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축(建 築)사람이나 물품 ·기계설비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構築物)의 총칭. 즉, 건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생활을 담기 위한 기술 ·구조 및 기능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공간예술이다. 건축은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한다.이로써 건축의 본질은 쾌적하고도 안전한 생활의 영위를 위한 기술적인 전개와 함께, 공간 자체가 예술적인 감흥을 가진 창조성의 의미를 가진다. 이 공간예술을 다루는 작가, 즉 건축가의 입장에 있어서 건축의 공간은 실용적 대상이고, 3차원의 지각적(知覺的) 대상이며, 자기인식의 실존적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순한 건조기술(建造技術)을 구사하여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구축물을 건물(building)이라 하고, 공간을 이루는 작가의 조형의지(造形意志)가 담긴 구축의 결과를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다. N.페프스너는 이 건축과 건물이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차고(車庫)는 건물이고, 대성당(大聖堂)은 하나의 건축이다. 사람이 들어가는 데 충분한 넓이를 갖춘 것은 모두 건물이지만, 건축이라는 말은 미적 감동을 목표로 설계된 건물에만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생활을 위해 건조되는 댐 ·교량 등의 토목구조물은 건축에 포함되지 않으며, 분묘 ·탑 ·기념비 등도 역시 건축과 유사한 방법으로 구조되나, 인간의 생활을 담는 기능이 아니므로 또한 건축과 구별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는, 매우 다양한 결합으로 판단되나, 대체로 다음의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1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空間形態)2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構造技術)3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다만 이와 같은 3가지 요소는 낱낱의 성질로서 남는 것이 아니며, 개별적인 해결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건축의 3요소는 서로가 상호 완결적인 관계로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속성에 있는 것이다. 인간생활과 공간과 기능을 엮어내는 작업을 설계(設計)라 이루게 하는 조건이라는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건축의 발생과 발전과정】 건축은 인류의 생활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자연의 위협에서 스스로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shelter)로서, 소극적이나마 권역을 공간으로 구축하게 되었고, 그 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이 발전의 역사는 물론 매우 진취적인 경험을 통해 이룩되어 왔던 시기도 있었으나, 사회적인 영향에 따라 침체한 시대도 있었다.양식적(樣式的)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건축이 그 양식적 기원(起源)에서부터 근대건축에 이르는 사이, 항상 이원적(二元的)인 발전과정을 거듭해 왔다고 보여진다. 즉, 건축예술은 이지적(理智的)인 양상과 감성적(感性的)인 양상을 반복하며 이루어져 왔다. 그리스의 건축이 그들의 합리적이고도 순수한 이성(理性)의 문화와 함께 가장 이지적인 고전성(古典性)을 남긴 데 비하여, 로마의 건축은 보다 감각적인 이상의 추구로 건축을 완성한 것 같다. 다시 르네상스의 건축이 보다 이지적인 사고의 결과였다면, 이에 비하여 바로크의 정신이란 상대적으로 훨씬 감성적인 목표에 있었던 것 같다.더욱이 건축의 역사는 항시 이지적인 것 다음에 감성적인 것, 고전적인 것 다음에 바로크적인 것, 합리적인 것 다음에는 관능적인 것 같은 이원성이 반복하고 회귀(回歸)하는 주기성을 가지고 진화해왔다.【서양 건축사】 건축의 원류(源流)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 생활 영역인 주거의 양상에서부터 나타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의 동굴주거에서부터 수혈주거(竪穴住居)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퐁 드 곰(Font de:Gaume), 르 콩바로(Le Combareaus), 에스파냐의 알타미라(Altamira), 카스틸로(Castillo) 등은 동굴주거의 유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다.신석기시대는 주거의 취락형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구조의 기술이 발달하여 점차 항상주거(杭上住居) ·수상주거(水上住居) 등이 지역적 환경에 대처하여 출현하게 되었다.청동기시대(BC 2200~BC 1200)대가 전성기였다. 남아메리카 마야 ·잉카문명의 유적지에도 많은 석조건축들이 남아 있는데, 과테말라의 티갈에 있는 티갈신전, 팔랑케의 태양의 신전, 쿠스코 부근의 마추픽추 유적지의 석조건축들이 유명하다. 그리스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대리석은 아름다운 질의 기념적 재료로서, 선을 정확히 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재료였다. 이에 따라 그리스 건축은 세련된 형태미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스 건축은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건축의 규범하에서 발전하였으며, 이 규범의 변화는 엄격함, 선명한 아름다움, 화려한 섬세성 등으로 일련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 예로는 미조아 시기의 도리아식 신전인 헤라이온 신전(Heraion temple, BC 640), 페스툼의 포세이돈 신전(Poseidon temple, BC 450), 아그리 겐룸의 제우스 올림푸스 신전(Zeus Olympus temple, BC 470) 등이 있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temple, BC 447∼BC 432)은 오랜 건축사의 조형(造形)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오니아식 신전은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신전(Erechtheion temple, BC 420∼BC 393)과 아르테미스 신전(BC 356), 미레투스의 아폴로 디 디메우스 신전이 있다. 코린트식 신전은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Olympieion, BC 174)이 대표적이다. 로마는 세계 제패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꿈이었으므로, 건축은 그리스의 것과 비교하여 심오하고 세련된 예술성보다는 규모의 방대함과 호화로움을 자랑한다. 재료면에서는 방대한 공사량의 건축을 완성하는 데 있어 대리석만으로는 불가능하여 테라코타 ·석재 ·벽돌 등을 같이 사용하였으며, 로마 부근에서 생산되는 석회암을 주재료로 하였다. 로마 건축에서는 볼트 구조법을 체계화하여 반원 볼트(tunnel vault) ·교차 볼트(cross vault) ·구면 돔(cupola) 등의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과 교회세력의 확장으로 규모가 커지고, 변화가 풍부하였다.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창안된 것으로서, 본당과는 분리시켜 세워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볼트에 있어 교차볼트는 둔중(鈍重)하고 시공의 난점들이 있기 때문에, 점차 리브(rib)와 파넬식의 볼트 구성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의 기둥머리[柱頭]는 변화가 많고 그 유형도 대단히 다채롭게 되었으며, 기둥(pier)은 아치 가구법과 더불어 점점 복잡해지고, 모서리에 원기둥 또는 반원기둥이 첨가되어 여러 줄기가 모인 형상으로 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피사의 성당(1063~93), 피사의 종탑, 피사의 세례당(1153~1278), 로마의 성조난비 수도원 및 성파오르 후로리 레 무라와, 베니스의 폰다 코 디 투르키궁전, 몬리일성당(1174)이 있다.12~16세기 초까지에 걸친 고딕(Gothic) 건축은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서 발전하여 독자적인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양식의 특징은 첨두 아치와 플라잉버트레스(flying buttress)의 창안에 있다. 구조적으로는 피어 ·버팀기둥 ·아치 ·리브 ·볼트 등이 서로 얽혀 수직력과 수평력을 받아 균형과 안정을 이루는 데 있으며, 볼트의 합리적인 구축법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 ·솔즈베리성당 ·웨스트민스터사원과, 프랑스의 파리 노트르담성당(1163~1235) ·샤르트르대성당(1194~1260), 림즈대성당(1212~1300) 등이 유명하다.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그 건축양식은 중세의 천편일률적인 표현과 비현실적인 수법을 거부하며, 고전의 형식미를 다시 회고 ·부활하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전유럽 건축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고전건축에 대한 복귀로 지향하는 징조가 보였다. 로마 건축의 5개의 규범(orders)은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인 A.팔라디오, G.B.비뇰라, V.스카모치, E.체임버스 등이 정형화시켜, 구조적으로 또한 장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에 복귀하고자 하는 양상을 말하는데, 프랑스에 있어서는 루이 15세의 최후 20년간과, 루이 16세 및 나폴레옹 통치기간에 행하여졌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유럽 최강국이 되어 강대한 자본국가로 번영하였다. 이러한 사회정세 아래서 존스, C.렌에 의하여 신고전주의는 발전하게 되었다.낭만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사회변혁 때문에 생긴 건축적 표현으로서, 고딕과 같은 중세로의 복귀적인 양상이었다. A.퓨긴과 W.퓨긴은 신고전주의를 개척하여 노팅엄성당(1842~44)·성어거스틴성당(1846~51)의 작품을 남겼다. 바리경의 영국 국회의사당과 K.F.슁켈의 베를린 위병본부(1816), J.나시의 버킹검 궁전 등이 그 시대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이다.【근대 건축】 유럽의 건축은 19세기 후기까지는 세계 대부분의 문명지역에 보급되었으나 그 양식의 기본적인 성격은 르네상스 이후 과거의 건축양식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변혁으로 인하여 건축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대규모의 공장 ·창고 ·철도역 ·시장 ·백화점 ·고층빌딩 등의 건조, 대도시의 형성이나 주택문제와 같은 새로운 과제로 인하여 주철 ·선철 ·강철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신재료가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수공업적 기술의 쇠퇴와 노임의 상승이 전통기술의 유지와 응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새로운 건축양식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과거 양식에 의존하던 건축미학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미의식의 개혁이 가장 곤란하였다.W.모리스와 그 일파는 1860년경부터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을 존중하는 공예개혁운동(工藝改革運動)을 일으켜, 주택 합리화를 유도하였다. 모리스의 영향을 받아 1890년대의 벨기에에서 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과거양식과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로서 각국에서 일어났으나, 사회적 요구나 기술적인 발전방향과 밀접하게 합치되지 못하여 뿌리 없는 표면상의 예술운동에 지나지 않은 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