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육 실 습 일 지2012년 4 월 2 일 월요일 실습생 지도교사 원장활동주제 우리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말할 수 있다.활동목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에 대해서 말하고 소개할 수 있어요.기본생활지도및 안전지도 갖고 논 장난감 제자리에 두기활동과정 활동내용 준비물(시간)07:30~09:30 등원지도등원하는 아이들에게 포옹해 주면서 인사하고 가방에서 출석 카드를 꺼내 가정에서 특이사항 전달 내용이 있는지 확인한다09:30~10:00 오전 간식 시간오전 간식을 먹기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도록 지도한다. 그 다음에 각자 쟁반과 그릇에 오전 간식을 나눠 주어 자리에 앉아서 먹도록 지도한다.오전 간식을 다 먹고 양치 질 한 후 손을 씻고 제자리에 앉도록 한다.10:00~10:30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좋아하는 영역에서 자유 놀이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도록 준비한다.10:30~11:00 대소집단 활동 - 주말에 지낸 이야기원아들과 주말동안에 지낸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가족들과 주말 소풍으로 동물원에 다녀온 아이가 있어서 다같이 자기가 좋아라는 동물 인형을 들고 인형극 놀이를 한다. 동물인형극11:00~11;30 대소집단 활동 - 콩콩콩 뛰어요줄에 링과자를 메달아 놓고 양팀으로 나누어서 한명씩 달려나가 콩콩콩 뛰어서 과자 따먹기 게임음 한다. 링과자,줄기둥막대11;30~12:00 월요일 - 외부 영어 수업 시간외부에서 오시는 영어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영어 수업을 해주심.옆에서 영어선생님을 도와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며 수업에 참여 한다.12:00~13:00 점심 시간 및 자유 놀이 활동 시간영어 시간에 배운 노래를 아이들과 다시 한번 불러 보면서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각자 손을 깨끗이 씻고 가방에서 개인 식판을 꺼내 점심을 먹고, 점심을 다 먹고 난 순서대로 양치질과 손을 씻고 개인 식판을 가방에 넣도록 지도한 후 소화를 돕도록 하기 위하여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을 가진다.* 활동과정(시간) 및 활동내용은 8시간 활동을 구체적으로 매일특이사항 전달 내용이 있는지 확인한다09:30~10:00 오전 간식 시간오전 간식을 먹기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도록 지도한다. 그 다음에 각자 쟁반과 그릇에 오전 간식을 나눠 주어 자리에 앉아서 먹도록 지도한다.오전 간식을 다 먹고 양치 질 한 후 손을 씻고 제자리에 앉도록 한다.10:00~10:10 자기이름적기자신의 이름이 적힌 인쇄물을 가지고 색연필로 색칠도 해보고 그 위에 따라써보는 시간을 가졌다.10:10~10:30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좋아하는 영역에서 자유 놀이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도록 준비한다.10:30~11:00 수조작놀이 - 안전한 도구내가 고운반에서 사용하는 도구예요.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교실내에서 있는것들을 물어보고 위험한것은 무엇인지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림판11:00~11:30 대소집단 활동 - 이야기나누기안전하게 놀아요라는 주제를 가지고 친구들과 장난하면서 놀때나 가위질 할때,횡단보도나 길거리에서 하면 안되는 행동등 각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놀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다.11;30~12:00 목요일 - 외부 영어 수업 시간외부에서 엘렌이라는 영어선생님이오셔서 How are you?라는 노래를 가지고 인사말을 가르쳐주셨다. 손인형12:00~13:00 점심 시간 및 자유 놀이 활동 시간영어시간에 배운 노래를 한마디씩 반복해서 불러본후 각자 손을 깨끗이 씻고 가방에서 개인 식판을 꺼내 점심을 먹고, 점심을 다 먹고 난 순서대로 양치질과 손을 씻고 개인 식판을 가방에 넣도록 지도한 후 소화를 돕도록 하기 위하여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을 가진다.* 활동과정(시간) 및 활동내용은 8시간 활동을 구체적으로 매일 작성해야 합니다.* 추가보충자료는 인쇄물로 대체가능합니다.(허위일지작성이 판단될 경우 성적 F 학점처리)VISION전주비전대학교13:00~15:00 낮잠 시간개인 이불을 펴고 낮잠 시간을 가짐. 잠을 자지 않는 원아는 조용히 놀수 있도록 지도 해준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아 제자리에 앉도록 한다.10:00~10:30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좋아하는 영역에서 자유 놀이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도록 준비한다.10:30~11:00 대소집단 활동 - 안전교육불은 왜 날까요?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고 불이란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가르쳐주었다. 또한 소화기가 무엇이고 어떨때 쓰는 물건인지 알아보고 살펴보았다. 그림판소화기11:00~11;30 신체놀이 - 림보를 넘어요.림보를 조립한후 아이들과 함게 림보대를 넘어보도록 했다. 한명씩 림보를 쓰러뜨릴까봐 조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그러다가 넘어뜨리면 다시 얼른 뛰어가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재밌었다. 림보대11;30~12:00 화요일 - 외부 미술 수업 시간미술선생님과 함께 타원형과 동그란 나무를 이용해 사인펜으로 색칠을 해서 신호등을 만들어 보고 어떤 불에 건너야 하는지 이야기 해보았다. 나무사인펜12:00~13:00 점심 시간 및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손을 깨끗이 씻고 가방에서 개인 식판을 꺼내 점심을 먹고, 점심을 다 먹고 난 순서대로 양치질과 손을 씻고 개인 식판을 가방에 넣도록 지도한 후 소화를 돕도록 하기 위하여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을 가진다.* 활동과정(시간) 및 활동내용은 8시간 활동을 구체적으로 매일 작성해야 합니다.* 추가보충자료는 인쇄물로 대체가능합니다.(허위일지작성이 판단될 경우 성적 F 학점처리)VISION전주비전대학교13:00~15:00 낮잠 시간개인 이불을 펴고 낮잠 시간을 가짐. 잠을 자지 않는 원아는 조용히 놀수 있도록 지도 해준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출석 카드를 작성하고 내일 수업 준비를 도운다.15:00~15:30 오후 간식 시간낮잠을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한 후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음.15:30~16:00 정규반 하원정규반 원아들의 하원을 도운 후 오후 차량 지원을 한다.16:00~17:30 퇴근 준비원으로 돌아와 종일반 아이들의 수업을 지도 하고,담임 선생님을 도와 다음날 수시간엘렌선생님이 오늘은 숫자송을 가르쳐주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One부터 Ten까지 다 알고 있었다.12:00~13:00 점심 시간 및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손을 깨끗이 씻고 가방에서 개인 식판을 꺼내 점심을 먹고, 점심을 다 먹고 난 순서대로 양치질과 손을 씻고 개인 식판을 가방에 넣도록 지도한 후 소화를 돕도록 하기 위하여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을 가진다.* 활동과정(시간) 및 활동내용은 8시간 활동을 구체적으로 매일 작성해야 합니다.* 추가보충자료는 인쇄물로 대체가능합니다.(허위일지작성이 판단될 경우 성적 F 학점처리)VISION전주비전대학교13:00~15:00 낮잠 시간개인 이불을 펴고 낮잠 시간을 가짐. 잠을 자지 않는 원아는 조용히 놀수 있도록 지도 해준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출석 카드를 작성하고 내일 수업 준비를 도운다.15:00~15:30 오후 간식 시간낮잠을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한 후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음.15:30~16:00 정규반 하원정규반 원아들의 하원을 도운 후 오후 차량 지원을 한다.16:00~17:30 퇴근 준비원으로 돌아와 종일반 아이들의 수업을 지도 하고,담임 선생님을 도와 다음날 수업 준비물을 챙기고 먼저 퇴근 한다.유아관찰및 생활지도 손수민이라는 친구는 책도 조금은 읽을줄알았었는데 역시 영어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서 놀랐다.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평소 집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조금 일찍 어머니가 가르쳤다고 하셨다. 원에서도 아이들이 손수민에게 물어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지금이 언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인것같다. 가끔 아이들이 동화책을 들고 그림을 보면서 책을 읽는데 내용을 만들어서 말하는건데 처음에는 깜짝 놀랐었다.실습생의자기평가 엘렌선생님이 몸으로 춤을 추면서 열심히 숫자를 표현하는데 옆에서 같이 따라하는데 나는 쑥스럽고 창피했다. 내 앞에서 날보고 춤을 추는 소은이한테 미안했고 매일매일 부족한 면만 발견하는것 같다.지도교사의실습 평가* 유아관찰 및 생활지도는 원아 한~11;30 수조작탐색 - 꽃과 꽃병 수세기빈 우유통에 숫자를 붙이고 쓰여있는 수만큼 꽃을 꽃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숫자를 아는 아이들은 혼자서도 잘 했고 아직 숫자를 모르는 아이는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수업했다. 빈우유통조화 꽃11;30~12:00 목요일 - 외부 영어 수업 시간오늘은 날씨에 대해서 엘렌샘이 수업했다.12:00~13:00 점심 시간 및 자유 놀이 활동 시간각자 손을 깨끗이 씻고 가방에서 개인 식판을 꺼내 점심을 먹고, 점심을 다 먹고 난 순서대로 양치질과 손을 씻고 개인 식판을 가방에 넣도록 지도한 후 소화를 돕도록 하기 위하여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을 가진다.* 활동과정(시간) 및 활동내용은 8시간 활동을 구체적으로 매일 작성해야 합니다.* 추가보충자료는 인쇄물로 대체가능합니다.(허위일지작성이 판단될 경우 성적 F 학점처리)VISION전주비전대학교13:00~15:00 낮잠 시간개인 이불을 펴고 낮잠 시간을 가짐. 잠을 자지 않는 원아는 조용히 놀수 있도록 지도 해준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출석 카드를 작성하고 내일 수업 준비를 도운다.15:00~15:30 오후 간식 시간낮잠을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한 후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음.15:30~16:00 정규반 하원정규반 원아들의 하원을 도운 후 오후 차량 지원을 한다.16:00~17:30 퇴근 준비원으로 돌아와 종일반 아이들의 수업을 지도 하고,담임 선생님을 도와 다음날 수업 준비물을 챙기고 먼저 퇴근 한다.유아관찰및 생활지도 날씨에 대해서 영어수업을 하는데 Lightning을 배울때는 불을 끄고 번개가 치는 것처럼 손을 반짝했는데 아이들은 불을 끄는게 무척 재미었나보다. 누가 먼저할것도 없이 남자아이들이 일어나서 번개가 나올때면 불을 끄러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역시나 이런 잼있는 일은 개구장이 지원이가 제일 잘한다.실습생의자기평가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내일 동물원견학가는 것을 준비할려고 담임선생님을 돕기로 했다, 아이들의 짝궁정하는것과 이름표 다시 만들
▣소피스트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까지 아테네를 중심으로 출현했던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을 지식인이라 자처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 그리고 트라시마쿠스라는 이방인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각각 다른 장으로 구성하려 했으나 그들의 철학적 내용이라는 것을 서양철학사의 각 단편으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그들을 하나의 단편으로 묶어 함께 기술하게 되었다.프로타고라스는 트라키아로부터, 고르기아스는 시실리로부터, 트라시마쿠스는 켈세돈으로부터 온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아테네의 사고 방식과 관습에 대해 참신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서로 다른 습속을 지닌 다른 여러 나라에 살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현상에 근거한 많은 지식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문화적 토양에 대해,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해 좀더 신중한 태도, 즉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이나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좀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을 제공하였다.소피스트들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페리클레스 치하의 아테네 민주주의라는 상황은, 그들의 실용적인 기술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그들이 지닌 화술(話術) 및 산문과 문법에 대한 서로간의 경쟁심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페리클레스 치하에서 과거의 귀족 정치는 민주 정치로 대치되었고, 이는 자유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토론을 유발함과 아울러 사회적 활동을 강화하는 경향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테네 지식인은 귀족주의적 교육을 받아온 탓에 민주주의에 적응하는 일에 서툴렀으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의 교육이 가계적 전통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종교, 문법, 시(詩), 예술과 법률, 수사(修辭) 등과 같은 보다 세련된 이론적 교육이 전혀 없었다. 소피스트들은 이러한 문화적 공백 상태에 침투하여 새로운 사회적 교육에 대한 수요를 창출함과 동시에 그들의 절박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시민의 지각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상'과 '실재'를 구분할 방도도 없다. 바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실제로 차가운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항상 차갑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론에 입각할 때 과학적 지식을 수립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각각의 관찰자들이 지니고 있는 차이점들은 그 개인들이 사물을 서로 다른 눈으로 보게 하기 때문에 자연의 실재에 대한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타고라스는 지식이란 개인에게 상대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윤리의 문제에 접했을 때에도 프로타고라스는 도덕적 판단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는 법률에는 사람들 사이의 도덕적 질서에 대한 각 문화의 일반 의지가 담겨져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문화권의 사물들이 행동에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과 관습을 구분했으며, 법률과 도덕률은 자연이 아니라 관습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였다. 각각의 사회는 그 자신의 법률과 도덕을 갖는다. 또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법률과 도덕의 건전성에 관한 상식적 관찰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는 이러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극단적인 입장에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즉 그는 도덕적 판단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개인들이라고까지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국가는 법률을 제정했고, 이 법률은 만인에 의해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가 제정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각각의 사회들은 서로 다른 법률을 가질 수 있고, 한 국가 내에서의 개인들도 서로 다른 법률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훌륭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의 구현을 위해, 모든 사람은 그들의 전통이 신중하게 키워온 관습, 설명 가능한 것으로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신도, 사후의 세계도, 그밖의 어떠한 원리도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다. 신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자신의 통제하에서 삶의 방식을 전개하기 위한 무대를 마련할 수 있고 이 무대에서는 오직 실천적인 면만이 강조될 수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철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명령에 따르는 추상적인 행동 원리 대신에 육체와 정신의 쾌락을 위한 개인의 직접적인 욕망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론이 개개의 원자를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개인을 자신의 도덕 체계에 대한 활동 무대로 삼았다.2 ) 쾌락주의(hedonism)에피쿠로스가 만물의 기원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했고 쾌락 추구를 본질로 하는 인간을 또 하나의 작은 메커니즘으로 사물의 본질 속에 위치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에게 자신의 욕망을 규제하는 힘과 의무를 부과하였다. 그는 인간을 신의 섭리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시켜주었지만 그렇다고 정욕과 방종의 수문을 개방할 의사는 없었다. 그는 쾌락을 선(善)의 척도라고 확신하였지만, 쾌락이라고 하여 모두가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만일 누군가가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이 선의 척도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쾌락과 고통의 차이를, 다시 말해 고통보다는 쾌락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쉽게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쾌락을 우리 안에 본유하는 제 1의 선으로 인식하여 쾌락으로부터 선택 및 금지의 행위를 결정하고 우리는 다시 쾌락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에 의하면, 감각이 진리에 대한 시금석이 되듯이 감정은 선악에 대해 직접적인 척도가 되는 것이었다.더욱이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을 구별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음식의 경우처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이 있는가 하면, 성의 쾌락에서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항상 그 행위가 어느 정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있거나 그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충분히 취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이다.소크라테스는 덕과 지를 일치시킬 때 그는 이미 덕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덕이란 인간의 기능의 완전한 실현이었다. 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불가피하게 영혼의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갖으며, 그 갈망은 내면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즉 "가능한 한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 행위"는 적합한 행동양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행복에 대해 필연적으로 갈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선택함에 있어 그 행동이 그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전제한다. 어떤 행동들, 무슨 행위들이 행복을 낳을 것인가? 몇몇 행동들은 마치 행복을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때문에 인간은 종종 의문의 여지가 있는 행동을 선택하기도 하나, 이러한 경우에도 인간은 그 행동이 자신을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도둑질이 그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는 희망에 따라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들은 행복의 상징들인 권력, 쾌락, 부(富), 의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것들과 참된 행복의 기반을 혼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인 것이다.그러므로 소크라테스에게 악덕과 무지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상식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無知)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의 행복을 낳는 능력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무지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의 수행으로서 또한 극단간의 중용으로서 대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각각의 덕목을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성적 통제의 산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결합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인 측면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식물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도 포함된다. 덕은 이러한 본성상의 여러 능력들에 대한 거부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인간은 자신의 모든 능력들, 즉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를 사용한다. 하나는 “지적(知的)”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적” 기능으로서 그 각각은 나름대로의 덕을 가진다. 따라서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지적인 덕은 철학적 지혜와 오성인데 그 덕의 발생과 성장은 교육과 학습에 기인한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며 여기서 윤리학(ethike)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 명칭은 “습관(ethos)이라는 단어의 파생어이다.” 모든 도덕적 덕들은 학습되어야 하며 또한 실천되어야 한다. 그 덕들은 행동을 통해서만 덕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의로운 행위들에 의해 정의롭게 되며 질서 있는 행위에 의해 절제를 실현하고, 용기 있는 행위에 의해 용기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덕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들은 용기와 절제와 정의와 지혜이다. 이 덕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수에 맞는 재물의 사용, 관용, 우정, 자중과 같은 덕을 고려하였던 흔적이 있다. 비록 그는 이성의 중심 기능을 실천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철학적 지혜가 실천적 지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명상(contemplation)은 인간을 보다 깊게 행복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플라톤의 정치철학과 국가1)철학적 국가와 그 원리들..플라톤의 사상에서 정치 철학은 도덕 철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Karl Marx'sWAGE-LABOR and CAPITAL1. What are wages?2. THE NATURE AND GROWTH OF CAPITAL3. RELATION OF WAGE-LABOR TO CAPITAL4. THE GENERAL LAW THAT DETERMINES THE RISE AND FALL OF WAGES AND PROFITS5. EFFECT OF CAPITALIST COMPETITION ON THE CAPITALIST CLASS, THE MIDDLE CLASS, AND THE WORKING CLASSWhat are wages?임금이란 자본가가 정해진 노동 시간 또는 정해진 노동을 제공하는데 대해 지불하는 금액 이다.우리는 마치 자본가는 돈으로 노동자의 노동을 사고, 또 노동자들은 돈을 받고 그에게 자신의 노동을 파는 것처럼 보아왔다. 그러나 책에서 이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라 했다. 그들이 돈을 받고 자본가에게 파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노동력이지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은 자본가의 자본과 교환하여 화폐를 손에 쥐고 그 화폐로 의, 식, 주 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임금이란 보통 노동의 가격이라고 부르는 노동력의 가격을 가리키는, 즉 인간의 피와 살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 독특한 상품의 가격을 가리키는 특별한 이름일 뿐이다.우리나라는 지금 40만의 청년 실업 상태에 빠져있다. 서로들 자신의 노동력을 사줄 자본가를 찾고 있고 그 자본가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을 사줄 자본가를 찾은 사람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더 많은 화폐를 주고 자신의 노동력을 사줄 그 어떤 자본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못해서 혈안이 됐고 더 많은 화폐와 우리의 노동력을 교환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왜일까?? 그것은 맑스가 말한 데로 그것이 즉,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이 우리에게 임금만큼의 고기, 임금만큼의 옷, 임금만큼의 땔감, 임금만큼의 등잔불 등등을 그의 노동일(勞動日)과 교환해 준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금만큼의 생활 필수품을 교환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팔려고 한다.THE NATURE AND GROWTH OF CAPITAL자본은 노동력과 교환됨으로써만, 즉 임금 노동을 가동함으로써만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노동력은 자본을 늘림으로써만, 즉 자신을 노예로 삼고 있는 힘을 강화함으로써만 자본과 교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을 늘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 계급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따라서 자본가들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는 똑같다고 부르주아들과 그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사실 그렇다! 노동자는 자본이 고용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되며, 착취하려면 그것을 사야만 한다. 생산을 위해 쓰이는 자본인 생산 자본이 급속히 늘어날수록, 따라서 산업이 번창할수록,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가 부유해질수록, 사업이 잘되면 잘될수록 자본가에게는 더욱더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며, 노동자는 더욱더 비싼 값에 팔리게 된다.따라서 노동자의 상태를 그럭저럭 살 만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은 생산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다.자본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가 똑같다는 말은 자본과 임금 노동이 한 관계의 두 측면이라는 뜻일 뿐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제약하는 것은 마치 고리 대금 업자와 방탕한 인간이 서로서로 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임금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인 한, 그의 운명은 자본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토록 칭송 받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의 공통성이다.RELATION OF WAGE-LABOR TO CAPITAL자본이 커지면 임금 노동의 양도 그만큼 늘어나며,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많아진다.한마디로 말해, 자본이 더 많은 수의 개인들까지 지배하게 된다. 가장 좋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생산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도 커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가격인 임금도 올라간다.임금은 무엇보다도 자본가의 이득인 이윤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도 한데, 이것이 비교·상대적 임금이다.THE GENERAL LAW THAT DETERMINES THE RISE AND FALL OF WAGES AND PROFITS임금과 이윤의 관계에서 그 오르내림을 결정하는 일반 법칙은 무엇인가?둘은 서로 반비례한다. 자본의 몫인 이윤은 임금의 몫인 하루치 임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올라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윤은 임금이 떨어지는 만큼 올라가며,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떨어진다.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 안에서만 보더라도 자본의 이해 관계와 임금 노동의 이해 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본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이윤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과 똑같다. 이윤은 노동의 가격, 즉 상대적 임금이 그만큼 급속히 줄어들 때에만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명목 임금, 즉 노동의 화폐 가치와 더불어 실질 임금까지 오르는 경우에도, 실질 임금이 이윤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 않는 한에는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경기 때에 임금이 5% 오르고 이윤은 30% 오른다면, 비교·상대적 임금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 즉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조차도, 그것이 아무리 노동자의 물질적 삶을 개선해 준다하더라도 노동자의 이해 관계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 즉 부르주아지의 이해 관계 사이의 대립을 없애지는 못한다. 이윤과 임금은 예나 지금이나 반비례하는 것이다생산 자본의 성장은 임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자본의 증가로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진다. 자본 규모가 커짐으로써 좀더 거대한 무기를 지닌 좀더 강력한 노동자 군대를 산업의 싸움터로 끌어내는 수단이 주어진다.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를 물리치고 그의 자본을 빼앗으려면 더 싸게 파는 도리밖에 없다. 파산하지 않고 더 싸게 팔려면 더 싸게 생산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 생산력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 생산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분업을 진전시키고 기계를 더 전면적으로 들여오고 계속 개선함으로써 높아진다. 분업에 편입되는 노동자 군대가 커질수록, 기계를 들여오는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생산비는 비례해서 줄어들며, 노동은 더욱 실속있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더 전면적인 경쟁, 즉 분업과 기계를 늘리고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대규모로 이용하려는 경쟁이 일어난다.EFFECT OF CAPITALIST COMPETITION ON THE CAPITALIST CLASS, THE MIDDLE CLASS, AND THE WORKING CLASS노동이 불만스럽고 지긋지긋해지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경쟁은 늘어나고 임금은 내려간다.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함으로써, 즉 더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자기 임금의 양을 지켜 내려고 한다. 이처럼 그는 가난에 못 이겨 분업의 해로운 효과를 더욱 키워 간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가 많이 일하면 할수록 그는 더 적은 임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에게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나쁜 조건에 놓이는 경쟁자로 만들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면서도 자신에 대해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기계는 이와 똑같은 효과를 훨씬 더 큰 규모로 불러일어킨다. 기계는 숙련 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남자를 여자로, 성인을 아이들로 대체하기 때문에 기계가 새로 도입되는 경우에는 수공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당하며, 또 기계가 완성되고 개량되고 더 효율적인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에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산업 전쟁의 윤곽을 대략 묘사한 셈이다. 이 전쟁의 독특한 특징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노동자 군대를 징집하는 것이 아니라 줄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전사를 내쫓을 수 있는가를 놓고 서로 경쟁한다.요약해 보면 생산 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사용은 더욱더 확대되고 분업과 기계 사용이 확대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심해지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더 줄어든다.끝으로, 위에서 묘사한 운동 때문에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거대한 생산 수단을 더욱더 대규모로 이용하고 또 이런 목적으로 신용의 모든 용수철을 작동하게 되는데, 이럴수록 그만큼 산업 지진이 늘어나며, 그때 상업계는 부의 일부, 생산물의 일부, 심지어는 생산력의 일부까지도 저승의 염라 대왕에게 제물로 바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한마디로 공황이 늘어나는 것이다. 공황이 좀더 자주 일어나고 격렬해지는 것은 생산물의 양, 즉 시장을 넓히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그만큼 세계 시장은 점점 더 줄어들어 이용할 수 있는 새 시장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시 앞서 지나간 모든 공황이, 정복되지 않았던 새 시장이나 지금까지 상업이 표면적으로만 착취했던 시장을 이미 세계 시장에 예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으로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상하면서도 야만적인 주인인 자본은 자기 노예들의 시체를, 즉 공황으로 몰락하는 희생된 노동자 전체를 무덤으로 함께 끌고 간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훨씬 더 급속히 심해진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계급의 일자리인 생활 수단은 이에 비례해서 줄어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임금 노동에 가장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 문화와 디자인문화와 디자인의 관계문화란 인간의 내면적, 외면적 생활의 디자인이며 문화 자체가 인간 생활을 위한 전체적인 디자인디자인은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풍부한 사고의 능력에 의한 창조 행위 과정을 통해 발전되며 그 결과가 문화 유산으로 남게 된다.따라서 디자인 행위는 문화창조 행위라 볼 수 있고 디자인된 결과물은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 척도의 지표적 대상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화의 개념은 디자인과 불가분의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성공적인 세계적 상품들이 대부분 뛰어난 문화 해석력에 바탕을 둔 독창적 디자인-상품 경쟁력의 근원이 디자인을 통한 문화 해석력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문화의 의미와 특성1. 문화의 의미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많은 부분이 문화적 활동이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것인 만큼 문화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1) 문화는 인간고유의 사회활동인간은 본래 혼자서 살 수가 없다. 사회를 이루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면, 결국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가장 인간다운 사회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한 민족의 `삶의 방식 전체'를 내적으로 형성하는 정신(2)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산물이 문화오늘날 문화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두 사람의 행동 및 사고에서 나타나는 상이한 양식을 의미하는데 사용된다. 즉,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구성원들간에 찾아볼 수 있는 관습적인 행위 및 그러한 행위의 산물을 문화라고 부른다.일반적으로 우리가 문화라고 할 때는 관념, 태도, 행동, 그리고 대상물을 총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문화는 우리의 개념대로 실제적이고 관찰될 수 있는 사물 및 사건들(things and event 이들이 이룬 지난 반세기의 성과는 유럽의 전통적인 디자인이 백년 동안 수행한 결과와 맞먹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디자인 산업에 의한 다양한 문화적 창조성은 오늘날 특히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국가적 정체성의 측면에서 유럽의 예술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의 예술이 유기적 통일체로서 총체적 예술(Gesamtkunstwerk)을 지향하는 반면, 프랑스 예술은 단순한 요소의 변화.축적에 의해서만 총체성을 가질 수 있는 예술로 특징지을 수 있다.즉, 프랑스 예술은 강한 장식적인 구성요소의 중재 없이는 기념비적인 예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탈리아 예술의 양식상의 특징은 이념적 도식화를 거부하는 인본주의적 감성을 지닌 반도 예술가들의 미학적인 중용과 함께 정교함, 우아함, 형태의 촉각적인 면을 풍부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디자인의 영역에서 독일이 과학(Science)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말한다면,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예술(Art)로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은 공예(Craft)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장려한다고 할 수 있다.1.독일(1) 주변환경 및 특성독일의 지형은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부는 북해와 발트해에 면한 해발 500m 정도의 저지대이며 한가로운 농목 전원풍경이 계속된다. 중앙부는 해발 1000m 정도의 고원과 삼림이 풍부한 구릉지대로 대 삼림군이 펼쳐진다. 남부 국경 연안은 알프스로 이어지는 고산지대로서 보덴 호 등 수려한 경관의 호수들이 산재해 있다.독일의 겨울은 한랭하고 여름은 온화하다. 북서부는 해양성 기후, 남동부는 내륙성 기후이므로 청명한 날은 해안지방에서는 4월과 5월, 내륙지방에서는 6월과 9월에 볼 수 있다.12월부터 3월 말까지의 겨울은 라인 강이나 엘베 강이 어는 일이 있을 정도로 추위가 심하다. 그러나 봄부터 여름의 독일은 쾌적하다.근면한 국민성, 정확성과 치밀성두 차례 세계대전 후의 폐허 속에서 구서독 경제가 기적적인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중요 요인으로는 국민이를 위해서는 인류 생태학적인 입장에서 총체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디자인이란 것이 단지 외관 디자인만을 다듬는 `스타일링'의 단계가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사회적이며 학제적인 문제해결 활동으로 여기고 있다(예를 들어 도시, 환경 시스템, 미래의 사회적인 문제 등).지방별 특성의 강조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지역적으로 넓으며 지방색이 강한 나라이기에 각 지방별로 디자인 센터가 있으며, 이들 디자인 센터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독자적이고 다이나믹한 특성있는 프로그램을 주 정부의 지원하에 융통성 있게 펼치고 있다.2. 이탈리아(1) 주변환경 및 특성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탈리아는 약 1200km의 장화모양의 반도와 사르데냐(Sardegna) 시칠리아(Sicilia)의 두 섬을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부속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아드리아 해에 면해 있고, 서쪽은 시칠리아 사르데냐 섬이 티레네 해(Tyrrhenia sea)를 사이에 두고 반도와 마주 보고 있다.국토는 산지와 구릉이 많고 평야가 전 국토의 5분의 1정도 밖에 안된다. 섬 중에 가장 큰 시칠리아 섬에는 에트나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유럽 최고의 화산으로 아직도 화산운동을 하는 분화구 및 900개가 넘는 기생화산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탈리아는 지반이 불안정한 나라이므로 지진이 잦다.이탈리아 전역의 기후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가장 더운 7월 평균기온은 20℃∼30℃, 가장 추운 1월 평균기온은 4℃∼10℃ 정도이나 북부지방은 우리나라처럼 네 계절이 명확하고 기온도 우리와 유사하다.창조에 대한 정열과 뛰어난 솜씨이탈리아 예술의 특징은 라틴 정신과 리얼리즘을 기초로 하여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다. 또 이탈리아 인은 창조적 정열과 뛰어난 솜씨로 그리스 문화를 흡수 동화하고 로마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활동하여 로마의 문화와 전통을 현실생활에 도입하였다.음악에서는 로시니(Rossini) 도니제티(Donize보다 넓고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건축과 디자인이탈리아 디자이너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곳과 다르다.이 분야의 1세대인 벨리니는 이것을 디자인이 건축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라는 수필에서 벨리니는 `그러나 오늘날 훌륭한 성공의 정상에서, 이탈리아 스타일과 같은 것은 없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탈리아 스타일은 어떤 정의된 스타일이 없고 교육에 의해 쉽게 표현되거나 전달될 수 있는 통일된 규율이니 친숙한 개념들이 없다. 그리고 새로운 가 산업이나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위한 특정 학교의 부족을 좋은 방향으로 채워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문화배경은 있어왔으며 한 특정분야에 치우치기보다는 좀더 넓게 인간적이고 복합적이더라도 우리의 건축학교가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건축가인 소로(F.Soro)는 `이와 같은 건축과 디자인의 연대는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인의 생활이었으며, 이 관계는 기능적인 요구로부터 분리된 `Styling'은 단명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디자인에 있어서 다양한 논쟁운동은 아마도 오랫동안 내재되어 왔던 이상주의로부터 기인한다. 전시회의 책임자인 까발로띠(M.Cavalloti)에 따르면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사상이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이탈리아에서 강하다고 한다.벨리니는 오직 건축교육만이, 건물에서처럼 필요한 원리와 내용에 대한 감각을 스며들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른 나라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또는 지금 이탈리아의 몇몇 학교에서 막 가르치기 시작한 것처럼 산업 디자인을 독립적인 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건축가였다. 우리는 도시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위한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학교를 가지고 있고 또한 지금도 몇몇의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그러나 그들 학교로부터 유명한 디자이너가 배출되지는 않았으며 이것은 우연히 아니다. 나는 건축학교가 생활과 관습이 무엇인가에 관한 적으로 배제되어 있지는 않다. 실제로 무어(Moor) 양식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장식적인 측면은, 엄청나게 다양한 표현을 창출해내는 아르누보의 역동적인 곡선의 매너리즘과 결합된다.독재기간으로 인해 늦은 발전모던디자인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스페인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 등으로 비교적 발전이 늦었다. 특히 산업사회의 중요한 시기였던 1930년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코 총통의 독재로 인한 (디자인이 다분히 자유스럽고, 혁명적인 개념까지 잉태하고 있었기에 프랑코 총통시절에는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디자인 분야의 정체와 산업발전의 미비와 하이테크한 분야가 부재하므로 인하여 역사적 전통의 계발이나 현대 디자인에 관한 노우하우가 축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며 다분히 아직도 현대 디자인의 과거의 개념인 공예적인(artisan) 느낌이다. 교육기관 역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비교적 늦게 모던디자인 교육을 위한 기관이 1965년에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미술지향적인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졸업생의 취업의 기회나 실무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더욱 그의 발전이 뒤지고 있다. 아울러 전체 산업구조가 디자이너를 적극적으로 활용할만하지가못하기에 디자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매우 결여되어 있다.부상하고 있는 나라스페인은 여러 면에서 볼 때 이제 그의 현대 디자인이 막 부상되고 있는 나라이다. 극부와 극빈계층이 급속히 평등해지고 희망적인 경제적 분위기는 광범위한 중산계급, 즉 광범위한 수요시장을 키워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일반규칙에 따라 스페인의 디자이너들은 비교적 `안전제일의 행동(play safe)'을 한다.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가정에서 사는 모습이 아직도 일반적이고 그들은 서유럽의 동년배들에 비해 덜 반항적이고 덜 개인주의적이며 과거의 모습을 갖고 있다.1980년대에 스페인은 세계의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힘으로 다시 나타났다. 프랑코 통치시절에 외부와의 교역이 금지되어 스페인은 그들의 내부시장만을 위하여 디자인하고 생산해야만 했다. 그러나 디자한다.
1. 맥도날드의 시초외판원과 음식점 형제의 만남오늘날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날드는 두 사람의 창의적인 음식점 주인과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춘 밀크셰이크 기기 외판원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직후인 1954년의 일이다. 당시 52세이던 밀크셰이크 기기 외판원 레이먼드 크로크(Raymond Kroc)가 자기 제품을 많이 사준 단골고객을 만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 버나디노에 있는 한 휴게소 식당을 찾았다. 가게 주인은 모리스 맥도날드와 리처드 맥도날드(Maurice & Richard McDonald) 형제였다. 1948년 일반 식당을 인수해 패스트푸드점으로 개조한 이 형제는 독특한 방식으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형제가 운영하는 가게에는 한 번에 5개의 밀크셰이크를 만들 수 있는 기기가 8대나 있었다. 한두 개만 비치하는 다른 음식점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많은 기기를 설치했는데도 휴게소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식당 밖까지 손님들이 줄 서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종업원들도 대단히 바빠, 흰 모자에 흰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은 쉴새없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 등을 나르고 있었다. 레이먼드 크로크는 ‘왜 이 집은 유독 이렇게 장사가 잘 되나’ 하는 흥미를 갖고 지켜보았다. 원인은 철저한 효율성 추구에 있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탁월한 경영자였다. 이들은 수십 가지에 달하던 휴게소 식당의 메뉴를 햄버거·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파이·밀크셰이크·소다수 등 9가지로 줄였다. 설거지 시간 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도자기 접시나 유리컵을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 종이제품과 플라스틱제품을 사용했다. 주문을 받은 후 60초 안에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햄버거 생산라인을 공정화했다. 훗날 존 러브는 ‘맥도날드, 아치의 뒤쪽’이라는 책에서 ‘맥도날드 형제는 음식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하고 반복적이며 쉽게 배울 수 있는 작업으로 바꾸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착안해 자동차 생산 효율을 극대사람들을 잘 보살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업적에 대하여 되도록 많이 칭찬하십시오. '사람'이야말로 유일한 진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바뀔 수 있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4. 기업 문화맥도날드의 People Promise는 단어 자체의 단순한 의미 이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지금까지 행동으로서 People Promise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5가지의 행동 원칙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5가지 행동 원칙들은 맥도날드가 추구하는 기업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1. Respect and Recognition(존중과 인정)모든 매니저들은 자신이 존중 받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직원들을 대한다.2. Values and leadership Behaviors(가치와 리더쉽)우리 모두는 회사 최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우리는 타인과 늘 개방적으로 대화하며,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우리는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가진다.우리는 늘 가르치고 배운다.3. Competitive Pay and Benefits(경쟁력 있는 보상체계와 복리후생 제도)맥도날드가 종업원들에게 지불하는 보상은 시장의 평균 또는 그 이상을 추구한다.종업원들은 그들이 받는 보상과 혜택을 가치있게 여긴다.4. Learning, Development and Personal Growth(학습, 개발 그리고 개인적인 성장)종업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또는 업무적으로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종업원들은 항상 업무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노력한다.5. Resources to Get the Job Done(최상의 서비스 실현을 위한 자원)종업원들은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도구 및 자원을 갖추어야 한다.모든 매장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종업원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5. 맥도날드의 주요 제품(1) 빅맥세트빅맥 + 후렌치 후라이 + 음료(2) 특불버거세트특불버거 + 후렌치 후라이 + 음료(3) 맥너겟세트 끊었다. 프랜차이즈 경영자들도 이 기준을 어기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덕분에 시작은 좀 더딘 듯했지만 곧 세계 최대의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②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맛외국을 여행하던 사람이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 맥도날드 햄버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는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을 내건 두 개의 가게에서 맛이나 서비스에 큰 차이가 있다면 고객은 불만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조직으로 이뤄진 기업은 표준화된 시스템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크로크는 철저한 매뉴얼화를 통해 어느 맥도날드에 가도 똑같은 맛을 맛보게 했다. “맥도날드 체인점은 다른 음식점들과는 달리 주방장이 바뀌어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고객의 믿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솜씨좋은 주방장에 의해 손님을 끄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화된 정교한 시스템을 작동시켜 손님을 끄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맥도날드를 있게 만든 최대 경쟁요소였던 것이다. 이는 ‘황제경영’으로 압축할 수 있는 한국 재계와 정치권이 결여한 경쟁요소이기도 하다. 1955년 맥도날드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때 이미 미국에는 무수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A&W, 데일리 퀸, 테이스티 프리즈, 빅 보이, 인트라 버거킹(훗날의 버거킹) 등등. 그러나 맥도날드는 철저한 매뉴얼화를 통해 이들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 후에 등장한 웬디스, 하디스 등 숱한 신흥 패스트푸드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선두를 고수할 수 있었다. 99 회계연도(1999년 4월부터 2000년 3월 사이) 맥도날드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43.1%였다. 경쟁기업인 버거킹은 19.6%였고, 웬디스는 12.2%, 하디스는 4.9%, 잭인더박스는 4.0%에 불과했다. 맥도날드의 매출액도 해외시장 덕분에 385억 달러로 전년 더 세련되어 진다고 생각하고 맥도날드를 선호했다. 이러한 경향은 지방 식당들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각 지역의 식당들은 그들 음식의 가격을 낮추어야만 했다. 맥도날드는 또한 어린이들에게 더욱 더 매력적이었는데, 맥도날드가 일정한 양의 구매에 의해 선물이나 장난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어린이나 십대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가장 인기있는 식당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맥도날드 매장 증가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맥도날드는 인도네시아의 잠재적인 시장을 강조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이런 시장공략은 많은 인구가 있고, 새로운 투자가 유리한 여러 다른 도시로 퍼져가고 있다. 맥도날드는 잠재적인 시장 공략에 있어서 두 가지에 근거한다. 첫째, 맥도날드는 식당들이 성업중인 지역에 관심을 둔다. 맥도날드는 거주지, 사무실 밀집지역, 학교 주변등의 지역에서 개점하는 것을 선호한다. 둘째, 맥도날드는 인구통계학을 기초로 한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대부분은 젊은 세대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판매 촉진에 적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맥도날드 브랜드의 이미지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맥도날드는 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빠르고, 싸고, 맛이 있다는 맥도날드에 대한 이미지는 밤에도 배고픈 이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맥도날드는 켄터키 치킨에 뒤이어 인도네시아에서 패스트푸드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었다.③ 1975년 세계 최대의 햄버거체인 맥도널드가 홍콩에 처음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홍콩은 맥도널드가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진출한 아시아 시장이 됐다.그러나 홍콩에선 광동요리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일품요리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밥이 나오지 않은 음식은 스낵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사전에 이런 환경을 조사하고 홍콩에 진출한 맥도널드는 현지파트너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회사 경영도 전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맡기는 방법을 동원했다.또 어린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린이들의 생일파티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선수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또한, 맥도날드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월드컵 파트너 프로그램인 'Sole & Exclusive'에 참여하여 1998 프랑스 월드컵 , 2002 한일 월드컵의 가장 든든한 후원사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전세계 75개국이 넘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월드컵 관련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월드컵 대회의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공식 후원이란 것은 각 업체의 '최고' 만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맥도날드는 무엇보다도 올림픽과 월드컵의 정신이 내포하고 있는 '대중성'과 '숭고함' 그리고 '정정당당한 승부'의 정신을 역시 브랜드 이미지에 도입, 추구하고자 합니다.한국 맥도날드의 월드컵 마케팅㈜한국 맥도날드는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월드컵 경기의 공식 후원사로서 '월드컵 공식 마스코트 이름 짓기 캠페인'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월 한 달 동안 일본 맥도날드와 공동으로 진행되는 이 이벤트는 맥도날드 매장과 홈페이지에서 공식 마스코트의 이름을 각각 3가지 후보 이름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국, 일본 모두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4월 26일에 최종적인 공식 이름이 발표되며 이와 동시에 한국과 일본 맥도날드는 추첨을 통해 이벤트에 참여한 고객들에게 월드컵 경기 입장권, 등 푸짐한 선물을 증정하였습니다.또한, ㈜한국 맥도날드는 월드컵의 사전행사로 열리는 아디다스 4대4 유소년 축구대회의 공식 후원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2002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을 기념하여 일본의 도쿄 유소년 대표팀을 초청하여 한/일 축구의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5) 프렌차이즈를 통한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발전맥도날드는 프랜차이즈 주로 이제 "미국의 맥도날드"에서 "세계의 맥도날드"로 자리를 잡았다. 철(鐵)의 장막, 소련이 무너지고 모스크바에 가장 먼저 진출한 미국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