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아*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7
검색어 입력폼
  • [철학] 니체의 철학
    *먼저 이 발표문은 고병권 님의 천 개의 눈, 천개의 길이라는 소명출판의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Ⅰ. 들어가며도대체 ‘니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니체는 그만큼 많이 인용되고 많은 지식인이 사랑하는 철학자이다.) 그러나 니체의 철학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작가는 그 원인을 니체는 하나의 니체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리하여 니체에게 다가가기 위해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길을 좇는다.)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성 가운데 천 개의 니체가 있다. 우리는 본 발표를 통해 니체를 학습하거나 정리하기 보다는 니체를 여행하고 탐험하고자 한다. 천 개의 니체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자의 서술 방식이기도 한 ‘일단 니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니체를 떠나는 것은 이 후로 미루기로 한다.Ⅱ. 계보학-비판; 도덕.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 소심함, 소심함, 소심함.도덕은 사물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가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이 가치의 가치를 되묻는다. 도대체 도덕이라는 가치의 존재 가치 즉 도덕의 생존방식, 도덕의 기반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조건 하에서 선과 악이라는 가치를 생각해 냈던가?) 니체가 도덕철학자나 도덕학자들이게 가졌던 불만은 그들이 도덕 그 자체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생각한 점에 있다. 철학자들이 진리에 대해 보여주었던 최소한의 겸손함)조차 도덕학의 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도덕이 생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역사의식은 부재한다. 정밀하게 살펴보면 도덕은 시중에 믿음을 학문으로 변형한데 지나지 않으며 도덕 역시 욕망에 다름 아니다.무엇이 악인가는 무엇이 오류인가 보다 큰 위험성을 담고 있다. 오류가 통용되는 사회는 악이 통용되는 사회보다는 견딜만하다.) 인간들은 소의 선악이라 부르는 가치의 전도, 가치의 전쟁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이 요청이 그 증명을 대신하고 마는 것이 도덕학이다. 타인이 동의하지 않는 도덕은다. 화폐는 도덕과 마찬가지로 가치의 표시이고 공통의 매개자이며 기준이 된다. 화폐 위조는 가치를 조작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화폐 자체가 가치의 위조물은 아닌가? 도덕학자들은 도덕을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도덕은 당신을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던가? 오히려 도덕은 끊임없이 요구한다. 곧 자연에 대한 어느 만큼의 억압인 것이다.)도덕이 가치의 조작에 불과하다는 논거는 그리스의 시에서도 발견된다. “두 명의 불화의 여신이 지상에 있다. 악한 불화의 여신과 선한 불화의 여신.” ‘선한 불화의 여신’에 대해 도덕학자들은 가짜이거나 잘못 삽입 된 것이라 주장했다. 도대체 그들에게 선한, 불화의, 신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도덕적 감각의 변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화조차 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불화는 경쟁을 낳고 번영을 창출한다. 두 번째로 도덕이 가치의 조작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한 민족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민족은 조롱거리, 치욕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들이 엄연히 역사에 존재했다.Ⅴ. 강한 자와 선한 자니체는 삶이 강화되는가, 빈혈을 겪는가, 부정되는가 등에 따라 그 토양에서 자라는 사람들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토양이나 혈통에 있어서의 건강함의 차이를 귀족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으로 나눈다. 귀족이 좋음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어떤 선악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그것은 우등과 열등 혹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귀족들은 나쁜 것에 대해 어떤 적의나 원한도 품지 않는다. 그것은 안되고 불쌍한 것을 의미할 뿐이다. 노예의 도덕은 먼저 자신과 대립되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악이라고 규정하고 그와 상반되는 소극적인 의미의 선을 정의한다. 이리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기능적 판단은 선하고 악한 것이라는 윤리 도덕적 의미로 바뀐다. 귀족적 평가는 기능에 대한 자발적 평가이다. 이렇듯 귀족들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노예는체의 활동화를 통해 시작된다.) 주체는 활동과 분리되고 주체는 활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가 된다. 그 책임을 묻는 자는 정의의 신이다. ‘책임을 묻는 신’은 ‘벌을 주는 신’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살며 서로 사랑하는 형제를 외치지만 그것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신의 왕국이 도래할 때까지 만이다. 지옥에서 벌 받는 자들을 보고 자신의 축복을 더욱 기뻐하는 천국의 착한 양들. 그들의 정신 세계는 잔악함으로 가득 차 있다.귀족, 강자가 사라진 후의 노예, 약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의 발명자가 된다. 인간은 질병처럼 자신을 학대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신은 보고 있다. 더욱이 인간은 모두 죄인의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살아있는 한 아무도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강자는 왜 패하고 말았는가? 노예적 도덕은 어떻게 본능이 되고 인간성이 되고 제도가 된 것일까?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질병이 어떻게 건강을 이기고 말았는가? 강자는 능동성과 적극성을 자신의 속성으로 갖는다. 반면에 약자는 부정성과 반동성을 속성을 갖는다. 곧 강자가 시작해서 만들어 가는 자라면 약자는 부정해서 상쇄시키는 자이다. 약자는 강자가 더 이상 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정성의 방식으로 승리했다. 니체는 이를 저지의 심리학이라고 지칭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더 이상 예외자가 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을 통해 약자는 승리하고 만다. 떼거리적 혐오는 강자의 것을 박탈시키고 약자로 적응시킨다.)Ⅶ. 도덕이라는 동물원니체는 오늘날의 인간들은 도덕이라는 철책에 몸을 비비고 있는 동물원의 갇힌 짐승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짐승은 동물원 밖보다는 차라리 덫에 갇혀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동물원 밖에는 그들을 조련하는 조련사가 있다.돌팔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먼저 진정제와 마취제를 투여하여 그들의 고통을 무마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기계적 활동 예컨대 생각없는 의식이나 절차를 맹목적으로 나가며; 니체 철학과 정의론니체는 오늘날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악을 비판하였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선악은 없다. 단지 그 개별 인간에게 해롭고 이로운 가치가 존재할 뿐이다. 누구든 무욕하거나 착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가 그것에 기쁨을 느끼거나 예컨대 맛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 굳이 말하자면 선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신에게도 복종 당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발현이 정의다.삶에의 다양한 의지가 곧 선이다. 다만 공동체는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부정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 얼토당토 않은 선악을 가져다 붙여 허무화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에서 지켜져야 할 정의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차이를 수용하는 자기 극복이 요구된다.니체는 “신은 죽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 모두는 초인의 영광이 되어지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그 무렵 유럽의 최고 가치였던 기독교에 대한 사망신고인 동시에 그가 이상인으로 삼았던 초인의 탄생 신고였다. 니체는 기독교를 “자신을 저주받은 무가치한 존재로 간주하고, 현세의 욕망을 부정하고, 현세의 삶은 거짓이며 진실한 삶은 저편 피안에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삶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려고 하는 의지이며 무(니힐, 없음)을 향한 의지로 원래부터 허무주의이다.”라고 한다. 그는 기독교가 고뇌로 가득 찬 삶을 사는 다수의 약자에게 사는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유럽에 군림했고, 기독교의 진리이자 도덕적 근거인 신은 약자의 자기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니체가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고 기도만 하면 다 들어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신을 죽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은 신의 죽음으로 자신을 떠받치고 이끌어 줄 존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에 니체는 이제는 신 대신 인간이 진실로 참된 자신의 삶의 창조자가 되라고 주장하며 이런 인간상을 초인이라 규정했다.초 인에서 니체는 초인이란 “지성과 긍지로 가득 차 있륭한 인간이 한 사람 태어나면, 그것을 본 평범한 인간들은 그 사람을 동경하여 용기를 갖게되며 적어도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희망이며 구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초인의 의의를 밝혀 놓았다.권력의 의지니체는 가치는 “생명체의 보존 상승을 조건으로 하는 해석 관념”이며,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는 “상승되고 조직화되어진 권력량” 이라 한다. 그래서 “삶은 권력의 의지이며 힘의 축적의 의지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보다 이상의 것이 되고, 보다 강한 것이 되려는 의욕을 의미하는 권력의지는 본래의 가치정립의 주체이며 가치의 평가기준이다. 도덕적인 가치평가도 권력의 의지가 내리는 해석 방법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다만 삶을 위해서이고 그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지니지 않는다. 따라서 니체는 도덕의 실현을 위해 삶이 존재한다하는 도덕지상주의는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라 하며 이를 배척하였다. 이런 단순히 삶의 연속이 아닌 보다 이상의 삶을 구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권력의 의지가 초인을 구성하는 핵심부분이 된다. 그래서 초인에게는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참되고 고귀한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상승 강화하려는 권력의지를 가진 초인은 자신의 약함을 강자에 대한 부정으로 해결하려는 노예도덕에 의해 극복하려는 위선을 행하지 않으며 노예임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고귀한 사람이 행하는 선이란 인간이 스스로를 높을 수 있는 권력의지라 말한다. 여기서 좋은 = 고귀한 = 강력한 = 아름다운 = 행복한 이라는 가치평가가 주장되어 진다. 이때 권력의 의지에서 말해지는 권력이란 정치권력, 재화, 무력 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다하여 모든 응고 정체된 상태를 돌파하여 향상하려는 근원적인 내적 생명력이다.르상티망니체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에 대한 약자의 격정에 의한 복수감을 르상티망이라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강자가 되고자 하는 불변의 숙명적 욕구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강자가 될 수 없다. 강자가 되지못한 인간은 자신 된다.
    인문/어학| 2005.07.12| 7페이지| 1,000원| 조회(659)
    미리보기
  • [지역 사회] 양주군 광적면 지역 사회 조사
    그림 광적면의 위치1. 광적면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은 서울에서 15km 의정부 도심에서 약 9km 떨어진 서울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 생활권이 수도권에 형성되어 있다. 실제 도로상으로는 의정부 북부역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이다. 면적은 48.48km이며 인구는 2004년 통계청 발표로 10847명이다.그림 면사주소 주위 거리그림 면사무소그림 5일장 모습광적면의 면사무소는 광적면에서 시내로 불리는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중심가는 서울의 보통 상가가 위치해 있는 도로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는 양주시와 광적면이 현재는 농촌이지만 빠르게 교외화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또한 이런 교외화 과정에서도 5일장이 서고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그림 광적면 토지 이용(2000년)광적면의 토지는 임야를 제외한 대부분이 논과 밭으로 쓰이고 있으며 거주 구역(대지)은 3%의 비율을 차지한다. 총 가구 3811가구 중 662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가구들은 대부분이 단독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농가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비율의 20%도 되지않는다는 것 역시 이 지역이 교외화 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광적면 자체에는 효청 초등학교, 덕도 초등학교, 조양 중학교가 위치해 있는데 이는 14세 이하의 어린이 및 청소년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광적면의 인구의 변화를 분석해 보면 다른 농촌 지역에 비해 인구의 노령화나 성비의 차이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음을 알수 있다. 60대 이후 성비가 100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기 때문이며 20대 초반에서의 성비의 급격한 증가는 20대 초반 여성들이 도시에 대한 동경으로 급격히 농촌을그림 성비(2000년)빠져 나가고 있어서이다.그림 1980 - 2000년까지 성비 변화인구 구성표의 변화를 보면 20세 미만의 인구는 꾸준히 구성비가 줄어드는 반면 60대 이상의 노령인구는 75년 약 10%에서 2000년 약 15%로 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30대와 40대의 인구의 증가는 아니라 경기도 자체의 거주 교외화 현상때문이다. 거주 교외화를 통해 유입되는 가구는 주고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의 부부 중심의 가정이다.그림 1975 - 2000년까지 인구 구성의 변화그림 1975 - 2000년까지 인구 변화 추이그림 10 2000 연령별 인구그림 1980 연령별 인구그림 11 1990 연령별 인구2. 인터뷰ㄱ. 김관식씨현재는 의정부시에 거주하고 계시며 양주군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축산업을 하고 계셨다. 지역주민들을 소개시켜 주셨고 광적면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토지지금 까지 땅값은 많이 올랐지만(약 10배 정도) 투기허가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땅값은 여전히 오르고는 있지만 속도는 상당히 둔화되었다. 논과 밭은 약 반반씩 있으며 휴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농지 중 휴지는 지을 사람이 없어서 놀린다기 보다는 투기대상으로 땅 매입 후 사용하지 않는 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구현 양주지역의 인구 중 3/4이상이 외지인이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현지인이다.- 농업소득을 벼를 기준으로 깨나 콩 등은 소득이 적지만 흔히 고등 채소라고 불리는 오이 토마토 등은 벼에 비해 몇 배 수익이 많다. 하지만 고등채소만을 재배할 수는 없다. 과 생산되면 가격이 떨어지며 밭농사에 경우 기계사용이 불가능하고 인력 또한 많이 들어서이다.그림 면사무소에서 최태식씨와 함께ㄴ. 최태식씨광적면 면사무소에서 농지 농업 부분을 담당하고 계신다. 광적면 농업 인구와 농업에 대학 일반적이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못 나눠서 아쉬었다.- 토지휴지가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외지인 소유의 땅일 경우 농지의 임대차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인 계약관계가 아닌 쌍방의 동의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다. 토지거래허가지역 지정 토지거래가 상당히 둔화되었다.- 인구주로 50대가 많으며 이분들은 평생 광적면에 살면서 농사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다.- 농업현재 작물은 벼와 주력 상업 작물도 없다. 영농회사가 있지는 하나 인력 대행 회사정도이지 기업적으로 농업을 하는 것은 아니며 현재는 거의 효용가치가 없다고 봐야한다. 이외에 하우스 등의 시설농가는 없으며 축산 낙농업은 몇몇 가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농기계를 모두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에서 융자를 함으로써 보조해준다.- 시대에 따른 농촌의 변화인구가 고령화 되었으며 농업 종사자의 양극화가 이루어 졌다. 전업농으로 농지를 늘려 몇 만평 정도의 농지를 경영하여 점점 대농이 되가는 쪽이 있는가 하면 천 여평 정도의 농업을 하면서 공장이나 다른 업종에도 종사하는 겸업농도 늘고있다. 천여평정도의 농지에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생활이 턱 없이 모자르다.- 지역의 미래양주지역은 완전히 도시화를 이룰것이다. 그렇다고 농지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도시화 즉 주택과 상가가 위치한 지역을 뺀 나머지는 그대로 농지로 남을 것이다.그림 목장 앞에서 이회용씨와 함께ㄷ. 이회용씨(44세)현재 광적면에 거주하시고 낙농업으로 젖소를 키우신다. 이곳에서 태어나셨으며 계속 낙농업에 종사하셨다. 실제 소득이 다른 거주민 그리고 도시 노동자와 비교해 월등히 높으시며 이에 따라 농촌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크시다. 이회용씨의 부인께서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 둘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매우 크셨다.- 목장 경영젖소 약 70마리를 키운다. 아버지가 3마리로 처음 시작하셨고 내가 88년도 물려받을 당시에는 16마리였다. 서울 우유에 납품하고 있다. 젖은 목장에서 짠 뒤 이 곳에서 바로 냉각 후 탱크로리에 의해 조합으로 실려나가 그곳에서 가공되며 이 작업들은 보두 기계화 되어있다. 리터당 약 750원 정도를 받는다. 옥수수 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사료용이다.- 생산력의 변화옛날에는 젖이 많이 나오는 소의 경우 하루 20kg정도 나왔는데 현재는 많이 나오는 젖소의 경우 60kg까지 나오며 평균적으로는 30kg이 생산된다. 이는 젖소가 먹는 양이 늘었고 개량도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번식은 인공수정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소모두 이곳에 조양중학교 학생이며 의정부 시내에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원의 셔틀버스가 없기 때문에 부인께서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태우고 다니시며 이 때문에 휘발유값으로만 한달에 30~40만원정도가 소요된다. 서울로 보내고 싶지만 거주하는 곳이 이곳이라 않된다. 공부 수준차이는 서울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에 반비례해서 발생한다. 근처에 덕도 초등학교(약 150명)와 효청 초등학교(약 70명)가 있는데 효청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소풍 운동회 등이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에 행사이며 이런 점을 덕도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부러워한다.- 마을지역민의 연령대는 40~50대가 많아 상당히 젊은 인구 구성을 이룬다. 이는 낙농업으로 얻어지는 수익이 높아서 마을 전체가 상당한 부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일등을 하며 낙농업도 하는 이른바 겸업농의 비율이 우리 마을의 경우는 별로 없다. 다른 곳은 반반정도로 알고 있다. 지가는 80년대 초반 평당 만원정도 였는데, 지금은 20~30만원 정도로 올랐다.- 생활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불편한점도 없으면 낙농업으로 인한 수입도 괜찮고 서울도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하는 다른 시설의 유치나 아파트 건설 등은 달갑지 않다.- 자신 이후의 목장자식들에게 목장을 물려주진 않을 것이다. 마을에서 대를 이어 낙농업을 물려받는 경우는 반반정도 인거 같다.그림 밭 앞에서 진용수씨 부부와 함께ㄹ. 진용수(63세)20세에 시집오셔서 광적면 우거리에서 평생을 살으셨으며 앞으로도 그러실 계획이시다. 가장 일반적인 농촌의 거주민이시다. 현재 남편과 아들(31세, 운수업)과 함께 살고 계시다.- 농사논농사와 고추 마늘 부추 등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밭농사는 팔려고 하는 것이지만 대규모는 아니다. 예전에는 밭농사를 지으면 밭떼기 등으로 목돈을 만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형할인마트의 등장으로 중간상인이 없어져 밭떼기 등이 아예 사라졌으며 또한 인건비 또한 하루품이 약 7만원 정도로 올랐 직거래는 양이 적으며 운반문제가 있고 상회를 통해 많이 유통시킨다. 80년대 초반부터 농기계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경지 면적을 늘리기도 하나 소수이고 대부분 일이 편해졌다는 정도이다. 농기계는 이양기 트랙터 경운기가 있다. 논밭의 비율은 대부분 반반정도이다. 보통 60대의 두 내외가 4000평(약 20마지기)정도의 농사를 지으며 밭 2000평, 논 2000평 인 경우가 보통이다.- 토지80년대에 비해 10배정도 올랐다. 땅의 소유주는 우리 마을의 경우 토박이 들이 많으며 필요에 따라 땅을 조금씩 팔기도 하지만 모든 땅을 다 팔고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땅들은 외지인들에게 팔리는데 외지인들이 농지를 놀리면서 풀씨들이 다른 논으로 들어와 피해가 많다. 농한지세가 다시 생겨나야 한다. 외지인들이 땅을 사는 경우는 투기가 목적이며 택지개발로 인한 기대심리가 토지매입을 결정하는데 큰 작용을 한다. 광적면이 토지거래허가지역이 된 이후로 매입이 줄어들긴 했지만 변칙적으로 행해지는 땅 거래도 있다. 대농들의 경우는 외지인 소유의 휴지들도 경작하고 싶어하지만 외지인이 그냥 놀리는 경우가 많다. 대농들의 경우 보통 10000~20000평 정도를 경작한다. 임대차 가격은 논 천평당 세가마니이며 천평에서는 약 열 다섯가마니 정도가 생산된다. 한 가마니당 17~19만원을 받는 실정이다. 위탁농은 소수이며 자신의 땅으로 내가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의 수익을 생각하지 큰 돈을 위해 농사짓는 사람은 대농을 제외하고는 없다.- 지역 전망10년후면 이미 이 지역은 아파트촌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생률의 감소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이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아파트가 계속 건설되고 있는데 지나친 과잉 공급이다. 실제로 현제 건설된 이 지역의 아파트도 입주율이 낮다고 들었다. 또한 농촌지역에는 10년 후에도 농업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 마을에서도 우리 부부가 제일 젊은 편에 속하며 또한 부모들도 자식이 농사짓기를 바라지 않는다. 농사만으로는 많다.
    인문/어학| 2005.07.12| 10페이지| 1,000원| 조회(490)
    미리보기
  • 장자를 읽고 평가A좋아요
    내가 제일 처음 '장자'를 읽으면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요유' 편에 나오는 큰 새 붕과 곤이라는 큰 물고기였다. 거기서 매미와 비둘기가 붕새를 어리석다고 흉본다. 장자는 작은 것은 큰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루살이는 밤과 새벽을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오백년을 산 명령이란 나무는 팔천년을 산 대춘이란 나무를 알 리가 없다.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길을 가는 사람과 만리가 넘는 길을 가는 사람은 준비가 다르다… 여기서 나는 마치 머리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나는 마치 내가 세계의 주인인양 내 생각만을 옳다고, 내가 경험한 것만이 다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장자'를 읽으면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문체상의 특징이었다. 우화와 비유 또는 유머, 풍자 등을 많이 섞어 썼고, 종횡무애하고, 그 문체와 착상에서부터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장자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현상사회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둘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셋째, 그의 정치적 입장이다.현상사회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소요유' 와 '제물론'에 나타난다. '소요유' 는 글자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큰 이야기를 작은 규모의 이야기와 대비시키면서 말하고 있다. 현상사회는 모두 상대적 존재이고, 상대의 세계를 초극한 곳에 넓고 큰 자유의 세계가 있고, 상대적 세계를 탈각했을 때 속박당하는 일없는 무한대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소요유' 에서 장자는 인간에게 있어야 할 이상의 경지로서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를 설명한 것이 '제물론'이다. 장자는 인간이 소요유를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초현상적 존재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요유라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상대의 세계를 초월해서 절대의 세계에 편안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곧 살아있는 상대의 세계를 이탈하라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세계에 살면서 상대의 세계의 제한에서 탈각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된다. 상대의 제한에서 탈각하기 위해서는 가장 상대적인 존재인 만물을 각각 구별있는 사물로서 보지 않고 모두는 동등한 사물이라고 보고(만물제동) 인간도 만물제동의 한 사물에 동화하는데 있다고 장자는 생각했다.'소요유' 와 '제물론'에서 상대적 세계를 초월해야 할 논리를 설명한 장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궁리를 '양생주' 와 '인간세'의 두 편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려 한다. '양생주'에 있어서는 주로 개인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방법을 그리고 '인간세'에 있어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양생주의 처음에 인용되는 포정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경험을 쌓은 사람은 무리를 하지 않고 필요이상으로 힘을 낭비하는 일 없이 그리고 일의 마무리도 무리함이 없이 훌륭하다. 그것이 수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도'가 있으며 거기에 인생 본연의 자세의 모형이 있다. 힘으로 무릅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대상의 접은 줄에 따라 자연히 대상이 해체되도록 궁리하는 것이 인생의 비결이다. 장자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달인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었다. 장자는 인간의 재앙과 복도, 생사도, 떠나는 자는 뒤쫓지 않고 찾아오는 자는 거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연의 운행이라고 받아들여 태연하게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양생의 비결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세' 에서 장자는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의 본연의 자세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거기서 한결같이 논하게 되는 것은 수행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사회에서 삶을 위한 수양으로서 장자는 마음을 비우라는 것과, 무용의 용의 존재로 되어라 라는 것의 두 가지를 설명하였다. 마음을 비우라 하는 말은 심재의 방법이라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인간세'에서 장자는 공자와 안회와의 대화라고 하는 우화를 설정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대종사'에서는 이 심재의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켜 '좌망' 의 우화를 싣는다. 공자의 가르침을 고분고분 듣고 수업에 힘쓴 안회는 마음을 비운다고 하는 심재의 영역을 넘어 가만히 있으면서도 자기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잊는다는 좌망의 경지에 도달하여 거꾸로 스승인 공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시비가 끝없이 뒤얽히는 이 세상에 있어서, 특히 권력이 작용하는 사회에 있어 천수를 다하여 살기 위해서는 무용의 용의 존재로 되라는 말을 장자는 되풀이해서 설명한다. 부재이기 때문에 천수를 다한 예로써 지리소라는 불구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부재, 무용의 용이 천수를 다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진짜 본연의 자세는 재라든가 부재라든가 하는 사로잡힌 한정된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허무의 길을 타고 소요하는 것이 최상인 것이다. 장자는 또 달리 사용하는 입장에서 무용의 용을 설명하였다. 사용되는 측에 있어서는 쓸모없는 존재로 되면 천수를 다할 수 있지만 사용하는 측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러한 무용의 용과 같은 존재를 크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장자는 인간의 지혜를 영리한 체 하는 것, 특히 유가가 말하는 인의를 바탕으로 하는 도덕적 작위의 영리한 체함을 부정했다. 거기에서 장자의 정치론이 시작된다. 장자의 정치론은 '응제왕'에서 보인다. 다만 정치라고 말하더라도 장자의 경우는 절대자로서의 개인의 본연의 자세를 추구하려는 것이 그 입장이므로 이상적인 치세 아래에 있어 제왕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라고 하는 문제에 답하려고 하는 것이다. 장자는 순박함이 손상되지 않는 정치야 말로 최상이라고 했고, 위정자는 스스로 모든 욕망을 떠나서 마음을 적막무위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애당초 도덕이라는 것은 무위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만물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근본인 것이다.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재시키는 것에 마음을 쓰면서 그 공을 스스로의 것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는 욕심을 줄여 마음은 무의 상태로 두었을 때 비로소 만물은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활동시켜 이상의 치세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3.12.04| 3페이지| 1,000원| 조회(756)
    미리보기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서평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사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이런 책이 존재하는 사실도 몰랐다. 외국인이 쓴 한국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제목의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귀화(歸化)한 외국인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니···이건 나로서는 상당히 이질감과 거부감을 들게 하는 어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읽지 않고 싶었다. 사실 과제물이 아니었다면 읽으려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일단 책은 펴들었다. 저자의 이름은 박노자 . 원래 소련(러시아)사람인데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라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한국어를 공부해서 우리나라에서 교수자리까지 오른 의지의 한국인(?)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거지만 우리나라말을 어쩌면 이렇게 한국사람보다도 잘 구사할 수 있는지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굉장히 고생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보았다. 한편으로 이러다 보니 꽉 막히고 고리타분한 한국 비판론자는 아닐는지 의심이 가고 괜히 책을 열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요즘 매스컴에 출연해서 대단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로버트할리나 이다도시등의 외국인 귀화자들이 말하듯 우리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보고있는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은 어떠할지 의문스러웠다. 또, 비교적 건강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외국인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지 일종의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앞서 말한 대로 저자인 박노자는 러시아사람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해 어렵게 고학하여 강단에 서게 되고 현재는 노르웨이의 강단에 서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소련에 있을 때에도 신문의 정치적인 이야기를 맹신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오게 되지만 오래 전부터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한시(漢詩)에도 일가견이 있고 한국영화도 즐겨 보았다.그가 처음으로 비판한 대한민국은 박정희 신드롬 으로 귀결된다. 그는 한국인들이 독재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며 박정희의 비뚤어진 군국독재를 한국경제의 부흥을 위한 불가피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에게 본때를 보여주려한 민족주의자 박정희 는 한낱 허상이며 그가 추진한 경제정책은 중단기적 효과는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성을 절대화하고 영구화 시켰다고한다. 또 그가 전통가치를 들먹이기는 했지만 유교를 일본 사무라이식의 충효사상으로 왜곡해 정권유지를 위해 썼고, 도덕적인 그의 이미지는 보수언론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과연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나로서도 박정희의 맹목적 숭배자들에게는 염증을 느낀다. 그의 군부독재정치는 어떻게 보아도 분명 잘못된 것이다. 국민을 우민으로 만들고 힘에 의한 통치를 꿈꾸던 박정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이렇게 한마디로 쓰레기 취급해버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해방이후 극도로 피폐한 국가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았고 지배층은 사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박정희가 도덕적인 이유로 뒤쳐진 한국을 구하기 위해 떨치고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따졌을 때는 누가 보아도 효과가 있었으며 사상누각 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무너질 그 사상누각도 지을 수가 없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후에 많은 후유증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마치 자본주의의 초기에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한 경제체재가 실패한 것을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음과 같이, 박정희의 출현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 그리고 국가의 뒤쳐지고 피폐한 상황의 타결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박정희가 도덕적이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힘의 지배를 행하였으며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이라고 해도 그의 경제개발 자체만은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박정희를 무조건적으로 좋게만 바라보는 우상숭배 적인 시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박노자 그의 두 번째 비판은 친구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친구는 본디 오래 사귄 친한 사람을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친구는 같은 집단의 얼굴밖에 모르는 사람이나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친구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파생하여 높은 외국인들이 오면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구타까지 하는 테러적인 인간상, 영어 공용화론의 망상, 외국에서 돈으로 사온 박사학위를 자랑스러워하는 인간군상들, 아직도 지배층이라고 하면 굽신거리며 이유 없는 충성을 하는 현실 등을 차례차례 비판했다.나도 친구라는 말이 아무데나 쓰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외국에서 귀한손님이 왔다고 하여 공사장의 인부들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충돌하여 폭력까지 행사하는 이런 사태는 사실 그리 흔치 않은 일이지만 아직도 대접해야할 귀한 사람 과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천한 사람 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 모든 문제들이 구별과 차별에서 나온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 모든 문제들도 그렇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속히 없어져야할 폐단(弊端)일 것이다.저자는 한국 종교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 중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일을 회상해본다.{그러나 나에게 가장 부끄러운 일은 고려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인 9년전에 일어났다. 그때 형편이 어려운 소련학생으로서 무슨 부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그 대학 후문 뒤에 있는 한 성경 읽기 모임(개신교 성향을 띤 일종의 학생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 모임과 접촉하면서 일어난 일이 모두 마음속에 큰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첫째, 그 모임이 나를 처음부터 놀라게 한 것은 내가 과거에 속했던 소련 콤소몰(공산주의 청년동맹) 뺨치는 철저한 출석. 회원 관리였다. 결석은 거의 죽을 죄 로 취급되었고, 일단 회원이 되고 나면 그 모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면 탈퇴를 영적인 타락으로 생각하는 그 모임의 지도자들은 거의 강요에 가까운 전화와 방문, 설득과 종용의 공세를 퍼부어...........(중략)둘째, 그 모임에서는 기도를 비롯해 모든 신앙 행위를 공개적으로 남 앞에서 해야 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었다....(중략)셋째, 그 모임의 회원들은 개신교 신자가 아닌 인간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으로 믿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더 무서운 독신 행위였다.이것은 단적인 예일 뿐이다. 뜬금없는 말이겠지만 나는 우리 원광대학교가 정말 좋다. 뭐 뛰어난 학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일류학교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학교의 재단 자체가 원불교인 것이 마음에 든다. 타종교에 비해 불교는 배타적이지 않다. 특히 원불교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반면에 한국의 종교 그 중에서도 기독교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물론 기독교의 본질은 그러하지 않으며 아직도 진정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편견을 배제하는 사제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되겠지만 실제로 접하게 되는 기독교는 광신적인 면과 원리와 논리를 가지고 궤변을 늘어놓는 특징이 있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기간이 있었다.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비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교적 정신적인 문제를 일찍 겪었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우주에는 인과성이 존재하므로 절대자, 즉 이 세상을 창조한 인물이나 혹은 원리 자체가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필연적인 것인데 이 세상의 숱한 종교들 중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에게 적합한 것일까? 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종교를 겪어보고 싶었고 각종 기독교의 교회들도 찾아보았다. 그런데 대체로 기독교에 가면 공통적인 현상(또는 사건)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의 경험과도 상당수 일치하는 이 부분은 나에게도 충격적이었고 기독교에 대해 묘한 비판의식을 갖게 했다.처음 교회에 가면 그 친절한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곧 이어 계속되는 신에 대한 광기와 남들 앞에서 옷을 벗듯이 자기 신앙을 남들 앞에서 고백(?)하는 시간을 갖고 만약 교회에 나오기를 거부하거나 한다면 끊임없는 일종의 스토킹(?) 수준의 종용과 협박을 받아야만 한다. 이것이 일그러진 우리 종교의 현실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것일까? 종교문제는 종교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이것은 저자가 인용한 구절중의 하나이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한국의 승려 사회,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폭력과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였다. 승려들도 의무적으로 군대에 끌려가는, 일제시대의 일본을 제외하고 어느 불교국가에도 없는 승려 징집제 부터 헨릭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생사를 벗어나려는 수행자들에게 살생의 업무를 덮어씌우려는 국가라니.....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왕(魔王)의 국가가 아니겠는가군대 즉 종교 외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도 종교적 믿음을 방해하고 왜곡한다고 하는 것이다.저자는 군대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군대에 가는 것은 시작이야 어떻게 되었든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생긴 그 시절부터 군대는 있어왔고 각 나라는 나라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징집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큰 문제점은 자신들에게 맞는 제도를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득권 층의 이익과 사회통념, 고정관념 즉 관성의 원리에 의해 기존의 국방제도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군대의 체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따라서 제도의 사항들을 보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만 의무병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큰 효율성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 피력하고 싶다. 또 저자는 군대문제 자체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독후감/창작| 2003.01.15| 4페이지| 1,000원| 조회(617)
    미리보기
  • 티베트와 중국 서평 평가B괜찮아요
    티베트와 중국이 책은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에서 현재까지의 관계를 정리한 책으로 비학문적 정서나 선입견, 혹은 편견 등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논쟁 쌍방의 주장에 대한 학문외적 가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레포트에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가 느낀 점과 나의 견해를 정리하려 한다.1950년에 중화인문공화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의 라사 등지에 진주하고 1959년에 14세 달라이 라마가 라사를 탈출하여 인도로 망명, 티베트 임시 정부를 수립한 이후, 티베트의 독립 문제는 전 세계인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주로 티베트 임시 정부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티베트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티베트 독립국의 역사적 유래와 전승을 거론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통치를 지지하는 측에서도 티베트 독립 불가론의 이론적 근거를 역대 중국 왕조들과 티베트의 관계로부터 발견하려 하였다. 이로 인해 티베트 독립 당위성에 관한 양측의 성명전은 자연히 역사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여, 티베트 독립 문제는 단순한 정치 외교적 현실 문제의 차원을 넘어 역사학 분야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로 포섭되기에 이르렀다. 1967년에 티베트인 쩨폰 샤캅파가 「티베트 정치사」란 책을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하고 1976년에 인도에서 티베트어로 출간되고, 1980년에는 다시 「장구정치사」란 이름으로 중국어로 출간되었다. 이는 곧 서구와 티베트 및 중국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샤캅파의 책은 실천적 티베트 독립 운동에 믿음직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역사학 분야에서 티베트 독립 문제에 접근하려는 학자들에게도 역사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네덜란드의 국제법 학자 반그라그가 지은 「티베트의 지위」이다. 반면에 왕귀, 시죠니마, 당가위등 중국인 및 친 중국계 티베트인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서장역사지위변」은 샤캅파와 반그라그 비판의 집대성이다. 이 책은 “전면적, 체계적으로 서장 독립론을 비판 반박하기 좋은 책이라는 이유로, 중국 학계의 즉각적이며 적극적인 호평을 받았다.이 책은 이처럼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측(티베트측)과 티베트의 중국 종속을 주장하는 측(중국측)의 견해를 정리 소개한 책으로 그럼 양측의 주장을 요약해보도록 한다.우선 샤캅파와 반그라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서장(西藏)은 완전 독립하여 중국과 서로 분리되었으며, 서장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토번 국왕은 아시아의 어떠한 통치자와도 평등한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당번 양국의 관계는 긴장하였다. 문성공주는 당 황제가 토번의 위협 하에서 억지로 출가시킨 것이다. 송대 서장의 대외 관계의 중심은 이미 중국으로부터 인도와 네팔로 옮겨졌다. 원조 이후, 서장과 중국의 관계는 단지 라마와 시주간의 단월관계, 공시관계일 뿐, 지방 정권과 중앙 정권간의 관계는 아니다. 원조 황제와 샤캬 법왕, 청조 황제와 달라이 라마의 관계는 모두 몽고인, 만주인과 서장인 간의 관계일 뿐, 중국인과 서장인의 관계는 아니다. 원대의 중국은 단지 동몽 제국의 일부분이었으며, 청대에는 단지 일개 만주 제국만이 존재하였고 중국은 그 중의일부분 이었다. 명조 황제는 몽고인의 서장에 대한 권력을 계승하지 않았고, 서장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아. 짱추갈짼 시기의 서장은 이미 독립을 취득하였다. 5세 달라이는 통일된 서장국의 유일한 군주로서, 순치황제와 5세 달라이는 실제상 모두 상대를 각자의 영토와 신민에 대한 주권을 향유하는 군주로 인정하였으며, 청정이 파견한 주장대신은 단지 일개 대사에 지나지 않았다. 민국이 개시되자, 13세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서 서장으로 돌아온 뒤, 서장은 완전히 중국으로부터 이탈하여 독립한 일개 정치 실체였다. 1940년에 라사에서 14세 달라이 라마 좌상(즉위) 전례 의식에 출석한 중국 대표 오충신은 다른 국가의 대표에 비해 더 많은 의의를 갖지 않는다. 서장은 1950년 이전에 완전히 독립하였으니, 서장의 역사, 정치 발전은 그것이 하나의 주권 국가였음을 나타낸다. 중공 군대가 서장에 진입한 것은 침략으로, 이는 서장에 대한 겸병이다. 17조 협의를 체결한 것은 달라이 라마가 대표들에게 전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서장 정부도 대표에게 체결의 권한은 주지 않았다. 서장의 과거는 청정 미묘하였으나, 중공의 침입을 받은 뒤에 동요의 수십 년으로 변질되었다. 중공은 서자엥서 인권을 침범하고, 종족 절멸을 실행하였으며, 서장을 노역 유린하고, 서장을 하나의 큰 감옥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침입으로 사망한 장인이 100만에 달하여, 서장 총 인구(700백만)의 7분의 1을 초과하였다. 응당 서장에 민족 자결을 실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하며, 중국은 레닌이 제출한 민족 자결권 원칙을 위배하였다. 공산당과 종교는 서로 용납할 수 없어, 중공은 장인의 종교 신앙을 압제하였다. 중공은 서장의 자원을 약탈하고 서장의 경제를 파괴하며 서장의 문화를 훼멸하여, 서장은 중국인의 통치 하에서 정체하여 발전하지 못하였다. 중공은 또 전 서장을 고도로 군사화하여, 서장에 있는 해방군의 병력이 30만인에 달한다. 하나의 독립된 서장국을 회복하고 중건하는 것은 반드시 중국의 이익과 위해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고 국제적 긴장 상황을 완화시킨다. 서장의 독립은 600만 장인의 군본 사업이며 분투 목표다. 달라이 망명 정부는 전체 장인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합법적 정부다. 중공은 서장 문제 상에서 국제법과 평화 공존 5 원칙을 위반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대체로 1. 서장은 중국에 속하지 않았다는 주장, 2. 당과 토번은 싸움을 주로 하였다는 주장, 3. 송대에는 중심이 밖으로 옮겨졌다는 주장, 4. 단월관계만 있었을 뿐이다는 주장, 5. 명조는 서장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주장, 6. 만주와 몽고는 모두 중국이 아니다는 주장, 7. 서장은 하나의 정치실체였다는 주장, 8. 서장은 해방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 9. 중공이 서장을 침략하였다는 주장, 10. 중공이 인권을 침범하였다는 주장, 11. 서장에 민족자결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주장, 12. 망명정부는 합법적이다는 주장 등 12개 방면으로 나뉘어진다고 주장하였다.다음은 티베트의 중국 종속을 주장하는 왕귀 등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중국은 허다한 민족이 공동으로 창조하여 이룬, 하나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다. 장족은 이 다민족 국가의 중요한 일원으로, 중국 경내의 청장고원의 서장 자치구와 청해성 대부분 지구 및 감숙성 남부, 사천성 서부, 운남성 서북부 등지에 거주한다고 전제한 다음, 7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기원 7세기 전반, 장왕 송쩨감포가 청장고원 위의 장족 제부를 통일하고 토번 왕조를 건립하여 당조 황실과 빈번하게 교왕하였다. 송쩨감포와 문성공주, 트리드쭈쩨과 금성공주의 선후 양차의 혼인은 장한 민족간에 긴밀한 정치, 경제, 문화 관계가 일보 일보 건립되어 간 표지가 되었다. 9세기 중엽에 통일적 토번 왕조가 붕괴된 뒤, 청장고원 상의 장족 각부는 분열되어 허다한 분산적 세력 집단을 이루었다. 송조가 개국한 이후, 이러한 지방 세력들 가운데 일부분이 송조에 귀부하여 장족과 한족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발전시켰다. 기원 13세기에 몽고인이 중국 영토 내 각 민족을 통일하여 원조를 창건하는 과정 중에, 서장은 정식으로 조국의 판도 안으로 들어왔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원조의 관할 하에서 서장 지방을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사캬에게 부여하고, 몽고, 한족, 장족 등 각 민족이 경제, 문화를 공동으로 번영시키는 정치 연합체를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후기에 개국한 명조는 기본적으로 원조가 서장을 다스리던 각종 제도를 계승하고, 아울러 중건다봉을 실행하여, 장구 각지의 8개 정교 수령을 법왕이나 왕으로 책봉하였고, 차마호시와 조공 회사의 두 가지 형식을 위주로 한 장구와 중원의 경제, 문화 교류를 더욱 빈번하게 하였다. 장족과 조국 각 민족의 관계는 전면적으로 증진하였다. 17세기 이후, 만족인이 전 중국을 통일하여 청조를 건립한 전기에,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를 차례로 책봉하고 카론을 임명하여 주장대신을 설립하였고, 서장 지방 정부 체제와 법규를 규정하는 흠정장정을 반포하여, 서장 통치를 진일보 강화, 서장과 조국의 더욱 긴밀하고 견고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19세기의 만청 시기에 이르러, 영 제국주의자들이 중국 연해를 침입함과 동시에 서장도 침입하여, 중국 각 민족의 관계를 이간하여 극력 도발하였고, 이에 더하여 부패한 청 정부가 대외 타협 정책을 실행하여, 항영 방면에서는 서장 지방 정부와 청조 중앙 정권 사이에 때로는 모순도 있었으나, 한·만·몽·회·장족 등 각 민족이 공동으로 구성한 중국이라는 이 통일적 정치 실체에는 조그마한 개변도 없었다. 20세기 초엽의 청말 만국초에 북경의 민국 정부와 남경의 국민 정부 중앙 정권과 서장 지방 정권의 기본 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이 원조 이래로 서장 지방에 대해 주권을 행사해온 사실도 바뀌어지지 않았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영도한 중국 인민 해방 전쟁이 전국적 승리를 쟁취하였다. 서장 지방은 1951년에 평화 해방을 획득하고, 반세기 이상 서장 인민을 속박한 제국주의와 확장주의 세력을 축출하였다. 공산당과 인민정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민족관을 지도하고 신형의 민족 정책을 실행, 각 민족은 처음으로 민족 평등의 권리를 향유하기 시작하였고, 장족을 포함한 다민족 단결, 우애, 합작의 조국 대가정이 점차 건립되었다. 1965년에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개 자치구가 건립되어, 전국의 각 성 , 시, 자치구와 같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건강한 대도를 큰 걸음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장족을 포괄한 전 중국 56개 민족은 혈육을 나눌 수 없는 정치, 경제, 문화의 통일체를 빚어내었다고 주장하였다.
    독후감/창작| 2003.01.15| 3페이지| 1,000원| 조회(46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50
50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1
  • A좋아요
    19
  • B괜찮아요
    15
  • C아쉬워요
    4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0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3:05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