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정치의 구조 및 문화적 특성과 스파르타와의 비교---------------------------------------------------Ⅰ. 들어가는 말현재의 서양 문명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살펴봄에 있어 아테네를 빼놓고 논의하는 것은 나무에서 뿌리를 잘라내버리고 그것은 나무니까 믿어라 하는 말과 같다. 민주정의 형태, 서양 철학의 기조, 올핌픽 정신, 근대 시민정신 등등 모든 서양의 정치적·문화적 현상들은 아테네 의 그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써 필자는 아테네의 정치의 구조·문화적 특성 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며, 지금부터 살펴보려 하고자 한다. 또한 그리스 세계를 아 테네와 함께 또다른 축으로써 아테네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그것을 취했던 스파르타와의 비 교를 함으로써 아테네의 정신은 어찌하여 유지할 수 있었으며, 스파르타는 그 맥이 왜 끊길 수 밖에 없었는가를 살펴보겠다.Ⅱ. 본 론1. 아테네의 정치체제와 그 변천과정가. 아테네의 성립원주민 없는 아티카(Attica) 지방에 정착하여 여러 촌락의 집주(synoikismos)로 이루어진 아테네의 시작은 기원전 2,000년 경의 미케네(Mycene) 문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세 사가들이 말하는 암흑기(B.C. 1100∼800년 경) 의 도리인들의 침입으로 최초의 그리스인들이 아티카로 모여들었고, 아티카의 방어적인 지형으로 침입에 의한 피해를 막음으로써 아테네 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암흑기가 끝나갈 무렵 안정적인 생활의 영위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에 따 라 토지가 부족해지게 됨으로써 자연스런 아테네의 팽창이 진행되었다. 일부가 소아시아 지 방 등으로 이주하여 식민도시를 건설하게 되었고, 암흑기 말기 무렵에는 하나이 폴리스를 구성하게 된다.나. 귀족정 체제최초의 아테네의 정치제체는 에우파트리다이 라는 그리스의 통합 이전의 지방적인 지배자 들로 구성된 협의회(Boule)에서 선출된 왕이 통치하는 왕정체제였다. 이때의 의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기 바쁨으로써 정치에 관심을 가 질 만한 여력이 없었으며, 무기 또한 귀족들을 따라가지 못해 정치적 권리에서 당연히 괴리 될 수 밖에 없었다.다. 민주정의 발전과정이와 같은 귀족정은 아테네 인구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농 업적인 성격의 식민지 건설이 활성화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해외 식민지 건설과 발맞추어 해상무역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시민들의 경제적 참여도가 높아짐으로써 시민들 또한 정치 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군사제도에 있어서는 귀족들이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 되어왔던 소수 기병 중심의 전술에서 기원전 7세기부터 많은 수의 중갑보병(hoplites) 이 참여하는 사각밀집대형인 팔랑크스(phalanx)가 기본 전술로 채택됨으로써 국가의 방위에 귀족 못지 않은 공헌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 아테네 안에서 그들의 발언권과 책임이 증 대되었음에도 귀족정의 아테네는 그를 수용할 만한 능력이 되지 못했다. 또한 기원전 6세기 초가 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된 부유층 시민과 더욱 빈곤해진 빈민층 시민과의 경제 적인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아테네 시민들끼리의 경제적 종속화·노예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아테네 사회의 문제들이 곳곳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기력한 귀족들 의 정치형태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으며, 자연스럽게 아테네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형태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다.이러한 하층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무력이나 비합법적인 수단을 써서 귀족들에 대한 하는 정권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참주정(tyranny)라고 한다. B.C. 594년 무력으로 정권을 집권하 여 시민들의 중재자 역할을 맡은 솔론(Solon)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솔론은 절정에 이른 빈 부의 차이와 그로 인한 사회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고리채 정리를 단행하여 채무 노예 를 금하는 한편 '잉크가 아니라 피로 썼다'고 일컬어진 620년경에 제정된 드라콘(Dracon)의 형법을 폐지하였다실시하고, 제전 때는 희극과 비극경연을 창시함으로써 아테 네 문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는 듯 하였으나 이는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불어와 자신 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책략이었으나, 기원전 510년 그의 아들들이 참주에 올랐을 때는 시민들이 참주정을 타도하고 참주세력을 국외로 추방하는 도평추방제(Ostracismaos)가 만들 어짐에 따라 결국 자신의 책략에 자신이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아테네 민주정은 B.C. 508년에 단행된 클레이스테네스(Kleistenes)의 개혁으로 완성된다. 그 는 종래의 종족적 4부제를 폐하여 데모스(demos, 모두 100 區) 단위의 지역적 10 부족제로 개혁하였으며 독재자의 출현을 예방하기 위한 도편 추방제(Ostrakismos), 아르콘 9명을 포함 한 행정위원(50인)을 뽑는 500인 협의회 등을 창설하였다. 또한 민회(ecclesia)의 입법권 강화 와 민중재판소(heliaea)의 설치로 민주정의 초석이 놓여졌다.이처럼 아테네의 민주정은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데모 스의 창설은 더욱 그러했다. 부족제를 데모스로 개편함에 따라 종래의 씨족제 귀족의 손에 서 데모스의 지역민으로 정치의 실권이 옮아간 것이다.아테네인이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되는 계기는 10년이 조금 지난 시점인 B.C. 490∼479의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아테네가 중심이 되어 폴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침으로 써 그리스 세계의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단결하게 된다. 이는 델로스 동맹으로 이 어지고, 이 동맹으로 모여진 각 폴리스의 기금들은 모두 아테네 민주정을 확고히 하는데 쓰 여지게 된다. 이때의 아테네의 정치가는 페리클레스(Pericles)로써 민주정을 위한 제도들을 마련함으로써 아테네 민주정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한다.라. 민주정의 형태와 특징위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면서 그 형태가 확고해진 민주정의 제도적 장치들은 다음과 같다.우선 아테네 시민자격은 양친이 모두 시민인 20세 이상이 남성에 국한되었다. 권리를 확보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특기해야 할 것이며, 다음과 같은 특징들에 주목해야 한다.첫째, 아테네 민주정은 소규모 국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직접민주제라는 것이다. 그리 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추첨제, 수당제, 중임제한을 꼽을 수 있는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대한 많은 관리들을 추첨으로 선출함으로써 모 든 시민이 차별없이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수당제는 국정에 대한 모든 참여에 수당을 지급함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이는 국정 활동에 충실함을 기할 수 있었 다. 그리고 중임제한제도는 권력의 독점화를 방지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정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들로 역사상 유례없는 직접 민주정을 실현해냈다.둘째, 노예경제가 뒷받침되어서 아테네인들의 민주정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세계 의 델로스 동맹을 통한 단결로 모인 기금은 아테네에 노예를 풍족하게 수급할 정도로 충분 했고, 이는 많은 시민들이 생계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갔다.셋째, 아테네가 추구하던 민주정의 자유는 시민이라는 특권층이 누릴 수 있는 극히 제한 적인 자유라는 것이다. 20세 이상의 일정의 의무를 이행한 남자들에게만 자유가 누려졌으며, 그 외의 모든 사람은 철저히 이 자유에서 소외되었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와는 확연히 틀린 차이지만, 당시의 오리엔트 문명과 동아시아 문명을 살펴보았을 때 커다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여기서 영웅과 민중과 관련하여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앞에서 제시한 클레이스테네스 의 개혁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영웅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결론에 도달하 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아테네 정치사를 다룬 출간물에서 그와 같은 용어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귀족 출신이라는 것도 그와 같은 설명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귀족 출신임에 불구하고 민주정의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와 같은 견해는 참주정의 몰락 어려운 경우였다. 민중 스스로가 민주 정치 를 수립한 유일한 예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대에 있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혁명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2. 기득권자들은 조금만 사회변화에 대해서도‥‥2001년 2월 28일 동국대 황태연 교수님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는 군복무를 하고 있 었고, 부대 안에서 본 수구언론의 대표인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서 뵐 수 있었다. 황태연 교 수님이란 분은 알지 못했지만 동국대 교수님이란 점에서 충분히 나의 시선을 끈 기사였던 것 이다. 그 사건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황태연 교수님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따른 과 거사 사과 논란과 관련, 김 위원장은 유아지절 발발한 6·25전쟁에 책임 없으며, 침략범죄 의 용의자도 아니고, 대한항공기를 폭파를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며, 이러한 국제범죄는 국제사범 사안으로 법적 추궁을 한 후 사과를 받는 것이 적절하다. 라고 언급하신 것에 대해 모든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에서 일제히 용공으로 모는 성명을 낸 사건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말 황 교수님이 친북 발언을 하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전 역을 하고 나서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우연찮게 본 결과, 수구언론세력에 의해 또다시 필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레드콤플렉스가 자극 당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분단이래 계속된 이러한 기득권층의 레드콤플렉스는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에 반대되는 일 에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공격해왔다. 지금의 필자는 기득권자들의 과장된 해석과 예 민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언론이 황 교수님의 발언을 거두절미해 자신들이 시비 걸 만 한 부분만 추려서 국민들을 기만한 사건은 충분히 위 명제에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내 가 느낀 것은 기득권자들의 오바행위(?)에 대한 분노였으며,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교수 님의 말씀처럼 머리는 냉철하게, 하지만 가슴은 뜨겁게 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오바행 위를 냉철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3. 개인의 .
사교육비의 문제와학교교육의 정상화에 대하여- 입시제도를 중심으로 살펴본 교육문제 -목 차----------------{Ⅰ.머리말 ····················1Ⅱ.공교육과 사교육의 의미 ············1Ⅲ.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실1.입시제도의 변천 ··············12.공교육 붕괴의 원인들 ············23.사교육의 활성화 ··············3Ⅳ.공교육의 생존방법과 사교육의 억제방안1.수학의 선택과목화 ·············72.수능폐지와 자격고사 실시 ··········83.위성방송대학, 대학서열화, 고시제도의 변화로 학력사회 철폐·94.수입용 수월성·경쟁보다는 생활력을 기르는 교육의 필요성105.학습량과 수업일수에 관한 문제 ·······116.교단 선진화·정보화는 도서실로 ·······117.획일적인 수준별 학습의 재검토와 고교 평준화 확대·11Ⅴ.맺 음 말 ···················12{- -Ⅰ. 머리말2002년 3월 18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공교육 내실화 방안 을 발표한 바 있다. 열린 교육의 일환으로 시행하였던, 자율학습과 보충학습의 폐지와 체벌 금지 등 혁신적으로 바뀌었던 방안들은 공교육의 경 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과거로 환원되었다.이에 대한 본인에 생각은 부정적이다.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의 변화는 많은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에 있어서의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변화에 있어서의 무일관성은 학 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앞으로 교사를 꿈꾸는 사람의 일원으로써 깊 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러한 기본적 생각을 바탕으로 현 공교육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교육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고, 공교육과는 반대로 갈수록 번창하는 사교육 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외 국의 사례와 비교를 통하여 공교육의 생존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Ⅱ. 공교육과 사교육의 의미공교육은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 실시하는 초·중등 다시 활기를 띤 사실만 보더라 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제도는 수차에 걸쳐 그 모습을 달리해 왔지만 과외수 요를 잠재우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현행 대학입학 전형제도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수학능력시험, 고교 내신성적, 논술 등을 주로 전형자료로 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학업성정의 상대적인 격차가 절대적인 전형기준으로 설정되 어 있다. 이는 전형제도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을 갖는 반면에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특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상대적 석차의 추구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무한 학력경쟁으로 내몰게 된다. 이미 합격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더욱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또 이를 통해 더욱 높 은 석차를 얻기 위하여 끝없는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 것이다.대학입학이 시험성적에 의하여 결정될 때 지대추구적(rent-seeking) 대입경쟁은 곧바로 과다한 입시능력 추구로 이어지고 이는 필연적으로 창의력 배양을 위한 교육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학 생의 입학자격이 단지 시험성적에 의해서 평가되는 풍토 속에서는 경쟁적으로 점수를 높이기 위 해서 학교 밖 에서 이루어지는 보충학습의 매력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전인교육을 외 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발전된 학력고사라고 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대학수학능력도 과외를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작 용한다. 대학수학능력은 원래 고교 교육과정을 脫교과적, 汎교과적인 수준에서 통합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자료의 해석, 원리의 응용, 논리적 판단과 분석 등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 함으로써 적용력, 분석력, 비판력 등의 고등 정신능력을 신장할 수 있도록 마련한 시험이다. 실 제의 학교수업에는 그러한 통합적 사고를 위한 수업이 어려우며, 입시 대비에 있어서도 학교는 많은 부분에서 따라가지 못해 학원이나 과외를 찾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능시험은 이러한 좋은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였으며 이에 따라 그 기능에 대하여에 크게 시달 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50대의 교육비와 과외비가 각각 46만원, 22만 8천원으로 최고 를, 직업별로는 사무직이 교육비와 과외비가 각각 35만 8천원, 21만 3천원으로 교육비 및 과외비 지출이 심했다.또 1997년 5월 19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비는 11조 9천억원으로 국내 총생산(GDP)의 약 2.8%를 차지하며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8만 3천원으로 소득의 8.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과열 과외를 유발하는 원인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 뿐만아니라 수학능력시험제도를 비롯한 대학신입생 선발방식, 과중한 학습부담, 잦은 학교시험등 현재의 잘못된 교육제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과중한 사교육비를 경감하려면 현행 수능시험제도와 대학신입생 선발 방식을 개선하고 필수과목수를 대폭 축소하는등 학습량을 크게 줄이며 유치원을 공교육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이 같은 사실은 재정경제원과 소비자보호원이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과 함께 지난 2월 17일 부터 4월 30일까지 만 3세이상에서 고등학생을 둔 전국 5천 4가구 및 6백개 학원, 1천 2백 75명 의 학원 수강생을 대상으로 면접 및 우편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밝혀졌다. 18일 이 조사 결과 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비(교재구입비 및 하숙비등 제외)는 11조 9천억원(유치 원비 포함시 13조 5천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3년전인 지난 94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5 조8천억원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지난해 공교육비(정부예산, 등록금) 22조 7천억원의 절반을 넘 는 수준이다.또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8만 3천원으로 소득의 8.9%며 특히 서울 강남지역 가구는 40 만 2천원으로 읍면지역(10만2천원)의 4배정도나 됐다. 자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0만 5천 원이며 중학생이 12만 5천원, 고등학생 11만 3천원, 초등학생 9만 6천원, 미취학아동 8만 6천원 등으로 중학생이 가장 많았다.학부모들은 85.2%가 자녀에게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 능에 가깝게 된다. 이에 반해, 공교육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사 교육에서는 비교적 개별교육이 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 담당자는 공교육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학생집단을 지도하게 되며, 따라서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특성을 파악 하여 각자이 수준에 맞는 학습을 이루어 낼 수 있게 된다.이러한 의미에서 사교육은 또한 학생 개개인의 발견에도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발달에 따른 개인차가 많이 나타나는 연령대에서 학생들은 여러 측면에 서 많은 개인차를 갖게 된다. 그런데 기존의 학교교육은 틀에 박힌 경직성으로 인하여 학생의 개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한다. 사교육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 롭게 학습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사교육은 학생들의 인성발전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게 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오늘 날의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부분 1명이나 2명 정도 의 형제·자매들 속에서 자라왔으며 학교에서는 숨막히는 경쟁과 빠듯한 수업일정 가운데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성 함양과 인성 발전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과외수 강이나 학원수강에서 이루어지는 공동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측면이 있다.이상과 같은 사회적 기능과 함께, 사교육은 다음과 같은 사회적 역기능을 동반하기 때문에 문 제를 발생시킨다.첫째, 가계경제에의 부담이 가중되고 실질적인 생활수준이 저하된다. 이에 따라, 힘들여 이루 어 놓은 경제성장의 결과가 그 최종적인 수혜자이어야 할 가계들에게 충분히 느껴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사회후생의 극대화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둘째, 상당 정도의 고소득층이라야 사교육의 기회를 향유할 수 있으므로, 그 기회를 향유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된다. 어느 나라에서나육 현실에서 수학은 모든 학생들에게 대학으로 가게 하는 성공의 열쇠이 거나 실패의 요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수학을 크게 필요치 아니하는 인문대나 사범대의 경우에 도 그곳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수학을 잘해야만 되기 때문에 온갖 절망과 사교육비가 수학 하나 로 집약되는 모순을 자초하고 있다. 유용성이라는 측면이나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선상에서 그것 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물론 경제학과에 관련된 몇 개의 과, 경제, 경영, 국제경제, 통계학과 등은 실제로 수학과 만큼이나 많은 수학적 지식, 즉 미적분학, 통계, 수치 해석, 확률 등에 치중 을 두고 있기는 하다.그러나 대부분의 문과대생들은 수학을 전혀 쓰지도 않을뿐더러 커리큘럼 상에도 수학이 포함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었던 수학이라는 과목은 대학에 들어와서는 셈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문과대 지망생들의 경우 입시에서 수학을 완전 선택 과목 으로 두는 전제하에 진로를 희망하는 과에 따라서 수학을 배우는 정도가 달라져야 한다. 수학이 대학 입학에 결정적인 요소 로써 수학이 문젯거리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우리는 외국의 사례에서 그 모범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문과에서는 대학 입시인 바깔로레아를 치를 때 수학을 외국어, 라 틴어와 함께 묶어 그 중에서 택하게 함으로써 수학이 입시를 결정지을 수 없도록 장치하였고, 독일의 아울렛이나 미국의 SAT에서는 학교교육에서 수학의 난이도와 비중이 낮게 평준화되어서 학생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수학 때문에 원하는 인문학 계통의 학과를 못가는 우(愚)는 최 소한 면하는 것이다.그러므로 현재 과대하게 방대한 양의 수학 지식을 배움으로써 과식 상태가 되어 버리는 현 수 학 교육의 틀은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난이도를 낮추고 분량을 줄이고, 한데 묶어서 많은 분야를 한 학년 단위로 배우는 시스템을 자신의 능력에 맞게 분야별로 학기별로 배우도록 뜯어 고치려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