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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 윤리교육론
    ◎ 윤리교육론▶ 도덕과 교육 과정 개정의 배경쳇째, 과 관련지어 지적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교과에 대한 요구와 기대의 충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우리 국가·사회의 당면 과제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민들의 도덕성 회복을 제일 먼저 꼽고 있고, 그러한 과제의 해결은 구체적인 행동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의의를 찾기가 어려운데, 그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하여 도덕과 교육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제7차 교육 과정의 총론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교육 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전인적 성장의 바탕 위에 개성을 지향하는 인간 과 전통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민주적 공동체에 헌신하는 인간 이 제시된 바 있다. 또 그 구현을 위하여 실천위주의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강화 가 내세워지고 있는데 그 주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학교 도덕 교육이 기대하는 만큼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되고 또 추진될 필요가 있겠다.둘째, 과 관련지어 필요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필요성은 교과가 지향하는 방향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느냐에 관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소련·동구의 몰락과 함께 동·서 냉전 체제가 붕괴되고 남북 화해 시대가 열렸으며, 국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되고 정보화 사회가 열리는 등의 많은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던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셋째, 과 관련지어 필요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필요성은 도덕 교과가 하나의 교과 교육으로서 어느 정도 체계화되었느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도덕과는 타교과에 비하여 그 역사가 일천한 데다, 본질상 학제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아직도 하나의 교과 교육 과정으로서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성에 대한 완벽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교육 과정 개정시마다 도덕과의 존폐가 항상 거론되는 것도 바로 교과로서의 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도덕과 교육과정의 중점- 행동 실천을 위한 인성 교육의 강화- 교과의 타당성 제고- 교과 교육 과정의 체계성 확립▶ 도덕과의 성격과 특징- 도덕과의 의의와 목적 : 도덕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규범과 예절을 익히며, 국가·민족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세계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파악하게 하여 한국인,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교과이다. 도덕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실천해야 할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가치들과 우리 사회에서 바람직한 생활의 기준이 되는 도덕 규범과 가시들을 내면화시켜 올바른 행동 습관을 기르는 동시에 다양한 도덕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덕적 사고력과 가치 판단 능력을 길러 주는 데 역점을 둔다.- 도덕과의 학적근거 : 도덕과는 바람직한 삶을 위한 도덕 규범과 가치 문제를 다루는 규범 과학적 관점과 사회 질서 유지 및 국가·민족의 발전을 위한 국민 의식 형성 문제를 탐구하는 사회 과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학제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도덕과는 새 교육 과정의 기본 방향으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시되고 있는 통일 대비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을 핵심영역으로 다루고 있는 교과이다.▶ 도덕과의 목표- 한국인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과 예절 및 도덕규범을 익히고,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도덕적 문제를 바람직하고 합리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판단능력을 기르며, 올바른 시민 의식과 국가·민족의식 그리고 세계평화의 인류공영의식을 함양하고, 삶의 이상과 원리를 체계화하여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성향을 기른다.▶ 도덕과의 내용도덕과의 의의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목표를 설정한 다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정, 조직 된 것이다. 내용 구성상의 체계성, 특히 범위와 계열이 중시된다. 한국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인격을 대표하는 4개의 생활 영역별 주요 가치·덕목을 핵심내용으로 구성하였다.
    교육학| 2002.12.10| 3페이지| 1,0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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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한국성리학
    ◎ 한국 성리학유교는 중국 고대의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한 교학사상체계이다. 대표적인 진흥시기는 공자와 맹자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고대의 진나라 이전의 시기와 11세기 경 송나라 시대에 주자로 대표되는 송대 유교의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겠다. 진나라 이전의 유학은 공자·맹자·순자 등과 같은 사상가들의 활동으로 체계화된 학문인바. 주로 인간관계에 착안하여 향외적인 윤리·도덕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송나라 시대에는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 등과 주희(주자) 등이 향내적으로 관심의 방향을 돌리고 우주·자연의 이치(理) 및 기운(氣) 등의 문제와 인간내부의 心性 등을 탐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성리학이란 후자를 가리킨다.먼저 이와 기의 개념을 살펴보면, 이는 하나의 스스로 밝고, 스스로 충족된 개념으로 없는 데가 없으며, 만물을 주재하는 것으로, 우주질서요, 자연법칙이며, 우주창조의 원리이다. 그리고 기는 일종의 현상으로 만물의 질료적인 것이며, 때때로 운동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성질에 있어서 가볍고 무거운 것, 맑고 흐린 것, 순수하고 잡박한 것 등으로 분별된다. 또한 기는 작용에 있어서 낳고 죽는 것, 모이고 흩어지는 것, 굽히고 펼쳐지는 것 등을 포함한다.이상과 같은 이기의 관계가 정립된 연후에 인간의 심성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심이란 인간의 마음이요, 성이란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 하늘의 이치가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을 본성이라 이르고, 본성과 기운을 합하여 사람의 한 몸에 주재가 되는 것을 마음이라 이르고, 마음이 사물에 응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정이라고 하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에는 순수한 이치로서의 본성, 즉 본연지성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질의 타고남에 따른 기질지성이 또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현상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기질의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성리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인정받는 안향, 성리학적 입장에서 불교를 비판한 정몽주, 조선왕조 초기에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사상적 전환을 이룬 정도전, 을 지은 권근 등에 의하여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의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한국 성리학은 정주학 위주의 성격이 짙고, 주지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예 숭상의 풍토를 지니고, 명분론적 사고가 짙으며, 보수성을 띄고, 인존정신을 지향한다.이러한 특징을 가진 한국 성리학에는 두가지 중요한 논쟁이 있었는데, 4단 7정 논쟁과 인물성동이론이 그것이다.먼저 4단 7정 논쟁을 살펴보면, 4단 (네 가지 실마리)의 의미는 중국고전의 와 관련되어 있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仁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義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智의 단서이다. 사람들이 이 네 가지 실마리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들이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것과도 같다. 』다음으로 7정 의 근원 또한 중국고전인 와 연결된다.『 무엇을 사람의 정서라고 하는가? 기쁨(喜)·분노(怒)·슬픔(哀)·두려움(懼)·사랑(愛)·미움(惡)·욕망(欲)의 일곱 가지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4단 7정의 문제가 한국성리학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정지운이라는 학자가 권근의 에 나오는 하늘과 사람의 심성이 하나로 합해지는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을 지으면서부터이다. 그는 그 가운데서 사단은 이치에서 나타나고, 칠정은 기운에서 나타난다 라고 언급하였다. 그러자 정지운과 동시대의 인물인 퇴계 이황은 이를 사단은 이치의 나타남이요, 칠정은 기운의 나타남이다 라고 수정한 바가 있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견해 차이에 대해 의문을 품은 기대승이 선배학자인 퇴계 이황에게 질문편지를 보냄으로떠 이른바 한국성리학의 四七논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이황과 기대승은 태극·음양의 문제에서 태극은 이치이고, 음양은 기운이라는데에는 의견을 같이 하였으나, 인성의 이기론적 해석과 이기의 나타남의 문제에서는 의견을 달리하였다.인성의 이기론적 해석에서 이황은 이치는 스스로 이치요, 기운은 스스로 기운이라고 한 반면, 기대승은 이치는 기운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기의 나타남의 문제에서 이황은 이기호발 즉 이치와 기운은 서로 나타난다고 하였으나, 기대승은 이승기발 즉 이치가 기운의 나타남에 얹혀탄다고 하였다.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으로 칠정 밖에 따로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만약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에 분속시킨다면, 이와 기를 독립된 별개로 보게 되어, 사단 속에는 기가 없고 칠정 속에는 이가 없는 것이 된다. 사단 칠정의 문제와 도심 인심의 문제는 서로 다른 것이어서, 도심과 인심은 이와 기에 분대하여 말할 수 있지만, 사단과 칠정은 분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대승은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로 갈라 보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였다.이황은 사단은 비록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지만 주로하여 말하는 것은 이에 있고, 칠정은 비록 이를 겸했지만 주로 하여 말하는 것은 기에 있다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은 각각 그 소주와 소종래가 다른 것이니, 사단은 그 소종래가 본연지성이고, 칠정은 그 소종래가 기질지성이라고 하였다. 논변의 과정에서 이황은 처음에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라고 하였던 것을 뒤에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이다 라고 수정하였다. 그리하여 이황의 사단칠정론을 이기호발설이라고 한다. 기대승은 이기, 사단칠정, 인심도심을 일원적으로 보았고, 이황은 이원적으로 해석하였다.이상과 같은 이황과 기대승의 논변에 대하여 율곡 이이는 후학으로서 이들을 정리하는 입장에 선다. 태극과 음양에 대해서는 두 사람과 의견이 같고, 이치와 기운은 뒤섞여서 사이가 없으므로, 양자는 관념상 둘이요, 실재상 하나이다. 그리고 이치가 기운에 얹혀 타지만 나타남에는 한길이다.이상과 같은 사칠논변 의 문제는 한국성리학의 학파에 있어서는 줄곧 계속되어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치 말한다면 이치와 기운의 문제는 논리적으로는 율곡 이이에게서 정리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다음으로 인물성동이론(호락논쟁)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용어의 의미를 정리하면,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이 문제가 하나의 학술논쟁이 된 데에는 이간과 한원진 두 성리학자의 왕복토론에서부터이다.
    인문/어학| 2002.12.10| 4페이지| 1,000원| 조회(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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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칸트와 공리주의
    ◎ 칸트의 윤리설과 공리주의 비교칸트의 윤리설과 공리주의는 각각 두가지 형태의 규범윤리적 체계를 나타낸다.규범윤리적 체계란, 어떠한 선택의 상황에서도 사실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참고함으로써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도덕적 표준과 행위의 규칙이 체계적으로 짜여진 집합이다.공리주의는 하나의 목적론적 윤리체계이며, 형식주의 즉 칸트의 윤리설은 의무론적 윤리체계이다. 이 두 종류의 윤리체계의 차이점은 옳은 행동을 옳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각각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달려있다.만약 그 대답이 행동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갖는 한 옳다 라거나 행동은 만약 일반적으로 준수되면 좋은 결과를 갖는 일련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면 옳다 라면, 그러한 윤리체계는 목적론적이다. 개별적 행동이나 행동유형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갖는 도구적인 가치에 근거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만약 그 대답이 행동은 의무의 최고원리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행위의 규칙에 일치하면 옳다. 그런데 그 의무의 원리 자체는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문제와 상관이 없다 라면 그 윤리체계는 의무론적이다. 한 행동의 도덕적 옳음은 그 행동이 어떤 좋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도구적 역할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칙이 모든 행위자에게 원리의 문제로서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그러한 종류의 행동이라는 데에 있다.목적론적 윤리체계의 근본규범은 행동의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 또는 어느 정도로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데 사용되는 본래적 가치의 표준이다. 그것이 본래적 가치의 표준이라고 불리우는 까닭은 그 규범이 그 자체로서 좋은 것, 즉 단지 더 높은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유용한 것이 아니라 한 목적으로서 바람직하거나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론적 윤리체계에서는 만약 본래적 가치의 표준을 어떤 개별적 행위나 행동유형의 결과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할 수 없다.공리주의의 창시자 벤담은 행위의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유용성 원리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유용성 원리란 모든 행동을 그 행동이 관련 당사자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을 가졌느냐 혹은 감소하는 경향을 가졌느냐에 따라 시인하고 비난하는 원리 를 말한다. 이를 흔히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리 라 부르고 있다. 즉, 최대다수에게 최대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옳은 행위라는 윤리설이 바로 공리주의이다. 여기서 행복은 쾌락을 의미한다. 공리주의는 이 쾌락에 대한 해석에 따라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로 다시 나누어진다. 벤담은 전자에 속하고, 존 스튜어트 밀은 후자에 속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바보로서 만족하기보다는 차라리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는 밀의 말은 바로 질적 공리주의를 잘 표명해주고 있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리주의는 행위 공리주의이다.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인 유용성 원리를 구체적인 개별행위에 적용시켜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론이 바로 행위 공리주의이다. 그런데 이 공리주의는 상식적인 도덕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상식인의 도덕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난점을 벗어나고자 공리주의자는 규칙 공리주의를 제시한다. 즉, 유용성 원리는 개별적인 행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규칙을 도덕규칙으로 제정할 것인가의 물음에 적용된다는 입장이 바로 규칙공리주의이다. 그러니까 유용성의 원리는 도덕규칙의 정당화에 적용되고, 개별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규칙과 어긋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판단된다. 이는 목적론과 의무론을 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다른 한편 의무론적 윤리체계의 관점에서는 일단 여러 행동유형에 어떠한 도덕규칙을 적용할 것인가를 알고 또한 개별적 행위가 어떤 규칙에 해당되는 행동유형을 예시하는가를 알면, 우리는 그 개별적 행위의 결과의 좋고 나쁨을 아는 것과 관계없이 또는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 어떤 것을 아는 것과 관계없이 문제의 행위가 옳은가를 알 수 있다. 그 행위가 어떤 유형에 속한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 행동 유형이 그것에 올바로 적용될 수 있는 도덕규칙을 지키는가 또는 위반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다. 그 행동유형이 그 규칙에 따르면 그리고 오직 따를 때에만 그 행동은 옳고 그 행동유형이 그 규칙에 위반된다면 그리고 위반될 때에만 그 행동은 그르다.어떤 주어진 행동유형에 적용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행위의 규칙 중에서 어떤 규칙이 도덕규칙인가에 대해 의무론자들은 모든 도덕적 책무 또는 의무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도덕법칙이 제시하는 조건을 만족하는 규칙이라고 답변한다. 그래서 의무론적 윤리체계의 근본규범은 도덕법칙이다.칸트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법칙이 존재하며, 그 법칙에 맞는 행위만이 윤리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칸트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법칙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이성의 사실로 간주한다. 인간에게는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도덕적 직관력이 존재한다고 칸트는 믿는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이성은 궁극적으로 하나인데, 그것의 적용에서는 직관에 주어진 대상을 규정하는 이론 이성과 도덕적 선택에 관계하는 실천 이성으로 구별된다. 실천 이성은 실천적인 사용이나 기능을 갖는 이성으로서 이성 자신이 내준 법칙에 따른 도덕적 선택이나 결단에 관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2.12.10| 3페이지| 1,000원| 조회(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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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철학] 근본불교, 선불교, 공자, 맹자
    불교불타의 가르침은 깨침 을 원천으로 한다. 깨침의 내용은 연기의 법을 아는 것인데, 연기란말미암아 일어나는 것 이란 뜻이다. 이는 첫째, 공간적으로 고립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있으며 둘째, 시간적으로 연기적인 관계에 있고 셋째,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관관계에 있으며 넷째, 그럴만한 조건이 없어지면 그 존재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다. 연기의 진리는 불교사상의 기본이다. 이러한 존재의 실상에 눈뜨는 것이 깨침이며 그 깨침을 통하여 우리의 삶은 질적인 전환이 가능하다. 이 연기의 진리는 불교의 모든 가름침의 기본을 이룬다. 모든 것이 덧없고 나 라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도 다름아닌 연기의 법칙의 시간, 공간적 고찰이다. 즉, 모든 것이 말미암아 있으므로 항상한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변하지 않는 실체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을 통한 깨침으로 알아져야 한다. 그 구체적 실천을 위하여 체계지은 것이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고, 집, 멸, 도 의 네가지 진리이다.고성제란, 괴로움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즉 존재의 실상을 모르는 무명으로 인하여 나와 남을 분리하므로 나 에 탐착하기 때문이다. 고는 생로병사(生老病死)으 근원적인 괴로움과 사랑스러운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 즐겁지 않은 것과 만나는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나라는 육신을 가짐으로 받는 괴로움을 합친 여덟 가지 괴로움을 들기도 한다.집성제란,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진리로 타는 듯한 욕망(渴愛)을 가리킨다. 즉 무명 때문에 일어나는 지나친 욕망이다.멸성제란, 괴로움이 멸한 열반으로 불교의 이상이다. 탐욕과 짜증냄, 어리석음 (탐진치 貪瞋痴)의 완전한 소멸을 니르바나(열반)이라 한다.도성제는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한 실천으로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관찰(正念), 바른 선정(正定)의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를 가리킨다. 이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불교의 실천의 기본을 이룬다.초전법륜을 통해본 가르침의 특성1. 철저한 인간의 길, 인간의 종교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인간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마친다.2.현실을 중시한다. 우리가 당면한 괴로움, 그것의 해결이 불교의 모든 것이다.3. 합리적이고 분석적이다.4. 실천적이다. 단순한 이론이나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니르바나에 이르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불교의 특성1. 불교는 인간의 종교이다.2. 불교는 평등의 종교이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 위에 세워진 불교는 불타와 인간을 본질적으로 평등하다고 본다.3. 불교는 근본적으로 자력의 종교이다. 인간의 문제는 부처님이나 어떤 절대한 타자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닦음과 노력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불교의 평등관1. 불교의 평등관은 하나인 세계 전일적인 세계관을 그 바탕으로 한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이 고립 독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있다는 연기관에 기본하고 있다.2.이러한 존재의 실상에 기본을 한 평등관은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우주적인 평등관이다. 개체가 전체를 무시하지 않으며 전체가 또한 개체의 개성을 무시하지 않은 평등관이다.3. 원융무애한 우주적 평등관은 단순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등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인간과 자연, 인간과 모든 생명간의 폭넓은 평등관이다.4. 이러한 평등관은 인간과 불타와의 사이에도 본질적 평등을 원칙으로 한다. 중생과 부처는 다르지 않다.5.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등은 따라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다같이 여래의 씨앗, 불성을 간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선불교의 발달 배경중국에는 서력기원을 전후해서 불교가 들어왔다. 중국은 불교를 받아들인 후 남방불교와는 전혀 다른 전통을 만들어 갔다. 남방으로 전래된 불교는 주로 소승불교였다. 그러나 중국은 인도에서 불교을 받아들이고 난후 주로 불교를 중국화 하는 과정이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경전의 번역이었다. 두 번째 작업은 경, 논을 중심으로 종파를 발달시킨 일이다. 불교를 종파화 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경전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분류, 체계화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하는데 줄여서 교판이라고 한다. 경이나 논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면서 나타난 문제점은 본래의 깨침이라는 체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경론을 중시한 불교를 교학불교 혹은 교라고 한다. 이런 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본래 깨침의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걸고 나타난 것이 바로 선불교이다.기본입장선불교는 언어 문자가 아니라 깨침을 더 중시하는 입장에서 교 밖에 따로 전하는 것,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각자의 마음을 직접 가리켜 그 성품을 보아 성불한다. 는 유명한 사구게를 내걸고 발전했다.교외별전이란, 교(敎) 밖에 따로 전해지는 가르침 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진리가 언어 문자로 표현된 경전이 교 밖에 별도로 전해진다는 것이다.불립문자는 교외별전의 자연스런 귀결이기에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또한 직지인심과 견성성불은 어떤 방편이나 형식을 빌리지 않고 곧바로 각자의 마음을 가리켜 그 마음의 성품을 찾아서 성불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란 경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의 바탕을 분명히 깨닫는데 있다고 말한다. 견성이 그대로 성불이라는 이야기는 경전 속의 문자를 가지고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과 불교의 진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강력한 입장이다. 직지인심이 이루어지면 견성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음자리를 보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전환이기에 마치 캄캄하던 방안에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금방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다. 이것이 돈오이다.공자정명론(正名論)사회에 대하여 공자는 질서있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정명의 확립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우리가 실제 사물에 붙인 이름과 그 내실은 일치되어야 한다. 임금은 임금, 아버지는 아버지, 아들은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 이는 이름마다 모두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 집합된 사물들의 본질이며 이것으로 집합의 사물에 이름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물들은 이상적으로 본질과 일치되어야 한다. 군신부자는 모두 그러한 사회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요, 누구나 그 이름을 지녔으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 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정명론의 요체이다.인의(仁義)공자는 인과 의의 덕을 강조하였다. 특히 인을 더 강조하였다. 의 란 어떤 상황의 당위성을 뜻하는 무상명령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의 는 형식적인데 비해 인 은 구체적이다. 인간사회에서 의무의 형식적 본질은 당위성에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의무는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남을 사랑하는 것, 즉 인 이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야 할 도리에 따라 아들을 사랑하고, 사회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이란 특정한 덕목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모든 덕목을 포괄한다.충서(忠恕)자기가 서로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으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주는 것은 인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면이다. 공자는 이것을 충이라 하였다. 그리고 소극적인 면을 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양자를 합하여 충서의 도 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인의 실천방법이다. 이 충서의 도 를 후기 유학자들은 계승 발전시켜 혈구의 도 라 하였다. 말하자면 자기를 척도로 삼아 남을 헤아리는 동정의 도리가 그것이다.지명(知命)유가에 의하면 인간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왜냐하면 인간에겐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일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일에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이 해야 할 행위의 가치는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외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도가 온 천하에 실행된다면 그것은 명이요 도가 폐지된다면 그것도 역시 명이다. 라고 스스로 말하였다. 공자는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나머지 문제점을 명에다 남겨두었다. 공자의 명은 천명이다. 바꿔 말하면 공자는 명을 어떤 목적 또는 의도를 가진 힘으로 생각하였다.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일은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단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명이다. 그러므로 명을 안다는 것은 현존하는 세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기의 외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상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인문/어학| 2002.12.09| 4페이지| 1,000원| 조회(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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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변증법 평가B괜찮아요
    변증법-롤랜드 홀-변증법 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대화술 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이 말이 지닌 매우 다양한 의미 가운데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변증법이 추론에 의해 진리를 탐구하고 때로는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뜻일 것이다.변증법 이란 말의 중요한 의미를 간추려 보면, (1) 논리적 귀결에 대한 검사를 통해 반박하는 방법, (2) 궤변적 추론, (3) 유개념을 종개념으로 구분하거나 논리적으로 계속 분석하는 방법, (4) 특수한 사례나 가정에서 점차 일반적인 추상 개념으로 나아가는 추론 과정을 통해서 최고로 일반적인 추상 개념을 탐구하는 일, (5) 단지 개연적일 뿐인 진술이나 일반인에게 널리 승인될 뿐인 진술을 전제로 삼고 진행되는 논리적 추론이나 논쟁, (6) 형식논리학, (7) 이성이 경험의 영역을 벗어나 선험적 대상들을 다스리려고 할 때에 범하는 모순들을 보여주는 가상의 논리에 대한 비판, (8) 사고나 실재가 정명제와 반명제의 대립 상태를 통해서 합명제의 상태로 나아가는 논리적 발전 등을 들수 있다.소크라테스와 그 이전 철학자들의 변증법변증법은 기원전 5세기경에 시작되지 않았나 여겨지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명한 역설들을 만들어 냈던 엘레아 학파의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을 설명할 때 제논의 역설을 염두해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제논의 역설이 토론의 상대가 제시한 가정에서 누구도 승인할 수 없는 귀결을 이끌어 냄으로서 상대방의 가정을 반박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실례라고 설명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간접적 증명 방법을 사용하는 기술로서의 변증법은 제논에 의해서 몇 가지 진지한 철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변증법은 후세에 소피스트들이 잘못 사용하게 되어 단지 논쟁에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자신이 진리를 탐구하고 있다고 공헌하 대화편 에서 그는 변증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변증법을 묻고 답하는 방법으로 보는 이 견해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요소로서 플라톤에 이르러 바뀌어가고 있는 변증법 개념들을 한 줄로 엮을 수 있는 한 가닥 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후기 대화편에서는 분할법이라는 방법이 변증법으로 강조되어 있다. 분할법은 실제로는 더 이상의 분할이 불가능한 바로 그때 정의에 도달하게 되는 방식으로서 유개념을 종개념으로, 즉 일반성이 넓은 개념을 일반성이 좁은 개념으로 계속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과 그 반대 과정인 종합이나 집적은 서로 보완하는 과정이다. 플라톤은 변증법에 대해서 언제나 지극히 호의적으로 말했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제 6-7권에서 언급한 변증법에 대한 찬사는 절정에 달해서 변증법을 철인왕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 소양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결국은 최고의 이데아인 선(善)의 이데아에 관여하는 것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아리스토텔레스의 은 변증법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적어도 정언삼단논증의 형식을 발견하기 이전에 쓰여 졌으며, 정언삼단논증의 형식은 그가 후에 에서 변증법을 증명 이론으로 대체시켜 정교한 체계로 발전시켰던 논증 유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에 관해서 전제들의 인식론적 격위만큼 추론의 유형을 중요한 특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과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승인하는 의견을 전제로 삼고 있는 추론은 변증적 추론으로 간주하고 전제들이 단지 개연적 의견인 추론이나 부당한 추론은 논쟁적 추론으로 간주하였다. 그에 따르면 변증법은 삼중의 가치를 갖는다. 즉 변증법은 지적 훈련에 도움을 주고, 각자 자신의 전제에 입각해서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증명할 수 없는 과학의 제 1원리 를 검토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요컨데, 변증법은 비판의 절차이기 때문에 모든 탐구의 원리에 이르는 길을 알려줄 수 있다 고 보았다.스토아 학파와 중어도 사용되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알려지면서부터 여러 가지 변증법 개념을 배우게 되었는데, 중세에 대학의 학위 시험으로 행해졌던 논쟁 이라는 교과목은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벌어졌던 토론의 후속 활동이나 그 토론의 부활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칸트와 그 후계자들의 변증법칸트는 에서 고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모든 변증법은 항상 가상의 논리 였다고 통틀어 비난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속에서 선험적 논리학의 제 2권에 선험적 변증론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새로운 종류의 변증법은 가상에 빠진 선험적 판단들, 즉 마치 경험의 한계를 초월한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판단들의 환상을 폭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선험적 변증론 에서 네 쌍의 정명제와 반명제로 이루어진 순수이성의 네 가지 이율배반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는 그 네 가지 이율배반에 대한 자신의 해결을 합명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헤겔과 그 후계자들의 변증법헤겔은 변증법이란 사고의 본성에서 발견된 규칙성을 과학적으로 적용하는 일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사고나 사물이 원래의 상태와 대립하는 상태로 변한다 는 것은 사고나 사물의 제한성이나 유한성으로 인해 저절로 일어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사고 속의 모순, 자연속의 모순, 사회속의 모순은 어떤 종류의 필연성에 의해서 더 나은 발전된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변증법이란 무엇인가*-칼 포퍼-1.이른바 변증법이라는 것사람이 문제의 해결에 접근해가는 과정은 대개 동일한 방법에 의해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그것은 바로 시행-착오 방법이다. 인간의 사고 가운데서도 특히 철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은 시행-착오 방법의 특수한 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다가 부딪친 문제에 대해서 우선 어떤 이론을 세우고 나서 거기에 매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리거나 일단 그 이론에서 약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이론에 반대하여 싸우는 두 가지 반응 중의 하나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특히 인간의 사고가 이른바 정명제, 반명제, 합명제라는 변증적 3항 1조 도식 을 특징으로 하는 방식에 따라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우선 정명제라고 불리는 생각이나 이론이나 운동이 설정된다. 정명제에 대립하는 생각이나 운동은 반명제 라고 불리는데, 처음의 정명제와 반대되는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합명제 라고 불린다. 합명제는 일단 확정되면 다시 새로운 변증적 3항 1조 도식의 첫 번째 단계가 되는데, 이 확정된 특정한 합명제가 한쪽에 치우쳐 있거나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판명되면 더욱 그렇다.시행-착오 방법에 의한 설명은 변증법에 의한 설명보다 더 넓은 영역에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시행-착오 방법의 적용 범위는 단 하나의 정명제만 제시되어 있는 상황에 제한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시행-착오 방법은 처음부터 수효도 많은데다가 각기 독립해 있는 정명제들이 서로 반드시 대립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도 쉽게 적용될 수 있다. 변증론 자들이 강조하는 것들 중에는 일반적인 시행-착오 이론과 약간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시행-착오 이론은 불만족스러운 견해는 반박되거나 제거된다고 주장하는 선에서 멈추는데 반해서, 변증론 자는 그 이상의 주장할 내용이 있다고 고집하는 점이다.변증법에 대한 오해와 혼란은 변증론 자들이 모순에 관해 모호하고 애매한 표현들을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변증론 자들은 사상사에서 모순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비판의 요체는 항상 어떤 모순, 즉 비판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이론 자체 속에 성립하는 모순이나, 문제의 이론과 합당한 이유에 의해 누구나 이미 인정하고 있는 이론 사이에 성립하는 모순이나, 그 이론과 어떤 사실에 사이에 성립하는 모순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비판은 이 가운데 어떤 모순을 지적하는 일이나 원래의 이론과 모순 관계에 있는 진술을 내세우는 일이 아니고는 어떤 일도 결코 할 수 없다. 변증론 자들은 모순이 지극히 일인데, 이 경우에 그는 모순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가 모순을 허용하는 일인데, 이 경우에 그는 모순이 생산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성적 비판과 이성적 토론 그리고 지적 진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변증적 발전을 추진하는 유일한 힘은 정명제와 반명제 사이의 모순을 허용하거나 참고 그냥 보아 넘기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심인 것이다.변증법에 관해서 조심해야 할 위험은 변증법 이라는 말 자체의 모호성이다. 변증론 자들이 모든 종류의 발전과 심지어 전혀 이질적인 사물들에 대해서조차 그처럼 쉽게 변증적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바로 이 변증법 이라는 말 자체의 모호성이었다. 변증법은 근본적인 이론이 아니다. 단지 과거 사실들의 진행 과정에 대한 기술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변증법을 논리학의 한 분야나 별종의 논리학으로 본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논리학에 대립하는 이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변증법이 도식에 따르는 발전 과정을 기술하는 이론이면서 동시에 논리학과 같은 근본적 이론인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해주었던 유일한 요인은 막연한 은유적 표현과 애매한 표현으로 말하는 방식 그것뿐이다.2.헤겔의 변증법헤겔의 철학에는 우리가 검토해야 할 두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관념주의와 변증법이다. 헤겔은 이 두 신조를 칸트의 어떤 생각들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칸트의 생각을 넘어 더 나아가려고 시도했다. 그는 우리의 정신은 어떻게 이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가 라는 인식론적 물음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관념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이 이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계가 정신-같은-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난 헤겔의 이론은 칸트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관념주의적인 이론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이 이 세계를 정리하거나 구성하기 때문이다 라는 칸트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 아예 정신이 곧 세계이다 , 이성적인 것이 바로 현실적인 것, 즉이다.
    인문/어학| 2002.11.28| 7페이지| 2,000원| 조회(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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