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의 12신1. 제우스- 제우스(그리스어: Ζε??)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이다.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와 동일시된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아들이며 포세이돈, 하데스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첫번째 세대에 속한다. 번개와 독수리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긴 수염이 나 있는 강인하고 위엄있는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상체는 나신이며, 한쪽 손에는 번개 혹은 홀(笏)을 들고 있다. 제우스는 번개나 비 같은 기상 현상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며, 왕권 및 사회적 위계질서를 보장하기도 한다. 또한 호색한이기도 한 그는 헤라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여신이나 인간 여성 그리고 님프들과 차례대로 어울리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신화에 나오는 이름난 영웅들은 대부분 그의 사생아들이다.2. 헤라- 헤라(그리스어: ?ρα, Hera)는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주신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이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의 반려자인 유노에 해당된다.헤라는 올림포스 신화가 자리잡기 전부터 모신(母神)으로 숭배받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달리 헤라라는 이름의 어원은 그리스어나 인도유럽어에 속하지 않는 고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모스 섬과 아르고스에는 기원전 8세기경에 지어진 헤라의 신전이 있다. 이는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헤라는 종종 공작이 끄는 수레에 타거나 손에 여성과 풍요의 상징인 석류나 양귀비 씨앗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3. 포세이돈- 포세이돈(그리스어: Ποσειδ?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지진·돌풍의 신이다. 로마 신화의 넵투누스(라틴어: Nept?nu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 태어났으며, 제우스 및 하데스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 돌고래, 물고기, 말, 소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주로 삼지창(트리아이나)을 들고 물고기나 돌고래 떼와 함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날리며 파도를 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툭하면 다른 신들이나 인간들과 다투었다.4. 하데스- 하데스(그리스어: ?δη?)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이다. 로마 신화의 플루톤, 디스 파테르, 오르쿠스 등에 해당한다.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 태어났으며, 제우스 및 포세이돈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5. 아테나- 아테나(그리스어: Αθην?)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전쟁·직물·요리·도기·문명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아르테미스, 헤스티아처럼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처녀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투구, 갑옷, 창,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방패(아이기스), 올빼미가 대표적 상징물이다.언제나 투구와 갑옷을 입고,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든 무장한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는 달리 총명하고, 이성적이고, 순결하여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푼다. 그녀의 신전으로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테네의 수호 여신이며 ‘아테네’라는 명칭의 어원이다.6. 아폴론- 아폴론(그리스어: Απ?λλω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과 예언 및 의술·궁술·음악·시를 주관하는 신이다. 로마 신화의 아폴로(라틴어: Apollo)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와는 남매지간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월계수와 리라, 활과 화살, 백조, 돌고래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훤칠하고 준수한 미남으로 묘사되며, 그래서 여성 및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헤르메스가 선물로 준 리라를 잘 연주하고 활도 잘 쏠 줄 알았다.7.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그리스어: Aρτεμι?)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야생동물·처녀성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디아나(라틴어: Diana)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아폴론과는 남매지간이다. 올륌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곰과 사슴, 활과 화살, 초승달이 대표적 상징물이다.몸종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사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야생적인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달이 비칠 때 그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때는 산짐승과 초목이 춤을 춘다고 한다.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활을 무기로 들고다니며 그녀의 화살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므로 희생물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성격이 거칠고 복수심이 강해서 그녀의 진노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허다하다. 고대인들은 아르테미스를 유방이 가득한 여신으로 묘사할 정도로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는데,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도 아르테미스 신앙과 기독교가 대립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8. 아프로디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랑·미·풍요의 여신. 후의 로마신 비너스와 동일시된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며 사랑의 신 에로스의 어머니라 하고,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크로노스에게 잘린 우라노스의 남근 주위에 모인 바다의 포말(아프로스)에서 생겨났다고 한다.9. 헤르메스- 헤르메스(그리스어: Ερμ?? - '표지석 더미'라는 뜻)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행자·목동·웅변·체육·무게·상업·도둑을 주관하는 신이며, 주로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전령 역할을 수행한다. 행운의 발견은 헤르마이온(hermaion), 국경에서 이방인의 언어를 통역하는 사람을 헤르메네우스(hermeneus)로 불렀다. 숨은 의미를 해석하는 학문인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용어는 헤르메스에서 유래한다.혼합주의(syncretism)를 통하여 헤르메스와 이집트 지혜의 신 토트(Thoth)가 결합하여 알렉산드리아의 그레코로망 문화의 상징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라는 신비로운 전설의 인물이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가 쓴 것으로 알려진 저작물들이 간행되었다.
◎ 헤라클레스의 12과업▷ 12과업의 이유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지시로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오스의 부하가 되었다. 에우리스테오스는 자신의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고자 헤라클레스를 미케네로 오라고 지시하고 모든 일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에이리스테오스가 형님 행세를 철저히 하며 헤라클레스를 부려먹자 비위가 상한 헤라클레스가 그의 명을 거절했다. 이에 헤라가 그를 미치게 하였다.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에우리스테오스의 아이들로 착각하여 모두 활로 쏘아 죽였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델포이의 신탁(神託)에 따라 속죄의 행위로 종제에 우리스테오스의 신하가 되어 12년간 노역에 종사하게 되었다.1. 그 첫 번째는 네메아 숲속의 사자를 잡아 그 가죽을벗겨오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 사자를 동굴 속에몰아넣고 맨손으로 잡아 그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왔다.그 뒤부터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무서워 그를성내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부하를 시켜 명령만전달했다.2. 두 번째 임무는 레르네 늪에 사는 괴물 히드라를없애는 일이었다.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이고 독을내뿜으며 곡식과 소떼를 해치는 물뱀이었다.히드라를 늪 밖으로 유인해 내어 목을 베었으나 히드라의머리는 잘라내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곧 새로 생겨나는불사의 머리였다. 그러자 조수로 따라온 헤라클레스의조카 이올라오스에게 장작개비에 불을 붙여 목을 자를때마다 그 자리를 모두 지지게 하였다. 죽은 히드라의배를 갈라 그 독액을 화살촉에 적셔 놓았다.3. 세 번째 과업은 케리네이아 산에 살고 있는 황금 뿔이 달린 암사슴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이 암사슴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따라다니는 성스러운 동물로 청동 발이 달렸다. 헤라클레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양해를 얻은 후 꼭 일 년을 쫓아다니다가 잡아 왔다.4. 네 번째 과업은 들에 내려와 행패를 부리던 에리만토스 산의 산돼지를 사로잡아 오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산돼지를 끌고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이자 무서워서 숨어 버렸다고 한다.5. 다섯 번째 과업은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을 하루 동안에 청소하는 것이었다. 아우게이아스 왕은 소를 3천 마리나 가지고 있었는데 30년 동안 한번도 청소해 본 일이 없었다.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 강의 물줄기를 끌어다가 외양간으로 흐르게 하여 단번에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6. 여섯 번째는 스팀팔로스 사람들을 괴롭히는 새떼를 쫓는 일이었다. 그 일대는 숲이 울창하여 무수한 새떼들이 깃을 치고 있던 까닭에 시끄럽고, 곡식을 쪼아먹고 가축을 해치는 등 피해가 심했다.그 중에는 주둥이와 발톱이 무쇠 같고 사람 고기만 먹고 사는 새들도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아테나 여신의 조언으로 청동 꽹과리를 만들어 요란하게 두드렸고, 놀라 달아나는 새들을 화살로 쏴 죽였다.7. 일곱 번째로 해야 할 일을 포세이돈 신이 미노스 왕에게 선물로 준 크레타의 미친 황소를 붙잡아 오는 일이었다.미노스 왕이 제물로 바치겠다고 해놓고 아까워서 다른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자, 포세이돈은 화가 나서 소를 미치게 한 것이었다.헤라클레스는 이 소를 잡아다가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바쳤다. 그 후 소는 황에게서 풀려나 돌아다니다가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죽었다.8. 여덟 번째는 디오메데스의 말을 잡아오는 일이었다. 이 말은사람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 헤라클레스가 이 말을 지키고 있는파수꾼들과 디오메데스를 죽여 먹이로 던져 주었더니 온순해졌다고 한다. 이 말은 그 후 풀려 나와 올림프스 강으로 가서 뛰놀다가야수들한테 잡아 먹혔다고 한다.9. 아홉 번째 시련은 아마존 여족의 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가져오는 것이었다. 그 허리띠는 무신 아레스가 그녀에게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중하게 그 허리띠를헤라클레스에게 주기로 했다. 그런데 심술이 난 헤라 여신은헤라클레스가 히폴리테를 납치하러 왔다고 소문을 퍼뜨렸다.여기에 분개한 아마존 여인들이 무장하고 헤라클레스에게달려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여왕이 뒤에서 조종하는 것으로생각하고 여왕과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 뒤 허리띠를가지고 돌아왔다.10. 열 번째는 게리온의 붉은 소를 훔쳐 오는 일었다. 서쪽 끝 어는 섬에는 몸뚱이는 하나이자만 머리가 세 개, 팔다리가 여섯 개인 괴인 게리온이 살고 있었다.그는 붉은 소떼를 갖고 있었는데 사나운 개를 시켜 이 소떼를 지키게 했다. 갖가지 어려운 일을 무사히 해결한 뒤 그는 게리온을 죽이고 소를 데리고 돌아왔다.
위안화 평가절상과 우리의 대응목차중국 환율 제도의 변천사1위안화 절상의 배경2중국의 입장3한국에 미치는 영향 및 결론41. 중국의 환율제도 변천사1. 중국의 환율제도 변천사이중환율제-1987~1993 2) 관리변동환율제-1994~1997 3) 사실상의 고정환율제-1997~2005 4) 변동환율제(복수통화바스켓제도)-2005~현재1. 중국의 환율제도 변천사▷ 위안화 변동 추이관리변동환율제 5.8→8.62아시아 통화위기→ 사실상의 고정환율제2%절상 및 복수바스켓 제도현재 환율 1$=7.4위안2. 위안화 절상의 배경▷ 미국-제3차 미중전략경제대화를 통해 양국간 무역관계에 존재하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겠다(07.12.12~13에 있을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미국의 대표인 헨리폴슨 재무장관) ▷ EU-2005년 이래 위안화는 유로화에 비해 8% 절하됐으며 이 기간 중국은 유럽과의 무역에서 흑자 증가율이 20%를 넘었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가속화가 필요하다. (07.11.28 EU-중국간 11차 정상회담에서 EU집행위원장 바로수) ▷ 일본-중국측에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위안화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질문(07.12.1 중일 고위경제대화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본 재무상)▷ 중국의 연도별 수출입 동향 -중국세관통계- (단위:US$ 백만)85,828357,826443,5642007.1~5177,530791,794969,3242006102,105660,222762,327200532,836560,811593,647200425,377413,096438,473200330,339295,303325,642200223,094243,567266,661200124,145225,095249,2402000무역수지수입수출년도2. 위안화 절상의 배경2. 위안화 절상의 배경1)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무역 적자 2) 무역적자의 원인이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라고 지목됨 3) 자국 산업의 보호▷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추이 (단위:억달러)2. 위안화 절상의 배경▷ EU의 대중국 무역적자 증가 추이 (단위:억유로)2. 위안화 절상의 배경-2*************-*************40-580967465516559대만88*************14378*************66832537독일-1*************2-452608981844558-417577687435117한국-10*************-2*************72-16*************7일본*************3482**************************4505홍콩*************4*************0*************35162939미국무역수지수입수출무역수지수입수출무역수지수입수출2007.1~520062005▷ 중국의 주요 대상국 수출입 및 무역수지 -중국세관통계- (단위 : US$ 백만)2. 위안화 절상의 배경3. 중국의 입장2) 중국 내수 성장 화폐 가치 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상승 수출 중심의 산업에서 내수 중심의 경제로 전환▷ 위안화 절상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1) 중국 경제 위축 중국 상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 하락 외국인 투자의 위축3. 중국의 입장'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자국의 문제를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려 하지 마라. 미국은 계속해서 다른 나라를 통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2004.11.23 인민은행부총재 리뤄구李若谷)'시장의 기능을 확대하면서 환율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 점진적으로 환율 변동폭을 확대해 나갈 방침' (2007. 11. 28 중-EU 정상회담에서 원자바오 총리)4. 한국에 미치는 영향 및 결론▷ 수출시장에서의 변화중국 상품 가격 상승한국 상품 가격 경쟁력 상승▷ 대중(對中) 무역관계 변화중국의 구매력 증가대중 수출 증가중국 상품 가격 상승대중 수입 감소4. 한국에 미치는 영향 및 결론▷ 부정적 효과중국 상품 가격 상승소비자 부담 증가위안화 절상원화 절상 부담원화 절상 가능성수출 증가 효과 상쇄중국의 경제 위축한국 경제 동반 위축4. 한국에 미치는 영향 및 결론▷ 결론위안화 절상 가능성에 대비한 경제 정책 수립가격 경쟁력보다는 품질 경쟁력을 통한 우위 중시세계 각국으로 수출 시장의 다변화{nameOfApplication=Show}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이 동북아 영토분쟁에 미치는 영향1. 들어가기에 앞서10년이 넘게 이어온 중국의 개혁 및 경제발전 정책은 중국을 미국에 이은 세계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으로 바꾸어놓았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에너지 수출국이었으나, 그 이후부터 중국은 에너지 순수입국으로 바뀌었다. 중국은 많은 유전에도 불구하고, 그 막대한 소비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세계 각지에서 수입하고 있다.경제의 고속성장뿐 아니라 에너지 사용의 비효율성, 에너지 공급원의 단일성 문제까지 더해져 중국은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전략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외부적 해결책 중 대표적인 것이 해외에서 에너지를 찾는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중동, 아프리카, 남미, 러시아, 호주, 캐나다, 중국 근방까지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중국의 이러한 에너지 확대는 최근 들어 많은 이슈를 낳았다. 그 이유는 중국이 확대정책이 다른 국가들, 특히 강대국들과 많은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소비량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리고 우리 한국이 속해 있는 동북아 국가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동북아의 영토를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한다.2. 동북아 각 지역에서의 분쟁에너지 확보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할 요소는, 첫째, 석유공급원 확보, 둘째, 석유 운송로의 안보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필수적인 요소와 동북아의 영토분쟁들은 서로 맞물려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동북아에서 가장 국경을 많이 맞대고 있는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은 동북아 지역 영토 분쟁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1) 러시아를 둘러싼 중일분쟁러시아의 석유매장량은 세계6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1위이다.러시아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베리아 송유관 사건과 사할린 사건이다.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결과 중국이 시베리아 송유관, 사할린 유전 모두 승리하여서 원유 및 천연가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중일간 영토분쟁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에너지 확대정책에 따른 중일간의 치열한 분쟁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2) 동중국해(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일본은 동중국해 대륙붕을 일본 최대, 최후의 석유보고라 부르고 있다. 분쟁 지역은 대만 동북부 해역 위치하며, 절강성 닝보시 동남쪽 350km지점이다. 중국은 이곳에서 중국EEZ내에서 유전과 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일본은 잘못된 EEZ설정, 중국의 무분별한 자원 채취, 공동 개발 문제 등을 구실삼아 중국과 분쟁중이다. 이 곳은 자원적 이유, 군사적 이유 등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있어왔다. 이에 더해서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센카쿠열도에서의 중일 분쟁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3) 남중국해를 둘러싼 분쟁동남아 해역, 특히 말라카 해협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미국에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운송로 안보도 필수요소이다. 말라카 해협은 일본과 한국의 물자수송, 자원수송에 중요한 관문이며, 중국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이다. 또한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의 남중국해에 묻혀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중국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자원이다. 중국은 이곳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과 다양한 협상을 하고 있다.4) 한국과 중국의 서해를 둘러싼 갈등한국에서 석유가 나온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서해의 대륙붕이 될 것이다. 1970년대부터 한국은 서해 대륙붕에서 석유를 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중국은 이러한 노력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은 대륙붕의 경계를 교모하게 이용해서 서해를 자신들의 영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2광구와 그 주변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자원매장가능성이 높은 4광구와 7광구는 중국이 계속해서 주변에서 석유시추를 하고 중국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우리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5) 북한과 중국의 관계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은 북한에까지 손길을 미치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밑바탕으로 중국은 북한의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각종 지하자원개발은 물론 북한 서해 바다(서한만 분지)의 유전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등 북한의 자원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에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3.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이 동북아 영토분쟁에 미치는 영향동북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분쟁이 있어왔던 곳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으며 또한 북한이라는 특수한 국가가 있기에 항상 정치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위협적인 에너지 확대 정책은 이미 갈등이 많았던 동북아 지역 영토 문제에 기름을 끼얹는 모양이 되었다. 중국의 에너지 확대 정책은 이미 다른 국가의 사정이나 국제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의 성격상 영토 분쟁도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 현대 중국을 찾아서‘현대중국을 찾아서’는 간단히 말해 중국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국의 오랜 역사 중에서 명말부터 시작하여 1989년까지 약 400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을 찬찬히 살펴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미국인 ‘조너선 D. 스펜스’이다. 미국인이 중국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라는 의문은 그의 화려한 경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예일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이며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현대중국을 찾아서’말고도 ‘천안문’, ‘강희제’, ‘칸의 제국’ 등 중국에 관한 다양한 책을 집필하였으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이 책은 중국의 역사를 역사책이 보통 그렇듯이 연대순으로 짚어나간다. 하지만, 연대순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고, 이 책은 책의 중심이 ‘사람’이다. ‘사람’중에서도 ‘중국사람’이라는 것에 포인트를 맞춘다. ‘중국사람’은 모든 중국인을 포괄한다. 황제부터 시작하여 장군, 학자등과 일반 상인, 농민에서 노예, 천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중국인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물론, 일부 서양인들이나 일본인들도 책에 나오지만 이들은 책의 등장인물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인 ‘중국사람’을 보조해 주는 역할일 뿐이다.책은 표지부터 강렬하다. 표지의 색깔은 붉은색이며 앞에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이 그림은 중국인이 자랑하는 ‘자금성’을 그린 그림이다. 또한 그 아래에는 쟁(爭)이라는 한자가 써 있다. 책의 표지는 그 책의 핵심 생각을 집약해서 나타내 주는데, 이 책의 표지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잘 만든 표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 그것도 현대 중국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쟁(爭)’이라고 표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쟁(爭)’은 모든 형태의 다툼을 의미한다. 작게는 중국 내의 가정, 황궁 등에서 일어나는 작은 분열들, 좀 더 나아가 중국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계층간, 조직간의 다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과 열강세력들과의 다툼들을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이 약,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는데 이는 상급계층의 부패와 모순 속에서 그 이유는 찾을 수 있다. 중국의 황궁에서는 황제가 업무를 태만히 하고, 환관들이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외부에서 해적들의 침입으로 민생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포루투칼의 대규모 은 유입으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자연현상도 좋지 않아서 기근이 번번히 발생하였다. 이리하여 명 왕조는 농촌에 대한 지배력을 서서히 잃어갔으며 그 결과 과세구조의 통제력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리쯔청에 의해 반란이 일어났으며 이 반란은 약해져있는 명나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된다. 그리고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그 세력을 넓히고 명을 위협한다. 명나라 왕조는 리쯔청에 의해 무너지고 리쯔청이 명을 다스리게 되지만 곧 이어 누르하치의 만주가 그들과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리쯔청은 패배하고 누르하치는 베이징으로 입성하게 된다. 어느 왕조나 그랬듯이, 왕조의 말기에는 상급 계층이 부패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백성들의 민심을 잃게 되고, 자연재해나 전염병이 겹치며, 마지막으로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보통 반란으로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지만 중국의 경우는 반란자가 아닌 다른 국가에 의해서 왕조가 바뀌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만주족은 명의 잔당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차라리 리쯔청이 명을 다스렸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책에서 저자는 만주족과 명나라의 전쟁을 연대와 인물, 봉기지역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서술하였는데, 이는 이 당시 명나라의 반항이 어떠했는지를 효과적으로 알게 해 준다.명나라와 만주족의 다툼은 만주족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만주족은 중국을 점령한 이후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은 만주족을 그들의 통치자보다는 그들의 나라를 빼앗은 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중국은 ‘반만주’라는 명분하에 집결하게 되고의 권력구조의 재정비 그리고 도덕적, 문화적 가치였다. 옹정제의 싸움은 다양한 형태로 그 결과가 나오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많이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옹정제가 추구했던 것들이 실제로 중국 내에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옹정제 이후의 황제는 건륭제이다. 강희,옹정제가 중국 통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중국은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이 있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이 당시 중국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였고 이러한 점은 잠재적으로 불안요소가 되었다. 건륭제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중국을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다스렸지만 말기에 그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건륭제 말기의 현상은 명말기와 비슷하다. 관료들의 부패와 황제의 권력 약화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반란이 그 현상들이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 위대했던 세 명의 왕, 강희?옹정?건륭제의 쟁(爭)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또한 저자는, 후에 청나라가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들이 이러한 문제들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잘 엮어내고 있다.이후에 일어나는 쟁(爭)은 외국인들에 대한 싸움이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는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무역, 선교, 방문, 관광 등 다양한 이유로 유입되었는데 청나라는 이들에 대한 대응을 잘 하지 못한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중화사상일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가장 위대한 민족이고, 외부 세력은 모두 오랑캐라는 중화사상은 외국인들을 단순히 외부 오랑캐들로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은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이나 아시아 다른 국가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번성하였고 발전된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중화사상은 이후 중국의 발전을 저해하였고 이는 중국이 나중에 겪게 되는 반식민지의 원인이 형을 초래하였으며 후에 열강의 공격의 시초였던 아편전쟁의 원인이 된다. 이렇듯 중국의 외국인들과의 싸움은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기의 중국에 대해서 나름대로 비판적인 자세로 책을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구시대적 국가관가 폐쇄성 등을 중국의 문제로 꼽고 있으며 이것이 중국의 국력약화의 원인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당시 중국 민중들의 사상적 변화를 좀 더 나타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것이다.아편무역은 계속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도광제는 아편에 대한 모든 산업을 금지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러한 중국의 아편 봉쇄에 영국은 대항하고 1839년 아편전쟁이 발발한다. 영국의 얼마 안 되는 병력에 중국은 패배하고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이 난징 조약이다. 난징 조약의 결과 중국은 외세와 불공정한 많은 계약들을 맺게 되고 이는 열강들의 중국 침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계기가 된다.이 시기의 중국은 외국과의 싸움과 내부문제와의 싸움을 동시에 벌이고 있었다. 중국 내부의 불안으로 많은 반란자들과 불만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1840년 드디어 중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장기적인 반란인 ‘태평천국’이 발발한다. 반란의 주동자인 홍수취얀은 기독교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적당히 혼합하여 태평천국의 사상을 만들고 반란을 일으킨다. 태평천국의 교세는 나날이 커져서 청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들고 통치를 하는 등 반란치고는 성공한 경우가 된다. 하지만, 많은 한계에 부딪히며 결국 청에게 무너지고 만다. 태평천국은 중국 내부의 싸움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겉으로는 중국 민중들과 청정부와의 싸움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중국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도입이 반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후에 일어난 이슬람교도들의 반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다음 싸움은 외세가 아닌 새로운 것들과 옛것들의 싸움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나자 중국의 내부에서 슬슬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 개혁의 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쑨원을 대표로 하는 중국 혁명세력은 청왕조 자체의 개혁을 원했기에, 그들 스스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1911년 일어난 반란은 빠른 속도로 그 세력을 확장하여 1912년 쑨원은 공화정을 수립하는 등 그들의 목적을 거의 달성하게 된다. 1912년 2월 12일 청왕조는 황제 푸이의 퇴위를 선언하고 왕조는 종말을 맞게 된다. 300년을 이어온 청왕조뿐 아니라 2000년 이상 이어온 중국의 제국사가 막을 내린 것이다. 저자는 이 순간을 비교적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내용이 너무 담담해서 청왕조의 몰락이 너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중국 제국사의 종말을 이렇듯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국가 통치에 제국사가 얼마나 부질없는 제도였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인상을 받았다. 중국의 싸움에서 청왕조는 패배하였지만 민중은 승리하였다. 중국의 주인이 민중으로 본다면, 중국은 1912년 위대한 승리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중국의 싸움은 허무하게 청왕조가 무너짐으로써 승리하였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승리의 뒤처리를 해야 한다. 승리의 결과는 혼란이었다. 왕조 통치라는 구심점을 잃은 중국은 방황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서구 열강의 간섭은 계속되고 거기에 일본까지 가세하게 된다. 쑨원은 중국 정치 제도를 민주화시키려고 노력하고 공화주의 정착에 힘쓴다. 하지만, 공화국 최고 권력자인 위안스카이에 의해 쑨원의 국민당은 무너지고 쑨원의 공화주의의 꿈은 무너지고 만다. 위안스카이는 비록 공화정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그는 절대군주제 사상에 기초를 둔 지도자였다. 그의 군주제를 바탕으로 한 정치사상은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1916년 그는 사망한다. 이렇듯 중국의 어설픈 공화국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중국은 위기에 부딪힌다. 왕조의 몰락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구심점이 없어진 것이다.이 당시 중국의 싸움은 통합과의 싸움이다. 혼란한 시기를 정리하고 중국을 통합하기 위한 중국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