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Ⅰ. 들어가며Ⅱ. 본론1.계몽사상1) 게몽사상이란2) 주요특징3) 주요 사상가2. 혁명의 이념과 계몽사상- 그 첫 번째, 긍정적 입장에서3. 혁명의 이념과 계몽사상- 그 두 번째, 부정적인 입장에서Ⅲ. 나오며*참고문헌Ⅰ. 들어가며유럽사에서 본격적인 근대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만큼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봉건체제를 뒤흔들어놓은 근대 서양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는 일반적으로 구체제의 모순, 계몽사상의 보급, 왕실의 재정 위기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도록 하겠다.과거 역사가들의 대부분은 프랑스 혁명이 위대한 이념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하였고, 이 이념의 근간을 주로 계몽사상에서 찾았었다. 혁명의 기원으로서 계몽사상은 이념적 배경을 제시해주고 혁명이 일어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여 특히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 인식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고 계몽사상은 프랑스를 혁명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였다는 주장이 대두되게 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과의 관계에 대한 이런 정통주의적 입장, 수정주의적 입장을 두루 살펴보면서 과연 계몽사상이 프랑스 혁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우선 계몽사상이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는데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계몽주의의 의미, 특징, 특히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 사상가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계몽사상1) 계몽사상의 정의계몽사상이란 16세기 말에서 18세기말에 걸쳐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일어났던 사상 문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거기에서 나타난 특징이 발견되는 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사용된다.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18세기 말까지도 봉건 제도의 뿌리가 남아 있었고, 왕의 전제 정치는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에 유럽의 남용한다면 그것은 전제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은 그러한 정부를 해체하거나 저항 혹은 전복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떤 형태든 권력의 절대주의를 배척하였다. 그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연권 침해를 배격하였다. 자연권, 제한정부, 전제에 대한 저항권 등과 같은 그의 주장들은 프랑스 혁명사상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몽테스키외몽테스키외는 자유주의 정치이념에 대해 로크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룬 사람 이였다.몽테스키외는 그의 주요 저술 ‘법의 정신’에서 두 개의 이론을 전개하였는데 하나는 정부의 형태가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이론으로서, 전제정치는 더운 기후의 광대한 제국에 적합한 형태이며 입헌군주제는 중간 크기의 나라에서, 그리고 공화정은 도시국가와 같이 소규모의 나라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에는 제한된 왕정, 즉 입헌군주제가 가장 적합한 정치제도라고 하였다.그의 두 번째 이론은 잘 알려진 삼권분립론이다. 인간에게는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려는 자연적 성향이 있으며 정부도 전제로 빠질 성향이 다분히 있으므로 이를 막을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정부를 행정, 입법, 사법으로 나누고 이들 권력들이 서로 다른 부서들을 견제하게 해야 독재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은 프랑스혁명의 정치발달에 크게 작용하였다.* 루소루소는 민주주의 정치이념의 창시자였다. 그는 사람들은 원래 자연의 상태에 살았다는 주장을 따랐다. 그러나 로크와는 대조적으로 이 자연의 상태를 진정한 낙원으로 간주하였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 반대하여 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불편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이것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사유재산의 시작으로부터 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불평등들이 지배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안전을 찾기 위하여 시민사회를 만들어 그 사회에 그들의 모든 권리들을 양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사회계약조하였다. 지상생활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하여 과학의 힘으로 자연력을 지배하여 일반적인 부의 증가에 이용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ㆍ발명ㆍ기업 정신에 완전한 자유를 주고, 개인적인 소득과 발견ㆍ투쟁ㆍ모험의 매력으로 그러한 활동을 자극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생각은 모든 사람들에게 출생의 차별 없이 보편적인 경쟁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고, 그러한 경쟁으로부터 무한한 인류의 진보가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동적인 인생관이었다.즉 부르주아 계층은 구제도 하에서 이념적으로 독립해 있었으며 “제3신분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이념의 핵심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문가적인 시민의식이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의식은 날로 새로워졌고 점차 공격적인 형태로 바뀌어져 갔으며 결국 구제도를 몰락시켰다.사실 혁명 이전의 부르주아는 신분적 질서와 계급적 질서에 의해 이중적으로 제약을 받은 혼합계급이며, 과도기적 존재였다. 그들은 결코 도전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았다. 이 미묘한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 18세기 전반적인 경제적 변영이며, 그것이 부르주아의 집단의식 속에서 계급의식으로 나타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들이 당장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의 국가체제, 보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형태의 생산관계를 지향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을 보다 명료하게 강령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계몽사상’이었다. 계몽 사상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주요한 사상적 범주들 예컨대 자유, 자연적 평등, 계약, 소유권, 보편성 등은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인간적 교류형태라는 맥락에 비추어볼 때만 그 구체적인 역사적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상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낙관론, 인간이 지닌 이성적 능력을 통해 전제주의, 미신, 악습을 철폐하고 세계를 변혁하며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 등, ‘근대성’의 토대를 이루는 이러한 독특한 사고방식은 결코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형성된었고 이념에 의해서 정치적인 세력들이 규합되었다. 그리고 이념은 중세적인 생산 양식을 근대적인 것으로 전이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사회 계층 그 자체보다는 이념에 기반을 두었던 인간적인 요소가 혁명을 일으킨 근본적인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3. 혁명의 이념과 계몽사상- 그 두 번째, 부정적인 입장에서1) 계몽사상은 당시 구체제에 대해서 위협적이지 않았다.계몽사상은 구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이지 않았다. 수정주의자들은 계몽사상은 그 기본 성격상 혁명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계몽사상은 혁명)적인 사상이 아니라 단지 개혁)적 사고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계몽사상에 혁명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첫째, 계몽주의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백과전서)의 출판과 판매를 정부가 묵인했다는 것이다. 만약 계몽사상이 혁명적인 사상이어서 기존체제에 진정한 위협이 되었다면, 정부는 당연히 백과전서의 출판을 금지했을 것이다. 둘째, 계몽사상의 선도자들은 왕이나 귀족들의 연금에 기대어 생활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계몽사상이 혁명적 사상이었다면 반혁명적 세력인 왕과 귀족들이 그들을 후원하지 않았을 것이며, 계몽 사상가들도 그들의 후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후에 이러한 문인들의 지위가 향상되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후원자들에게 의존하는 양상은 여전하였으며 오로지 문필활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작가들의 비율이 1784~1753년의 23%에서 1784년에는 50%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위는 불안했다. 따라서 마지막 계몽사상가 세대는 궁정과 아카데미, 그리고 고위층으로부터 연금 등의 후원을 받으면서 구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힘썼다. 셋째, 프랑스 계몽 사상가들은 부르주아 혁명을 지지했다고 하기보다는 계몽 절대 군주론을 옹호하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프랑스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는 군주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볼테르는 당시 영국의 군주제와 같은 입헌군주제를 예찬하였고, 군법령을 쉽게 현지 언어로 설명해도 설명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따라서 프랑스 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될 수 없었다. 이들 밑에서부터 혁명을 도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혁명의 이념을 담고 있던 프랑스 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농민의 대부분은 혁명이 투하한 인쇄된 단어들의 홍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3) 계몽사상은 혁명을 이끌어냈던 응축된 단일 이념이 아니었다.정통주의자들은 이념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항상 혁명의 중심부에 서 있었고, 이념에 의해서 정치적인 세력들이 규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계몽 사상가들이 제시했던 이념에 의해 발생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은 계몽사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왕이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이 약해졌고, 그런 가운데 사회적인 문제가 노출되어서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계몽사상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낸 이념이 아니라는 것이다.계몽사상은 하나의 단일된 이념이 아니었다. 계몽주의는 공식적인 조직도, 보편적인 합의도 없이 다양하고 불분명했으며, 새로운 통찰의 충격에 따라 사유의 흐름이 이동되거나 중단되곤 했다.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루소의 사상은 그 자체가 너무 모호하여 그의 사상과 혁명 사상이 서로 연결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루소의 대표적 저서인 《사회계약론》에서 그는 평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정치공동사회를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배사회의 모순을 고발한 것이 아니었고, 이상적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가 글에서 주장한 바는 굉장히 모호했으며, 자코뱅 혁명사상가들은 그의 글을 자코뱅당이 주장하는 공화정 정부 수립에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해석하였다. 계몽사상은 프랑스 혁명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된 것일 뿐이었다.만약 프랑스 혁명이 이념에 의해 발생했다면 그 이념의 노선에 맞
Ⅰ. 단원명Ⅵ. 조선 사회의 변동1. 붕당 정치와 탕평책[3]실학자들은 어떤 사회를 추구하였나?Ⅱ. 학습 목표-실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실학 사상이 사변적인 학문인 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제기되었다는 역사상의 의 미를 파악한다.-실학자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는가?조선 후기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실학자들의 개혁안을 이해한다.-중농 학파와 중상 학파의 주된 관심은 무엇이었는가?토지 소유 문제를 중심으로 개혁안을 제시했던 중농 학파와 상공업의 발전을 중심으로 부 국강병을 추구했던 중상 학파의 사상적 특징을 이해한다.Ⅲ. 주제 개관조선 시대에는 17세기 이후 사회의 제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농업 생산력의 발전, 지주 전호제의 확대와 변질로 인한 대토지 소유자와 소농민 간의 토지 소유 격차의 증가, 그로 인한 다수 농민들의 소작농으로의 전락, 상공업의 변화와 발전, 농업 생산력의 발전에 기초한 상품 유통 경제 성립, 신분제의 변동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학은 성리학 자체의 발전 과정 속에서 배태되어 성리학을 극복, 지양하려는 움직임이었다.첫째, 실학은 종래 정통 성리학의 서계 질서관인 화이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있다.둘째, 민본주의 정치사상을 발전시켰다. 셋째, 봉건적 신분 제도를 비판하였다. 이 세 가지는 실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 중농 학파는 지주 전호제를 비판하고 토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생의 안정을 추구했다. 이익의 한전론, 정약용의 정전론, 유형원의 균전론이 있다. 중산 학파는 상공업에 대한 적극적 인식 위에 농공상관을 부정하고 상업 활동을 윤리적, 가치적으로 정당화했다.이상과 같이 실학은 조선 후기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 사회를 전망하고 현실을 개혁해 나가려던 사상이었다.Ⅳ. 핵심 개념과 주요 내용① 실학의 성립: 성리학 중심의 학문 활동에 대한 반성-> 우리 현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 활동-> 여러 분야에 걸친 개혁 주장이 등장② 학파* 중농학파: 유형원, 이익, 정약용 -> 토지 제도의 개혁 을 가장 중시함.* 중상학파: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상공업 진흥과 기술 개발 강조-> 청의 선진 문물 도입을 주장하여 북학파라고도 불림③ 국학 연구* 역사(안정복, 한치윤, 유득공), 지리(이중환, 김정호), 한글(신경준, 유희)④ 실학의 의의*실용적 학문, 실증적 방법론, 민족적 성격, 근대 지향적 성격, 정치에 반영되지 못함.Ⅴ. 본시 학습 지도안( 1차시: 실학의 대두, 중농학파와 중상학파2차시: 국학연구와 실학의 의의 )* 1차시과정학습내용교수-학습 활동학습자료교사학생도입(10분)인사학습지 배부전시학습내용 확인본시 수업내용 소개*인사한다*분위기 정돈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학습지를 나눠준다.*ppt자료를 보면서, 전시학습 내용을 질문하는 방법으로 정리한다.-붕당 간의 다툼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었는가?-영?정조의 탕평책의 내용과 한계*본시 수업내용을 소개한다.-실학의 등장배경과 내용*인사한다*학습환경을 정비한다.*받는다.*답한다.-붕당정치 변질의 폐해와 탕평책이 실시되는 배경-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일시적 타율적 균형*듣는다.PPT사용학습지 배부전개(30분)학습목표주지실학의 대두중농학파와 중상학파*학습 목표를 읽게 한다*성리학의 폐해와 성리학에 대한 반성을 설명한다.*성리학에 대한 비판으로 실학이 등장하였음을 설명한다.*실학이 등장할 당시 조선의 사회적 모순을 설명하고, 실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 학문임을 설명한다.*실학자들의 연구대상과 선구자를 소개한다.*교과서를 확인하게 한다.*18세기 들어와 확대된 실학과 그 분파를 중농/중상학파로 나누어 비교, 소개한다.*토지소유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한 중농학파의 주장을 설명한다.*중상학파의 대표적 학자와 주장을 설명한다.*교과서를 확인하게 한다.*읽는다.*듣는다.*교과서를 확인한다.*듣는다.*교과서를 확인한다.PPT사용학습지 사용교과서 166 P교과서 167P정리및평가(5분)정리평가차시예고인사*본시 수업내용을 학습지를 중심으로 정리한다.*확인문제를 풀게 한다.*다음 차시를 예고한다.*인사한다.*듣는다.*학습지 빈칸을 채운다.*풀고 답한다.*듣는다.*인사한다.학습지* 2차시 : 국학연구와 실학의 의의과정학습내용교수-학습 활동비고교사활동학생활동도입(10분)인사학습지 배포전시학습내용 확인본시 수업내용 소개*인사한다*분위기 정돈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학습지를 나눠준다.*ppt자료를 보면서, 전시학습 내용을 질문하는 방법으로 정리한다.-실학의 등장배경은?-실학의 성격은?-중농학파와 중상학파의 주된 관심은?
Ⅰ. 단원명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3. 왜란과 호란의 극복[3]병자호란을 겪은 후에 북벌 운동을 추진한 까닭은?Ⅱ. 학습 목표-병자호란은 왜 일어났나?병자호란을 조선, 후금, 명 간의 세력 관계 위에서 이해한다.-북벌운동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인가?후금(청)에 항복한 치욕을 갚자는 명분으로 제기된 북벌운동의 실상을 파악한다.-북벌은 왜 실현되지 못했나?북벌 운동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던 점을 인식한다.Ⅲ. 주제 개관17세기 전반기 야만족으로 간주했던 여진족의 후금(청)에 굴복하면서 조선이 받은 충격과,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추진되었던 북벌운동을 다룬다. 병자호란은 동북아시아의 세력 변동의 와중에서 발생한 청의 조선침략이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 노선을 비판한 서인 정권의 외교 노선이 자초한 외침이었다. 따라서 북벌 운동에 서인 세력의 권력 유지를 위한 측면도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Ⅳ. 핵심 개념과 주요 내용① 병자호란: 후금의 성장명과 후금의 대립청이 중국 정복에 앞서 조선 침략남한산성의 항거- 삼전도 굴욕② 북벌론: 서인정권대명 의리론실현 가능성 미약Ⅴ. 본시 학습 지도안과정학습내용교수-학습 활동학습자료교사학생도입(10분)인사학습지 배포전시학습내용 확인본시 수업내용*인사한다*분위기 정돈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준비한 학습지를 배부한다.*ppt자료를 보면서, 전시학습 내용에 관해 질문을 하면서 복습한다.-광해군의 정책-중립외교정책-인조반정의 주도세력->서인*본시 수업내용을 소개한다.-병자호란의 원인, 과정, 결과-북벌운동-북학론-나선정벌*인사한다*학습환경을 정비한다.*받는다.*답한다.*듣는다*PPT*학습지전개(30분)병자호란북벌운동*인조반정으로 인한 정묘호란 발생을 설명한다.*교과서의 지도를 통해 정묘호란의 침입경로를 확인하게 한다.*병자호란의 원인을 설명한다.*과정을 설명하고 교과서의 지도를 통해 병자호란의 침입경로를 확인하게 한다.*굴욕적인 강화내용과 과정을 설명한다.*병자호란 이후 청에 대한 복수심으로 대두된 북벌론을 설명한다.*서인세력의 권력유지 측면에서의 북벌론의 실태를 설명한다.*나선정벌을 통해 북벌론의 성과를 확인하고, 그것의 비현실성도 알게한다*듣는다.*교과서를 확인한다.
Ⅰ. 단원명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3. 왜란과 호란의 극복[2]광해군은 왜 중립 외교 정책을 폈는가?Ⅱ. 학습 목표- 광해군 때의 국제 정세는 어떠하였나?명/청 교체기에 중국 대륙의 정세가 변하고 있었음을 이해한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는 어떤 효과가 있었나?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국익을 위한 현실적인 외교정책으로 이해한다-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킨 까닭은?서인 세력이 의리와 명분을 앞세워 반정을 일으켰음을 파악한다Ⅲ. 주제 개관중국 대륙에서의 명/청 교체기에 광해군과 북인 정권이 취한 중립 외교 정책과 대의명분을 앞세운 서인 정권의 반정 과정이다.Ⅳ. 핵심 개념과 주요 내용① 명/ 청 교체: 여진족의 누르하치, 후금건국② 명/ 청의 대립: 명의 출병요구③ 광해군의 중립 외교: 국제 관계에 대한 냉철한 파악④ 인조반정: 서인 세력, 의리와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광해군을 패륜행위와 중립 외교 정책을 이유로 들어 축출Ⅴ. 본시 학습 지도안과정학습내용교수-학습 활동학습자료교사활동학생활동도입(10분)인사학습지 배부전시복습본시 수업내용 소개*인사한다*분위기를 정돈시키고 학습환경을 조성한다.*학습지를 배부한다.*ppt자료를 보면서 발문형식을 통해 전시 학습 내용을 복습한다.-왜란의 결과-왜란 후 동아시아의 변화*본시 수업내용의 전체적인 소개를 간략히 한다.-동아시아의 국제정세-광해군의 중립외교-서인세력의 인조반정*인사한다*학습에 임할 준비를 한다.*받는다.*경청하며 질문에 답한다.*경청한다.*ppt자료*학습지전개(30분)동아시아정세광해군의중립외교*동아시아 정세를 설명한다.*왜란 이후 여진족의 강성과 명의 쇠퇴를 설명한다.*교과서를 확인하게 한다.*광해군의 정책->전쟁의 뒷수습-토지대장과 호적정비-국방강화-동의보감 편찬-대동법 실시*중립외교의 원인, 전개, 결과를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인조반정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교과서를 확인하게 한다.*듣는다.*교과서를 확인한다.
< 목차 >Ⅰ. 국사 교육의 기본 방향1. 국사 교육의 중요성2. 사회과로서의 국사3. 국사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방향 및 내용Ⅱ. 단원 지도 계획1. 단원명2. 단원의 개관Ⅲ. 본시 학습 계획1. 학습 목표2. 주제 개관3. 핵심 개념과 주요 내용4. 교수 - 학습 방안5. 본시학습 지도안6. 학습자료Ⅰ. 국사 교육의 기본 방향1. 국사 교육의 중요성우리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이자 기록이다. 과거에 일어난 여러 사실들은 역사가의 평가와 시각에 의하여 역사적 사실로 재발견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밝혀져 역사책으로 기숙된다. 이것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역사와 만나게 되고, 우리가 살지 않았던 과거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그 올바른 의미를 전달받게 된다.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오늘의 삶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내일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 서술은 과거가 어둡다고 하여 숨기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과장해서는 안 된다. 역사서술은 치우침이 없고 엄격하여야 한다.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오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또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목표는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한편,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과거이어야 한다. 이 말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고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하는지를 그대로 지적해주는 말이다.2. 사회과로서의 국사 교육제 6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 중학교에서의 국사 교육은 사회과 교육의 한 영역으로 교육되도록 바뀌었다. 교과로서의 국사가 폐지되고 사회과로서 국사 내용이 교육되도록 교육편제상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로 인해 종래 가르쳐 오던 국사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나, 국사교육의 관점과 기본 방향의 변화가 요구되었다. 사회과의 기본 목적에 부합되는 국사교육을 강조되었던 민족 교육의 측면 외에 새로이 사회 인식 교육과 시민 교육의 측면이 부각될 것이 요청되어왔다.종래에는 역사 지식이 지식 그 자체로서 중시되어 온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과로서의 역사 교육에서는 개별적 사실 지식의 의미를 개념과 일반화 지식과 관련하여 이해하는 구조적 접근 방법을 중시하고, 아울러 역사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길러진 역사적 사고력을 토대로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목표가 더욱 큰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한편, 사회과로서의 역사 교육은 종래의 국사 교육에 비하여 볼 때 좀 더 균형 잡힌 역사 의식을 지닌 민주 시민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과로서의 국사 교육은 기본적으로 국가 사회에 대한 ‘바람직한 충성심’과 ‘민족적 정체감’을 고양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 사회와 세계에 대한 개방적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지구촌 사회의 도래와 함께 오늘의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균형 잡힌 역사의식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과로서의 역사 교육에서는 국사와 세계사의 관련 학습이 보다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3. 국사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 및 내용국사 교육의 목표는 민족사의 발전상과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바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여, 민족사의 특성을 세계사의 보편성에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역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함양하며,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하려는 자세 및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를 갖게 함에 있다. 이와 같은 국사교육의 목표는 지난날에도 강조되어 왔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 6차 교육과정은 위와 같은 국사교육의 몰표를 충족시키고자 최선을 다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과거에 비해서 많은 개성과 함께 질적인 향상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적합하지 않은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교육과정 자체에도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 급변하는 국내서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내용체계와 아울러 변화하는 현실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학습지도방법에 특히 유념하면서 학교 급 별 내용의 계열성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즉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지식 위주의 국사 교육은 학생들에게 아무런 역사적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결과를 확실하게 하고자 했다.즉, 8 ? 9학년 국사 에서는 사건 또는 주제에 따른 구체적인 활동상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발전적으로 파악함에 힘쓰게 하였다. 특히, 예화 ? 설화 ? 삽화 ? 지도 등을 통해 파악하여 민족사에 친근함을 갖고 보다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하였다. 이어서 10학년 국사에서는 역사의식이 상당히 심화된 학생들을 교육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학년에서 학습한 생활상 사건사의 이해를 토대로 민족사의 전개과정을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영역별로 분류하여 체계화시켜, 이를 세계사의 보편성과 연계시키면서 한국사의 특수성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하게 하였다.그리고 11 ? 12학년 한국 근 ? 현대사에서는 선택 교과라는 제한이 있으나, 다양하고 역동적인 근 ? 근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여 살아온 민족의 삶을 주체적으로, 그러면서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화 ? 정보화 시대를 맞고 있는 민족사의 전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를 위해서, 첫째, 민족사의 전개를 우리 자신 삶과 유리된 민족사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민족사에는 우리 민족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다. 이를 확인시키고 발견해내게 하는 것이 민족사 교육의 진정한 의도이다. 따라서 8 ? 9학년 국사에서는 우리 역사의 전개과정을 큰 줄기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역사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보다 가까이 역사의 현장에 접근하여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이 가꾸어 온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이해하도록 하였으며, 민족의 삶을 강건하게 키워 온 자주성이 우리 민족의 특성임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10학년 제를 해결하는 흐름을 객관적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현재 및 미래의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는 역사적 능력을 신장시키고 민족의 역량을 확인하는 속에서 현재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둘째, 학생들의 흥미를 북돋우기 위해서 내용서술과 학습 자료를 재미있게 꾸미고자 하였다. 역사교육은 교육의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 속애서 열린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내용소재가 사건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서술의 방향이 예화식으로 되어 재미있게 교과서를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이 서술되어야 한다, 다양한 표현과 부드러운 서술, 예를 들어 에피소드도 소개하는 등의 서술방법을 도입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학습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학습 자료를 폭넓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종래의 국사 교과서가 시각적 효과가 떨어진 점을 감안하여 8학년에서 12학년에 이르는 모든 교과서의 지면을 넓히고 색감으로 다채롭게 하여 생동감 있는 학습을 유도하도록 하였다. 특히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멀티미디어 교수학습자료도 구성, 활동하도록 하여 생활 속의 경험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도록 내용을 조직하게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물관 학습, 극화 학습을 시도하여 사건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데 힘쓰도록 하였다. 특히 저학년에는 향토사학습을 권장하여 각 지역에 남아있는 우리 고장의 흔적을 찾아 문화유산 지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조상들의 삶을 진솔하게 이해하도록 하였다.셋째. 평가는 문제해결력과 가치태도의 측정에 주안점을 두게 하였다. 기본적으로 민족사이해의 평가는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 등을 근거로 하여 평가요소들을 추출하고 그 평가요소는 이해영역보다는 기능 ? 태도 영역에 비중을 두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지필평가 이회에 학습태도의 관찰, 과제 수행의 정도 등을 통한 다양한 평가를 시도한다. 그러나 행동적 평가에서는 평가의 준거가 명확해야 한다, 특히 논술형 평가를 활용하여 학습된 지식을 적용하는 문제해결능력의 정도와 가치 ? 태도 형성의 관이 단원은 양 난 이후부터 개항 전까지 약 250여 년 간의 조선 후기 사회를 다루고 있으며, ‘붕당정치와 탕평책’ 그리고 19세기 ‘세도정치와 농민의 저항’이라는 2개의 중단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붕당 정치와 탕평책’은 붕당 정치의 전개 및 변질, 탕평책으로 상징되는 영.정조의 개혁 정책의 일반, 실학사상의 등장을 주로 다루고 있다. ‘세도 정치와 농민의 저항’은 정조 사후 19세기 60여년에 걸친 세도 정치로 인한 통치 질서의 문란, 그에 대한 농민의 저항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조선 후기를 붕당 정치의 폐단. 세도 정치 등과 같은 정치사건 중심으로 하여 표면적으로 이해할 경우, 학생들은 자칫 조선 후기 사회를 부정 일변도로 인식할 우려가 있다, 즉. 경제적인 면에서의 새로운 변화나 신분제의 변동, 미중들의 의식 각성과 같은 역동적인 시대 상황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 사건을 중심으로 한 주제 접근이라는 ‘교육과정’의 방향 위에서 교과서를 구성하게 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단원 지도 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이러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학사상’이나 ‘농민의 저항’을 다루면서 조선 후기 사회 변동의 생동하는 면모들을 좀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실학사상을 통해 당시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에 대한 해결 노력과 새로운 사회로의 지향을 보여주고, ‘농민의 저항’을 농민들의 각성이라는 면으로 다룬다면 그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Ⅲ. 본시 학습 계획1. 학습 목표-붕당 간의 다툼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었을까?붕당 정치로 인해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는지를 파악하여, 탕평책이 실시되는 배경을 이 해한다.-영조, 정조의 탕평책은 어떻게 전개되었나?탕평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떠했으며, 어떠한 목적을 위해 추진되었는지를 파악한다,2. 주제 개관이 주제는 붕당으로 인한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영조, 정조시기에 추진되었던 탕평책을 주로 다룬다, 이 시기에는 탕평책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