지리지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편찬해냈으며 특히 일명 이라고 불리는 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근심과 무료함, 피로 등을 잊게 하고,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을 주며, 스스로 얻고 경계하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서거정은 분수를 지키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는 처세로 비교적 평탄한 관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술의 분량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서거정이 문학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대의 대표적 문인으로서 한문학을 주도하고 그것의 정리·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이 , 에 나타난 서거정의 문학론, 1998.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그의 생애는 그의 에 나타난 문학관을 조망해봄으로써 끝마치도록 하겠다《동인시화》는 고려의 시화류보다 훨씬 체계화되어 있으며, 비교적 엄정하고 정확한 시평을 하고 있다. 서거정은 비평가로서 비교적 높은 안목과 올바른 태도로 구체적 작품 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인시화》에 나타난 서거정의 문학론은 주기론, 효용론, 용사론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는 문학에서 기상을 중시하였고 특히 문학이 가지는 효용에 주목하였다. 그의 효용적 문학관은 시가 중국과의 사대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외에, 성정을 순화하여 백성을 교화하는 데 유용한, 도를 나타내는 것이 문학이 수행해야 할 기능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문학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 창작 과정에서 용사를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문과 구별되는 우리 시의 독자성을 인식하고 우리 시문학이 중국의 것과 대등하다는 자주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위와동일2. 서거정의 문학사상연구) 김 , 서거정의 문학사상연구, 단국성과 연관하여 성리학이 본격화되기 전시대의 의식의 한 전형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이상으로 서거정의 문학사상을 종합해 보면 그의 문학사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요소는 성리학적 가치관과 관료문인적 의식으로 대별해 볼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특징적 의식은 문학에 있어서 道의 구현이라는 지향점에 대해서 상충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통치적 입장에서 載道의 논리는 성리학적 인식체계를 수반하지만 성리학적 이념의 완화를 통해서만이 문학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가치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볼 때 서거정의 문학인식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절충하고 포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성리학적 논리체계를 상당 부분 정치적 입장에서 문학 논리에 적용하였지만 문학 전반에 대해 철저하게 적용하지 않고 완화함으로써 스스로 개방적이면서 다양한 문학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였다.즉 서거정은 성리학의 '道'를 문학에 적용하였지만 그 의미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성리학적 사고와 개성적 문학의식의 절충적 성격은 서거정의 문학사상에서 보이는 특징이자 문학이념이 도학자의 기준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관료문인의 특징으로 대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그의 개방적 성격은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골계전』에서 두드러지는데 詩話, 雜記에까지 문학의 영역을 확대한 그는 『滑稽傳』을 저작함으로써 성리학적 규제에서 벗어난 태도를 보여주며 이것은 그가 오랜 관료생활에서의 긴장의 이완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서민적 정서에 대한 관심을 문학화했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모두 가가 성리학적 사고를 문학창작의 실제에 경직되게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이처럼 개방적 성향을 지녔던 그는 諸子百家나 佛敎영역까지도 널리 수용하고 긍정하는 태도를 보인다.3. 저작 배경처음 골계전을 짓게된 배경을 四佳는 '처음 골계전을 지었을 때는 후세에 전하고자하는 의도가 없었다. 다만 세상 근심과 무료함을 달래려고 지었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골계전은 서거정의 저작활동이 왕성했던 중간시기에 것이다.)위와 동일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서거정의 작품활동을 통해 문학적 본질과 실용적인 측면 중 성리학에만 얽매이지 않은 개방적이고 자주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그의 문학사상은 대표적으로 『골계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그 시대 문학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누차 강조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3. 소재를 통한 작가의 인식) 구본희, 《태평한화골계전의 작가 의식 연구-표제분석을 중심》,2000, 인학대학교 교육대학원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쾌락원칙이라 부르고, 그것을 규제하는 법규들을 현실원칙이라고 부른다. 소유의 욕망은 성적 재화뿐 아니라 물적 재화까지를 대상으로 사고 있다. 재화는 적고 욕망은 크기 때문에 거기에는 현실원칙이 작용하며, 그 현실원칙 때문에 금기가 생겨난다. 그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바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김현, 장르의 이론, 문학과 지성사. 1987여기에서의 '성적·물적 재화'는 실은 인간의 잡다한 욕망의 모든 대상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태평한화골계전》을 저술한 관각파 문인인 작가 역시도 '인간'이었고, 인간적 욕망의 소유자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소재 분석을 통해 나타난 의식은 단순한 '한 개인의 인간적 욕망'보다는 작자를 포함한 지배계층 즉 '관각파 문인들의 집단욕망(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첫째, 인물 관련 소재 75화는 다시 성격 31화, 외모 19화, 이름·별명 13화, 기타 12화등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성격 중 '무식'인데, 그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주로 무신들이다. 여기서 당대를 대표하는 문신으로서 무신을 업신여기는 작가 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은밀하게 자기 집단의 자부심을 은연중 말하고 있다. 위와 같은 소재를 통하여 관각파 문인으로서 자기 집단의 우월성, 즉, '시운지도 문학관'과 '문장기상론'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문학 정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둘째, 성 자각 역시도 이런 관심사를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다루었다. 관직과 과거, 문벌 등의 소재들을 다룬 작품에서는 관료문인으로 관직에 있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나타냈고, 무능력한 관리나 횡령 및 가렴주구 등의 애화를 통해서는 자신을 포함한 지배 세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관료사회를 비판하는 골계 성이 짙은 작품들도 그들 사회를 고발·비판하는 표면적 측면보다는 자기 계층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결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재를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여섯째, 운명 관련 소재 16화는 나이 7화, 꿈 6화 , 기타 3화 등으로 나뉘는 데, 장수와 현실 욕망의 성취 및 꿈과 운명의 관계를 필연성으로 맹신하는 태도를 통해 인간 보편적인 정서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더 나아가 자기 집단의 영달을 영속시키고자 하는 희구의 수단으로 소재를 이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일곱째, 민간신앙 관련 소재 4화는 속신 1화, 음양술 1화, 귀신 1화, 풍속 1화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민간신앙 관련 소재 작품은 전체 작품 중 1.48%의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관각파 문인으로서 합리적으로 사고하려는 유교의 현실주의적 사고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여덟째, 동물·사물 관련 소재 4화는 말 1화, 새 1화 똥 2화 등으로 세분화되는 데 민간신앙과 마찬가지로 관각파 문인이라는 점에서 하찮은 소재에 대해 관심이 미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적게 사용되는 소재들일지라도 단순한 웃음을 떠나 교훈성을 주고자 했음을 볼 수 있다. 즉 비속한 소재를 통해 지극한 이치는 저급함이나 고상함 또는 신분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는 작가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이상의 소재를 통해 추출된 집단적·계층적 측면의 작가 의식은, "어느 개인이 시대의 기운이 융성할 때에 태어나면 그 타고난 기품도 우수하고 문사로 발한 것도 훌륭하다"고 보는 작가의 "時運之道"의 문학관"과 《太平閑話滑稽傳》의 序에 나타난 저술의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대한다.
서문작가의 생애현진건은 호가 빙허(憑虛)이며 1990년 8월 대구에서 대한제국의 대구 우체국장인 현경운의넷째 아들로 태어났고 위로는 첫째 홍건 둘째 석건 셋째 정건이 있다.1915년 그의 나이 15세때 향리 부호인 이길우의 17세난 딸 이순득과 결혼을 한다. 그는 일본 도쿄[東京]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 외국어학교에서 수식을 하였다. 그는 1919년 귀국하여같은해 육군 영관을 지냈던 오촌 당숙 현보운에게 입양되어 처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생활하게 된다.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자》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21년 발표한 《빈처(貧妻)》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백조(白潮)》 동인으로서 《타락자(墮落者)》 《운수 좋은 날》 《불》 등을 발표함으로써 염상섭(廉想涉)과 함께 사실주의(寫實主義)를 개척한 작가가 되었고 김동인(金東仁)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시대일보》 《매일신보》의 기자로 근무하였고 35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일장기 말살사건(日章旗抹殺事件)으로 1년간 복역하고 신문사를 떠났다. 작품에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지새는 안개》 《까막잡기》《B사감과 러브레터》 《사립 정신병원장》 등 단편이 있고, 《적도(赤道)》 《무영탑(無影塔)》 《흑치상지(黑齒常之)》(未完) 등 장편이 있다. 그는 1943년 43세에 무남독녀 화수,월탄 박종화의 자부가되며 동대문구 제기동 현 고대 정문앞 초가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3월 21일 조용히 죽음을 맞게 된다.현진건의 작품 세계이상에서 작가의 생애를 알아보았다. 딱 1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소설 작품을 감상하는시간을 이번 학기에 수강하게 되었다. 1학년 때 '현대 문학의 이해'시간에 '항상 더 많은 것을 찾아내고 알아봐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하고 독후감을 쓸 때마다 내가 모르는것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위안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건만 1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어떠한 것을 남겨둘 겨를도 없이 그냥 횅하니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독후감을 쓰려고 앉은 나는 다시 그 때의 각오와 결심으로 다시 한번 나에게 화이팅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한다.이번 강의 시간에는 현대 문학사에 남을 만한 인물과 그의 대표작품을 공부하고 또 그 작품이 띠고 있는 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 공부하기로 되어있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이 현진건의 「빈처」이다. 작년 '현대문학의 이해'시간에 은희경의 「빈처」를 공부했었다. 문학새내기였던 나는 「빈처」라는 작품을 많이 들어봤음에 마음속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그러나 현진건과 은희경의 동명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현진건... 그는 우리에게 그다지 생소하지 않은 이름이다. 여러 편의 단편문학을 남겼던그는 -약 20편이라고 한다 - 「운수 좋은 날」「B사감과 러브레터」그리고「빈처」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나는 「B사감과 러브레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학계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로 미루어보아 생각하니 그 소설의 인물 묘사라든지 감정등의 묘사가 사실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건자체가 아주 엉뚱하여흥미를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현진건의 작품은 이렇게 우리와 친숙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애나 생애와 관련된 작품 활동은 알지 못한지라 나는 이 책 , 저 책을 뒤지며 현진건의 생애를 찾아보았다. 국어교육전공 2년째로 접어들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작가의 작품과 생애는 따로 떨어질 수없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별로 그에 신경을 쓰지 않고작품만 보았기 때문에 때로는 작품들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읽은 후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그의 생애 속에서 나온 그의 작품들은 무엇이 있으며 그중 「빈처」는 어떤 특징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빙허의 작품세계를 보면 '생전에 20여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을 남겼으며, 작품의 소재를 신변에서 택하다가 객관적 현실로 눈을 돌렸고, 말년에 역사소설에 집착하였다.'라고 집약해볼 수 있다.그가 처음 문단에 등단하게 된 것은 『개벽』에 「희생화」라는 처녀작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감상적인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을 받으며 첫 번 째 작품은 실패를 하게되고 사실상 문단에 알려지기로는 제 2작 「빈처」에 의해서였다. 「빈처」의 성공으로 그는 '백조'동인으로 활동하게 되며 제 3작 「술 권하는 사회」로 소위 문단에서 출세하게 된다. 빙허의 이 시기까지의 작품은 모두 작가의 생활 주변을 작품화하는 소위 신변소설의 경향을 주로 이루고 있다.그가 주관적인 신변소설에서 객관적인 사실주의로 방향을 바꾼 것은 1923년 『할머니의죽음』(백조 3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지금까지 감상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초기 작품에서 그는 점차적으로 사실주의에 접근해 간다. 일련의 작품으로는 『운수좋은 날』『불』『B사감과 러브레터』『고향』『사립정신병원장』과 같은 작품이 있다. 이들 1920년대 중반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의 특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객관해 보였다는 점이며작가의 개입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독자의 판단에 의해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하고자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소설의 역사상 빙허가 최초로 구사한 극적 방법이었던 것이다.빙허는 그 당시 많은 작가들이 사실주의 문학을 단순히 현실 비판의 무기 같은 것으로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리얼리즘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현진건은 민중과 교류하지 못했고 자신의 체험을 심화하지 못한 약점을 안고서도 당시의 어느 작가보다도 인간이 갖는 모순과 기만을 깨려고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20년대 사실문학의 정상에 떠오른 것은 실로 현진건 문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 후 빙허는 약 10년간의 침묵기를 갖는다. 그 이유로 잘 알려진 것은 바로 자신이 정신적 지주였던 독립운동가, 셋 째형 정건이 옥사한 데서 오는 충격과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시 터진 소위 일장기 말소사건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얼마간의 수감생활을한 후 풀려나게 되며 신문사를 사임하고 주택을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번지로 옮겨 양계업을 하면서 장편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제일 처음 집필했던 『흑치상지』는동아일보에 52회까지 연재하였으나 민족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서 중단되었다. 그 후 빙허는애정소설『적도』를 집필하였으며 역사소설『무영탑』을 써서 뛰어난 작가적 역량을 과시하였다. 『무영탑』은 고대 신라사회를 배경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신라 여인 주만과 아사달의 비련, 탑의 조형을 둘러싼 아사달의 예술적 고뇌, 3년동안 기다리고도 끝내 만나지못하는 아사녀의 수난을 밀도있게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당시의 역사소설이 하나같이 왕조비사가 아니면 유한계급과 기녀와의 염문이었던 것에 비해 하층계급을 등장시켜 고대신라가안고 있었던 사회적 모순을 사실적 수법으로 밀도 있게 부각해 놓은 데 있었다.지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개관해 보았는데 대략 신변소설에서 사실주의 소설로 이행과 장편소설의 집필등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실로 유복한 집에서태어났기 때문에 『빈처』나 『운수좋은 날』같은 작품의 주인공을 직접 자신을 대상으로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신변소설로 잘 알려진『빈처』같은 경우 자전적 요소를 작품 구석구석에서 찾아 볼 수 가 있다.본문작품감상 및 분석『빈처』는 가난한 작가를 내조를 하며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과 사랑 그리고 가난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믿음을 또 한번 느끼며 서로 안은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빈처』라는 소설은 그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 가난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것이 바로 이글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이 글에는 K 라는 문학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남편과 이런 남편을 받들고 섬기는 것을 거의 운명이라고 여기는 K의 아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K는 무능력하지만 아주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이고 아내는 매우 여리고 남편을 받들며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에약간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관철시키는 그런 강한 여인은 아니다. 말 그대로한국의 전통적 여성상으로 불리워질만한 전형적인 인물이다.솔직히 현대적 관점에서 이 글을 읽을 때 우선 개인적인 감정에 있어 나는 이 글의 K가매우 불만스러웠다. 아주 미묘한 심리로 아주 미세한 것까지 물고 늘어져 사람을 괴롭히는것 같은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가 빈곤으로 인해 정신적 상태가 허물어지는것에 죄책감 비슷한 것이 들었던지 그는 계속 아내에게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시비를 걸어말꼬리를 물고 넘어진다."점점 구차한 살림에 싫증이 나서 못 견디겠지"이런 그의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이란 인물들은 유달리 책임져야 하는게 많은 것으로 과거부터 이어져왔고 또 자존심이라는 것도 아주 대단한 것으로잘 알려져 있으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혼란이 와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속에 죄의식이 있고 미안한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듯이 그의 행동 자체가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나에게 매우 옹졸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생각한 것은 그의 그 심리와 그리고 상황에나타나는 행동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한 아내에 대한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은데 상식을 약간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힘든것도 아랑곳 않고 "학문을 하는 예술가의 아내로서의 삶은 힘들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치"로 그냥 오로지 남편만을 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로 과연 그 시대에도 그렇게 까지 지고지순한 여인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듬과 동시에 시대적 상대성으로미루어 보았을 때 그녀가 안스럽기도 하면서 어쩔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삶이 이해가 되기도
제목 방현석연보 및 내일을 여는집 분석목 차Ⅰ. 작가연보Ⅱ. 노동문학Ⅲ. 방현석의 작품세계1. 방현석 문학의 특징2. 방현석의 작품들1) 새벽출정2) 겨울 미포만3) 십년간Ⅳ. 내일을 여는 집1. 줄거리2. 인물분석3. 내용분석1) 시점2) 구성3) 제목의 의미4) 여성문제5) 작가의 낙관론적 사고6) 묘사Ⅴ. 평가Ⅵ. 참고문헌Ⅰ. 작가연보방현석 (본명 방재석)1961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시) 농소면 중산리 763번지에서 아버지 방성호와 어머니 김선순의 3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남.1968년 약수 국민학교 입학.1974년 농소 중학교 입학.1975년 서울 수도여자사범대학부속중학교로 전학.1977년 경기고등학교 입학.1980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입학.1981년 《중대신문》에「어떤 만남」 분재.1985년 중앙대 학생회장으로 활동.1986년 인천에서 공장 취업.1987년 진진양행 노조 교육선전부장으로 활동.1988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상근간사로 활동.《실천문학》에 단편「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1989년 《창작과 비평》에 「새벽출정」발표.1990년 《창작과 비평》에 「내일을 여는 집」,《실천문학》에「지옥선의 사람들」발표.1991년 제9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음.《창작과 비평》에「또 하나의 선택」발표.1992년 창작집『내일을 여는 집』을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1994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조직1부장을 사임.《실천문학》에 장편「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연재.1995년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청년문학인위원회 부위원장.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거주.「십년간」출간.1997년 《창작과 비평》에「겨울 미포만」발간.1999년 현재 강남 일원동에 거주.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의.Ⅱ. 노동문학노동문학이란, 쉽게 말해서 노동자들의 생활을 형상화시켜 노동이 가지는 올바른 가치를문학적으로 담아 내려는 문학이다.1970년대의 민중문학이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띤 형태라고 볼 수있다. 노동문학은 노동현장에서의 여러 문제, 즉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 자본주 노동대중에 의한 보고문학 생활문학 작품들을 지칭하면서 현실적 주도체를 보다 명시하는 의미에서‘노동자문학’이 쓰여 왔었고 지금도 그러함에 반해서, 최근 일각에서는그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노동해방문학’(조정환, 1989), ‘노동해방문예, 노동자계급문예’(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1989)등의 명칭도 사용되고 있다.노동문학은 그 초기부터 주체설정의 문제로 열띤 논쟁이 있어 왔다.초기의 주창자들은 사회변혁운동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주도권을 문학에서도 관철시킨다는의도 아래 노동문학의 주체가 노동자임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 주체문제는 노동문학이기존의 민족문학 내지는 민중문학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진화된다. 이 주체의 문제를 좁게,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인 창작 주체로서 취급한다면, 전업적 작가와 보통의 노동대중들 중 어디에 강조점을 둘까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전자의 경우에도 인텔리출신의 기성작가와 현장 노동자 출신의 신참 작가 등으로 구분되며, 후자의 경우 의식화조직화의 수준, 그리고 노동자계급내의 내부구성의 편차 등에 다라 그 층들이 다양하다. 또한 창작방법에서는 리얼리즘의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르는데, '민중적 리얼리즘(김영인1989)', '당파적 현실주의(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1989; 조정환 1989)'등이 노동문학의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노동문학에 대해서는 그 치열한 실천적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평가해 볼 때, 아직 성장기의 단계에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평가를 동시대의 노동운동에 관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Ⅲ. 방현석의 작품세계1. 방현석 문학의 특징방현석은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기법의 작품을 쓰는 대표적인 노동소설 작가이다. 그는 파업과 투쟁의 운동을 선동하는 문학보다는 노동자의 황막한 삶의 조건을 사실성 있게 구체적으로 묘사, 제시하는 문학을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산업사회가 안고있는 모순의 이해와 성찰 및 노동의 기여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을 독자로부터 얻어내는 노동소설을전개한다. 또한 그는 일시적 현실, 버티다가 마침내 전원 구속을 각오한 가두싸움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실제로 작중 사건들은 인천 7공단의 도자기 인형 제조업체인 세창물산의 노동조합 활동을모델로 하였다. 이 글은 작가의 구체적인 현실경험을 밑받침하여 이를 빈틈없이 소설로 형상화한 밀도 높은 작품이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각성과 노조의 결성, 임금투쟁, 자본가의배신, 노동자의 죽음, 노동자와 고용주와의 극한 대결, 위장폐업에 맞선 농성, 이웃노조와의연대투쟁, 협상의 결렬, 조합원들의 이탈과 동요, 죽음을 결사한 항전을 위한 출정 등 1987년 무렵 노동조합 운동의 한 전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2) 십년간1. 서지사항방현석의 소설 중 보기 드문 장편소설로 1995년 「(주)실천문학」에서 발행된 것이다.2. 줄거리 및 작품분석준호와 석우, 완수는 남도 하계국민학교의 '엉뚱한 삼총사'였다.준호는 舊 친일파였고 준호의 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준호의 아버지를 빨갱이로 몰아붙여 죽음을 맞게한 부산 갑부 이서익과 집안내력상 대립관계에 있다.완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요꼬 기술자이다. 그는 부도로 쓰러져가는 회사를 위해애쓰다가 회사에게 버림받고는 노조 지부장이 된다. 삼총사들과 고향친구이자 애틋한 감정의 대상인 순분은 가난한 살림탓에 일찍이 서익의 작은아버지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가,버스차장 공순이 등을 전전하다 후에 서익의 아이를 낳고 술집을 차리게 된다. 판사가 된준호와 정치를 하려는 석우는 폐병에 걸린데다 노조지부장 생활로 몸이 상해 입원한 완수에게로 문병을 와서, 굴곡많았던 지난 십년간의 그들의 우정을 재확인한다.정계와 재계, 노동운동권까지를 넓은 시각으로 본 이야기이다. 현재의 80년대를 만든 지난 십년간(즉 70년대)을 되돌아보면서, 80년대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좌절과 노력의 산물이라고, 우리의 현실과 위치를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다.3) 겨울 미포만1. 서지사항이 소설은 방현석의 가장 최근작으로써 「창작과 비평」 1997년 가을호에고 희생정신도 열악해 졌으며 노조 활동도 쇠퇴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내·외적 갈등이고조되고 집단주의에서 일반 노조원 개인주의로 변모하는 과정도 보인다. 그러면서 80년대투쟁의 산실이었던 세대들은 절망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혼자서 칠 수 있는 몸부림을 다치고 최선을 다한 끝에 절망했다는 확신을 하고 그 절망이 절망을 불러일으켜 회사를 떠나는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모두가 다시 뭉쳐 참여하는 노조가 되도록 노력한다. 작가는 마지막 부분의 장면묘사를 통해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말해주고있다.Ⅳ. 내일을 여는 집1. 줄거리이 소설의 주인공인 박성만은‘대성중공업’의 A급 선반공이다.어느 날 회식자리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사사로운 이익만을 챙기는 現 노조(배종태 노조)불신임 운동을 펴게 되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해고당한 동료들과 복직을 위해 출근투쟁을 하던 중 사장실을 점거하게 되고 일을 내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되어쫓겨 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지정병원에서의 냉대에의 분노와 해고자협의회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성만은 만삭의 몸인 아내 진숙과 함께 가족투쟁회를 만들어 더욱 치열한 복직투쟁을 벌인다. 여성노동자들의 활동단체인 '내일을 위한 집'과 인연을 맺은 진숙은 성만보다도 더욱 결연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가득찬 구명운동을 벌인다. 생산부 직원들의 단합궐기에 의해 회사에는 드디어 민주노조가 어렵게나마 결성되고, 여타 해고자들은 복직되나 성만은 끝내 복직되지 않는다. 그들 가족의 호구를 위해 태어나지 얼마 되지도 않은 둘째 아이는 유아원에 맡겨지고 그의 아내는 다시 공장으로 가고, 그도 간혹 막노동판으로 나가 일당을 벌어 온다. 결국 성만은 동료 노동자의 도움으로 복직이 되고,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이라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웃음꽃을 피운다.2. 인물분석박성만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 성만은 도시적인 노동소설에서 곧 잘 보이는 투쟁하는 영웅적인인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노동자이다. 말하자면 일반 노동자들이 가질법한 감정과 처사를 보고 격분하며 차츰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나중에는 여성노동자들의 활동단체인 '내일을 위한 집'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자신감과 신념을 가지고 열성을 다하며 다른 사람들까지더욱 고취시켜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본인이 된다.(p148) 이렇게 누워있지 말고 빨리 밥들 먹어요. 먹고 싸우러 가야지요. 죽더라도 회사 앞에 가서 죽읍시다.(p150) 지려면 뭐하러 싸워요. 하여튼 내 그놈의 사장 우리 죽이지 않는 한 항복시키고야 말 거니까.(p152) 진숙이 그 큰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뜨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 진숙의 팔뚝에선 흥건하게 피가 쏟아져 나왔다.오강범성만의 회사 동료로서 같은 노동자 계층이다. 사람을 하나로 뭉치는 재주가 있으며 옳지못한 일을 가만히 두고만 보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회식자리에서의 싸움도 그 때문에시작이 된다. 그는 성만과 함께 투쟁에 나서며 복직 투쟁에 승리하여 노조위원회 사무장의자리에 오르고 끝까지 의리를 져버리지 않고 성만의 복직을 위해 힘쓴다. 또 복직 투쟁과정에서는 그의 인간미도 살짝 엿볼 수 있다.(p121) 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p122∼124) 지금 우리 먹는 회식비, 뭔 돈일지들 아요? 회사돈? 아니여라우. 우리가 낸 돈이여라우 ∼ 결혼하거나 부모 초상때도 축, 근조 허고 써붙인 이만원짜리 봉투 하나씩찔러주고, 관리자들은 더 나오지만.(p147) 성님, 뭔 말이요. 팔이야 다쳐봐야 뿐지러지기뿐이 더하겠으라. 머리가 중하지라.배종태어용노조 위원장으로 한낱 건달에 불과한 사람이다. 자신도 권력자가 아니면서 단지 권력자에게 기생하여 알고 보면 자신과 같은 위치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비열한 인간이다.(p121) 만인이 공인하는 어용 노조위원장 배종태는 인상을 험하게 일그러뜨리면서 강범을노려봤다 ∼ 그것이 다름아닌 배종태 노조의 본질이자 한계였다.(p124) 빙신같은 새끼들, 그깟 돈 사천원 가지고 변화는
Ⅰ. 들어가는 말윤동주의 시를 재평가하고 그에게 정당한 문학적 가치를 인정해 주려는 노력은 일반적으로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그의 유고 시집 가 간행된 이래 그에 대한 연구는 오직 1954년에 발표된 고석규의 가 있을 뿐 거의 한세대 동안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점차 활기를 띠기시작하였고 70년대 들어서 급기야 윤동주를 문학사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로 등장시키게 되었다.이처럼 윤동주가 세상의 이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그가 지금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는 시 한 줄만으로도 누구나 아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렇듯 주목받게 했고 무엇이 그를 이렇듯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게 했는지 우리는 '윤동주'라는 인물과 시 세계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시대상황을 통해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Ⅱ.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1) 작가연보1917년 (1세)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본관이 파평인 부친 윤영석과, 독립운동가, 교육가인 규암 김약연 선생의 누이 김용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다. 윤동주가 태어난 명동촌은 외삼촌 김약연 선생이 일찍이 이 지방에 이주해들어와 개척한 지역으로 교육과 종교, 독립운동이 다른 어느 곳보다 활발했던 곳이다. 1910년에는 조부 윤하현이 기독교장로교에 입교, 윤동주가 태어날 무렵에는 장로직을 맡게 되는데, 윤동주는 태어나자 유아 세례를 받는다. 윤동주는 본명이며 어릴 때 불리던 이름은 해환이다. 뒤에 [카톨릭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할 때 '동주(童舟)'라는 필명을 쓴적이 있다. 윤동주의 형제로는 누이 윤혜원, 동생 윤일주(성균관대 교수), 윤광주가 있다. 1925년 (9세) 4월 4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에 있는 명동 소학교에 입학. 명동 소학교는 외삼촌 김약연이 설립한 규암서숙을 명동 소학교와 명동 중학교를 발전시킨 것으로, 윤동주가 재학할 당시는 중학교는 반딧불」, 「둘 다」, 「거짓부리」, 「편지 기왓장 내외」, 「겨울」, 「만돌이」산문 - 「별똥이 떨어진 데」, 「화원에 꽃이 핀다.」, 「종시(終時)」Ⅲ. 윤동주의 시세계1)초기시 : 1934년∼1936년이 시기의 윤동주의 작품들은 초기 시에서 흔히 보여 주는 시적 사고와 짜임새의 미숙함이라는 특징과 함께, 장차 그의 시 세계가 전개되어 나갈 방향과 바탕을 드러내고 있다.초 한 대-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불살라 버린다.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나의 방에 품긴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전문이 작품 발상의 근저에는 예수의 수난이라는 종교적 연상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초는 모든 것을 불태워 암흑을 몰아내는 제물 즉, 자기 희생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적 응집력을 가지기엔 작품의 구조가 박약하다. 먼저, 관습적인 수사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깨끗한 제물, 백옥 같은 눈물 , 선녀처럼... 춤을 춘다 등이다. 1연부터 4연까지 반복되는 단조로운 서술적어조 그리고 운율의 흐름에 대한 배려가 없이 통사적 어절 단위에 의한 행 구분 등은 작품의 총체적 의미를 축조하는데 실패했다. 또 첫째 연과 마지막 연에 나타나는 "나" 가 응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 나" 는 화자며 초 한 대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관찰자인데, 이 작품의 핵심적 객체는 아니다. 그것이 표면에 등장할 필요가 있다면 초 한 대 라는 의미의 핵과 유기적으로 연관될수 있는 경우이겠는데, 1, 5연의 "나" 는 그렇지 못한 부가 부분에 불과 하다. 이에 따라 작품의 초점이 분산됨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결함은 윤동주의 일기적이고 체험적인 진술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다. 즉, 개인적 체험의 맥락을 넘어서서 어떤 의미 창출, 전달하는 체험의 유기적 조직화(형식화)가닌 환상적 목표를 찾아 떠나가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밤에사"라는 조사를 통해 보람없는 기대와 한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노인은 죽고 개만이 그 공간에서 짖는다. 이러한 구조는 윤동주가 추구해 온 삶의 무상성과 어둠의 주제에 부합한다.또 다른 이 시기의 주제 의식은 생활 속의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의 근원은 대체적으로 사회적현실, 일상적 삶에 대한 회의, 청년기의 정신적 방황, 고향을 떠난 상실감, 연전 무렵 겪은 종교적동요 등이다. 이러한 괴로움을 윤동주는 적극적 추구의 방향을 택하지 않고 개인적 명상과 괴로움의 토로로 이었다. 이 막연한 방황 의식이 어느 정도 탈피가 이루어진 시기는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하는 1938년 무렵이다.순(順)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우리들의 전당은고풍(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순아 암사슴처럼 수정(水晶) 눈을 내려 감아라.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루련다.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窓)에 부닥치기 전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전문순(順)이는 그리움 혹은 동경의 대상, 유년적 평화, 순수, 애정, 완전 해방된 조국의 모습 등 이상적 지향점으로 파악된다. 이 이상적 대상과 사랑의 전당에서 만난다. 의식적 접근인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수정 눈을 내려감"고 "엉클린 머리를 고루"는 행위를 한다. 명상이나 가다듬는 행위로 추측되는데 이는 이상적 자아와의 합일(사랑의 완성) 이전에 이루어지는 자신에 대한 성찰혹은 이상적 모습(유년적 평화, 완전 해방된 조국의 모습 등)의 현실화에 대한 검토의 작업이다.그리고 이 성찰이나 검토는 이들의 사랑이 "한낱 벙어리"였다는 깨달음을 준다. 여기서 벙어리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벙어리는 의식은 있으되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즉, 이러한 종교적 배경 혹은 발상의 작품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본시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자란 윤동주이기에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 이전의 작품 속에서 이런 모습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특이한 변모라 할 수 있다.이러한 변화는 연전 재학 초기에 겪은 종교적 번민이 극복된 결과물이라고 판단된다.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중에서앞에서 보았듯 세계는 어둠, 모순이고 기독교적 죄의 삶이며, 정치적으로 식민지적 삶이다. 즉, 자아와 갈등하는 현장이다. "예수가 괴로우면서도 행복했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갈등을 자기 희생으로 극복하고, 세계 내에서의 행동 의미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연에서 보듯 어두운 사회적, 정신적 여건 속에서 가능한 선택은 "십자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복합적 의미의 발현이다. 희생과 구원의 종교적 의미, 고통과 영광이라는 현실적 의미, 죽음과 영생이라는 존재적 의미일 수도 있다. 이처럼 지향적으로 뚫고 나온 의식은 세계 내에서 발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백골을 들여다보며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나를 쫓는 것일 게다.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전문"백골"은 그 의미가 확연하지 않다. 그래서 그 본질적 의미로부터 고찰을 시작해 보자. 백골은살덩이도 심장도 없어서 온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육체의 본질(기본)이다. 이 본질은 죽음에 도달하면 어쩔 수 없이 깍여야 한다. 즉, 현실적 자아의 모습이다. 이는 시인의 관점에서는 자유로운 의식의 비상을 가두는 공간이고 사회적으로 볼 때는 식민지적 조국의 현러나 시인의 세계인식 속에 분명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의식이 살아있었으므로 그 전면적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된다.이상으로 우리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시 세계에는 중요한 두 가지 배후가있는데 그 하나가 청년기의 불안정성과 고독감 및 정신적 방황에 기인한 개인적 어둠이고 다른하나는 조국을 잃음으로써 역사적·사회적 삶의 자리를 박탈당한 민족적 어둠이다. 두 어둠이 윤동주라는 하나의 정신 속에 결합하면서 그의 의식이 정립되어 간다. 그리고 그 해결점을 윤동주는자기희생이나 현실 참여 의식 등 개인적 차원에서 극복하려 했다.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에서처럼 시대적 아픔을 자기화 하는 고뇌의 경지는보여 주었으되 그 고뇌의 해결점을 개인적 성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의 생애가 너무나 짧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머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Ⅳ. 작품분석어두운 시대에 태어난 시인의 작품을 해석하려 할 때면 언제나 이야기되는 당대 사회와의 현실참여 관계가 논의의 초점이 되기 쉽다. 윤동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윤동주 시문학 해석을 둘러싸고 알게 모르게 두 가지 논의로 나뉘었다. 하나는 윤동주가 한민족의 당대 설움과 절망을 노래했으므로 그는 마땅히 한민족의 정서를 대표하여 드러낸 '민족시인'으로 읽어야한다는 당위론적 논의의 초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 일본 군국주의 폭력과 그에 기생하면서 동족을 괴롭힌 비열한 친일파 동족에 대한 증오심이 이 논리를 심화 확장하는 활력이 됨으로써 그의 시편 모두가 증오심을 유발하는 기폭제로서만 존재이유가 있는 듯이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또 하나의 논의는 윤동주를 당시대 사회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 그가 순수 서정시 절편을 쓴 뛰어난 시인으로만 읽어야 한다는 논의이다. 앞의 논의가 문학을 사회에 꼼짝없이 묶어 놓아 인간정서의 폭넓은 너비와 깊이를 볼 수 없게 하는 편파성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면 이 논의 또한 시 (時)를 당대 사회로부터 절연시켜 당대사회 정신과 시인이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