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연구< 목 차 >초 록1. 서 론2. 본 론2.1. 정지용의 생애와 의 창작 배경2.1.1. 정지용의 생애와 작품 세계2.1.2. 의 창작 배경2.2. 의 구성과 주제2.2.1. 의 구성과 표현상의 특징2.2.2. 시어를 통해 본 의 주제2.3. 의 정서 반복과 이미지2.3.1. 정서 반복의 의미와 역할2.3.2. 의 이미지 고찰3. 결 론참고문헌< 초 록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로 대상을 청신하게 묘사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초기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전통성과 모더니티 지향이라는 두 경향이 서로 대립, 보안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1920년대 중반에 시단에 등장한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이러한 두 가지 흐름을 잘 조화시켜 새로운 시세계를 전개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정지용의 시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는 1923년에 쓰여져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정지용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본 논문은 정지용의 를 축으로 논의하였다. 본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정지용의 생애를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작품 세계에 대해서 살펴보고, 의 창작 배경을 종합하여 소개하였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의 구성과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고, 시어 분석을 통해서 작품의 주제를 알아 보았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에 나타나는 정서의 반복이 지니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분석해 보고, 이미지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다.1. 서 론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틀을 살펴보면, 전통성과 모더니티 지향이라는 두 가지 경향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보안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심화 발전되어 왔다. 1920년대 중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이러한 두 가지 흐름을 잘 조화시켜 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은 아름다운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도 언어의 미감을 충분히 살리는 시어들을 볼 수 있다. 이는 이 시의 주제 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참신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들과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하고 있는 점 또한 이 시가 정서적 공감대를 넓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시는 뛰어난 서정성과 더불어 한국어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보여준다.이렇게 이 시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있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에 대해 구성, 시어, 주제, 이미지 등 몇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보려고 한다.2. 본 론2.1. 정지용의 생애와 의 창작 배경2.1.1. 정지용의 생애와 작품 세계정지용(1902-1950)은 1902년 5월 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편이었으나 학교 성적이 우수하여 학교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때부터 문학적 재능을 지닌 선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습작 활동을 시작했다.이듬 해 12월 《서광》 창간호에 유일한 소설인 을 발표하였고, 1925년 《학조》 창간호에 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하였다. 일본 도오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 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과 김종한,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정지용의 시세계는 크게 세 단계의 변모과정을 거친다. 1925년부터 1933년까지의 감각적인 이미지즘의 시, 1933년 이후 1935년까지의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1950년을 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시대와 상황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참조할 때, 이 시는 시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옛 추억에 대한 향수가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배경이 농촌이고,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보통의 가족들 즉, 우리의 전형적인 고향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작가뿐만 아니라 일제 시대를 살았던 한국 민중 모두의 고향, 모든 이의 마음의 안식처, 모두가 그리워하는 곳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아가서 그 고향은 우리의 조국, 한국 자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남에게 빼앗겨 버린 진정한 의미의 조국, 그 조국을 생각하는 애틋한 그리움을 이 시에서 찾아낼 수 있다.전체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짝수연마다 반복되는 시행이 따라와 음률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고향을 생각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읊조려 볼 만한 시이다.2.2. 의 구성과 주제2.2.1. 의 구성과 표현상의 특징이 시는 농경을 바탕으로 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 홀수 연은 고향의 잊을 수 없는 심상을 제시하고 있고, 짝수 연은 후렴구로서 동어 반복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이 시의 주된 제재는 고향의 정경이다. 그리고 이 시는 자유시, 서정시의 갈래에 속한다. 청각적 감각을 자극시키는 동일한 음운의 반복을 통해 그리움의 정조를 환기 시키고 있다. 시의 어조는 아련한 그리움에 젖듯이 차분하고 애틋한 어조이고 감각적, 묘사적, 향토적, 회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의 형태는 10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다. 차례로 홀수연과 짝수연이 하나의 파트를 이루어 크게 다섯 파트로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나눈 하나의 파트를 한 연으로 보아 5연으로 된 작품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선행 연과 후행 연 사이에서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배치되어 있는 후렴구의 위치로 보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는 10연시로 보는 것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토로한다.7-8연에서는 어린 누이와 아내에 대한 회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고향에 가족들과 아내를 두고 유학을 떠난 시인의 현실적인 입장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부분에서 누이와 아내를 대립적으로 제시하여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9-10연에서는 단란한 고향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난하고 초라한 환경에 대비시킨 오붓한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농촌의 궁핍함·초라함과 가족의 단란함을 동시에 그리고 있긴 하지만 역시 쓸쓸하고 허전한 심정이 스며 있다.이 시는 전체적인 모습에서도 확대-축소의 중첩 구조를 이루고 있다. 1-2연은 평화롭고 한가로운 고향의 정경(외부 풍경)을 소개하고 3-4연은 겨울 밤 풍경과 아버지에 대한 회상(내부 풍경)을 묘사한다. 5-6연은 유년기의 회상(내면 공간)을 하고, 7-8연은 누이와 아내에 대한 회상(외부 풍경)을 한다. 9-10연은 고향에서의 귀가와 휴식(내부 풍경)이다.이 시의 전체적인 구성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계절적 배경시간적 배경공간적 배경중심 대상1-2연봄낮벌판(고향의 정경)3-4연겨울밤방 안아버지5-6연봄 또는 여름낮내 마음(어린 시절의)시적 화자7-8연가을낮벌판누이와 아내9-10연가을밤방 안가족향수는 표현상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이 시 속에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의 대상(‘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베개’ 등)에 의해 고향의 정경을 재구성함으로써 그리움의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참신하고 선명한 감각성이 시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공감각 및 감각의 전이 기법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세 번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회고적 기법으로 처리하면서 인간의 근원적 정서의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서경과 서정의 교차를 통한 내적 리듬의 형성이다. 다섯 번째울음을 울며 지나던 곳이다. 이 부분의 주제는 고향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모습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적 화자는 봄의 시골 모습인 벌판 실개천과 황소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3-4연은 ‘질화로’, ‘졸음’, ‘아버지’, ‘짚베개’ 등의 시어를 통해 어느 겨울 밤,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아버지가 주무시는 모습을 가난과 궁핍에 힘겨워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과거의 것을 그리워하는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오히려 휴식과 평온함의 정서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문틈으로 찬 바람소리가 들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던 방이다. 계절로 보면 겨울이다. 질화로가 있는 겨울은 여러 가지를 연상시켜 준다.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듣던 구수한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겨울에 즐기던 연날리기, 불놀이, 윷놀이 등을 그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동시에 늙으신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걱정은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5-6연에서는 ‘흙’, ‘하늘’, ‘화살’, ‘풀섶’ 등의 시어를 통해 시적 화자의 유년기의 직접적인 경험 회고하고 있다. ‘내 마음’이라는 시어를 통해 시적 자아가 제시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시적 자아는 아름다운 꿈과 신비로 가득 찬 유년 시절을 감각적 시어의 사용을 통해 회상하고 있다. 고향의 흙 속에서 자란 온정이 감도는 마음, 그리운 파란 하늘, 화살놀이를 하면서 뛰놀던 풀섶 등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다. 맑고 깨끗한 품성을 길러준 고향의 소박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이다.7-8연은 ‘어린 누이’와 ‘아내’에 대한 회고로 이어진다. 어린 누이와 아내의 모습을 통해 농가의 정경과 아낙네들의 소박한 인정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시골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궂은 일에 온갖 고생을 참고 지내던 조강지처의 모습과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함께 보낸 누이를 그다.
황진이의 생애와 한시 연구황진이는 이름은 진이요, 별명은 진랑이며, 기명은 명월이다. 그는 조선 때 송도(개성)의 이름 높은 명기였다. 관련된 확실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친하게 지냈던 주변 인물들로 미루어 보면 중종 때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황진이는 여성이자 기생으로서 당대 누구 못지 않게 자기 나름의 삶을 구가하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드러냈다. 특히 그녀는 문학적 조예가 상당히 깊다. 황진이의 문학적 상상력의 범주는 자연과 삶의 조화로운 대응이다.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들에는 그녀 자신의 내면적 고뇌와 인간적 감흥이 자유롭게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문학 작품에 깃든 아름답고 강렬한 정서, 발랄하고 참신한 이미지, 시어의 우아함, 표현의 긴밀성 등은 한국 고전 문학의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자산이다. 시가 문학에 있어 황진이의 시 세계를 능가하는 여류 시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와 더불어 문화사적 측면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도 만만치 않다.황진이는 16세기를 살다 간 19세기의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여성, 게다가 천민이라는 시대적,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과 그가 남긴 뛰어난 한시로 인해 황진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랑 받고 있다.1. 서 론1.1 연구 목적1.2 연구 대상과 방법2. 본 론2.1 황진이의 생애2.1.1 출생과 생존 연대2.1.2 시대적 배경2.2 황진이의 한시 분석2.2.1 작품 개관2.2.2 주제 고찰2.2.3 표현상의 특징2.2.4 작품상의 특징2.3 황진이 역사적 위상 및 영향3.결 론참고 문헌1.서 론1.1 연구 목적16세기의 조선 사회는 가부장 제도를 기반으로 한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양반의 지배가 지방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다. 황진이는 이러한 시대적 모순 속에서 직접 부딪히고 적극적으로 반항하면서 산 여성이다. 역사 속에서 황진이는 명기이면서 명창이고, 이름난 여류 시인이었다. 그는 단순의 내면 세계와 예술 세계를 되짚어 보도록 하겠다.2.본 론2.1 황진이의 생애황진이는 생몰년 미상의 조선 제11대 중종 때 명기이다. 개성(송도) 출신으로 본명은 진, 일명 진랑이며, 기명은 명월이다. 그에 대한 직접 사료는 없고 다만 간접 사료인 야사에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야사는 그녀를 지나치게 신비화 시킨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있고, 그 사실 여부를 가리기도 어렵다. 그녀는 시·서·율의 재능을 겸비한 명창·명기로 조선 역사상 가장 으뜸가는 기녀였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천자문』, 『사서오경』등을 읽었고 거문고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니, 지혜롭고 총명한 데다 탁월한 재주까지 지닌 천하 둘도 없는 여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출생에 대해서는 황진사의 서녀라는 설과 맹인의 딸이라는 설이 있다.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 경에 이웃 총각이 황진이를 혼자 연모하다 죽자 서둘러 기계에 투신했다 하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출중한 미모와 탁월한 가창·시가 재능을 가지고 있고, 한시까지도 정공하였다고 한다.황진이는 기녀이면서도 고결하며 지모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또 사회적 삶에서 철저히 남성중심적이고 신분 질서가 견고했던 조선 때 천민 계급인 기생이었다는 점에서 황진이의 극적인 성경도 보인다.다음은 황진이의 생애를 몇 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다. 먼저 확실치 않은 그녀의 출생 배경부터 추정해 보고, 다음은 생존 연대를 논술하고, 마지막으로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겠다.2.1.1 출생과 생존 연대황진이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소호당문집(韶護堂文集)』, 『송도기이(松都記異)』),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등에 전해진다. 이 문헌들에 나타나는 황진이의 출생 배경은 황진사의 서녀라는 설과 맹녀의 딸이라는 설로 구분된다.앞의 문헌들 중에서 『송도기이(松都記異)』, 『중경지(中京誌)』), 『소호담문집(韶護堂文集)』 등에는 황진이가 황진사의 서녀로 묘사되어 있다.『송도기이(松都記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으로 자색이 것으로 보아 모계를 부각시킨 것으로 생각된다.이런 양분된 이설을 종합해 볼 때 황진이의 아버지는 양반임이 분명하며, 어머니는 여러 아낙네들과 어울려 빨래터에서 빨래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서민 이하의 신분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신분이 낮은 까닭에 아버지의 신분과 비교하여 더욱 비하시켜 맹녀라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황진이의 생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그녀가 여류이고 거기에 기녀였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진이의 생존 연대를 그나마 비교적 자세히 추정할 수 있는 문헌에는 두 종류가 있다.첫째,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가정첫설이다. 즉, ‘가정 초 송도의 명기로 진이라는 자가 있었다’라는 기록이 주목된다. 가정은 중국 명의 연호로 가정1년은 조선 제11대 중종 17년(1522년, 임우)에 해당된다. 그리고 가정 말년은 조선 13대 명종 20연(1565년)이 된다.둘째, 공헌왕조설이다. 즉, ‘공헌왕조에 선비 이언방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 송도의 기생 진랑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그 집을 방문하였다.’라는 기록이 허균 허균: 조선 중기의 문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있다. 공헌왕조는 역시 중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 두 전거는 50여 년 뒤에 기록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두 기록이 황진이의 생존 연대를 제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으로, 이보다 더 자세한 것은 없다.한편 위의 직접적인 기록 외에도 간접적으로 황진이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다음은 이덕동의 『송도기이(松都記異)』의 기록이다.‘진복의 아비도 또한 늙은 아전인데 진랑과 가까운 친족이었다. 당시 나이가 80여 세였지만 정신이 강건하여 매번 진랑의 일을 말할 때마다 역력히 기억하는 것이 어제와 같았다.’ 이 내용은 황진이와 관련된 기록 중에서 상당히 의미를 주는 것이다. 이덕동은 갑진년에 본부에 어사가 되었는데 겨우 전쟁이 뒤여서 관청이 텅 비었으므로 남문에 있는 서사 진복의에서 주자학에 의한 구질서의 개혁과 새로운 사회 질서의 수립을 시도한 이래로 유교적 덕목에 의한 남녀구별 즉 내외법)이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됨으로써 그 안에 가부장제가 법적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된다. 이는 음양철학을 토대로 한 성리학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국가 통치에 적합하게 적용시켜 군신, 부자, 부부 등 모든 인간 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한 결과이다.조선 중기에 들어와서는 양반의 지배가 지방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게 되고 사회적 배경에는 왕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낙향 관료들의 이익 유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절열관의 이데올로기화에는 억압적인 국가 기구의 강제력이 동원되었는데, 『재가자녀손금고법』)을 제정 이후에는 위반자에 대한 처벌 및 포상제도가 실시되기도 했다. 특히 유교 이데올로기의 실천을 중시한 신진 사류들이 대거 등용된 중종 연간에는 절열관이 특히 강화되었다.이와 같은 시대에 기생으로서의 삶은 억압과 동시에 기생으로서의 본분을 강요받는 삶이었다. 조선 초기의 기생은 모두 관비로서 관아에 매어 있었고, 사회적으로 미천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기녀들은 당시 양반 사대부와의 교류를 통하여 교양을 확대하였고, 교방을 통해서 정식으로 예악에 대하여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반 사대부들과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풍류의 대상으로 시를 공유함으로써 사대부와의 통로를 열 수 있었으며 자유를 보장 받은 계층이기도 했다.조선 사회의 분위기에 상응하여 자유와 억압을 함께 누리던 기녀들은 전통적인 여성들의 정체성을 벗어난 색다른 여성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일부의 기녀들은 사대부에 대응하여 수동적이나 종속적이 아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대응 자세를 취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계급 논리에서 벗어나 감추어진 자아의 능동적 표출로 인간 본연의 자세를 구가하고자 했던 것이다.황진이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시대적 모순 속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살았던 여성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인생 또한 순탄하지 못했으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宛白虹 (그 폭포 옆에는 흰 무지개 섰구나)雹?霆??洞府 (물방울이 동부(洞府)에 떨어지면)珠?玉碎徹晴空 (구슬같이 방울방울 창공에 빛나네)遊人莫道?山? (나그네여, 여산의 폭포만 말하지 말라)須?天磨冠海? (이 천마산이야말로 해동에 제일일세)이 시는 박연이라는 폭포를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곳을 가보지 않고도 그 수려한 경관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황진이의 필력과 예리한 직관력이 자못 경이롭다. 기상천외의 상상력과 정교한 묘사법으로 자연의 미를 최고도로 나타내고 있어서 지금 이 순간에 폭포의 포말을 보는 듯하고 자연의 위대함에 엄숙해짐을 느낄 수 있다."半月(반달)":상사와 연모의 정誰?昆山玉 (곤륜산의 귀한 옥을 누가 캐어)裁成?女梳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牛?別後 (가신 님(견우) 그리움에)愁?碧空虛 (이 마음 가눌 수 없어 허공에 던진 거라오)이 시에서는 자신과 님을 각각 견우와 직녀에 비유하고 있다. 한국 전설 속에 견우와 직녀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시에서는 이렇게 비극의 주인공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자신도 님과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모의 정을 가눌 길 없어서 이 공상 저 공상에 헤맸을 시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쳐다 본 하늘에 직녀의 얼레빗 같은 반달이 떠있어서 시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奉???谷(송별소양)곡)":별한月下梧桐?(달빛 아래 뜰 안에 오동은 지고)霜中野菊黃(서리 속에 들국화 누렇게 피었네).?高天一尺 (누각은 높아 하늘과 닿을 듯하고)人醉酒千?(사람은 취하여 천 잔 술을 마시었네).流水和琴冷(흐르는 물은 거문고 소리와 더불어 차갑기만 한데)梅花入笛香(매화는 피리와 같이 향기롭다)明朝相別后(내일 아침 서로 이별한 후에는)情?碧波長(그대 그리는 정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이 시는 황진이가 소세양과 짧은 사랑을 하다가 헤어졌을 때 누(樓)에 올라 읊은 시이다. 기녀와의 사랑에 지속력을 지닐 리 만무하고 따라 있다.
김춘수의 1950년대 시 고찰- ‘거대한 연쇄의 은유’ 분석을 통해< 목 차 >1. 서 론2. 연구방법1) 은유 이론의 전개 양상2) 거대한 연쇄의 은유3. 1950년대 김춘수 시의 은유 분석1) 허무의식 - 관계 맺음의 무상성2) 존재의 실상 - 무한성과 충만함의 추구3) 조건으로서의 죽음과 목적으로서의 삶4) 관계 맺음의 필요성4. 존재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탐구5. 결 론* 참고문헌 *1. 서 론김춘수(1922~ )는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 왔으며), 부단한 변모를 거듭해 온 시인이다. 또 많은 작품들을 통한 다양한 시도들에 걸맞게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그 동안 한국 현대시사에서 김춘수의 시는 크게 ‘의미’와 ‘무의미’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조망되어 왔다. 전자가 주로 50년대에 발표된 시들을 실존주의적 경향과 관련하여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주로 60년대 이후에 발표된 시들을 실험 의식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렇게 두 관점이 뚜렷하게 대별되는 것은 50년대와 60년대에 발표된 시들이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춘수 시의 시사적 의의를 밝히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차이점 아래 놓여 있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다.기존의 연구들이 김춘수의 시에서 연속성을 포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시정신이나 시 창작 방법에 주목하여 김춘수의 시가 어떻게 ‘무의미시’로 나아가는가를 해명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다음으로는 ‘의미’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김춘수 시의 연속성을 포착하려는 경우가 있다.) 존재가 있는 한 세상에 ‘의미’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김춘수에게 있어서 ‘무의미’란 어떤 특정한 의미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의미라는 뜻이지 문자 그대로 의미가 없다는 뜻일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그의 ‘무의미’는 ‘의미’의 해명 없이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김춘수는 시작 초기부터 창작 의도와 작시 계획, 작품의 구성과 주제 등을 지결과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며, 그 새로운 의미는 우리의 경험 안에 새롭게 구조화되는 것이다.2) 거대한 연쇄의 은유레이코프는 영문학자인 M.터너와 함께 기존의 논의들 중 일부에 비판을 가하며, 인지 문법론적 측면에서 좀더 새롭게 은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은유를 ‘근원영역’과 ‘목표영역’의 사상(寫像, mapping)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즉 ‘A는 B이다’라는 은유는 곧 근원영역 B에 관한 지식 구조의 일부를 목표영역 A에 사상하여, B의 어떤 측면(혹은 여러 측면들)을 통해 A의 측면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도식화 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 사상 ― B목표 영역 근원 영역여기에서 영역간에 사상되는 요소는 개념 구조, 이미지 혹은 시 전체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은유 중에 ‘마음은 문이다’라는 은유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그다’ 라든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다’, ‘그녀가 드디어 내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 등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들이다. 이 경우에 우리는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문’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의 요소들을 빌린다. 또 ‘바다는 뿔뿔이/ 달어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렸다.(정지용의 「바다 9」 부분)’와 같은 시에서는 바다가 도마뱀에 비유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으로 바다와 도마뱀은 개념적 대응관계가 성립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 은유의 근거는 이미지에 있다. 우리는 도마뱀이나 바다에 대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위의 시에서는 재빨리 밀려가는 조수와 그 물거품을 잰 걸음걸이의 도마뱀의 이미지에 대응시키고 있다.시 전체가 하나의 근원 영역이 되어 구체적 사례에 사상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를 그들은 ‘거대한 연쇄의 은유’라고 표현한다. 이 은유는 시라고 하는 것이 무엇에 주목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 우리에게 교시하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견해에서 나온다. 즉 어떤 특수듯이’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관계 맺음의 무상성이 환기된다.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임은구름과 薔薇되어 오는 것눈 뜨면물 위에 구름을 담아 보곤밤엔 뜰 薔薇와마주 앉아 울었노니참으로 뉘가 보았으랴?하염없는 날일수록하늘만 하였지만임은구름과 薔薇되어 오는 것-『구름과 薔薇』의 「구름과 薔薇」 전문이 시는 첫 연과 마지막 연의 ‘임=구름과 薔薇되어 오는 것’이라는 은유를 축으로 이루어 졌다. 여기서도 우리는 ‘임’이란 것의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제 각각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므로 은유의 근원이 되고 있는 ‘구름과 薔薇’를 통해 ‘임’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름이나 장미는 임의 실체를 설명해 주기 보다는 임의 부재(不在)를 환기시키는 성격이 강하다. 임은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고, 장미처럼 피었다간 저버리는) 순간적인 존재인 것이다. 결국 임을 보기 위해 ‘물 위에 구름을 담’는 행동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 돼 버린다. 여기서의 ‘임’ 역시 앞의 시에서의 ‘瓊이’와 마찬가지로 시적 화자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존재하는 대상이다. 이 시는 이러한 대상 혹은 관계 맺음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첫 행의 ‘저마다 사람은’이라는 시어를 통해 시적 화자의 입장을 일반적인 것으로 확대시키면서 커다란 은유 구조를 획득하고 있다.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시들로 「西風賦」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不在」의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등이 있다.이렇게 김춘수의 시는 허무의식 즉, 관계 맺음 자체의 부질없음을 문제삼으면서 출발한다.2) 존재의 실상 - 무한성과 충만함의 추구대상과의 관계가 부질없는 것임을 피력한 시인이 눈을 돌리는 것은 존재 자체의 실상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1너는 슬픔의 따님인가 부다.너의 두 눈은 눈물에 어리어 너의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손님이라고는 나 한 사람뿐인 茶房의 午前의 解弛해진 空氣를 그것들이 혼자서만 빨아들이고 吐하고 있는 상 보였다. 진열장 近處의 空氣는 그만큼 緊張해 보였다.조금 前의 벌레 우는 것 같은 소리는 어쩌면 그것들이 쉬는 숨소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나는 딸기를 딸기밭에서 본 일이 있다. 가늘고 키가 작은 줄기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흉한 큰 이파리를 달고, 그 위에 더 무거운 열매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뿐 아니라 보오얗게 먼지를 쓰고 있는 양이 몹시 더러워 보였다. 그렇던 것이 어찌 또 그리 싱싱하고 풋풋하였을까?나는 熱心히 딸기를 보았다. 그 솜솜이 얽은 구멍이 구멍마다 숨을 쉬고 있는 듯 쟁반 위의 딸기는 生動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近處를 完全히 制壓하고 있었다. 온 방안의 空氣가 유리 안의 한 개 쟁반 위에 모조리 吸收되었다.딸기는 그날 누구보다도 悲壯하였다.-『旗』의 「딸기」 부분이 시에서 딸기는 철저하게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행의 ‘딸기는 그날 누구보다도 悲壯하였다.’를 통해서 딸기는 존재로서의 특별한 의지를 부여받는다. 즉 ‘나’는 ‘딸기’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딸기’로부터 ‘나’가 느끼는 ‘숯불같이 그 벌겋게 달은 體溫’이나 ‘近處를 完全히 制壓하’는 생동감은 곧 ‘딸기’가 대단히 충만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즉 ‘딸기=존재’이며, ‘딸기의 충만함=존재의 충만함’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만함은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딸기밭에서 보았던 딸기는 ‘가늘고 키가 작은 줄기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흉한 큰 이파리를 달고, 그 위에 더 무거운 열매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뿐 아니라 보오얗게 먼지를 쓰고 있는 양이 몹시 더러워 보였다.’ 이러한 모습의 딸기는 충만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어떤 상황, 어떤 곳에서 그 충만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끊임없이 부정 꽃병은꽃을 위한 꽃병이 되고꽃은 꽃병을 위한 꽃이 됩니다5그리하여 꽃병은壁과 窓과窓밖의 푸른 하늘에 에워싸여한 사람의 이웃으로 誕生하는 것입니다그것은사로잡히고 사로잡는한 關係라고 해도 좋습니다-『隣人』의 「最後의 誕生」 부분이 시에 이르러서는 개별적인 존재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시에서 김춘수는 ‘고독’과 ‘관계’를 직접적으로 문제삼으면서, 그것들이 개별적 존재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꽃’과 ‘꽃병’을 통해서 간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꽃’과 ‘꽃병’은 여러 가지의 은유적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김춘수의 그 동안의 시들에 비추어 개별적 존재들에 대한 관계 맺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꽃을 위한 꽃병’, ‘꽃병을 위한 꽃’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 맺음에 의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고, ‘한 사람의 이웃으로 誕生하는’ 개별적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4) 관계 맺음의 필요성관계 맺음에 대한 모색은 김춘수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꽃」이라는 시로 발전된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는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꽃의 素描』의 「꽃」 전문이 시는 꽃을 매개로 한 커다란 은유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대상의 본질을 이루는 고유한 속성을 이해해 거기에 알맞는 참된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 시에서 이름은 사랑하는 마음을 토대로 맺어진 관계의 상징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서로에게 의미와 가치의 근거가 된다. 이 시는 전체로서 다음의 표와 같은 다양한 해석들을 끌어낼 수 있는 ‘거대한 연쇄의 은유’로 작용하는 것이다.이름을 부르기 전(하나의 몸짓)‘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이름을 부른 후(꽃)관.)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구조와 의미1. 서 론2.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구조와 의미1) 제의적 의미2) 놀이적 의미3) 사회적 의미4) 전승적 의미3. 결 론※ 참고문헌1. 서 론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지난 무진년(1928)까지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서 이 마을의 농민들이 놀았던 탈놀이이다. 그 근원은 서낭제의 탈놀이로 우리 나라 가면극 전승의 주류를 이루는 산대도감 계통극과는 달리 동제에 행하여지던 무의식적 전승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면극이라 할 수 있다.하회별신굿 탈놀이에 관해서는 그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가 있었다. 우선 가면극의 기원과 관련한 논의)가 선행되었는데,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전통극 기원설의 하나인 제의(서낭굿)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논의되었다.) 또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제의기원설의 무당굿기원설과 풍농굿기원설의 통합 근거로 논의되었으며), 도시탈춤에 선행하는 대표적인 농촌탈춤으로 논의되어) 소위 농촌 가면극의 기원을 해명하는 주된 자료가 되었다.제의의 배경인 부락제의 측면에서 다룬 것)이 있는데 이들의 논의는 제의의 배경적 측면만 다루고 탈놀이의 측면을 무시한 것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행위전승과 언어전승을 아우르는 탈놀이 측면에서의 연구 성과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들의 연구는 주로 놀이로서의 연극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논의되었다). 제의적인 성격을 무시한 점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따라서 부락제 측면과 탈놀이 측면에서의 논의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어느 한쪽 성격을 선택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각기 한계가 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부락제로서의 제의(굿)와 부락제에 수반되는 놀이(연극)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전승되던 시기의 본래 모습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이에 본고에서는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구조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하여, 부락굿이라는 제의 중심의 논의와 탈놀이(연극) 위주의 논의가 갖는 한계를 통합하고,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이원성인 굿의 구조와 탈놀이의 구조를 해명하여 그 상관성과 구조에 내포된 의미를 찾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신이라고도 전한다.제의의 순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선본의 확정, 즉 이본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회별신굿의 대본은 구비물이므로 고정된 대본의 전승이 어렵다. 특히 마당의 순서)에 대해서는 많은 이본이 존재한다.) 그 중 굿의 제차면에서 볼 때, 원형적인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고 보이는 이창희본(1980))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1. 강신2. 무동마당 : 각시가 무동을 타고 등장한다.3. 주지마당 : 주지 한쌍이 잡귀를 쫓는 춤을 추어 탈판을 정화한다.4. 백정마당(살생마당) : 백정이 소를 잡아 염통과 우랑을 떼어내어 관중을 향해 사라고 권유한다.5. 할미마당(살림살이마당) : 할미의 고달픈 생활을 베틀가로 풀어낸다.6. 파계승마당 : 고려시대 당시의 타락한 불교를 풍자하는 마당으로 파계승이 부네를 유혹하여 놀다가 초랭이에게 들키자 부네를 업고 달아난다.7. 양반?선비마당 : 양반과 선비의 허위허식을 풍자하는 마당으로 부네를 사이에 두고 양반과 선비의 다툼을 익살스럽게 드러낸다.8. 당제9. 혼례마당10. 신방마당11. 헛천거리굿1) 제의적 의미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명칭에 내재되어 있는 바와 같이 굿, 즉 제의에 기원을 두고 있는 탈놀이이다. 굿은 신을 받드는 일, 신을 청해서 공수를 받고 신을 즐겁게 해서 배송하는 의례이다.별신굿을 치르는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을 위로하는데 있다. 하회의 주신인 서낭신은 여신이며, 한을 안고 죽은 젊은 처녀 혹은 청상과부이다. 따라서 이들의 넋은 원령(怨靈)이며, 원령은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무속적 귀신관이다. 이러한 원령에 대한 위로는 오신(娛神) 부분인 탈놀이와 송신(送神) 부분인 혼례, 신방마당에 잘 나타나 있다. 제의적 측면에서 보면 탈놀이는 놀이 주체인 광대들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위로하고 즐겁게 하는 데 원초적인 의미가 있다.오신(娛神)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탈놀이 마당의 대사를 보면 각 마당을 관통하는 공통위호하는 데 있다. 특히 신방 마당에서 행해지는 것은 이들 신격이 이승에서 결핍되었던 성적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 행위라고 할 수 있다.전승집단이 서낭신을 받드는 것은 서낭신을 받듦으로써 개인이나 마을 전체의 재액을 예방하고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으로부터의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차원의 보상은 주로 질병과 출산에 관련된 것, 전승집단 차원의 보상은 풍년의 기원에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일차적 기능은 신을 섬기고 그 대가로 인간들 자신의 제액과 풍요를 기원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그 기능상 일반 별신제와 별 차이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탈놀이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차이점이 내포되어 있다.2) 놀이적 의미하회별신굿 탈놀이의 한 측면은 신을 놀리는 데서 유래하는 놀이적 성격이다. 기원적으로 보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제의를 수행하는 행위로서의 놀이’)로서 단순한 세속적 놀이와는 구분된다. 따라서 놀이적 측면에서의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일차적 기능은 신을 놀리는 데 있다.하회별신굿 탈놀이의 놀이적 요소를 결정짓는 것은 탈이라는 도구이다. 여기서 탈은 일상적 세계와 놀이 세계를 구분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탈은 신체(神體)의 현현을 의미한다. 무형적인 존재인 신을 유형화된 신체로 전환한 것이 각시탈이다. 다른 탈 역시 일상적 존재를 놀이공간 안에서의 특별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결과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연행되는 시간과 공간은 일상생활과는 구분되는 놀이의 세계가 된다. 놀이의 세계이되 세속적인 공간에서 놀이 주체들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가 아니라, 제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을 섬기는 거룩한 놀이이다.신에 대한 관념이 인간의 인식의 차원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면, 신의 즐거움 역시 인간의 즐거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제사와 놀이의 가장 기본적인 접점이면서 동시에 신을 위한 놀이가 인간을 위한 놀이가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탈놀, 규범과 금기의 원천일 경우 그 규범과 금기는 범할 수밖에 없는데,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바로 이러한 서낭신에 대한 숭배를 봉헌하고 범해진 금기와 규범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함으로써 신격으로부터 초래되는 심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 그것은 공동체 내의 재배적 위치에 있으면서 탈춤을 지원하던 양반들이나 주변적 위치에 있으면서 탈춤 연희를 담당하든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일이다. 양반은 허용된 질서 안에서 자신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해소하게 해 줌으로써 체제 유지의 안전장치로 이용하는 반면 탈춤 연희자들은 양반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통해서 자신들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3) 사회적 의미앞의 두 가지는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본질적 측면이다. 사회적 의미는 이러한 본질적인 것을 전제로 해서 성립되는 것으로, 탈춤의 핵심적 의미를 사회비판적 기능 중심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편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탈춤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적 측면은 그것이 사회?역사적 문맥과의 상관성에도 불구하고 전승집단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비판적 기능보다는 사회통합적 기능이 우선시 된다고 보아야 한다.농촌 탈춤인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공동체 내의 양반인 하회 유씨가 주된 재정 후원자이다. 양반들이 자신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난무하는 탈놀이를 허용하고 재정까지 지원하는 것은 원초적으로는 서낭신을 받드는 제의이기 때문이지만, 탈놀이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하회동은 지형적으로 아주 폐쇄된 마을이며), 하회 유씨 단일 씨족이 마을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족 마을이다. 따라서 피지배 관계에 있는 각성받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불만이 적절히 해소되지 않을 때는 공동체의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으로 억압관계에 있는 타성받이들의 누적된 불만과 불평은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는 것이 필요하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연희 담당자들은 모두 각성받이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탈놀이는 비록 일정한 기가운데 중심적인 것은 원시적인 무녀의 제의이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신격의 성격과 별신제라는 명칭 사용 등으로 볼 때 원초적으로는 무녀 중심의 부락제 유형에 속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래 전에는 무당의 역할이 상당했을 것이다.그러나 조선의 유교적 이념의 확대로 인해 후대로 올수록 무속적 제의에 유교적 제의 요소가 점차 증대되고, 유교적 합리주의의 확산과 사회적 변모에 따른 서낭신에 대한 권능의 약화로 무당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어 마지막 별신제처럼 매우 제한된 영역에 한정되어 전승되었을 것이다. 전승면에서의 이러한 변모는 별신제가 굿으로서의 제의적 기능이 약화되고 탈놀이로서의 놀이적 기능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로서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서낭신에 대한 신성성은 점점 희박해지는 대신, 놀이로서의 축제 기능, 이에 따른 사회적 요소는 점차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전승적 입장에서 보면, 하회별신굿의 전승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제의로서의 굿에서의 신성성이 약화되는 반면, 굿의 일부로 기능했던 탈놀이 부분이 사회 변동에 따른 사회의식과 결합되면서 점점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현재의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공연에서는 제의적인 성격이 강한 강신 마당, 무동 마당과 당제, 신방 마당 등이 생략되거나 축소되고, 탈놀이 부분만 연희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렇게 제의로서의 기능은 약화되고 놀이의 사회적 기능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현재는 제의 혹은 놀이로서의 현장적(사회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순전히 하나의 놀이로만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이러한 전승은 현장성의 결여에서 오는 사회적 의미는 물론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원형성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3. 결 론이상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구조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바탕으로, 부락굿이라는 제의 중심의 논의와 탈놀이(연극) 위주의 논의가 갖는 한계를 통합하고,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이원성인 굿의 구조와 탈놀이의 구조와 거기에에 내포된 의미들을 살펴보았다.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구조
?최치원(崔致遠)?의 서사 구조 분석1. 서 론2. ?최치원?의 장르에 대한 논의3. ?최치원?의 서사구조4. 서사 구조분석의 의의5. 결 론※ 참고문헌1. 서 론?최치원(崔致遠)?은 성임(成任, 1421~1484)이 편찬한 ?태평통재(太平通載)? 소재 ?수이전(殊異傳)? 일문(逸文) 가운데 하나이다. ?수이전?의 작품들은 대부분 민간전승에 바탕을 둔 구전설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해 ?최치원?은 설화, 전기(傳奇), 전(傳), 고소설(古小說)의 성격 등을 두루 내포하고 있어 다채로운 특성과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최치원?이 창작 시기나 작가 등이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고전소설의 기원과 관련하여 우리 서사문학사의 발전 경로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우리 문학사에서 고전 소설의 발생을 이야기할 때, 80년대까지는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최초의 소설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수이전에 실린 ?최치원?을 소설의 발생 시점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하면서, 현재까지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소설의 발생에 관한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는 ?최치원?의 장르 규명에 대한 논의를 잘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최치원?의 장르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해 보겠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 중에서 ?최치원?을 소설로 파악하는 논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그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최치원?을 소설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는 서사구조를 분석해 볼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을 바탕으로 우리 고전소설의 출발점을 ?최치원?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고자 한다.2. ?최치원?의 장르에 대한 논의?수이전? 일문 ?최치원?의 장르 문제는 여러 연구자들의 거듭되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아직도 ?최치원?에 대한 작품 성격과 장르 규정은 확립되부되어 있고, 쌍녀분(雙女墳)에 가서 호기심으로 시를 써 놓았기 때문에 뜻하지 않던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 하였다.) 또 소재영은 ?수이전?을 우리나라의 전승설화를 최초로 집대성한 문집으로 보고, ?최치원?은 작품의 소재면(신화?승담?애정담?변신담)에서 애정담으로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전승되어 오던 설화의 성격을 밝히는 데 단서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둘째, ?최치원?을 ‘전(傳)’)으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최치원?은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육조사적편류(六朝事迹篇類)?의 기록과 부합되게 최치원이 실제 율수현위 관직을 얻은 사실과 초현관에 머물다가 쌍녀분을 보고 시를 지어 바친 사실을 삽입하고 있다.) 또 어느 정도 ?최치원?이 최치원의 탁월한 시인 내지는 대문장가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음으로 보아 전의 장르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 것이다.셋째, ?최치원?을 소설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조수학), 임형택), 이헌홍), 김종철), 박희병), 박태상), 문흥구) 등으로 이어져 왔으며,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발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조수학은 ?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와의 서사적 구성에 대한 비교를 통해 ?최치원?이 ?금오신화?의 소설성과 비견되는 작품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이헌홍은 개인의 창작품이라는 점, 현실적?지리적?자연적 배경이 확대되어 있다는 점, 시가 많이 개입되고 그것이 서사 진행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 사건이나 행동이 생의 일단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 액자소설적 요소를 지닌다는 점, 사실 보고적 이야기가 아닌 장면적 이야기라는 점, 성격 묘사 및 대화가 중시된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작품을 전기소설로 보고자 했다. 또 김종철은 역사적 인물 최치원을 바탕으로 한 작중의 최치원은 개별적 인물이 아니라 당대의 고독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일종의 전형적 형상이며, ?최치원?의 작가는 능력은 있었지만 불우했던 인물로 전형화 되어가던 최치원을 귀신과의 교섭이라는 신비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아 한편의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이까지 ?최치원?의 소설성 규명을 위해 서사구조를 분석한 논의를 검토해 보면 두 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하나는 ?최치원?이라는 단일 작품의 서사구조 분석이며), 다른 하나는 장르의 성격이나 창작시기를 규명하기 위해 다른 작품과 함께 서사구조를 비교?분석하는 경우이다.)설성경)은 서두, 본문, 결미의 서사구조 분석을 통해, ?최치원?이 정사의 ?열전?과는 달리 많은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첨가된 허구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즉 ?최치원?에는 서두와 결미에만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으며, 실존 인물 최치원의 생애와 관련된 공통 부분도 3가지 정도라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이 세 요소를 근간으로 하여 작가가 허구화 한 것으로 가정내에서의 사건, 신라에서의 사건, 당나라에서의 사건, 귀국 후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건의 전개 양상에서 보이는 작자의 창작의식은 설화적 요소를 통한 허구적 형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조수학은 ?최치원?을 ?유선굴?, ?만복사저포기?와 각각 대비하여 보았다. 그는 ?최치원?의 서사구조를 서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로 분석하고, 다른 두 작품과 형식적인 면에서의 차이점은 있지만 내용상의 소설성에는 하등 차이가 없음을 밝혔다. 여기에서 서두와 결말 부분은 사전(史傳)에 의거하여 나타난 것으로, 이는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내용이 실제임을 믿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구성처리 방식으로 보았다.이헌홍은 소설의 개념에 비추어 개인 창작 작품으로서의 작의성과 허구성 및 형상화 원리로서의 소설적 성격을 ?최치원?의 작품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을 설화로 보는 견해는 수정되어야 하며 ?금오신화?의 고소설 효시설도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최치원?을 액자소설로 보고 있는데, 다음은 그가 제시한 최치원의 서사구조체계이다.1. 서두 : ① 최치원의 당나라 유학, 빈공과 급제 및 율수현위에 임용됨.2. 발단 : ② 부임지 남쪽 쌍녀분에 유람가서 석문에 제시(題詩)하여 고혼(孤魂)을 이야기, 결말은 종결액자로 구성된 액자적 서사구조로 보았다. 여기서 도입액자와 종결액자는 내부 이야기와 어느 정도 독립성을 지닐 수 있게 하는 의도적 장치이다. 즉 도입액자는 객관성과 그럴듯함의 기능을 위해 도입되었고, 중심부분의 환상적이고 괴이한 내부 이야기를 거쳐 결말부분에서 ‘부세(浮世)의 영화는 꿈 속의 꿈이니 백운 심처에 안신함이 좋도다’라는 싯귀를 역사상의 인물인 최치원으로 하여금 읊게 함으로써, 현실적이고 주체적인 각성의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서두와 결말의 사전(史傳)적 요소와 내부의 전기(傳奇)적 허구는 작자의 작의성과 허구적 충동에 의해 필연적 인과관계로 조정?배열된 것이며, 이는 바로 작자의 의도에 의한 예술적 장치로서의 서사진행이라는 것이다.박태상 역시 ?최치원?을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의 두 가지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액자소설로 보았다.이러한 견해는 상당한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서두와 결말 부분을 액자로 처리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이야기와 작자의 허구적 이야기가 잘 연결될 수 있으며, 서(序)?본(本)?결(結)의 서사구도가 의도적?필연적?인과적 계기관계를 보임으로서 작품이 소설적 서사체계를 완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에 삽입되어 있는 ‘내부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작품 전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는 것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액자소설’)이다. 에피소드는 짧고 간단한 이야기가 하나의 큰 행동 속에 끼어들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반해 액자소설은 보다 길고 비중이 큰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최치원?을 액자소설로 보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 삽입되어 있는 이야기가 작품 전체의 성격을 좌우하는 큰 이야기여야 하는데, 이러한 점에는 의문이 생긴다.이에 필자는 다른 논자들의 서사구조 분위로 발령 받아 임지로 가던 중 초현관을 유람하다가 특이한 무덤 형태인 쌍녀분을 보고 시를 지어 고인을 추모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 시녀 취금(翠襟)이 전한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의 화답시를 매개로 하여 두 낭자와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최치원?의 중요한 핵심적 서사 구조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 작품 전체에 걸쳐있는 최치원의 시적 탁월성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삽입된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쌍녀분에 얽힌 괴이한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삽입된 이야기가 작품 전체의 성격을 좌우하기에는 최치원이라는 인물 자체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최치원?은 액자소설의 구조라고 보기 보단 하나의 에피소드를 포함한 소설의 구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상에서 ?최치원?을 소설로 보는 입장에서 서사구조를 분석을 시도했던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검토하고, 필자 나름의 서사구조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최치원?은 물론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소설적 서사구조의 형식적 틀 또는 얼개를 갖추고 있으며, 내용 면에서도 소설성)을 강하게 지닌 작품이다.어떤 장르도 그 출발점에서 이미 장르의 성격과 특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할 수는 없다. 따라서 ?최치원?과 같이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소설성을 강하게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면, 소설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4. 서사구조 분석의 의의본고에서는 ?최치원?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에 있었던 장르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고, 서사구조를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작업들은 ?최치원?의 장르적 성격에 대한 구조상, 형식상의 이해를 보다 깊게 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다.서사구조분석을 통해 보면 ?최치원?은 최치원이라는 인물 자체의 이야기에 쌍녀분에 얽힌 괴이한 사랑 이야기가 삽입된 작품이다. 따라서 ?최치원?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포함한 소설의 구조를 갖춘 작품인 것이다.이렇게 ?최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