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하고, 그 자체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로마.. 우리는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책을 통해서, 로마가 가지고 장구한 역사에 대해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기원 수 백년 전에 이탈리아 반도에 조그마한 집단을 만들고 이었던 로마인은 기원2 세기 초까지 지금의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로마는 지방과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을 단순히 지배 하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교역 권으로 묶어놓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로마인들은, 인종적, 혈연적으로 로마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법적인 로마인으로 동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우리들이 지중해 세계라고 부르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이처럼 로마는 단순히 대제국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하나의 역사적인 세계로 인식하는 이른바 지중해 세계 를 만들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의 광대한 대륙과 지중해를 통한 문명의 교류가 없었다면, 로마는 대제국이 아니라 일개의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로마 멸망 후에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곳을 다시 통합한 일이 없었다는 것만으로 로마가 대제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중해 세계는 로마가 이룩한 제국과 그에 유지된 로마의 평화 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에서 알아보아야 할 것들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로마가 제국을 통일하기 시작하는 기점인, 로마의 평화에서부터의 출발이다. 제정기 수립을 중심으로, 로마의 흥망쇠를 알아보고자 한다.★본론★1. 제정 성립과 과정악티움 해전의 승리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지배권을 쥐고 로마의 첫 황제가 되었다. 장기간의 내란과 전란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들 로마의 평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때,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굳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신망을 두텁게 만들었다. 로마의 실권을 잡은 그는 우선 카이사르가 부당하게 원로원의원으로 승격시킨, 원로원들을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숙청하고, 원로원으로부터 제1의 시했던 근원 이였던 것이다.아우구스투스는 부자상속에 전통성을 두었으므로, 그의 왕조를 세우려고 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양자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AD 14년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뒤, 티베리우스는 자동적으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과 원로원에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뒤를 이어 가이우스가 계승하였으나, 가이우스 또한 무능력한 정치 체제로 원로원의 비난을 받았으며, 끝내 암살 당했다. 이어 황제가 된 것은 클라우디우스 였다. 클라우시우스는 풍부한 학식을 기반으로 아우구스투스의 과업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는 정부의 중앙집권화를 크게 일으켰고, 대외팽창에 많은 관심을 보여, 서부의 땅들을 로마화 하는데 촉진 시켰다. 클라우시우스를 이은 사람은 네로였다. 네로는 폭정을 일삼았으며, 그의 가족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을 살해하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다. 그러나, 그는 AD68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자살했다. 이리하여, 카이사르 출심 씨족인 율리우스 가와 티베리우스 출신 씨족인 클라우디우스 가출신의 황제 혈통이 끊어지게 되었다.그 다음 1년간은 제위를 둘러싸고 혼란기를 겪게 되었는데, 네 사람의 황제가 교체된 끝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제위에 오름으로써, 그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갈리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어지러운 로마제국을 안정시켰다. 그 뒤, 아들 도미티아투스가 제위에 올랐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변경의 방비강화에 노력하고, 재정을 정비하며, 로마의 안정을 도모했지만, 그의 전제적인 정치성향으로 말미암아, 음모로 암살되었다. 이로써, 플라비우스 가도 단절되고, 그 다음은 원로원의원 네르바가 원로원의 추대로 제위에 올랐다.네르바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트리야누스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지명하였는데, 여기서, 양자상속제가 시작되었다. 이 양자상속제는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는데, 5대의 황제가 다 현명하다고 하여, 이시기를 5현시대 라고 하였으며, 그 후, 1세기에 걸쳐, 팍스 로마나 의 평화와 안정을 누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비교적 신분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지는 않았다.로마의 경제는 주로 농업이 우세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 시대로부터 약 200년 간 이른바 팍스로마나 시기에는 로마의 경제적 번영의 활발했던 시기였다. 거대한 정복사업의 결과로 영토내의 농업과 목축이 이루어져,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생산 기술도 발달하여, 제조업 등 공업 분야의 발전도 두드러진다. 또한 상업도 활발하여, 여러 식민지와의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로마가 식민지 제국을 유리하게 통치하게 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3. 제국의 혼란아우렐리우스가 양자 제도를 무시하고, 그의 아들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로마는 다시 한 세기에 걸쳐서, 혼란과 무질서를 겪게 된다. 그의 아들 코모두스는 무능하고, 잔인하였으며, 정치에는 관심 없고, 오직 쾌락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결국 코모도스는 그의 측근에 의해 암살되었고, 그 뒤를 이어 세베루스가 제위에 올랐다. 세베루스는 친위대를 자신의 군대로 개편하고, 원로원을 군대지휘와 속주총독으로부터 추방시켜, 원로원을 무시하였다. 그리하여, 중앙의 권력을 강화시켜 나갔으나, 그는 전쟁터에서 전사하였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카라칼라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카라칼라는 사치와 향락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제정 초기부터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재정이 궁핍해진 그는 전 로마제국 내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여, 상속세 등 여러 세금을 징수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정책으로 로마는 이제 다른 속주들과의 구분이 없어짐으로써, 로마만의 특권이 사라졌다. 카라칼라는 군에 의해 암살 당했고, 카라칼라를 이어, 마크리누스가 제위에 올랐으나, 그의 무능한 정책으로 그도 또한, 암살 당했다. 그 뒤, 태양신을 숭배하는 엘라가발이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음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정 낭비와 낯선 신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뒤, 알렉산더가 제위에 올랐다. 그는 로마의 전통성을 존중하고, 원로원과이때 실제적으로 모든 결정은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있었다. 이는 군대의 개입을 방지하고,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4제통치 라고 도 한다. 디아클레티아누스는 수도를 니코메디아로 옮겨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및 트라키아를 통치하고, 그의 부황제는 지금의 유교슬라비아를 통치하라고 했다. 다른 황제는 막시미아누스 였는데, 그는 이탈리아, 북 아프리카,오스트리아를 통치하고, 그의 부황제는 갈리아, 에스파탸, 브리타니아를 통치하게 했다. 이때, 디아클레티아누스가 통치했던 나라들을 보면, 동방으로 많이 와 있음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점차 동방의 전제군주의 기풍을 답습하게끔 만들었다. 황제와 부황제는 저마다 수도와 자신의 군대, 행정관리, 보좌관을 거느렸다. 로마시민은 양곡의 무상배급과 각종 경기를 제공받았으나, 옛날의 특권적인 지위는 사라지고, 로마원로원도 군현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그들의 지위가 많이 약해졌다. 속주도 세분화하여 통치했는데, 속주를 12 개 관구를 만들고, 이를 다시 4개의 대관 구를 만들었다. 이리하여 행정관리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었다. 군제도 그동안의 혼란기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변해 왔으나, 이제 그것이 하나의 제도로서 확립되었다. 즉, 수도 근방에는 중무장의 기병대를 중심으로 한 야전군을 두고 필요에 따라, 어느 곳에든지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었다. 국경지대에는 변경주둔군을 상주시켜 국경선의 수비와 순찰을 담당하게 했는데, 변경주둔군의 경우는 그 지역의 주민들로 주로 구성하였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대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해서, 문 과 무의 직책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종전처럼 속주의 총독이 행정권과 더불어 군대지휘권을 겸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이 수행되어지는 상황에서, 로마는 전쟁 및 개혁으로 인한 재정위기는 더 심각해져 갔다. 군현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은 주로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몫이었으며, 이들의 몰락은 더 심각해져, 그들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유력한 대지주의 보호를 장자인 아르카디우스가, 서 로마는 그의 차남인 호노리우스가 각각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로마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동 로마는 도시가 보존이 되고, 통치 체제도 어느 정도 정비가 된 바에 비에, 서 로마는 도시가 쇠퇴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정적인 모습 이였다.5세기에 접어들면서, 게르만족의 침입은 다시 빈번했는데, 410년 알라릭에서는 서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고, 게르만족과 함께, 서 로마영토에 침입해 왔다. 또한 455년에는 반달족에 의하여 다시 로마가 약탈당했다. 이제 서 로마제국에는 외부 세력에 대해 막을 힘이 없었고, 결국, 476년 아우구스툴루스가 게르만에 의해 황제가 폐위되면서, 서 로마제국의 멸망하였다.6. 그리스도교1 그리스도교의 성장로마인도 그리스인과 같이 자연 종교적인 전통을 갖고, 자연의 힘을 신격화한 다신교적인 민족 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정의 성립과 더불어 역대의 황제를 그가 죽은 후 신으로 만드는 황제예배가 일종의 국가적인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제정 후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와 사회가 혼란해지자 운명의 여신을 예배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고, 동방의 점성술 또한 유행하기 시작 했다. 그 대표적으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소아시아의 키벨레, 이집트의 이시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민중들의 종교적인 경향의 신 플라톤 철학에 대한 호기심은 제정 후기 로마인의 정신적인 불안감과 참된 종교의 갈망을 말해 주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사회에 등장하게 된 하나의 배경이기도 하다.그리스도교는 이스라엘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를 모태로 삼고 탄생하여 유대교의 율법존중으로부터 사랑의 종교로, 이스라엘 민족의 구제라는 좁은 민족종교로부터 전 인류의 구제를 지향하는 세계종교로 발전하였다. 발전 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더불어, 바울 베드로의 영향이 지대하게 컸다. 여러 압박 가운데서도,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민족신앙을 더욱 굳게 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신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며, 구세주의 출현과 더불어다.
이 책 갈매기의 꿈(Richard Bach)은 한 갈매기의 인생 여정을 담은 책으로서, 총 Part 3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Part 1을 살펴보면, 갈매기 조나단이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기를 갈망한다. 그것으로 인해 동료 갈매기와의 갈등과 조직 내에서의 추방을 그리고 있다. Part 2 에서는 추방된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 동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왜 배움을 희망하는지, 그리고 그 배움을 넘어선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느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마지막 Part 3 에서는 자신이 느낀 것을 바탕으로 다른 갈매기 제자에게 배움을 전수하여 주고, 자신의 제자 또한 자신처럼 배움의 깨달음을 느끼고자 하고, 그것을 느끼게끔 도와 준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갈매기라는 새로 한정되어 있지만, 갈매기가 배움과 삶을 깨달아 가는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의 우리 모습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초, 중, 고 시절... 우리는 배움이라는 단어에 처음 익숙해진다. 그때의 배움이란 나한테 무엇을 의미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오직 하나와 직결되어 진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 한 배움.. 즉,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학문의 척도, 대학을 위해서, 아무 자의식 없이 배움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조나단이 느꼈던 처음의 자신의 모습과도 흡사 할 것이다. 조나단도 처음에 자신이 그저 다른 갈매기처럼 똑같이 먹이만을 위한 생계, 배움을 유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남들과 똑같이 아무 목적 없이 하루하루 생활을 영유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 생활의 무의미를 깨닫고, 곧 그의 삶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가치 있는 배움이라는 것(더 높이, 빠르게 나는 방법 터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 없이 더 노력하고,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더 훈련했다. 물론 나 역시도 나에 대한 성찰과 좀 더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학문을 계속 하기 위해 대학이라는 곳에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무엇을 배우고자 할 때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지금 내 모습은 그러하지 못하다. 내가 선택해서 온 대학이고, 내가 선택해서 온 과 이지만, 내가 원하고자 했던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하루하루 그 전처럼 똑같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 오던 대학 생활에서 다르기에 온 회의에서도 비롯되지만, 더 큰 문제는 학문을 함에 있어, 내 자신이 게을러지고, 지금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꿈이 무엇인지, 왜 배우고자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히려, 초, 중, 고 시절이 더 나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에는 하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적어도, 대학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많은 부끄럼을 느낀 부분도 바로 이점이다. 내 삶의 이정표가 없는 것... 어쩌면, 나의 이런 생활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조나단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그는 의구심만 더 늘어갈 뿐이다. 배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지만, 도무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배움만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의 배움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어디론 가부터의 제약과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때, 나타난다. 열정과 그것을 향한 순수한 마음은 가득하지만, 외부 내부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한계에 내 자신의 무기력함을 발견한다. 조나단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신념과 관념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보이지 않는 삶까지도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내가 될 때, 조나단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난 하나의 동물이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 넘어 서를 생각할 때, 난 나의 존재마저도, 느낄 수 없는 내 자신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자유를 넘어 설 땐, 더는 내가 나만의 것이 아님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이 다른 사람과 공유가 되는데, 이게 바로 자유로워 졌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나 또한 의구심만 가득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그 배움에서 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나의 배움을 전달 하고자 할 때,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내 지식은 내 머리라는 갇힌 공간 속이 아닌, 세상 밖으로 나옴으로써, 그 배움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라는 것도 나만을 위한 배움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배움이 됨으로써, 그 가치를 더욱더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지금 까지 배움과 그 배움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그 배움의 전달을 실천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데, 너와 나의 또는 모두와 나의 배움터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배우는 과정에서는 분명 상하 관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때, 이 상하 관계는 경직된 관계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그래야 지만, 그 배움의 과정에서 더 나은 배움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즉, 배움을 알고자 하는 것과 가르치는 사이에는 사랑과 인내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조나단도 그의 제자를 자신의 배움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제자들에게 사랑으로 그 이상의 것을 가르치므로 써, 그의 제자 플레처 또한 그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나 조직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길초기 한국 기독교는 심각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공백현상을 가져 왔고, 이틈을 비집고, 민중 계층과 양반·지식인 이라는 두 계층간의 사이에서 수용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으로 그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기독교는 민족 종교로 급속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또 이들 양반·유식 계 층의 합류로 기독교의 민족 의식이 더욱 강화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국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추구하려는 지식인들의 의지는 교육, 의료, 교회 즉 삼위 일체식을 통해 민중에게 확산되었고, 이로써 의식화된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민족운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민족 운동은, 한국사회의 봉건적 전통성의 개혁과 인간의 정당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실천하려 하였고, 자신들의 의식 계발 또한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였다. 이런한 투쟁은 봉건 사회에서의 농민들의 피폐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마음이 이러한 행위로 표출 되었던 것이고, 주체 의식으로 기본으로 하여, 반외세적인 국가의 자주 의식과 항일 의식을 키워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의 기독교인들의 의식과 활동 가운데는 항상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간직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통해 열매를 맺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기독교 인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일제의 한국 침략과 광복, 한국 전쟁등 역사적 시련을 겪으면서, 지금의 한국 기독교가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한국의 기독교는 점차 초기의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 기독교적 윤리사관이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 기도 하고, 복음을 통해 의롭게 여기심을 받은 동시에 믿음으로 말이암아 거룩하게 되어 죄를 이기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기독교적 윤리관점을 정립하고, 그들의 사상을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 예로 그들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한국여성의 위치 찾기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현재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 활동을 통한 지위향상을 얻을 수 있었고, 정치, 사회, 여성 운동단체등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서 그들의 자아를 실현하고, 의미를 가지게 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개혁하고 미래를 짊어질 우리의 역사적 주체인 청년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게 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해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기독교는 종교 신앙으로서만의 의미를 넘어서, 여러 사회의 무리들과 결탁하면서, 우리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독교로 점차 발전 되어 갔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이 없진 않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 들면서, 기독교는 이해관계의 경제적 타산과 계산의 지배 원리에 젖어 들게 되어, 점차 경제주의의 기독교 식민화로 변질 되었던 것이다. 비단 기독교 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우선 믿음의 공동체가 기업적 타산에 이끌려 양적으로 비대해져 경제적 욕구를 만족시켜 가는 기업체와 매우 흡사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려 되는 것은, 기독교 안으로의 문제들 뿐만 아니라, 외적인 곳에서도 우리는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난제들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환경문제나 생명의료윤리, 또는 사회의 급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사회갈등의 극복을 위한 사회정의 및 평화의 문제와 같은 윤리적 과제를 들 수 있다. 이렇듯, 기독교가 안고 있는 난제들을 해결 하기 위해서 한국의 기독교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여러 사상들의 실천 방법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일까?내가 이글을 쓰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이미 자신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 하였다. 그들은 지금껏 그들이 일궈논 열매만을 먹어도 그들의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기독교를 통한 우리 시대의 좀 더 나은 모습이고자 할 것이다.첫 번째로, 그들은 스스로의 권위주의를 벗어버리고 민주적인 질서로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 그들은 처음 기독교가 지배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데 관해, 그들은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기독교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스스로의 권위주의에서 빠져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겉치레한 겉옷을 벗고, 좀더 대중과 가까이 하는 기독교라면, 그들의 신앙을 가지고, 진정 그들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그들은 생명과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언론에서도 보았듯이 이미 휴먼 게놈 프로젝트와 생명복제의 시대가 현실화가 되고, 그밖의 뇌사 장기 이식의 문제 및 안락사,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인식등이 사회의 이슈가 되면서 우리는 점차 우리의 삶을 위협받기 시작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기독교는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도출하고, 철저하고 체계적인 반성을 필요로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한 진리를 깨우쳐 스스로의 진리 완성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 민중과 함께한 소중한 유산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탐욕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못한 점을 반성 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부의 모습으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단체는 기업적 경제주의 원리에 종속 되기 보다는 스스로 구원이되어, 기독교인들의 나 가 아닌 우리 의 공동체 삶에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 그들은 그들 위치와 자리를 인식 할 수 있도록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그들의 시야를 좁은 곳에서 한정 짓지 않도록 하며, 더 넓은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끔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앎은 더욱 증폭되어 한국의 기독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앞선 내일을 바라 보게 됨으로써, 남들보다 한 발자국 앞선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윤리를 정립해야 한다. 앞서 말한 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의 덕을 갖춘 인격적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모든 만물이 하는 말을 귀기울일 줄 알며, 그리고 참된 진리가 있을 경우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또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자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신앙인을 지금 우리 세대가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 또한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였다. 다 열거한 지금, 내가 생각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실천 이라는 단어로 매듭을 짓는 것이라 하겠다. 백번의 말보단 한번의 실천이 소중하듯이 궁극적으로 구원 받은 공동체로서의 망땅히 구추해야 할 성숙한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시트콤(Situation Comedy)은 무엇인가서론점점 사회가 자본주의로 접어 들게 되면서, 사람들은 삶이 힘겹고, 답답한 사회 현실이 그들에겐 무게 그 자체로 다가 왔을 것이다. 이때 텔레비젼 문화는 감각적인 프로그램 형식으로 시청자들의 우울한 상황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웃음 거리를 더 찾게 되었고, 심각한 요소가 잔뜩 들어 있는 프로그램보다는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이같은 기류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부상했으며, 이는 자본주의의 문화와 신세대의 문화와 적절히 결합하여 일반 코미디와 달리 드라마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는 시트콤을 탄생 시킨 것이다. 시트콤은 시추에이션 코미디로 (situation comedy) 일종의 상황극이다.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매회 같은 출연자들이 주로 가정이나 직장이라는 고정 무대를 배경으로, 매회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엮어가는데, 그 내용 면에서도 단순하고 가벼우며 명랑하고, 덜 설교적이고 비교적 다양한 연령층과 인구학적 집단에게 비교적 어필한다 등의 특성 속에 웃음을 창출하고 있다. 웃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정통 코미디와 유사하지만, 그 웃음 발생의 구조는 일반 코미디와는 달리 구조화된 일정한 틀을 중시 하는 상황 웃음이라는 점에서 구별 된다. 우리나라에서 시트콤을 1990년대 초 SBS의 개국과 함께 상업성을 겨냥해 탄생된 후 잦은 실패에도 불구 하고 방송 3 사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꾸준히 개발되어 왔다. 그 이유는 시티콤은 같은 분량의 드라마 제작비보다 4 배이상 저렴하면서도 시청률은 높아서, 방송사의 입장에서 볼 때도 대단히 매혹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광고 판매율까지도 높은 편이어서 요즘 같이 경제 상황이 불안한 시대에 방송사들에겐 더없이 이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좋은 계기 이다. 그러나 시트콤의 양적 물량은 증가하는데 비해 그간 제작자들부터가 시트콤의 정제된 웃음 구조에 대한 인식과 노하우가 부족했던건 사실이다. 그간 시트콤이 잦은 실패를 하게 된이다. 이러한 정확하지 않은 기초 정립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이제 시트콤의 장르의 개념과, 다각적인 측면에서 시트콤의 구조에 접근해 보려 한다.본론1. 시트콤의 개념과 특성시트콤이라는 장르의 경계는 분명하거나 고정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르 라는 용어 자체가 단순히 유형이나 종류를 나타내는 프랑스의 단어 이지만, 이것이 문학 작품, 영화, 텔레비전 연구에 사용될 때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범주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트콤의 새로운 형태는 끊임 없이 발생되어 왔고, 각 방송사들도 시트콤의 세부적 표현 방식이 다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전 전제하에서 시트콤이라 불르는 프로그램의 특징을 짓는 다면 다음 아래와 같은 내재적 공통 요소들을 찾아 볼 수 있다.1 30분의 포맷2 가정 또는 일터와 같은 공통된 상황 혹은 무대의 사용3 고정되고 제한된 등장 인물4 매주 유머러스한 상황을 일으키는 문제5 스토리의 에피소드적인 성격6 일회적이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영될 수 있도록 해결되는 그날 하루의 문제 라는 점시트콤은 이렇게 기본적으로 드라마의 콘티를 따르면서도 코미디가 같는 과장된 상황을 연출하면서 그 속에서 재치와 웃음을 겨냥한 장르로 발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트콤은 드라마나 코미디와는 다른 전문성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2. 시트콤의 코미디와 드라마 요소의 결합 탄생1) 코미디 흐름과 장르 접목우리나라 방송에서 코미디는 1960년대 과거 악극 시대의 희극 배우를 중심으로 처음 시작 되었다. 당시에는 우리의 고전 해학이나 희극 작품을 재구성 내지 번안하여 사용하거나 혹은 유랑 극단에서 펼쳐지던 {)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는 광범위한 액션이나 때묻지 않은 유머에 의존하는 형태 의 코미디 이다. 액션을 과장한 것으로 통칭 소란스러운 코미디라고도 한다. 슬랩은 철썩 때 리는 것 스틱은 단장 또는 몽둥이의 뜻인데 이 뜻이 변해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희극을 뜻 하는 말이 되었다.슬랩스입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코믹요소를 지닌 프로그램을 두갈래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버라이어티쇼나 토크교, 정보물, 개그 형식이고, 또다른 하나는 드라마 형식으로 편입된 것이다. 이중 후자의 맥락이 국내의 시트콤 탄생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넓은 웃음을 기반으로, 기존의 코미디와 다르게 시트콤에서 강조되는 것은 바로 질 높은 웃음 창출 이라는 과제에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질 높은 웃음이라는 과제 역시 기존의 코미디가 발전 되어 왔던 과정처럼 제작자의 입장에서 수용자의 선택과 맞물려 있는 상업성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관과 할 수 없지만, 그간 유치한 코미디로 사회의 차가운 시선등에 시달려온 코미디 제작자들에게 있어 시청률과 상업성을 함께 고려하더라도 결국 질 높은 웃음 이 여즘 시청자에게 효과적이라는 의식이 확대되고 있는 시트콤의 현실이다. 결국 코미디와 시트콤의 절묘한 접목은 이시대의 코미디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제작자의 노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2) 시트콤의 드라마 요소시트콤은 앞서서 말한 코미디 요소에서 웃음을 접목 시켰다면, 드라마에서는 연기의 속성과 연속성의 개념을 도입 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우선 연기의 속성을 보면 드라마의 {) 내러티브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간과 공간속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내러티브는 고도의 계산된 것이며,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구조 분석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다.내러티브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시트콤은 철저히 대본과 콘티에 의한 연기로 드라마적인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일반 탤렌트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속성의 개념에서 본다면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을 기반으로 반복과 연속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있기 떠문에 그 속에서 연속물이라는 장기화된 이야기 틀을 만들고 구조화된 플롯 진행이 되고 있는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것이다. 따라서 시트콤은 출중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 단막 연속극(seri서 웃음이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웃음 이라는 것은 시대와 특정 문화 속에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구체적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발화와 결합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웃음의 일반적 속성은 즐거움 그 차제를 강조하는 코미디에서 코믹한 순간이라는 상황과 접목시켜 우리에게 쉽게 다가 올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코미디와 시트콤의 웃음 발생 구조와 특성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다. 먼저 코미디는 그 줄거리 상에서의 사건이나 구성 요소들을 한데 묶기 위해서 굳이 특별한 동기 부여의 규칙을 요구하지 않으며, 산만한 코믹 요소를 활용할 적절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이에 비해 시트콤은 드라마와의 혼성 장르(hybrid genre)라는 경지에서 콩트 나열식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등장 인물의 상황 속에 자기 자신의 감정 기억을 요구하는 드라마적 요소를 갖는다. 즉 시트콤은 비록 코미디에 뿌리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정통 코미디와는 달리 인물, 관계, 스토리 라인을 반전 시키는 상황에 의존해 웃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중요시 한다. 그래서 코미디와 시트콤은 특히 웃음 발생 구조와 관련된 내러티브 측면에서 그 차별성이 강조되고, 따라서 연기자의 즉흥성이나 개성 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에 의한 상황 웃음이 더둑 강조되었다. 즉 코미디가 개연성 없는 행위들을 통한 산만한 웃음을 위한 자유로운 무대라면 시트콤은 인과성의 일정한 틀과 치밀한 계산에 의한 상황 웃음을 일차적인 것으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정통 코미디의 웃음 발생과는 다른 견지에서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다.4. 시트콤의 정형성시트콤은 같은 인물과 같은 틀 속에서 매회 소재만 바뀌는 외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타 장르의 영상물에 비해 정형성이 더 강한 것으로 인식 된다. 그래서 매일 전회와 무관한 새로운 내용으로 시작하여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루리짓고 끝나는 시트콤은 매회 서사체의 완결에 관한 시청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셈제작자의 표현 방식이나 수용자의 해독과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시트콤은 어떤 것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새로운 것도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또한 실제 세계의 문제들과 동떨어진 것으로 실제 세계의 형식이나 가치의 갈등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며, 단순한 관습적 신념을 재확신기켜 주는 견지에서 문제와 해결의 공식 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형적인 정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등장 인물 성격이 현실에는 없는 가짜 인물 혹은 현실과 다른 인물 이라는 설정에서 시트콤의 시청자는 현실에서 한발 떨어진 상태로 시트콤을 수용하고 오히려 역설적인 사회적 풍자 혹은 허무주의적 풍자로 시트콤을 인식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5. 시트콤의 발전과 유형시트콤의 이야기 틀과 소재의 범위는 아직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시트콤의 소재 접근에 있어서 시트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는 크게 가족시트콤과 청춘 시트콤, 나세스 시트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난센스 시트콤의 유형은 나타나지 않고 크게 가족 시트콤과 청춘 시트콤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우선 시트콤의 발전을 알아보면 시트콤은 1940년대 이후 미국 텔레비전이 라디오를 대체하면서 인데, 기존의 라디오 코미디의 형식을 사들여 텔레비전 코미디의 성립을 기반으로 시트콤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트콤의 소재는 문화적 체계와의 관련 속에 변화하여 60년대 시골풍의 시트콤, 70년대 초기에서 중기의 사회 정치적 가족 드라마, 70년대중반의 10대 지향 시트콤, 80년대 후반 따뜻한 가족 이야기의 복귀 및 80년대 여피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시트콤이 등장 하였다. 국내에도 우리가 만든 시트콤이 선보이기 이전부터 미국에서 수입하여 방영한 몇편이 있는데, 미국 본 고장의 시트콤 반응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은 시트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유인 즉슨, 먼저 시트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시트콤이라는 장르 관습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과, 외국의 시트콤의 코미디 요소를 공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