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1.서 : NGO의 의의와 역사1)NGO의 의의일반적으로 NGO는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의 약자로 비정부기구 혹은 비정부단체 로 해석되고 있는데, 국내 학계 및 언론 등에서는 NGO 영문명칭을 외래어로 사용하고 있어, 어느 정도 일반화된 용어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NGO는 사실 정부가 존재한 이래로 어떤 형태로든 늘 있어왔다고 할 수 있다.특히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자본가 계급과 자본주의 국가에 저항한 노동조합이나 노동 운동 조직은 과거의 대표적인 비정부기구 였다고 할 수 있다.즉 NGO는 비정부기구이며 비영리기구로서 권력이나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며 시민사회의 공공선을 지향하면서 시민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를 의미한다.2)NGO의 역사와 그 의미규정NGO라는 용어는 1950년 2월 UN 경제이사회에서 결의안 288조가 통과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즉,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이라는 영어 단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UN헌장이다. 2차대전이 종료되기 직전인 1945년 6월에 50개국 대표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UN 창설을 위한 국제회의를 가졌고, 이 회의에서 UN헌장 기초작업이 이뤄졌다. 이 회의에는 정부대표들뿐 아니라 NGO 대표들도 참여해서 NGO와 UN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UN헌장에 포함시킬 것을 고집함으로써 마침내 UN헌장 제71조에 다음과 같은 '협의적 지위'를 획득하였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그 권한 내에 있는 사항들과 관련이 있는 NGO들과의 협의를 위해 적절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그 협정은 국제단체와 체결할 수 있고, 적절한 경우 관련 유엔 회원국과 협의해서 국내단체와도 체결할 수 있다."당시 NGO는 정부의 대표가 아니면서도 UN과 협의적 지위(consultative status)를 인정받은 공식적 조직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NGO가 국제 정치적 맥락에서 정부간기구(Inter-Governmen데, 정치의 목적과 수단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가 상대방의 정체성을 해체시키는 죽임의 정치라면 새로운 정치는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상생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해답으로는 효율성 문화의 상징인 국민총생산(GNP)적 관심으로부터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으로 관심을 옮기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새로운 문제의 해법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권 정치 라는 것이다. 생명권 정치는 도구적 이성에 매몰되지 않고 관계성과 통일성의 체험을 회복하는 인간의 총체적인 노력을 지칭한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NGO 역시 방황의 정치를 대체하는 생명의 정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안들을 현실화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NGO 정치론은 아직까지도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NGO의 정치 참여가 원래는 옳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에 대한 이유는 본래의 정치는 공공의 살림살이이지만, 현실의 정치는 그들만의 권력과 부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NGO는 정치 개혁보다 사회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럴수록 참여해서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반론을 편다.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에 대한 정치교육의 내실화와 국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들을 확충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 단체의 일각에서는 녹색정당운동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부 명망가들은 기존 정당의 수혈 대상이 되고, 일부 용감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치권의 진입을 시도한다.NGO 활동가들이 개인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대중의 신탁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제되어야 하고, 기존의 정치권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개인들은 일정한 기간동안 활동을 멈추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개인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시민단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공익재단을 형성하거나 공익재단에 기금을 납부하기도 하며, NGO들이 제시하는 경영합리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재벌개혁이나 기업의 경영 합리화를 요구하는 NGO들의 활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불공정성과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그래서 보다 급진적인 NGO들은 자본주의적 소유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한편 기업과 NGO들 간의 관계가 우호적이 되면, 기업들은 NGO들에 대해 직접적인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 과연 NGO들이 재정적 지원을 해준 기업들에 대해 공정한 입장에서 비판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시장과 기업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NGO들은 기업들의 재정적 지원을 거부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4)NGO와 사회NGO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운동의 흐름이다.이 부분을 무시하고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맥을 짚을 수가 없다.20세기 후반 세계 사회 운동의 흐름은 인종차별 철폐운동, 민족해방운동 등으로 이어지다가 1956년 헝가리 민중봉기가 소련에 의해 진압된 후 신좌파가 대두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신좌파의 사회운동은 미국과 북아일랜드의 민권운동, 흑인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평화운동, 반전운동, 68학생혁명, 남아프리카 유색인종차별 반대운동 등의 계기가 되었다. 이 중에서 NGO로 조직화된 운동을 하나만 꼽는다면 핵무기 반대운동(CND)을 들 수 있다. 냉전구도 하에서의 CND는 급진적 NGO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핵전쟁의 위험을 대중에 각인시켰다.이와 함께 1960년대 들어 저항의 풍요화 (조희연)라 부를 만한 다양한 NGO가 출현해 새로운 NGO운동의 물꼬를 텄다. 1961년에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이, 같은 해에 세계해양생물기금(WWF)이, 1971년에는 그린내전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경우, 관련 NGO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NGO가 전국적인 조직(협의체 등)의 결성을 통해 보다 밀접히 협력하게 되면, 지역사회의 복지수요를 보다 잘 충족시키고, 가용자원을 더 경제적으로 할당하며, 정부 역시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NGO 부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많은 사례연구들이 NGO간의 조정과 협력이 사업의 성과를 극대화하면서, 능률성, 효율성 및 NGO 내부의 민주화를 제고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NGO간의 협력은 비공식적인 네트웍에서부터 전국적으로 통일된 협의체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데, 최근의 전자정보혁명은 NGO간의 정보공유와 네트워킹을 낮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NGO간 협력의 당위성과 경험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NGO간의 협력은 기대 이하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NGO의 지원자금을 둘러싼 NGO간의 경쟁은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정부가 NGO를 적절히 통제하는 수단으로 NGO의 전국적인 협의기구를 만들 경우 협력보다는 분열 가능성이 높다. 또 NGO 대표들이 정치적 야심을 가진 경우, NGO간에는 협력이나 건설적인 경쟁보다는 비방과 중상이 난무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특정한 분야나 사안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경우 유사 NGO가 난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유사한 캠페인을 경쟁적으로 개최하기도 한다.(2)NGO와 정부의 관계국가-시장-시민사회간에 일정한 균형이 형성된 서구 사회에서 정부와 NGO는 '상호 인정'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가의 NGO는 정부에 대해 명백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겉으로는 우호적인 듯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의구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정부 역시 NGO를 무시하는 가운데 그 활동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NGO와 정부의 관계는 유착과 견제의 갈등 속에서 이어져 왔다고 할 수 비영리부문의 제도적 특성이나 경험적인 분석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3)NPO의 의미규정비영리단체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들 단체의 주 활동영역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Hall에 의하면 비영리단체는 다음의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첫째, 이들은 정부 또는 영리부문이 충족시키기 어렵고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의 특정 공공서비스를 공급한다. 둘째,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로부터 권한 위임을 받은 공공 업무를 대신 수행한다. 셋째, 정부, 영리단체 및 다른 비영리단체의 정책결정에 영향력 행사를 목적으로 활동한다. 물론 상기한 목표들이 완전히 비영리단체의 활동영역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의료보건분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처럼 비영리단체들은 종종 상업적인 활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비영리단체의 특성을 분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개념정의와 유형 구분이 가능하다. 우선 비영리조직에서는 자발성이 강하다는 점이 부각된다고 하겠다.이는 비영리단체가 민주주의의 참여의 장(Arena of participation)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뜻하고 정부와 시장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수행함을 나타낸다. 또한, 첫번째 특성에 의하면 비영리단체가 정부부문과 영리부분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섹터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 업무는 공공적 서비스 공급에 있다고 하겠다. 비영리단체는 비시장적이며 비정부적인 특성이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그 예로 종교, 기초과학연구, 예술 활동 등이 있다. 또한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에 따라 이들 제도부분을 대신하여 직접 공공적 서비스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인 이유와 효율성에 기인한다. 또한 두번째와 세번째 특성에 따르면 비영리단체는 정부의 보조와 영향력을 받는 정부보조(위임)형 비영리단체와 민간주도형 비영리단체가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관변단체들이 포함되며, 후자의 경우 최소한의 정부보조(program-specific assistance)나 정부지원 없이 민간의 기부한다.
Ⅰ. 실학사상의 발생요인조선후기의 사상계 일각에서는 기존의 양반 사회의 모순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서 실학이 나타났다.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실학사상은 전통적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일련의 사상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실학사상의 목적인 새로운 사회로의 희망은 절대로 유교적인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교 본래의 민본사회로의 복귀를 의미한 것이 다. 즉, 실학은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직면하여, 그 해결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 개혁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상이나 개혁의 논리는 종래의 성리학과 같을 수 없었다. 이 말은 형이상학적 이념대결에 서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실생활에 입각하여 그 모순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실학이었다는 말이다. 실학사상은 18세기를 전후하여 재야의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이러한 실학사상이 나타난 데에는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작용하였다.첫째, 조선왕조가 직면하고 있었던 통치질서의 와해현상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즉, 16세기부터 변질되기 시작한 조선사회는 두 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크게 모순 - 특히 경제적 측면 - 을 드러냈으나, 위정자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하지 못하였다. 이에, 진보적 지식인들은 국가 체제를 재편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개혁의 방안으로 제시하게 된 것이다.둘째, 조선왕조의 지배원리였던 성리학이 그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본질적인 대책이 요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은 합리적인 수습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게 되었다.셋째, 조선후기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발전이 실학의 발생을 촉구하였다. 전쟁피해의 복구 과정에서 피지배층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였는데, 이와 같은 발전을 촉진하고 대변하는 사상으로서 실학이 나타났던 것이다.Ⅱ-1. 실학의 역사한국사상사에 있어 실학사상은 16세기 후반에지,기전고,구암집이수광(1563∼1623)자는 윤경, 호는지봉지봉집유형원(1622∼1673)자는 덕부,호는 반계반계수록박세당(1629∼1703)자는 계긍,호는 잠수서계. 서계선생집, 색경이익(1681∼1763)자는 자신,호는 성호성호사설,곽우록,근사록안정복(1712∼1791)자는 백순,호는 순암순암선생문집, 동사강목홍대용(1731∼1783)자는 덕보,호는 홍지 당호 담헌담헌서,의산문답박지원(1737∼1805)자는 미중,호는 연암열하일기, 양반전박제가(1750∼1805)자는 차수,재선 호는초정.건연집, 북학의정약용(1762∼1836)자는 미용,호는 사암, 다산당호는 여유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김정희(1786∼1856)자는 원춘,호는 추사,완당금석과안록, 완당척독최한기(1803∼1879)자는 운로,호는 혜강, 당호 명남루기측체의,심기도설Ⅱ-3. 실학의 개념조선 후기에 일어난 새로운 학풍을 지칭하는 말로 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30년대 정인보(鄭寅普)·최남선(崔南善)·문일평(文一平) 등 민족주의 사가들이 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시도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학이란 말은 17세기 실학파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유학자들 사이에서 수없이 사용되어 왔다. 원래 그 말은 유학자들이 불교나 도교를 허(虛)·공(空)을 숭상하는 학문으로 규정하고 유교의 현실적 실천정신을 표방하여 스스로 실학이라 강조함으로써 제시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들이 말하는 실학은 불교·도교를 배척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조선 후기 실학은 불교나 도교의 폐단뿐 아니라 주자학의 공리공담적(空理空談的) 폐단을 반대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하는 부국유민을 목적으로 하는 실용학문이었으므로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짙었다. 유학은 원래 이론과 실천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므로, 철학적·이론적인 방면으로 전개될 수 있고 또한 실용주의적인 방면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리학이 유학사상을 철학적으로 전개시킨 것이라고 한다면, 조선 후기의 실학은 학파의 분류1. 농업 중심의 개혁 사상 ( 중농 학파 )농민 생활의 안정을 위한 제도의 개혁 (토지·조세·교육·관리 선발·군사 제도 등)을 추구하여, 지주 제의 철폐와 자영농의 육성을 주장하였다(경세치용 학파). 대부분 남인 출신이며,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대표적 인물이었다 .반계 유형원은 반계수록을 저술하여 중농 학파 실학을 체계화했고 균전론에 의해 관리와 사·농·공·상에게 차등을 두어 토지를 재분배하여 자영농을 육성하자고 주장하였다. 또 자영농을 중심으로 하는 병농 일치의 군사 조직과 사농 일치의 교 육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벌 숭상, 적서 차별, 과거제도, 노비 세습제 등을 비판했으나 가정 내에서의 적서 차별, 천민 차별, 문음·노비 제도 자체는 인정하여 유교적 한계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성호 이익은 성호 학파를 형성하여 안정복·한치윤·정약용·이긍익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저서로서 백과 사전적인 성호 사설과 제도 개편론인 곽우록이 있다. 토지 제도에 있어서는 한전제에 의해 농가 매호에 영업전을 지정해 주고, 매매 할 수 없도록 하자고 주장하였고, 그 외의 토지는 매매를 허용하여 점진적인 토지 소유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국가 빈곤과 농촌 피폐의 원인으로 6가지(노비제·과거제·문벌·사치나 미신등의 기교·승려·게으름)를 규정하였다. 고리대와 화폐의 폐단을 비판(폐전론)하고, 환곡 대신 사창 제도를 실시하자고 주장하였다.다산 정약용은 중농 학파의 사상을 포함한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의 3부작과 탕론·전론·원 목 등의 논설이 대표적이다. 이 저서들은 500 여권의 여유당 전서에 포함되어 있다. 목민심서는 지방 행정 제도의 개혁 방안으로, 지방관이 지켜야 할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경세유표는 중앙의 여러가지 제도 개혁방안을 제시했고, 흠흠신서는 형법 제도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그의 토지 제도는 여(30호 단위의 부락) 단위로 토지를 공동 경작하고 , 노동량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는 일종의 공동 농장 제도유수원은 농업의 전문화·상업화와 농업 기술의 혁신을 통한 생산의 증대를 주장하였다. 또한 상공업을 진흥시켜 국부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합자를 통한 경영 규모의 확대, 대상인의 지역 사회 개발 참여를 적극 주장하였다.담헌 홍대용도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저서 담헌서에 지전설을 주장한 의산문답과 균전제를 주장한 임하경 륜을 남겼다. 또한 기술 문화의 혁신과 신분 제도의 철폐를 주장했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 강병의 근본이라고 믿었다.세번째로 연암 박지원을 들 수 있다. 저서로서 열하일기, 농업기술을 알린 과농소초, 한전론을 설명한 한민명전의가 있다. 그는 농업 부문의 개혁안으로 한전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영농 방법 혁신, 상업적 농업 장려, 농기 구 개량, 관개시설 확충 등 농업 기술의 개선을 통한 생산력 증대에 큰 관심을 가졌다. 상공업 부문에서는 수레·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했다.마지막으로 초정 박제가를 들 수 있다. 그는 저서로 청의 풍속·제도 소개, 사회·경제 개혁안을 제시한 북학의를 남겼다. 그의 개혁 사상은 상공업의 발전을 강조하여 청과의 통상을 강화, 수레·선박의 이용 증대, 절검보다 소비를 권장하였는데 이는 소비가 생산의 촉진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이상과 같은 학자들의 사상은 농업 중심의 유교적 이상 국가론에서 탈피하여 보다 적극적인 부국 강병책을 제시하였으며, 후에 개화 사상가( 박규수·김옥균 )들에게 영향을 주었다.Ⅱ-5. 실학사상의 특징1. '실사구시'의 학문실학파의 실학사상은 주자학의 실제를 벗어난 청담공론에 반하고 학문을 사회적생산과 생활에 응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을 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실학 사상가들은 모두 주자학의 '공소·공론'을 반대하고 생산과 생활에 실용적인 학문 연구를 강조하였다.2. 민본적 민주사상실학파의 민본적 민주 사상은 유교의 중민 사상이라는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평등 사상은 객관적으로 극으로 보았고, 아울러 그것이 세계만물을 창조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일원론적인 사상이다.Ⅱ-6.정약용의 실학사상정약용은 주로 사회개혁과 경제 개혁 그리고 국방 개혁에 관한 사상으로 표현되었다.첫째, 정약용이 사회개혁 사상은 그의 사회, 역사관 위에서 형성되었다. 그는 고대 사회를 이상화함으로써 군주제를 반대하고 민주 정치를 부르짖었다. 그는 이상적인 고대 사회가 이후 왕도(王道)와 예치(禮治)의 사회를 거쳐 패도(覇道)와 법제(法制)의 사회로 변했다고 파악하였다. 이렇게 이상적인 정치가 무너지자 원래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던 국가와 법이 통치자가 백성을 수탈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고대 사회를 모범으로 들어 봉건적 전제 통치를 부정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그의 민주, 민권적 정치개혁 사상은 '원목(原牧)'(통치론)과 '탕론(蕩論)(역성혁명론) 두편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원목(原牧)'에서 그는 전제 제도를 부정하고 민(民) 협의회로 대체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는 이전 실학자들에게는 없었던 독창적인 견해로서 뒷날 조선의 정치 사상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그는 우선 수령(收) 의 변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권신성(官權神聖)이니 관주민노(官主民奴)니 하는 봉건적 사상들을 부정하였다.정약용은 백성이 생활하면서 필요하여 스스로 선택하고 약속해서 통치자가 나왔다는 설명을 근거로 왕권신수설에 반대하는 한편 민주제도의 원칙을 확인하였다. 그는 사회의 법도 백성의 자유 의지와 직접적인 이익을 바탕으로 밑에서 위로 제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정약용은 '탕론'에서 중국 봉건 사회의 역성혁명을 예로 들며 민권 사상이 정당성을 논증하였다. 그가 보기에는 도덕규범은 정치와 국가 제도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그는 군주제를 민 협의회로 대체하자고 주장하였다.둘째, 정약용은 정치적 균권(均權)사상은 경제 개혁론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지주가 토지세를 부담하고 군포법이나 환곡제를 폐지하며 공전과 균세를 실시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의였다.
사명지향적 정부Ⅰ. 서론한국의 경제는 60년대 이후 정부개입에 의한 경제성장전략을 통해서 짧은 시간내에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부 주도형 경제발전전략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하고 질적 도약을 위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특히 규제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숨겨진 조세이며, 지나친 규제는 공직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이에 80년대 이후 규제완화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정권의 교체기마다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Ⅱ. 본론1. 행정규칙이 생겨나는 원인1행정만능주의와 자율성 부재의 사회종전의 우리나라 사회는 시장경제원리를 통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정부의 계획, 지시, 통제에 의한 경제성장이었다. 이는 민간의 자율능력에 대한 불신, 사회의 자율조정 기능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이에 정부규제의 피라미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기 확장적, 자기 완결적 속성 때문이다.2무한정한 행정책임과 정부규제의 만연사업결정이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 또한 정부에에 있게 되는것이다.이로 인해 정부규제의 누적적 증가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어쩔수 없이 정부규제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3자율성 부재의 악순환정부의 규제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부 의존성이 증대되고, 개인과 기업은 모든 경제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행정에 묻는 습성을 지니게 된다.이로 인해 정부간섭과 규제는 민간의 자율성 부재로, 이는 다시 정부의 추가적 간섭과 규제의 악순환의 고리롤 연결되는 것이다.2. 사명지향적 정부의 강점이런 규칙지향적 정부가 아닌 사명지향적 정부의 장점은 1 사명지향적인 조직은 규칙지향적인 조직보다 더 효율적이다. 2 더 효과적이다. 그들은 더 나은 결과를 초래한다. 3 더욱 혁신적이다. 4 더욱 융통성이 있다. 5 사기가 더 높다.3. 정부 규제들의 형태정부의 규칙들은 예산체제, 인사체제, 구매체제, 회계체제와 같은 체제들로 분류된다. 즉, 정부가 이러한 체제들에 대한 규제를 철폐할 때 이익이 발생하는데, 이들이 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적 유인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만일 지도자들이 직원들에게 스스로의 업무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하라고 해도, 예산이나 인사체제들이 직원들로 하여금 규칙을 따르게 하고, 예산항목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도록 한다면 직원들은 규clr을 준수하게 될 것이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것이다.1사명지향적인 예산근본적으로 지출통제예산은 과거의 지출항목에 의해 방해받지 않으면서 조직들이 업무를 추진하는 것을 강화시켜준다. 지출통제예산을 사명지향적 예산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점은 확실하다.ㄱ 사명지향적인 예산은 직원들에게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유인을 마련해 준다.ㄴ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자원들을 자유롭게 활용한다.ㄷ경영자들에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할 때 요구되는 자율성을 부여한다.ㄹ예측가능한 환경을 조성한다.ㅁ예산결정과정을 엄청나게 단순화시킨다.ㅂ감사관과 예산담당자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절감시켜준다.ㅅ의원들이 중요한 안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다.2규칙지향적인 인사체제의 전환세부 항목별 예산보다 더욱 고질적인 문제는 공무원사회의 인사체제이다.미국의 차이나호 실험은 캘리포니아주 차이나호에 소재한 해군 무기기지와 샌디에고에 소재한 해군 해양시스템센터의 인사체제를 급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ㄱ대분류와 호봉ㄴ시장원리에 따른 급료ㄷ능력에 기초한 보수ㄹ연공서열보다는 능력에 의한 승진과 일시해고ㅁ책임자가 합법적이고 긍정적인 행위규범내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는 제도ㅂ가장 유능한 사람의 충원ㅅ해직된 직원의 청원과정의 간소화4. 사명지향적 정부로의 제도적 방법1사전심사제 : 규제를 도입할 때는 반드시 규제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미리 심사하여야 한다.2규제일몰법 : 규제를 도입할 때는 시간적 제한을 정하여 일몰법(sunset law)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언제까지 유효하다는 시간적 제한을 두어야 한다.3규제의 총량 통제 : 한 부처에서 현재 규제하고 있는 규제의 총량을 정한 뒤 그 상한선을 유지하도록 한다. 예컨대 한 부처에서 1천개라고 하면, 이에 규제를 하나 더 도입시에는 기존의 규제를 하나 없애도록 하는 것이다.4심의 위원회 : 정부의 필요없는 규칙들을 없애기 위해 정부의 규정이나 활동을 심의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무총리실의 규제개혁조정관실에서 총괄하고 있다. 그리고 종전의 국무총리 직속의 행정쇄신위원회가 개편되어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있는데, 전에 비해 기능은 약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즉, 규제개혁의 주체가 종전의 민간인 중심이었는데, 점차 관료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5영기준예산(Zero-baeed budgets) : 영기준예산은 그 자체가 정부 기관들로 하여금 기관의 모든 항목의 근거를 요구하는 예산제도 이다.5. 사명지향적 정부로 가기 위한 과제1자율규제의 확대자율규제란 피규제자가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이다.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규제가 오히려 민간의 순응을 회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자율규제가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