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와 개인보안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의 보급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커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초기에는 주로 남성, 전문직 종사자, 대학생 등이 중심을 이루었던 이용자의 구성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참여하고 있고, 특히 전통적으로 공적 활동에서 배제되었던 주부들의 참여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ADSL이나 케이블을 포함한 초고속통신망의 보급과 맞물리면서 세계적으로도 앞서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계층, 직업, 세대가 참여함에 따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공간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터넷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이에 관련된 쟁점도 훨씬 다양화되고 있다.특히, 인터넷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은 먼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 공간으로 모든 사람에게 접근과 참여가 가능하고 수평적인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외부의 간섭과 통제가 어려워 사람들 간에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 등 누구나 자신의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어 국민의 직접적인 여론형성 참여가 매우 수월해졌다. 또한 재택근무나 홈쇼핑, 홈뱅킹 등을 통해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이를 창조적 활동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 생산, 유통, 판매, 사무관리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친 합리화, 효율화가 이루어져 경제활동이 더욱 활성화되며 지역사회의 자립적 발전과 국제협조, 국제협력, 국제유통 등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그러나 지적재산권의 침해, 정보격차, 명예훼손, 음란물, 언어폭력 등과 같은 다소 오래된 쟁점에서부터 자살 사이트, 폭탄 사이트, 사이버 스토킹, 안티 사이트 등과 같은 새로운 쟁점들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이버공간의 이러한 역기능들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고 그 사회적 파장도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잠재적인 악영향을 예방한다는 각도에서 접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살이나 폭탄 사이트, 음란물, 명예훼손, 사이버 스토킹 등으로 인한 폐해가 늘어나고 있어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이렇듯 편리함의 이면에 드러난 부작용으로 인하여 우리가 아는 많은 연예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일반 대중들까지 이미 희생양이 되었으며, 이에 정부는 2008년 7월, ‘인터넷 실명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였다. 인터넷 실명제란 인터넷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되어야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이다. 이는 2004년 3월 12일 개정 공포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규정된 개념으로,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할 때 의견 게시자가 기입하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 일치하는 경우에 한하여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말한다. 요약하자면, 누구라도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실명확인 단계를 거친 후에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인터넷 이용에 있어서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인 것이다. 이유인 즉, 익명성이 여태까지 인터넷의 특수한 속성으로 인정되어 왔으나 최근 부각되는 각종 문제들, 악성 루머나 인신공격 등 언어폭력을 통한 사생활 침해와 같은 역기능들의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부분적인 실명제 도입으로는 현실에서의 광범위한 인터넷의 부작용을 막아내기는 무리였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전면적인 실명제 도입에 대한 찬반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인터넷 실명제의 이슈에서 부각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첫째, 인터넷 실명제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이념이 충돌하고 있다. 실명제에 찬성하는 측은 익명성이 나아가 무책임과 방종을 불러오며, 그것이 현재의 각종 사이버범죄를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은 인터넷 실명제는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1조 평등권, 제15조 직업의 자유, 제10조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와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 이념이 충돌하여 한 쪽에 쉽게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문제이다.둘째, 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일단락과 재점화를 반복해온 이슈이다. 이는 실명제에 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즉 일시적인 현상으로써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앞의 모든 부분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나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현재의 사이버사회의 안정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여러모로 우리에게 득보다 많은 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익명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언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여 왔기에 실명제는 글을 쓰는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키며 기본권으로서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둘째, 사이버폭력해소의 부분이다. 사이버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익명성이 아니라 개인정보의 과도한 노출이다. 현재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들이 실명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사이버폭력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점은 더욱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는 현재 실명제 사용하고 있음에도 많은 연예인들의 개인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악플들이 쓰여 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 실명제는 사이버폭력을 해소시키는 근본적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셋째, 개인정보유출과 관련한 부분이다. 인터넷 실명제에서는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직, 간접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이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을 촉진한다면, 인터넷을 거대한 ‘개개인들의 실명 정보 프로파일러’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 지금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통해 본 개인보안-정보 사회가 도래하면서 정보통신 기술은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전 세계가 교통과 통신을 넘어 인터넷과 무선 기술을 휘감고 경제적인 면에서 부정할 수 없는 연관관계를 맺어나가고 있으며 세계가 변화하는 것 이상으로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만큼 새로운 사회 변동과 사회 문제가 심화되고, 이와 관련한 감시와 통제에 대한 현대인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정보사회의 견고한 기술력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바로 현 정보사회의 구성원들이며, 이러한 불안감들이 구성원 개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더욱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술력의 파급효과와 영향력에 두려워하면서도 더욱 자신을 정보사회에 종속시키고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다 이러한 부분에 기인한다.요즘 들어 정보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만약 개인의 자유가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통제 받게 되고 시민의 인권이 침해된다면...더 나아가 우리 집의 안방까지 침입할 권리까지 정부가 가지게 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를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리고자 한다. 이 영화는 거의 10여 년 전 작품이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도 많이 거론되어온 개인 사생활에 대한 문제를 잘 조명하고 있다.‘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음모 주체는 ‘국가’이다. 공권력이 자신이 가진 힘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조종하고, 공권력을 남용하며 한 사람의 개인을 죽이는 것에 능동적으로 나선 것이다. 영화에서는 조금은 비현실적이 느낌이 드는 여러 첨단 기술들을 선보이면서 로버트 딘(윌 스미스)을 추격하는데, 그 중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추적시스템이었다. 이는 과거의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비행기나 헬기를 통한 공중에서의 감시수준을 넘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통해 종합적으로 체크하고 관리·감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시스템의 대상 상대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었을 때, 이것의 사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을 일어나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한 망원경 해상도는 1m급 수준이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는 10cm급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한반도 상공에는 정체 모를 위성이 수백 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Google Earth나 Microsoft사에서 제공하는 지도서비스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집안에 있는 컴퓨터로 어느 정도까지는 어디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언제 어디서 우리가 무엇인가에 찍혀 노출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영화의 결론에서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 놓은 덫에 우리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떠한 종류의 사회에서라도 불안감이 기반이 된 모든 감시와 통제는 관음증적이고 편집증적인 행동일 뿐인 것으로 생각된다.
Lately, there are getting more people who regard 2MB’s government as an empty vessel. I think this kind of public opinion is caused by all their actions. Our present government is moving around this way and that whether the President keeps his election pledges or not. Accordingly, the government never works well because they fuss around after the event. Furthermore, they usually put blame on others if something goes wrong. It is so obvious that they have lied several times to the public. To make matters worse, if lots of high-ranking officers spoke some policies in formal but those policies were very kaleidoscopic, nobody might believe the government completely.To be specific, the biggest friction was the beef problem after a new government established. It was started from mad cow disease. At that time, the issue was that they had the indiscretion to import the beef which has some medical problem. However, importation of beef was not a big deal. The main point was they changed their utterances frequently on the process of enforcement.
The Commercialization Of An Ivory TowerRecently, lots of universities in Korea have been changing their spaces into the massive office park. This present situation means that our generation’s view of education is tainted with the logic of capital. Also, it seems that universities are subordinate to the enterprise. However, there are more negative effects no matter how much they develop into commercialization. It is due to the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the university and the enterprise. In Korea, especially, there are not enough circumstances for universities who want to place themselves under the market economy. Accordingly, it is a trigger of chaos in the future university society.To be specific, several problems have already come to the fore in well-known universities that are located in Seoul. All of Yonsei University, Korea University and Ewha Womans University founded fancy buildings that have some franchise stores – Starbucks, Dunkin' Donuts,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734411" t "_blank" Burger King and so forth. It is obvious that these buildings are dazzling as up-to-date models. On the other hand, their students usually wash their hand with cold water at the each department building. They said, “They would rather choose facilities instead of those stores.” If there were no advantage for main people, everything would be useless.Like the preceding, in Pusan National University, a multi-complex named Hwyon Good Plus has been under construction since 2007. Problems start to be revealed even before completion of a construction work. To illustrate, school buses make a detour to avoid a construction site and noises from there are sufficiently to be harsh to our ears. Furthermore, pedestrians at the front gate feel inconvenience from place to place. It has been continued all through the construction. I heard that most of us are fed up with that. It is a wonder that we just pass over this matter, isn’t it? I think, we should strive to search for appropriate measures.While both commercialization and the consumer-oriented culture have caused the living standards to rise, abundance often creates its own problems. The university commercialization may result in the corruption of noble spirit which they should maintain. To make things worse, people generally evaluate the value of universities by how high-souled they have. Consequently, the university will be able to maximize their values when they remain the ivory tower. I cautiously consider that now is the perfect time for pursuing the university’s intrinsic attribute.
Ⅰ. 서론얼마 전 가졌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The Great Gatsby’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소설이야말로, 남자가 꿈꿀 수 있는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랑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인생의 선로를 바꾼 남자. 그녀 곁으로 가기위해 기꺼이 뒷골목에서의 치열한 생존게임을 이겨낸 남자. 마침내 가장 멋지고 거대한 모습으로 그녀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간 남자. 그녀의 허물을 모두 끌어안은 채 한방의 총성으로 죽음을 맞이한 남자, Jay Gatsby.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 그는 진정 사랑에 관한한 남자들의 현대판 로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나의 주장대로 이 책을 굳이 분류하고자 한다면 한 남자의 슬프고도 애절한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냥 연애소설이라고 결론 지어버리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도 많은 가치를 담고 있다. 한 남자의 사랑과 야망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더불어 1910 ~ 1920 년대,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미국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삶에 대한 가치관을 다양한 캐릭터에 담아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는 동안, 몸에 착 달라붙는 수트로 멋을 낸 신사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나오는 흑백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착각에 종종 빠져들곤 하였는데, 이는 이 책이 가지는 깊은 의미와 상징을 떠나, 장면과 대화 자체만으로도 생생하게 그 시대의 공간을 현장감 있게 살려내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맨 마지막까지 들었던 생각은 과연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었다. 과연 Gatsby가 꿈꾸었고 갈망했던 ‘사랑’은 옳은 것인가? 5년 동안이나 Daisy를 잊지 않고 기다린 것은 ‘사랑’이 보다 ‘집착’이라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세상에 옳은 방식의 사랑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상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 방식대로 표현인 것이다.나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상을 중심으로 주인공뒤, 하루의 계획표를 적어놓고 그것대로 자신을 단련하던 사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너머에 존재하는, 더 넓고 더 멋진 세상에 매료된 사나이. 어쩌면 그가 매료된 것은 그의 연인 'Daisy'가 아니라, 황금광맥을 찾아 정처 없는 모험을 떠났던 서부개척자들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을까? 즉 미국이라는 신세계의 태동과 함께, 한 세기를 넘도록 온 미국의 국민들을 장악해 온 미국적인 야망과 꿈, 성공에의 신화와 환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Daisy'를 둘러싼 상류사회의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의 인생행보를 오로지 한 여자를 향한 지순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Daisy'란 존재 자체도 ‘Gatsby’ 자신의 환상이 투사된 구체적인 실체에 지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삶을 위대한 사랑의 증거로 칭송하지만 어쩌면 그 시대의 열기와 분위기에 사로잡혀 버려 눈이 먼 한 어리석은 이의 좌충우돌에 지나지 않는 희극적 소동이었을지도 모른다.여기서 나에게 또 다시 뱀의 머리처럼 쳐드는 의문은 Gatsby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환상과 부합하는, 그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는 '투사'의 한 방편이라 한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가 가지는 사랑의 실체란 모두 다 그런 것 아닐까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 자체가 이미 환상을 전제로 출발하는 것이고, 그러한 환상을 구체적 대상에 투사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Gatsby는 '사랑'의 마녀적인 속성에 제대로 빠져버린 사나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랑이 아름답고 비극적이라는 느낌보다는 희극적이고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건 Gatsby의 사랑이 너무 일방적으로 헌신적이었음에 있는 것일까? 혹,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생을 바쳐 사랑한 여자,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작가는 부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란 것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의 Gatsby의 사랑은 '돈'이 없으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한 인간을 이토록 어리석은 자로 만들기도 하고 무모한 자로 만들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쥐고 뒤흔드는 것인가. 결국 사랑이란 각자가 홀로 꿈꾸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러한 진부한 물음에 있어 작가는 애써 답하지 않았다. 그저 Gatsby와 그 친구들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뉴욕이라는 풍자적이고 상징적 거리를 오가며 'Gossip'처럼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던져줄 뿐이다. 또한 동시에 소설 속의 화자인 Nick Carraway를 통해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 '무모함'을 마지막까지 칭송하였다.당시에 인간은 거대한 자본주의의 시대의 시작과 함께 돈의 위력에 기대어 기생하는 보잘것없는 벌레로 전락해 버렸다. 소설 속에서도 더 이상 야망도 희망도 없이 오로지 돈이 주는 안락함에 자신을 내어맡긴 존재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자신의 노력 없이 유산으로 유유자적하는 Tom이나 남편의 부정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Daisy. 부정직의 대명사로 마치 게임을 하듯 여러 사람들의 사이를 떠다니는 Jordon, 완벽하게 부정한 이중생활을 즐겼던 Myrtle Wilson. 그리고 Gatsby가 베푸는 공짜 향연의 한 조각을 구걸하기 위해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행렬. 이들에 비해 Gatsby는 비록 어처구니가 없는 사랑의 종말을 맞이하여 싸늘하게 죽어갔지만, 그는 자신의 환상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그것이 사랑이든 아님 그 무엇이든 간에, 전장의 한 가운데인 뉴욕의 뒷골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뒹굴고 사기치고 빼았았다. 원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서 마침내 그것의 곁으로작가인 F. Scott Fitzgerald는 그러한 Gatsby의 짧은 삶과 사랑을 통해, 이 시대의 계산적 인간들이 외면해 버린 그 무모하리만치 비극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진정성과 순수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작가가 이야기에 '사랑'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인간의 무모한 진심과 순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연애이야기'만큼이나 어울리는 소재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왜 이처럼 어긋난 사랑 이야기를 굳이 선택해야 했을까? 작가는 자신이 가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연인을 잃을까 전전긍긍하여 훗날 아내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놓아주지 못한 채 평생 그녀를 곁에 두고자 하였던 자신에 대한 쓸쓸한 연민과 조소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대한 환상이나 비극도 결국에는 '상대를 위해서' 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The Great Gatsby’에서 나타나는 인물과 시대적, 장소적 배경 및 기타 문맥적 도구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봄으로서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또한 미국의 허황되고 타락한 America dream 및 lost generation의 미국적 이상에 대한 환멸을 엿볼 수 있고 이상주의와 부패한 물질주의와의 충돌과 갈등, 타락한 물질주의로서는 이상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The Great Gatsby'에서 여러 가지 기법을 통해 이러한 생각들을 표현한고 있었는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특징적 사물들을 통해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 속의 상황을 반영한 점이다. 이는 소설을 ‘미국 역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음에 있어 표면적인 의미만 보며 이해하여서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한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반복해서 읽을수록 이 소설의 진가를 확인하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다양한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나 역 색깔 하나하나에 작가가 의도했던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부분들이 ‘The Great Gatsby’라는 책을 꾸준한 베스트셀러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이를 통해 이 소설은 그 제목에서처럼 그자체가 미국의 대학생 및 문학가들이 극찬을 아까지 않으며, 나아가 세계의 문학사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The Great Book’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Ⅲ. 결론지금까지 읽어왔던 여러 소설들 중에 ‘The Great Gatsby’는 가장 많은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소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전에 거쳐 왔었던 다수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은 그저 단지 재미로 읽거나, 혹은 나의 취미 생활의 일부분으로써만 존재하였었기 때문에 그 소설 속에서 작가가 의미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던 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학기의 미국 소설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교재로 사용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각기 다른 2가지 소설을 연구하고 탐구했던 과정을 통해서 내가 다른 소설을 읽을 때 예전보다 더욱 발전된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자부한다. 이렇듯 내가 소설을 대함에 있어 보다 발전한 태도는 내가 읽어왔던 소설들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하였으며, 각각의 소설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안에 내포된 단어들 또는 상황들을 이용하여 어떠한 상징적 의미들을 암시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다시금 읽어본 ‘The Great Gatsby'에서는 그 속에 존재하는 상징들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시험을 준비하였을 때도 과제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소설 속에서 ’Green Light‘가 지니는 의미에 계속해서 관심이 갔었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Green Light의 상징적 의미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상징적 의미와는 극명하게 대조적이었고, 나는 그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불빛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이 불빛이 Gatsby의 꿈과 희망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