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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퀴리의 일생, 업적
    방사능도 막지 못한 마리 퀴리의 열정천재 마리 퀴리의 일생과 업적에 대하여수강과목 : 천재들의 혁명담당교수 :이름 :학과 :학번 :제출날짜 : 2022.10.24.목차1. 서론 .21) 내가 생각하는 천재의 정의2) 내가 생각하는 천재 마리 퀴리2. 본론 ..41) 마리 퀴리의 생애 & 업적2) 마리 퀴리의 철학3. 결론 ..84. 참고문헌 .............9※ 특별활동...........10 설문조사 전문가 인터뷰1. 서론1) 내가 생각하는 천재의 정의천재의 사전적 의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천재를 정의하기에는 천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위대함과 힘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천재라는 용어에는 신비감과 함께 부러움과 경계심이 묻어있다. 역사적으로 플라톤은 시인의 천재성을 신에 의한 영감과 광기로 연결하고 있고 르세상스 시대에도 신적 재능의 희귀함을 보여주는 예외적인 인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천재를 사용하였다. 근대에 들어 천재는 비범하고 순간에서 벗어나 있으며, 자신의 시대에서 벗어난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타고난 재능,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능력노력으로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 역시 천재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릴 때는 학업적으로 뛰어나지 않았으나 자신의 관심분야에 몰두하여 스마트폰 혁명을 이끌어낸 스티브잡스가 이런 학습된 천재, 후천적 천재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즉, 재능으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 뛰어난 업적이 필요조건이라면 선천적인, 초월적인 재능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이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쌓은 재능 역시 충분조건이다. 후천적으로 쌓은 재능이라고 하지만 뒤늦게 두각이 나타났을 뿐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2) 내가 생각하는 천재 마리 퀴리내가 생각하는 천재의 정의인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 또는 후천적인 노력이 결부되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 존재”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나는 마리 퀴리를 선정하였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퀴리부인”을 통해서 마리 퀴리를 알았을 때는 그저 최초의 노벨상을 받은 여성과학자, 부부 공동수상, 그리고(위인전 이름부터 “퀴리부인”이었기에) 피에르 퀴리의 부인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마리 퀴리를 인식해왔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영화 “마리 퀴리”를 보고난 후 단순히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과학자만이 아닌(물론 이것만 으로도 대단하지만)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사회를 세상을 바꾼 혁신 까지 내가 정의하는 천재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열등하다고 무시받고 차별받던 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1등을 휩쓸던 우등생이었고 대학 입학 후 물리학 수석, 수학 차석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영재성을 드러냈다. 이후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하여 라듐을 발견하고 방사능, 방사선을 정의하며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주도하였다. 따라서 마리 퀴리야 말로 내가 그토록 되고 싶고 동경하는 천재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2. 본론1) 마리 퀴리의 생애 & 업적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였으며 학교에 러시아 감독관이 방문하여 러시아어로 우리의 황제가 누구냐는 질문에 러시아어로 “차르 알렉산더 2세”라고 대답을 한 후 감독관이 뜨자 담임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애국심이 강렬하였다.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실직 등으로 집안 형편은 어려웠으나 학업성적이 뛰어났고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폴란드에서 여자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기에 프랑스로의 유학을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유학비, 학비를 모으기 위해 폴란드의 한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일하였으며 그곳에서 큰아들 차시미르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가정교사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자 집안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고 때마침 소르본 대학교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아 1891년 11월, 여학교 졸업 후 거의 8년이 지난 23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한 마리 퀴리는 여전히 가난했으며 더욱 공부에만 몰두했기에 난방도 잘 안 되는 방에서 하숙을 하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일 까지 생겼다. 공부 외에는 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제대로 먹지 않았고 쉴 때도 가벼운 공부로 머리를 식혔다고 하니 그녀의 학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결국 1893년 물리학 석사학위를 수석으로 취득한 후 바로 다음해인 1894년 두 번째 전공 수학에서 차석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94년 국사산업진흥학회에서 금속의 자기적 성질을 분석하는 연구를 받은 후 연구할 공간과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찾는 과정에서 피에르 퀴리를 소개받게 되었다. 학문을 위해 35살 까지 여자를 멀리했던 피에르는 그녀의 천재성과 과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연구에 대한 열정에 반해 마리 퀴리에게 청혼을 했고 1895년 7월 26일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1897년 9월 12일 퀴리 부부는 첫째 딸 이렌을 출산하였고 육아와 연구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시아버지가 자녀 양육을 도와주기로 결정하 가까이 되는 우라늄역청을 부수고 끓이며 정련하여 1898년 6월 마침내 우라늄보다 300배 이상 강한 반응을 보이는 물질을 얻었고 마리 퀴리는 자신의 조국을 기리기 위해 이 물질에 폴로늄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1898년 12월 우라늄보다 900배 높은 방사능 물질을 추출하였고 이에 대해 라듐이라고 명명하였다.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이후에도 화합물이 아닌 순수한 형태의 물질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여 1902년 염화라듐 0.1g을 추출해 냈다. 1903년 방사능, 방사선에 대한 연구 공로로 피에르 퀴리,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우여곡절이 없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남자인 베크렐과 피에르 퀴리만이 수상자로 선정되어 피에르 퀴리가 이 연구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한 것임을 주장하여 마리 퀴리도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마리 퀴리가 아닌 피에르 퀴리의 아내라는 뜻인 “마담 퀴리”로 불리었다.1905년 둘째 딸 에브가 세상에 태어났으나 1906년 4월 18일 피에르 퀴리가 방사능으로 인해 허약해진 상태에서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 퀴리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이 슬픔을 연구에 더욱 몰두하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1906년 11월 남편 피에르 퀴리의 교수 자리를 이어받아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1908년 소르본 대학교 최초의 여성교수가 되었다. 1911년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고 순수 금속라듐 분리해 낸 공로로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로서 남녀를 통틀어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1910년부터 연구실 동료인 폴 랑주뱅과 불륜관계를 맺었고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무렵 그 사실이 일간지 ‘르 주르날’을 통해 프랑스 전역에 알려졌다. 폴란드 이민자, 여성, 유태인 이라는 비주류 존재가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려고 하고 노벨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수 많은 프랑스인들이 마리 퀴리를 비난하고 파리를 떠나라고 협박하였으나 라듐화장품 등 모든 분야에서 라듐을 이용한 물건이 만들어질 정도로 광풍에 가까울 정도였기에 그 특허권이 있었으면 어마어마한 부를 이루었을 것이 분명하나 퀴리 부부는 과학적 발견으로 돈을 버는 것은 과학 정신에 반하며 라듐은 하나의 원소로 이는 인류 모두의 것이라며 모든 과학적 발견과 지식을 공유하였다.1921년 미국의 여성잡지 편집장 매리 매팅리 멜로니가 마리 퀴리를 미국으로 초정하였고 미국에서 강연과 연설, 모금활동을 하며 마리 퀴리는 가난, 여성, 이민자, 유태인이라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신의 삶과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 주도하는 현대 여성으로 그 명성을 더욱 높였다. 1934년 7월 4일 오랜 방사선 피폭으로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등 더 이상 손 쓸수 없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향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마리 퀴리는 목격하지 못하였으나 사망 1년 후 그녀의 딸 이렌 퀴리역시 부부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여 최초의 모녀 수상이자 2대에 걸쳐 부부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업적을 이루었다.2) 마리 퀴리의 철학마리 퀴리는 여성도 이민자도 유태인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과학자 그 자체였다. 요즘 유행어 중에 “편견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타인의 인종, 성별, 연령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동등하게 대할 때 나오는 코믹한 모습을 지칭하는 밈의 일종이다. 나는 마리 퀴리야 말로 자신에 대한 열등감, 피해의식 없는 언제나 과학 앞에서 순수하고 당당한 본인 스스로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리 퀴리가 태어난 시대는 과학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실증주의 철학이 유행하던 사회로 마리 퀴리 역시 과학을 하며 모든 주장과 결론은 확인 가능한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믿음을 갖고 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언니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 시련과 슬픔을 종교와 감정으로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고 신에 기대는 것을 위선이라고 생각하였다. 학교를 다니고 과학 공부를 하며 이러한 생각은 더 확고해졌고 이에 마리
    독후감/창작| 2023.01.12| 11페이지| 1,500원| 조회(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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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철학]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께서 레포트를 쓰라고 과제를 내주실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라는 책의 제목은 처음 들어본 책이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알 수 없는 머리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학문이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고등학교 때 윤리시간에 배웠던 서양 철학 사상가들의 이론 역시 나에게는 따분하고 애매한 말들이라는 기억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철학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저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단정짓고 느껴보지도 않았던 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문과여서 그나마 이런 인문 사회학 쪽에 가깝게 공부했지만 대학을 이공계로 오면서부터 나에게 철학과 같은 인문 사회학을 한번 생각해보고 느껴보기 위해 그런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벅찬 일이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2학년이 되니 어느 정도 이공계의 공부에 익숙해지고 시간도 관리가 되면서 고등학교 때 공부했고 재미있어했던 인문 사회학을 머리가 굳어버리기 전에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의 수준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 수준을 공부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인문 사회학 쪽에서 왠지 폼 나 보이고 어려워 보이는 철학수업을 들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수업을 들었지만 이년간 다른 쪽으로 굴려온 머리는 쉽게 방향을 틀지 못하였다. 이름이나마 겨우 들어본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이 갑자기 머리에 주입되자 다양한 가치관의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 주로 공부하셨다는 니체는 그 유명함에 이름만 들어봤을 뿐 고등학교 때 배우지도 못한 철학자였다. 기독교신자인 나에게 "신은 죽었다" 라는 말을 한 니체는 그저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고 있는 철학자였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레포트로 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니체라는 벽에 가로막혀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책이라는 것은 저자의 사상이 그대로 배여 있으므로 그 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나의 가치관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아무래도 나보다 더 월등히 정신 하는 말들이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의 말인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렇게 하기를 포기하고 책을 읽을 때 니체가 비판하는 모든 것들을 기독교라고 두는 극단적인 처방을 하고 읽으니 한결 이해가 쉬었다. 내가 느꼈던 기독교에서 아리송하고 의문이 갔던 점들은 니체 앞에서 가차없이 비판의 소재가 되어버렸다. 니체의 말은 어려웠지만 그 말속에 숨겨져 있는 니체의 본 뜻들을 내가 나름대로 비약해서 해석하니 쉬었다. 물론 내가 해석한 것은 그저 내가 비약해서 쉽게 이해한 것뿐이지 니체가 말하려고 하는 전부를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니체가 말하려고 하는 바의 10퍼센트 아니 5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한 체 어쩔 수 없이 그저 읽어 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 속에서 내가 찾은 것은 그나마 초인이 이라는 것과 현실이었다.니체가 살았던 19세기 말에는 종교개혁도 끝나고 과학의 발달과 그로 인한 산업혁명으로 신의 위치는 점점 좁아만 가는 시대였다. 그리고 철학 역시 그 시대에 맞는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마을의 루터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가치관 아래에서 자란 그였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니체는 단지 고독을 사랑하는 온순한 청년, 그리고 목사로서의 길과 철학자로서의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이었다. 본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동시에 공부하던 그가 과감히 신학을 버리고 고전문헌학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데에는, 포타에게 받은 고전교육의 영향, 니체 자신의 고대에 대한 사랑, 문헌학자 리첼 교수에 대한 존경과 그의 권유, 신학에 대한 반감 등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기독교를 떠나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공격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존주의와 생철학을 받아 들였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창조하였다. 철학자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느스터교의 신을 그와는 전혀 무관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매개체로 쓴 것이다.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짜라투스트라가 인간세상을 떠나 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 하산하면서 한 이야기들이다. 그중 1,2부에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지고 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인간 내면의 새로운 발견을 뜻하는 것으로 그동안 인간을 지배해왔던 기독교와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벗어나 초극에 도달한 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1부에서는 우선 가장 니체가 중요하게 여기고 말하려고 하는 초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초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과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형이상학적인 가치관으로 인간이 무시된 세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도덕적 자기 초극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짜라투스타라가 산에서 내려오고 짜라투스트라의 말은 시작되었다. 초인을 외치고 초인의 기반인 대지를 그는 외쳤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는"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이렇게 표현하면서 인간은 초극되어야 할 존재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더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본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이 사라진 위선과 가식에 갇혀있는 이 세계를, 배후세계론자들 즉 형이상학자들의 허황된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이 모든 가치들을 떠나 육체를 중시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런 기독교와 형이상학자들에게서 온 삶에 대한 권태에서 떠나 초인을 향해 인간의 본질을 찾고 더 나아가 형이하학적인 세계를 뜻하는 대지에 삶의 기반을 두고 그것들과 싸우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맞서 싸우면서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고독에 사로잡혀 고뇌와 싸우더라도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인간상이 될 때가 비로소 초인의 인간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또한 초인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정신이 참된 자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정신적 단계인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변화는 인간이 초인으로 나아갈 때의 과정으로, 처음에는 무거운 짐을 갖고 있는 낙타처럼 정신적 자유를 얻지 못하고 전통의 굴레에 매여 세상의 가치들을 그저 매고만 있는 상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정신적 고뇌에서 기존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아니 버렸다기보다 더 위에 올라간 상태에서 정신적 자유를 찾아 창조의 단계에 오른 인간의 모습을 사자라고 비유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복종하고 메여있던 것이 낙타였다면 다시 이모든 것을 버려버리고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고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자인 것이다. 이런 정신적 자유를 찾은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사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니체는 초인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어린아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 긍정을 하는 어린아이의 사유의 세계. 바로 처음 세상에 나올 때 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외부적인 유토피아 사상에 젖어 있지도 않고 자신의 의지와 행동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그러나 악하지 않게 행동하는 어린아이의 세계. 무수한 세계의 끝에 비로소 긍정자의 반열에 오른 초인의 모습, 즉 짜라투스트라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여기의 세 가지 비유는 니체 자신의 철학을 보이기 위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성장과 초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을 신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생의 가운데서 인간 본질 그 자체에서 찾아낸 것이다.이 비유는 개인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모습으로 확대 비유할 수 있다. 복종자였던 낙타는 즉, 기독교적 도덕윤리 아래서의 인류는 신의 죽음을 확인하고서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 사막으로 간다. 사막에서 낙타는 사자로 돌변하다. 바로 인간 존재의 가치를 부여해오던 신이 죽음에 따라 인간은 무의미에 도달하는 것이다.이렇게 1부에서는 초인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초인을 초점으로 하여 창조적 인간으로의 성장과,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도 자 신의 향상을 위한 계기로 바꿔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가르침의 씨를 뿌려놓은 뒤 제자들과 작별하고 홀로 있기를 결심한다. 그는 고별사를 통해 제자들이 자신의 설교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도록 타이른다."너희들이 모두 나를 부정했을 때 비로소 나 는 너희들 옆으로 돌아올 것이다.”칩거 중이던 짜라투스트라가 제자들을 오해와 타락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는 것으로 2부는 시작한다. 2부에서는 사회주의적 평등사상이나 민중의 군중심리를 선동하는 혁명가의 정체를 파 헤쳤다. 자신의 설교 내용이 낳은 오해를 직접 풀기 위해서다. 니체는 이 장에 들어오면서 1부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겠다고 언급을 한 정도라면 이제는 본격적인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한 단계로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어쩌면 형이상학자들 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말들로 혼란스럽게 하였더라면 2부에서는 초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 기존 가치의 부정과 그로 인한 생의 의지인 권력에의 의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그동안 기독교적인 가치관이었던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동정하는 모습들 그리고 기독교라는 종교로 둘러 쌓여 벌어지는 각종 위선들을 비판하였다. 마치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욕했듯이 니체는 예수가 없는 지금 남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은 거짓 선지자에 위선자라고 보며 그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뿌려놓은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별아래 종교라는 이름 하에 행해졌던 악행 역시 비판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고 삶의 주체가 될 때 즉 초인의 모습에 가까워지려고 할 때 비로소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니체는 삶, 즉 생에 대해서 부단한 긍정싶다.
    인문/어학| 2002.06.21| 4페이지| 1,000원| 조회(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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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윈도우 OS] 윈도우XP의문제점과 MS의독점전략
    윈도우 XP의 출시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전략1.서론마이크로소프트사는 MS-DOS를 개발한 이래로 컴퓨터 OS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1992년 Windows 3.1을 출시하면서 윈도우 시리즈의 시작을 예고하였고 1995년 Windows 95를 출시하여 컴퓨터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Windows 95가 획기적이라 함은 그동안 16비트를 운영체제로 하던 도스에서 32비트를 지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속도가 두 배가 된 것 뿐 아니라 실질적인 정보의 이동이 절반으로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실질적인 작업의 속도는 2배보다 훨씬 더 빨라지게 되었다. 윈도우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O/2나 UNIX 등의 OS들이 32비트를 지원하는 기능을 포함시켰었다. 하지만 이러한 32비트 운영체제들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Windows 95는 가장 범세계적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최초의 OS로 인정받게 되었다. Windows 95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선점형 멀티 테스킹 기능은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예고하였으며 컴퓨터의 대중화를 불러왔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Windows 95를 시작으로 98, NT, 2000, Me 와 같은 좀더 발전된 제품을 내놓으면서 컴퓨터 운영체제 분야에서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출시되는 가정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는 95%이상이 윈도우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윈도우의 컴퓨터 운영체제의 점유는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윈도우를 사용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윈도우의 문제점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용자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윈도우의 약점이었던 블루 스크린 즉 안정성 문제와 관련해 사용자들은 불평만 할 뿐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소수의 컴퓨터 전문가들만이 유닉스를 이용한 리눅스를 사용하여 그 대안책을 만들었을 뿐이다. 즉 윈도우의 출시로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은 그전 도스일 때 보다 쉬워졌다. 하지만 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윈도우 XP의 프로그램의 기능적 문제보다 윈도우 XP속에 숨어져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욕심을 알아보겠다.2.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올 봄에 개봉된 패스워드란 영화를 보았다. 거기서 보면 거대한 컴퓨터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프로그래머들을 독점하고 남의 소스를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의 소스는 철저히 비공개 하여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시장에서 팔고 시장을 독점한다. 이에 대항하는 집단은 소규모 집단의 프로그래머들로 프로그램 소스의 공유를 주장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년 문제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규제 상황을 비슷하게 그려낸 영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지식의 독점이다. 윈도우를 쓰다보면 블루 스크린과 치명적인 오류라는 메시지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런 화면이 나타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셋버튼을 눌러버릴 것이다. 그리곤 이러한 문제가 또 안 생기기를 기대하며 부팅 되는걸 기다릴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프로그램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밖에 근본적인 해결을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결국 모든 컴퓨터 사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반면에 리눅스의 경우 프로그램 소스를 완전 공개하는 GNU 정신으로 누구나 자유스럽게 운영체계를 만들고 성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게 하였다. 이 두 운영체계의 차이는 리눅스의 경우 누구나 성능 좋은 운영체계를 마음껏 쓸 수 있지만 윈도우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지적 사용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더 나은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리눅스와 같은 정보공유 운영체계를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견제하여 독점을 점점 심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 대한 전반적이 내용이다.개 요미 법무부가 MS를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MS가 막강한 지배력 으로 컴퓨터시장에서 경쟁자들을 괴롭히고 경쟁을 억눌렀으에 의해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어떤 사 안에 대해서 사실이 어떻다는 것을 미리 적시하는 것으로 결국 [예비 판결]의 성격을 갖는다. 앞으로 판결을 내릴 경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의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 을 미리 통보하는 것. 판사가 직접 판결을 피하고 판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시카고 트 리뷴지(지)는 내용이 강했기 때문에 판결이 나기 전에 법무부와 MS가 협상을 통해 타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MS가 강력히 반발, 타협이 쉽지 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미국 법무부의 향후 대안미 법무부는1 MS를 소기업 단위로 쪼개거나 혹은 해체하는 방안- MS사는 지난해 7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토머스 잭슨판사로부터 회사를 운영체제(OS)회사와 응용 소프트웨어회사로 분할하라는 명령을 받고 불복하고 현재 항소심을 대기중이다. 이에앞서 잭슨판사는 MS가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 경쟁을 방해했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이번 재판은 1심 판결 후 몇가지 상황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 기업이 익 보호에 관심이 많은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특히 MS는 지난 대선기간 중 거액의 정치자금을 공화당의 부시후보 진영에 냈던 것으로 알려졌 다. 재판부의 성향도 1심 때와는 다르다. 항소법원은 98년에도 MS에 유리한 판 결을 내린 적이 있으며 재판장(해리 에드워드)도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여기에다 아직 정식으로 취임하진 않았지만 미 법무부 반독점국장에 친기업 성 향의 찰스 제임스가 지명된 것도 변수다. 26일 첫날 심리에서 에드워드 재판장은 원고인 연방정부와 19개 주정부에 대해 "원고 주장에 의하면 하나의 독점기업을 다른 독점기업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물었 다. 이에 대해 원고측은 MS가 자사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의 시장지 배력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한 증거라고 응수했다.MS측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경쟁을 방해하우리 입장을 정확히 대변하지 않았다』고 표명했다.반면 MS 대변인 마크 머레이는 『미국 이익에 도움이 안된다』며 『AOL과 타 임워너가 합병해 우리와 경쟁하려고 하는 판에 분할을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라 고 말했다.한편 미국의 유명한 시장조사기관 IDC는 『MS의 독점소송 해결책은 MS를 몇 개의 독립회사로 분할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하며 『소비자나 업 계, 그리고 MS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이 기업을 생산부문의 기능에 따라 분리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2 다른 컴퓨터 업체들도 윈도 운영체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법 등 강력한 제재를 법원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최후진술을 앞두고 있는 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 도의 소스코드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MS 빌 게이츠 회장은 18일 한 인터뷰에서 『정부와 벌이고 있는 반독점법 위반 소송의 원만한 해결 을 위해 윈도의 소스코드를 다른 컴퓨터업체는 물론 경쟁업체에도 개방해 윈도 의 변형판을 만들거나 파는 것을 허용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빌 게이츠의 이번 발표는 「윈도2000 공개 행사」가 시작된 몇시간 후에 나온 것인데 MS 대변인 짐 컬리난은 이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MS의 윈도는 PC OS시장의 95%를 점유하며 이 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 하고 있는데 윈도의 소스코드가 개방되면 세계 컴퓨터시장에서의 MS 입지약화 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빌 게이츠 회장의 윈도 소스코드 공개 발언과 관련해 「MS 소송」서 19개 주 정부의 변호를 맡고 있는 스테판 후크는 『게이츠가 진정 그러길 원한다면 의미 심장한 발전』이라며 『게이츠가 분할 대신 시장약화를 택한 것 같다』고 언급 했다.한편 MS와 서버 OS시장에서 겨루고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최근 리눅스에 대항하기 위해 자사 중대형컴퓨터 「솔라리스8.0」의 유닉스 소스코드를 공개한 다고 밝혀 올 세계 컴퓨터시장은 「오픈소스코드」 열풍이 거세질 전망이다.선은 급속히 시장을 확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번 미국연방법원의 결정은 "언론의 보도"대로 "법원 밖에서" 미국정부와 MS사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여진다.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독점한 증거로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끼어 팔아서 경쟁업체인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또한 막강한 지배력으로 컴퓨터시장에서 경쟁자들을 괴롭히고 경쟁을 억눌렀으며,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정부는 주장하였다. 이에 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문제의 해결점 타협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 정부로써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함부로 어떻게 할 상황이 못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빌게이츠는 소스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MS 빌 게이츠 회장은 18일 한 인터뷰에서 『정부와 벌이고 있는 반독점법 위반 소송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윈도의 소스코드를 다른 컴퓨터업체는 물론 경쟁업체에도 개방해 윈도의 변형판을 만들거나 파는 것을 허용할 의사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리눅스와 같은 운영을 하겠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러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이번에 출시된 Windows XP 는 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3. Windows XP의 문제점윈도우 XP의 문제점은 현재 새로 나온 프로그램이기에 기능면에서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호환성에서 아직 딸린다든지 시스템의 사양이 너무 높다던지 이런 프로그램의 기능상 문제말고 윈도우 XP안에 숨겨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욕에 관한 문제점을 알아보겠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반독점법의 제재를 받은 주원인이 윈도우에 익스플로러를 끼워 넣어 팔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윈도우 XP는 더 많은 소프트웨워를 마이크로소프트사내에서 만든 것을 끼워 넣어 팔고 있다. 익스플로러의 새로운 버전인 익스플로러 6.0 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지우지도 못하게 되있다. 그리고 MSN 메신저, 미디어 플레이어, 와 같은 현재 MS사의 대표적인 인터넷 응용 프로
    공학/기술| 2001.12.23| 8페이지| 1,000원| 조회(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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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미술의 이해] 고려대학교 박물관 견학기
    고려대학교 박물관을 다녀와서우리학교 안에 高麗大學校 博物館이 있다는 것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대충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1학기동안 이공대생이라 사대까지 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博物館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高麗大學校 博物館에서 특별전시회를 한다는 포스터를 지나가는 길에 보고 가볼까 하는 생각만 해본 정도였다. 미술관이라고는 어렸을 때 가본 지금은 자리를 옮긴 國立中央博物館과 호암미술관 그리고 現代미술관정도 였고 가도 그저 소풍가는 기분으로 훌쩍 둘러보고 나온 경험밖에 없었기에 博物館의 이미지는 나에겐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위해 공들여 책을 고르는 이미지보다 길옆 만화방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대충 만화책을 훑어보는 장소라는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高麗大學校를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못 가볼 뻔한 博物館이었는데 이번 학기에 전통미술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가게되었다. 박물관의 첫 모습은 여학생회관 옆에 있는 얼핏보면 校內의 다른 건물에 비해 초라해 보여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博物館이었다.돌계단을 올라가자 건물 앞의 조그마한 마당에 일렬로 늘어선 石塔과 군데군데 놓여있는 彫刻像들이 눈에 들어왔다. 高麗大學校 응원가에 있는 석탑과 우리학교를 표현하는 말 중에 석탑이라는 말들을 보면서 그동안 石塔이 우리학교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해왔었는데 博物館 앞에 놓여있는 석탑들을 보면서 나의 의구심은 한층 깊어졌다. 결국 나중에 알아본 결과 석탑은 고대 대학원 건물 꼭대기에 있는 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겐 博物館 앞에서 본 石塔이 더 고대의 분위기와 고대의 기풍을 느끼게 해주었다. 응원가 석탑에서 나오는 석공의 땀방울과 돌과 쇠망치 그 소리가... 그 표현의 멋이 석탑의 모습에서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석탑을 뒤로하고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내 눈앞에 들어온 것은 세 마리의 호랑이 그림이었다. 自由 正義 眞理 우리학교 교훈의 이름을 딴 그림이었는데 호랑이의 모습에서 왼쪽의 포효하는 호랑이는 자유의 이미지를 가운데에서 정면을 쳐다보는 호랑이는 정의의 이미지를 오른쪽에서 먼가 생각하는 표정의 호랑이는 진리를 나타냄을 느꼈다. 처음으로 들어간 전시실은 1층에 있는 제1 전시실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쪽의 나무 가마와 오른쪽에 민영환 선생님과 유길준 선생님의 遺品이 보였다. 두 분의 유품은 그동안 우리학교 박물관을 무시했던 나의 偏見을 사라지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주권이 빼앗기는 것을 막으려다 실패하자 슬픔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민영환 선생님과 西遊見聞을 쓰신 유길준 선생님의 유품에는 두 분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 했다. 그 옆으로 각종 전시물들이 보였다. 과학기구들이 보였는데 國寶 제 230호인 渾天時計가 보였다. 천체를 관찰할 때 쓰던 渾天儀가 붙어있고 커다란 상자 안에 톱니바퀴와 추가 들어있었다. 서양의 자명종시계를 보고 1669년 송이영이 만들었다고 적혀있었다. 여기서 국보라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학교 박물관의 수준에 놀랐으며 조선시대에 기계로 가는 시계가 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옆으로는 우리나라의 民俗 工藝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가본 박물관에서 몇 점안되던 民俗 工藝品들을 전시해 놓은 것과는 달리 수많은 민속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조선시대에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노리개, 주머니, 담뱃대, 銀粧刀, 머리장식, 놀이기구, 신발 등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고 그동안 그냥 지나쳤던 民俗 工藝品들이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손으로 만들었지만 악세사리에서 정교한 조각과 보석수공의 섬세함이 보였으며 깔끔한 뒷마무리가 요즘 시중에 나도는 중국제 민속 공예품들과는 수준이 틀렸다. 그리고 담뱃대와 놀이기구에는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목공예에 대해 설명하신 손으로 깍은 투박한 맛과 각자의 독특한 개성이 돋보였다. 민속 공예품에서 나에게 신기하게 다가온 것은 朝鮮 여인들의 머리 장식도구였다. 비녀정도는 많이 봐서 익숙했지만 요즘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높은 지위의 여성들이 머리를 크게 장식한 도구들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머리를 크게 장식하는 것이 그 당시 머리를 꾸미는 유행이었으며 큰 머리는 가발로 만들었는데 다리라 하고 그 주위에 꽂은 장식은 떨잠이라고 하였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여성들의 머리장시에 드는 비용이 집안을 망하게 할 정도로 사치가 심해 머리에 얹는 다리를 朝鮮時代 후기에는 나무로 만든 떠구지로 대체하게 한 것을 보고 여성의 자기를 가꾸려는 욕심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민속 공예품들의 주된 색은 붉은색 녹색 흰색 검은색이 주로 보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色 관념을 따른 것이었다. 오른쪽 벽면에는 주로 생활도구와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농기구들은 크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컸고 항아리 역시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대가족제도의 특성에 나온 커다란 항아리에는 우리 민족의 여유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생활도구에 묻어있는 삶의 지혜와 서민들의 멋은 일반 백성들의 힘든 삶 속에서도 서로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느낌이 나는 도구들이었다. 이층에 있는 제 2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커다란 경복궁 지도가 있었다. 東闕圖라고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림 여러장을 이어 만들어 넓은 경복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화가들이 여럿이서 그린 후 합쳐놓은 그림인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작업된 작품이었다. 2층의 제 2전시실에는 선사시대의 유물들과 先史時代에서 조선시대까지의 陶磁器들이 있었고 한쪽 면에는 수많은 서예와 그림이 있었다. 처음 본 것은 벽면에 붙어있는 거대한 탁본이었다. 울산 천전리의 岩刻畵를 拓本한 것이었다. 그 속에는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던 암각화의 주술적 의미인 同心圓이 보였으며 한쪽으론 많은 사냥을 바라는 동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탁본 한쪽엔 한자가 쓰여 있었는데 이는 처음엔 청동기 시대에 岩刻畵가 있었고 그 뒤에 삼국시대 이후에 신라에서 새긴 것이었다. 하나의 유물 속에 다른 시간대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있고 역사의 흐름과 나의 손길이 닿는 지금 이 순간이 나중에 또 다른 역사의 손길로 남게됨을 생각하니 전율이 흘렀다. 제 2전시실은 이렇게 선사시대의 각종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고 마지막으로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를 전시하여 자연스럽게 관람의 초점을 도자기의 역사로 넘기게 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밑이 좁은 토기들과 교과서에서 들어보기만 한 미송리 토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삼국시대의 토기들이 있었다. 삼국시대는 각 나라마다의 고유한 문화의 멋이 존재하였듯이 토기와 장신구에서 그 나라들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다음 벽면엔 내가 비록 도자기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려시대의 象嵌靑磁가 눈에 보였다. 전엔 잘 못 느꼈던 靑磁의 은은한 비취색과 거기에 조각된 세련된 무늬들 그리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우면서 각각이 개성 있는 형태의 조화가 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었다. 고려시대 귀족사회 안에서 나타난 화려함과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토기기술이 접합되어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청자가 태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12세기 초 개발된 象嵌法은 청자의 아름다움을 더욱 끌어 올려놓았다. 고려시대의 청자를 지나 조선시대의 분청사기가 보였다. 분청사기는 고려의 것에 비해 색의 화려함과 정교함에서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지만 분청사기의 특징은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粉粧技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인 것 같다. 이러한 특징은 분청사기가 儒敎의 사회기반 위에서 성장하였고 고려 이래의 불교와 함께 표면상으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전통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 학교에서 출토된 國寶 제 177호인 糞淸磁印花文胎壺는 이공대인 애기능 옆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니 더욱 정감이 갔다. 그릇에 꽉찬 무늬들은 전혀 어지러워 보이지 않고 서로서로 조화가 잘 되 있으며 가운데의 파도무늬띠는 단조로움을 피하고 항아리를 돋보이게 해주었다. 분청사기의 옆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백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백자는 선비정신을 나타낸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나는 이러한 백자보단 粉靑沙器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백자의 깨끗함과 섬세하게 그려진 靑畵白磁의 용무늬들은 백자의 멋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끝으로 서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東洋畵의 멋은 그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들은 동양화 기법들을 알고 그림들을 보니 그림 하나하나에 작가들만의 특징이 더욱 돋보였다. 내가 동양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양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연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모습과 온화한 표정이 보는 나를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또 여백을 살리면서도 그림 군데군데 보이는 작가의 세밀한 표현력은 동양화의 말할 수 없는 멋이었다. 유명한 정선, 김홍도, 장승업의 그림과 추사 김정희의 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물관 見學의 큰 의미를 남겨주었으며, 그 외에 다른 작품들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나로 하여금 그림 속의 인물들을 부럽게 여기게 하였다.
    예체능| 2001.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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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 여성관련법률에관한 의견
    김영삼 대통령 집권시절 대통령은 여성을 중용하겠다는 여성정책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그래서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여성의 사회참여확대 10대 과제」의 발표와 그 후 제정된 여성발전 기본법은 급변하는 세계에 새로 전개될 최첨단 정보화시대에는 창조력과 감수성을 지닌 여성이 동참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성차별을 타파하는「혁명적」조처였다. 그리고 4년 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여성의 권리가 더욱 확되될 수 있는 제도의 기틀이 잡혔으며 사람들의 의식도 점차 변해가고 있다. 우리사회가 남녀평등이나 여성의 지위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제도화하려고 했던 때를 구한말 개화기로 볼 수 있다. 1894년의 갑오개혁에서 노비해방과 과부개가 등을 공인했으며, 개화파의 지식인인 서재필 선생이 독립신문 논설에서 여성의 지위향상 문제를 제기한 것이나 민족운동인 동학에서 여성의 인간회복에 관한 시도가 엿보이는 점이 그 좋은 예 이다. 그러던 것이 한일합방이 되면서 여성의 지위향상 문제는 개화기보다 오히려 후퇴하게 되었다. 일제 식민통제 하에서는 옛부터 이어져 온 남존여비사상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그대로 부활 유지되었고, 여성의 사회적인 차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민법도 식민통치에 유리한 호주제가 시행되어 남존여비사상은 더욱 고착화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산업화는 여성의 권리보다는 여성을 통한 경제적 이익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법규상으로 충실해질 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그동안 끊임없이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한, 깨어있는 여성의 적극적인 운동과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관습화 되어버린 핵가족제도와 더불어 과중한 가사노동에서 다소간 해방된 여성의 관심이 사회참여로 이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여성발전기본법은 헌법의 남녀평등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여성발전기본법의 추상적인 면을 실질적으로 구체화시킨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헌법의 남녀평등이념에 따라 고용, 교육, 재화, 시설, 용역 등의 제공 및 이용, 법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의 권익을 구제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두 법은 모두 여성의 권익을 위한 법률로 여성발전기본법을 정신으로 하여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뒤에서 구체화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법의 시행과 그리고 2000년 여성부의 창설은 세계적인 추세인 남녀평등에 우리나라도 한층 다가섰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두 법의 시행으로 우리나라의 고급 여성 인력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또 한 그동안 법으론 여성을 결혼, 출산의 이유와 성적인 억압의 이유로 해고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회사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개인이 아닌 기관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남성들 중에 취업문도 좁은데 여성들의 자리를 법으로 보장하면서 오히려 역 차별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남성의 특권의식에서 온 생각이다. 그동안 여성은 10%도 못되는 위치에서 이제 그나마 30%정도의 자리를 얻은 것이다. 아직도 남녀의 완전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들의 의식 속에는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 이 두 법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중요한 일꾼인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의 역할밖에 되지 못한다. 제도와 의식 이 두 가지가 모두 변해야만 남녀평등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화 과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1.12.23| 1페이지| 1,0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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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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