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ort java.util.*;import java.awt.*;import java.awt.event.*; // 이벤트 처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추가import java.applet.*;public class Base extends Applet{Button Bt;TextArea txtStatus;TextField txtInput;Panel p;Random r = new Random();int guess[],dap[];int count=0;public void init(){int a,j;boolean loop;setLayout(new BorderLayout()); //보더레이아웃으로 초기화Bt = new Button("New Game");txtStatus = new TextArea();txtInput = new TextField(3);p = new Panel();Bt.addActionListener(new MyBt()); //보턴과 핸들러 연결txtInput.addKeyListener(new TextKeyHandler()); //키입력과 핸들러 연결p.add(Bt);p.add(txtInput);add(p,BorderLayout.NORTH);add(txtStatus,BorderLayout.CENTER);setBounds(100,100,300,300);setVisible(true);txtStatus.setText(""); //텍스트에어리어글지우기txtStatus.setText("새로운 게임 시작입니다"+"n"); //텍스트에어리어출력dap = new int[3];for(j=0;j
서론소설의 위기인가, 새로움인가? 최근 소설을 읽으면 이따위 의문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90년대에 들어 소설의 죽음 혹은 문학의 위기에 관한 논의가 부쩍 늘어났다. 한편에서는 이를 아예 무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여긴다. 무시하는 쪽은 대체로 문학의 위기론이 최근의 문학현실을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는 과장된 논의라는 입장속에서 문학은 원래 열악한 환경속에서 성장했던 것이므로 유독 최근에만 문학이 위기에 처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심각하게 여기는 쪽은 문학의 위기론이 현재 우리문학이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을 적절히 대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문학의 위기론에 과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문학을 위기로 까지 모는 여러 요인과 이를 냉철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우리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의 위기를 유발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중에서도 영상매체와 컴퓨터, 표절과 외설, 신세대문학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네가지 외에도 문학의 위기를 유발시키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이 네가지가 상대적으로 다른것보다 더 강력하게 문학을 위협하고 있는것 같아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특히 영상매체와 컴퓨터는 거의 문학을 전면적으로 위협한다는 생각에 조금더 심각성을 느끼며 이야기해 볼까 한다.본론1.영상매체와 컴퓨터텔레비젼과 비디오와 영화 등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매체는 대중에게 짜릿한 오락과 신속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가정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눈과 귀를 지배하고 있다는게 새삼스런 이야기가 못된다. 그때문에 이제는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영상매체의 범위안에 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신세대가 영상매체와 친숙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이들의 상당수가 어릴때 영상매체와 함께 커왔다. 그런 점에서 신세대는 부모와 스승못지않게 영상매체로 부터 세상을 배우게 되게 제공했던 많은 것을 시청자에게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대중의 접근을 더 쉽게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영상매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미 활자매체의 전반적인 위축은 예견된 사태이며 특히 활자매체의 중심인 문학도 이런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문학의 독자가 영상매체의 시청자로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또 영상매체는 그 뛰어난 여러기능으로 더욱더 활자매체를 억압해 올것이므로 문학은 영상매체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어떤 종류의 길이든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나는 독자의 이탈에 신경쓰지 않고 종전의 문학적 관습을 존중하며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무슨 대책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소극적 선택이지만 어쩌면 영상매체에 대응할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하나는 영상매체가 대중을 사로 잡는 요인을 찾아 이를 문학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락과 정보에 대한 독자의 욕구를 채울수 있는 방법을 문학에서도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욕구를 채운다는 명분아래 영상세대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이 이미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문학의 본분을 잃지 않게 위의 두가지 방법을 다 포함하고 또 독자의 발길이 문학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문학의 본 모습을 다 보여 주는 그런문학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영상매체시대속에서 그런 점을 명심하면서 힘들게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 때에 다시 문학을 위협하는 컴퓨터라는 강적이 나타났다. 컴퓨터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종이책을 지금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출판분야를 석권하였다. 컴퓨터의 발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종이책을 밀어내고 전자책을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여러권의 전자책이 출간되었고 앞으로는 이런 추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과연 전자책이 종이책을 어떤 속도로 정복할 것인지와 얼마 만큼이나 정복할지를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겠지만 그정복의 속도와 범위가 컴퓨터의 보급률,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먼 훗날 골동품이 될지라도 어떤이름과 형태의 책이든 책은 계속남는다. 이는 책의 외관은 바뀌더라도 그 내용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이와 마찬가지로 컴퓨터의 발달로 종이책으로서의 문학은 점차 줄어들더라도 어떤 이름과 양식의 문학이든 문학은 계속 남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컴퓨터가 종이책으로의 문학에는 위협적인 존재지만 문학 자체에는 위협적인 존재가 못되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새로운 전자 문학의 지원자가 될수도 있다. 이는 결국 컴퓨터가 종이책으로서의 문학을 공략하여 점령할 수는 있어도 문학의 문학의 근본적인 모습을 빼앗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영상매체가 그렇듯이 컴퓨터도 일종의 오락기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문학의 독자를 빼앗아 갈수도 있고 또 실제 그러하다. 이에 따라 컴퓨터가 문학의 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이때까지 살펴본것처럼 TV, 비디오, 영화(영상매체), 컴퓨터가 현재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문학에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과 문학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것들은 일반적으로 종래의 문학에 기여하기 보다는 해롭다. 그것들은 문학의 독자를 탈취하고 문학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기존 문학의 설자리를 좁히면서 기존 문학의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그래서 활자매체로서의 문학이 이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그 존립이 한층 더 어려울 것은 확실하다. 그런점에서 문학에 위기가 벌써 온 셈이다. 그러면 이위기를 문학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가장 좋은 길은 역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고 넓은 안목을 제공하고 아름다움의 정체를 보여주는 문학의 본질을 되새기며 그 실천에 충실하는 것이다.2. 표절근래 일부젊은 작가들과 작가지망생들이 서슴없이 표절행위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요즘들어 몇몇 거론된 작가들만 표절이 문화적 절도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그걸 알면서도 태연히 그런 짓을 하는 비열한 사람들일 뿐절하는 사람들은 또 나올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최근에 많은 이들이 표절하게된 이유를 곰곰이 살펴보고 그 대처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그 이유의 하나로 우선 작은 노력과 능력으로 성급하게 큰 명예와 돈을 얻으려는 과욕을 들수있다. 무릇 과욕이란 실수와 범죄를 낳게 마련이다. 이는 문학을하는 작가가 과욕을 버리지 않는 한, 자신의 노동력과 재능보다도 더 많은 명예와 돈을 조급하게 바라는 한, 작품놓고 작품먹는 문학적 도박이자 투기나 다름없는 표절의 유혹을 잘 뿌리 칠수 없다는 이야기이다.또하나의 이유는 컴퓨터이다. 컴퓨터는 글쓰기의 관행을 개선하면서 글쓰기의 속도를 바꾼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기계가 표절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또 컴퓨터를 악용한 기계적 표절은 그토록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컴퓨터는 언제든지 표절의 도구로 오용될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같은 기계와 기술의 시대엔 개인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데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계와 기술을 활용할줄 아는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한층 더 요구된다.표절은 문학의 생명을 위협하고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문학의 가장 큰적이다. 표절이 어떤 명분과 근거로든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면 문학에 어떤 사태가 일어날수 있는가를 한번쯤이라도 생각해본이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것이다. 따라서 이런 적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문학의 위기는 결코 사라질수 없다.3. 외설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때」와「너에게 나를 보낸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등은 하나같이 섹스를 크게 다루고 있으며 성 행위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류의 소설들뿐만아니라 여태껏 섹스를 아예 그 소재에서 배척했던 시도 이제는 그에 대한 짙은 묘사를 사양하지 않는다. 아무튼 최근 문학의 소재에서 섹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일단 우리 사회의 향락문화와 섹스산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 뿐만아니라 이런 작품들의의 소산들이다. 그것들은 본래 가능한 한 많은 독자의 주머니를 털려는 생각을 지니고 씌어졌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제 섹스가 우리 문학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도 버젓이.이와중에 일어난 사건이「즐거운 사라」사건이다. 「즐거운 사라」는 이기와 돈을 노리고 씌어지고 유포되고 선전된 철저하게 상업적인 음난물이상은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의 전반부가 특히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를 많이 선보이고 있다는 것은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계략이 매우 치밀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것이 만약 문학속에 포함될수 있다고 한다면 시중에 나돌고 있는 어지간한 외설물도 다 문학에 포함될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문학과 음란물을 구별하기가 쉬운것은 결코 아니고 또 그런 구분이란 원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둘을 구분할수 있는 일정한 기준은 있는 법이다. 아마도 작품에 나오는 언어, 주제, 구성, 그리고 작가가 그 작품을 발표하여 궁극적으로 성취하려고 하는 것따위가 그것 일것이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사건이 발생했을때 이런 점을 따지는 이는 것의 없고 작품과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만 많았다. 그래서 「즐거운 사라」와 비슷한 작품의 범람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작품이 문학이란 이름이로 계속 방치될때 문학이 서야할 진정한 자리는 좁을수 밖에 없다. 외설물은 문학의 적이지 결코 우군이수 없다. 이적이 문학의 설 자리를 마구 잡아 먹도록 내 버려 둔다면 문학의 위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말할수 있다.그렇다면 문학의 위기와 직결되는 이런 외설물의 번성을 어떻게 견제 할것인가? 문학이 섹스를 아주 취급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이는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섹스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고려할때 그에 대한 철저한 접근이 더 요구된다. 따라서 문제는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문학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다가서야 할 것이다. 필요이상으로 비속한 언어를 남발하거나 황당무계한 섹스를것이다.
1. 서론다음 글은 소박한 사람들의 서박할 수 없는 상처라는 제목으로 문학 평론가 깁정신이 쓴 글이다.『작가는 그가 속한 사회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적인 체험이 중요한 그만치 정치 사회 현실은 개인의 사고와 의식을 속박하고 지배한다. 50년대의 이범선은,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 그의 관심은 전쟁과 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개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물어보지 않고 갑자기 닥쳐왔고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작가자신이 포함된 수 많은 개인의 삶은 철저히 유린되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얼굴없는 이념이나 욕망은 소박한 개인에게는 손닿지 않고 지각할 수 없는 대상이고 신비화시켜 말하면 운명이 되지만 작가라는 문제개인에게는 끝없이 정체를 탐색하게 만드는 괴물이다. 망가뜨려진 (죽고 다치고 헤어지고 잃고 뺏긴) 삶에 대한 어이없음과 울분은 오래 오래 그를 그 문제에 천착하게 만든다. 이범선이 천작하는 개인의 삶은 이론이 정연한, 잘나고 말발있는 지식인의 삶이 아니고 순박하고 선량한 그래서 나약해보이고 바보 같은 개인의 삼이다. 큰 숨 한 번 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살며,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한다. 사람은 소박해도 그가 받은 상처는 소박한 것일 수 없다. 켤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남의 삶에 간섭하는 법이 없고 남의 것을 넘보지 않으며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사회의 근층(根層)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빠지면 국가라는 편의상의 관습은 근거를 잃는다.구체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난 이 민족의 삶의 현장은 어떠했는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정신적으로 참혹한 상처에 아파하고 있었다. 경제적 궁핍과 문화적 불모, 정신적 혼돈과 가치상실은 거리와 마을의 실업자, 걸인, 고아와 기아, 불구자, 창녀 등이 대변해 주었다. 생활의 근거를 잃고 거리로 내물린 사람들은 정상적인 지주를 잃었으니까 당연히 정통적인 도덕성과 윤리관을 따라 생활의 근거를 다시 마련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어 뺏은 적이 없으니까 내것을 남이 털고 뺏아갈 리 가 없다. 는 가치를 받들며 살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유를 모르고 가진 것을 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강탈당하면 그가 믿고 받들던 가치는 역의 논리가 되어 자신과 남을 공격하게 된다. 도둑질, 사기, 매춘, 구걸이 그런 사회에 횡행하게 되며 올바르고 명분있게 벌어서 살아야 된다는 전래의 가치는 냉소를 받는다. 그런 가치를 공격하고 냉소할 때, 남이 지닌 것은 공격하고 매도하면 그것으로 그뿐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도 가지고 있었던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하고 냉소하는 아픔과 자조를 가져오게 된다.50년대 이범선의 소설적 관심은 소박한 개인들이 입은 그 무지무지한 상처들을 아물리고 쓰다듬으며 넘어진 가치관을 바로 세워주는데 바쳐지고 있다. 상처의 실제 모습을 해부해서 낱낱이 보여주는 것도 치유의 한 방법이 된다.은 발표 당시에 상당한 주의 를 모은 바 있는데 그의 육이오 작품 중 가장 큰 목소리로 정면에서 전쟁의 상처를 조명하고 있다. 50년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런 강한 목소리의 작품이 나오는 것은 받은 상처가 깊은 그만큼 그것을 객관화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윗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한 번 적어 보았다.2.본론1) 작가소개이범선1920-1982.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진남포 상공학교를 거쳐 동국대 졸업. 1955년 단편소설 와 이《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한 그는 50년대의 암담한 시대상황을 절묘하게 묘파한 과 서정성과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는 등을 발표하면서, 강한 개성을 지닌 뛰어난 작가로 주목받으며 그의 작가적 위치를 굳혔다. 1960년 제 4회 현대문학 신인상, 1961년 제5회 동인문학상 후보상, 1970년 제 5회 월탄문학상, 1981년 대한민국예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휴머니즘과 서정성의 기조 위에 현실상황에 대한 강한 비판적 시각을 접목시키는 문학적 작업을 통해 60-70년대 한국문단의 가장 중요한 작가 인정받고 있다.2) 제목에 대하여...오발탄의 사전적인 뜻은 1잘못 쏜 탄환 2실수한 말 이다.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철호가 탄 택시 기사가 철호에게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라고 말하고 이 말을 들은 철호는 아들 구실. ∼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라는 말로 보아서 오발탄은 자기 인생의 방향을 잘못 잡고 쏘아서(잘못 쏘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 방향이야 말로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방향이다.) 동생도 잃고 아내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지극히 양심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정말 주인공이 잡아서 쏘은 삶의 방향이 정말 오발탄인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오발탄적인 삶을 살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할 방향은 과연 어느 쪽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 아닌가 한다.3) 줄거리송철호는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데 사환애에게 쫓기다 시피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간다. 집에는 동생 영호가 와 있었다. 영호는 철호에게 한 번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고 같이 한 번 잘살아 보자고 한다. 철호는 거절을 한다. 그렇게 이 날은 지나갔다.여느 때 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철호에게 경찰서로 부터 전화가 온다. 경찰서로 가니 동생이 권총강도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동생을 보내고 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철호에게 동생 명숙이 아내가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아이는 머리 부터 나와야 하는데 팔 부터 나왔다.) 명숙에게 돈을 받고(병원비)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아내는 죽어 있었고 철호는 그 길로 병원을 나가 정처 없이 걷다 이가 아파 치과에 가 이를 뽑는다. 평소 아팠던 이를 다 뽑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과다 출혈로 몸이 아파 집으로 갈려고 택시를 잡아 탄다. 택시에 탄 철호는 해방촌(집)으로 가자고 하다가 아내가 있는 S병원으로 가자고 하다가 동생이 있는 경찰서로 가자고 하고 차 안에서 쓰러 진다. 그이 멀어져 간다. 그런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와이셔츠를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른는 체 택시는 유유히 네거리를 지나간다.4) 인물송철호 :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아주 양심적인 인물이다. 적은 월급으로 식구들 을 먹여살리느라 근 십 리씩 되는 직장을 걸어 다닌다.송영호 : 철호의 남동생으로 어머니의 원수를 갑겠다고 군에 입대했다가 군에서 불구가 되어 무직자로 방황하다가 권총강도로 경찰에 잡혀 감옥살이를 한다.송명숙 : 철호의 여동생.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젊은 몸 하나로 생활고를 덜 겠다고 양공주가 된다. 심성은 착한 것 같다.송철호의 아내 : 생활고와 실의로 옛날의 화려함과 미모를 잊은 생기없고 만삭 인 아내로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된다.송철호의 어머니 : 여유있는 생활근거와 정서적 안정지역인 고향을 한꺼번에 잃 고 정신이상이 되어 계속 가자! 를 외친다. 가자! 의 대 상은 북쪽 고향이다.5) 단락 구분1.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 송철호는 사무실에서 죽치고 있다가 사환애에게 나가 달라는 투의 말을 듣고 자리에게 일어나 손을 물에 담근다. 물에서 잉크가 퍼 져 나가지만 철호는 피라 생각한다.2. 물에 나타난 철호의 얼굴 묘사. 원시인의 형상이라 생각한다.3. 집(해방촌)으로 간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의 가자! 하는 소리가 들리고 집 에는 만삭인 아내와, 딸이 아버지를 반겨 준다.4. 철호는 집 뒤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서 시내를 보다가 바위 잔등이 식어와 집으로 내려간다.5.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어머니의 가자!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어머 니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이고 분단으로 갈 수 없어 가지 못하지만 어머 니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아들을 고약하게 여긴다.6. 어머니가 왜 그러는지 철호는 이해를 하고 있음. 어머니는 육이오 사변으로 용산 일대가 눈 앞에서 폭격을 받을 때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그 때 부터 가자! 가자! 라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7. 집으로 들어가니 딸은 자고, 부인은 삼촌이 사왔다며 딸 보여 준다. 그 때 삼촌(영호)이 막 들어와 철호에게 한 번 잘살아 보자 한다.8. 동생은 대학 3학년에 군대에 갔다가 나와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해서 직업도 없 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신다.9. 철호는 꼬기꼬기 구겨진 파랑새 갑에서 답배를 꺼내 피우지만 영호는 양담배 를 피운다.10. 영호가 철호에게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고 같이 한 번 잘살아 보자고 형을 설득하려 한다.11. 철호는 주위를 한 번 돌아본다.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12. 영호가 계속 철호를 설득하려 한다.13. 철호는 아내의 과거 E여대 졸업음악회를 상상한다.14. 영호는 철호를 계속 설득하려 하고 철호는 영호의 말에 동의 하지 못한다.15. 철호의 여동생 명숙이 집으로 들어온다.16. 철호는 언젠가 퇴근길에 본 명숙을 생각한다. 명숙은 미군과 함께 지프차에 타고 있었다. 그걸 본 후부터 철호는 명숙과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17. 어머니는 계속 가자! 를 외치고 명숙은 그런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잠들었던 딸이 일어나 자기 빨간 신을 만지작 거리고, 모두 다 잠이 든다. 딸이 일어나 자기 신발을 만지작 거리다 할머니의 가자! 소리에 놀라 이불 속으로 숨는다.18.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철호에게 동생일 때문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다.19. 전에는 동생 명숙의 일로 경찰서로 몇 번 갔었다.20. 동생은,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 월급을 줄 돈 천오백만 환을 찾아 은행 앞에 대기시켰던 지프차에 싣고 막 떠나려는 차에 권총을 들고 강도 짓을 하다 잡 혔던 것이었다.21. 영호는 철호에게 몇 마디를 하고, 철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동생을 보내고 경찰이 철호에게 이것 저것을 묻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22. 경찰서를 나온 철호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니 명숙이 철호의 아내가 아이 를 낳으러 병원에 갔다고 하고 철호에게 돈(병원비)을 준다. 그 때 철호는 명 숙의 양말 뒤축의 구멍에서 명숙에 대한 오빠로서의 애정을 느끼고, 병
{중국지역문화국어국문 구 대 일『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을 읽고...중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비교적 개발되지 않았고 세계 제일의 인구 이런 것들이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진출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올해는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이해서 TV에도 중국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많이 볼 수 있고 중국에 진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은 중국에 관심이 많은 세종대학교 주영하교수가 쓴 책인데 중국음식을 주(主)로 해서 중국인들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 역시 음식의 생산과 소비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의 요점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 나갈 생각이다.1장제일 처음에 나오는 중국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는 저자가 중국식당에 가서 중국식당의 사장(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중국인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인의 특성을 잘 모르고 그저 중국인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사람과 지금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중국인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나는 중국인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만나도 말이 안 통하니...) 근처에 있는 중국산 제품은 많이 접해 봤다. 그 제품들은 이상하다 느껴질 만큼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제품에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았지만 1달 정도 쓰면 고장이 났다. 비록 이런 제품이 저가의 물건들이지만 중국물건은 왠지 고장이 잘나고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생각은 내 주위의 여러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지는 생각이다. 그래서 왠지 중국하면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 당연히 중국인들도 후진국사람처럼 생각된다. 거기에 더해서 중국은 이러한 국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야 될 것 같다.중국에는 자장면이 없을까? 제목부터가 많은 흥미를 끈다. 대답은 중국에는 국의 자장면과 달라진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책과 시장의 변화에 의해 우리나라사람들이 한국식 자장면으로 바꿨기 때문인데 예로 양파를 주원료로 썼던 자장면은 양파 값이 오르면서 감자나 당근을 넣었고 검은색이어야 자장면이고 단맛이 나야 자장면이라는 한국인의 고정된 인식은 자장에 캐러멜을 넣은 것이다. 이런 자장면은 짜장면으로 부르다가 자장면으로 바뀌게 됐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 흔한 자장면의 뜻조차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자 표기가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 이렇게 모르고 중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좋은 재료로 썼다.1949년 중국대륙에 공산정부가 수립된 후부터 다시 국교가 트인 1992년까지 중국은 서양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만 국교정상화 후 중국은 우리에게 다가왔고 중국의 여러 곳을 다녀 본 지금은 모두들 중국을 잘 안다고 자신하는 정도까지 왔다.(하지만 아직 우리는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중국을 다니고 하는 것처럼 중국인도 2000년 7월부터 우리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어 우리나라에 관광을 많이 오지만 그들의 입맛과 우리의 입맛은 너무나 다르고 그들은 대부분 침대에서 자지만 우리는 고급 호텔이 아니면 침대가 없고 침대가 놓인 여관이 있는데 이 여관의 침대는 잠 이외의 다른 용도로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2인용 침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등의 문화적인 차이로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나라 사람도 많은 돈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중국에서 많은 불편을 겪을 것이다. 서로 문화가 다르므로 어쩔 수 없는데 점점 개선해 나가야 하겠다.중국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겠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중국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오는데 적어도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기 전까지 한국인에게 현재의 중국은 중화민국 또는 자유중국 이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이다. 사실 중국이란 이름은 중국인 스스로에 의해서도 여러 가지 의미술적인 개념을 적용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의 범주는 중국보다 더 복잡하다. 한족 만을 중국인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에는 공식적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타이완의 가오산족 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엄격히 중국인 하면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홍콩, 중화인민공화국-마카오, 중화민국에 거주하는 사람과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화교 약 5천5백만까지 포함해야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중국인을 대륙중국, 타이완 중국인, 홍콩 중국인, 마카오 중국인, 각국의 화교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대륙과 타이완의 중국인은 다시 한족중국인과 소수 민족중국인으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 왜 이런 분류가 필요하냐면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을 때는 반드시 일정한 기준을 두고 분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륙 한족과 타이완 한족은 역사적 전통에서 많은 부분 동질성을 보이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베이징의 한족이 지닌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 타이베이의 한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베이징인과 상하이인의 차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그들이 처한 정치사회 체제로 인해 베이징인과 타이베이인 사이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음식과 관련된 사람들의 행위는 문화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음식을 만들과 먹고 마시는 과정에는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체계가 담겨 있다. 그래서 비록 특징적인 지역 음식이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곳에서는 전통적인 양상보다는 훨씬 더 현재적인 의미체계가 음식을 통해 소비된다. 오늘날 중국음식을 이해하는 테도 이러한 인식론적 바탕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 곧 중국음식은 대륙중국음식, 타이완 중국음식, 홍콩중국음식, 마카오중국음식, 각국 화교의 중국음식과 각국에서 자국화한 중국음식으로 개념적 구분을 해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에 대한 이해는 많은 부분에서 그 실체와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대략 다음의 두 가지로 집중된다. 하나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음식 소비에 대한 것이다. 전통이란 오늘날의 삶 속에서 일정하게 작용하는, 한 사회의 오래된 규칙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도 살아 움직이는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 불명확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재적 시점에 기준을 두고 대륙중국의 도시인이 보이는 음식 소비에 대한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이면서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오늘날의 대륙중국인이 급격하게 겪고 있는 문화변동 과정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의 음식 소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대륙중국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2장전통적인 중국의 음식소비라는 제목으로 처음에 밥과 요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단이 밥과 반찬으로 구성되지만 중국은 밥과 요리로 구성되고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이 준비되지만 중국에서는 밥과 요리는 각각 독립적으로 요리도 충분히 식사가 된다. 다른 반찬 없이도 밥 은 그 자체의 독자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런 밥 은 양자강을 기준으로 북쪽은 대체로 밀농사 지역으로 밀로 만든 음식인 국수나 찐빵, 만두를 먹고 남방에서는 벼농사를 주로 짓기 때문에 쌀밥을 주로 먹는다. 쌀밥은 반찬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남방인은 밥과 함께 두세 가지의 채소 볶음과 탕으로 구성된 식단을 갖추고 식사를 하고 이런 식단은 차리기에 번거롭게 때문에 남방인은 아침에 주로 콩가공식품인 순두부나 콩국에 튀김빵을 먹는다. 쌀죽 역시 아침식사로 대표적인 것인데 쌀죽이나 콩국을 먹을 때 습관적으로 준비되는 것이 중국의 짠지라 할 수 있는 쟝차이이다. 탄수화물의 섭취를 원활하게 돕는 짠맛의 채소 절임 음식은 중국 남방에서는 필수적인 반찬이다. 이렇듯 중국의 북방과 남방이란 생태환경적 구분은 그들의 주식 자체를 구분했다. 그러나 요즘은 북방에서도 벼농사 지역이 확대되어 쌀밥을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아울러 남방의 아침식사가 북방으로 전해지면서 순두부나 쌀죽을 먹세 가지의 요리만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정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의 발언권이 강력한 북방인 부부는 함께 직장생활을 한다는 점까지 합쳐서 가정에서의 요리를 누가 담당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구분을 두지 않는다. 전업 주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대륙중국의 가정에서는 손님을 청했거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점심과 저녁은 매우 간단하게 준비한다. 만약 손님이 집에 왔다면, 전통적인 베이징 사람인 경우는 손님에게 오랫동안 머물기를 권하는 뜻에서 국수를 대접하고 귀한 손님일 경우는 일반적으로 요릿집에서 대접한다.중국의 지역별, 연령별, 성별, 직업별로 선호하는 요리는 당연히 다른데 음식은 기후와 사람들의 체질 그리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각 지역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인하면 떠오르는 차와 술. 차는 원래는 신농의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원래 약으로 쓰였다가 나중에 음료로 되었다. 중국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차의 알칼리성 성분이 기름진 음식의 산성화를 중화시키기 때문에 중국인은 비만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이유는 중국의 수질이 나빠서이다. 이런 이유들로 차를 중국인들은 매일 마시는데 손님 접대용으로도 쓰인다. 또 차와 함께 같이 쓰이는 것이 술인데 우리와 중국의 음주문화의 차이는 우리처럼 취하게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소수 민족도 있다. 중국의 대중적인 술은 백주라고 하는 술인데 한족들이 마시던 40도 이상의 술이다. 백주 외에도 많은 술이 있고 국가에서는 매년 이들 술을 한자리에 모아 술 품평회를 개최해서 전국 5대 명주니 10대 명주니 하고 뽑는다.중국요리의 코스 순서는 찬요리에서 뜨거운 요리로 가고 손님을 초대했을 때 보통급수면 집에서 맞고 급수가 높으면 요릿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데 여기서는 작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장소와도 같은데 매우 엄격한 격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리가 끝나면 서로 잘 먹었다느니 준비한 음식이 별로 없었다느니 하고 서로 인사를 한다.중국에서의 주방장은 다.
은유법은유법: 원 관념과 보조 관념이 비교형의 부사나 어미 및 조사의 도움 없이 연결되어 의미의 전이(轉移)와 새로운 의미를 환기하는 시적(詩的)인 비유법이다.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간접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암유(暗喩)'라고도 한다.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내용을 같은 성질로써 연결시키는 방법으로서, "A(원관념)는 B(보조관념)다."의 형태로서 나타난다. 두 관념의 밀도는 직유보다 강하다. "A like B"의 형태가 직유라면, "A is B"의 형태가 은유이다.예1) 봄은 천지(天地)의 소녀, 소녀는 인생의 봄.해석 : 봄이 천지의 소녀처럼 따스하고 화사함을 비유해석 : 소녀를 인생에 있어서의 봄처럼 온화하고 밝음을 비유예2) 네가 알려준 소식은 내 마음을 찌르는 단검이다.해석 : 알려준 소식이 아주 나쁘고 충격적임을 강조(김유정의 따라지 )예3) 내 마음은 호수요해석: 내 마음이 호수가 가진 특징처럼 넓다는 것을 의미(김동명의 내 마음은 )예4) 해바라기는 엊그제 시집 온 새색시해석 : 약간 수줍어는 하지만 밝고 미소 가득한 새색시를 통해 해바라기의 밝은 특징을 강 조(이성자의 '해바라기')예5) 아이들이 떠나간 빈 교실은 썰물이 씻어간 바닷가해석 : 아이들이 떠나간 빈 교실을, 쓸쓸하고 텅 비었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순식간에 빠져 나가버리는 썰물의 바닷가에 비유(김종상의 '선생님')예6) 나는 한 마리의 어린 짐승해석 : 어린 짐승은 어미가 돌보아 주지 않으면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나약한 존재이다. 나 를 어린 짐승에 비유함으로써 나의 존재가 아주 나약함을 표현(김종길의 성탄제 )예7)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해석 : 얇고 하얀 비단으로 만든 고깔을 나비에 비유함으로써 나비의 고운 모습과 너울너울 나는 아름다움이 고깔과 같다는 것을 강조 (조지훈의 승무 )예8)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넘는데,해석 : 낯선 친구는 문맥으로 보아 소록도를 가다가 만난 나병환자들이다.(한하운의 전라도 길 )예9) 기운 썩 좋은 낯 붉은 아이들아우성치며 벼랑타고 오르는 소리성대 썩 좋은 아이들온통 산에 불지르는 함성이다.아니 온몸 속속들이시뻘겋게 달아올라이윽고 분출하는 화산이다.불타는 산 속에서 나도 불붙어고래고래 외친다.해석 : 첫 번째 밑줄의 낯 붉은 아이들의 원관념은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다. 두 번째 밑줄 의 성대 썩 좋은 아이들의 원관념은 나뭇잎들이 부대껴 나는 소리이다. 세 번째 밑 줄의 분출하는 화산의 원관념은 단풍이 절정에 달한 산의 빛깔을 의미한다. 네 번째 의 불타는 산의 원관념은 단풍으로 물든 산이다.(홍윤기의 단풍 )예10)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 (風化作用)하는백골을 들여다보며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나를 쫓는 개일 게다.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해석: 첫 번째 밑줄의 백골의 원관념은 자신을 비하하는 말로써 일제에 치하에 잡힌 소극 적인 자신이고 두 번째 밑줄의 원관념은 밀폐된 공간이다. 세 번째 밑줄의 다른 고향 은 일제치하를 벗어난 이상적인 세계이다.(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예11)눈을 감으면어린 때 선생님이 걸어오신다,회초리를 드시고.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낙타는 항상 추억한다.- 옛날에, 옛날에-낙타는 어린 때 선생님처럼 늙었다.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내가 여읜 동심(童心)의 옛이야기가여기 저기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해석 : 밑줄 모두가 동일한 뜻이다. 낙타=선생님=나(이한직의 낙타 )예12)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해석 : 고양이의 털과 눈, 입술과 수염에 각각 봄의 이미지를 대입시키는 수법으로 봄의 향 기, 불길, 졸음, 생기를 표현하고 있다.(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 )예13)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해석 : 첫 번째 밑줄의 소리없는 아우성은 깃발을 역설한 것이다. 두 번째 밑줄과 세 번째 밑줄의 원관념은 모두 깃발이다.(유치환의 깃발 )예14)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해석 : 첫 번째 밑줄은 꽃이 떨어짐을 비유한 말이다. 두 번째 밑줄은 이별에 대한 슬픈 마 음이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이형기의 낙화 )예15) 여울에 몰린 은어떼.비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달무리가 비잉빙 돈다.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래에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백장미 밭에공작이 취했다.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강강술래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기폭(旗幅)이 찢어진다.갈대가 스러진다.강강술래.강강술래.해석: 첫 번째 밑줄은 한가위 밤에 춤을추려고 모인 소녀들이다. 두 번째 밑줄은 소녀들이 손을잡고 동그랗게 천천히 도는 모습이다. 세 번째 밑줄은 춤에 도취해서 흥이 고조 된 상태이다. 네 번째 밑줄은 격렬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 다섯 번째 밑줄은 춤이 절정에 이른 상태이고, 소녀들이 지쳐서 주저 않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