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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역사] 부산의 역사<동래구> 평가A+최고예요
    부산의 역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답사후 리포트 -◈ 목 차 ◈1.동래구 소개2.동래구 연혁3.동래구 상징물4.동래구 지역특성5.동래구 지명유래6.동래구의 문화유산7.전통예술8.우리고장전설9.관광명소10. 소감1.동래구의 소개동래는 삼한시대(三韓時代)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의 유지(遺址)이며 한때 거칠산국(居漆山國)의 치소로서 신라에 병합되면서 거칠산군으로 되었다가 신라 경덕왕16년(757) 지방행정제도를 개편 할 때 동래군(東萊郡) 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래(東萊)라 함은 동쪽의 내산(萊山) 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의 약칭으로 풀이되고 있다. 동래군의 군치(郡治)는 원래 수영(水營)부근이었으나 고려때 잦은 왜구 의 침략으로 현재의 동래읍 자리로 성(城)을 옮겼다. 고려 현종 9년(1018) 울주(蔚州) 동래현(東萊縣)으로 되었으나 조선 태조6년(1397) 동래진(東萊鎭)이 설치되었으며, 명종 2년(1547) 국방과 대일외교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어 당상관 (堂上官)인 정3품 문관이 목민관(牧民官)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최초의 패전지(敗戰地)라는 이유로 일시 현(縣)으로 격하되었다가 선조 32년(1599)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1914년 부제(府制)의 실시로 동래부는 부산부와 분리되어 부산부에 속하지 않는 지역과 기장군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동래군(東萊郡)으로 되었다가 1942년 부산부에 편입되어 동래출장소로 개편되었다.1957년 구제의 실시로 동래출장소에서 동래구(東萊區)로 직제를 개편하여 1988년 구자치제가 실시되기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1991년 동래구의회 개원과 1995년 7월 민선자치시대를 맞이하여 구민을 위한 복지행정구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2.동래구 연혁{2천여년전독로국 또는 장산국 (또는 거칠산국)이라 칭함757신라 경덕왕 16년 동래군으로 됨1018고려 현종 9년 동래현으로 됨1387고려 우왕 13년 동래읍성 축성1397조선 태조 6년 동명소로 유명하며, 각종 상권, 금융기관, 요식업이 밀집된 도시기능의 중추지이다.온천1동 특정지역지명{차밭골(말바우골, 마암동): 금강공원 아래 온천동 산333번지 일대를 말하며 이지역에는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금산부락(金山部落): 현재의 온천1동 지역(한일합방 이전까지 불려졌음){온천교(溫泉橋): 1926년에 가설된 명륜동과 온천동을 잇는 다리.{노인상(老人像): 1927년 10월말 동래 온천장 전차역 신설과 동시에 온천동 전차역 사거리에 설치한 노인상(교통정리 수호신역을 담당. 현재 그 복제 노인상이 동래관광호텔 앞에 세워져 있음).{뱀굴: 옛날 하천변 큰바위 밑에 평평한 황토의 제단모양으로 된 뱀굴(현, 온천1동 114-1번지와 115-20번지의 경계){도리이농장: 현, 부산전자공고 부지로서 일제시대는 '도리이'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이었음.{말바위: 금강공원내 독진대아문 왼쪽에 있는 바위로서 말처럼 생긴 바위.{당산(堂山): 현, 동래별장부근에 있었는데 도시화로 동물원내로 이전하였음.{천인바위(천평바위): 금강공원내 독진대아문 왼쪽에 있는 바위로서 바위의 생김과 규모가 넓어서 천명이라도 앉을 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골목할머니 바위: 이 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금강공원내 황룡사 입구에 있는 바위.{흔들바위: 온천1동 산132-3번지 칠성암내에 있는 바위로서 어린이나 어른들이 손으로 밀기만 하면 흔들리는 바위로서 원효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라 함.{봉래관(逢萊館): 현재의 허심청 부지에 있었던 여관으로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온천중 가장 호화로왔던 여관임.{봉래관 연못: 온천천 물을 끌어 조성했던 곳으로 유람나룻배를 띄워 낚시도 했던 곳으로서 동래온천이 처음 자연용출한 곳을 이 자리로 보고 있다.2)온천2동온천2동은 옛 동래읍 산저마을, 미남마을이라 불리던 미남부락이 1942년 10월 산저리(속칭 차밭골)의 일부와 합쳐지면서 부산부 동래출장소 온천2동이라 하게 되었다.한낱 자연부락에 불과했던 온천2동은 대규모 주택단지일 판자촌은 명장 2동의 개발을 가로막는 난제이기도 하다. 개구리 마을 이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웃논이나 미나리꽝에서 개구리를 잡아 약용으로 말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명장 2동은 이같은 영세민 밀집지역으로 도시기반시설이 미비한 반면 중 소형 아파트와 교육시설의 밀집지역인 신흥 개발지로서 변모하고 있다명장2동 특정지역지명{개구리 마을 : 명장 2동 산 99-2번지 일대 마을, 깊은 산중이었던 이곳은 저녁이면 개구리소리가 요란하였고 이곳 사람들이 개구리를 잡아 말려서 약재상에 파는 것을 주생업으로 아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북문밖동네 : 명장 2동 525번지 마안산 체육공원 밑에 있던 마을6.문화유산{{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6호{지정년월일 : 1972년 6월 26일{규 모 : 높이 400cm, 폭 106cm{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 131-1번지금강공원 내 독진대아문 뒷쪽에 있는 비로서 1731년(영조 7) 동래부사{정언섭(鄭彦燮)이 임진왜란 때 페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축의 내력을 적어 1735년(영조 11)에 건립하였다.비문에 의하면 이 읍성은 원래 그 둘레가 640m, 높이가 2.7m였으며 1731년 정월에 성터를 측량하여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3명의 백성과 승군(僧軍)을 동원하여 7월에 둘레 약3.6km, 높이 3.5m의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동래성 연구의 가장 정확한 자료가 되는 동시에 조선후기 성축사(城築史)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원래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것인데 금강공원 내 독진대아문 뒷쪽으로 옮겨졌다. 비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기록하고,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조선후기의 비석으로 조각수법이 꽤 우수한 비석이다.{{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3호{지정년월일 : 1972년 6월 26일{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많이 변경되어 원래의 모습을 거의 잃고 있던것을 1998년 2월에 원래대로 고쳐지었다.{{송공단(宋公壇){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1호{지정년월일 : 1972년 6월 26일{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일원송공단은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임진왜란때 동래부사 송상현 공이 순절한 정원루(靖遠樓)의 옛터에 설치한 단(壇)으로서, 송상현 공을 비롯하여 임란 당시 순절한 여러 선열들을 모신 곳이다. 송공단의 기원은 농주산전망제단(弄珠山戰亡祭壇)인데 이 제단은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이 송상현공의 기제사를 올리기 위해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조그마한 야산인 농주산에 설치하였다가 1742년에 지금의 위치에 송공단을 세워 옮긴 것이다. 송공단은 처음에는 동, 서, 남, 북의 4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동래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과 함께 부산진(釜山鎭), 다대진(多大鎭)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을 추향(追享)하였다. 그 뒤 동래성에서 순절한 분들은 송공단에,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분들은 좌천동의 정공단(鄭公壇)에, 다대진성에서 순절한 분들은 다대동의 윤공단(尹公壇)에 각각 별도로 모시게 되었다. 일제시기 부터는 동래읍성이 함락된 매년 음력 4월 15일에는 동래기영회에서 120여년 전부터는 음력 9월 9일에는 동래시장번영회에서 각각 향사(享祀)를 봉행하고있다{{동래패총(東萊貝塚){사적 제 192호{지정년월일 : 1970년 4월 25일{시 대 : 삼한시대(三韓時代){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낙민동 100-18번지부산지방에서 유일하게 지정보호되고 있는 삼한시대 패총이다.동래패총은 1930년 철도공사 때 4개의 옹관(甕棺)이 발견되면서 알려졌고, 1967~69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회에 걸쳐 발굴조를 하였으며, 1992년에는 정화공사 때문에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부분적으로 발굴하였다. 출토유물은 주로 토기(土器), 골각기(骨角器), 철기(鐵器)가 주류를 이루며 석기(石器)는 거의 없었다. 동래패총의 존속 시고 있는데, 특히 강백천류는 창시자 강백천이 부산에 기거하면서 1971년 그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받고 후계자를 양성하였으며, 후계자인 김동표도 약관의 나이에 동래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동래에서 활동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동래고무(東萊鼓舞){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10호{지정년월일 : 1993년 12월 28일{분 야 : 교방무용(敎坊舞踊){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13-3동래고무는 고려초기 관청 여악(女樂)을 관장했던 교방청 여기(女妓)들에 의해 행해졌던 향악정재(鄕樂呈才)인 무고(舞鼓)가 동래감영의 교방으로 전래되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동래고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져 행해졌던 북춤의 일종이다. 동래고무는 궁중 무고의 영향을 받아 손을 여미는 동작, 우아한 디딤법, 나비가 하늘거리는 것 같은 팔동작, 북을 치기 위한 동작들이 제약된 여건 하에서도 순수 신체적 동작변화로 구성되어 춤이 세련된 아름다움이 깃들어져 있다. 동래고무는 궁중의 정재도 아니고 순수 민속춤도 아닌 중간 장르의 춤으로서 현존하고 있는 진주검무, 진주포구락무, 승전무와 함께 교방무의 한 유형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1987년 1월 부산민속예술관에서 첫 발굴 시연회를 가졌고,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 보유 및 전수에 힘쓰고 있으며, 지도는 동래고무의 유일한 전승자인 김온경(신라대 교수)이 맡고 있다.{{동래야류(東萊野遊){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지정년월일 : 1967년 12월 21일{분 야 : 민속극(民俗劇){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 13-3번지한국 민속가면극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지는데, 경남은 오광대(五廣大), 중부지방은 산대놀이, 황해도 지방에서는 탈춤, 부산에서는 들놀음이라고 한다. 들놀음은 정월 보름날 보름달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빌고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농토를 상징하는 들에서 펼치는 놀이이다. 동래들놀음을 한자화한 것이 동래야류(野遊)로서 다른 곳의 다.
    사회과학| 2003.06.06| 35페이지| 1,000원| 조회(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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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과학] 부산남구지역 조사
    목 차1. 개요2. 연혁3. 상징4. 지리적 특성5. 지명 유래1) 대연동 2) 용호동 3) 용당동 4) 감만동 5) 우암동 6) 문현동6. 역사 문화자원1)역사적 사건과 현장 2)역사적 인물 3)국가 지정 문화재(국보) 4)시지정 기념물7. 생활문화자원1)전통생활민속 2)주민의 생활권역 3)지역의 별미음식 4)가구거리와 곱창골목8. 예술문화자원1)지역문화예술행사9. 남구의 관광자원1)오륙도 2)이기대 3)부산 문화회관 4)부산박물관5) UN 기념공원 6)신선대 7)부산항과 부두 8)동명불원◈ 부산광역시 남구 지역 조사 ◈◈ 남구 안내도1. 개요부산의 동남쪽에 위치한 남구는 동북쪽으로는 대남로를 경계로 수영구, 서쪽으로는 동천을 경계로 동구, 서북쪽은 황령산을 경계로 부산진구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부산만, 동쪽은 수영만으로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남구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변한에 소속되었다가 이후 거칠산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영토로 대증현(大甑懸)에 속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대증현은 동평현(東平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초기인 현종 9년에 동평현이 양주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 초기에는 동래진에, 조선 후기에는 동래부의 동면과 남촌면에 소속되었다. 그 후 일제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래군의 서하면과 용주면에 소속되고 1936년 4월 용주면과 남면 일부가 부산부로 편입되면서 신설된 부산진출장소(대연, 용호, 용당, 우암, 감만동 등 관할)로 되었다가 1942년 10월 동래군의 수영과 해운대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어 수영출장소(현 수영구)가 설치되었고, 정부수립 후인 1949년 8월 시제(市制) 실시로 부산시에 속하였으며 1953년 9월 대연출장소 소속으로 바뀌었다가 1957년 1월 구제(區制)의 실시 때 부산진구 대연출장소와 동래구 수영출장소로 되었다가 1973년 3월 2개의 출장소가 합해져 시 직할 대연출장소로 승격되고 1975년 10월 1일 남구로 승격하여 18개동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988년 5월에 전국 자치제07' 52"35 06' 25"동서간6.08km서 단문현2동 688129 04' 30"35 08' 55"남 단용호2동 941129 06' 00"35 00' 20"남북간7.80km북 단대연3동 산1-3129 05' 50"35 09' 26"5. 지명 유래1) 대연동대연동은 옛날부터 속칭 못골이라 했다.이것은 오래전부터 못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이 부른것이며,큰 못을 의미하는 오늘날의 대연이란 지명은 못골이라는 명칭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이지역에 사람이 살기는 멀리 가야,신라시대부터라고 하며, 부락의 형성은 지금으로부터 약600년전이며 못골(대연동5동 근처),석포(부산공고 뒷산일대), 사분개(부경대 남쪽바닷가), 당곡(UN묘지 근처일대),용소(부경대학)부락이 있었다.2) 용호동용호동의 옛이름은 바닷물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이 있는 갯벌이란 뜻으로 분개였으나 한자로 바꾸어 쓰면 분포가 된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개창된 것은 일제시대 한일합방전 일본인들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여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제염호출장소를 설치한 때부터이다. 이 설에는 용호동에 작은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승천하지 못한 용(이무기)이 살았다는 전설에서 용호동이란 동명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3) 용당동용당이라 함은 옛날 용당동의 중앙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이못에 용이 산다는 전설에 의하여 용당 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한편 용당의 동편에 용마산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고 산아래 못이 있어서 산과 못의 이름을 따서 용당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4) 감만동감만동의 유래는 조선시대 감만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적을 쳐부수었다는 뜻이 지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5) 우암동우암동은 바다에 접해있고 그 바다 모양이 오목한 포구로 되어 있어서 예로부터 배가 와 닿기에 좋은 천연적인 항구 역할을 했다. 우암이라는 동명은 옛날 이곳의 포구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소와 같다고 하여 우암이라 하고 이 포구를 우암포라 불렀다.6) 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경북 청도 출신이며 만년에는 동명학원을 설립하고, 동명불원(절)을 세웠으며, 각종 장학사업과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설립에도 앞장서는 등 지역경제와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또 한사람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우암동에 성창합판을 세워 합판업계의 선두주자로서 부산경제와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 정태성 회장은 기업 경영인으로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며, 학교법인 성지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아 성지중 고교와 부산외국어대학교를 차례로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3)국가 지정 문화재(국보)◈금동보살입상 (국보 제200호)이 보살상은 보관, 대좌,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천의의 일부가 결손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체구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 있으나, 떡 벌어진 어깨와 풍만한 가슴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은 한결 부드럽고 탄력성과 중량감이 넘치는 듯하여 전체적인 자태는 비교적 온화한 인상을 준다.얼굴은 원만한데 아래턱은 살이 올라 풍만하고, 치켜 올라간 가는 눈과 오뚝한 콧날, 작은 입 등 표정은 자신 만만해 보이면서도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있어 보살의 자비로움을 느끼게 한다특히 양팔에 장식되어 있는 2쌍의 팔지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이 이 보살상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하반신의 아름다운 옷 주름과 천의의 율동적인 곡선은 장부와도 같이 당당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조화시켜 보살의 성스러운 정신을 표현하는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표현이 사실에 충실한 편이며, 균형과 입체감도 충분하여 보살의 위엄과 자비로움을 함께 갖춘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 장인의 기상과 원숙한 조형기법으로 조성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보살상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불상의 내부는 비어있으며, 도금은 거의 완전하여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다.◈영태2년명 납석제사리호 (국보 제233호)영태2년명납석제사리호(국보 제233호)표면에 음각된 명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연도가 영태2년세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전국의 척화비는 1882년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고 통상하게 되자 모두 철거되었다.시대 : 조선시대(19세기), 높이 : 143cm,폭 : 44.7cm 1871년(고종 8년)◈동래남문비(東來南門碑) 제21호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21호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남문에서 왜적의 대군과 싸우다 순절하신 부사 송상현공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현종11년(1670년)에 당시의 격전지인 남문 밖 농주산에 세운 비석이다. 그후 숙종 14년(1688년)에 부사 이덕성이 중창하고 숙종 35년(1709년)에 부사 권이진이 충렬사에 별사(別祠)를 세울 때 별사 앞뜰로 옮겨 왔으나, 영조12년(1736년) 별사를 없애게 되자 동래성 남문 자리로 옮겨 세웠다. 현재는 시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 보존하고 하고 있다. 비문에는 부산지방의 임진왜란 순절사적이 적혀 있으며, 당시 정계, 학계의 저명한 원로들이 참여하였는데 글은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으며, 전자(篆字)는 이정영이 썼다. 비석의 비두석(碑頭石)에는 쌍용조각이 있고 대석(台石)은 없어졌다. 현재 비석은 크게 파손되고 비면에 새겨진 기록은 거의 떨어져 상부에 약간이 글만 남아있으나 필사본으로 그 내용이 전해져, 그 옆쪽에 원래대로 복원한 동래남문비가 전시되어 있다높이 : 225cm, 폭 : 121cm◈오륙도(五六島) 제22호 (밑의 오륙도내용 참고, 내용생략)◈신선대(神仙臺) 제29호.(밑의 신선대내용 참고, 내용생략)7. 생활문화자원1)전통생활민속우리 나라 어디를 가나 1년을 주기로 하여 반복되는 전승문화로 세시풍속이 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농어민의 생활과 관련하여 형성된 비슷한 문화로 기층민의 의식과 생활사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구는 경상좌수영의 영향 아래 있었던 곳으로 농청(農廳), 어방(漁坊) 등이 조직되고 탈춤이 발달한 지역적 특성이 있다.◈세시풍속 주요 세시풍속으로는 설차례, 영동할미제, 백중제, 추석차례,자, 부산관광의 전초기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개발의 방향에 따라 엄청난 잠재력을 안고 있는 곳이다. 주요 문화행사는 구에서 주관하는 오륙도축제, 달맞이 축제와 교육청 주관 오륙도문화축제 등이 있다. 특히 오륙도축제는 6 25 참전국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륙도축제기존 남구문화예술제를 확대 발전시킨 문화축제로서 올해 6회째(통산 11회)가 되는 축제로 유엔기념공원과 부산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종합문화예술제 성격을 가진 축제이다. 새천년준비위원회와 한국관광공사, 지역언론사 등이 후원하고 부산남구청이 주최하며, 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10월 24일 유엔데이를 전후하여 4 5일간 개최하며 기념식, 성화채화, 구민합동전통혼례, 개막식, 오륙도가족음악제, 민속경연, 청소년댄스경연대회, 학생웅변대회, 전시회, 음악회, 연극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기대 달맞이축제매년 새해 맞이하여 구민의 무사안녕과 남구의 발전을 기원하며 30만 구민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이기대 바닷가 바위 위의 공룡발자국 발견을 기념하고 문화축제를 만들어 처음 실시하였다. 공룡발자국 답사, 소원지꽂기, 기원문 낭독, 달집태우기, 강강수월래, 축하공연, 불꽃놀이와 공룡모형과 패널전시 등의 내용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하루동안 진행.9. 남구의 관광자원1)오륙도종 류 :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22호 (1972.6.26)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936번지(방패섬) - 941(등대섬)1998. 5. 26일자 지적공부 등록사항(면적)정정오륙도는 부산만 북안 승두`말로부터 남남동방향으로 가지런하게 뻗어있는 기암절벽의 6개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용호동 앞바다의 거센 물결속에 솟아있는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것부터 방패섬(936번지, 2,166m2), 솔섬(937번지, 5,505m2), 수리섬(938번지, 5,313m2), 송곳섬(939번지,2,073m2),굴섬(940번지, 9,716m2), 등대섬(94경관이
    사회과학| 2003.05.17| 14페이지| 1,000원| 조회(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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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뤽 베송
    < '뤽 베송의' > 는 라는 광고 문구와는 달리 뤽 베송Luc Besson이 감독 한 영화는 아니다. 뤽 베송은 제작과 각본을 맏았고, 제라르 삐레Gerard Pires가 감독을 맡 은 이 영화를, 그러나 '뤽 베송의 '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뤽 베송이 프랑스에 차린 그의 첫 제작사에서 만든 첫번째 영화인 는 에서 확실하게 굳어진 프랑스 최고의(그리고 유럽 최고의) 헐리우드 키드이고자 하는 그의 희망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뤽 베송의 영화들은 '사회에 적응 못하는(또는 안하는)' 인물과 그 주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비극, 그리고 그 비극안에 숨어있는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과 같은 애틋한 서정성, 그 속에 생각났다는 듯이 문득문득 섞 여드는 유쾌함,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시나리오와 감각적인 화면, 그 화 면에 녹아드는 에릭 세라의 음악이라는 일관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고, 그것은 뤽 베송 영 화의 매력이었다. 그러한 그의 작품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주는 재미와는 다른 형태의 재미 를 주기에 충분했고, 관객들에게 "프랑스 '예술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심 어주었다. 게다가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캐릭터와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감수성은, 헐리우드의 무대뽀와 느끼함에 질려있던 우리의 감수성에도 잘 부합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 다(실로 의 인기는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와 에서의 '폭력성'은 오히려 헐리우드 장르 영화 재해석한 그만의 감수성이라고 이해되었고, 그를 두 고 '프랑스 영화의 미래가 바뀌고 있다'고 말한 장 자끄 아노Jean-Jacques Annaud감독의 예언은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대목에서 바로, 역시, 예상대로, 그는 숙원사업 를 실현하기 위해서 헐리우드로 건너간다. 그리고 '헐리우드로 건너가 자기 색깔을 잃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대 니 보일 감독Danny Boyle 감독의 말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화려한 비주얼과 썰다(그러고보니 에서 '우주의 구 원자'를 하기 전의 브루스 윌리스의 직업도 택시기사였다). 이 '소박한' 소재는 뤽 베송이 다시 옛 작품들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같은 서정적인 영화를 찍던 예전의 '촌스러운' 뤽 베송과 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는 그런 그가 가고 있는 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프랑스 속의 헐리우드 > 우선 가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혈통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는 것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스케이트 보드 세대(우리나라에서는 폭주족이 나타 나기 시작한 시점의 세대들?)를 겨냥한 영화라고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 오프닝부터 '폭주' 는 시작된다. 놀랍게도 그 폭주의 주인공은 피자배달 스쿠터(!). 스크래치로 불꽃까지 튀겨 가면서 폭주하는 스쿠터를 잡는 화면의 박진감은 대단하다(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으 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인공인 프랑스 최고의 폭주 철가방 다니엘(Samy Naceri 분)의 은퇴를 축하하는 폭주족들의 묘기 대행진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수 백대의 스쿠터, 할리 데이비슨, 오프로드 레이싱용 스즈끼들이 보여주는 묘기는 대단하다. 필자는 스쿠터가 멋있어보인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스 쿠터라는 기계를 다시 보기로 했을만큼 스쿠터들의 필살기는 압권이다("6000원어치 볼거리 는 여기서 다 보여주겠다!"). 두 바퀴 달린 것들을 완전정복('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하여라')한 다니엘은, 네 바퀴 달린 것들의 세계로 가서 택시기사가 되고, 폭주는 더욱 가속된다. 그리고 볼거리도 함께 가속된다. 그의 흰색 푸조 택시(당연히 프랑스제)는 일본 만화영화에서나 나오던 '삼단 변신 자동차'이다. 이 어마어마한 택시는 변신하자마자 시속 220Km로 시내를 폭주하는데, 여러 '똥차'들 사이를 비집으면서 달리는 택시를 좌우로 엇갈리는 카메라는 속도감을 증폭 시F-1까지, 리어카와 삼륜차 빼고는 다 모인 것 같은 차들은 사정없이 뒤집히고, 깨지고, 부서진다. 그야말로 아 낌없이 쏟아붓는다. 카 체이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최고의 진수성찬이다. 그리고 영화속의 젊은 여인들(다니엘의 애인 릴리(Marion Cotillard분) , 다니엘과 파트너를 이루게 되는 덜떨어진 경찰 에밀리앙(Frederic Diefenthal분)이 따라다니는 여성 경찰반장 카밀레(Manuela Gourary분))은 남성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눈요기 거리를 계속 제공한다. 마치 맥주회사 달력같이 무의미하고 즐겁지도 않은 야한 장면이 계속된다. 이 영화의 감독 은 마치 남성관객들에게 잘빠진 몸매의 여자들의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보여줘야한다는 사명 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다니엘의 애인 릴리는 다니엘과 자는 것이 지상과제 인 '그것'만 생각하는 여자가 되었고, 강력계 반장이라는 카밀레도 전혀 경찰같지 않고 맥주 광고 모델같다. 는 007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여성 모독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헐리 우드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그리고 별로 웃기지 않은 느끼한 유머도 뤽 베송이 헐리우드까지 가서 과시하고 온 바로 그 것이다. 전의 뤽 베송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정적이고 귀여운(?) 농담은, 에서 20번 시도에 한 번 웃길까 말까한(타율로 따지면 5푼) 지루하고 과장된 농담들에 게 자리를 내줬으니 에서 새삼스럽게 재미있는 농담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 다. 하지만 끊임없이 웃기려고 노력하는 주인공들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면 관객의 입 장에서는 좀 민망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웃겨서라기 보다는 '골때려서') 가장 많은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바로 한국인들이 나오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를 보신 분들 사이에서는 아마도 이 장면이 최고의 화제가 될 것이다. 2교대 24시간 근무에, 한 명이 운전할 때 나머 지 한 명은 트렁크에서 잠자는, 거의 거지에 가까운 2인조 택시 운전사들이 바로 한국 청년 들이 맡은 역이다. 이들에는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이 영화의 상영을 반대했었는 데, 지금의 우리나라 관객들은 그때보다 많이 유연해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허술한 내러티브라는 면에서도 최근 헐리우드 영화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 다. 수 많은 경찰 버디 무비(buddy movie)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는 이 영화의 인물들은 과 장이라 싶을 정도로 팔팔한 에너지에 충만해있고, 줄거리는 관객의 재미를 위해 이리저리 벌려놓은 사건들을 따라다니기에 바쁘다. 신출귀몰하는 독일을 빨간 벤츠 갱단의 도주 방법 은 그렇게 기발하지도 못한데다가 설득력도 없다. 그 도주방법이란 트레일러 안에서 빨간색 벤츠를 은색으로 다시 칠한다는 것인데, 다른것은 다 봐준다고 하더라도 벤츠가 충돌하면서 은색 페인트가 벗겨지는 장면이 있는데 당연히 보여야 할 바탕의 붉은색이 보이지 않는다. 뭐, 사소한 거 가지고 트집잡는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영화에 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 '빨간색->은색 트릭'이 이렇게 허술한 것이라면 나머지는 오죽하겠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을 잡는 다니엘의 묘안이라는 것도 듣기에만 거창했지, 그닥 기발하지도 않고 따라서 재미도 없다(파리 시내 신호등에 수백명을 배치해서 신호를 조작한다는 발상은 아직 도 이해가 안된다). 기발하고 치밀한 플롯을 짤 자신이 없다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 를 이끌어갔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뤽 베송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 아니면 관객의 수준에 대한 과소평가 둘 중의 하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 화의 안되면 될때까지(안웃기면 웃길때까지, 기발하지 않으면 기발할때까지) 정신은 여기에 서도 발휘되어서, 의 패로디인듯한 갱단들이 잡히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기발하다(자세한 것은 이 영화를 보실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런걸 유종의 미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타율 5푼'은 이 영화의 '액션'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 택시와 > 영화 속에서 택시라는 존재는 화려한 도시속을 표류하는 하는 모순의 공간이었고, '재결합에 관한 이야기(A story about reunion)' 에 서 보영과 요휘는 택시 속에서 재결합(reunion)을 꿈꾸기 시작한다. 많은 영화들에서의 택시 는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는 공간이었고, 그들의 소외와 충돌이 해소(해결과는 다른)되는 공 간이었다. 그럼으로써 도시속의 유령선 택시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유령선인 도시 그 자체, 그리고 유령선이 떠다니는 안개낀 바다인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그 자체를 축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서의 택시는 유령선도, 소외도, 충돌도, 은유도 아닌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남성미 넘치는 믿음직한 기계이다. 그 안에서의 충돌은 220km/h를 즐기는 스피드광과 그곳 에서 내리자마자 구역질을 해대는 회사원의 '문화적' 충돌이며, 그 안에서의 갈등은 자신과 의 하룻밤을 기다리고 있는 애인을 집에두고 경찰 나부랭이와 잠복근무 따위를 해야하는 스 피드광의 갈등이다. 도시는 향할 곳 모르는 욕망이 흘러다니는 근적끈적한 공간도, 자본주의 의 냉혹함이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공간도 아니다. 도시는 스피드광들을 위해 준비된 난이도 높은, 그래서 한 번 달려볼만한 난 코스의 경주장이다. 헐리우드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이 영 화가 택시를 카 체이싱 시뮬레이션 게임기로 만든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데, 는 볼거리가 많은 영화이지만(화끈하고 화려한 카 체이싱, 각가지 자동차들, 오토바이들의 묘기, 그리고 '흥행 대작'에 출연한 한국인들까지), 허술한 줄거리와 재미없는 농담으로 볼거리마저 지루하게 만드는 최근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이렇게 본다면 와 의 차이점은, 에는 한국사람이 나오지 만 에는 프랑스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것 정도가 될까요). 프랑스어 대사가 나오 는 것이 참 생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헐리우드적인 이 영화에서 뤽 베송의 헐리우드 키드 를 향한 꿈은 실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다행인 일인지 불행의 씨앗인지는 여러분들 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렇듯
    독후감/창작| 2003.05.15| 3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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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과 의상]스트리트패션 평가B괜찮아요
    STREET FASHION국내 스트리트 패션을 주도하는 계층은 발랄한 여대생들과 젊은 계층의 남·녀 들이다. 이들은 현재 77년에서 82년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른바 Y세대로, 문화적으로 N세대로 분류되는 정보화 세대이다.유행에 민감하고 패션 및 자기 치장에 관심이 많은 이들 계층은 감성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욕구가 강해 고감도 구매력을 지닌 집단이란 평이다.( 1 ) 젊은 계층 남·녀의 라이프 스타일1 의식구조2 쇼핑문화3 착장경향 - 봄 , 여름 , 가을 , 겨울 ( 정장파 & 캐주얼파 )( 2 ) 스트리트 상권 동향 및 주요분석- 대형 전문 쇼핑몰이 유통의 혁명 주도 -국내 유통 구조는 초창기 소형 가두점에서 백화점 중심을 거쳐 최근 도소매 전문 의류 상가로 무게가 옮겨 왔다. 현재 및 향후 패션과 문화의 집합체인 대형 전문 쇼핑몰이 중심시장으로 구축하게 될 것으로 전망 된다.1 주요상권 분석( 3 ) 스트리트 상권 현황 : 패션중심가- 상권 구분 & 조사지역( 4 ) 젊은 따른 액티브함 연출 - 스트리트 패션 동향지난 10월 중순 거리의 젊은이들은 아직 잔존하는 여름의 열기에 한낮엔 니트 티셔츠로 멋을 냈고 다소 쌀쌀한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아침과 저녁엔 니트 가디건을 덧입는 패션을 연출했었다. 거리와 패션을 통해 미흡하나마 현 사회의 문화적 특성 및 현상과 패션 트랜드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 월 한달간 젊음의 거리 광복동, 서면, 부대앞 거리 패션을 아이템별로 분류한 스트리트 패션 동향 을 소 개한다.1 쟈켓 ( JACKET )2 점퍼 ( JUMPER )3 티셔츠 ( T-SHIRT)4 가디건 ( CARDICAN )5 스커트 ( SKIRT )6 팬츠 ( PANTS)7 수트 ( SUITS )8 하프코트 ( HALF COAT )9 힙합 ( HIP-HOP )⑩ 액세사리 ( ACCESSORY ){젊은 계층 남·녀의 라이프 스타일* 의식구조- 하나의 통일화된 시장으로 보기 어려운 다양한 특성을 지님- 낙관주의적 성향, 사이버 세대의 원조, 패션 및 자기 치장에 관심이 많음- 유행에 민감하고 감성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음-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중시함- 새로운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저항감이 적음- 젊고 친근한 이미지를 좋아함- 광고에 대한 이해도와 인지도가 높음- 즐거움보다는 생활의 도구로 인터넷을 많이 사용* 쇼핑문화- 쇼핑을 놀이 문화로 인식. 즉, 즐기려는 성향이 강해 음악을 들으면서 다닌다거나 게임 및 오락거리를 선호- 쇼핑하러 자주 가지만 반드시 물건을 살 필요는 없음- 구매 횟수는 빈번하지만 구매 단가는 떨어짐- 신상품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등 패션 중심화·개성화·감각화·자기표현 욕구가 강함- 스티커, 스티커 사진과 갖가지 색연필로 치장한 다이어리가 필수품- 휴대 제품 선호해 모바일 폰 항시 휴대- 고감도 소비성향 지녔지만 소비력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함-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어 이들의 소비 패턴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음- 용돈과 아르바이트를 모여진 돈을 저축해 부담 없이 당당하게 소비* 착장경향봄{정장파캐주얼파- 블랙을 테마로 한 세련된 시티 캐주얼 정장- 클린한 파스텔톤의 쟈켓- 럭셔리 감각의 도시정장- 베이지를 주조로 한 트렌치 코트- 심플한 감각의 블루종 쟈켓- 페미닌한 트윈 혹은 세트 가디건- 9부 팬츠 & 토드백- 파시미나, 스카프- 진쟈켓, 구제진, 9부 데님, raw 데님- 밝은 핑크와 블루 계열의 옥스퍼드 셔츠, 면반반 바지, 화이트 양말, 구두 혹은 운동화, 스니커즈- 아우터의 감각으로 입는 체크 셔츠- 니트와의 바리에이션, 치노 팬츠- 코튼 후드 점퍼, 후드 달린 맨투맨 티셔츠- 노티카 풍의 스포티브 점퍼, 힙합풍의 야구 점퍼여름{정장파캐주얼파- 가벼운 블라우스 풍의 쟈켓, 7부 쟈켓- 슬림한 9부패츠- 슬리브리스 원피스- 화이트 롱 스커트- 타이트 스커트 & 니트 탑- 선글래스- 반팔 티셔츠와 빈티지 데님- 귀여운 오버올즈(멜빵바지)- 화이트 면티와 베스트의 코디, 면바지, 반팔 체크 셔츠- 로고 티셔츠- 폴로풍의 차림가을{정장파캐주얼파- 블랙팬츠 or 스커트 수트- 가디건 세트와 스커트로 세미정장 완성- 달콤한 컬러의 파시미나, 실크 스카프- 소프트 가죽 아이템- 브리티쉬 체크의 머플러 혹은 숄- 패턴드 스타킹- 니트 스웨터와 치노 팬츠의 내추럴한 멋- 캐주얼하게 겹쳐입기, 야구 모자- 폴라플리스 집엎 후드 점퍼- 트레이닝 팬츠, 체크 팬츠- 운동화겨울{정장파캐주얼파-후드 코트, 핸드메이드, 모직코트-원터 블루종-인조모피 코트, 토끼털 코트-컬러드 가죽 외투류-리치한 느낌의 무스탕-숄과 망토, 버버리 체크 머플러-가죽 혹은 스판 소재의 부츠-패딩 코트-베이스볼 점퍼, 노티카 풍 점퍼-더블 코트-폴라플리스 집엎 후드 점퍼-니트 손뜨개 모자대형 전문 쇼핑몰이 유통의 혁명 주도{스트리트 상권 동향 및 주요 상권 분석국내 유통 구조는 초창기 소형 가두점에서 백화점 중심을 거쳐 최근 도소매 전문 의류 상가로 무게가 옮겨 왔다. 현재 및 향후 패션과 문화의 집합체인 대형 전문 쇼핑몰이 중심시장으로 구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상권 분석. 패션몰, 멀티 컨셉숍, 전문점 등의 신유통 업태 중심으로 상권 활성화 & 재편성되고 있음. 중·대형 규모의 시장 보세점도 점차 증가. 부심상권은 점차 축소화되는 경향대형매장이나 쇼핑몰이 들어서는 상권은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지만 그 밖의 부심상권은 점차 축소되는 경향이 며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나 유통 채널이 부각되지 않으면 향후 사라질 것으로 예측됨. 상권 전문화향후 상권의 전문화는 새롭게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전문화된 브랜드 컨셉과 매장 컨셉 갖춰 야 하며, 타사·타업태와의 전략적 제휴 요구됨. 상권특성별 분포복종별 전체분포를 볼 때, 여성복과 남성복 매장은 감소하는 추세이며, 캐주얼과 잡화, 그리고 애세서리, 캐주얼 과 잡화, 그리고 액세서리·내의·아동복을 포함하는 기타류 매장 수는 증가하는 추세임멀티숍은 증가가 특징적이며 각 지역별로 멀티숍이 증가하거나 새롭게 생겨남을 알 수 있음패션 중심가, 대학가 상권 - 잡화 비율 높음할인 타운 캐주얼 분포 높으며, 여성복에 비해 스포츠, 아동복, 남성복숍의 비율 높음스포츠숍의 경우, 핵심 상권인 패션 중심가 중심으로는 낮은 분포를 보이는 반면, 점차 축소되는 부심권에 대리점 형태로 많이 남아 있음. 따라서 향후 새로운 업종형태의 도입과 함께 신선한 마케팅 기법의 스포츠 숍을 패션 중심가에 진입시킨다면 최근 소비자의 스포츠 라이프 스타일 추구와 맞물려 높은 가능성이 엿보이며 상권에 새로 운 활력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됨{스트리트 상권 현황 : 패션중심가{상권 구분조사 지역패션 중심가서울 명동/광주 충장로/대구 동성로/부산 광복동/전주 중앙로지역중심가(서울) 압구정/청담동부심권(서울) 영등포/청량리/화양리/신림(부산) 서면/광안리 (인천) 신포동대학가(서울) 이대/성신여대/숙대/홍대 (부산) 부대{젊음 따른 액티브함 연출 - 스트리트 패션 동향지난 10월 중순 거리의 젊은이들은 아직 잔존하는 여름의 열기에 한낮엔 니트 티셔츠로 멋을 냈고 다소 쌀쌀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아침과 저녁엔 니트 가디건을 덧입는 패션을 연출했었다. 거리와 패션을 통해 미흡하나마 현 사회의 문화적 특성 및 현상과 패션 트랜드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한달간 젊음의 거리 광복동, 서면, 부대앞 거리 패션을 아이템별로 분류한 스트리트 패션 동향 을 소개한다.{쟈켓 ( JACKET )자켓은 주로 너무 두껍지 않은 모직 느낌의 소재에 검정색이 위주였으며 스타일은 박스 스타일이나 약간의 A라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번 시즌 유행인 체크와 하운즈 투스가 쟈켓에서도 보여지며 80년대 스타일을 재현하고 있다. 모두 심플한 박스 스타일 자켓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색상은 검정색이 여전히 두드러진다.{점퍼 ( JUMPER )힙합 스타일에서는 꾸준히 보여지고 있었지만 1년중 9월말에서 10월까지 가장 많이 보여지는 아이템인 점퍼는 주로 진 소재가 많았으며 스커트와의 코디가 두드러졌다. 이번 시즌 트렌드 소재인 가죽은 간간히 보여지고 있었다.{티셔츠 ( T-SHIRT)티셔츠는 타이트한 니트셔츠와 활동성 있는 박스형 티셔츠가 대조를 이루며 보여진다. 니트셔츠의 경우는 다양한 색상으로 주로 브이 넥이 많이 보여지고 있었고 박스형의 경우는 힙합스타일이나 후드셔츠가 많이 보여졌다. 광복동은 화사한 파시미나를 돋보이게 하는 심플한 검정색의 니트가 주류를 이루어쓰며, 부대앞은 힙합바지와 잘 어울리는 박스형 티셔츠가 많이 보여졌다. 서면은 타이트한 니트셔츠가 다양한 색상으로 보여진다.{가디건 ( CARDICAN )간절기 필수 아이템인 가디건이 시즌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으로 보여졌다. 특히 니트 셔츠와 같은 색으로 입는 트윈 세트가 유행이다. 광복동에서는 검정색과 회색같은 무채색의 트윈셋트가, 부대앞은 캐주얼하고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이는 니트 가디건을 입었다. 서면은 다양한 색상의 타이트한 니트 가디건이 많이 보여진다.{스커트 ( SKIRT )스커트는 주로 A라인보다는 슬림한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며, 진 스커트도 많이 보였다. 패턴은 체크와 하운즈 투스 기하학적인 무늬 등이 많이 보여졌으며 검은색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광복동은 정장 자켓과 함께 입은 무릎길이의 슬림한 검정색 스커트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부대앞은 편한 면 스커트를 서면은 다양한 길이의 진 스커트가 많이 보여졌다.
    예체능| 2003.05.15| 7페이지| 1,000원| 조회(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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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과의상] 통일신라시대의복식
    ..PAGE:1통일신라의 복식형태와 종류상의하의복두..PAGE:2표 의국제(國制)인 포(袍)를 지칭한 것.통일신라시대에는 두루마기를 신분의 귀천없이 남녀가 모두 착용하고 있었으나, 골품계급은 중국 포(袍)의 영향을 받아 활수형(闊袖型) 이었고, 서민계급은 우리 고유의 포 그대로 착수형(窄袖型)이었다.옷감은 무늬없이 짠 순색(純色) 직물을 이용하였고, 유관자(有官者)만이 면주표의(綿紬表衣)를 입었다.시녀공양도 [무용총]..PAGE:3단 의저고리.흥덕왕 복식금제의 기록에 단의(短衣)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저고리와 같이 짧은 저고리를 말하는지 혹은 두루마기에 비하여 짧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단의는 6두품, 5두품, 4두품 여자에 대한 금제(禁制)가 보일 뿐 남자에 대한 것이 없어서 여자의 저고리에만 해당하는 것 같다.방아찧는 여인 : 단의(短衣)..PAGE:4반 비당대(唐代)에 비롯한 복식. 오늘날의 배자(背子).복식금제에서 보면 평민남녀는 규제가 없으니까 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남녀공용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화려한 의차(衣次)를 사용하였다.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으므로 인접국가인 당나라와 일본의 나라조(奈良朝)의 정창원(正倉院) 유물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당과 일본의 단수의를 참조하여 신라시대 반비의 형태를 추정하면 반소매에서 무수(無袖)까지의 소매길이며, 여밈의 형식은 고름이나 매듭장식을 쓰고, 길이는 가슴 바로 밑까지 오거나, 무릎까지 오는 것으로 다양하며 겉옷으로 착용되었고 방한의 목적보다는 의례적인 목적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중국복식 반비수당오대의 반비..PAGE:5단 수 의소매가 없거나 짧은 옷.통칭 무수의(無袖衣), 반비(半臂), 반수의(半袖衣) 등을 포함하는데, 팔꿈치 정도의 길이를 넘지 않는 짧은 소매가 달리거나 소매가 달리지 않은 옷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통일신라시대의 반비와 배당, 고려시대의 배자와 문수사 백저포, 조선전기의 답호와 몽두의(蒙頭衣), 조선후기의 쾌자(快子)가 단수의이다.근세의 단수의로는 남자용 양복의 한 형태인 조끼와 여자용 단배자(短褙子), 남자의 전복이 있다.직금금반수 [중국]협힐라반비 [정창원유물, 일본]..PAGE:6배 당배자(褙子)와 양당의 합성어.양당은 중국 한대(漢代)에 이미 착용되었던 것으로 원래는 무인(武人)의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방구(防具)로서, 형태는 관두식(貫頭式:머리를 꿰는 형식)이며 양 옆구리를 꿰매지 않은 형태로 앞뒤에 늘어뜨리도록 하는 가장 겉에 입는 표의(表衣)였다.배자의 형태는 양쪽 소매가 팔꿈치까지 오는 외의(外衣)의 형태로서 길이는 군(裙)과 같고 앞, 뒤, 옆이 트인 4자락의 옷이다.통일신라 배당의 형태는 배자와 양당의 복합개념으로서 소매있는 배자(褙子)의 조형(祖形)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에는 여인 전용의 화려한 복식으로 나타난다.이러한 배당은 고려중엽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양 당배 자..PAGE:7표 , 영포당나라 복식제도에서 나온 영포(領布).이 영포는 여인들이 목 뒤에서 가슴 앞으로 길게 드리운 것인데, 일종의 목도리이다.신라에서의 표도 영포제도를 본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궁 정 부 녀..PAGE:8대 구 고폭이 넓은 바지.
    예체능| 2003.05.04| 9페이지| 1,000원| 조회(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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