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국 ( 英 國 )- 목 차 -1. 개관2. 영국의 자연환경(1) 기후(2) 식물.동물(3) 거주유형3. 영국 국민(1) 민족과 인종 및 언어(2) 종교4. 영국의 경제(1) 소득과 재정(2) 영국의 산업(3) 농업.임업.어업(4) 광업,공업 및 에너지자원(5) 금융(6) 무역(7) 교통5. 영국의 정치.사회(1) 정부(2) 국방(3) 교육(4) 보건.사회복지(5) 외교6. 영국의 문화(1) 문화와 생활상(2) 생활수준(3) 예술(4) 스포츠7. 우리나라와의 관계1. 개관영국 英國 United Kingdom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통상 영국으로 지칭되는 잉글랜드(England)는 그레이트브리튼 (U.K. 또는 Britain이라는 약어를 사용)의 일부 지역이며, 실제로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 북아일랜드의 4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 유럽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국 해협과 북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떨어져있다. 인접국가로 남쪽에 프랑스와 동쪽의 네덜란드, 덴마크가 있다. 영국의 섬 중 가장 큰 그레이트브리튼은 섬의 거의 2/3를 차지하는 남쪽의 잉글랜드와 섬의 1/3에 해당하는 북쪽의 스코틀랜드 그리고 서쪽의 웨일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작은섬과 3080㎢에 달하는 내륙 수자원을 포함한다. 북위 49~61? 수도는 런던이고 면적은 244,786㎢이다. 영국의 인구는 59,561,000 명이다.2. 영국의 자연환경영국은 군도로 이루어져 지형이 다채로우며 자연적인 유산도 다양하다.영국의 면적은 섬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남쪽의 잉글랜드와 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북쪽의 스코틀랜드, 그리고 서쪽의 웨일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얼스터라고도 불리는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총면적은 24만 2500km²로서 한반도의 약 1.1배에 해당하며, 인구는 약 5916만명이다. 지역엔 지금도 앵글로 색슨 족의 자손이 살고 있으며, 잉글랜드라는 지명은 이들 종족의 이름에서 비롯된다.앵글로색슨족이 지배하던 시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이다. 577년 그레고리 교황은 영국의 선교를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를 파견하였고, 8세기 이후 영국 전 지역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귀속되었고, 왕들은 로마 교회의 제도와 조직 등을 받아들였다.영국은 783년부터 덴마크 바이킹 족의 침략에 시달리게 된다. 그때 앵글로 색슨 족은 몇몇 작은 나라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는데 바이킹의 침략을 계기로 단결하였고 단결된 영국의 지도자로 나선 이가 바로 전설적인 알프레드 대왕이다. 이로써 영국 역사에 처음으로 나라다운 나라 즉 '영국 왕국'이 태어났고, 이것이 앵글로 색슨 족의 첫 통일 국가이다.★ 인종 및 언어영국은 다민족국가이다. 가장 비중이 높은 주민과 언어는 잉글랜드인과 영어이다. 민족별 구성은 잉글랜드계 81.5%, 스코틀랜드계 9.6%, 아일랜드계 2.4%, 웨일스계 1.9%, 얼스터계 1.8% 등이다. 영어는 14세기에 영국이 유럽대륙과 로마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을 분명히 했을 때부터 국어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합병된 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에서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교활동·상용어(商用語)로도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영어 이외의 언어로서 웨일스어·스코틀랜드어·아일랜드어가 있다. 모두 인도유럽어족의 켈트어계에 속하며, 웨일스어는 잉글랜드계 켈트어, 스코틀랜드어는 스코틀랜드계 게일어, 아일랜드어는 아일랜드계 게일어이다. 웨일스어는 1891년 53%의 웨일스인이 사용하고 있었으나, 1971년에는 21%(54만 2000명)로 감소하였다. 지금도 북서부 시골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웨일스어협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1967년의 <웨일스어법>에 따라 공용어로서 영어와 대등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971년 인구의 약 2%인 8800명이 스코틀랜드어를 사용하였다.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on (2005 est.) 네덜란드(2) 영국의 산업영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서비스분야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제조업은 2003년 기준으로 총부가가치(gross value-added)에서 21%에서 15%로 크게 축소된 것으로 조사되었고, 지난 10여년간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한 Top-10 산업은 건설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비스업종이며, 특히 10개 중 6개 업종이 중개업(tradable service)이다. 제조업 중에서 최대의 종업원을 가진 기계공업은 무역면에서도 수출총액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문이다. 자동차공업에서는 일본·독일과 함께 굴지의 수출국이며, 그 중심은 코번트리·버밍엄·옥스퍼드·런던 주변·리버풀 등이다. 자동차 다음으로는 트랙터·항공기·원동기·공작기계·산업기계가 생산·수출 양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화학공업에서는 합성염료·화학제품·약제·화장품 등이 주요 수출품이며, 생산의 중심은 런던과 머지강 유역이다. 일찍이 영국산업을 대표한 섬유공업은 크게 후퇴하였다. 스토크온트렌트의 요업(窯業), 셰필드의 날붙이공업, 미들랜드의 피혁공업, 템스강 유역의 제지업, 클라이드강·타인강·웨어강 각 유역의 조선업 등이 국제적으로 유명하다.(3) 농업.임업.어업? 농장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고도로 기계화 되어있다. 경작지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나 정부의 농업 지원정책들로 인해 사시사철 농산물이 자라는 경작지는 늘어가고 있다.전체 농업경영 중 그레이트 브리튼섬에서는 약 60%, 북아일랜드에서는 거의 전부가 자작경영이다. 주요농산물은 밀 보리 감자 사탕무 등이고, 가축으로는 소, 송아지, 돼지, 닭, 오리. 양 등이있다. 최근에는 높은 생산성으로 인하여 식량수요의 약 2/3를 자급자족하지만 1997~2001년까지 5년간 영국의 농가소득은 거의 75% 줄었고 2000, 2001년에 전업 농민 중 약 3분의 1에 달하는 15만 명이 농업을 등졌다. 2001년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수천 마리의 돼지· PTE(포르투갈 에스쿠도), ESP(스페인 페세타), GRD(그리스 드라크마)* EMU=유럽 연합 통화 통합을 위한 협약입니다.* 유럽연합 가맹국 중 유로화 미사용국가(EMU 미가입 국가)-영국(GBP,영국 파운드) : 파운드화에 대한 긍지, 외환위기-스웨덴(SEK, 스웨덴 크로나), : 안정적인 자국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덴마크(DKK, 덴마크 크로나) : 안정적인 자국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그리스 : 조건 미달* 주요 유럽 국가 중 유럽연합 미가입국가, 유로화 미사용국가-CHF(스위스 프랑)-NOK(노르웨이 크로나)* 2004년 가입 확정 국가(총10개국), 2004년 5월 11일부로-체코, 헝가리,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몰타, 키프로스(6) 무역영국은 무역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영국은 18세기에 세계 최초의 공업국가로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랭커셔 면공업에 제니 방적기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산업혁명이 있었다. 영국의 면공업은 원료 대부분을 미국과 인도에서 수입하였는데, 총수입액 가운데 목화가 20∼30%를 차지하였다. 한편 면사·면제품 수출은 총 수출액의 40∼50%를 차지했으며, 영국의 면제품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영국의 면공업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영국 지위를 지탱한 바탕이 되었다. 또한 제철공업은 1840년대에 유럽 및 미국으로 철도자재를 수출하면서 주요 산업이 되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확립 기부터 영국은 이미 무역의 존형 공업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원료를 외국에 의존함으로써 무역수지의 만성적인 적자를 낳고 있었으나, 해운업 발달에 따른 운임수입, 무역신용에 의한 서비스수입, 자본수출을 통한 이자수입 등 무역외수지의 대폭적인 흑자로 무역수지의 적자를 메워 나갔다.영국은 전통적으로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지만, 세계시장에서의 지위는 영국경제가 한계점에 달한 것과 때를 맞추어 19세기 말엽부터 저하하기 시작하였다. 런던은 세계금융의 중심으나 실제로는 각군 대신(大臣)이 대행한다. 미·소 양국 다음으로 영국은 1954년부터 핵무기 개발과 각종 미사일 계획의 추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으며, 이와 함께 병원(兵員) 삭감방침이 취해지고 병역제도에도 변경이 있었다. 1955년 의무병역제도는 그대로 두었으나 연령은 18세에서 19세로 높였으며, 1960년 징병제가 폐지되고 지원병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에 병력도 삭감되었다.서독에 배치된 군비를 축소하여 그 경비를 서독에 분담하게 하였으며, 말레이시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싱가포르 기지를 해체하는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이먼즈타운 기지를 버리고 지중해의 키프로스 기지도 대폭 축소하는 등 재편성에 주력하였다.1998년 7월 영국 국방성은 무기 삭감, 작전 행동 재검토 등 영국군의 새로운 근대화를 위한 각종 조치를 공약했다. 영국은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와 집단방위 체제를 통해 주 위협에 대처하며, 세계평화와 안전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2004년 국방비는 490억 달러이고, 2004년 총병력은 육군 116,760명, 해군 40,630명, 공군 48,500명이다.(3) 교육영국의 교육과학부 장관은 대개 내각의 구성원이며, 공립학교의 경우에 교육은 무료로 실시되며, 5~16세는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학교 질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영국에서도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이 오랜 숙제로 남아 있다. 일반 교육이 끝나면 기술,상업 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게 된다. 영국에는 공립학교 외에도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학교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학생들의 수업료로 운영되는 450여개의 사립학교이며 이중 절반은 여학교이다. 사립학교는 학생 수준, 교육의 질이 공립학교에 비해 매우 높으나, 학비가 상당히 비싸고, 사립학교 입학 시에는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18~20세 사이의 청소년 중 약 30%가 대학교에 진학하며, 학비는 대학보조금위원
(1) 9편 中 기이(紀異) 제1① 에피소드 : 고조선 (古朝鮮)② 내용요약< 단군왕검, 아사달에 조선을 세우다 >단군왕검이 계셔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환웅의 강림(降臨)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고 천부인 3개를 주어 보내어 세상을 다스리게 했고,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신단수 밑에 내려와서 여러 신과 인간의 360여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세계를 다스렸다.< 환웅과 웅녀의 결혼과 단군의 탄생 >이 때 곰과 범이 같은 굴에 살고 있었는데 인간이 되기를 원했고, 21일을 기휘한 곰은 여 자의 몸을 얻었으나 범은 얻지 못하였다. 환웅은 임시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결혼하 고 아들을 낳았는데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 단군의 건국과 단군조선의 역사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일컬었다.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단군 은 곧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1천9백8살에 산신이 되었다.< 조선과 한군현 (漢郡縣) >당서 배구전에는 고려는 본래 고죽국이었는데 주나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다.한나라가 세 군을 나누어 두고 현토.낙랑.대방이라 하였다.③ 나의생각고조선과 단군 환웅과 웅녀에 대해서는 익히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고, 흥미 있는 부분 이였다. 처음으로 삼국유사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1천9백8살까지 살 수 있는 것 자체도재미있고, 여러 가지 바람과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과 또 인간의 360여가지나 되는 일 을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부분이 흥미 있고 부럽기까지 했다. 신이하고 예전 에도 믿지는 않았고 지금도 믿지는 않지만, 이런 설화적 요소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나건국과정을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2) 9편 中 탑상(塔像) 제4① 에피소드 : 황룡사의 구층탑(皇龍寺 九層塔)② 내용요약< 자장, 문수보살에 감응되다 >신라 선덕왕 즉위 5년에 자장법사가 문수보살에 감응하니 문수보살이 말하기를 “너희 국왕은 이미 불기를 받았고, 다문비구가 나라 안에 있어 임금과 신하가 편안하고 만민 이 화평하다.” 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문수보살은 보이지 않고, 자장법사는 피눈물을 흘리며 물러갔다.< 신인(神人), 자장에게 황룡사 구층탑을 세울 것을 권하다 >자장이 신인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말갈, 남쪽으로 왜인, 고구려.백제 두 나 라가 번갈아 변경을 침범합니다.” 신인이 말하기를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어도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나라가 모해코자 하니 고향에 돌아가 황룡사 안에 9층탑을 이룩하 면 이웃나라는 항복해오고 9한이 조공하여 나라 길이 태평할 것이고, 탑을 세운 뒤 팔관 회를 베풀고 죄인을 놓아주면 외적이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는 문득 형체를 숨겨 나타내지 않았다.< 신라,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초청하여 9층탑을 세우다 >자장법사가 본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탑을 세울 일을 아뢰자 왕은 보물과 비단으로써 백제 에 장인을 청하고 아비지라는 장인이 명을 받고 와서 건축하였다, 처음 절의 기둥을 세우 던 날 본국 백제가 멸망하는 형상을 꿈꾸고 마음에 의심이 생겨 일손을 멈추었지만 늙은 승려와 장사 한 사람이 금전문으로부터 나와서 바로 기둥을 세우고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잘못을 뉘우치고 탑을 완성시켰다.< 구층탑 각 층의 진압 대상 >해동의 이름난 학가 안홍의 동도성립기에 보면 “신라 제 27대 여왕은 도는 있으나 위엄 이 없어서 9한이 침범하였고,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의 침해를 가히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탐라), 5층은 응유(백제), 6층은 말갈, 7층은 단국(거란), 8층은 여적(여진), 9층은 예맥(고구려)이다.< 구층탑의 중수 내력 >국사 및 절의 옛 기록에는 “선덕왕대 정관19년 을묘에 탑이 처음으로 완성되고 여러 차 례의 벼락을 맞아 여섯 번이나 중수를 하였지만, 고종16년 무술 겨울에는 몽고의 침략으 로 탑과 절과 장육불상과 불전 모두가 타버렸다.③ 나의생각이 부분에서는 신선이나 어떤 사람이 의미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 사라졌다. 이 부분에 관심이 간다. 뜻있는 말을 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신기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비범 한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탑을 통하여 외부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염 원을 담는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나에게는 별로 특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도 힘든 일 이 있으면 기도를 하는데, 이런 것은 불교뿐 아니라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묵 주나 염주를 끼고 다니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3) 9편 中 의해(義解) 제5① 에피소드 : 원효는 구속을 받지 않다② 내용요약< 원효, 밤나무 밑에서 태어나다 >원효는 압량군 남쪽 불지촌 북쪽 밤나무골 사라수 아래에서 탄생했다. 그 어머니가 아기 를 배어 달이 찼는데 마침 이 골짜기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게 되었지만 너무 급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속에 누워 있었으므로 이 나무를 사라수라하고 열매또한 여느 것과는 달랐으므로 사라율이라고 일컫는다.< 원효의 본적과 압량군에 대한 찬자의 고증 >성사는 출가 후 그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아 초개사라 하고 사라수 나무 곁에 절을 세 우고 사라사라 했다. 인덕 2년 사이에 문무왕이 상주와 하주의 땅을 나누어 삽량주를 두 었으니 하주는 창녕군이고 압량군은 하주의 속현이고 상주는 지금의 상주이다. 불지촌은 자인현에 속했으니 곧 압량군에서 나누어진 곳이다.< 원효,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얻다 >성사는 어머니가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었고, 해산하려 할 때는 5색 구름이 땅을 엎었다. 성사는 태어나면서 총명하고 기이하여 스승에게 배우지 않았 고, 성사의 노래를 태종이 듣고는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으려고 하는 말이다. 나라에 인물이 있으면 그 이로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요석궁 에 과부 공주가 있었는데 원효는 초청받은 후 일부러 물속에 떨어져 옷을 적시고는 대궐 에 묵게 되었고 그 후 공주는 과연 아이를 배어 설총을 낳았다. 설총은 슬기롭고 명민하 여 신라 열사람의 현인 중 하나이다.< 원효, 거사를 자처하고 무애가를 지어 불교를 홍보하다 >원효가 이미 계를 범하여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 사라 일컬었다. 가난한 자들과 무지몽매한 무리들로 하여 부처의 이름을 알게 하고, 모 두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하였으니 원효의 교화야말로 컸던 것이다. 스스로 원효라고 일컬은 것은 모두 부처님의 광명이 처음으로 빛난다는 뜻이다.< 화엄경 주석과 삼매경소 >분황사에 살면서 화엄경의 주석을 지었는데 노상에서 임금의 조서를 받아 삼매경의 주석 서를 지었다.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놓아두었으므로 이를 각승이라고 했다.< 설총, 유골을 부수어 소상을 만들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설총은 유해를 부수어 진용을 빚어 만들어 분황사에 모시고 슬픈 뜻 을 표시했다. 설총이 그때 옆에서 예배하니 소상이 문득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으므로 지 금까지도 여전히 돌아본 채로 있다.③ 나의생각불교관적 입장에서 적은 글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 황룡사에 관한 글에서도 불교적 관점에서 적은듯 하였는데 화엄경이나 원효 설총에 관한 것 역시 불교적인 관점에서 적 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역시 신라 중심의 서술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여기도 원효가 태어난 것과 관련하여 태몽과 오색구름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에서 비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고, 역시 신비로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국사 책에서만 보던 내용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까지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좋은 것 같다. 이제 삼국유사에 대해서 말하라 면 삼국유사를 잘 모르는 주변사람들에게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4) 9편 中 피은(避隱) 제8① 에피소드 : 신충이 벼슬을 버리다② 내용요약< 신충, 노래로 잣나무를 시들게 하다 >효성왕이 잠저에 있을 때 신충과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다가 말하기를 “ 내가 만약 그 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와 같을 것이다.” 하였는데 효성이 즉위하여 공신에게 상을 주었 는데 신충을 잊어버리고 넣지 않아 신충은 원망하여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더니 나무 가 갑자기 시들어버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살펴본 후 노래를 보며 크게 놀라 가깝게 지 내던 사람을 거의 잊을 뻔 했구나 하며 신충에게 벼슬을 주니 잣나무가 되살아났다.< 신충, 출가하여 경덕왕을 위해 단속사를 세우다 >효성왕의 아우 경덕왕 22년 계묘에 신충은 벼슬을 그만두고 왕이 두 번이나 불러도 나오 지 않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왕을 위한 단속사를 세우고 거기에 살며 대왕의 복을 빌 기를 원했으므로 왕이 허락했다. 금당의 후벽에 임금의 진영을 모셔 두었는데 이것이 왕 의 복을 빌기 위한 것이다.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REPORT-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가정폭력의 정의2. 가정폭력의 원인3. 가정폭력의 종류4. 다른 폭력과의 차이점 (가정폭력의 특성)5. 가정폭력의 유형과 실태6. 통계 자료7. 가정폭력 발생의 순환 과정8.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9. 후유증10. 아내 학대에 대한 현행 사회 정책 및 프로그램11. 해결책 및 대안12. 사회복지적 차원에서의 전략13. 사례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와는 반대로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가 바로 가정폭력이다. 이미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현대의 가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정폭력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고, 더욱 다양한 종류의 가정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1조에서는 그 원인과 종류, 해결방안 등에 대해서 조사하였다.Ⅱ. 본론1. 가정폭력의 정의 ( 법적 정의 )가정폭력방지법에서의 가정폭력이라 함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하며 가정구성원 사이의 모든 폭력을 포괄하고 있다. 즉,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폭력, 형제간의 폭력, 아내의 남편에 대한 폭력 등 가족간의 모든 폭력을 망라한다. 가정폭력의 범주는 직접적인 폭행, 상해, 유기, 명예훼손, 협박, 감금, 체포, 학대, 아동혹사 등과 아울러 심한욕설과 같은 언어적 폭력(폭언) 및 의심과 같은 정신적 폭력도 포함된다.2. 가정폭력의 원인① 생물학적 요인공격적 성향을 증가시키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가 초래되는 경우 폭력행동이 증가할 수 있다. 유전적인 폭력성, 간질발작뇌졸중, 교통사고로 인한 두부손상,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등 생물학적인 요인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② 심리적 요인1) 성격장애: 반사회적 인격 장애, 충동조절 장애, 가학적이고 의존적, 미숙한 성격, 분노처리가 행동화되는 성격ⅰ) 개인이 갖고 있는 공격적 특성은 어린 아동기부터 양육과정과 사회화과정을 통하여 형성력은 자녀 혹은 친정식구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4.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게 되면 신체적 손상은 물론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며, 폭력에 대한 공포와 학습된 무력감에 젖어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게 된다.5. 자기의 존엄성이 약해지기 때문에 독립할 정신적 능력을 결여하고 폭력적인 가정에 안주하게 된다.6. 가정폭력에 피해자는 폭력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다른 범죄로 서 이를 해결하려 한다.5. 가정폭력의 유형과 실태① 부부 폭력: 우리나라 부부 중 34.1%가 1년에 적어도 한 차례이상 부부 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2배 이상 재미교포보다 1.5배 홍콩 일본보다 2~3배에 달하는 발생률이다.* 매 맞는 아내 : 아내 폭력은 가족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도 장기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다. 구타나 칼, 흉기로 위협하고 찌르거나 때리는 경우 등 아내의 폭력이 매우 잔인한 것을 알 수 있다.* 매 맞는 남편: 남성들을 위축시키는 IMF, 빡빡해진 가정 등으로 매 맞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다.② 아동에 대한 폭력 : 자녀체벌(72%, 근친강간3.7%) 학교 폭력 못지않게 신체적 학대와 성적학대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97.6%부모가 자녀를 구타한 경험이 있으며 조사 대상 부모의 75%가 자신들이 부모로부터 구타당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 부모들은 거의 자녀를 학대한 것으로 나타났다.③ 노인에 대한 폭력 : 노인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지위와 권위를 상실하고 경제력이 떨어지면서 여러 종류의 폭력을 당하게 되나 수치심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잘 알리지 않는다. 학대 받고 자살하는 노인의 증가 현상이 가정 안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은폐되고 있으며 부모 자식간의 기본적인 도덕윤리 관계를 새롭게 회복해야 할 위기에 봉착해 있다.④ 며느리 학대 : 며느리에게 심한 욕설이나, 구타를 하는 등의 사례가 많다.6. 통계 자료① 여성 긴급전화 상담내용의 유형폭력이 적을 것으로 생각되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성직자에서부터 직종,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에게 엄청난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치과의사의 경우가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가해자들은 모든 대인관계에서 폭력적이다?대부분의 가해자들은 가정에서만 폭력적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폭력적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그들은 폭력 대신에 보다 나은 다른 방법을 선택하도록 교육을 받고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가정폭력은 일시적으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다?가정폭력은 지속적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는 폭력행사를 통해 피해자를 통제하려 하며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가정폭력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운명이므로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피해자들은 가정폭력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운명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배우면 충분히 폭력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② 아동폭력* 귀한 자식일수록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우리 사회는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한국여성의전화의 통계에 의하면 아이에 대한 구타 시작 시기가 훈육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구타가 훈육과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이며 아이들은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길러야 한다?이런 잘못된 사회관습은, 남자아이의 폭력행위를 씩씩하게 자라는 것으로 보며 여자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그릇된 양육태도를 낳게 했다. 자녀에게 가해진 신체적 폭력은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성장 발달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며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한 자녀타난다.⑤ 복수심과 또 다른 폭력 : 계속 매를 맞던 아내가 술취해 잠든 남편을 살해하기도 한다.⑥ 자녀에 대한 영향 : 부부가 폭력을 행사하면 자녀도 상처받아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무력감 거부감 죄의식 분노를 느끼게 된다. 두통, 복통, 천식, 야뇨증, 불면증, 말더듬도 나타난다. 우울증, 학교공포증 혹은 거부증, 비행 행동 학습장애를 보이거나 자살하기도 한다.10. 아내 학대에 대한 현행 사회 정책 및 프로그램① 공공 부문 - 중앙◈ 법제처 :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 제정가정 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여성 발전 기본법1) 보건복지부ⅰ) 가족 계획 협회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개편해 내년부터 기존의 가족 계획과 모자 보건 사 업 외에 장애인과 노인, 청소년, 가정 폭력 피해자에 대한 복지사업 추진ⅱ) 사회복지 기관에서 직업훈련을 시킨 뒤 취업을 알선하고 장기 보호가 필요한 경우 관련 보호시설에 위탁, 수용시키는 사업을 추진ⅲ) 가정 폭력 예방을 위한 다양한 계획과 홍보, 가정 폭력 피해자 긴급 피난처 설치2) 법무부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선정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에 노력- 여성 정책 담당관실 신설3) 경찰청 : 각종 여성들의 성폭력 및 가정 폭력에 대한 전문 여성 상담 부서 운영② 공공 부문 - 지방1) 가정 폭력 상담소, 보호소설치 ;가정 폭력인 여성과 그 자녀를 일정 기간 수용해 보호하는 모자 보호시설2) 요보호 여성 상담 전화 ;성폭력 피해 여성, 학대받는 여성, 가정 폭력, 윤락, 가출 등으로 상담하고 요보호 여성 보호3) 여성 회관 신문 ;여성의 교양 교육, 가정 복지 상담, 자원 봉사 활동, 여성의 권익 보호 등의 자료를 홍보하여 여성의 사회 참여와 건전한 가정 육성을 위한 정보 제공③ 민간 부문1) 한국 여성 단체 연합여성 관련 단체 및 여성 전용 사이트를 연결해 놓았으며 여성을 위한 각종 상담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 정책에 관한 가족, 여아, 교육, 여성학 등 주제별 논문이나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경제적, 직업적 기능을 회복하는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② 미시적 차원1) 예방적 차원가정 폭력에게 어릴 때부터 폭력의 심각성과 범죄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가정 내에서 폭력을 용납하거나 미화시키는 일이 없어야한다. 특히 폭력을 다룬 영화나 책을 자녀가 보지 못하도록 하는 부모의 적절한 행동이 필요하고 가정 내에서 자녀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해서는 안되며 상습적인 아동 구타는 물론 잘못에 대한 처벌도 아동이 폭력을 학습하는 기회가 되므로 처벌은 삼가야 한다.2) 치료적 차원가정 폭력 피해자는 구타당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고 가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신고하기를 꺼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참고 은폐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피해자 스스로도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은 방관적 자세만 취할게 아니라 가정 폭력 폭력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할 때 피해자를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킨다던가 상처를 입었을 경우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적극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③ 장기적 대책1) 남녀 평등주부가 남편으로부터 습관적인 구타를 당하더라도 쉽게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육아와 생계문제 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에게도 남성이 활동하는 만큼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무엇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벌이가 넉넉할 수 있다면 남편도 아내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남녀평등, 여성해방이 사회 어느 곳에서나 실현되어야 한다.2)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가정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회, 국가적인 문제로서 우리 세대가 이를 근절시키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기에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절대 폭력은 허용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가정폭력을 관대하게 보아 오던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3) 보호시설 확보피해자가 어느 기관 (행정기관이나 사회단체)에 보호를 요청하면 즉시 이들에게 숙식을 책임지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
삼국사기 논찬 분석Ⅰ. 신라본기 中 선덕왕사론(史論) : 신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씨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천자가 아니라 복희를 도와 9주를 다스렸을 뿐이다. 여치와 무조 같은 이에 이르러서는 어리고 나약한 임금을 만나 조정에 임하여 천자처럼 정치를 행하였으나, 역사서에서는 공공연하게 왕이라 일컫지 않고 단지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나 측천황후(則天皇后) 무씨(武氏)라고 썼다. 하늘의 이치로 말하면 양(陽)은 굳세고 음(陰)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거늘 어찌 늙은 할멈이 안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 하였고, 역경(易經)에 『파리한 돼지가 껑충껑충 뛰려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① 무엇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가 ??신라의 여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고황후 여씨, 측천황후 무씨와 같은 여자 왕위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② 그 평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신라의 여자 왕위자의 즉위에 대하여 적고 있다.평가 내용은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어지럽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하였다.여자는 비천한 존재로써 평가되고 있다.③ 논찬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논찬자는 서경과 역경의 내용을 비유하여 여왕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서경과 역경은 조선의 사서삼경과 중국의 사서오경 중에도 속해있는 것으로,유교(儒敎)의 기본 경전이다. 그러므로 유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여왕에 대해 비판한 것 이 아닌가 한다.Ⅱ. 신라본기 中 신무왕사론(史論) : 구양자(歐陽子)가 논하였다.『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은공(隱公)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고 선공(宣公)은 자적(子赤)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된 사람이며, 정(鄭)나라 여공(公)은 세자(世子) 홀(忽)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고 위(衛)나라 공손표(公孫剽)는 그의 임금을 내쫓고 스스로 임금이 된 사람이다. 성인(聖人)이 춘추(春秋)에서 그들이 임금이 된 것을 하나도 잘라 내버리지 않은 것은 각각 그 사실을 전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위의 네 임금의 죄는 사람들의 귀를 가릴 수 없는 것이 되어, 사람들이 그런 악한 짓을 그치기를 바랬던 것이다.』신라의 언승(彦昇)은 애장왕을 죽이고 임금 자리에 올랐고,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우징(祐徵)은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지금 그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것 또한 춘추(春秋)의 뜻이다.① 무엇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가 ??왕을 죽이거나, 왕을 내쫓고 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의 정당성과 뜻.② 그 평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노나라, 정나라, 위나라를 예시로 왕을 죽이거나, 내쫓고 왕이 된 자는 춘추에 기록하여 후세사람들로 하여금 알고, 깨닫도록 하게 하였다. 신라의 언승과 김명, 우징의 이야기를 기록 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③ 논찬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중국의 춘추는 공자가 편수한책으로 역대제후들의 부정불의를 고발하고 심판한 책이다.신라에서도 先王을 시해하고 즉위한 사실을 기록함은 춘추의 뜻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하 였다. 유교적인 사상의 전제하에 서술 하였다. 그리고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꾸짖는 것 또한 유교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Ⅲ. 백제본기 中 개루왕사론(史論) :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거복(僕)이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계문자(季文子)가 말하였다. “자기 임금에게 예절이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섬기기를 마치 효자가 부모를 봉양함과 같이 하고, 자기 임금에게 무례한 자를 보면 그를 죽이기를 마치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과 같이 한다. 거복을 보니 착한 데다 뜻을 두지 않고 흉한 짓[凶德]만 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를 쫓아 버려야 한다.” 지금 길선도 간악한 역적인 데 백제 왕이 받아들여 숨겼으니 이는 「역적을 비호하여 숨기는[掩賊爲藏] 것이라고 하겠다. 이로 말미암아 이웃 나라와의 화호를 잃고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시달리게 하였으니 심히 밝지 못하였다.① 무엇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가 ??개루왕(군신)의 행동에 대한 평가② 그 평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신라의 역적인 길선을 백제왕이 받아들임은, 외교상으로 좋지 않고 그로인해 전쟁으로 하여금 백성과 나라를 위태롭게 하였다.③ 논찬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역적을 쫓지 않고 받아들임은, 백성과 나라를 위태롭게 하였다. 춘추시대의 계문자의말을 인용하여 개루왕을 비판하였고, 이 논찬 역시 춘추시대의 계문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유교적인 가치관이 밑바탕이 된 것 같다.Ⅳ. 열전 中 김유신사론(史論) :당의 이 강이 헌종에게 말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고, 충성스럽고 정직한 자를 등용하며, 대신과 대화할 때는 공경스럽고 믿음직하게 하여 소인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며, 어진 사람과 어울리는 경우에는 친하게 지내되 예절을 갖추어 불초한 자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소서." 성실하도다, 이 말이여! 이는 실로 임금이 갖추어야 할 요긴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상서]에서 말했다. "어진 이에게 일을 맡길 때는 의심하지 말며, 간사한 자를 버릴 때도 의심하지 말라."신라가 유신을 대우한 것을 보면 친근히 하여 간격을 두지 않았고, 임무를 맡길 때도 의심하지 않았으니, 그의 계책은 실행되고 그의 말은 채용되어, 그로 하여금 자신의 계책이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원망을 품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가히 육오동몽의 길함[六五童蒙之吉]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므로 유신은 자신의 뜻한 바를 행할 수 있어 중국과 협력하여 삼국을 합쳐서 한 나라로 만들었고, 능히 공명으로써 일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비록 을지문덕의 지략과 장 보고의 의용이 있었어도 중국의 서적이 없었다면 그들에 대한 사적이 없어져서 후세에 알려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신 같은 사람은 온 나라 사람들의 칭송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대부가 그를 아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거니와 꼴 베는 아이나 소 먹이는 아이에 이르기까지도 능히 그를 알고 있으니, 그 위인이 틀림없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① 무엇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가 ??김유신에 대한 평가와, 칭송됨의 정당성② 그 평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김유신이 이룬 모든 업적과 공명으로써 일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상서의 “어진 이에 게 일을 맡길 때는 의심하지 말며, 간사한 자를 버릴 때도 의심하지말라.” 는 구절에 따 른 군신환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청소년 직장체험(청소년 연수프로그램) 소감문전미경3번째로 해보는 직장체험 프로그램이였다. 이전 2번 모두 세무서에서 일을 해보아서 건강협회라는곳이 더 기대가 되고 어떤일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친동생이 이제 성인이 되어서 같은곳에서 연수를 한다는것이 더 좋았던것 같다. 직장체험프로그램이 그런것 같다. 그 직장의 일을 배운다기 보다는 사회생활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학생과 학교가 아닌 더 큰 사회로의 적응과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책임과 업무수행, 그리고 세무서와 건강관리협회는 일종의 서비스직이기에 손님에게 친절한 안내와 상세하고 전문적인 설명까지.. 이번 건강관리협회에서 일하면서 느낀점이 참 많지만 크게 3가지이다. 서비스와 업무 그리고 건강이다.첫째로 서비스에 대해 느낀점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비스직종이 아닌 다른꿈은 생각해본적이 없을만큼 항상 장래희망은 서비스직과 관련된 가이드나 안내, 호텔리어 같은것이였다. 건강검진을 해주는 기관도 역시 의료서비스를 하는 전문기관이기에 더 자신이 있었는데, 하면서 의외로 힘든점이 많았다. 연수생들이 각 층의 부서에 배치가 되어서 각기 다른 일을 배웠는데 나는 건강 증진부의 소속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시는 손님들이 엑스선검사나 초음파 등의 검사시에는 속옷도 벗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탈의를 도와드렸다. 대부분의 손님은 탈의실에서 검사종목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차트를 보고 어떻게 옷을 갈아입어야하는지 각각의 안내를 하고 또 몸이 불편하시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은 특별히 챙겨야하였지만 하루에 몇백명이 모여드는 연말에는 남녀 사물함이 합하여 100개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같이 일하던 연수생들이 모두 다른업무를 재쳐두고 같이 일을 하여도, 민원이 생기고 일을 하는 사람도 손님도 모두 조금은 지치고 힘들었던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일하면서도 즐겁기보다는 힘들고 피곤함을 더 느끼는 스스로에 대해 약간은 실망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업무쯤은 어려운것도 아니라는 생각, 이런 쉽고 즐거운 일은 또 할수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두 번째로는 업무와 사람에 대해 느낀점이다.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것 같다. 항상 일찍나와서 청소하고 열심히 일하는 연수생도 있지만 항상 지각하는 연수생도 있었다. 그런것 처럼 직원중에서도 열심히 일하시고 바쁠때에도 많은 전화 안내와 문서작성, 그리고 일반 안내와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개인전화처럼 회사 전화로 통화를 오래 하시는 등.. 항상 일은 안한다는 느낌을 갖게하는 분들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할때는 같은 단체와 같은 부서안에 있는 동료들은 서로를 도와가면서 일해야된다고 알고 있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직책이 조금 높다는 이유에서인지 개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는것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직책과 선배, 연고라는 높은벽이 존재한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일 하는 사람만 하고 노는사람은 내 멋대로라는 생각은 정말 보기만해도 모든 연수생이 짜증이 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사회에 나가서 직책이 높아져도 이런 사람은 본받지 말아야겠구나 하는것을 느꼈고 또 열심히 일하고 존중받을수 있는 사회인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