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제갈공명" 역사에 대한 기초적 상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너무나 생소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약간의 연관성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니..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론 우리 역사의 비극적 한 단면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조금 뭉클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죽어 영원히 사는 역사의 길이라는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힘든 그런 일을 세상에 어느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해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승전을 눈 앞에 둔 전쟁의 막바지에서 그러한 비극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는 왜 그러한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한 이 많은 여러 가지 가설중 어느것이 사실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우선 이순신과 제갈공명을 읽고서 정말로 놀라운 것들을 알았다. 물론 알고있던 사실도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조합해서 그들의 죽음을 다르게 해석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즉 그 동안 나는 이순신과 제갈공명의 죽음을 단 한번도 다른 관점에서 본적이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그냥 나에게 있어서 영웅의 가슴아픈 죽음이었지 그들의 선택한 죽음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기 혹은 “난중일기” 같은 책들은 우리 모두가 접했을만한 책들이다. 또한 삼국지는 말할 필요 없이 우리 모두가 접해 봤을만한 책이다. 물론 그 책들마다 해석하는 면이 다 다르다. 우리는 그 해석들의 한 면만을 봐왔던 것이다.미흡한 생각이나마 감히 나의 소견을 조금 밝히자면 첫 번째 그의 자살 설 은 조금은 현실성이 부족한 주장인 듯하다. 나의 이 글을 읽고 문득 이순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싶은 호기심이 일어 다른 여러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그 당시 그가 승선하고있던 배는 기함으로써 전쟁을 치르고 있던 여러 적의 배들 중 함대의 선두가 아닌 중심에 위치하여 적의 직접적인 공격을 피하면서 전체 해적의 상황을 파악하여 지후를 내려야하는 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장소 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기함이 공격을 받는다면 우선 지휘관과 그 부하 장수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병졸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마지막으로 함대에 대한 지휘력 상실로 인해 전체해전에서의 승리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이 책에서는 노량해전이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굳이 전력을 다해 싸울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전쟁이 었다고 하지만 (자료출처)에 의한 자료에 의거해 볼 때 노량해전은 우리가 알고있는 것처럼 그리 만만한 전쟁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추측해볼 때 만약 그가 총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구를 위해 전사를 가장한 자살을 하였다면 그것은 그가 지와 용을 갖춘 명장이라는 점을 감안 해보았을 때 그의 성품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또한 위에서 말했듯 그가 승선해있던 기함은 함대의 중시에 위치하여 적의 직접적인 공격을 피해 전체함대의 지휘를 내려야하는 입장이라고 하였는데 그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함이 그토록 쉽게 적의 공격을 받을 수는 없을 뿐 아니라 그가 갑옷을 벗고 배의 선두에 서서 지휘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반드시 이름 모를 일본군 병사가 그를 쏘아 맞힌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의 자살 설의 근거로 제시되고있는 “갑옷을 벗고 싸웠다 (면주선 등)”의 문제는 그가 적군의 탄환에 맞아 전사를 가장한 자살 이라기 보다는 그가 매우 비범한 인물 이라는점을 감안 해보았을 때 자신의 죽음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술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그의 은둔설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하 여러 상황을 토대로 추론해보았을 때 나에 미흡한 소견으로는 은둔설이 가장타당한 가설인 듯 보이나 역사는 항상 변하고 있으며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으므로 확실한 결론을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 되어진다. 그리고 또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볼 때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과 오직 유비에 대한 충절을 의미에서 그러한 죽음을 택한 제갈공명을 비교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슬픈 현실을 본듯하여 조금 씁쓸하였지만 한번 죽어 영원히 사는 역사에 남는 죽음을 택한 그들의 얼을 높히 기려 나역시 힘들겠지만 좁은 안목을 버리고 넓게 멀리 역사를 볼 줄 아는 사관의 안목을 길러 우리역사의 부끄럽지 않은 한 축이 되어야겠다.
REPORT삼국유사를 읽고과목 : 역사의 이해담당교수 : 나혜심교수님학과 : 화학공학과학번 : 200103054이름 : 방주미내가 를 만난 것은 “역사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에서였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한국의 고전이 세계의 고전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이미 내가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문학적 체험의 중요한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읽어 온 동화책과 역사책, 그리고 위인전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고, 를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나는 어린 시절의 독서 체험을 되살리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책을 체험하는 것이다. 온전한 독서 체험이란 책읽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일까지 포함한다. 우리가 사는 것은 어떤 의미를 만들기 위한 것인데, 어떤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는 의문을 우리는 좋은 책을 읽고 체험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는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는 거기에 민족 시조인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또 에 실려 있지 않은 많은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거기에는 사랑과 고뇌, 그리고 신과 자연에 관한 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고, 이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읽어보면 그것이 단지 작은 이야기가 아니라 큰 의미를 지닌 역사서 임을 알게 된다.일연의 역사 인식은 무 신란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문화적 배경이 고려 사회 전반에 전개되고 있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삼국유사보다 앞서 고려 문화의 난숙기에 편찬된 관찬 사서인 "삼국사기"는 정치제도 중심의 현실 문제를 주 내용으로 다룬 것이었고 그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 등의 역사의식은 유교적 정치 이념을 토대로 하는 유교적 정치 사관이었다. 이러한 유교적 정치 사관은 고려 전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관찬 사서를 중심으로 지배적인 풍조를 이루었다. 이들 관찬 사서들이 갖는 유교적 정치 사관은 합리주의의 추구라는 긍정적인 일면을 갖는 동시에 "삼국사기“ 에서 보듯이 고대 전통 문화의 이해 범위 축소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의 회피라는 문제점도 보여준다. 그런데 고려의 정치가 몽고의 간섭을 받는 시기에 이르면 유교적 정치 사관만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민족적인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역사의식은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 사관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 사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사서가 바로 ”삼국유사“ 이다.삼국유사라는 것에서 단순히 드는 느낌은 삼국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일들을 단순히 적어 내려왔다는 것뿐이다. 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그것을 주축으로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현대적인 가치에 있어서 그 의의는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책을 통해서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생활 양식이나 그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던 사고 방식들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기존의 역사서 에서 느끼던 ‘사실만을 기록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동화책이나 옛날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 것들은 책에 있는 신비스런 이야기나 문체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스님이 보여주는 신비한 능력이나 용의 이야기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흔히 보아오던 이야기 들 이었다. 이렇게 특이한 내용처럼 구조 또한 그러했다.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서사적인 서술이 아니라 피은이나 효선을 주제로 하는 내용구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삼국유사”는 왜 이렇게 기존의 것들과 달라야 했을까? 그것은 삼국유사의 저술 동기가 삼국사기에 있어서의 우리 나라 고유의 것에 대해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중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삼국사기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서 배웠듯이 삼국유사의 ‘사’자는 ‘史‘ 가 아니라 ’事‘ 인 것이다. 즉 굵직한 역사적 사실보다는 삼국사기에 없는 사소한 사건 등의 내용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용도 설화, 민담, 전설 등의 정사 (正史) ,그리고 흥법, 불교의 전파 과정에 관한 것보다는 야사(野史)가 더 많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 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아야겠다.제1권 기이 에서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나라와 왕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여기서도 역시 설화적인 내용이 많다. 특히 왕의 탄생에 있어서 익숙히 알고 있것 만 조금은 황당한 내용이 많다. 왕과 인물에 대한 서술은 신라 중심으로 진행 된다. 그 이유는 삼국이 통일신라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배웠는데 왜 고구려에 관한 언급이 부족한지 궁금했다. 그리고 “탑상” 이라는 제목이 있는데 이 부분은 불교에 관한 역사책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그 만큼 이 책이 불교에 중심을 두웠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내용 중에는 기원에 관한 것들이 많았는데 처음 접하는 나에게 있어서 배울 점이 많았다. 탑에 관한 내용 외에도 종과 상, 절에 관한 소개도 되어있다. 긜고 제5권에는 신주, 피은 ,효선, 감통 이러한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역사나 불교적인 내용이 대개였지만 유교나 도교적인 서술도 엿보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세대의 서로 대립적인 종교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러한 옛 시대에도 조화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나는 여기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종교 외에 다른 종교계까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포용 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지금부터는 내가 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을 적어 보려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둔 한 관리가 지방으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그 아내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뭇 사내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귀신들도 자주 탐을 내 그녀를 잡아가곤 했다. 이 여인이 바닷가 절벽의 철쭉꽃을 탐했을 때 남편은 물론 누구도 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극적인 장면이 이때 벌어진다. 암소를 끌며 한 노인이 나타나 그 꽃을 꺾어 이 여인에게 바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잇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를 읽으면서, 노래만 남기고 아무런 말도 자취도 없이 사라진 노인의 모습 속에서 그 시대 삶의 격조를 읽을 수 있다. 그는 노래에서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이라 했다. 여기에는 상대방이 원한 꽃을 꺾어 바치면서도 그것이 혹 상대방의 마음에 어떤 누가 될까 배려하는 자상함과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 하나로 그 시대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가부장적 억압, 그로 인해 생겨난 한과 원망이 점철된 후대의 시가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것이 바로 신라의 높은 인문 정신인 것 같다. 여인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 광덕과 엄장은 친구 사이이다. 그들은 극락 세계에 갈 때 서로 알리기로 했다. 그리고 광덕이 친구에게 기별하고 극락으로 갔다. 친구를 장사 지낸 뒤, 엄장은 광덕의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광덕의 아내가 허락한다. 이런 부도덕한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엄장이 그 아내와 동침하려 하니, 그녀가 말한다. "스님이 정토를 구하는 것은 고기를 잡으로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달빛에 정좌하고 아미타불을 외우며 수행한 광덕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때의 엄장의 모습은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엄장도 뉘우침과 깨우침으로 바라던 정토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수행에 열중한 광덕이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장 이나 모두 정토에 이른다는 것은,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은 하나인 역설의 진리를 말해 주는 듯 하다. 그러면 광덕은 어떤 고뇌도 없이 다만 수행만으로 그 도를 깨우친 것일까? 나는 그 이야기와 함께 실려 있는 “원왕생가”를 읽으며, 광덕의 또 다른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노래를 정말 광덕이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이 노래를 광덕이 지었다고 할 때 이야기의 극적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서방 정토에 있는 부처님께 자신이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 달라고 달에게 부탁하는 노래, 그것이 바로 “원왕생가”이다. 정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형상화되어야 하고 그래서 서방정토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곳조차 구체적인 달의 형상에 기대지 않고는 나의 기도조차 전해지지 않는 먼 곳이다. 이런 인간의 무력함과 나약함에 대한 인식이 이 노래의 마지막에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사십팔대원 이루실까"로 나타난다. 나를 뺀 구원은 어떤 구원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좁은 이기심이 여기 언뜻 비친다. 그것이 광덕과 같은 대덕의 마음 속에 있을 줄이야.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