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기*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0
검색어 입력폼
  • [경제학, 경제성장론]졸업논문 경제성장 요인 분석: 성장모형과 성장회계방정식을 활용하여
    Ⅰ. 연구의 목적 및 방법세계화, 지식화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을 글로벌-지식사회라고 한다. 세계는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축적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노동과 자본, 토지 등 과거의 생산요소만큼 중요한 생산요소로 인식하고 있다.지식과 정보는 새로운 생산요소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숙련도를 높이고 전문화하여 고급자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창출된 숙련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글로벌-지식기반 사회에 대비하고,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목표를 ‘지식과 정보의 창출’에 역점을 두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과거의 경제성장은 노동과 자본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확체감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력은 한계가 있다. 또 최근의 국제환경과 정치, 경제, 문화 등 국내환경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지식과 정보의 영향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기의 발전으로 ‘어떤 하나의 지식’은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자산이 되었다. 지식은 공유하면 할수록 그 파급효과와 생산력이 확대된다. 즉 수확체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보와 지식은 앞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해감에 있어 과거의 노동과 자본의 역할을 대체하며 그 이상의 추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본 논문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인적 자본의 하나로 인식하고, 인적 자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전세계인이 ‘성장의 기적(Growth Miracle)’이라고 부러워하는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놀라운 성장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과거의 성장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해보고, 각 투입 요소별 기여도와 총요소생산의 기여도는 어떠하였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있어 정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노동과 자본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자원의 배분 및 소득의 재분배 등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따라 경제성장의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선 성장 후 분배 정책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펴왔다.셋째, 방법론상의 진보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동태이론의 진보로 인해 기존의 정태 분석의 한계를 넘어 현실 경제에 대한 분석과 정책 제안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넷째, 전통적인 성장이론(신고전학파 성장이론)이 지니는 한계점 때문인데 그 한계점 중의 하나는 노동과 자본의 질적인 측면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2000년을 전후한 미국 경제의 성장은 노동과 자본의 양적 확대보다는 고도의 기능 또는 지식을 가진 소수의 인력이 보다 적은 자본을 사용하여 좀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기인하고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다른 한계점은 경제성장의 요인을 주로 기술 진보에 돌리고 있으나 기술진보율은 모형 밖에서 결정되는 외생변수이기 때문에 기술 진보의 원인 및 수준을 설명해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1870년대에 세계에서 비교적 부유한 날에 속했던 아르헨티나가 아직도 개도국 상태에 머물러 있는 반면, 100여 년 전 아르헨티나에 비해 훨씬 낮은 소득 수준에 있던 독일이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번영 국가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생적 성장모형을 직접적으로 검증하는 연구는 거의 없고, 단지 신고전학파 모형에 의해 도출되는 점근현상 가설을 검증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점근현상 가설이 기각된다고 해서 신고전학파 모형의 타당성을 부정하거나 내생적 성장모형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간 성장률의 차이는 조세 및 관세 정책 등의 거시경제 정책과 제도의 효율성에도 의존하기 때문이다.내생적 성장이론에서는 지식은 투자에 대한 수익률을 늘릴 수 있고, 또한 지식의 축적에도 기여한다. 또 새롭고 향상된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유인한다. 결국, 경제성장률의 지속적인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지속적인+ α*(LogK t+1 – LogKt) + (LogA t+1 – LogAt)----(3-2)LogYt+1 = (1-α)*LogL t+1 + α*LogK t+1 + LogA t+1Yt Lt Kt At ----------(4)국내 총생산의 증가율이 각 요소의 증가율과 각 요소가 산출의 증가에 기여한 정도를 나타낼 수 있는 값들로 완전히 분해되었다. (4)식을 가지고 각 변수들의 값을 대입하여 경제성장률과 자본증가율, 노동증가율, 기술 진보율의 관계를 규명하고 각 요소들의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고자 한다.성장회계모형을 이용하여 경제성장률에 기여한 요인을 분석한다. 성장회계모형은 각 생산요소가 경제성장률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를 분석하는데 탁월한 모형이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요인을 노동투입, 자본투입, 인적자본투입,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으로 분해하여 기여도를 분석하고자 한다.성장회계모형의 변수YY 는 국민총생산의 증가율을 나타내며 경제성장율이라고 할 수 있다.K LK는 자본스톡의 증가율이고, L은 노동력의 증가율이다.α는 생산의 자본탄력도이자 자본소득분배율이고, 1-α는 생산의 노동탄력도이자 노동소득분배율이다.AA는 생산성 증가율을 나타내며, 솔로우 잔여분(Solow residual) 혹은 총요소생산성증가(Total Factor Productivity Growth)라 불린다. 솔로우 잔여분(residual)이라고 불리는 것은 솔로우모형에서 나오는 (1)식과 같은 규모에 대한 보수불변의 총생산함수를 이용하여 생산성 증가율을 추정하되 (3)식처럼 경제성장률에서 각 요소의 성장기여도를 뺀 잔여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증가의 원천으로는 자원재분배, 규모의 경제, 지식의 증가 등을 든다.총요소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은 다요소생산성(MFP) 이라고도 불리며, 산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인 자본과 노동(K, L)이외의 부분이므로 무지의 척도(measure of our ignorance)라고도 기초통계 값[그림9] 년도별 자본소득 분배율주: 2005년 기준 (AK: 자본소득 분배율)자료: 한국은행, 국민계정, 경제통계시스템, 2005, HYPERLINK "http://ecos.bok.or.kr/" http://ecos.bok.or.kr/총산출량은 국내 총생산을 대용변수로 사용하였고 자본량은 표학길 시리즈의 자본스톡을, 노동량은 총취업자수와 평균 취업시간의 곱을 대용변수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노동소득 분배율과 자본소득 분배율은 한국은행 국민계정의 자료를 이용하였다.실증분석 및 정책적 함의각 변수들의 대용(代用) 변수들을 가지고 실증분석 하였다. 분석도구로써는 경제통계 프로그램인 E-Views와 MS Excel을 사용하였다.성장기여율과 성장기여도성장기여율(Rate of Contribution)은 경제성장을 위해 각 요소가 몇 %를 기여했는지를 표시하며, 각 요소의 기여율을 합하면 100%가 된다. 그리고 성장기여도(Degree of Contribution)는 경제성장률 증가를 위해 각 요소가 얼마만큼 기여를 했는지를 나타내며, 각 요소의 기여도를 합하면 경제성장률 그 자체가 된다.위에 정의에 따르면, 성장 기여도는 요소투입증가율과 요소소득 분배율의 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자본의 성장기여도는 자본스톡 증가율과 자본소득의 분배율의 곱이며, 노동의 성장기여도는 노동력 증가율과 노동소득의 분배율의 곱이다. 그리고 총요소생산성(TFP)의 성장기여도는 총요소생산성(TFP)의 증가율이다.성장기여율은 성장기여도를 경제성장률로 나눈 값인데, 자본의 성장기여율은 자본의 성장기여도/경제성장률이고, 노동의 성장기여율은 노동의 성장기여도/경제성장률이다. 그리고 총요소 생산성(TFP)의 성장기여율은 총요소생산성 증가율/경제성장률이다.실증분석 결과국내 총생산 증가율[그림10] 국내 총생산 증가율국내 총생산의 증가율, 즉 경제성장률은 1980년과 98년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대상기간 전체에 걸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자본스톡자본스톡의 증가율은 70년대 후반자본, 노동, 노동소득의 분배율 등 중요한 자료들을 각기 다른 논문이나 통계자료를 이용하였는데 이는 통계자료를 수집하는 데서 오는 원천적인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통계 자료들에서 중요한 단위나 기준들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둘째는 첫번째 문제점과 연관되어 있는데 통계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증분석결과 얻어낸 수치와 그 수치의 해석에 있어 많은 이견과 문제점이 발생 가능하다는 것이다.셋째는 노동 투입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질적인 변화에 따른 생산량의 증가효과를 무시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Ⅳ. 결론 및 요약지금까지 지난 30여 년간의 우리나라 경제성장과정에서 투입요소, 즉 노동과 자본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와 기여율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투입요소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총요소생산성(TFP)의 기여도를 통해 알아보았다. 1970년부터 2000년의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1980년과 1998년의 침체를 제외하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였다. 본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기여도 순서는 자본, 노동, 총요소생산성 순이며, 기여율 또한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기여도의 비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고 총요소생산성(TFP)의 기여도의 비중은 최근의 주춤한 추세를 제외하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기존의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총요소생산성은 인적자본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적자본의 축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Ⅴ. 참고문헌서적김동석, 이진면, 김민수, 한국경제의 성장요인분석: 1963~2000, 한국개발연구원, 2002김대식, 노영기, 안국신, 현대경제학원론, 박영사, 1998김신행, 경제성장론, 전문사, 1999안국신, 현대 거시경제학, 박영사, 2002이은우, 경제학논집; 인적자본과 경제성장, 한국국민경제학회, 2001장하원, 한국의 자본스톡 추계와 방법론에 관한 연구, 한E 35
    경영/경제| 2005.04.13| 39페이지| 5,000원| 조회(3,101)
    미리보기
  • [서평] 양반 평가A좋아요
    『양반 - 역사적 실체를 찾아서』를 읽고이 책은 일본인 저자,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사회 양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양반 이라는 말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속에 한국사회의 개성이 응축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한다.저자는 16세기와 18세기에 일어난 재지 양반층의 형성과정과 그들의 경제력의 성장과 저하가 한국사회의 전통과 유교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보고 이 둘의 관계를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16세기 이후 재지 양반층의 형성 과정과 그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사회가 변화하며 유교문화권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독특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18세기 이후 재지 양반층의 형성과정에서 그들의 경제력의 향상과 저하가 현재 한국사회의 유교문화와 한국적 전통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불과 몇 백년전인 16세기에 형성되었고 18세기 이후에 와서야 그것들이 사회전체에 보급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통과 근대를 대립시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저자는 양반에 대해 주자학의 수용을 담당하던 계층 또는 본래적 의미에서 조정에서 의식(儀式) 등이 치러질 때 그곳에 참석하는 현직관료들의 총칭이라는 일반적 정의를 내리면서도 조선시대 특권층으로 존재했던 양반이 국가에서 법제적인 절차에 통해서 제정된 계층이 아니라 사회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계층이며 주어진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 개념이라고 다시 한번 정의한다. 그럼으로써 재지 양반을 포함한 양반계층이 변화하고 복잡한 조선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길을 열어 놓는다.양반계층은 수도인 서울이나 그 주변에 거주하는 재경 양반과 지방의 농촌에 거주하는 재지 양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재지 양반은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하여 존재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유교적 전통과 친족, 가족 제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이러한 재지 양반층의 형성이 한국 전통사회의 배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가문에 의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양반층은 자신의 혈통을 사회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동족 집단을 형성하였고 재경 양반화하지 않고 지방의 연고지로 내려와 정착하여 재지 양반으로서 세력을 키워 나갔다. 15세기에서 17세기사이에는 재지 양반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시기로서 저자는 혼인관계가 일족의 지위 향상을 돕기도 하였고 조선사회의 변동이 재지 양반층의 형성과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재지 양반의 경제적 기반은 노비소유와 토지소유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분재기라는 재산상속문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노비는 소유와 상속,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16세기 국가의 노비정책이 종모법 과 일천즉천 의 노비신분을 엄격히 제한하는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양반층이 입신출세를 통해 농지소유 규모를 확대해 가고 그 농지의 상당부문을 직영하는 증거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그 동안 양반은 스스로 일하지 않고 노비나 소작농의 노동에 기생하는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16세기 단계에서의 재지 양반들은 농업기술발전과 농지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재지 양반층이 형성되어온 조선전기는 한국 역사상 농업생산력이 크게 발전한 시기로서 농업발전은 재지 양반층의 형성에 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효과로 얻어진 경제력은 재지 양반층의 강력한 경제기반을 제공하게된다.조선전기에는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독자적인 농서가 출현하게 된다. 중국의 농서가 중국의 풍토와 습성에 맞도록 쓰여진 것이어서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조선의 독자적인 농서가 나옴으로써 농업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된다. 그리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저수지와 관개시설 등 수리관개시설을 정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넓혀나간다. 저자는 15세기와 17세기사이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경상도 북부에서는 수리시설인 보를 축조하여 산간지역을 개간하고 전라도 해안지방에서는 해안지대를 개발하는 양상을 예로 들며 경지면적이 급증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당시 양반의 생활신조는 봉제사, 접빈객 으로서 조상에 대한 제사와 방문객을 대접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쇄미록 에는 양반들의 경제생활 모습도 나와있는데 양반들은 선물을 주고받는 증답경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증답경제는 16세기 재지 양반의 농촌거주와 함께 화폐경제발전을 억제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상업을 천시하는 사상이 양반층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이것 또한 화폐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양반과 노비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였다. 스스로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던 양반층에게는 그들의 수족인 노비는 불가결한 존재였다. 노비는 양반가문에서 가사노동과 농업노동을 담당하였다. 노비는 독립된 인격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반과의 관계 속에서 강인하게 살아감으로서 지위 향상의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저자는 양반과 노비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후에 노비들은 가족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업 경영과 상(商) 행위를 통해 지위향상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16세기 이후 재지 양반은 경제력 향상과 함께 사회적 결집을 꾀한다. 지방에서 자신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향안 조직을 결성하고 지방규율, 향약을 만든다. 16세기 전반 안동에서는 재지 양반층이 폐쇄적 계층성을 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점차 자신들과 모체를 같이하는 향리층과 구별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재지 양반 집단의 결정체인 향안 조직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층을 감독하며 지방풍속과 질서안정을 위해 활동하는 등 지방행정에서도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이 되면 향안 조직은 혼인과 학연 관계를 통해 계층적 결합을 강화하고 양반층의 배타적 결집체로서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저자는 향약의 성립시기가 향안 조직이 재지 양반 집단의 폐쇄적인 결집체로서 순화되는 과정과 때를 같이한다고 지적하고 농촌 지역에 재지 양반을 기 중반이후에는 재지 양반층의 경제적 발전이 정체 양상을 보이고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재지 양반층의 경제력이 차츰 저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로 인해 상속제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16세기에는 남녀균등상속이 일반적이었으나 점차 남자균등상속으로 이것이 다시 장남우대상속으로 바뀌었다. 17세기 이후 상속제도 변화의 사회적 배경으로 종래에는 주자학의 보급을 들고 있지만 저자는 더 기본적인 원인으로 재지 양반층의 경제력 저하를 꼽고 있다.16세기까지 조선은 주자학을 국교로 수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속을 포함한 가족, 친족제도 면에서 조선 나름대로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17세기 이후에는 중국의 남자균분 상속제도를 도입하지만 중국과는 다른 장남우대상속이라는 독자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상속제도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 주자학을 국교로 수용하고도 2세기 이상 지난 후의 일임을 생각하면 주자학의 보급을 상속제도 변화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보다는 재지 양반층의 경제력 저하로 말미암아 상속 제도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주자학이 그 변화를 합리화하는데 이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재지 양반 집단의 경제력 저하가 17세기 후반 이후 남계혈연집단 중심으로 동족의식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족보형식이 남계혈연 중심이 되며 문중조직이 성립되는 대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이처럼 재지 양반층의 경제력 저하는 그들을 폐쇄적 특권집단으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자학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차츰 보수화하는 경향을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은 향리층을 비롯한 하위계층으로부터 신분에 대한 도전을 받게된다. 향리층은 국가로부터 양반과 같은 유학 의 칭호를 얻어내고 양반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며 신분적 지위 상승을 꾀한다.그리고 경지면적의 외연적 확대의 한계를 맞게된 양반층의 농지경영은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소작농에게 농업 경영을 넘기게 된다. 이것은 초기의 양반이 직접 농업경영을 하고 8세기 이후 진행된 양반적 가치관이나 생활 이념의 사회전체로의 침투는 조선전기에 형성된 재지 양반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조선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국 전통사회의 특징으로서 자리 매김을 하였다.저자는 마지막으로 유교적 생활 습관이라는 것이 16세기를 중심으로 한 재지 양반층의 광범위한 형성을 1단계로 하고 18, 19세기의 양반적 가치관, 생활 이념의 하층 침투와 양반 지향사회의 성립을 제2단계로 하여 사회 전체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재지 양반이 농촌 지역에 널리 분포한 것이 이러한 현상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국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15, 16세기 이후에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사회전체로 보급되어간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전통과 근대의 대립시켜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그리고 사회의 유동화가 격렬해지는 근대에 들어와 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은 한층 더 가속화되었으며 최근에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이 크게 변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글을 맺고 있다.저자는 서문을 통해 한국의 유교가 유교문화권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상에 깊게 침투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지내며 그것이 조상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포함하지만 자손들의 사회적 지위를 현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은 부계혈연을 중심으로 한 장남을 중시하는 사회이며 한국의 유교적 전통은 역사적 형성물이라고 하였다.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재지 양반층이 농지개발을 통해 그들의 경제력을 향상시킨 점과 향안 조직과 향약을 통해 동족 집단으로서의 결합을 강화한 점이다.저자는 조선에 독자적인 농서가 출현한 시기와 농지를 개발하고 농업기술이 발전한 시기 그리고 지방의 재지 양반층이 형성된 시기를 모두 같은 시기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일
    독후감/창작| 2003.12.25| 6페이지| 1,000원| 조회(966)
    미리보기
  • [국토관리] 하천 복원 사업의 실태 및 발전 방향 고찰
    ◈제목 : 하천 복원 사업의 실태 및 발전 방향 고찰◈목차◈서론1. 하천의 기능2. 하천의 역사적 중요성본론1. 우리나라 도시하천의 변천사(1)우리나라 도시화의 특징(2)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하천문제들2. 하천 복원 사업(1)하천 복원 사업의 연혁(2)하천 복원 사례들(3)하천 복원의 문제점결론◈연구 목적 :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하천의 환경 기능이 위축, 저하되고 나아가 일부 하천에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1990년 대 들어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지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 유가 생기면서 잃어버린 환경에 대한 보전, 복원의 관심이 높아졌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하천환경개선사업의 역사와 현재 진행 실태 및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해 보기로 하겠다.서론1. 하천의 기능①이수 기능 : 상업, 농업, 공업용수 및 수운, 수력발전 등과 같은 물을 이용하는 기능②치수 기능 : 홍수방지를 목적으로 지역의 안전을 위한 기능이며, 하천 주변에 인간이 정주하는 한 항상 대비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③환경 기능 : 자연생태계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스스로 깨끗이 하는 자정작용과 각종 동 식물의 서식처로의 기능을 가지며, 수변위락, 수변경관 등의 친수기능과 과 밀화되어 가는 도시에서 귀중한 공간자원을 제공해주는 공간기능을 가진다.2. 하천의 역사적 중요성- 예로부터 4대문명 발상지는 모두 큰 하천 주변이었음 메소포타미아 문명(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이집트 문명 - 나일 강 황하 문명 - 황하 강 인더스 문명 - 인더스 강 영국 런던의 템즈 강- 현재 각국 주요도시 역시 하천을 끼고 발달함 프랑스 파리의 센 강 독일 베를린의 슈프레 강 대한민국 서울의 한강본론1. 우리나라 도시 하천의 변천사- 특징 : 산업화, 도시화 따른 급격한 변천(1) 우리나라 도시화의 특징①경제 발전 중시하여 산업시설 운영에 필요한 인구가 그 주위로 집중, 즉 계획적인 도시 의 모습을 확보하기 전에 도시는 이미 성장②분배보다 발전 우선시 - 환경 자체보다는 가재개발, 월드컵 직전 난지도 공원화 재개발 이후 들어선 대규모아파트 단지 재개발 모습 난지도 하늘 공원(월드컵 대비 개발 후) 난지도의 쓰레기더미(개발 전)난지도 개발 풍자(2)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하천 문제들- 하천 수질의 악화- 건천화 및 유지유량 확보 문제점- 둔치 이용의 생물 다양성 미흡- 도시 하천의 복개- 도시하천 개수/정비사업에서 나타나는 문제점?하천의 다양한 자연 경관, 생태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점차 상실?지나친 인공 하천화?하천 본래의 자정 능력 상실?하천으로의 시민접근이 제한되고 다양하고 쾌적한 수변공간의 이용에 장애가 됨2. 하천 복원 사업(1)하천 복원 사업의 연혁- 1910년대~ 1940년대 중반 : 일제 강점시대의 하천 사업은 수력발전 위한 대규모 댐 개발과 평야지대 관개를 위한 저수지 축조 등 이수 사업이 주류.- 해방 후 ~ 1960년 : 건국 초기 하천 사업은 소규모 농업용 저수지 축조와 치수용 제방 축조가 주류. 그러나 이 당시 하천에 대한 관심은 최소한에 머무름.- 1960년대 ~ 1970년대 : 도시와 공단의 개발은 물론 교통, 수자원, 상하수도, 전력 등 이른바 사회간접자본의 집중적 개발 시대로서, 홍수 피해 경감과 이수 목적의 대규모 다목적댐 개발로부터 하천 연변의 치수를 위한 하천 개수 사업, 그리고 도시화에 따른 도시 소하천의 복개가 이루어짐. 이러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하천수의 오염과 함께 하천의 인공화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옴. 대부분의 도시하천은 과 같이 자연적으로 구부러진 하도를 직선으로 만들고, 양안에는 높은 제방을 쌓고, 그 안의 하천수는 인공적으로 만든 저수로에 국한시킨 채, 나무, 돌 등 홍수 소통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제거함. 나아가, 도시에 흐르는 작은 하천의 상당수는 복개되어 영원히 소멸. 도시화에 따른 배수 기능 이오에 하천 기능은 불필요하다고 본 것임. 농촌 하천의 경우 처럼 하도를 따라 인위적인 제방을 쌓고 하도 자체도 직선으로 만들었지만, 하도 내는 자연 상태 그대로 둔 의 치수 정비(강원도 홍천군) 도시 하천의 치수 정비(서울 성북천, 2000)(2)하천 복원 사례들1)지역 주민의 참여로 이룬 하천 살리기 : 경남 김해 대포천- 지역주민 전체가 하천 살리기에 나설 경우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가구당 월 2~3천원을 걷어 3천만 원의 “수질개선기금”을 조성. 유급감시원 배치 및 수계별 하천감시단 구성? 하천 바닥에 붙어있는 축산오물 씻어내고 장비 동원하여 하천바닥을 깨끗이 긁어냄? 세제 덜 쓰기 운동, 손빨래하기 운동, 물 덜 쓰기 운동에 적극 동참? 관계기업별로 담당 구역 배정하여 매주 한 차례씩 하천정화활동?이러한 주민들의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노력으로 1998년 2월 이후 대포천은 1급수 하천 으로 개선. 한국 민간 환경 운동사에서 모범적인 사례의 하나로 기록됨.2)관(자치단체와 공무원) 주도의 하천 살리기?양재천 : 양재천의 경우 강남구, 서초구, 과천시 등 자치단체와 전문가의 제안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 하천 살리기의 사례라 할 수 있음. 양재천 주변 시민들의 하천 살 리기에 대한 공감대를 기초로 행정당국의 업무추진과 지역개발사업에 관련된 기업의 지원까지 겹쳐지면서, 양재천 자연형 하천 정비사업은 신속히 진행되었 고 많은 언론에서 도시 하천 살리기의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음. 양재천의 경 우 행정의지와 예산의 뒷받침이 있을 경우, 하천 살리기가 별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그러나 시민의 하천 살리기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 기 때문에 하천 살리기 중심이 시민의 휴식, 친수공간 확보라는 성과에만 집중 되었고, 하천주변 조경과 시민의 접근성만이 강조되어 [도심속의 하천 공원]이 됨. 더구나 양재천의 경우 상대적으로 풍부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능력이 있 어 가능했다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할 것. 또한 강남구의 경우 구청장이 3번 재 임하면서 양재천 사업을 자신의 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다고 함. 이는 지속성의 면에서 꾸리찌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을 떠올리하천복원 후 양재천의 모습?오산천 : 강남구 양재천 사업 이후 이와 유사한 사업으로 우리나라 하천환경개선사업의 또 다른 획을 그은 사업으로서 건설교통부가 주관한 사업. 1998~2000년에 1차 완료된 사업으로, 안성천의 지류인 오산천 3.1km 구간에 대해 하천환경의 재정 비를 꾀한 것. 그림 16은 이 사업에 의해 새로이 꾸며진 하천 구간을 보여줌. 이 사업의 목적은 양재천과 달리 하천의 환경 기능 중 생태 서식처의 회복을 위 한 것으로서, 따라서 조경 위주의 하천 사업이 아닌 하천의 자연성 회복에 초점 을 맞추었다. 이 사업은 그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일부 있으나, 국내 최 초로 생태 서식처 회복을 의도한 하천환경개선사업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건설교통부의 오산천 하천환경개선 사업3)시민단체 주도로 시작된 하천 살리기 : 수원천- 수원천은 2002년 2월 환경부에서 지정한 자연생태복원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함. 수원천의 경우 시민단체의 주도적 문제제기로 이루어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민참 여를 통한 하천 살리기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음.4)해외 사례들① 미국미국의 하천 복원은 주로 유역의 토지 이용 변화에 의해 하도가 침식되어 서식처가 훼손되는 것을 억제하고 복원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하천복원사업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천의 유사 이송, 퇴적과 세굴 등의 문제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직강화, 콘크리트화된 도시 하천의 서식처 복원은 대도시 하천 일부를 제외하고는 우선적인 관심 대상이 아니다.②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독일의 경우도 유사할 것으로 추론)의 하천 복원은 농경지를 흐르는 하천의 형태를 과거 형태에 가깝게 되돌려 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미 농경지화된 토지를 매입하여 하천에 편입시켜 하도를 복원하는 것이 주류이다. 도시 하천의 경우도 하도를 넓혀서 통수기능을 확보한 다음 식재를 하여 치수 상의 문제없이 하천을 녹화시킨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수질 상의 문제는 대부분 없기 때문에 하천 복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③ 일본일본의 경우 치수 상의 문제가 있는 하천의 정비 사업에서 자연형 하천 만들기를 강조하는 경우와 도시 하천의 복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첫 번째 사업에 중점을 두어 왔으나 점차 두 번째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나라에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형 하천공법, 또는 하천복원사업은 대도시 중소하천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농촌 하천은 아직 관심 대상이 아니다. 또한 국내의 하천은 대부분 수질 악화와 건천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천복원사업은 형태의 복원뿐만 아니라 수질, 수량의 복원 문제가 수반된다. 또한 도시 하천을 조경 위주의 친수 공간으로 만드는 성향이 강하며, 하천의 생물 서식처 복원의 개념은 미흡하다. 이 점에서 국내의 하천 복원은 도시 하천의 제한적인 범위에서 생물 서식처 복원, 친수성 향상, 수량 확보, 수질 개선 등 복합적인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 하천환경 요소들은 적절한 시공간 스펙트럼으로 연속성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3)하천 복원의 문제점- 자연에 역행하는 하천 복원 : 자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복개 등 자연성을 상실 하는 기능 위주의 개발이 주를 이룸? 양재천의 가시적 성과를 모범삼아 이를 그대로 따르고자 함. 지방의 자연 하천들의 경우에도 이를 보전하기보단 양재천의 사례를 따르려 함.(이는 강남구청 치수과 직원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되었음) 이러한 경우,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환경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는 셈.- 수자원 확보의 관점 : 계획은 유역의 보존 내지 풍부한 생태계의 육성이라는 개념이 빠져 있다. 다만 댐과 보를 축조하여 유수 용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바다로 유실되는 수량을 감소시키지는 못하였다. 하천의 유하 특성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비를 산출하여 비교한다.(이를 하상계수라 함) 물론 지형적 영향도 있겠지만 아직도 한강 390, 낙동강 370, 영산강 680 이상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
    사회과학| 2003.12.10| 11페이지| 2,000원| 조회(788)
    미리보기
  • [신도시관리] 신도시 개발현황과 문제점및 방안
    {목 차□ 연구목적□ 서 론1. 신도시가 어떻게 시작됐는가?2. 신도시란?□ 본 론3. 우리 나라 신도시 개발의 변천사4. 외국의 신도시 개발 사례☞ 스텐리 파크 - 동영상 화면 ☜5. 최근 외국의 신도시 개발 사례6. 외국 사례에서의 시사점7. 분당과 일산의 신도시 사례☞ 김포 파주 신도시 개발 계획에 관한 YTN 뉴스 시청☜8. 김포 파주 신도시 개발□ 결 론9. 한국적 신도시(뉴타운) 건설『 신도시 개발의 현황과 문제점 』□ 연구목적현재 우리 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전국 평균적으로 거의 100%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통계발표에 따르면 자신의 집을 보유한 가구가 전체가구의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언론 매체를 통해 발표되는 월급생활자가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몇 년이 걸리나? 라는 통계자료는 우리의 주택문제 및 도시관리 정책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일산 및 분당 등에 신도시를 개발하였고 그후에도 계속 수많은 계획과 대책을 마련하였다. 최근에는 김포와 파주에 새로운 개념의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주택 문제는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고 외연적으로 팽창하면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것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개발 바람을 타고 부동산 투기와 연관되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더 커져갔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신도시 개발을 무계획적으로 추진하였다.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과거 우리 나라 신도시 개발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외국사례를 통해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사례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고 김포와 파주 신도시개발에 있어 예상되는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향후 신도시 업화와 경제개발정책의 본격가동과 더불어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가 최초로 건설되었다. 우리 나라의 최초의 현대적 신도시는 울산 공업단지 건설 계획에 따른 울산신시가지(인구15만)이었다.2) 제2기 신도시(3공화국 출범후 1960년말)소위 집권 엘리트에 의해서 근대화 목표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산업기지로서의 울산과 포항, 수출기지로서 마산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빈민촌 해소를 위해 성남(광주)에 대단지가 조성되기도 하였다.3) 제3기 신도시(제1차 국토개발종합계획기간)제 1차 국토 개발종합계획기간으로서 1972년-1981년까지 본격적인 의미의 신도시 개발이 시도되었다. 지역 균형 발전을 모토로한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대규모 공업단지의 배후도시로 창원, 여천, 구미가 개발되었다. 또한 정부기능의 분산 이전를 위해 과천신도시(정부청사)가 건설되었다.4) 제4기 신도시(제2차 국토개발종합계획 기간)제 4기에 들어 적극적 개발의 시대로 접어들어 12개 지역 중심도시가 성장 거점화 되었다.서울에서는 도시내 신도시의 개발(개포, 고덕, 목동, 상계)이 진행되었다.1992년까지 주택 200만 호 공급계획을 세웠고 1989년 4월에는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에 대규모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5) 제5기 신도시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되었고 5개 신도시는 자족도시로의 건설이 목적이었으나 목적과는 달리 최근에는 자족적 기능을 상실하여 서울의 침상도시(bed town)로 전락하였다.4. 외국의 신도시 개발 사례1) 영국의 사례영국은 신도시 개발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19세기의 고전적 전원도시 운동이 일어났으며 1946년에는 신도시 개발법 제정되었다. 또한 체계적 접근이 시도되어 주택난 해소를 위한 런던외곽에 신도시가 개발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런던권의 비대화만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1970년대 이후, 균형된 신도시 개발이란 목표아래 사회적 혼합과 사회적 균형에 개발의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사회계층의주도의 거리를 조성하였다.마을 만들기 센터는 주민(민간)과 정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6. 외국 사례에서의 시사점 도출첫째는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도시건설을 적극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벤쿠버의 경우처럼 환경중심 도시 건설하거나 이탈리아의 밀라노, 파리의 라데팡스와 같은문화중심적 도시 건설은 그 대표적 유형이다.둘째는 위 도시들은 교통체제의 혁신과 함께 도시의 독자적 기능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이다.살고 싶은 도시의 필수 조건은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도시적 특성을 감안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요구된다.독자적인 도시기능 역시 살고 싶은 신도시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셋째는 민간 및 주민의 참여도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철저한 사전 준비 노력을 하고 여기에 민간단체 및 주민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간다.넷째는 ESSD(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7. 분당과 일산의 신도시 사례1) 배 경1980년대 후반에 진행된 수도권 5개 신도시는 크게 세 가지의 정책목표를 담고 있다.첫째, 수도권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집값, 전세가 폭등이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사회적 위기감이 팽배한 때였다. 이를 위한 정부의 정책은 주택 200만 호를 5년 동안 건설하는 것이었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의 효과적인 추진과 수도권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둘째, 서울의 과밀 인구를 외곽으로 분산하고자 하는 인구 분산 정책과 교외지역개발이라는 공간 정책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 서울은 인구가 일천만명을 넘어서는 거대도시로 변모하여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와 과밀로 인한 불경제가 극심한 상황이었다. 수도권내의 인구분산과 공간정책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소득 증대와 함께 교외지역의 쾌적한 주거 환경을 원하는 중산층 수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알려진 바로는 992. 121989. 5 ~ 1992. 123) 개발 효과 및 사회적 쟁점가) 효과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80년대 후반에 진행된 수도권 5개 신도시는 크게 세 가지의 정책목표를 담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나마 그 효과가 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도권내의 주택공급을 확대시켜 일시적으로 주택가격을 안정 시켰다. 수도권 신도시 건설의 가장 주된 정책목표는 주택시장안정, 즉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고자 함이었다.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을 통해 29만 4천 호의 주택이 공급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주택공급은 주택시장 안정책으로 효과를 거두었다는 연구도 나와있다. 1980년대 후반에 급상승한 집세의 변동추이가 신도시 주택이 공급되면서 둔화되는 현상을 보였다.실제로 1989년 개발 계획 발표 이후 일시적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였고 1992년 이후 부동산 시장 전체가 5.0%이상의 하락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주택가격 상승과 함께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토지가격 안정과 토지 투기현상 억제에 부분적으로 기여하였다. 5개 신도시의 주택이 공급되기 시작한 1992년에는 지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뒤이어 1993년에는 더욱 큰 폭으로 지가가 하락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주택시장의 안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의 지가 상승이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부족 문제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수도권 지역에서의 대폭적 지가상승이 1988년부터 시작된 데 반해 부산, 대구, 광주, 군산, 포항, 마산, 울산, 김해 등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이미 1987년에도 30%를 상회하는 지가 상승을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및 기타 기성시가지보다 양호한 주거환경을 제공하여 삶의 질을 상대적으로 높였다.조선일보와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신도시 주민 생활만족도 및 라이프 스타일 조사 에 따르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1997. 2. 19). 전반적으로 신도시 거주자경문제를 유발 시켰다. 단순한 주거단지가 아닌 도시로의 성격과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신도시 자체의 자족성을 가져야 하나 이들 신도시들은 서울의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하였다. 수도권 신도시의 통근패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96년 분당 통근인구의 60.3%인 7만 천여명, 일산 통근인구의 64.6%인 7만 6천여명이 서울로 유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서울로 유출하는 통근인구의 각각 50.0%와 46.7%가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것은 각각의 신도시들이 자체적으로 생산과 소비 및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소화해 내지 못하고 서울에 의지함을 나타낸다. 또한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는 인구가 거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차적으로 사회적 기반시설 즉 여가시설이나 상업시설, 교통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상태에서 주거단지만을 건설하여 직장과 주가를 분리시키고 그로 인한 심각한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야기 시켰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로 인해 국토의 불균형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인구 및 산업의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의 과밀문제와 지방도시의 및 농촌의 과소 문제를 동시에 초래한다. 사회·경제·정치적 제반 기능과 활동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됨으로서 각종 도시문제가 발생하였다. 주택난, 교통정체 심화, 환경오염문제, 각종 범죄문제 등이다.또한 정부에서는 지방의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신도시 개발을 계속적으로 추진함으로서 이에 따른 도시문제와 함께 정부정책과 행정의 일관성을 상실하였다. 일관성 없는 정책과 무계획한 추진으로 정부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김포 파주 신도시 개발 계획에 관한 YTN 뉴스 시청]☞ 김포와 파주에 신도시 개발이 확정되었으며 앞으로 개발 전망과 개발 일정 등을 소개하는 뉴스 보도 내용이다.8. 김포 파주 지역 신도시 개발1) 개발 배경 및 계획개발 배경은 서민 주거 안정과 수도권의 난개발 방지를 위해 김포 480만평, 파주에 275만대된다.
    사회과학| 2003.12.11| 14페이지| 2,000원| 조회(2,150)
    미리보기
  • [여성의지위]몽골과한국에서의여성지위 평가A+최고예요
    『몽골과 한국의 여성지위 비교』1. 한국전통사회에서의 여성한 사회의 구성원이나 집단의 삶은 그가 속한 사회와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한국사회의 모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으며 시대마다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즉 한국사회와 시대가 지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그리고 사회구조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한국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전통사회가 지닌 특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하여 한국전통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는 가장(家長) 즉, 아버지가 가족성원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 ·통솔하는 가족형태인대, 가부장제의 가족형태에서는 가족성원이 세습적 규칙에 따라 지명된 개인의 지배를 받는데, 대개는 장남이 세습적으로 가장의 지위와 재산을 계승하여 안으로는 가족을 통솔하고 밖으로는 가족을 대표한다. 개인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연소자, 여자들에 대한 남성지배를 제도화하여 사회의 모든 주요 제도의 권력을 남성이 가지며 여성이 그러한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제도를 뜻한다. 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합법화, 사회구조화 된 제도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체계이다. 그 기원은 초기 국가형태를 띤 삼국시대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고려말에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가부장제가 강화되었으며,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유교적 이념의 사회질서가 확립되면서 가부장제는 보편적 사회제도로서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자유혼과 자유로운 이혼이 보장되고 여성에게도 어느 정도의 상속권이 인정되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며 여성의 지위와 역할, 자율성은 보장되는 듯 하였으나 그것들은 가부장제의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의 지배하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표면적인 여성의 자율성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고려말에 도입된 주자학의 영향으로 인해 가정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교적 가족주의에 의해 발생한 가족우선주의, 효(孝)사상, 부계가문계승 중시, 남아선호 사상 등의 가치관에 지배를 받으면서도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가정에서의 자유와 남녀 평등, 민주적 가정의 운영에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특히 한국의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그 내용 면에서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사회의 변화와 함께 그 몫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미래 세대에 생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종족보전과 다음세대에 대한 교육과 양육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성들에게 지워지는 몫이며, 휴식과 안정, 재충전을 통해 사화에 나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식·주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기반을 준비하는 가사노동 또한 대부분 여성들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가사노동의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과 밀접히 연관된 중요한 문제이다.인간이 생활하고 사회활동이나 직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가정 내에서 인간의 기본욕구인 의, 식, 주를 해결하기 위한 일들이 이루어져야한다. 이러한 거의 모든 노동들이 여성에 의해 이루어 졌다. 남성주의 적인 사고와 인식을 가지고 자라고 교육을 받아온 한국의 남성들은 대부분 가사노동을 여성만의 일로 치부하며, 부엌에 들어가는 일조차 금기시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당연시하였다. 아래의 표를 보면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아내 즉 여성이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5] 가사노동의 분담실태 (단위 : %){일 의 종 류아내투여시간 비율남편 참여비율다른 사람 참여비율식사, 설겆이95.628.69.2세탁95.412.610.4청소90.629.510.0시장보기94.017.04.4생활비 관리97.01.71.7자녀 돌보기84.941.57.2자녀 학교, 병원 등 데려가기89.411.72.6자녀학습지도85.326.32.6은행 출입83.720.21.4출처 : 부부관계의 평등성 , 박민자(1992), 여성한국사회연구회또한 아래의 표를 보면 한국 주부가 하루에 하는 가사여성은 제한적이며 소수에 불과하다. 국가의 입법과 행정, 사법이 이곳에서 이루어짐을 감안할 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교육에서의 차별 등 많은 문제들이 여성의 입장과 여성의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여성의 시각이 배제되고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할 여성들이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들의 인식과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이 여성의 요구를 입법화할 만한, 즉 정치권에 이를 전달하고 압력을 행사할 만한 조직과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나타낸다.다른 사회영역에 비해 정치영역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정치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들을 대표하는 집단의 배타적 영역으로 남아있다.그러므로 사회적으로 형식적인 남녀평등권이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 여성은 의사(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조직적 여성세력의 성장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성장하여 그들의 투표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여성들의 남녀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삶의 형태가 동등한 권리로 실현되기 위해서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과정에 적극적인 여성의 참여가 요구되어진다.한국 여성의 국회진출은 제14대, 15대, 16대 국회를 거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증가하고는 있지만 그 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적은 수임은 틀림없다.[표11] 여성 정치참여 현황 - 국회의원 (단위 : 명, %){구 분지 역 구 (명)전 국 구 (명)전 체 (명)1992년(14대)전체의원23762299여성의원0 (1)4 (5)4 (6)비 율0 (0.4%)6.5% (8.1%)1.3% (2.0%)1996년(15대)전체의원23762299여성의원2 (3)7 (9)9 (12)비 율0.8% (1.3%)11.3% (19.6%)소 새로 쓰는 여성과 한국사회 (1999), 사회문화연구소3. 몽골전통사회에서의 여성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 사회 구성원이나 집단의 삶은 그가 속한 사회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전통사회에서의 몽골여성의 삶은 몽골전통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의 전통사회는 계절에 따라 초원에 풀을 찾아 가축들을 이동시켜 가면서 기르는 유목사회였다.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농산물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을 유목하면서 단순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삶을 유지해 나갔다.징기스칸 시대의 여성의 몸가짐에 대한 격언이 있는데, 이것은 처되는 사람은 남편이 사냥이나 전투에 나갔을 동안에는 집을 아름답고 질서있게 가꾸어야 한다. 이리해야만 사자나 손님이 그 집에 찾아오더라도 모든 것이 정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처는 남편을 돋보이게 하고 그 이름을 험준한 산과 같이 우뚝 높여야 할 것이다. 좋은 남편은 좋은 처로 말미암아 알려진다. 불량하고 나태하며 분별력이 없고 어수선하면 남편은 불량해진다. 속담에 이르기를 가정에서 모든 것은 그 주인을 닮는다 라고 하는 것이다.이 글을 통해서 보면 여성은 남성(남편)에게 종속적인 지위를 갖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다. 즉 여성이 강하고 행실이 바라야 그 민족이 부흥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아래 몽골족은 항상 강인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척박한 토지와 매서운 추위의 대륙성 기후 그리고 정착할 곳 없는 유목생활이 몽골인을 더욱더 강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몽골 민족은 척박한 몽골고원에서 끊임없는 인근국가들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강인한 병사와 훌륭한 무기를 갖추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무기는 과학적인 기술을 사용하거나 노동을 조금만 더 들이면 전장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의 병사를 양성하는 데는 적어에도 높은 보수와 명예가 따르는 최고위직에 오르는 여성은 거의 없다. 비록 여성이 남성보다 수적으로 보건이나 교육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기는 하지만, 여성이 학장이 되거나 교장이 되거나 병원 원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전문지식을 쌓아 전문직에도 상당한 정도 진출하지만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사회에 존재한다. 유리천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리천장 은 소수그룹(여성, 인종)이 일정부문에서 상당한 진보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힘든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몽골여성에게도 유리천장 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한을 받고 있다. 이처럼 몽골 여성의 사회진출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표20] 전문직 여성들 (1990) (단위 : %){직 업여 성 (%)남 성 (%)-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42.557.25공학자23.676.4농학자44.655.4가축 전문가29.570.5수의사25.474.6공무원74.125.9의사68.331.7경제학자41.958.1컴퓨터, 전자공학자42.457.6변호사26.673.4교사 및 교수55.244.8- 직업교육을 받은 사람61.738.3기술자 / 교환수38.661.4가봉88.611.4식품업78.821.2국민학교 교사73.826.2식당요리사87.812.2유치원 교사98.91.1간호사83.116.9자료 : 몽골 국가 통계청 및 몽골 여성연합1990년 중반까지 몽골의 경제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 분배,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책정을 결정하는 중앙계획경제였다. 이때 민간분양의 활동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정책으로 불균형적인 개발이 이루어져 자본집약적인 산업화와 시장에 반응하지 않는 경제가 탄생하였다. 몽골은 투자, 기술, 예산 지원, 시장을 구 CMEA 국가들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변모를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 본다.
    사회과학| 2003.11.30| 24페이지| 2,500원| 조회(1,01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9
9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31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