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선비 조남명 을 보고-브레히트 서사극 이론을 바탕으로 한 비판그리고 슬픔의 노래사회학과 9720079 이 준 엽처음으로 연극을 본 것은 나에게 있어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영화·비디오 등과 느낌이 다를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무대 바로 앞에서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를 직접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은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후 이윤택 연출가와의 약 1시간에 걸친 질의·응답·설명 시간에도 어떤 비평의 입장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후 함께 연극을 본 학우들과의 토론과 수업중 선생님의 설명, 그리고 여러 가지 비평들을 통해 나름대로 관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짧은 소견이지만 솔직한 느낌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갈까 한다.먼저 이 글의 중심관점이 되어줄 서사극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서사극은 브레히트에 의해 종래의 극장과 표현주의 연극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었고 그는 맑시즘학습으로 사상적·이념적 배경을 굳혀갔다. 그 특징으로는 첫째, 현실의 파악을 위해 자체가 완성된 구조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종래의 희곡과 달리 직선적 인간관계의 사슬을 벗어나 곡선을 그리면 진행된다는 것이다. 둘째, 각장면은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가지고 셋째, 연극전체의 결말에 대한 긴장보다는 각장면의 진행과정에 대한 긴장이 더 중요시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새로운 주요 요인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침착하게 관찰하고 숙고하며 통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가짐으로써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사건진행에 대해 주체성을 가지게 되는 즉 예술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여기서 특히 중요시되는 것이 '소외효과'인데 브레히트는 항상 예술과 현실의 구분을 강조하고 현실의 인식과 그것의 실제적 변화에 대한 혼동을 금지함으로써 비판능력을 상실케 하는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눈에 보여지는 것과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법으로 '해설자의 개입'과 '노래의 삽입'이라는 서사극 특유의 기법이 사용되는데 여기서 해설자는 공연에 참여하지 않고 연극 밖에서 연극적 사실을 연결해주거나 또는 해설하는 서사적 보고자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시골선비 조남명'이라는 연극을 보고 난 느낌을 적어볼까 한다.'시골선비 조남명 은 선비 조식의 의식과 삶의 태도를 밝혀내면서 한국의 전통지식인이었던 선비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공연된다. 전통의 동시대적 수용 이라는 연출가의 말처럼 연극을 역사적 진실을 동시대적 진실로 이끌어내는 현실반영의 작업으로 보고 보다 바람직한 미래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입장에서 정치적 혼돈과 인문적 지식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사회에서 한국적 지식인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입장인 사회에 대한 연극적 상소 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특히 연극의 대사회적 의식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점점 개인중심사회로 변해 가는 이 사회에 전통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민족의 집단의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 주제의식의 특징이다. 이러한 면에서 연출자는 서사극적 요소를 충분히 따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비판의 소지가 생긴다.이 연극의 이러한 주제의식은 그저 관객들로 하여금 한번 생각게 해본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짤막짤막한 각 장에서 나름의 중심적인 대사들로 그 의미를 강조하려 하지만 그 전달이 뻔히 기대된 결과에 의해 한번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억에 나오는 대사중 몇 개를 옮기자면 조식의 상소내용중 왕후는 궁정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임금은 고아일 뿐 이라는 목숨을 건 대사와 글읽는 선비를 가까이 하십시오. 글은 곧 마음이니 마음이 통하는 글을 만나면 인재를 만나게 되고, 그 인재가 전하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등의 대사, 사약을 마시는 장면에서 소윤 파의 망령들이 외치는 자식에게 글을 가르치지 마시오 라는 역설적인 대사는 그 장면에서는 나름의 설득력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에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종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나는 조식이 춤을 추며 산중으로 사라져가는 너무나 기대된 뻔한 결과에 의해 오히려 관객의 관심을 본의 아니게 해피엔딩으로 돌리게 됨으로써 그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자세한 설명에 그친 극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또한 이 극의 주제의식의 근저에 깔려있는 민족주의적인 발상은 브레히트 서사극의 학문적 기초인 맑시즘 중에서도 특히 유물론적인 사관과는 정반대의 개념이 아닐까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게 된다. 물론 연극이라는 소재의 한계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존재가 사유를 결정한다는 유물론적 사관에 비해 전통적인 민족의식의 발현으로 현실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는 것은 오히려 관념론적 사관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다음으로 소외효과 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서사극적 기법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발견된다. 시골선비 조남명 에서는 역시 전통문화의 발현으로 전통문화양식을 각 장의 중간 중간에 다루고 있다. 특히 이것은 지금까지의 기층민중 연희양식이 아닌 선비문화의 대표적인 소리양식인 시조·영가를 사용하였고, 양반층의 풍류도 였던 양반춤·택견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도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택견장면이 나올 때는 놀랍기도 하고 잠시나마 그 감동에 젖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것들이 서사극적 기법으로서 제 역할을 했는가 에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각 장의 무대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의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막을 내린 것도 아니고 그 중간 중간에 무대장치의 교환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운데 너무 자주 춤과 노래가 아무 의미 없이 사용되지는 않았나 한다. 딱히 극의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도 아닌 것이 그저 각 장의 사이 사이에 사용되기만 했다고 해서 서사극적 요소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춤이나 특히 택견이 왜 이 극에서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지 그 의도가 매우 궁금하게 느껴졌는데 그에 대한 설명적인 요소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이러한 요소의 사용을 두고 이윤택 연출가는 관객들이 한국 특유의 느린 박자에 그리 지루해하지 않아서 너무 기뻤고 여기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연출가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고대신문 의 평을 빌리자면 오히려 적절하게 빠른 박자를 사용함으로써 지루한 요소를 줄이고 느린 박자를 더 강조하는 일석이조 의 효과를 노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마지막으로 해설자의 역할에 대한 문제다. 분명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는 해설자는 극 속에 존재하지 않고 극 밖에서 연극적 사실의 연결과 서술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시골선비 조남명 에서는 사약을 마시기 전과 마신 후의 소윤파 관료들 외에는 해설적 요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들 또한 극 속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로 이루어짐으로써 서사극적 요소엔 반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이렇게 시골선비 조남명 은 몇 가지 면에서 서사극적 요소와 결합되기도 하지만 또한 상충된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움에 대한 것이다.처음 문예회관 대극장앞에 걸린 휘장을 보고 손숙, 신구라는 인지도 높은 배우들의 출연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연극을 보고 싶은 욕구가 배가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시간적으로도 짧았고 별로 눈에 띠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이 출연한 장면이 조식의 생사가 오가고 극 중 가장 문제의식이 많이 담긴 중요한 장으로써 갈등의 최고조 부분이긴 했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불확실한 대사전달과 짧은 출연시간, 그리고 윤원형의 역할을 맡은 신구의 장난기 어린 연기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어느 비평 글에서 나와 비슷한 의견을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적인 충실성의 변화를 꾀한 것이 아니라 외형적인 화려함만 꾀함으로써 연극전체를 쉽게 이끌어가고 관객으로 하여금 오히려 실망감의 소지를 남겨주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전문적인 비평가가 아닌 연극에 대한 초보자마저 이렇게 느낄 정도라면 이는 연출가를 포함한 극단 전체가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