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상설국악공연을 다녀와서...어느덧 가을의 정취가 물씬 나는 10월에 파란 하늘과 선선한 공기를 맡으며 나는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국악원은 늘 그렇지만 여전히 정겨운 우리네 푸근한 고향집 같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전공인 해금과 관련된 연주회나 학교에서 꼭 봐야하는 필수연주회를 이유로 국악원을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인 토요상설국악공연을 보러 가는 거라 한결 부담이 덜했다. 또 팜플렛을 펼쳐 연주할 곡목들을 보니 취타, 천년만세 등 많이 들어보고 또 직접 연주하기도 한 익숙한 곡들이라 편안하게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국악박물관의 새로운 악기들과 국악퀴즈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5시가 다 되었다. 서둘러 예악당으로 들어가서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주위에는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과 리포트를 쓰러 온 대학생,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에 관심을 갖고 직접 감상하러 온 외국인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드디어 막이 올라가고 힘찬 집박 소리와 함께 첫 번째 곡 취타가 시작되었다. 음악의 청각적인 효과도 효과지만 시각적으로도 홍주의를 입은 늠름한 남자와 연두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 당의 한복을 입은 단아한 여자 연주자들의 모습은 마치 내가 궁중을 거니는 한 나라의 임금이 된 기분을 느끼게 했고 산수를 그린 멋진 배경과 어울려 장중한 느낌을 더했다. 처음 보고 듣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초등학생들의 우와 하는 감탄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언제 들어도 그렇지만 취타는 임금의 행차 때 연주하던 곡이라 그런지 호쾌하고 장대한 느낌이 물씬 난다. 과연 취타의 또 다른 이름인 만파정식지곡의 뜻처럼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멎게 하는 곡이라 할 만하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취타의 단순하면서도 당당한 12박 장단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늘 편성되는 관현악 악기 외에 좌고, 편종, 편경도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도 한데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끌었다.두 번 째 곡은 대금 산조였는데 원장현류 대금 산조를 원완철씨가 연주하였다. 옥색 두루마기 한복에 갓을 쓴 풍류를 즐기는 선비 옷차림을 하고 대금산조 한바탕을 했는데 맑고 청아한 대금소리가 일품이다. 특히 청소리가 깊은 산속에서 울어대는 새소리처럼 맑고 미세하여 그 울림이 증폭되어 연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원완철 씨 연주는 다른 무대에서도 여러 번 들었지만 이번에 느낀 것은 젊은 연주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노련함, 또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여유로움이었다. 특이하게도 장구 반주하는 정준호씨는 왼손잡이로 궁편과 채편을 반대로 해서 하는 것이 독특했고 고수가 간간이 넣어주는 추임새와 맛깔 나는 장단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대금 산조를 충분히 보완해주고 끌어올려준 느낌이다.세 번째 곡으로 광수무는 국악전공인 나도 처음 보는 궁중무용으로 화려한 샛노란 옷을 입은 두 명의 무용수가 왕관 같이 생긴 어여쁜 족두리를 쓰고 서로 똑같이 그리고 아주 느리게 추는 춤이다.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엎드려 절하다가 다시 일어서는 등 춤의 동작과 동선은 매우 단조로우나 발을 옮길 때 바로바로 떼지 않고 한번 살짝 앉았다가 떼는 그 기법이 마치 폭신한 구름 위를 즈려밟듯 사뿐사뿐한 걸음새여서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거나 쉽지 않은 춤임을 알 수 있었다. 무용 반주는 영산회상의 가락인 것 같았으며 집박과 좌고가 전체적인 박을 잡아주고 전체적으로 무용은 왕 앞에서 추던 춤답게 기품 있고 절제의 미가 느껴지는 훌륭한 궁중정재였다고 생각된다.네 번째 곡은 남도굿거리, 성주풀이라 이름 붙여진 곡으로 민속 기악합주형식을 띈 풍류음악이었다. 남도 굿거리여서 그런지 남도 음악의 특징인 격렬한 요성과 농현이 곡을 전체적으로 구성지고 흥겨운 느낌이 들게 한다.??다섯 번째 곡은 천년만세로 중학교 때부터 연주하던 귀에 익숙한 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 3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져있다. 희미한 옥색 선비 옷과 분홍저고리에 녹색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연주자들이 가야금,거문고,대금,피리,해금,양금,장고,단소 등을 연주하는데 흥겹다가도 평화롭고 또 산뜻하다. 그러나 양청도드리에서 너무 템포가 빨라지고 박자가 일정치 않는 등 흔들리는 모습이 보여서 그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천년만세는 타령장단의 흥겨움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대중들이 다가서기에 가장 좋은 정악곡 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여섯 번 째 곡은 창작음악으로 이준호 작곡의 피리 3중주곡 소양강이다. 이 곡은 자연을 모태로 삼아서 만들어진 곡으로 고음피리, 향피리, 대피리, 모듬북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준호 씨는 축제, 풍향 등의 유명한 관현악 곡으로 내게 익숙한 작곡가이고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 화려하고 장대한 맛을 내는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한 분이라 내심 기대를 갖고 연주에 집중하였다. 불이 켜지고 검은 양장을 차려입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들이 나왔다. 모듬북이 둥둥 하고 울릴 때 마치 저 멀리서 곰이 쿵쿵 걸어 나오는 것 같은 광경이 상상 되었고 끝을 지익 지익 하고 끌어올리는 어딘지 모르게 생뚱맞은 대피리 소리는 귀엽고 앙증맞다. 이준호 씨 곡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살푸리 장단에서 피리들은 테누토와 스타카토를 적절히 섞어가며 리듬을 가지고 노는데 하나의 주제선율을 가지고 계속 장난치는 느낌이다. 피리만 편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우렁차고 호쾌한 맛은 있었으나 피리 셋만으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식상한 화음이 계속 이어져서 조금 유치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 건도 사실이다. 그러나 피리를 종류별로 그리고 거기에 모듬북을 편성하여 10/8,6/8,12/8박의 혼합박으로 잘게 쪼개고 쪼개어 다양한 시도를 한 창작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피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음악으로 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고전주의 발레돈 키호테(Don Quixote)과목명:무용의 이해학과:한국음악과학번:0223021이름:성지연담당교수:신상미교수님제출일:2003.04.0419세기 말경 낭만발레마저 지겨워진 유럽사람들은 낭만 발레를 대신할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 않자 서유롭에서는 발레의 인기가 시들해진다. 그러나 러시아 발레는 그제서야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러시아 발레의 생성과 함께 이루어진 고전 발레의 미학은 프랑스 태생의 안무가 마리우스 쁘띠빠의 작품 활동과 러시아 태생의 무용가 포킨의 안무 연구에 힘입어 고전 발레라는 새 장르를 창조하게 된다. 고전발레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짧은 기간에 절정기를 맞이하는데 고전 발레는 명료성, 조화, 대칭 및 질서와 같은 형식적인 가치들에 주안점을 두는 안무 개념을 말한다, 그 대표작으로는 과 같은 작품들이다.고전 발레의 형식적 특징, 즉 질서 감각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2인무(파드뒤pas de deux)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프리마 발레리나와 파트너가 함께 추는 아다지오, 각자를 위한 솔로 바리아시옹, 발레리나와 파트너가 함께 하는 코다이 순으로 진행되면서 해당 작품의 절정을 이룬다. 특히 코다 부분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는 32회의 훼떼 동작으로 테크닉의 극치를 연출하는데, 발레리나의 기량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훼떼는 최고의 발레리나를 결정짓는 테크닉인 것이다.고전발레는 파드뒤 형식 말고도, 각 나라 민속춤이 발레로 처리된 캐릭터 댄스(Character dance), 주제와 상관없이 무용수들이 자기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는 디베르티스망 등 다양한 볼거리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고전 발레는 음악의 교향악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발레의상에서도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발레리나의 치마는 발목을 드러내는 불룩한 종 모양을 한 로맨틱 튀튀를 거쳐, 다리 전체를 드러내는 접시처럼 확 퍼진 스커트, 다시말해 클래식 튀튀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고전 발레, 즉 쁘띠빠 시대에 오면서 발레리나의 치마 길이는 아주 짧아진다. 짧아진 클래식 튀튀를 입고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게 된 것이다. 클래식 튀튀는 발레리나의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의상이 발레 테크닉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다.돈 키호테(Don Quixote)는 본래 에스파냐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풍자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발레로 1869년 마리우스 쁘띠빠에 의해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돈키호테」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고르스키 안무. 미국 뉴욕시티 발레단의 발란신 안무. 영국 로얄 발레의 드 발로아 안무가 대표적인데, 이 세 가지는 모두 1869년 볼쇼이 발레단이 공연한 밍쿠스 음악-프티파 안무의 5막 11장 를 토대로 하고 있다. 돈키호테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서막 Prologue / 돈키호테의 서재 Don Quixote's Study중세기사들과 아름다운 여인들의 영웅담에 매료된 돈키호테. 항상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인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충복 산초판자와 함께 모험을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1막 / 스페인 바르셀로나 광장투우사와 스페인 여인들의 흥겨운 춤이 광장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선술집 주인의 딸인 아름다운 키트리가 등장하여 연인 이발사 바질과 춤을 춘다. 그러나 키트리의 아버지 로렌조는 딸을 멍청한 부자 가마슈에게 시집보내려한다. 돈키호테와 산초판자의 등장. 키트리를 둘시네아로 착각한 돈키호테가 사랑을 고백하고 키트리와 바질은 때아닌 골칫거리에 난감해한다.2막 1장 / 선술집술꾼들의 흥겨운 춤이 펼쳐지는 선술집. 키트리 아버지 로렌조가 멍청한 귀족 가마슈를 이 끌고 나타나 키트리에게 가마슈와 결혼하라고 한다. 이에 다급해진 바질은 한 바탕 자살 소동을 벌인다. 돈키호테가 이에 대한 책임으로 로렌조를 협박하자 그도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을 승인한다.2막 2장 / 풍차와의 싸움돈키호테와 산초판자는 유랑극단의 인형극을 관람한다. 여주인공을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로 착각한 돈키호테가 창을 들고 무대로 나가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된다. 풍차가 돌기 시작하자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한 돈키호테, 풍차를 향해 돌진!2막 3장 / 숲 속의 꿈정신을 잃은 돈키호테는 꿈을 꾼다. 숲 속에서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만난 것이다. 숲속의 여왕, 사랑의 요정들 과 춤을 추는 여인, '아 나의 둘시네아.'3막 /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이 펼쳐진다. 키트리 아버지 로렌조는 자신의 좌절감을 억제할 수 없어 돈키호테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돈키호테는 패배하지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다시 모험의 길을 떠난다. 결혼 피로연이 벌어지고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화려한 춤이 펼쳐진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키트리와 바질의 그랑 빠드듀를 끝으로 막이 내린다.===================================================간단히 요약된 줄거리만 보아도 돈키호테와 산초판자의 영웅담이 부각되는 원작과 달리 발레의 돈키호테는 하나의 매개체이자 상징이고 초점은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이야기에 맞춰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쁘띠빠의 발레는, 교향곡의 서곡처럼 발레의 내용을 처음에 예고하듯이 꾸민 서곡(Prelude) 부분, 솔리스트(독무자)들이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다채로운 춤들을 많이 보여주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ment), 남녀 주역무용수들의 화려한 발레 기술을 보여주는 그랑 빠드듀(Grand Pas de Deux*) 형식이 꼭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정열적이고 역동적인 스페인 춤의 매력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할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무궁무진한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빨간 망토를 휘날리는 활기찬 투우사의 행진,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든 스페인 여인들의 유혹, 발레로 보는 갖가지의 스페인 민속춤(볼레로 Bolero, 판당고 Fandango, 세기딜라 Seguidilla) 등은 물론 2막 '숲속의 꿈' 장면에서는 정통 발레 의상 을 입은 여성무용수들의 고전발레 스타일까지 골고루 감상 할 수 있다.수많은 춤들 중 단연 압권은 1막과 3막에서 펼쳐지는 바질(Basil)과 키트리(Kitri)의 2인무(그랑 빠드듀 Grand Pas de Deux)이다. 남녀무용수의 매력이 물씬 발휘되는 이 장면은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한 손으로 머리 위까지 들어올린다거나 여자무용수의 32회전 (훼떼 fouette), 두 남녀가 공중 높이 치솟는 대도약 등의 기교가 총 망라되어 있다.
한국정악원과 함께하는창작음악연주회과목명: 국악관현악학 과: 한국음악과학 번: 0223021이 름: 성지연담당교수:강영근교수님 제출일: 2003.03.31-한국정악원과 함께하는 창작음악연주회-2003년 3월2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한국정악원의 창작음악연주회가 있었다. 한국정악원이라고 하면 민속악과 상반되는 개념의 정악만을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팜플랫의 조운조 교수님의 인사말을 보고 한국정악원은 역사흐름에 맞추어 시대정신에 맞게 바른 음악이라 지칭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다루는 연주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날 정농악회 연주회를 갔다온 후라 피로가 덜 풀려있었지만 이번 연주 역시 필수연주회로 레포트를 써야하는 연주였기 때문에 좌석 의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졸음을 쫓아내고 음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첫 곡은 수제천을 새로운 느낌으로 각색했다는 "신(新)수제천"이었다. 전자악기 신디사이저가 조용히 곡의 시작을 알리면 곧이어 본래의 수제천 기악부분이 성악과 함께 뒤따라 나온다. 그러나 신수제천은 본래의 기악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신디와 성악만을 가미시킨 것이었다. 성악은 기존 기악의 멜로디를 따라가는 정도에만 그쳤고 신디는 정박에 딱딱 맞춰 나오는 바람에 연주자들 간의 호흡으로 스리슬쩍 들어오는 연음형식의 곡인 수제천 특유의 멋을 죽이고 있었다. 차라리 신디는 빼고 기악은 몰라도 새로 첨가하는 성악 부분에는 뭔가 큰 변화를 주어 조금 더 색다른 느낌으로 편곡하는 것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제의 정농악회 연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둘 다 소규모 합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연주는 어제의 그것보다 성량이 크지 못했다. 수제천은 정말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 공력이 생겨야만 그 맛을 낼 수 있는 어렵고 심오한 곡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높게 평가할 점은 일반 사람들이 듣기에는 약간 지루할 수 있는 한국정악의 고루한 느낌은 지울 수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신수제천의 뒤를 이은 곡은 "대금과 클래식기타를 위한 오 거기에 클래식기타가 빠르게 분산시켜 화음을 연주하곤 하는 것이었는데 대금이 메기면 기타가 뒤이어 좀 더 빠른 속도로 받아주는 형식으로 마치 우리네의 연음형식과 비슷했다. 또, 기타의 딱딱 끊기는 서양악기 특유의 또렷하고 날카로운 음색을 대금 특유의 부드러운 자연의 소리가 포용하여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서로 절묘한 harmony를 이루었다. 극적인 곡은 아니었고 홀로 오솔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조용조용하고 평온하게 풀어낸 곡이었다.세 번째 곡은 조일 선생님이 연주하신 해금독주곡 "앵두가 빨갛게 물들 때"라는 곡이었다. 제 1장 '씨가 되어'에서는 겨우내 흙 속에 묻혀있던 새 순이 조금씩 움터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1장부터 작곡가 이성천 선생님 특유의 반음계적 선율이 많이 등장하여 이성천 선생님의 곡임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2장 '자연 속에서'는 싹이 난 새 순이 어느새 푸르른 잎사귀가 나고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솔직히 어떤 느낌이나 감흥은 오지 않았고 참 곡이 독특하단 생각만이 들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반음계적 선율과 함께 8도정도의 껑충껑충 급격히 떨어졌다 다시 올라오는 음진행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마지막 3장에서는 꽃을 피우고 곧이어 열매를 맺어 앵두가 빠알갛게 물드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빠르기와 크기가 수시로 바뀌면서 열매를 맺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다음 곡은 강영근 교수님이 연주하신 "풍선"이라는 피리독주곡이었는데 피리에 장구, 신디사이저가 반주를 맡아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곡에 양념을 더했다. 처음 A에서는 거뜬거뜬하게 Allegretto로 시작을 하는데 희망차고 생기에 가득 찬 풍선의 모습을 표현했다. 가벼운 느낌의 통통 튀어 오르는 장구반주와 함께 명랑하고 경쾌한 선율이 주를 이루었다. B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약한 풍선을 표현하였는데 우선 성량부터 작아지고 살짝 느려진다. 그러다 점점 약해지고 C에서는 중중모리 특유의 흥겹고 신나는자아냈다. 그러다 D 엇모리에서도 빠르고 유쾌한 느낌의 연주가 계속 이어지고 주제부 A가 다시 한번 반복되는데 처음보다는 더 크게 강조하며 이 부분 역시 엇모리 첫 박에 강을 주어 리듬감이 잘 살아난다. 김요섭 선생님 곡이 늘 그렇듯이 작곡의 극적인 클라이맥스는 없고 그냥 완만한 딱 정석에 맞춘 그런 곡이었다.다섯 번째 곡은 Prince of Cheju와 Frontier였는데 팜플랫에는 프론티어가 먼저 인쇄되어 있어 프론티어까지 끝난 후에야 Prince of Cheju가 먼저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_-;Prince of Cheju는 작곡자 양방언이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고대 제주에서 한 왕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그 계단 옆에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영상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창작국악이면 으레 그렇듯이 처음엔 조용히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곤 하는데 이 곡은 좀 다르게 타악이 경쾌하고 시원시원하게 시작을 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경쾌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해금, 대금이 주선율을 맡고 소금, 타악, 가야금이 잔선율로 곡의 분위기에 양념을 더한다. 아무래도 기악은 연습이 부족하거나 기량이 좀 많이 딸리는 듯 싶었고 그나마 열정적인 타악이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 것 같다.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프론티어가 시작되었는데 이 곡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의 공식음악으로 지정된 곡으로 CF에도 삽입되는 등 유명한 곡인지라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귀기울여 흥미롭게 들어보았다. 이 곡도 타악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곡의 주제선율은 스타카토로 통통 튕겨 주어 경쾌하고 흥겹다. 또, 주제선율을 악기들이 돌아가며 연주하는데 같은 선율이라도 악기에 따라 어떤 음색이 나고 어떠한 분위기가 나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중간 중간의 태평소의 삑사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곡 자체가 국악에 다가서기 어려운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경쾌한 곡이라 무난한 것 같다.마지막 곡은 "고구려의 혼"이라는 홍동기 작곡의 관현악곡이었는데 우리민족의 씩씩하고 웅껴지는 동살풀이 장단에서는 광활한 말을 타고 만주대륙을 질주하는 고구려 장수들의 장대한 기개가 느껴지고, 휘몰이 장단에 들어서는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더니 타악기가 정신 없이 두드리고 치고.....완전히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우수한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시종일관 빠르고 힘찬 템포와 숨막힐 듯이 고조되는 선율로 표현한 다이내믹한 곡이었다.1909년 한국 최초의 민간 음악 기관으로 설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면면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정악원은 교수님과 학생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면서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듯하다. 학생은 교수님에게서 연륜과 함께 깊어져 온 공력을, 교수님은 학생들에게서 쉬지 않고 연습하는 패기와 열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아쉬웠던 것은 오늘도 객석에는 거의 다 이대 사람들이거나 다른 학교의 국악전공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학교 출신의 선배들이 많은 "한국정악원"이 일반 대중들이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이런 수준 높은 창작국악부터라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 국악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음악단체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한국정악원과 함께하는 창작음악연주회-2003년 3월2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한국정악원의 창작음악연주회가 있었다. 한국정악원이라고 하면 민속악과 상반되는 개념의 정악만을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팜플랫의 조운조 교수님의 인사말을 보고 한국정악원은 역사흐름에 맞추어 시대정신에 맞게 바른 음악이라 지칭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다루는 연주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날 정농악회 연주회를 갔다온 후라 피로가 덜 풀려있었지만 이번 연주 역시 필수연주회로 레포트를 써야하는 연주였기 때문에 좌석 의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졸음을 쫓아내고 음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첫 곡은 수제천을 새로운 느낌으로 각색했다는 "신(新)수제천"이었다. 전자악기 신디사이저가 조용히 곡의 시작을 알리면 곧이어 본래의 수제천 기악부분이 성악과 함께 뒤따라 나온다. 그러나 신수제천은 본래의 기악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신디와으로 스리슬쩍 들어오는 연음형식의 곡인 수제천 특유의 멋을 죽이고 있었다. 차라리 신디는 빼고 기악은 몰라도 새로 첨가하는 성악 부분에는 뭔가 큰 변화를 주어 조금 더 색다른 느낌으로 편곡하는 것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제의 정농악회 연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둘 다 소규모 합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연주는 어제의 그것보다 성량이 크지 못했다. 수제천은 정말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 공력이 생겨야만 그 맛을 낼 수 있는 어렵고 심오한 곡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높게 평가할 점은 일반 사람들이 듣기에는 약간 지루할 수 있는 한국정악의 고루한 느낌을 지울 수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신수제천의 뒤를 이은 곡은 "대금과 클래식기타를 위한 오솔길"이란 곡이었는데 대금주자와 기타리스트 둘 다 모두 정장을 입고 의자에 앉아 연주했다. 연주형식은 대금의 전통적인 선율이 긴 시간 지속되면 거기에 클래식기타가 빠르게 분산시켜 화음을 연주하곤 하는 것이었는데 대금이 메기면 기타가 뒤이어 좀 더 빠른 속도로 받아주는 형식으로 마치 우리네의 연음형식과 비슷했다. 또, 기타의 딱딱 끊기는 서양악기 특유의 또렷하고 날카로운 음색을 대금 특유의 부드러운 자연의 소리가 포용하여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서로 절묘한 harmony를 이루었다. 극적인 곡은 아니었고 홀로 오솔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조용조용하고 평온하게 풀어낸 곡이었다.세 번째 곡은 조일 선생님이 연주하신 해금독주곡 "앵두가 빨갛게 물들 때"라는 곡이었다. 제 1장 '씨가 되어'에서는 겨우내 흙 속에 묻혀있던 새 순이 조금씩 움터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1장부터 작곡가 이성천 선생님 특유의 반음계적 선율이 많이 등장하여 이성천 선생님의 곡임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2장 '자연 속에서'는 싹이 난 새 순이 어느새 푸르른 잎사귀가 나고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솔직히 어떤 느낌이나 감흥은 오지 않았고 참 곡이 독특하단 생각만이 들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이 현존함을 밝히는켈트 영성 이야기과목명: 기독교와 세계학과: 한국음악과학번: 0223021이름: 성지연교수님: 정미현교수님제출일: 2002.11.27-켈트 영성이야기-사실, 기독교와 세계의 과제인 "켈트 영성이야기"를 읽고 느낀 바를 제출하라는 과제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였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난해하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거기다, 나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아닌 무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고는 "기독교와 세계" 시간에 배운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정말 막막했다.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기독교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다. 한번은 전도하는 아주머니가 집을 방문하셨는데 으레 물어오는 것처럼 "교회 다녀요?"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귀찮아서 "불교인데요" 하고 대꾸 해버렸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부처님도 하나님이 만드신거야. 석가모니도 인간이었잖니..."그러셨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그 이후로도 지하철에서 "예수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과 같은 팻말을 들고 "할렐루야~할렐루야~!"정신 나간 사람처럼 목청을 높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기독교는 선택받은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굉장히 배타적이고 쉽게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종교일거란 생각이 굳어진 것 같다.아무런 생각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얼마가지 못해 대충 읽어서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밑줄가지 그어가며 정독했다."켈트 영성이야기"는 하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이미지를 가지는 요한의 전통을 따르고 기리는 켈트 선교와 그리스도가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한 베드로의 권위를 따르는 로마 선교의 두 흐름 이 갈등하던 중, 664년 휘트비 총회에서 로마 선교가 택하여짐으로 인해 묻혀지고 가리워졌던 켈트 선교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책은 시대흐름에 따라 4세기 초의 펠라기우스부터 20세기의 조지 맥레오드까지 주요인물들을 통해 켈트 영성을 소개하고 있었다. 각 장마다의 주요내용을 대강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1)창조의 선함에 귀기울이기 -펠라기우스-우선,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나는 "창조의 선함"을 강조했다. 하나님을 생명을 가진 모든 것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 주변의 모든 생물체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그는 여성들에게 성서읽기를 가르치고,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우구구스티누스의 사상과 인간 안에 내재하는 악함, 우리의 본질적 불의를 강조하는 로마 제국 교회의 영성과는 강한 대조를 이루게 되고 비판받게 된다. 그러나 펠라기우스는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사악함을 강조함으로 인해 인간 본질적인 것에 대한 확신을 상실케 하고 삶 가운데 선이나 악을 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의지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도록 한다며 염려하였다.2)창조 안에서 듣기-에리우게나-9세기의 철학자였던 에리우게나는 창조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와 성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함께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창조는 본질적으로 신의 현현이며 하나님의 영혼이 우리들의 영혼에 보이고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사상들은 "성 요한의 신비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요한은 피조된 모든 것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생명의 한가운데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창조에 대한 강조와 범신론 때문에 펠라기우스의 생각을 부흥시킨다는 이유로 고소당한다. 그러나 에리우게나는 창조의 본질적 선함에 대한 켈트적 영성의 믿음을 지켜나갔을 뿐이며, 그가 주장한 것은 범신론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이 내재하심"이라는 범재신론인 것이다. 즉, 에리우게나는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며,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3)만유 안에서 하나님을 듣기 -카르미나 가델리카-로마선교에 가장 강하게 저항했던 아이오나에 베네틱트 수도원이 세워짐에 따라 켈트 영성은 얼핏 그 맥이 끊긴 것처럼 보였지만 켈트 선교의 영성과 관점의 특별한 방법은 서부에 있는 섬 사람들에 의해 살아남았다.19세기 중반 "카마이클"은 이 스코틀랜드 서부해안과 헤브리디즈에서 전해오는 일상생활의 가장 평범한 상황 가운데 사용된 기도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카르미나 가델리카"인데 그는 오래된 켈트 교회의 전통 안에서 그 기도들이 전승되었음을 믿었다. 그러나 18,19세기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은 계속하여 원죄에 대해 강조하였고, 정신과 물질,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분열을 더욱 가중시켰다.4)이미지로 듣기-조지 맥도널드-서부 섬의 전통 속 기도들을 수집하던 카마이클과 거의 같은 무렵 사람인 "조지 맥도널드"는 오래된 켈트 이야기들과 서부의 전설들을 정립하였고 여러 창작작업을 통해 영성을 구체화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와 우리 사이에서와 모든 창조 안에서 보일 수 있는 내적 통찰력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상상하는 영성의 많은 부분은 존 스코트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스코트는 에리우게나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 안에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보는 스코트의 믿음은 하나님이 모든 창조 안에서가 아니라 창조로부터 아주 분리된 것으로 보는 지배적인 칼빈주의적 교리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무엇보다 스코트와 맥도널드는 창조는 본질적으로 선이며 그 안에 있는 어떠한 파괴적 능력보다 더 깊은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하는 현존임을 주장하였다.5)듣고 행하기 -조지 맥레오드-조지 맥레오드는 켈트 영성의 신비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스코틀랜드 제도교회에서의 사역을 해 나갔던 사람이다. 그의 위대함은 켈트 영성의 관점을 교회의 형식적 삶에 연관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을 듣고자 했던 성 요한의 전통과 교회 안에서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였던 성 베드로의 전통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뜻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켈트 영성의 주요특성들은 맥레오드의 신비주의에서 찾아질 수 있는데 첫째는 창조의 본질적 선함과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그의 확신이었고, 둘째는 비록 창조가 본질적으로 선하고 인간의 깊은 심성의 차원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과 우리 각 사람도 어두움에 의해 불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맥레오드 켈트 영성의 마지막 세 번째 특성 및 관점은 영적 영역의 직접성과 삶 전체에 현존하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감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글씨 날라 올 때 소리 안 나게 해 주시구요글씨체는 궁서체 같은 약간 전통적인 체로 해주세요^^-------------------------------------------1페이지세계화 흐름 속의가야금 명인 황병기예술2조 성지연(0223021) 조주연(0223040) 한채윤(0246048)심지영(0297067) 윤지원(0297081) 윤진(0297082)이미영(0297087) 김진(0299010) 양지수(0299041)예다해(0299043)---------------------------------------------제2페이지목차서론 1. 주제선정 이유2. 황병기 예술에 대한 유명인, 권위 있는 언론들의 시각본론 1. 황병기의 음악인생2. 그의 작품 설명과 감상1)"전통"에 초점을 둔 가야금 산조2)"현대"에 초점을 둔 미궁3)동. 서양 음악의 화합을 추구한 "비단길"결론 황병기 그는 전통과 현대의 소리적 어울림, 동.서 음악의 화합의추구를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3페이지(여기서부터는 페이지 짤리는 대로 알아서 해 주세요^^;)1. 주제선정 이유한 예술가에 초점을 맞춰서 그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느껴보는 시간으로..2..황병기 예술에 대한 유명인, 권위 있는 언론들의 시각(이 아랫부분은 별로 중요한 거 아니니까 글씨 작게 해서 적어도 3장안에 다 들어가게 해주시구요 자그마한 황병기 사진도 곳곳에 좀 넣어주세요)■ 황병기야말로 가야금 음악의 신기원을 이룩한 절세의 음악인, 가야금의 현대적 재창조를 이룬 절세가인이 아닐까? 항상 그에게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과 구수함이 있다. 단아하면서도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직관력이뛰어난 그에게 탈속한 신선 같은 도가풍의 취향이 동향에 존재하니 이 또한 강한매력이 아닐 수 없다.이승렬(前국립국악원장)■ 황병기는 한국 현대음악사에 있어서 이정표적 존재이다. 그의 작을지도 모른다. 황병기 선생은 내가 자라날 시절에 우리에게 꿈을 심어준 사람 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만큼 이론과 실제가 완벽하게 구비된, 그러면서도 한 치의 빈틈도 없는논리를 구사하는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인이었다.김용옥(철학자)-----------------------------------------------------------■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은 오늘의 하이 스피드 시대에 정신적인 해독제로 특별한 가치가있다.스테레오 리뷰■ 그의 작품들은 귀족적인 우아함으로부터 전통 무속신앙의 원시적 활력사이를 자유롭고 거침없이 넘나 들고 있으며 동시에 그의 음악은 분명 한국음악이 세계화되고 있음을 반영해주고 있다. 21세기의범세계적인 예술공동체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를 알게 된 것은 나로서는 커다란 기쁨이아닐 수 없다.조셉 첼리(미국 작곡가)---------------------------------------------------본론1. 황병기의 음악인생(본론 1마지막에 와방 큰 황병기 사진 하나 실어주세요^^;;)#황병기(黃秉冀) 선생은..1936년 서울 출생.195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졸업 직후에는 서울대 음대 강사로 활동중학 시절 국립국악원의 김영윤, 김윤덕, 심상건에 사사.54년과 56년 2회에 걸쳐 전국국악콩쿠르 2회 최우수상 수상.62년부터 국악기를 위한 음악, 영화음악, 무용음악 등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64년부터 유럽, 미국, 일본, 동남아 각지에서 가야금을 연주해 우리음악을 세계에 알리는데선구자 역할을 했다.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나는 경기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 부산에 피난했다. 대신동 밭 자리에 급히 세운 천막 피난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가는 길 한 일본식 2층집에 고전무용 연구소가 있었는데, 나는 이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김철옥이라는 노인이 가야금 타는 소리를 듣고 매혹되어 가야금을 배우기로 굳게 결심을 했다.아버지, 어머니, 누나 등 온 집안 식구가 반대했다. 왜 궁벽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53년 서울 환도 후에도 가야금 공부는 계속되었다. 55년 서울대 법대에 무난히 입학함으로써, "학교 공부에 지장이 없게 할 것"이라는 부모님과의 약속이 이행된 셈이어서, 한결 마음놓고 가야금에 정진할 수 있었다. 법대에 진학하지 못했다면 가야금을 계속하도록 부모님이 놔두지 않았을 것이고, 나 스스로도 면목이 없어서 그만두었을 것이다.그렇게 배운 가야금으로, 대학교 3학년 때는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는 59년에 공교롭게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처음 생겨 가야금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62년부터는 작곡도 시작하였다. 65년 4월에 하와이의 동서문화센터 주최 20세기 음악예술제에 작곡가 겸 연주자로 초청을 받았다. 서양문물에 밀려 음지에서 사라져 가던 가야금을 내가 구태여 붙잡고 배우기 시작한지 14년 만에 바로 서양 사람들 자신이 들어보겠다고 초청한 것이 꿈만 같았다. 가야금 곡 창작을 위한 책도, 선배도 전무하여 독력으로 작곡을 시도한지 겨우 3년. 작품이라고 해봐야 `숲' `가을' `석류집' 등 곡밖에 없는데, 이 곡을 모두 연주해 달라고 했다.미국서 돌아온 뒤 나는 명동극장 지배인으로 당시 수입 예정 외화는 모두 보았고, 화학회사,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사, 출판사 사장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는 중에도 하루도 가야금을 연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직업이 무엇이건, 가야금은 매일 세수하고 이 닦는 일만큼이나 내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그러나 74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 국악과가 창설되어 전임 교수로 초빙을 받자, 음악을 완전히 그만두든가 음악만을 하든가 양단 간에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며칠 고심한 끝에 나는 음악을 그만둘 수는 없는 사람이니 앞으로는 모든 잡념을 다 버리고 오직 음악만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프로 의식을 갖게됐다. 그 해는 내가 최초로 유럽 순회 공연을 했고 내 작품 중 가장 유명해진 '침향무' 를 작곡했으며 첫 작곡집을 출간한 같다.2.그의 작품 설명과 감상그는 풍류 가야금(정악)과 산조 가야금(속악)은 물론 합성섬유 현의 17~25현금(琴)까지 두루 통달한 최초의 국악인이다. 또한, 가야금 하나로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세계의 벽을 허문 훌륭한 국악인이다.가야금의 음역 3옥타브 안에서 전통에서 전위까지, 넓은 행보를 보여 온 그의 무한한 음악 세계를 잠시나마 감상해보자.1)"전통"에 초점을 둔 가야금 산조(가야금 타고 있는 사진 첨가)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는 그의 자유분방함이 여지없이 느껴지는 아주 좋은 연주이다.가야금 산조의 명인 정남희(1905~1984) 가락에 바탕을 둔 그의 산조는 창작과 전통을 두루 오가며 무르익은 40여년 가야금 인생이 총 집결된 기악곡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황교수가 꼽는 정남희 산조의 특징은 역학적인 구성감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산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엇모리`가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삽입된 것이 정남희 산조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황교수는 가급적 정남희 가락을 최대한 살리면서, 맨 앞에 줄을 고르는 부분인 이른바 `다스름`에는 스스로의 창작곡을 넣고, 전체적인 구성과 연주스타일 등에서 자신의 색깔을 발휘해 `황병기류`를 마루리했다. 총 연주시간은 약 70분으로, 기존 산조(평군 연주시간 40~50분)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길다.“내가 정남희제 산조를 만든 것은 전통음악에 충실한 연주자로서의 황병기에요. 내가 일반적인 국악 연주자였다면 산조만 일생 타도 그 작업만으로도 충분한 거지만, 나는 그 부분도 결코 버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산조작업을 하게 된 거예요.단정함과 격렬함이 함께 살아있는 이 연주에서 국악의 정수는 산조와 같은 즉흥연주 free improvisation에 담겨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감상할 곡은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편곡한 협주곡으로 협연자는 가야금 연주자로 유명한 지애리님이다. 죄고 푸는 역동성, 정적가락과 동적가락의 대비...가락을 논리적으로 풀면서 아기자웃고 절규하는 인성(人聲)을 삽입한 독창적이 고 파격적 형식의 곡이다.'미궁'의 시작은 낮은 가야금 소리로 시작되어, 잠시 후 어두운 겨울밤의 음산한 바람소리와 같은 홍 신자의 육성과 함께 전개된다. 점차 빨라지는 가야금소리와 홍신자의 기괴한 육성이 반복되며, 서 서히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이 지나면 마치 미쳐서 흐느끼는 듯한 홍신자의 웃음소리가 황병기의짧은 웃음소리와 서로 교차된다. 이 웃음소리는 곧 울음과 웃음이 섞여 한맺힘의 소리로 이어지며 그 절규의 소리가 극에 달해 가야금과 함께 어우러진다. 잠시 후 그 흐느낌이 사라지면 잠깐의 정적 을 뒤로 하고 '끽~'하는 금속성의 가야금 소리를 시작으로 홍신자의 헛기침소리가 이어지고, 홍신자의 "하얀 와이셔츠..."로 시작되는 어떠한 텍스트의 낭독이 이어진다. 하지만 낭독은 이내 템포를 빨리 하며 점점 기괴한 주문을 외는 것과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형태로 달라지며 가야금의 소리와 함께 극에 달해 비명소리를 마지막으로 고요해진다. 그러나 얼마니 지났을까 빠른 가야금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육성이 이어진다. 이후 닫힌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소리와 같은 가야금 소리가 들리고 이 부분이 지나자 정적인 가야금의 선율과 홍신자 님의 "아제아제바라제..."의 반야심경주문으로 '미궁'은 마지막에 다다른다.미궁의 역사적 배경은 20세기 현대예술의 중요한 경향의 하나는 예술소재(예술에서 사용하는 재료)의 확대 및 자유화인데 이러한 경향은 음악예술에서도 두드러진다. 즉, 현대음악의 중요한 특색의 하나는 19세기까지 음악에서 사용하던 전통적인 소리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새로운 소리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서 웃고 울고 신음하고 절규하는 등 인간의 일상적인 목소리와 다양한 연주법에 의한 획기적으로 새로운 가야금 소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대음악의 음소재의 자유화라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3)동. 서양 음악의 화합을 추구한 "비단길"비단길(1977)은 작곡자의 설명에 의하면"신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