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아교육심리Piajet 인지이론전조작기,구체적조작기- 서열화 -2003.03.19위영희교수님께2002512020오혜미지난 14일, 나는 Piajet 인지이론에 근거한 서열화 실험을 해보기 위해 그 대상을 찾아서 가까운 어린이집을 찾았다. 그곳에는 만 3세 반에서 5세 반까지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중 만 3세를 전 조작기 아동으로 만 5세를 구체적 조작기에 있는 아동으로 설정하여 실험을 할 수 있었다.1. 실험미리 준비한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에 여러 가지 평면도형과 길이를 각기 다르게 잘라놓은 종이테이프 그리고 구체적 조작기에 있는 아동에게 실험할 각의 수를 달리한 도형까지 모두 꺼내 보이고 가장 쉬운 단계로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어려운 단계까지 나아가는 실험을 시작했다.- 준비 1. 서로 길이가 다른 종이 테이프2. 모두 크기가 다른 삼각형, 사각형, 원 모양의 평면도형3. 각(모서리)의 개수가 다른 평면도형과 다면체(입체도형)- 전조작기 - 임수민 (만 4세)먼저 길이가 각기 다른 종이테이프를 순서에 상관없이 책상 위에 섞어놓고 가장 짧은 것부터 차례대로 점점 긴 것까지 놓아보라고 말한다.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짧아 보이는 것부터 놓고 하나씩 대 보면서 길은 것을 옆에다 차례대로 놓아간다. 다 놓은 뒤 여러 개를 놓고 차례대로 살펴보았을 때 순서가 틀린 것을 바로잡아서 다시 고친다. 다 했는지 확인한 후에 살펴보니 조금은 쉬웠던지 모두 짧은 것에서 긴 것까지 잘 놓았다. 이번엔 크기가 다른 원들을 쥐어주고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차례대로 놓아보라고 했다. 다시 여기저기 펼쳐보더니 작은 것부터 큰 순서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잘 놓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각형과 삼각형 모양의 평면 도형을 주고는 크기에 순서대로 나열하도록 하였다. 한가지 모양의 평면도형들은 거의 정확하게 오래 걸리지 않고 배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원과 사각형 그리고 삼각형을 모두 섞어서 크기대로 나열해보도록 하였다. 대충 작은 것과 큰 것은 구분해서 놓는 반면에 다른 모양의 도형들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조금 어려워 보였다. 세 가지 도형을 한번에 나열하는 것은 무리인 듯 하여 두 가지만 가지고 나열해보도록 하였다. 그래도 아이가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여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도형과 도형을 서로 겹쳐서 보여주며 뒤에 놓았을 때 보이는 도형이 더 큰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이것저것 포개어보더니 비슷한 크기대로 늘어놓고는 흥미를 잃었는지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에 어려운 과제를 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이제 그만 가서 친구들과 놀아도 좋다고 하며 아이를 보냈다.- 구체적 조작기 - 조재현 (만 6세)같은 방법으로 진행하면서 좀 전에 전 조작기 아동이 다소 힘들어하던 다른 모양에 평면도형을 주고는 크기대로 나열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는 듯 해서 역시 같은 방법으로 크기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일러준 대로 서로 포개어 비교해 보더니 이내 크기대로 배열할 수 있었다. 이번엔 각의 개수가 각기 다른 평면도형들을 펼쳐 보이고 각의 개수가 가장 적은 것부터 가장 많은 순서대로 놓아보라고 했다. 잠시 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각기 많아지는 순서대로 잘 배열하였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난이도를 높이고자 입체도형을 보여주고는 각각 면에 개수와 모서리가 어느 것이 더 많은지 적은 것에서 큰 순서대로 배열해보라고 하였다. 갑자기 부피가 큰 물건이 나오자 아이는 당황했는지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간단해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세어보기 시작했다. 정육면체까지는 정확하게 세더니 그 다음부터는 대충 복잡해 보이는 것부터 큰 것이라고 놓고 그 사이는 이리저리 끼워 맞추어 보다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늘어놓고 다했다고 했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거의 아이가 늘어놓은 순서가 맞았다. 마지막으로 교실 중에 어느 교실이 가장 크고 어느 교실이 가장 작은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여기저기 뛰어 돌아다니더니 자기네 반이 가장 크다고 했고 주변에 있던 아이들 중에 몇 명이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한 차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2. 관찰Piajet가 말한 전 조작기의 특징 중에는 언어의 사용과 상징적 형태로의 사고능력을 점차적으로 발달시킨다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상징은 보통 가장하기 또는 흉내내기로 아동이 처음 접하게 되는데 아직 언어적인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유아는 종종 행위적 상징을 사용한다. 실제로 기관이나 가정에서 보면 전 조작기에 아동들은 주로 역할놀이 등을 통해서 보여지는 상징적인 행동이 표현에 주를 이룬다고 해도 무방하리 만큼 자주 볼 수 있다. 실험을 하는 도중에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내가 종이 테이프를 보고 '무엇에 쓰일까?' 하고 물었을 때 아이는 테이프를 길게 잡고 글씨를 쓰는 척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연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모서리나 문 끝에 갖다 대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길이를 재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내가 본 여자아이는 자유놀이 시간에 대부분을 역할놀이영역에서 보낼 만큼 가장 재밌고 흥미로워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한번씩은 다 만들어 보았던 실전화기도 이러한 상징놀이에 한 종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의 이해 마지막 레포트를 제출하려고 가까운 갤러리를 찾았다. 처음 듣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생각보다 작은 규모와 몇 점 안 되는 작품들에 미술에 그다지 아는 것이 없는 나는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고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렇게 그냥 실내를 한바퀴를 돌아보고 나온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끼고 왔다고 써야할지 고민을 하다가 올 여름 배낭여행을 다녀온 기억을 살려 그나마 강의시간에 혹은 교과서에서 스치며 한번이라도 봤을만한 비교적 친숙한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던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사실 여행 중에 광장과 화려한 건물, 박물관을 포함해 가장 많이 갔던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유럽엔 정말 미술관이 많다. 오르세 미술관이 있는 파리만 해도 내가 이름만 들어본 곳이 스무 곳도 넘는다. 그래서 바쁜 일정에 쫓겨 하루에 몇 군데를 갔던 적도 있다.그 중에 영국에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 로댕 미술관과 함께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오르세 미술관이다. 그중 반가운 그림들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오르세 미술관은 정확히 말하자면 주로 1848년 2월 혁명에서부터 1905년경까지 19세기 후반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시기에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사진과 영화가 발명되었고 정신사적으로는 마르크스, 다 윈, 니체, 프로이드등이 이전의 세계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소개하였다 오르세는 파리 시내 중심지의 열차 종착역으로 건설되었다.파리 시 외곽에는 오스테를리치역 이 있었다. 이 역을 쓰고있던 오를레 앙 철도회사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기 직전인 1871년 파리 코뮌 때 화재로 소실된 센느 강변의 오르세 궁 부지를 국가로부터 불하 받는다 오르세 역은 부유층 승객과 주위의 경관이나 고급스러운 시가지와의 조화를 고려해 안락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을 갖추어야 했다오르세 역 건설 계획은 에밀 베나르, 루시엥 마뉴, 빅토르 랄루든 격자형 이중 천장을 설치했다. 외관의 화려함을 위해 역과 호텔을 연결하여 기차가 들어오는 중앙 홀 양쪽의 철골 박 공을 가렸다.벨샤르가와 릴가에 걸쳐 있는 이 호텔은 370개와 여러 개의 살롱을 보유한 아카데믹한 건물의 정수라 볼 수 있다. 화장 회 반죽과 석조 물들로 가려진 철골구조는 혀를 내두르게 할만한 대담한 기술이었다. 랄루는 세부적 장식을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의뢰했다. 오르세 역은 2년 남짓 지었고 1900년 7월 14일에 개관되었다.그 후 철도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오르세 역은 1939년에 폐쇄된다. 프랑스 철도 공사가 떠난 후 랄루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르세 역은 여러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는 장소로 변해갔다. 예를 들어 1945년에는 송환된 포로들을 맞이하는 수용소로 ,였고,1962년에는 오손 웰즈의 영화 『심판』의 촬영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이역에 19세기 후반기의 예술품들을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을 설치하려는 구상은 1973년 프랑스 박물관 국의 청원에 귀를 기울인 퐁피두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오르세 역은 역사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초대형 호텔을 건설하려는 재개발 계획에 의해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세기말`의 타락한 취향을 상징하는 기괴한 건물로취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1975년에 발타르 가 지은 레알 시장 건물이 헐려버린 것과는 달리 오르세 역은 다행히도 당시 고조되기 시작한 19세기에 대한 관심 덕분에 기사 회생하게 되었다.이러한 계획은 지스 카르 데스텡 대통령 정부가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78년 계획 실행을 전담하는 공사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결국 1981년 프랑수와 미테랑 정부에 들어와서도 이 계획은 중요성을 인정 받게 되어 추진되었다. 1979년과1980년에 ACT 건축 팀과 이탈리아 건축가인 가에 아룰렌티에 의해 지금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었다.중앙 홀을 차지하고 있던 철로와 육로 및 플랫폼을 철거하여 궁룡을 넓히고연 채광을 위해 이전의 호텔과 역의 지붕으로 쓰이던 천장의 창을 활용하고 있다. 또 기존의 대합실들은 전시실로 개조되어 그대로 쓰이고 있고 호텔, 레스토랑 역시 박물관 레스토랑으로 활용되고있다.현재 오르세 미술관은 랄루가 만든 기둥 및 석가래 와 장식 석고 물 등 모든 부속물들을 오르세 역 원형과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여 새로운 구조를 갖게 된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원 건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부르고뉴의 석재 차단 벽의 밝은 색 짙은 고동색과 청색의 금속제 등 마감 재의 재질과 색깔에 통일성을 부여한 결과 박물관 실내 건축은 많은 전시실이 야기할 수 있는 혼란을 피해 전시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 으로 불리기도 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현대 미술 학의 살아있는 교과서로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공간일 뿐 아니라 공연 교육 토론의 장소로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기능 문화 공간이다.다음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점을 꼽아보라면{▶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 빨래 너는 여인▶ 1887년, 41 * 32.5cm / 캔버스에 유채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붓터치로 볼 때에는 쇠라나 모네의 후기 작품들을 연상시키디고 한다. 희미한 인물들의 윤곽선은 모녀간의 애정을 한층 깊게 표현하고 있다. 점묘법의 실험이기도 했던 이 그림은 온화한 색조의 조화와 밝은 햇살의 표현 등을 통해 일상의 한 장면을 거의 시적인 수준으로 까지 승화시키고 있다.풀밭위에 앉아 있는 왼쪽의 어린아이의 머리는 금빛으로 빛나고 있고, 완만한 대각선을 화면을 가로지르는 길은 마치 깨끗하게 빨아 널은 침대보처럼 희고 포근하기만 하다. 모든 날카로운 선이 제거된 둥글 둥글한 오브제들은 화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어린 시절에 대한 형언할 수 로 인상주의의 역사와 뒤얽힌 것이었다."고 말한 그는 인상주의자 그룹의 모든 전시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유일한 고집센 작가였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파리 1840 - 지베르니 1926)▶ 노르망디 농가▶ 1863년경 65x81.5cm / 캔버스에 유채모네는 빛과 색을 탐구하는 회화 사조를 지칭하는 인상주의라는 말의 기원이 될 풍경「인상, 떠오르는 태양」을 그리게 된다. 구속적인 유파와 전통적인 기법을 초월하여 빛에 따라 오묘하게 드러나는 풍경의 순간적인 인상을 자유로운 색채를 통해 놀랍도록 생생히 표현해낸「인상, 떠오르는 태양」은 그야말로 당시 화풍을 집약해 보여준 것이었다.「노르망디 농가」는 모네가 「인상, 떠오르는 태양」을 그리기 전 10년 전에 그린 것으로 어두운 색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아직 사실주의적 재현을 지향하던 젊은 시절의 모네의 화풍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잠시나마 정말 이런 곳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노르망디 농가」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안정된 구도 위에 차분한 색채를 통해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풍경의 소재는 농가의 일상적인 풍경이며 농가의 인물과 동물들 나무들의 윤곽은 분명하고 견고한 형상으로 표현되어있다. 아직 「인상 떠오르는태양」의 모네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가라앉은 색체 속에 유난히 밝은 빛을 받고 있는 농가의 벽돌은 분명10년 후의 빛과 색을 예시하는 듯하다.{▶ 에드가 드가 ( Edgar Degas 1834 - 1917)▶ 발레연습▶ 1874년 65x81cm / 캔버스에 유채유화,파스텔 수채화 목탄화 등 드가는 거의 모든 테크닉에 능했던 화가이다. 드가는 이러한 천체적인 테크닉을 이용해 주로 순간적인 동작과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크로키하듯 포착해 내곤 했다. 원근법과 화면의 중앙을 비워 두는 구도를 통해 화가가 매료되었던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드러난다.고동색톤의을 배경으로 인공 조명의 제한된 빛이 인물을 비쳐 주면서 음영의 대비가 강조되며 미세한 동작 하스아 밀레( 그뤼쉬Gruchy 1814 - Barbizon1875)▶ 이삭줍기▶ 1857년 83x111cm / 캔버스유채밀레의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밀레가 [이삭줍기]를 [살롱]에 발표했을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의 주제가 농부들의 힘들고 고된 일상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했다. 극빈한 하층 계급과 귀족, 신흥 부르주아 사회 계층의 불균형 속에 밀레는 부유하고 권력적인 지식층보다는 반복적인 노동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농부의 삶을 화폭에 담고자 한 것이다. 당시 시대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 아래 많은 리얼리스트들이 사회 비판적 성향의 그림을 그렸으나 밀레 가 그린 농촌 풍경들은 이러한 비판보다는 성스럽고 종교적인 숭고미가 드러난다.[이삭줍기]는 수확 물이 풍성하게 쌓인 넓은 대지에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세 농촌의 여인들을 표현했다. 이 여인들은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는 황금 들판 속에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형태와 색상으로 부각되어 있다. 왼편의 두 여인은 자신들의 노동에 묵묵히 몰두하고 있고, 오른쪽 여인은 약간 떨어져 허리를 반쯤 세우고 있다. 세 여인의 일련의 정지된 듯한 동작은 모노톤 배경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 듯 마치 성서의 한 장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조화롭고 안정된 구도화 갈색 톤의 자연적인 색채 속에서 부드러운 빨강, 파랑, 노랑의 대비는 고전적인 성화를 연상시킨다.[이삭줍기]에서 밀레 는 가난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의 노동을 성스러운 침묵과 평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여인들의 사실적인 거칠고 남루한 복장과 빛과 덩어리로 표현된 뒷 배경은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샘▶ 1868년.128X97cm,캔버스에 유채쿠르베는 누드에 관심을 가졌고 즐겨 그렸다. 은 마네의 나 와 마찬가지로 제 2제정 당시의 관습적인 아카데미 화풍에 대한 일대 반항이었다 여인의 육체는 고대로부터 모든 화가와 조각가의 영원한 모델이었고 그 상징적 의미는 언제나 그리스, 로마했다.
"재산관리는 남편…이혼 때 아파트는 부인 것"2002년 11월 10일 일요일 오후 6:35:00매일경제이혼 때 재산배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신세대예비부부 사이에서 결혼 전에 미리 부부의 재산배분을 계약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내달 중순 결혼 일정을 잡아놓고 있는 예비부부 K씨(30)와 L씨(27)는"결혼과 동시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은 공동으로 남편이 관리하고, 혹시라도 이혼을 할 경우 아파트를 부인이 갖는다"는 약정서를 체결했다. 이들은 결혼과 동시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약정서를 법원에 등기할 계획이다.결혼도 하기 전부터 미리 이혼 후 재산분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정서에 다소 어긋나지만 요즘 신세대 부부들은 이 같은 부부재산계약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민법 829조에는 부부가 혼인 후 재산을 누가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이혼할 경우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혼 전에 미리 약정해 법원에 등기하는 '부부재산계약 제도'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결혼도 하기 전에 재산분배를 논하는 것이 꺼림직 한데다 약정서 작성과 등기소 제출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만만치 않아 이 제도를 이용한 사람이 적었다.그런데 지난 한해 동안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만 4만90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최근 들어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이혼 배우자에게 나눠줘야 할 재산을 내놓지 않거나 빼돌리는 사례도 크게 늘면서 부부재산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K씨(50)의 경우 신혼 초부터 외도를 일삼더니 결국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남편이 재산을 다 빼돌린 뒤 이혼을 요구해왔다. K씨는 이혼을 한다고 해도 자신은 물론 남편명의로 된 재산도 없어 재산분할은 커녕 위자료도 챙기지 못할 처지다.대구에 사는 Y씨(56)의 경우는 부인이 재산을 빼돌린 사례다. Y씨는97년 외환 위기 때 명예퇴직을 한 뒤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아내의 구박 때문에 얼마 전부터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다. Y씨는 이혼조건으로 부인에게 5000만원은 소송 중간에 드러난 재산상태에 따라 재산을 분할하기 때문에 배우자중 한쪽이 재산을 빼돌리면 다른 배우자는 손해를 봐야 하는 헛점이 있다.부부재산제는 결혼전의 남녀가 미리 체결하는 '부부재산계약제'와 법정부부재산제인 '별산제' 등 두 종류가 있다. 대부분 재산계약을 하고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별산제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별산제는 '명의를 가진 사람이 소유권자이고 명의가 없는 사람은 재산권이 없는 자'로 판단하므로 명의 없는 배우자는 억울한 사정이 되기 쉽다.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91년 시행된 '재산분할 청구권 제도'다. 그렇지만 이 역시 혼인 중 취득한 재산 명의자가배우자 동의 없이 재산을 처분하는 일이 빈번하고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낮게 평가하는 전통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분할을 회피하는 이들이 많은데 숨겨놓은 재산을 일괄적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이혼소송의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명숙 변호사는 "재산은닉 행위를 저지하거나 재산 분할때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토록 하는 조치가 절실하다"며 "아직도 부부 중 한쪽이 재산을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부재산계약제 등을 통해 평상시에도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칠순노인 ‘못말리는’ 여성편력 2002년 11월 18일 월요일 오후 7:46:35경향신문70대 중반의 할머니가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성 편력’이 끊이지 않는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승소, 52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ㅊ씨(74·여)는 1950년 남편 ㄱ씨(75)와 결혼해 자식 7명을 낳았지만 공무원인 남편으로부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등의 무시를 받으면서도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ㄱ씨는 또 지난 68년 외도로 생긴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등재시킨 데 이어 몇년 뒤 그 아들을 집에 데려와 ㅊ씨에게 양육하도록 했다.ㄱ씨는 이어 지난 99년 레스토랑을ㅊ씨는 지난해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이를 담당한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재판장 최병철 부장판사)는 18일 “두 사람은 이혼하고 ㄱ씨는 ㅊ씨에게 위자료 5천만원과 재산을 분할해 4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ㄱ씨가 학력을 이유로 무시하는 언행을 자주 하고 다른 여자와 교제를 지속해 ㅊ씨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는 등 가정을 파탄시킨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정성엽기자 jungsy@kyunghyang.com〉"호화생활 못한다고 남편 무시한 아내 위자료 지급하라"2002년 10월 21일 월요일 오후 4:17:44매일경제외환위기 여파로 그 이전처럼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기 어렵게 되자 남편을 무시, 가출을 하고 이혼소송까지 제기한 아내에게 이혼의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왔다.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판사 황정규)는 21일 주부 황모씨(49)가 남편 방모씨(54)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소송을 기각하고 방씨가 맞제기한 이혼청구를 받아들여 "두 사람은 이혼하고, 아내 황씨는 남편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밝혔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씨는 남편 방씨가 유명학원 강사로 고수입을 올릴 때 스포츠센터를 이용하고 골프를 즐기면서 고가의 외제품을 사들이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기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출판사 경영이 실패하고 수입이 줄게되자 남편을 무시. 냉대하다 가출하는 등 가정 파탄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재판부는 또 "방씨가 부부싸움 중 아내를 폭행한 잘못도 인정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곤란한 입장에 처한 남편을 배려하지 않아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은 명백하므로 아내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70년대 말 결혼한 황씨는 학원강의와 과외지도 등 남편의 고수입으로 외제품 구입, 골프. 수영 등을 다니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학원가가 급격히 위축됨에 따라 생활이 어려워지자 갈등을 겪다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맞서 남편 방씨도 소송을 제기했다.신혼여행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인천지법 가사부(재판장 박희문 부장판사)는 17일 신부 A(32)씨가 신랑 B(33)씨 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사실혼 파기)에서 "이들 부부가 사실혼 관계는 아니 지만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을 보아 두 사람은 약혼단계를 지나 사실 혼 에 이른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신랑은 사실혼 관계 부당파기 책임에 따라 위자료로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이들 신혼 부부는 지난 1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으나 신랑이 "사랑하지도 않는데 결혼식을 올렸고,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만두자"고 말 해 '첫날밤 의식'도 치르지 않은 채 돌아와 별거에 들어갔고, 신랑은 주위에 이를 공 공연히 알렸으며 신부는 지난 2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changsun@yna.co.kr"시댁식구 불화 못 견뎌" 이혼소송 30대 여성 승소2001년 11월 14일 수요일 오후 6:13중앙일보시댁의 심각한 가정불화를 견디지 못한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 이겼다.1999년 중소기업 사장인 남편(39)과 결혼한 A씨(31)는 시부모와 함께 서울 한남동 시댁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시부모는 서로 10년 넘도록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다.남편도 시아버지와 사이가 나빴다. 급기야 남편과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이들 모자는 A씨가 퇴근하는 시아버지의 가방을 받아줬다는 이유로 화를 낸 것은 물론 시아버지 사무실에 아들을 데려갔다며 A씨를 친정으로 쫓아내기도 했다.A씨는 남편에게 시부모끼리 화해시키라고 권유하고 화해가 안되면 분가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이에 A씨는 예단금 등 1억4천여만원 상당을 돌려받기로 하고 이혼에 합의했다.그러나 남편은 예단금으로 산 고급 외제 승용차를 가져가라며 돈을 주지 않았다.A씨는 지난해 남편을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1억5천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남편도 A씨가 시댁에서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이유 등으로 맞소송을 이유는 부모의 불화를 방치하고 이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쫓아낸 남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2002년 12월 1일 일요일 오전 9:53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미국의 권위 있는 법조단체가 그 동안의 시대변화를 반영해 가족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할 것을 건의하고 나섰다고 뉴욕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타임스는 판사들과 저명한 변호사들, 법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미국법학연구소 가 10년간의 연구 끝에 동거부부 또는 동성부부에 대해서도 헤어진 후 생활양육비를 받을 권리와 재산 분할권을 부여토록 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이 연구소의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정적 동반자(domestic partners)'의 개념을 도입해 전통적인 가정의 부부와 같은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 `가정적 동반자'란 "결혼하지 않은 동성 또는 이성의 두 사람으로, 상당한 기간 에 걸쳐 기본적인 주거를 같이하고 배우자로서 생활을 같이 해온 경우"라고 연구소 의 보고서는 설명했다.보고서는 `가정적 동반자의 한쪽 당사자에 대해서도 헤어진 후 전통적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생활양육비를 받을 권리와 재산 분할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보고서는 또 이러한 생활양육비와 분배될 재산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한쪽 배우자의 부정이 고려요인이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예를 들어 부인이 간통을 저질렀다고 해서 생활양육비를 덜 받도록 한다거나 남편이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생활양육비를 내도록 한다면 부당하다는 것이다.보고서는 이와 함께 자녀의 양육권이나 방문권을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을 "해당 자녀와 최소한 2년 이상 생활하면서 보수 없이 이들을 돌보는 일의 대부분을 행해온 `사실상의 부모'"로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이 경우 자녀가 딸린 동성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해당 자녀를 부모처럼 돌봐온 사람도 양육권이나 방문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지금까지 배우자의 결별시 생활양육비를 정하는 기준
* 유아교육심리Gesell의 성숙주의2003.03.12위영희 교수님2002512020오혜미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Stanley Hall(1844~1924)은 Dawin의 진화론에 Rousseau의 자연주의 철학을 접목시켜서 성숙 이론을 발전시켰다. 성숙 이론에서는 어린이의 발달이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하니라 내적인 생물학적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성숙이론은 Stanley Hall의 제자인 Gesell(1880~1961)에 의해 더욱 체계화 되었다. Gesell은 어린이의 신체 행동을 관찰한 결과, 어린이의 신경계가 충분히 성숙되어 준비가 완료된 후에야 앉고 걷기를 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즉, 어린이에게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준비도를 결정짓는 내적 생물학적 시간표가 있으며 이 시간표에 따라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출생 후에도 발달의 방향은 특수한 순서로 진행되도록 성숙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지시 받으며 아이들은 성장함에 따라 특정한 순서로 자신들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달시켜 간다.이런 예가 바로 아이들이 항상 서기전에 앉으며 걷기 전에 서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들은 신경계의 성장과 함께 발달하는데 아이의 신경계의 성장은 유전자에 의해 중재된다.물론, 아동들은 발달하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모두가 같은 연령에 서고 걷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순서를 거쳐 발달한다. 더욱이 Gesell 에 견해에 의하면 성장속도에 있어서의 개인차도 주로 내적 유기체에 의해 통제된다고 보고 있다.출생후의 발달에 있어서 성숙은 외적 환경의 영향과는 구분된다. 특히 성숙은 교육이나 연습의 효과와는 대조된다. 어떤 기술이 성숙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기술을 성숙상의 스케줄보다 앞서 가르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즉, 아동의 신경계가 충분히 성숙하게 되어 준비가 완료된 후에야 앉고 걷고 말하게 될 것이다.그렇지만 Gesell 이 환경을 경시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유기체에게 손상이 있을 때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환경조건은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주의에 자극이나 양육에 있어서 매우 낙후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대로 발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동의 운동 발달이나 또는 사회성 발달은 적어도 더 많은 자극이 제공되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아동들의 발달보다 뒤지게 된다. 그러나 환경요인이 성장을 유지, 변화, 수정 할 수는 있지만 발달의 기본적인 진행과정을 생성 하지는 못한다. 즉, 이 진행과정들은 내적 성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Gesell 의 중요한 연구중 대부분은 초기 운동 발달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는 성숙이 성장의 모든 면을 좌우한다고 믿었다.Gesell 의 양육에 대한 철학을 살펴보자면 그는 아동양육이 성숙법칙에 내현적이 지혜를 인식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선입관에 의한 어떤 패턴도 강요해서는 안되며 아동 자신으로부터 단서를 얻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예를 들어, 수유문제에 있어서 그는 어떤 미리 결정된 계획에 따라 수유하는 것에 반대하여 아기가 준비되었음을 나타낼 때 수유하는 요구수유를 강력히 옹호하였다.또한 그는 부모에게는 아동에 대한 직관적인 민감성 이외에도 발달의 경향과 순서에 관한 이론적이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발달이 안정과 불안정 시기를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부모로 하여금 인내와 이해를 갖도록 한다고 말했다.이외에도 상호적 교류, 기능적 비대칭, 자기 규제 등의 원리와 성숙의 패턴, 개성과 문화적인 측면에서까지도 Gesell 은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성숙이론을 주장하였다.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Gesell 의 성숙이론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대개의 심리학자들이 성숙의 역할은 인정하지만 훈육이나 학습을 그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환경이 단순히 내적 패턴화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더 큰 역할을 하며 환경도 역시 행동을 구조화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아동은 운동 신경의 성숙이 어느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공을 던지거나 피아노 치는 것 등을 배울 수 없지만 훈육과 강화를 통하여 이러한 행동패턴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으로 인해 가장 열렬한 학습가 까지도 내적 성숙 과정에 관하여 어느 정도 주목하고 있다.Gesell이 가장 빈번히 비 판 받는 이유는 그가 연령규준을 제시한 방식 때문이다. Gesell이 만든 규준은 너무 획일적이어서 어떤 연령에서도 있을 수 있는 변이 정도에 관해서는 생각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더욱이 그가 만든 규준은 중류층 가정에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다른 문화 환경에서는 완벽하게 적용되지 못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Gesell 의 규준은 특히 유아의 운동발달에 관해서는 대단한 가치가 있다. 그의 관찰은 너무나도 주의 깊고 세밀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소아과 의사나 교육자 그리고 아동을 다루는 심리학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연극의 이해를 배우며 연극뿐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에 대해서 또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냥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학을 통해 연극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내용을 살펴가며 비극론에 대해 더욱 가까이 가보자.먼저 전체적인 시학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면 Aristotle이 B.C. 367년 비극의 고장 아테네로 처음 왔을 때는 비록 Aeschylus, Sophocles, Euripides 등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들이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 있었으나 사실 이들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사망했다. 그들은 극작품들은 계속 공연되고 있었다. 그는 이것들을 관극 하였으며, 또 이 공연들의 관극을 바탕으로 삼아 「시학」을 펴냈다.「시학」에서 Aristotle은 비극의 본질을 기술했다. Aristotle의 「시학」은 인류 최초의 문학비평서요 비극론이므로 오늘날 어느 비평가도, G. Saintsbury가 이미 피력한 바 있는 '비평가의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를 빠뜨리면 반드시 큰 해를 입게된다.'처럼 이것을 연구함이 없이 비평가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Aristotle은 그의 스승인 Plato의 논의에서 스승과는 상반되는 의견으로 가장 훌륭한 형태의 그리스 비극을 염두에 두면서 시, 특히 비극을 호평했다. 그리고 그는 극이 두려움과 같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등 위생적이고 치료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시를 옹호했다. 또한 그는 예술은 본시 사물의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감각적인 외향을 구현할 뿐이라고 말했다.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의 시학은 모두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는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은 모방의 주요 형식으로서의 비극과 서사시와 희극에 관한 예비적 고찰이고 두 번째는 비극의 정의와 그 구성 법칙이며 세 번째는 서사시의 구성법칙이다. 이것을 다시 내용별로 정리 해 비극과 서사시의 비교론(23,24,26장)등으로 나누어 묶을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대략 6장에서 14장에 이르는 비극론이다. 이는 진지함과 엄숙성을 지녀야 하며 동시에 일정한 길이를 지니고, 그 자체로 완결된 생명성을 갖는 행위의 모방이 바로 비극이라 정의하고, 연민과 공포에 의한 비극적 정화라는 유명한 말들로 비극의 원리와 효용을 풀이하고 있다.그럼 이제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 대해서 알아보자."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한 행동과,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애련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르 행한다."1. 궁극적 목적비극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인간이 국가의 테두리에서 살아 나갈 때 국가의 질서와 규율, 법을 준수하고 지키며 행동하는 인간이며, 그것이 곧 인간의 생명을 약속한다고 선동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비극이 궁극적으로 요구하고 의도하는 것은 결코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변혁적인 실천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닌 수동적이며 체제 순응적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불평등은 정당하기에 뛰어넘고 생각하는 행동자인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와 신분적 기능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그들에게 주어진 불평등을 만족케하고 헌법에 준수하도록 할 것인가가 비극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법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그러나 법의 제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만족스럽고 불평등하며 불공정한 것이다. 여기서 모반이 도모되고 소요와 폭동이 일어나며 혁명의 기운이 발생되는 것이다. 법을 만든 자는 이 법을 불평, 불만으로 충만한 자에게 어떻게 준수토록 하며 혁명의 기운을 분쇄해 버릴 수 있을까? 바로 이를 실현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며 이에 시학이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2. 감정이입감정이입이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을 우리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연극에서는 감정이입이 중요시된다. 관객은 등장인물을 가지화하여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행동으로써 사건 진행을 도맡아 해버리는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자신이 소유한 사고능력과 행동력을 온전히 등장인물에게 위임하게 되며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관객은 자신이 울고 웃는자와 같이 웃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감정이입이 끔찍스런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예술작품에서 그에게 예술로 제시된 것을 실생활과 현실로써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브레히트도 결코 감정이입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순수한 인식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에는 우호적이었으며 단지 '감상적인 흥청거림'을 멀리하였던 것이다. 시학에서 나타나는 감정이입적 감정들은 연민과 공포이다. 비극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감정이입은 관객이 비극적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에 위치할 수 있도록 환기되고 있는 것이다.3.카타르시스카타르시스야말로 비극의 정치적 의의가 있는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본질이다. 예술은 자연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나가면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과정에서 일탈할 때에 창조법칙을 형상화함으로써 자연히 목적을 이루도록 한다고 이미 앞에서 말한바가 있다. 자연의 일부로써 인간도 일정한 목적을 향한 운동체이다. 국가의 집단생활, 행복, 덕, 저의 등등으로 만일 인간이 이와같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 비극이 여기에 끼여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가 작용됨으로써 비로소 성사된다. 카타르시스느 고정작용이며 정화작용이다. 비극체계의 중심이자 본질이며, 목적인 카타르시스를 향해 비극의 모든 구성들은 일목요연하게 짜여져 있으며 결합되어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이입을 아주 위험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또 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나면서 많이 소실되었는데 그중 비극에 관하여 언급한 시학 또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리고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의 약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 시학은 인류 최초의 과학자에 의하여 저술된 문예비평에 관한 최초의 서술이란 점에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시학은 후세에 와서 많이 보완되고 고쳐졌다. 비록 많이 수정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사상을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왜냐면 그의 이론이 문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 삽입된다고 말하고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하였다. 결국 비극에서의 모방은 순수하고 착한 이의 행동을 본떠 모든 이가 감정의 공감을 가지고 보며 이러한 모방은 일정한 격식이나 연관에 의해 짜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의 주인공은 행동의 모방자이기에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행동의 모방은 곧 플롯이며 플롯이란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토리 내에서 행하여진 것, 즉 사건의 결합 이라고 말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여섯가지 요소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말하였다. 그 여섯가지 구성요소는 플롯과 성격과 조사와 사상과 장경과 노래에 의해서 일반적 성질이 결정된다고 말하였다. 이 여섯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비극은 안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 행복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의 행동을 위하여 드라이 잘못 구성되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토록 플롯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음으로 중요시한 것은 성격인데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도록 한다. 시학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잘 나와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필자가 생각컨데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조를 더 중요시했기에 이 부분의 언급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비극에서 중요한 것은 사상인데 이 부분은 우리가 이해하는 보통의 사상의 의미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의 의미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음은 성격으로 행동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해준다. 의도는 등장인물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는 경우에 가장 잘 나타난다. 예컨대 복수를 택하느냐 안전을 택하느냐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의도를 통하여 등장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나머지 것들의 설명은 그다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기에 설명을 생략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훌륭한 비극이 될려면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하며 그것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가지 유형을 꼭 피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1) 유덕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포의 감정도 연민의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고 불쾌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2) 약한 자가 불행하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 장 비비극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극의 필요 조건을 하나도 구비하고 있지 않 다. 즉 그것은 인정에 호소하는 점도 없고, 연민의 감정도 공포의 감정도 불러 일 으키지 않는다.(3) 극악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