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번(ID), 이름, 업무, 근무처를 입력 받고 이를 리스트로 저장② 리스트에 저장할 시에는 이름순으로 정렬 삽입③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리스트의 내용을 파일로 저장④ 파일명은 "data.txt" 로 저장⑤ 사번(ID)를 '-1'로 입력할 경우 입력상태 종료⑥ 로드시 이름순으로 정렬 삽입⑦ 파일이 존재하지 않으면 NULL인 리스트 생성⑧ 삭제는 id(사번)를 입력받아서 처리⑨ 프로그램 종료시에 현재 리스트의 내용을 파일로 저장
..PAGE:1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발표자 이름/소속..PAGE:2성인기여 자남 자남자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에 모든 것을 바친다.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곳에 모든 것을 바친다...PAGE:31. 비슷한 내용의 반복2. 성 역할의 고정화책의 어느 부분을 펼쳐도 전에 보았던 내용 같은 인상을 줌문제점의 해결책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음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만을 다룸 (직장여성은 제외됨)능력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능력 있는 남성만을 다룸아쉬운 점..PAGE:4* 남녀의 차이에 대한 이해는 상대방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겪게 되는 좌절감을 해소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당신의 배우자가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당신과 다르다는 걸 기억할 때 당신은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애쓰거나 맞서려고 하는 대신 그 차이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더불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서론남녀의 서로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함관계 개선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 제시좀 더 나은 관계로의 새로운 전략 제시..PAGE:5본론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 미스터 수리공 & 가정진보위원회3. 남자는 동굴로… 여자는 이야기한다.4. 서로 다른 언어(화성언어, 금성언어)..PAGE:6..PAGE:7..PAGE:8..PAGE:9..PAGE:10..PAGE:11..PAGE:12미스터 수리공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음대로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하고는 자랑스럽게 해결방안을 제시한다.왜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느냐고 몇 번이고 말을 해도 그는 알아 듣지 못하고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여자는 공감을 기대하는데 남자는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가정진보위원회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나아지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생활의 개선시키려 노력한다.여자는 가정 진보 위원회를 조직하고, 그를 일차적 대상으로 삼는다.여자는 그를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낀다.2. 미스터 수리공 & 가정진보위원회..PAGE:13그들은 사물보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많다.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유능함을 입증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그들은 혼자 일을 처리해 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위의 사항은 잘못을 지적 받거나 할 일을 지시 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화성인들은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조언을 구할 경우, 요청 받은 쪽은 수리공 모자를 쓰고 잠시 이야기를 들은 후 조언을 해준다.여자들이 자기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남자들이 자꾸만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관습 때문이다.그는 그녀가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한다.그는 진지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화성에서의 삶..PAGE:14그들은 사랑, 개인간의 친밀한 관계, 대화, 아름다움 등에 높은 가치를 둔다.금성인들은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그들은 인격적 성장이나 마음의 치유 등 정신적인 것에 열중한다.금성인들은 매우 직관적이다.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청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도와주고 보살피는 것이라 생각한다.금성에서는 조언과 충고가 관심의 표시로 받아들여진다.조언을 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아끼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사랑법이다.그들이 남자들에게 하는 조언은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그런 표현법은 좋아하지 않는다.금성에서의 삶..PAGE:15남자의 해결책에 여자가 거부감을 느낄 때1.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마.2.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지.3.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4.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고.5. 정 그러면 당신이 그 일을 하면 될 거 아냐?6. 지금 우리가 하는 게 대화가 아니고 뭐요?7.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요?8. 알았어. 하지만 이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야.9. 좋아. 그럼 지금부터 당장 그렇게 해요.10. 그 일 하면서 그렇게 불평하려거든 차라리 하지 마...PAGE:161. 접시에 물기가 그대로 있어요. 그렇게 두면 얼룩이 진다구요.2. 저쪽에 주차장이 있네요. 차를 돌려요.3. 그걸 거기에 놓으면 어떡해요? 찾을 수가 없잖아요.4. 당신, 이번에도 또 깜빡 잊고 그걸 안 가져 왔군요.어디 눈에 잘 띄는 곳에다 두면 생각이 날 거 아니에요?5. 당신 그 셔츠가 바지하고 안 어울려요.6. 난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전화를 해 줬어야죠.7. 당신 머리가 지금 너무 긴 것 같지 않아요?8. 지금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당신, 예약을 안 하신 거에요?9. 당신의 공구 상자가 아수라장이라서 도무지 뭘 찾을 수가 없어요.제발 정돈 좀 하세요.10. 배관공을 부르지 그래요? 배관공이 와서 보면 알 거예요.여자의 조언에 남자가 거부감을 느낄 때..PAGE:17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남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한 곳에만 주의를 집중하며 내면으로 깊이 움츠러드는 반면, 여자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그 스트레스에 압도되고 휩쓸리게 된다. 이러한 때에 그 기분을 풀어야겠다는 욕구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남자들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 긴장이 해소되는 바면, 여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문제들을 이야기함으로써 한결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관계 속에는 불필요한 마찰이 생겨나게 된다.3. 남자는 동굴로… 여자는 이야기한다...PAGE:18(2) 남자들이 동굴을 찾는 이유어려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할 때기분이 언짢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자기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때..PAGE:19(2) 여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정보를 전하고 얻기 위하여기분이 언짢거나 우울할 때 그 기분을 풀어버리기 위해친밀감을 만들기 위해..PAGE:20(3) 화성과 금성의 스트레스 대응법화성인들은 기분이 언짢을 때 이야기하지 않는다.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그 문제를 생각한다.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 그것을 잊기 위해 책이나 신문 등 다른 일을 한다.금성인들은 자기 문제를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기분이 한결 풀린다.자기 문제를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은 사랑과 신뢰의 표시이다.화성인들은 동굴 속에서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기분이 풀린다.금성인들은 자신의 어려운 문제와 우울한 기분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PAGE:21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섣불리 싸움을 걸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대신, 우선 각자 행성의 관용어 사전을 펼쳐 놓고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금성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화성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는 꼭 같은 어휘들이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어휘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 형식상의 표현은 거의 비슷하지만 말의 속뜻이나 감정적으로 강세를 두는 부분이 서로 달라 자칫 오해가 생기기 쉬웠다. 그래서 의사 전달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은 이것이 예의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일 뿐이라고 여겼다.예를 들면, 당신은 내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군요. 라고 말할 때 그녀는 전혀라는 낱말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전혀’라는 말은 다만 그 순간 자기가 느낀 좌절감의 정도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분 마치 사실에 입각한 표현인 양 받아들여서는 곤란한 것이다.4. 서로 다른 언어(화성언어, 금성언어)..PAGE:22① 우리는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아요.(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린 지난주에 외출 했었잖소.)② 나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어리석은 소리 말아요. 당신은 그렇게 무기력했소?)③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어요.(당신 일이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면 되잖소.)④ 우리 집은 늘 엉망이에요.(늘 그런 것은 아니지)⑤ 이제 아무도 내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아요.(지금 내가 당신 이야기를 듣고 있잖소.)⑥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요?)⑦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요.(당신을 사랑하니깐 내가 여기 있는 거지)⑧ 나는 좀 더 로맨택한 기분을 느껴 보고 싶어요.(그럼 당신은 내가 로맨틱하지 못하다는 말이요?)서로 다르기에 오해하기 쉬운 대화의 예..PAGE:23우린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아요.나는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모든 것을 다 잊고 싶어요.이제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아요.우리 집은 늘 엉망이에요.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당신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안잖아요.나는 좀 더 로맨틱한 기분을 느껴 보고 싶어요...PAGE:24화성인들은 자기가 금성인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몰아세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에도 그것이 다만 일시적 현상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화성인들은 그들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에서 얼마나 큰 위안과 활력을 얻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화성인들은 자기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금성인들이 문제를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는 것임을 마침내 이해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게다가 금성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상대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느끼기만 하면 문제에 매달려 고민하기를 그치고 매우 긍정적인 자세가 된다.이것을 알면 화성인들은 자기가 그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개방화의 물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성(性) 문화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성문화의 문을 어디까지 열어야 할 것인가 하는 기준에 앞서서 어느 정도의 성지식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인이 가진 성지식을 알아보는 것은 우리사회에 어느 정도의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잣대가 될 것이다. 현재 성상담창구에 호소해 오는 문제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혼전 성관계, 원치 않는 임신, 성병의 유발 등의 성문제는 성지식의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본 조사는 2001학년도에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2주에 걸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지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반응이 누락된 응답지를 제외한, 1,071명의 응답자에 한하여 분석하였다.
목 차제 1 부. 양반(兩班)문화의 내용과 형식■ 양반(兩班)의 개념■ 양반(兩班)의 형성■ 양반(兩班)의 특권■ 양반(兩班)의 생활제 2 부. 양반(兩班)사회의 신분변화■ 사회변동에 따른 변화양반(兩班)의 개념양반이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는 조정에서 의식 등이 치러질 때, 그곳에 참석하는 현직 관료들을 총칭하는 것이었다.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국왕은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를 모방해서 의식 등에서는 남쪽을 보고 관료들을 대했는데, 국왕을 향해 오른쪽 즉 동쪽에 문관이 위치하고, 왼쪽 즉 서쪽에 무관이 늘어서는 것이 관례였다. 양반의 ‘반’은 열을 의미하는데, 양반은 두 가지 열, 즉 문관들이 늘어서는 동반과 무관들이 늘어서는 서반의 총칭이었던 것이다.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에 대한 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반 위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1390년(공양왕 2)에 무과(武科)가 설치되고, 92년(태조 1) 문?무산계가 제정 실시되면서 다소 보완이 되었으며, 1436년(세종 18) 무산계에도 정종(正從) 9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로써 조선조 양반체제의 제도적 기반이 되는 문?무산계는 확정되었고, 관제상의 문?무반이라는 의미의 양반개념도 확고한 제도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양반의 개념은 관료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家門)까지도 양반으로 불리게 되어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가부장적인 가족구성과 공동체적인 친족관계 때문에 양반관료의 가족과 친족도 양반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음직(蔭職)과 과거(科擧)를 통한 관직의 세전(世傳)과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통해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문?무반을 체현하면서 새 왕조의 사회 교화를 책무로 자임하는 사족으로서 자신들을 정립시켜 나가며 성리학적 가치질서를 실현하고 국가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국가 공인의 사회적 지주(支柱)로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양반이다.그들은 사림세력으로 중앙정계와 각 군현으로 진출하면서 그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군현단위 향촌사회 지배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립하고 과시하며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고 그 주도하에 농민층의 교화와 향촌사회에의 안착을 꾀하였다.조선 전기에는 재생산구조의 저자립성으로 인해 농민들이 많은 것을 지주층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특히 그것은 병작반수라고 하는 전호경영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광범하게 존속하고 있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저자립성으로 인해 유망하기 일쑤인 농민층을 공동체적으로 결속해 향촌사회에 안착시키는 일은 곧 지주사족의 지배기반의 확보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지주사족층이 중앙정계와 각 군현단위 향촌사회에서 16세기 이래 특히 적극적으로 추진해 간 것이 향약의 보급운동이었다.향약은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향촌사회에 실현코자 하는 자치규약으로 고안된 것이나, 조선사회에서는 성리학적 윤리규범 그 자체에 독특한 사회적 해석이 가해지면서 그것이 향약에 수용되어 가며 그 해석의 핵심은 주(主)?노(奴)의 관계를 군(君)?신(臣)의 분(分)과 같은 충(忠)으로 극단화시켜 강조한 점, 사족과 일반 농민과의 관계를 오륜 가운데의 장(長)?유(幼)의 분(分)인 제(悌)로 해석하여 확대 적용한 점, 그리고 사족신분 상호간의 관계를 역시 오륜의 붕우(朋友)관계로 해석함에 따라 종래까지의 혈연, 학연 따위 좁은 유대관계를 상대적으로 불식하고 국가사회를 주도해 가는 보편적 주체로서의 자신들을 인식하려고 하였다.그러한 인식은 성리학적 사회윤리규범의 확산, 향약의 보급과 함께 향촌사회가 실제로 지주사족의 주도하에 운용되고, 그 집중으로서의 국가 정치가 그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조선왕조 일대를 규정하는 전형적 사회규범으로 정착되어 가며 농민 일반은 국가와 지주사족의 중층적 지배와 교화 에 조선 초기의 사회신분은 양반, 중인, 양인, 천인으로 대별되었다.양반은 고려시대부터 지주요 노비주로서 과거시험등을 통하여 계속 관직을 차지하였고, 그들끼리 폐쇄적으로 통혼함으로써 지배신분층을 구성하게 되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배층이 양분화하여 양반과 중인이 갈리게 되자 양반과 양인의 신분차는 더욱 현격하게 되었다.조선 초기에 이르러 향리, 서리, 기술관, 서얼, 토관, 장교 등은 중인층으로 격하되었다. 양반은 이들 중인들에게 복잡한 행정 실무와 업무를 일임하고 그들은 시문을 즐기고 수기치인의 방도를 궁구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양반은 중인을 일반 백성들의 불만을 막아내는 완충벽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중인들은 양반정권에 기생하면서 양반들로부터 여러 가지 차별대우를 받았다. 이 때문에 양자간에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그들의 행정업무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경우도 많았다.그러나 이들도 과거나 입공을 통하여 양반으로 상승할 수도 있었고, 양반 중에도 중인의 직종에 오랫동안 종사하면 중인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뿐만 아니라 양반, 중인, 양인, 천인의 네 신분층 간에도 신분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양반이 반역죄를 지면 노비가 될 수도 있고, 가문이 몰락하여 양인과 마찬가지로 될 수도 있었으며, 오랜동안 아전으로 종사하면 중인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양인이나 중인이 과거나 입공을 통하여 양반이 될 수도 있었고, 극히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노비가 공신이 되어 양반으로 상승할 수도 있었다. 즉 신분간에 카스트적인 장벽이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간의 이동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회변동과 역사발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양반층에 편입되어 갔다. 그리하여 양반층의 특권이 희석되는 반면에, 양반층 내의 대가, 세가, 향반, 잔반 등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즉 조선 후기로 가면 양민 천민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올라가고, 양반 내의 구분은 더욱 복잡하게 되어 간 것이다.양반(兩班)의 특권1관(顯官)이 있는 양반은 보단자를 낼 필요가 없었으나, 4조 안에 현관이 없는 양인은 보단자와 아울러 지방에 사는 경재소원 3인, 서울에 사는 사람은 해당 부(部)의 관원 3인의 추천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양인이 이들의 추천서를 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양인이 전혀 문과, 생원?진사시에 응시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안이 넉넉하고, 여건이 갖추어진 사람이면 문과에 급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물론 양반은 가문의 혜택으로 관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공신이거나 3품 이상의 고위관료일 때는 자식이나 사위 중에서 1명을 간단한 시험을 거쳐 관리에 임용했다. 그러나 5품 이상의 관료이면 그 자제에게 관직을 준 고려와 비교하면, 조선에서는 가문의 혜택으로 관료가 될 수 있는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음서로 특채되어 관직에 나가봐야 하위직에 머무를 뿐 고위관료는 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직 중에서도 권력의 최정점인 재상의 반열에 오르려면 자신의 실력으로 과거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따라서 조선의 양반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거시험에 합격하려고 노력했다. 조선에서 능력이 없는 자는 양반신분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자신부터 4대 조상까지 그 사이에 관리가 없으면 그 집안은 양반신분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따라서 조선의 양반은 신분이 하락하여 중인, 양인, 심지어는 노비로도 신분이 전락할 수 있었다.2. 군역제조선시대의 군대는 대체로 신분에 따라 다양하게 편성되었다. 양반의 군대로 볼 수 있는 갑사, 별시위, 내금위, 충의위, 충찬위, 도성위, 호익위 등이 있고, 일반 양인은 정병, 그리고 천인은 잡색군이나 속오군 등에 편성되었다. 조선시대의 군대는 신분에 따라 편제된 까닭에 각각에 대한 차별대우가 존재하였다. 양반의 경우 군대복무와 관료로의 진출이 동시에 보장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지방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창설된 속오군은 실제로 훈련을 받고 전투에도육체 노동을 하지 않았던 양반층에게 그들의 수족인 노비는 불가결한 존재였다. 노비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양반으로서의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노비는 양반의 수족으로서 양반 가정 내의 여러 잡일을 수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반이 소유한 경지의 노동력으로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양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많은 노비를 확보하려 하였다. 노비는 토지와 함께 양반에게 가장 주요한 재산이었다. 그들은 되도록 많은 노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노비신분법을 마련하였다.양반은 노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법제적으로 이들을 천인화하고 양반과 노비와의 관계를 하늘과 땅, 위와 아래의 지배?복종관계로 묶어 놓았다. 따라서 노비가 양반상전에게 대항하거나 양반여자를 간통하였을 때는 극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반이 잘못을 하였을 경우 매를 대신 맞기도 하였다. 또한 노비에게는 종모법이 실시되었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성을 원칙으로 하는 조선사회에 있어서 가계는 반드시 부계를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노비에게만 유독 모계를 따르게 한 것은 노비를 가축과 같은 재물로 보았기 때문이다.2. 봉제사와 접빈객양반들의 생활 신조로서 가장 중요시된 것은 ‘봉제사’와 ‘접빈객’이었다. 봉제사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빠뜨리지 않고 정중히 지내는 것을 뜻하며, 접빈객은 친족과 벗을 비롯한 방문객을 정중하게 대접하는 것을 뜻한다.여기서는 조선시대 양반인 오희문(1539-1613)의 을 실례로, 봉제사와 접빈객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다.먼저 봉제사에 대해 살펴보자. 오희문은 1년간 28번이나 되는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월 평균 두 번 이상의 비율이다. 제사 한번 치르는 데에도 그 준비를 수일 전부터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에 오희문의 일상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접빈객에 대해 살펴보아도 피난지의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빈번하게 방문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오희문 자신도 종종 남의 집을 방문하곤 했다. 방문객이 빈손으로 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