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의 經濟改革과 發展 전망이름: 조욱상(趙旭相)학번: 9506048난날: 1975. 9. 27(양){< 차 례 >Ⅰ. 머 리 말 Ⅴ. 향후 중국의 경제개혁의 전망Ⅱ. 중국 경제개혁의 전개과정 1. 국유기업의 개혁Ⅲ. 경제개혁의 특징 2. 지역간 격차의 축소Ⅳ. 중국 경제개혁의 과제 3. 농업의 진흥1. 긍정적인 측면 Ⅵ. 맺 음 말2. 부정적인 측면Ⅰ. 머리말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개혁은 중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개혁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중국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중국 경제가 이처럼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중국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경제개혁이 시작된 1978년 말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중국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9.7%에 달했는데{) 중국해관통계, 1998.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속도의 하나이다. 중국의 1인당 GNP는 1995년에 이미 1980년의 3.4배에 달해 국민들의 생활도 크게 개선되었다.{) 中國統計摘要, 1999.중국의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는 중국이 21세기 초반에 가면 미국이나 일본과 어깨를 견줄만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지난 해 몇 명의 중국 청년들이 『중국은 NO라고 할 수 있다』는 제목으로 쓴 책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개혁과 개방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경제개혁 성과에 대해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보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향후에도 중국에서 개혁이 계속되고 지금까지와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지니고 ‘개혁의 총설계사’역할을 해왔던 등소평이 장기간 중국에서 경제개혁을 주도해 왔던 만큼 그가 사망한 후 중국의 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전세계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중국 경제개혁의 향시작된 이후 중국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운동이 우선시되고 안정된 경제건설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홍석,『강택민시대의 중국』, 21세기 북스, 1999, (나상훈, 「중국 개혁과 성과」, 서강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0, 3∼4쪽, 재인용).또한 개혁 전까지 중국은 자급자족의 경제구조를 지향하면서 세계 경제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를 활용하여 생산구조를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없었고 외국의 자본과 자원을 자국의 경제발전에 이용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개혁 이전의 중국의 자급자족의 발전방식은 그 만큼 거대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를 동반했던 것이다.{) 한홍석,『중국국유기업의 민영화와 대응방안』, LG경제연구원 보고서, 2001-1, 재인용.셋째로 개혁 이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공업화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공업화의 혜택을 볼 수 없었으며 다만 공업화의 자금을 제공하는 피착취자의 처지에 놓여 있었다. 특히 중국정부는 호구(戶口)제도로 농민들을 일평생 농촌에 얽매여 놓고 인민공사라는 집단노동 제도로 농민들의 노동자유를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노동 의욕이 매우 낮았다.농업이 부진하니 자연히 농민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도시 주민들의 식량과 기타 식품 공급도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모택동이 사망한 후 기존의 농업 집단노동 방식 하에서는 농산물의 증산이 어렵고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농민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으며 도시 주민들도 농산물의 공급만 풍부하게 된다면 농촌의 개혁을 수용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는 모택동 사망 이후 농촌에서 원래의 집단노동제도 대신에 `개인농' 제도가 나타날 수 있었던 사회적 기초로 작용하였다.1978년부터 중국에서 개혁이 시작된 것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중국은 60년 중반부터 문화 대혁명이라는 커다란 비극을 겪었는데 이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만약 중국에서 문화 대혁명이 발생하지 없다.{) 장경섭 편, 『현대 중국사회의 이해』, 사회문화연구소, 2000, 98∼120쪽.개혁 개방이 시작된 이후 수많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루어진 것 역시 중국에서의 경쟁을 심화시킨 중요한 원인이다. 1996년까지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도입액은 1,7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외자기업들은 이미 수출보다도 중국의 내수시장을 점령하기 위해 투자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 국내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국유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국내기업들에게도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기업들은 살아 남기 위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노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셋째로 지금까지 중국에서의 경제 개혁은 먼저 실험을 통해 성공한 경험을 전국에 보급하는 점진적 개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동유럽이나 구소련의 `빅뱅(Big Bang)’식의 개혁과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개혁방식은 중국의 개혁과정에서 사회 혼란을 줄이고 파이를 크게 하는 `파레토적 개선'을 실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홍석,『중국국유기업의 민영화와 대응방안』, LG경제연구원 보고서, 2001-1, 30∼33쪽.점진적 개혁은 중국의 복잡한 내외 경제 환경과 정치적 상황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중국에서 개혁이 실패할 경우 구소련처럼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 중국의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개혁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편 기존의 경제체제하에서 지역별과 계층별 등 서로 다른 이익을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유형의 국민들은 원래의 이익 구조가 개혁 과정에서 변화하면서 서로 충돌하게 된다. 즉 한 개혁안의 실시를 둘러싸고 공개 혹은 비공개적으로 치열한 찬반 논의가 벌어지는가 하면, 이미 결정된 정책이 실행과정에서 왜곡되는 바람에 장기간 개혁 조치가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전자의 예로는 지역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고 중앙정부의 재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분 세제(分稅制)'의 개혁을 오래 전부터 검토했지' 제도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1984년에 집단노동 제도의 해산을 선포하고 농촌에 ‘개인농’경영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였다. 즉 가장 중요한 농업 개혁인 `개인농'제도는 원래 농민들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였고 그 후 중국 지도부에 의해 정식으로 허용된 개혁이다.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또 하나의 중대한 개혁은 모택동 시대의 규제를 타파하고 자신들의 잉여 노동력과 자금을 이용하여 원래 도시주민들만이 독점하고 있던 상공업과 서비스업의 분야로 과감히 진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향진기업(鄕鎭企業)'이다. 1984년까지만 해도 `사대기업'이라고 불리우던 이러한 기업들은 농촌의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신속히 발전하면서 국유기업들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하게 되었다.{) 林毅夫,『制度,技術與中國農業發展』, 上海三聯書店, 1995, LG경제연구소, 2001-1, 재인용.사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자주적으로 경영하는 향진기업들이 개혁 이후 중국경제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향진기업의 역할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처음부터 제대로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중국정부는 향진기업들이 `현지의 원자재를 이용하여 현지에서 생산하며 현지에서 판매해야 한다'라는 방침을 내걸고 향진기업들을 국유기업들의 보완적인 지위에 있게 될 것을 바라며 국유기업들의 경쟁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고 향진기업들이 계속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면서 중국 지도부는 향진기업의 역할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한홍석,『강택민시대의 중국』, 21세기 북스, 1999, (나상훈, 「중국 개혁과 성과」, 서강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 4∼5쪽, 재인용).이상의 실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개혁에서 농민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중국정부가 농민들의 변화를 유발하는 어떤 정책을 실시한 결과라고 하기보다 농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발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대외정책연구원, 2000, 9∼12쪽, 재인용.소유제 관점에서 말하는 국유기업의 민영화, 사유화 등의 국유기업개조는 재산권의 명확성을 확보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재산권의 재편, 또는 재산권의 이전문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민영화된 국유기업은 국가가 그 경영상의 문제를 간섭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 이미 국유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민영화된 국유기업, 즉 민간기업에 대해서 왜 국가가 '국유기업의 개혁'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소유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국유기업의 개혁은 재산권의 명확성 확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상술한 바와 같이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는 국유기업의 범위 및 개혁은 원래 따로 논의가 되어야 할 부분인데도 저술, 토론 등에서 종종 두 개의 개념을 독립된 개념으로 보지 않고 한꺼번에 다룸으로써 정부나 경제학자들이 국유기업의 개혁방향을 설정할 때에 혼란을 야기하고도 하고, 개혁의 방법론에서도 하나의 명제를 놓고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토론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중국정부가 국유기업의 개혁에 관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개혁이라는 명제를 다룰 때에는 먼저 그 재산권의 명확성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분명히 한 후에 국유기업의 개혁과 현대기업의 경영방법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Overholt.W,The Rise of China, W.W.Norton & Company Inc, 2000, LG경제연구소, 2001-1, 재인용.2. 정치체제와 불확실성정치체제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서, '先富論'의 문제와 '地域隔差'를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평균주의를 탈피하여 '먼저 잘사는 인민도 있을 수 있는' 경제체제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정부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소득격차의 해결이라 할 수 있다.이른바 '先富論'은, 개혁 이전에 국유기업의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