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나와 있지만 한국사람들은 정말 우리란 말에 익숙해 있는 듯 하다.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엄마, 우리 선생님까지... 영어나 일어로 번역해서 쓰면 우리가 아닌 나로 번역이 된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이 개념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을 왜 my home 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됐던 것이다.나 라는 독립적인 개념이 잘 세워져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라는 개념이 대신하곤 한다. 그리고 나 라는 개념은 항상 우리 라는 개념 안에 속해져 왔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밥을 먹는 것도, 어디를 가는 것도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을 즐겨하고 오히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나도 그랬었다. 전형적인 한국 여자였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쇼핑을 가는 것도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이 친구랑 꼭 같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조금씩 변하게 된 것은 작년에 어학연수에 갔을 때부터이다. 전공이 일어일문학이어서 어학연수 차 일본을 갔었는데 그 때 우리 라는 개념에서 나 라는 개념이 많이 확립되어진 것 같다. 그리고 책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왕따? 를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영어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들어와서 일어를 처음 배울 때도 나 라는 단어 때문에 몇 문제씩 틀리곤 했었다. 우리 라는 말을 일본어로 그대로 우리라고 번역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 처음 가서 놀랐던 것과 내가 적응하지 못한 것은 바로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우울했다. 혼자 밥 먹는 것도, 혼자 거리를 걷는 것도, 혼자 장을 보러 가는 것까지도... 모든 것을 혼자 해야한다는 것이 너무 외롭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1개월 2개월이 지날수록 나는 적응 해 갔고 혼자를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혼자를 즐기는 법이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에는 혼자 먹는 것이 왠지 처량 맞아 보여서 대충 먹고 빨리 해치울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먹곤 했는데 생각이 바뀌고 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더욱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고, 혼자 거리를 걷고 쇼핑을 하는 것도 즐기게 되었다. 까페에 들어가서 여유 있게 차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것을 즐겼고, 그렇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저절로 나 자신에 대한 것 내 미래, 내 주변 사람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 사회에 혼자 내던져 생활하니 어학실력도 많이 늘은 것 같다. 아마 내가 한국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한국에서와 똑같이 생활했다면 이처럼 변화 할 수 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어학연수에서 느낀 것이지만 나 홀로 여행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전 같으면 정말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어떻게 여행을 혼자 갈 수 있어? 라는 생각부터 먼저 할 것이고, 시도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서부터 서서히 변하였고, 여행학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는 더욱 많이 변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나 홀로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6일째 생각을 바꾸는 나 홀로 여행 부분에서 내가 그동안 변화해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금 맛보고 있는 중이다. 그 짜릿함이라고나 할까...
무라사키시키부일기는 이치죠천황의 중궁 쇼시를 모시는 뇨보로서 궁중의 한때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놓은 글이다. 일기는 일기 적인 부분과 서간체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일기적인 부분은 그녀가 겪은 궁중생활에 대한 기록으로 중궁 쇼시의 황자출산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화려한 궁중의 의식, 행사와 궁중생활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황자의 탄생당일의 목욕의식의 부분을 보면 목욕의식에 관련된 일련의 진행, 사람들의 동작, 뇨보(궁녀)들의 역할부터 의상까지 등을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점은 쿠게 일기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으로, 이 일기를 통해 처음으로 행사의 양상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일기는 기록을 주로 하면서도 자기를 내성적으로 응시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치죠천황의 행차를 바로 앞둔 10월 중순경의 부분을 보면 작자는 미치나가의 집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우수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자신을 강하게 의식하고 번민한다. 이 부분은 사물을 작자의 시점과 감정을 통해 입체적, 양면적으로 취하고있고, 자기반성, 고백적 사유와 함께 깊은 인간통찰을 기록하고 있다. 또 와카의 물새를 통해 작자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일기는 사실의 기록과 함께 형용동사를 통해 많은 심정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치죠천황의 행차를 바로 앞둔 10월 중순경의 부분을 보면 작자의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고 우울한 심정이 쓰여져있는데 이 심정이 행차를 맞는 모습을 지우고 작자는 찬미와 감동의 묘사로 집중하고 있다. 일기의 후반부에 보이는 궁녀들의 인물평이나 비판, 자기감상 등은 서간체형식으로 적었는데 당시 함께 궁녀생활을 하던 이즈미시키부나 세쇼나곤 등 당시의 뛰어난 궁녀들을 날카로운 인간통찰의 눈으로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쇼나곤은 학문적 교양이 높다고 잘난 척하지만 아직도 학문이 많이 모자라는 경박한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는데 그 저변에는 뇨보로서의 라이벌 의식이 깔려 있으며, 바로 자신들의 주군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작자의 소녀시절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는 동생 옆에서 들으며 동생보다 빨리 익혔다며 자기감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작자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