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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태백산맥
    새로운 시각의 근대사-조정래씨의 도움을 통하여...-몇 년 전 조정래 씨가 을 완성하면서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의 소설은 이미 태백산맥부터 아리랑, 한강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바탕으로 베스트 셀러에 오른지 오래이다. 이번 서평을 통해 나는 조정래의 을 바탕으로 뒤의 작품을 읽어 우리나라 근대 사회의 격동기를 밝혀 보고자 한다.조정래는 대하 장편소설 을 1983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89년에 완간하였다. 이 작품은 분단극복의 의미를 적극화하기 위해서 민족 사회의 내재적인 모순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해방 직후의 이념적 혼란기부터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기를 중심으로 한국사회 내부에 은폐되어 있는 구조적 모순을 규명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장장 10권에 이르는 을 읽으면 그 어느 역사책 보다고 근대 대한민국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읽을 수 있다. 염상진, 하대치, 안창민, 이지숙, 이태식, 김범우 등으로 요약되는 등장인물을 통해 조정래씨는 극명한 사회현실을 통찰하며 모순 점을 강하게 꼬집는데, 은 여순 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데에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소설의 첫 장면은 1948년 10월 24일 밤이다. 여순 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세력인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반란군들은 산 속으로 퇴각한다. 이때 정하섭이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기 위해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현씨네 제각에 살고 있는 무당 딸 소화를 이용한다.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며 감시를 피해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불과 나흘 전만 해도 벌교는 좌익의 수중에 들어 있었지만 여수에서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거점으로 하여 좌익 반군들이 순천까지 그 세력이 확대한다.남로당 조직에 연결되어 있던 벌교 지역 좌익 세력들이 반군에 합세하여 벌교를 장악한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궁벽한 율어면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후 그곳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하게 된다.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반군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힘쓴다. 그 바람에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도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을 치르게 된다. 벌교의 유지로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김범우의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다.벌교 지역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 제헌국회의원이 된 최익승을 수습위원회 대표로 선임하게 된다. 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 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청년단 감찰부장은 양효석, 송성일,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을 모아 이른바 멸공단을 조직,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염감은 목숨을 잃는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했기 때문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 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벌교가 수복되자 좌터 일제 자본이 침식한 이 지역은 토지를 둘러싸고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쌓였던 곳이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으로 치닫고 결국은 계급의 대립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사회의 한 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며, 이에 대응하는 토착 지주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이 군경의 힘을 업고 벌이는 여러 형태가 잘 그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비참한 입산자 가족들의 삶과 함께 중도적인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대충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하소설 은 이데올로기 문제에 내재해 있는 역사적인 모순의 극복 없이는 분단 극복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를 알기 위해 소설 속에 나타나는 각각의 사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여순 사건은 제주도 4.3 민중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여수 주둔 제14연대의 하급 지휘관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무장 반란 사건이었다.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된 이 사건은 비록 1주일만에 진압되었으나 폭동군의 주력 부대는 남로당의 지방 조직 및 농민과 결합하여 산악 지역으로 퇴각함으로써 장기적인 유격전의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제주도 4.3 사건과 함께 해방 이후 최대의 무장 반란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까지 가담하여 6.25 이후까지도 계속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이 에서 조정래는 여순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6.25를 조명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분단 현실이 도대체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형성되었는가를 해방 공간과 6. 25 전쟁을 거치면서 분단된 현재적 우리 삶을 구획 지어 놓은 당시의 투쟁 양상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분단의 근원을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작가의 우선적인 관심은 어디의 기록'이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분단된 삶, 통일을 찾아가야 하는 우리의 민족적 삶에 있어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역사의 그런 허위가 파괴되고, 역사가 '자각하는 민중의 소유'가 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의 '허리잇기'인 통일도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그 중간 과정에 문학이 해내야 할 몫이 있다고 확신하며, 나는 소설로써 그 일을 이루어보려고 욕심부리는 것이다.인용문에서도 짐작되지만, 작가는 으로써 무엇보다도 역사의 재해석을 의도하였다. 역사를, 힘있는 자들이 아닌 자각하는 민중의 소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간의 우리 역사가 힘있는 소수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는 인식을 전제로 삼고 있다. 역사학 쪽의 용어로 같은 얘기를 다시 하자면, 친일 및 분단 고착 세력이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민중 세력을 억눌러온 것이 해방 이후 우리 역사였다는 것이다. 작가는 해방 공간을 무대로, 민족 분열과 민중의 착취를 꾀하는 세력에 맞서 '자각하는 민중'의 대표자로서 염상진과 하대치 같은 빨치산을 내세운 것이다.빨치산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해석은, 소설은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 이후 반세기 가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반공 이데올로기에 따르자면 빨치산은 북의 김일성 정권만큼이나 금기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념의 금기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사실을 발굴하고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들었다. 작가는 1991년에 쓴 ' 창작보고서'라는 글에서 처음 증언을 수집하던 무렵의 어려움을 사례를 곁들여 털어놓고 있다. 이 한창 쓰여지고 있을 때 6월 항쟁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이태의 을 필두로 한 빨치산 수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조정래가 소설에서 보여준 빨치산의 실상과 의미는 당사자들의 수기와 진보 사학계의 연구를 앞서는 것이었다.의 성공은 작가로 하여금 또 다른 대하소설 과 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작가는 본래 에서 해방에서 1980년 광, 전쟁 이후 현대까지를 이라는 또 다른 대하소설로 쓰게 된 것이다.작가는 1989년 을 완간한 다음, 1년여의 취재와 자료 수집을 거쳐 1990년 12월 의 집필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4년 반 뒤인 1995년 여름, 모두 12권으로 완간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과 저항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리고 있다. 이 벌교를 중심으로 한 한정된 공간과 5년 미만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면, 은 1890년대에서 해방까지의 반세기 남짓한 기간에, 전북 김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는 물론, 만주와 연해주, 일본과 하와이까지 대단히 광활한 지역을 무대로 삼고 있다.당연히, 소설의 형식과 밀도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이 집중의 원리를 택했다면, 을 지배한 것은 확산의 원리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 진행에 더 점수를 주기도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의 밀도와 깊이가 을 앞선다는 것이 중론이다.을 통해 작가는 195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의 30여 년을 단행본 10권 분량에 담았다. 원래 계획했던 의 뒷부분이 별도의 대하소설로 독립하는 셈인데, 시간 및 공간적 배경의 광활함에서는 보다는 에 가까운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 그려진 시기는 앞서 과 이 포괄했던 일제 강점기나 해방 및 전쟁시기에 못지 않은 격동기이다.4.19와 5.16에 이은 박정희 군사정부의 등장, 그가 지휘한 수출 드라이브에 따른 경제 발전과 그 그늘에서 땀과 피를 흘린 노동자들의 고초,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 노태우 군부 정권의 독재와 그에 맞선 민주화 투쟁, 광주학살과 6월 항쟁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된다. 이문열의 이 195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를 다루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현대사가 이만한 규모의 대하소설로 형상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200자 원고지로 1만5천장을 상회하는 규모의 대하소설을 한두 편도 아니고 세 편씩이나 쓴다는 것은 가히 초인적이라 할 수 있다. 취재를 위한 여행과 자료 수집을 위한 독서, 그리고 .
    독후감/창작| 2005.08.04| 6페이지| 1,500원| 조회(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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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역사] 체 게바라 서평
    Che 게바라(한 혁명가의 초상)Ⅰ. 도입Ⅱ. 한 혁명가가 되기까지Ⅲ. 살아있는 신화Ⅳ. 결론Ⅰ. 도입‘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이것은 체 게바라가 우리들에게 남긴 하나의 명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게릴라로서 쿠바정권을 전복해 카스트로 체제의 새로운 정부구성에 공헌을 했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게릴라 활동을 위해 끝까지 총과 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이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체포가 되고 바리엔토스 대통령의 명령에 1967년 처형되고 만다. 부유한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24개월이 되지 않았던 어린 Che를 데리고 엄마는 근처 강으로 수영을 하러 간다. 물에서 나온 아이(체)는 심하게 몸을 떨고, 어린 Che는 평생을 따라다닌 병, 천식을 얻게 된다. 그에 관련된 책을 보면 중간 중간에 천식으로 인해 고통 받는 Che의 끔찍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천식이란 것이 어떤 병인지는 잘 모르지만 체의 가족들이 천식을 위한 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옮겼다는 내용에서 천식이라는 것이 쾌적한 환경에 있어야 병세가 호전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체는 그런 아픈 몸을 이끌고 게릴라 활동을 했다. 열악한 환경과 의약품의 조달이 쉽지 않은 생활 하지만 그는 자기의 신념을 위해 그것을 택했다. 체 게바라는 우연하게 자신이 추구했던 혁명적인 삶과 달리 요즈음 들어 티셔츠나 상품화된 물건 속에 그림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의 말을 진지하게 살펴보기 보다는 상업적으로 쓰이는 이 기이한 현상들,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의 여정을 쫓아서 말하기보다 그가 가진 결과적인 ‘혁명’이라는 단어에 더 집착을 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가 그를 평가함에 있어 겉모습만 동경하지 실제 행적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한 불식을 종식시키고 가슴속의 커다란 이상을 품고 살아갔던 체 게바라의 진정한 모습을 그에 대한 저서들 속에서 살펴보았으면 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름이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단순한 이름 이상의 것이 된다. 혁명과 정에서 게바라 스스로가 붙인 ‘체’는 스페인 말로 ‘어이 친구’ 정도지만 바로 이 이름 이 ‘격정의 60년대를 뜨겁게 살다간 한 완성된 인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에서 5남매 중 맏 아들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두 번에 걸쳐 실시한 남미 전역 여행은 게바라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지켜본 게바라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이 세계 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방문했던 볼리비아의 한 광산에서 그는 커다란 결심을 한 듯하다.‘국가 권력이 그들 부부 같은 민중들에게 억압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다. (중략) 계속되는 굶주림에 대한 항의가 생경한 ‘공산주의’라는 교의에 대한 사랑으로 전화되었고, 그 사내가 결코 그 교의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를 이해하지 못했을지언정, 공산주의는 ‘민중에게 빵을’ 이라는 구호로 번역될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이해하는 전부였고, 더욱 중요하게는 공산주의가 그를 희망으로 채워 주웠다는 사실이었다.’‘아마도 언젠가는 광부들이 즐겁게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받아가고, 자신의 폐에 물든 독도 웃음으로 녹여버릴 수 있으리라. 그들은 그런 세상이란 저 너머 어딘가에. 세상을 눈부시게 하는 붉은 빛이 나오는 그곳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자신은 모른다고.’가난한 민중들의 어려움을 보고 그들을 위해 이상국가 건설을 달성하는 것을 자신의 이상과 인생의 목표를 잡은 것 같다.53년 과테말라로 간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정권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라는 56년 7월 피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게바라는 같은 해 11월 80여명의 ‘전사’와 함께 쿠바에 상륙하지만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군에 발각돼 거의 전멸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가 창조됐다. 게바라, 카스트로 등 몇몇 생존자들은 마에스트라산맥에 숨어 게릴라활동을 벌이며 혁명군을 모은다. 이들은 수 만명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군인들을 상대해오다 58년 산타 클라라전 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는다. 결국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59년 1월2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그 뒤 쿠바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 계를 돌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 인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그는 65년 4월 쿠바에서의 2인자 자리를 버리고 당시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다. 그 1년 뒤 게바라는 우루과이의 비즈니스맨으로 가장해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갔다. 게바라가 볼리비아를 택한 것은 볼리비아가 5개국과 국경을 접하는 등 혁명의 불씨가 남미 전역으로 잘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미국은 볼리비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한편, CIA 요원을 파견해 게바라를 체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결국 게바라는 67년 10월8일 체포된 뒤 처형됐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Ⅲ. 살아있는 신화1967년 이후 게바라의 생애와 죽음의 의미는 다양하게 평가되고 그의 이미지 또한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항간의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흡사한 모습으로 비교되는 십자가에 매달린 게바라의 그림을 보면서 중남미인들이 오늘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잘못된 체제가 회개할 수 있도록 예수가 그러했듯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달려 죽은 인물인 것이다.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허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이 주창했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은 노동자 주체를 인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제도화한 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것이었다. 게바라가 끊임없이 주장했던 개인 주체의 의식의 개발과 민중의 직접적인 능동적 참여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부재했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카스트로의 쿠바가 당시의 현실에서 혁명노선의 교조화라는 경화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30여 년이 흐른 후 1990년대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화석화된 쿠바 혁명 앞에서 게바라의 이론과 주장이 어쩌면 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프라하의 봄이 필연적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어느 비평가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자유경쟁 체제 속에서 시장의 논리에 기초한 자본주의에서 게바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권력은 결코 형이상학적이거나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행위 속에 스며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당위적으로 꿈꾸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 스며 있는 자본주의적 물질의 논리를 허무는 것이리라. 그 물질의 논리가 바로 권력이다. 우리가 극복하고 변화시켜야 할 권력의 실체는 정치가, 경제, 국가 등 우리를 넘어서는 다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 의식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저항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정체를 거부할 때 좀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곧 게바라가 언어로 주장했고 몸으로 실천했던 혁명적 행위인 것이다.그를 죽였던 1967년의 세계 지배계급은 아직 권력을 가시적 실체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우리가 사회변혁을 위해서 해야 할 핵심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현대 서구 사상사의 변화를 가져온 계기를 마련했던,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중심과 권위에 대한 19아에서 죽은 체 게바라는 암매장 되어 누구도 그의 시신을 발견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이 죽은지 30년만에 볼리비아에서 발견되었다. ‘게바라의 유해를 찾기 위한 그간의 조사와 연구는 아주 어려운 조건에서 진행됐다. 우선 희생된 게릴라 대원들의 시체가 땅에 묻혔는지조차 확실 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볼리비아군이 게바라의 주검을 헬리콥터로 아마 존 밀림에 버렸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들은 따라서 이미 게바라 의 주검은 사나운 동물의 밥이 돼 버렸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렇게 게바라 유해 발굴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볼리비아 군대가 시체가 묻혔을 수도 있는 지역과 장소에 대한 정보 차단했던 탓도 컸다.그러나 쿠바와 아르헨티나인으로 구성된 조사팀은 끈질긴 추적 끝에 처형 당시 게바라를 바예그란데 근처로 옮겼다는 운전사의 증언을 확보하고 이 지역을 집중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말 포르말린 성분이 들어 있는 그의 유골을 발견한 것이다.발굴 당시 게바라는 두팔이 없는 상태였다. 지난 67년 볼리비아군이 게바라의 죽음을 쿠바 당국에 확신시키기 위해 주검에서 팔을 잘라 쿠바로 보 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곧 관련자들의 증언과 과학적 조사를 통해 이 유골이 게바라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게바라는 마침내 머나먼 혁명의 여 정을 마치고 제2의 고향인 쿠바의 산타클라라에 묻히게 된 것이다.’이제 그가 생전에 가졌던 1960년대의 외형적인 쿠바 혁명 열기와 폭발력은 사라졌다. 그러나 게바라는 주류적 사고가 중심과 핵심만을 찾고 있던 시절에 주변과 자그마한 것을 움직여 중심과 거대한 제도를 변혁시킬 줄 알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던 자본주의적 문화의 통속성을 끊임없는 의식의 개혁을 통해서 거부해야 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시대의 살아 있는 신화이다.참고문헌강태오,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를 가다, 도서출판 마루, 2000.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지음, 이재석 옮김,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도서출판 이후, 2000.장 코르미에 (Jea
    독후감/창작| 2005.08.04| 5페이지| 1,000원| 조회(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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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평전 감상문 평가A좋아요
    영원히 죽지 않는 삶 즉 ‘불로장생’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그 희망은 단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이 한번의 인생을 더욱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빼앗아버린다. 그것이 이 사회에선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일부의 힘있는 자들인 것이다. 그들보다 더 많은 민중이 인간의 존엄성조차 무시되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 이에 짧고 구차한 삶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다.전태일. 난 그의 이름을 텔레비젼 같은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나의 머리속에 그는 젊은 나이에 분신자살한 유명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분신자살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떤 허상에 빠져 있을 때 조영래씨는 그의 참모습을 알게 해 주었다. 비록 간접적이지만…….그가 태어난 가정환경이나 어린날 보낸 생활은 ?봄비 내리는 날?과 좀 비슷하였다. 하지만 달랐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서 더욱 슬픈감이 있었다. ?봄비 내리는 날?에서 이런 이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 책에서 직접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점은 전태일의 사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태일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환경에 의해서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된다. 나보다 학력이 짧은 그가 나보다 더 성숙하고 훌륭한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언제 인간다운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 난 그저 생각없는 삶을 살아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나의 생각이라고 자부해왔던 모든 것이 초라해보였다.‘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 평전?에서그는 평화시장에 시다로 취직을 한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가며 노동을 하는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14세의 어린 여직공들이 겪는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분개하게 된다. 그래서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재단사가 되어 그 여직공들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너무 작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평화시장 전체의 노동자들의 삶을 좋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평화시장 뒤에는 거대한 사회 모순이 버티고 있었다. 그 사회 모순에 그는 무참히 깨진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최후 수단인 자살을 통해 사회 모순에 불을 붙이고 그는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인 것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자 하던 그를 어느새 나는 질투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그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3.11.24| 2페이지| 1,0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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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근대화] 서양 근대화
    서양 근대화 배경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은 신대륙을 포함하여 거대한 격동의 시기, 즉 혁명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대륙에서의 미국 혁명과 유럽에서의 프랑스 혁명은 다 같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혁명으로서, 미국혁명은 아메리카합중국이라는 새로운 근대적인 공화국를 탄생시키고, 프랑스혁명은 전제적인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봉건제의 잔재를 일소함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시민사회건설의 길을 열었다.I. 17·8세기의 사상적 배경17·8세기때 그동안의 중세를 지배해왔던 교회와 봉건귀족을 대신하여, 절대왕정이 등장하 였다. 이에 사회과학에서는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이론이 전개되었는데, 정치 학설로서 왕권 신수설이 나타났다. 프랑스의 보댕과 보쉬에는 절대왕정의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홉스는 사 회계약설을 기초로 왕권의 절대성을 옹호하였다. 또한 네델란드의 그로티우스는 '전쟁과 평 화의 법'을 써서 국제법을 창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상적 흐름은 시민의 성장과 절대왕 정의 쇠퇴와 함께 계몽사상이 일어났다. 존 로크,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계몽사상 은 인간의 이성과 진보를 지상의 원리로 하며 과거의 권위·역사·전통 등을 배격하여 합 리적 사회를 추구하는데 사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경제사상도 18세기에는 부의 중심을 농업 생산에 두고 자유 방임 정책을 주장하는 중농주 의가 프랑스의 케네, 튀르고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 사상은 국부론 을 쓴 영국의 애덤 스미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즉 애덤 스미스에 의한 고정경제학파는 국 가의 간섭을 최소로 하면서 중상주의를 비판하였다.계몽사상은 근대 유럽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영국은 17세기에 이미 시민 혁명(청교도 혁명·명예 혁명)을 치르고 민주주의 터전을 닦아 민주 정치가 뿌리를 내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18세기 말까 지도 봉건 제도의 뿌리가 남아 있었고, 왕의 전제 정치는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에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낡은 제도와 그릇된 정치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그들은 절대 주의 사상에 반대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힘으로 과거의 모든 역사적 권위와 전 통을 비판하였다. 곧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의 모순을 없애고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을 계몽 사상이라 한다. 계몽 사상은 절대주의 정치가 가장 심했던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의 정치 이념이 되었다. 프랑스 계몽 사상의 대표적 인물인 볼테르는 낡은 제도와 교회의 모순을 비판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이라는 유명한 책을 써서, 전제 정치를 막기 위해서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이 필 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 루소는 그가 쓴 등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 다. 그의 주장은 볼테르나 몽테스키외보다 급진적이었으며, 프랑스 혁명 때의 급진 세력인 자코뱅 당에 영향을 주었다.II. 산업혁명이전의 경제배경미국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용하지만 중요한 산업상의 큰 변화가 영 국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른바 산업혁명은 농업적이던 유럽사회를 산업화함으로써 산업사 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본주의를 완성시킴으로써 유럽의 경제, 사회, 그리고 나 아가서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4·5세기에 싹트고 16세기이래 본격적인 발전을 하 게 된 유럽의 근대적 발전, 즉 근대화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계기로 완성단계에 들어 서며, 19세기 근대시민사회와 근대국민국가가 확립된다.신항로 발견의 결과 유럽인의 무역의 중심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으로 이동하였고, 무역의 패권도 이탈리아로부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그 후에 영국과 프랑스로 이동하였다. 유럽 각 국의 무역과 함께 식민지 개척에도 나섰다. 포르투갈은 주로 아시아, 에스파냐는 주로 신대 륙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뒤이어서 영국과 프랑스, 네델란드 등도 세계 각지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시장을 마련하였다. 무역과 식민활동의 결과 유럽에는 동양의 산물 이 대량으로 반입되었고, 광대한 해외시장을 배경으로 그동안 중세를 지배해왔던, 길드중심 의 수공업자본이 무너지고 상업자본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신항로의 개척을 계기로 나타난 이러한 경제상의 대변혁을 상업혁명이라고 한다.III. 프랑스혁명의 배경여러 가지 상황이 프랑스혁명의 원인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제 3계급의 불만, 새로운 정치 사상에 관한 관심, 전쟁 비용에 따른 재정문제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즉, 프랑스 혁명은 절 대 왕정하의 사회 체제, 즉 구제도(앙시앵 레짐)의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였다. 구제도 아래 에서는 제 1신분인 성직자와 제 2신분인 귀족은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관직을 독점하며, 면세 특권을 누리고 이른바 특권 계급이었는데 반해, 제 3신분인 시민과 농민은 전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도, 그들의 역량을 알맞은 지위가 보장되 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 재정은 7년전쟁과 미국혁명의 개입으로 1788년에 거의 파산 상태였 다. 그런데 프랑스 절대왕정은 그러한 재정파탄을 제 3신분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사상적으로는 18세기에 '계몽사상사'들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사상을 제기했다. 루소를 비롯한 사상가들은 통치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대해 제3신분이 환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또한 제 3신분 중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 계층은 계몽사상가들의 개혁안과 혁명 사상을 받아들여, 절대왕정의 전제 정치와 봉건적 요소가 남아 있는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 다.IV. 산업혁명의 배경18세기 후반 신대륙과 유럽대륙은 독립전쟁과 혁명에 의해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러한 일련의 사회변화를 일찍 겪고 산업상의 큰 변혁이 진행되고 있 었다. 즉,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혁신으로 전례없는 생산력의 비약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그 영향은 전산업분야에 파급하여 산업구조와 사회만이 아니라, 정치 에까지 큰 변화를 야기시켰다.거시적으로 본다면 산업혁명은 농경과 가축사육을 시작한 신석기 혁명이래 인류생활에 가 장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러한 변화를 서유럽이 가장 먼저 경험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 일까. 이에 대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8세기에 서유럽은 당 시 지구상의 어느 지역보다, 그리고 현재의 산업화이전의 지역에 비하여 부유한 상태에 있 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럽이 경제적으로 매우 앞서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이유 또 한 복합적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유럽이 단일적인 제국이 아니라, 여러 민족국가로 나누어 져서 상호간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는 점,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신대륙과 아시아 방면으로 진출하여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게 되고, 초기형태이지만 근대적인 경제체제인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기업이 광범위한 활동의 자유를 누리며, 이를 종사하는 상공업자와 금융업자 등 기업가계층이 전례없는 사회적·정치적 활력을 갖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 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르네상스이래 싹튼 사물에 대한 합리적 인 태도와 사회 및 자연환경에 대한 무한한 통제 및 지배의 욕구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세 번째 사실은 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의 계몽사상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과 학과 기술은 상호보완적으로 꾸준히 발달하면서 환경에 대한 무한한 지배의욕과 결합하여 산업혁명을 낳았던 것이다.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장 잘 갖추어 있었다. 즉, 일찍이 장원제도가 무너지면서 모직물공업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산업이 발달하 고, 해외로도 발전도 활발하였다. 이러한 근대 초기의 경제 발전을 토대로 영국경제는 왕정 복고(1660)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면서 18세기까지 이어졌다.농업의 개량은 이미 17세기 후반에 시작되고 있었으나, 18세기에는 다방면에 걸쳐 기술개량 과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합리화 과정에서 제 2차 인클로저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제 1차 인클로저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작지의 증가와 농업경영의 합리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농업혁명은 농업생산고를 크게 증대시켜 식량생산이 인구증가를 보충하고 남았다. 한편 인클로저운동은 소농이 몰락하게 되고, 그들은 농업노동자가 되거나, 산업혁명이 필요 로 하는 공장노동자의 예비군이 되었다.공업생산도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식민지경쟁에 승리하여 해외시장이 날로 확대되었다. 또 한 내국관세나 봉건적인 통행세 등이 없고, 도로가 개량되고, 운하가 개통되어 당시로서는 매우 견실하고 광대한 국내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의 대륙에 비하여 1인당 구매력이 가장 컸으며, 수입도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유로운 상업활 동과 더불어 수요를 증대시키고, 그것은 다시 공업생산을 자극하였다.
    인문/어학| 2003.05.31| 4페이지| 1,000원| 조회(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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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독립 혁명] 미국 독립 혁명에 대한 고찰 평가C아쉬워요
    미국 독립 혁명에 대한 고찰-무력과 이념의 이중혁명-I. 미국 독립혁명의 발단1. 전쟁의 발단1. 전쟁의 원인(1) 영국제국의 국내 상황과 국제정치미국은 당시 인도를 제외한 영국제국의 최대식민지였다{) In the 18th century British America made great progress in wealth and civilization. The total colonial population had continued to grow and was well over a million by halfway through the century. As was being pointed out in the 1760s, the mainland colonies were going to be worth much more to Great Britain than the west indies had been.(History of world,; penguin, J. M. Roberts, 1992, p.629).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메리카식민지는 영국정부에 외교, 경제에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국제정치면에서 아메리카식민지(현재의 미합중국과 영토적구별이 필요하다; 당시 아메리카식민지는 현재의 미국영토가 아니라 뉴잉글랜드지방의 13개주로 제한된다)는 북미에 있어서 영국제국의 세력 기반으로서 식민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1700년 중반까지도 플로리다, 텍사스, 아칸사 등 지는 에스파냐의 영향력에 있었으며, 중 북부 및 프렌치 캐나다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아메리카식민지는 이러한 견제세력 혹은 경쟁상대의 최전방기지였다.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기반으로 북미에서의 세력을 확장하기를 원했고, 아시아 식민지에 비해 상당한 부분이 미개척지(유럽인의 시각에서는 미개척지이지만, 북미인디언들이 이미 살고 있었던 지역이다)가 남아 있는 점, 서구 세력과 경쟁이 적다는 점, 토착세력의 미약함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으며, 이러한 태도는 영국의 정책에 반영된다.경제면에 있어서는 교역량estown (Boston), MA)에서 양군이 대규모로 충돌하였는데, 표면적으로는 영국이 이겼으나, 이 전투에서 영국은 전쟁전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벙커힐 전투후, 영국은 보스턴이 지역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식민지군에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는 생각에서 보스턴에서 철수한다.미군군은 1775년 말에서 1776년 초에 퀘벡(Quebec)을 공략하고 포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과정에서 리처드 몽고메리(Mongomery, Richard) 장군이 전사하였다.{벙커힐전투도(실제전투는 브레드힐에서 있었음)2. 전쟁의 중반기와 전환점전쟁의 중기에 영국은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결정적인 전투에서 짐으로써 남부를 제외한 뉴잉글랜드 북부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이 시기에 영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지만, 장군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으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다. 중기를 구분짓는 전투는 트렌턴(Tranton)전투이다.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트랜턴에 있는 독일용병부대를 야습한다. 이 전투를 계기로 영국은 전쟁의 심각성을 재고하고, 새로운 전략을 짜게 된다. 그 전략에 따르면, 하우(William Howe)는 뉴욕에서 허드슨 강을 따라 알바니(Albany, NY)로 진격하고 다른 군대는 캐나다에서 아래로 진격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하우는 이 계획을 따르지 않고 남쪽 필라델피아(Philadelpia, PN)로 향하고, 북쪽군대를 이끌고 있던 버고인(John Bugoyn)은 혼자 북부도시에서 전쟁을 하게 된다. 하우는 별 저항없이 필라델피아로 들어갔으나, 버고인은 베네딕트 아놀드와 호레이쇼 게이츠에 사라토가에서 패배하여 항복했다. 사라토가(Saratoga, Stillwater, NY) 전투에서 버고인의 항복은 전쟁의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first significant American military victory during the Revolution, the Battles of Saratoga rank among th통합시키지 못하였다. 한 국가가 미래를 결정하는 데 국민적 동의가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큰 맹점이라 할 수 있겟다.(2) 수혜자의 불평등독립전쟁의 혜택은 백인남성을 위주로 한 것이었다. 백인 여성의 경우도 병영보조원(camp follower)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전쟁후에 특별한 권리 신장은 없었다. 노예제도의 경우도 계속 존속하였으며, 새로운 미국정부는 이들의 인권투쟁을 강력히 진압하였다. 인디언의 경우도 영국편에 섰었던 부족은 거의 몰살되기도 하였다. 영국은 백인이주민과 원주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서부확장이나 원주민 거주지역에 백인이 들어가는 것을 규제하였으나, 중앙정부는 인디언 거주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개척을 오히려 지원함으로써 인디언 수는 급속히 줄었다.미국은 독립전쟁을 인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 한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를 생각하면 이 전쟁의 성과는 과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원주민 흑인 모두가 이 전쟁에서 희생을 치렀지만, 미국 정부가 들어선 부 이들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결과적으로 백인들을 위한 정치는 계속 이어졌고 자유의 확장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민주국가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독립전쟁을 인류역사상 최초의 민주국가 탄생을 위한 고난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완전 없어진 미국이 아직도 당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과 인종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라고 한다면,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민주사회를 이룩했다고 할 수 없다.우리 독립운동과 미국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우선 실제독립을 쟁취가 우리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힘입은 바 크지만 미국은 영국과의 실제 무력대결에서 승리하였다. 이런 점에서 미국독립전쟁의 자주성을 높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미국독립전쟁에서는 우리의 것 처럼 국민적인 독립에의 열망이나 정신적 자주성을 찾을 수 없다. 대륙회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영국제국에서의 독립 이루면 자위 능력을 갖출 수 있을 만큼 크면서도 공화국 시민이 누리는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연합 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스티븐스는 대의제가 대규모 국가의 민주 정치에 수반되는 혼란을 미연에 방지해 줄 것이며 양원제와 더불어 행정부와 사법부가 혼란을 억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는 소규모 공화국에 내재하는 파당과 불안정 그리고 빈번한 혁명을 비난하면서 작은 공화국보다는 큰 공화국이 반란을 더 잘 견제하고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대규모의 공화국에서는 어떤 파당이든 간에 하나의 파당이 지배적인 위치를 장악하고 그리하여 나머지 파당들을 억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연방군대에 대한 쟁점헌법에 따라 연방의회가 군대를 창설하고 유지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점을 들어 군대의 폐단을 걱정하였다. 특히 반연방파는 상비군 에 대해서도 위기감을 가졌다. 왜냐하면 반연방파는 헌법에서 연방의회가 방가 민병대를 연방의 군대로 조직하고 상비군으로 흡수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을뿐더러 대통령이 방가 민병대를 마치 상비군처럼 활용하지 못하게 막는 규정도 없었다.연방파는 방가의 민병대가 오히려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반연방파가 걱정하듯이 상비군이 국왕의 친위대역할을 하듯이 대통령의 친위대 역할을 하기에는 연방의회의 승인하에 가능하며 연방의회는 매년 혹은 2년마다 교체되기 때문에 그러한 지속적인 음모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남북전쟁을 계기로 연방정부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각주가 보유한 주방위군에 대해서 연방차원의 제한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전쟁에 패배한 남부 각주의 주방위군은 연방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놓였다이런 헌법을 제정하고 비준하는 과정에서, 연방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연방헌법의 결함으로 지적되어 제임스 매디슨의 주도하에 1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권리장전이 원래의 헌법에 덧붙여졌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수정헌법'이다. 그 내용을 보면▶첫째, 연방은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금지하고 국교제도를 도입하지 당시 미국의 노예제도가 타국의 그것에 비해서 보다 온건한 것이었음에는, 제임스 교수에 따르자면 의심할 바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아메리카의 자유와 아메리카의 노예제도는 매우 대조적인 성격의 것으로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 둘 사이의 모순을 혁명가들은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세계 최초의 반노예제단체가 렉싱턴 전투가 있기 5일전 1775년 4월 14일 필라델피아 세컨드 스트리트 썬 테이번(The Sun Tavern)에서 결성되었다. 1785년, 뉴욕 노예해방촉진회가 조직되었고, 178년에는 이와 유사한 회가 델러웨이 주에서 결성되었다. 그 후 4년 이내에 로드아일랜드 주, 코네티컷 주, 뉴우져어지 주, 메릴랜드 주, 그리고 버지나아주에서 노예해방에 관한 조직이 결성되었다. 연방정부적인 규모로는, 1774년 대륙회의가 노예불수입의 법령을 공포했으며, 이 법령은, 향후 미국이 노예무역에 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예무역에 관계하는 자에 대해서 미국의 선박을 임대하거나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고 명시하고 있었다. 이보다 4개월 전, 로드 아일랜드 주는 이후 동 식민지에 들어온 모든 노예는 자유라고 선포했고, 델라웨어는 1776년 노예수입 금지령을, 버지니아, 메릴랜드, 사우쓰캐롤라이나 등도 비슷한 시기에 기한부 노예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노예를 거의 소유하지 않았던 주들은 독립에 따라 점진적인 노예제도 폐지 를 법령화하게 되었으며, 메사추세쓰 주의 고등법원은,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는 헌법의 단순한 선언만으로도 동(同) 주 내에서 이미 노예 제도는 철폐되었다고 선언한 바 있다. 1782년 버지니아 주는 노예소유주가 적절한 증명서로써 그의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법을 가결했는데, 이 법은 상당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이 법 이전에 불가능했던 개인적인 노예 해방을 가능케 했던 것이며, 이 법령으로 해방된 노예수는 1만명에 이르렀다.여러 면에서 미합중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들은, 인간의 사회적 지위를 변경시킴으로써 미
    인문/어학| 2003.05.30| 19페이지| 1,000원| 조회(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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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 다 쓰고 죽어라
    노인복지론 기말 리포트새로운 노년문화를 위한 지침서-성공적인 노화-존 로우 로버트 칸 공저이 책은 미국의 맥아더 연구소에서 새로운 노년학 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학제 간 교류를 통해 성공적으로 노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을 엮은 것이다. 성공적인 노화 란 건강하고 힘차고, 활력 있게 늙어 가는 상태 로 정의할 수 있으며 질병 피해가기, 적극적인 인생참여, 높은 수준의 인지적 기능과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기는 성공적인 노화의 세 가지 구성요소이다.미국에서는 유아 및 아동 사망률 감소와 중년과 노년인구의 사망률로 인해 기대수명의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엄청난 숫자의 인구가 고령화하고 있다. 이들 노인 집단은 기존의 노인들과는 크게 두 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로는 65세에서 74세의 일반적으로 건강하고 기능 수행 능력이 있는 노인과는 달리, 75세 이상의 허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노노인 집단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00년의 4%와 비교해서 오늘날에는 85세 이상의 노인집단이 10%를 넘어서고 있으며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다. 또한 여성의 수가 현저하게 우세해졌다. 이 외에도 현재의 노인들은 과거에 비해 교육 수준과 건강관리·위생상태·경제 측면에서 더 나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인들의 기능 수행 능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 책의 연구배경이 되는 위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역시 적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인인구도 전체 인구의 계속적인 증가에 따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그 증가속도도 다른 연령층보다 빠르다. 또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약 6년 정도 길기 때문에 여자 노인의 수가 연령이 증가할수록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노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노인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노인의 건강 및 부양 문제로 노인을 하나의 대상으로 파악하여 문제를 개념화하고 해결하려는 노력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성공적인 노화 는 노인들이 스스로 신체적 ·법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평생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다.편견 6 노인들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 고 하여 노인을 사회의 비생산적 존재로 믿는 경향은 잘못이고 부당하다. 보수를 받는 일만이 생산적인 것은 아니며 더욱이 노인들이 이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질 기회가 동등한 것도 아니다. 노인들은 일을 하고 싶어하며, 실제로 보수를 받는 일, 자원봉사,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도움 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에 대한 편견들을 해결함으로써 성공적인 노화의 구조에 대해 알아보고 성공적인 노화를 준비할 수 있다. 이 편견 중 특히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견으로 2 늙은 개에게는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 없다 를 들 수 있다. 흔히 노인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노인정이나 경로당 등에서 노인들이 주로 하는 일은 화투놀이나 장기·바둑 등의 소일거리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가전제품들 즉, 비디오나 에어컨·TV 리모콘·휴대폰이나 식기세척기 등은 노인들도 충분히 사용하고있으므로 복잡하지 않은 가전제품의 매뉴얼은 노인들에게 생소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새로 시도되는 노인대학이나 지역사회의 컴퓨터 강좌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적합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재사회화의 한 바람직한 예일 것이다. 학원과는 다르게 이들 강좌의 강사진은 같은 내용을 천천히 반복 설명하고 매시간 전 시간의 복습을 실시하며, 노인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인들이 간단한 이메일 사용법과 인터넷 정보 검색하는 법 등을 익힘으로써 이후 세대와 단절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편견은 노인들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 는 것과도 관련되는데, 노인들의 구시대적 방식이 비록 현재의 기술에는 적합하지 못한 것이라 할 지라도 노인들이 연령 대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노인을 비하해서 밥만 축낸다 고들 하는데, 요즘 가정에서 노인들의 , 나이가 들면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더욱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는 노인 대상 건강검진 정책이 좀더 홍보되어서 널리 시행되어야 한다.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요인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가족 연구·환경이 다른 인구집단 연구·입양 연구·쌍생아 연구 방법 들을 사용하여 비만·혈압·콜리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폐 기능·정신력·노인성 가성·당뇨병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결과는 나이가 들수록 유전자는 덜 중요해지고, 생활양식과 환경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적절한 식사·금연·운동 등 환경의 조절을 통해서 유전적으로 결정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 책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신체적 노화의 성공요인으로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운동을 들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운동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면서 운동을 하는 노인 층이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대구 신천 변에 있는 게이트볼 장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인들이 모여서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는데, 이처럼 힘들지 않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굳이 도구를 사용하거나 전용 경기장에 가지 않더라도 동네를 돌면서 산책을 하는 노인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 운동과 신체적 활동의 수행을 통해서 심장병·고혈압·당뇨병 발생 등을 예방하며 암·골다공증·낙상 등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또 노년기 사망과 장애의 주요 원인이 된 암은 예방될 수 있으며 초기 발견을 통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책에서는 유방암·자궁경부암·대장암과 직장암·전립선암·폐암·피부암·심장질환과 뇌졸중·골다공증·알츠하이머병 등에 관한 초기 발견법과 예방, 일부의 치료 방법 등에 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나아가 노인을 위한 예방 접종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들은 이러한 질병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노년기에 요구되는 영양은 연령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필요 열량은 감소하고 수분의 섭취 요구양은 증가하며(탈수의 위험성 역시 증가한다) 단백질의 필요량 역시 증가한다. 이 밖에 탄수화물, 비타민, 지용성 비타민, 무기질 등의 필요성을 연령에 따라 설명해주고 있다. 노인에게 소화하기 쉬운 음식물을 주로 제공하고 고단백·고칼슘의 원칙을 지키는 우리나라의 식단은 비교적 노년기 영양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예부터 어르신들의 잠자리에 신선한 물로 자리끼를 준비한 것도 노인의 영양을 고려한 과학적인 습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적절한 영양 섭취와 운동을 넘어서 노년기 신체적 기능수행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책략들로는 정신 능력과 사회적 관계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노인의 신체적 수행을 측정하기 위하여 포괄적인 범위의 활동을 조사하여 건강한 노인에게 신체 기능의 수행능력을 유지시키고 향상시키는 요인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 맥아더 연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발견해냈다. 정서적·사회적 지지는 신체적 기능의 유지와 향상의 강력한 예측요인으로 나타났고, 성공적으로 나이를 먹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기능을 계속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노년기 정신 기능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많은 노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알츠하이머병{) 노인에서의 치매(痴)의 원인 중 가장 흔한 형태이다. 병리조직학적으로는 뇌의 전반적인 위축, 뇌실 의 확장, 신경섬유의 다발성 병변(neurofibrillary tangle)과 초로성 반점(neuritic plaque) 등이 특징이 다. 미국 전 대통령이었던 R.레이건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더욱 끌고 있다. 임상적인 특징은 점진적인 기억 ·판단 ·언어능력 등 지적인 기능의 감퇴와 일상생활능력 · 인격 ·행동양상의 장애이다. 병에 걸리면 초기에는 이름 ·날짜 ·장소와 같은 것들이 기억에서 사 라지고, 심해지면 화장실을 가거나 요리를 하거나 신을 신는 일 등의 일상생활가 크다. 우리 주변에서 노인들이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지명이나 인명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하고 인지적 능력이 줄어든다고 한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것 역시 개인적으로 부분적인 인지적 상실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 인지 능력은 다중적인 것이므로 일부 영역의 정신 기능이 다소 쇠퇴하더라도 기능 수행 능력이나 자립능력이 저해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노력을 통하여 노년에도 기억과 다른 인지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다. 사회적 지지를 통한 적절한 훈련과 연습으로 노년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 문제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 능력을 가진다고 믿는 자기효율성이 증가할 수 있다. 노인의 경우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기억수행과 자아 존중감이 모두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노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노인들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젊은 사람이 대신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런 것이 노인의 활동 능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자신감마저 빼앗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 노인의 자기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노인 개인 뿐 아니라 전체 노인의 복지 및 사회의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노인은 젊은 사람에 비해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고 연구 결과 노인은 일반적인 삶의 문제에서 젊은 세대에 비해 지혜로운 조언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노인의 정신 기능에 대해 노화하는 정신은 여러모로 건강하고 유연성이 있고 쓸모가 있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연령에 따른 일부 정신 기능의 감소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노인들은 의미 있는 인생과 자립을 위해 충분한 예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다음으로는 성공적인 노화의 세 가지 구성요소 중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이어 인생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의 두 가지 구성요소 즉, 가족 및 친다.
    사회과학| 2003.05.30| 9페이지| 1,0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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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문화] 개항기 시대의 조선 문화 평가A좋아요
    개항기 시대의 조선 문화I. 들어가며조선후기에는 조선 전기와는 다른 많은 사회변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이후 문호가 개방되어 수많은 문물이 유입되면서 이러한 변화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폭넓게 이뤄지고 그 변화속도 또한 전시대와는 달리 크게 가속도가 붙은 게 사실이다.문호개방의 기점을 이룬 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이러한 사회변화의 모습은 서양의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서양선교사의 국내활동에 힘입어 분명히 개항이전의 사회변화모습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개항이후의 조선문화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해보고자 했으나 분량이 방대하기에 시장과 상인, 여성모습, 의식주, 근대 교육, 관혼상제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주제를 나누어 살펴보았다.이러한 논의 자료의 대부분은 당시 조선에 있던 외국 공사관이나 선교사들의 기술이나 그들이 찍은 사진을 기초로 하여 논의하였다. 하지만 주로 외국인이 남긴 기술이라 그들의 문화적 관점에서 우리의 과거 문화를 바라본 것이기에 우리민족 자신의 정서나 사상이 간과된 점을 볼 수 있다.그러기에 이러한 자료를 통해 당시 문화를 이해하면서도 우리민족의 정서나 사상을 다시 우리민족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논의도 같이 해보았다.II.1. 의 식 주우리 나라는 조선 말엽에 이르러 서양 문물의 전래와 함께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천주교 및 기독교의 전래와 동학사상의 영향으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이 장에서는 일상생활에 분 변화의 양상을 의식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며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교통수단의 변화도 논의에 포함하였다. 이러한 변천은 모두 간소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본문의 각 부분에는 개항 후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여행기들을 인용하여 현실에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가고자 하였다.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모습은 이른바 '선진국'으로서의 선입견을 감안하고 보았을 때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할 가치가 있요리'가 알려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일본, 서양의 요리가 차례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이었던 손탁은 민비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궁중에 서양요리를 보급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손탁 호텔을 경영하면서 상류사회에 서양음식을 보급하였다. 이에 따라 밀가루와 우유, 설탕 등이 사용되어 과자류, 케이크류 등이 생겼다. 또한 1885년을 전후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의 평등사상이 확산되면서 반상, 남녀, 장유의 구별에 의해 따로 먹던 식사를 한상에서 같이 먹는 방식으로 변하였다.식생활에 관련한 외국인의 기행기에는 유독 김치에 대한 언급이 많다. 당시에도 외국인에게는 김치의 냄새가 참기 어려운 것으로 묘사된다. 독일인 의사 분쉬는 '반쯤 상한 야채절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김치가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설명한다. 또한 로제티는 한국의 식습관에 관한 언급에서 한국에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 매우 빈번하다고 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많이 먹는 것이 큰 자랑거리이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누가 더 많이 먹는가를 내기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라고 서술하였다.3. 주거문화개화기에는 흙, 짚, 돌 등의 전통적인 건축재료 대신에 시멘트, 벽돌 등을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외국인들의 건축과정에 관한 설명을 보면 양옥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을 지을 때에도 시멘트로 마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사관, 성당 등이 많이 지어지면서 끝이 뾰족한 청탑 건물, 욕실을 갖춘 집, 온돌과 다른 난방 시설이 도입되었다. 유명한 서양식 건물로는 명동의 천주교 성당, 독립문, 용산 신학교 등이 있다.외국인들의 기행문에는 온돌에 대한 언급이 자주 눈에 띈다. 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와 있다.가옥들은 한결같이 나즈막한 단층으로 시내 전체에 2층 이상으로 된 일반 주민의 주택은 한 채도 없다. 한국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온돌'이라는 것으로 동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들만이 이것으로 난방문제를 훌륭하고 독창적으로 해결하였다......그들에게 새로운 교통수단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시간개념이 송두리째 바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한 서민들의 반응은 외국인들의 글에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 못하는 매커니즘에 의해 (엔진 등) 그들의 시간개념상으론 '순식간에' 사람이 운반된다는 것은 그들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당연시하는 외국인에게는 이들의 반응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렌은 그의 글에서 '흰 옷을 입은 신경이 무디게 생긴 사람들이 기차의 기적이 울리거나 증기가 분출되어 나올 때마다 뒷걸음치곤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또한 알렌은 기차를 존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교육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기차의 기능에 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보여준다. 다음에 그 글의 일부를 옮기려 한다."기차는 곧 훌륭한 교육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기차는 비록 승객이 양반이라 할지라도 기다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전차도 마찬가지였다. 양반의 수행원들이 아무리 부탁을 해도 전차는 지체하지 않았으며, 양반이 직접 차 계단에 한 발을 올려놓고 자기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전차를 지연시켜도 무례한 기계는 양반을 길가에 세워둔 채 떠나버렸다."이러한 현상은 양반의 권위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즉 기존의 체제가 급속하게 붕괴되는 현실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개화기의 변화들을 살펴보면 아직 서민들이 개화의 물결에 동참하지 못하고 기존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에 한심하고 무지한 존재로 비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본다면,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하여 나름대로 적응하고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조선인의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 관 혼 상 제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의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까지의 70 혹은 80 평생에 크고 작은 행사는 많이 있다. 그 중 冠, 婚,성이므로, 생활문화를 다루는 이 조사보고서에서는 여성들의 생활도 다루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개항기의 여성들은 어떠한 지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다.1. 보이지 않는 여성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여성들이 거리에 나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항기만 해도 여성들은 집에서 나가지 않았으며 나갈 일이 있을 때에는 완전히 차단된 가마를 이용하거나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인들은 최하층의 여인들뿐이었다. 『꼬레아 꼬레아니』의 저자 로제티는 거리를 다닐 때의 주의사항을 이렇게 소개한다."무엇을 감상하거나 시계를 보기 위해서거나 또는 어떤 이유로든지 걸음을 멈추게 되면 곧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둥그렇게 당신을 둘러싸고 주의 깊게 관찰하며 점점 가까이 접근해 온다. 이들은 분홍빛 누더기를 걸친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한국의 군중에 여인네는 단 한 명도 없다.(pp. 56∼57)"개항기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을 볼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에 로제티와 같은 외국인들은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군중들 속에 여인네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를 보면 여성들은 거리를 나다니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런 '구경'에서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여성들이 왕의 행차와 같은 여러 가지 구경거리에 빠지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로제티가 있던 당시 서울에서는 왜 여인네들이 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다.로제티 자신이 남자였기 때문에 더더욱 여성들이 구경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이 구경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어쨌든 개항기의 여성들이 집을 나와 밖에서 활동할 자유는 제약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뒤크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인용한다. 그에게 당시 여성들은 말없이 할 일을 하며 음성을 높여서는 안 되는 온순한 몸종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한편 그는 여성들이 밤에 자유롭게 다니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루 종일 답답하게 갇혀 있던 아낙들이 밤에는 풀려나 바람을 쐬음으로 재산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소가 사육된 것은 약 2000년전 부터라고 하는데, 농경과 육용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좋은 소를 고르는(평양의 우시장)것은 중요한 일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각지에서 우시장이 섰는데, 북쪽에서는 평양 우시장이 유명했고, 남쪽에서는 김천 우시장이 유명했다고 한다.(닭시장)위 사진은 아마도 우시장처럼 따로 닭시장이 형성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장날에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오듯이, 닭을 가져 나와 팔기 위해서 시장 어느 한켠에 같이 몰려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농가에서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하면 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죽이지 않아도 달걀이라는 신선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것이다. 계산탕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좋은음식이 곧 좋은 보약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가졌었다. 그래서 뭐니뭐니 해도 식보(食補)가 제일이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여름 복중에는 특히 어린 햇닭을 잡아 뱃속에 찹쌀, 대추 등을 넣어서 고은 계삼탕을 즐겨 먹었다. 이는 삼복더위에 보신이 될 뿐만 아니라 연중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먹는 음식을 시식(時食)이라고 했는데, 지방마다 독특한 시식이 있었다고 한다.3. 만물상과 방물장수시장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없는 상점이 없다, 그 중에서도 만물상이나 방물장소에서는( 만 물 상 )왠만한 것들은 다 가지고 팔았다고 한다. 나중에 「잡화상」이라고 불린 만물상은 별의 별 것을 갖다놓고 팔지만, 물건 가짓수가 백가지가 넘는 일이 없다. 가게를 잡고 붙박이로 있으( 노 점 상 )며, 더 많은 물건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노점같은 경우는 몇 개 되지 않는 간단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고 방물장수는 이것들을 들고 다니면서 팔았기에 들고 편하고 간수하기 편한 작은 것들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4. 유기장수와 옹기전장바닥에 가지런히 유기들을 진열해 놓고 앉아있는 유기장수의 모습이다. 놋그릇은 제사때다.
    인문/어학| 2003.05.30| 15페이지| 1,000원| 조회(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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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 인권의 관점에서 사회복지법의 개선방안 평가A좋아요
    인권의 관점에서 본 한국 사회복지법의 개선방안Ⅰ. 인권의 개념과 가치인권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늘 변화되고 새롭게 풍부해지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인권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있는 인권의 핵심이다.)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의 머리말에서:모든 인류는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 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무 시와 멸시는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모든 인류가 최고로 바라는 것은 인 간이 언론과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1966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의 머리말에서:인류 사회의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존엄성과 평등하고 남에게 넘겨줄 수 없 는 권리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한다.1987년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 10조에서: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의 존엄함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침해할 수 없는 기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지금까지 인권의 변화 속에 등장한 권리의 내용은 크게 1·2·3세대 인권으로 나눠볼 수 있다. '세대'가 지남에 따라 순서대로 등장하고 앞의 것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완되고 확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1세대 인권(자유권 혹은 시민·정치적 권리)- 근대시민혁명을 통해 등장한 '자유권'은 정치권력의 남용과 오용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가 개인에게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성격을 갖는다.2세대 인권(사회권 혹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근대 시민혁명은 '모든 인간의 인권'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고치려 들지는 않았고 그러므로 비참한 은 단순히 '목숨만 부지하면 된다'는 소극적 자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발전적인 삶'을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 이를 위해서는 환경파괴, 의료시설의 부족, 부적절한 보건정책 등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문제삼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자유세계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는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다운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노예나 예속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을 받지 말아야 하고, 함부로 체포나 구금·추방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사생활이나 통신에 간섭받지 않아야 하고, 이동과 거주의 자유 및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자유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일 뿐이다.·평등"성별·나이·종교·인종 등의 이유로 갖가지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 사회참여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온전하게 참여할 수가 없는 것이 평등을 박탈당하는 것이 될 것이며,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차별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정의모든 사람이 골고루 권리를 누리고 발전할 수 있도록, 즉. 사회구성원 모두의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의 재분배를 꾀하는 것, 누구나 교육과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마련하는 것 등을 말한다..·사회적 책임·연대고통받는 사람들 또는 피해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 주장하고, 그들을 돕는 것 .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의 '고립'을 막고 문제해결을 추구하기 위해서. 빈곤이나 실업, 차별과 편견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평화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어야하며 이를 위해 서로의 다른 점, 즉 '차이되어져야 한다는 원리는 사회복지 실제의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기본원리이다. 이는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있음을 의미한다. 평등은 일반적으로 수량적 평등, 비례적 평등, 기회의 평등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사회적 책임(연대성)이는 사회 연대의 원리, 사회구성원간의 합의와 상호의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 위험성을 공동으로 부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 및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이처럼 사회복지와 인권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 평등 및 연대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Ⅲ. 한국의 사회복지법사회보장기본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국민 개개인이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고, 그 시행을 함에 있어서 형평과 효율과 조화를 기함으로써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그 기본이념으로 한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장이란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사회보험 및 관련 복지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복지법은 ① 공공부조 ②사회복지서비스 ③사회보험 ④관련복지제도의 4분야를 그 주된 법원(法源)으로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회복지 관련 법령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Ⅳ. 한국 사회복지법의 개선 방안〈여성복지 관계법령〉1. 여성복지 관계법령의 종류(1) 사회복지 기본법 및 일반적 보건복지법령:사회보장기본법, 사회복지사업법, 국민기초 생활보장법, 국민연금법,의료보험법, 국민의료보험법, 식품위생법등(2) 여성복지법령:모자복지법, 모자보건법,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윤락행위 등 방지법등(3) 여성복지와 관련이 많은 보건복지법령:영유아보육법, 아동복지법,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등의 회적으로 성차별을 고착화시키는 경우 등이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여성권리에 대한 법규정은 재생산권리의 보장에 관한 여성에 대한 특별한 권리의 보장과 평등실현을 위한 특별한 지원규정의 2가지 영역이 있게 된다. 이 두 영역의 법, 정책적 과제는 여성보건복지정책의 주요 정책적 과제가 되며, 가족법, 노동법, 형사법 영역과도 관련된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도 공공기관이 법령에 의하여 직무를 수행하거나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의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제6조), 또한 많은 보건복지정책과 관련되는 재화, 시설, 용역의 제공 및 이용에 있어서도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다(제5조). 한편 우리 나라의 보건복지정책에서 여성정책은 그 동안 매우 주변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조직적으로도 부녀복지과를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요보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중심이었으며, 전반적인 빈곤정책, 보건정책, 가족정책, 노인정책, 아동정책 등에서 주류로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보건복지법령을 중심으로 본 여성복지관계법령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은 다음과 같다.사회복지에서의 남녀·여남의 양성평등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선 보건복지 관련 법령상의 성차별적 규정을 개선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관련 법령상의 성차별은 주로 여성에 대한 편견(성별역할 분리와 고정관념)과 이에 근거한 사회복지상의 기준에서의 차별 등이다. 우리사회에서의 양성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남녀역할과 성별분업에 관한 지배적인 관념의 변화이므로, 법령상의 이러한 성차별적인 법규정을 개정함으로써, 보건복지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고 사회적 규범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최근의 출산율 1.48시대를 이야기하는 인구학적 변화와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과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및 평등한 권리보장의 법제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별적인 현실 등을 살펴보면 전반적인 여성보건복지의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경향은 유엔의 여성정책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향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법인이나 기타 비영리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다. 이것은 강제규정으로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시설을 설치 운영하게 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사회복지사업법 제26조 제2항). 따라서 사회복지의 시설사업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법인이나 기타 비영리법인만이 할 수 있고 그외의 단체나 개인은 할 수 없다. 다만, 아동복지법에 의한 조산시설, 무료 아동전용시설 그리고 가정탁아시설은 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에게 신고만으로 설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설은 법인 외에도 단체나 개인 누구라도 설치 운영할 수 있다.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대규모시설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것은 시설의 최소규모를 수용인원 30명 또는 50명 이상이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의 인원을 수용보호 하기 위한 시설설치기준에 맞게 대지와 건물, 그리고 운영비를 확보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하게 된다. 예컨데 50인 입소정원(중소도시기준)의 지체부자유자 재활시설의 경우 최소한 약 5억원의 재산에다 대지와 운동장이 별도로 있어야 한다) 즉,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사업법령 운영지침}(1986)에 의하면 목적사업용 기본재산만 해도 시설(건물)비만 21.78m2x50인=1,089m2 즉, 연건평 1,089m2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1989년도 예산지침에 의한 정부 시설비 기본단가(건축비단가) m2당 249,600원을 곱하면 1,089m2x249,600원=271,814,400원의 경비가 든다. 그리고 수익용 기본재산은 1인당 연간소요경비 2,215,000원x50인x20/100x100/10(수익율)=221,500,000원, 합계액 493,314,400원으로 약5억원이 든다.이외 대지와 운동장의 구입비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 또 육아시설의 경우 30명 정원으로 대도시에 위치 한다면 대지와 운동장을 제외한 목적사업용 기본재산과 수익용 기본재산을 합해서 2억원이 약간 넘는 재산이 필요하며, 야 한다
    사회과학| 2003.05.30| 7페이지| 1,000원| 조회(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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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 사회복지 면접사례 평가A좋아요
    사회복지실천대상자와의 면접-Garrette의 면접론에 의한 분석-1. 들어가기사회복지실천대상과의 면접은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처음과 끝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즉 처음 사회복지 실천 대상과의 면접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이며 클라이언트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한 뒤에 마지막으로 면접을 통해서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끝이 나게된다. 이러한 사회복지면접의 특성상 사회복지실천에 있어서의 면접은 일반적인 대화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가 원조라는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하는 특수한 관계를 띠게 된다. 따라서 아무런 방향이나 계획이 없는 사담이 아니므로 무절제한 정보의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전문적인 개입을 위한 대화의 기법이 필요하다. 즉, 전문화된 사회복지실천에서의 면접기술이 필요한 것이다.이러한 사회복지실천면접의 방법론에 대해서 Garrette(Garrett. M. Annette)은 그의 저서『Interviewing: Its Principles and Methods』에서 다음과 같은 8가지 원칙을 제시한다.1. 관찰2. 경청3. 말하기 전의 경청4. 질문5. 말하기6. 사적 질문에 대한 응답7. 리더쉽과 통솔력8. 해석위와같은 8가지 면접기술을 바탕으로 면접을 시행하고자 한다.2. 면접에 관하여A. 대상 :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중학교 3학년 남학생B. 시각 : 2003. 5. 5 저녁 7시∼ 9시30까지C. 면접대상에 대한 배경:내가 과외 하는 고등학생의 동생들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낯선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아이들의 부모님께서는 직장을 다니시기 때문에 가정이 안정감이 없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없고,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아이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산만한 편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바쁘니까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하는 자립심이 있지만 통제를 가하지?병 : 스타크레프트나 레인보우식스를 하고 있습니다.갑 : 주로 어떤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까?병 : 로봇들이 나와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많이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갑 : 폭력성은 없는지요?병 :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갑 : 그러면 그런 것들로 인해서 학교생활에 방해를 주거나 공부시간에 차질을 주지는 않는지요?병 : 저희 학교에서는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갑 :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병 : 학교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지요.을 : 집에서 나오자마자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갑 : 그럼 부모님과의 대화시간이 적다고 생각하세요?을 :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엄마하고 언제나 만날 수 있고 아빠하고도 만날 수 있으니까 적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갑 : 부모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 지, 부모님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말해주세요.병 : 학교 성적 이야기도 하고 음..학원이야기와 친구이야기도 해요.갑 : 그럼 부모님과 대화할 때 세대차이나 대화가 안 통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요.병 : 그런 적이 없었어요.갑 : 너무 말이 잘 통하나요?을 : 그렇게 잘 통하는 것은 아닌데요, 엄마도 우리와 맞추어 주시려고 하니까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에요.갑 : 부모님께 바라거나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을 : 특별히 바라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갑 : 동생은 이렇다고 했는데 오빠 생각은 어떤 지요?병 : 가끔 대화가 안 통한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그렇게 큰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갑 : 부모님과 주로 진학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성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는지 아니면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지에 대해서 각각 이야기해 주세요을 : 초등학교니까 아직 성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시지는 않는데 중학교 가서 말해도 되고요. 진학문제는 내년에 있을 거니까 그렇게 크게는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요.병 : 저는 다릅니다. 저는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부모님과 많이 다다고 생각하나요?병 : 크게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갑 : TV를 세시간 이상을 보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다고 하는데 보다가 채널싸움이나 부모님과 마찰이 생기지는 않습니까.을 : 그런 적이 있었어요. 나는 만화를 보고 싶은데 엄마는 뉴스를 보려고 한적이 있어요. 엄마 계시면 엄마 위주로 보게 되요. 엄마가 직장 다니시는데 잠깐 보시는 거기 때문 에요.갑 : 엄마에게 채널을 양보하는 건가요?을 : 아니요.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 소리를 들을까 봐, 혼날까 봐 부담돼서요.갑 :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학급이 파괴된다는 말이 있는데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는 어떤 지요.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안 듣거나 결석하거나 폭력까지 휘두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본적이 있는지요.병 : 뉴스에서 가끔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심한 것 같았어요. 근데 저희학교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갑 :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안 듣고 그런 것은 과거에도 많았는데 왜 요즘에 들어서 그렇게 심각하게 문제가 나타난다고 생각하세요.병 : 보통 10년 이상 되신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 거 같아요. 그런데 3개월 되신 선생님 말은 안 듣고 반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학교에는 3개월 되신 분들이 많거든요.갑 : 결석이나 가출하는 학생은 없나요?병 : 우리 반에는 없어요.갑 : 우리 때는 가출한 아이가 한 명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출이 가정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 거 같고 되돌아 왔을 때 아이들의 반응에 민감하더라고요. 그래서 되돌아오고 싶은데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갑 : 그 다음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방과후에 pc방을 간다든지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공부하면서 받은 중압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 이야기 해주세요.병 : 요즘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pc방이나 만화책 등을 많이 빌려 봅니다.갑 : pc방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지속적으로 갑니까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만 갑니까?병 : 저는 한 달에 5번 정도 가는데 다른 아이들은 매일 가는 학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나 보지요?을 : 네.병 : 저희반 아이들은 단과 세네군데 다니는 아이도 있구요, 종합반이라고 해서 전과목 다 배우는 아이도 있어요.갑 :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학원수업에 치중을 하는지요, 학원수업 때문에 학교에서 졸게 된다거나 그런 경우가 있나요. 왜 그런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나요?병 : 한두 명은 있어요.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지요.갑 : 무슨 과목을 위주로 해서 듣나요?병 : 국영수과 위주로 들어요.갑 : 학원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학원을 다니라고 부모님이 강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학원을 다니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니는 건 지요?병 : 저같은 경우도 가라고 해서 다니지요. 학원을 빠지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저도 수학과 영어학원을 다녀요갑 : 초등학생의 경우 어떤 학원을 다녀요?을 : 수학학원이나 속셈학원 영어학원을 많이 다녀요.갑 : 영어 같은 경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가리킨다고 들었는데 지금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나요?을 : 네, 하지만 그래도 학원은 다 다녀요.갑 : 본인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요?을 : 저는 영어와 국악을 다녀요.갑 : 국악을 하는 것은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건가요 아니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하는 건가요?을 : 거의 맨날가도 국악은 재미있어요.갑 : 국악을 하면서,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면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을 :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글짓기나 미술선생님이 특별활동으로 가르치는데요 국악 같은거는 단소 같은 간단한 것만 가르쳐 줘요갑 :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으니깐 다니는 거군요.을 : 학원을 통해서 다니고 국악유치원이나 고등학교도 생겼으니까 적성에 맞게 갈수도 있어요.갑 : 요즘에 체육이나 미술 음악을 대학을 가기 위해서 배우는 사람도 있는데 대학을 가기 위해 배우는 것인지 적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쪽 저쪽 다 배워 보려는 건지 본인은 어디라고 생각해요?을 : 거 같아요갑 :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 학교에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것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교내폭력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를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지요?을 : 그런 건 없는 거 같은데요. 학교 내에서 집단따돌림은 없는데 우리 반 어떤 아이가 방과후에 중학생 형들 한데 맞고 2만원을 빼앗겼대요.갑 : 반애들이 따돌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는 없었는지요?병 : 가끔 장난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어느 애가 말썽을 피워서 며칠간 그러다 말았어요. 다른 학교의 경우는 어리숙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을 때리고 몰매 맞기라는 것도 있데요.갑 :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따돌리려는 애들 때리는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는 않지요?병 : 저희 반에서는 없어요. 반장인데요 만만해서 볼도 때리고 한 명이 때리기 시작하니까 다른 애들도 장난으로 많이 때려요. 그리고 학교전통이라고 해서 선배들이 와서 후배 때리고 그런 적은 있어요.갑 : 지금 집단따돌림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고 그들을 위해 학교에서 상담이나 대안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갑 : 끝으로 학교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면 개선되어졌으면 하는 것이 있는지요?을 : 아이들에게 적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외국처럼 학원을 없애고 도서관을 만든다 거나 공부방을 마련하는 경우처럼 방과후에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병 :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방을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부모님께 바라는 것은 너무 학원에만 다니면 학원에 다니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저희를 생각해서 그러는 마음은 알지만 저희를 믿고 학원보다는 저희가 독학으로 학교수업 열심히 듣고 그것에 대한 공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갑 : 학교교육이 좀더 현실에 맞게 아이들의 바램대로 아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개선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아동·청소년들의 고민거있었다.
    사회과학| 2003.05.30| 11페이지| 1,000원| 조회(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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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
    『백년동안의 고독』이 작품에는 몇 세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고독이 '부엔디아' 가문의 뒷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고독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의 결혼에서부터 배태되어 있다. 거기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푸르덴치오 아귈라를 죽임으로써 근친상간과 살인이라는 이중적 터부의 굴레를 지고 마콘도라는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면서 그 고독은 유전되기 시작한다. 마콘도라는 아무도 마을 밖을 빠져나가거나 죽는 사람이 없는 공간 또한 부엔디아 집안의 고독이 유전되는 데 충분조건이 된다. 마콘도는 산맥과 바다로 둘러싸여져 한번도 인간의 발자취가 닿지 않았던 원시적이고 폐쇄적이며 비이성적인 무대로 등장한다. 이렇게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1세대)에 의해 인도되는 마콘도는 목가적·낙원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촌락 마을로 상징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시대(4세대)에서 보이는 마콘도의 이미지는 완전히 도시의 이미지이다. 전자의 시대가 연금술로 대변되는 정신의 고양에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타락된 물질문화를 반영한다. 마콘도에 집시들이 드나들면서 바깥 세상과의 길이 조금씩 열려 통치자나 군대, 교회 등 각종 제도가 들어오고, 그링고들이 바나나 공장을 세우면서 마콘도는 모습이 바뀌어간다. 이 부류의 인간들이 외국인들이라는 데에서는 둘 다 똑같지만, 집시들이 유랑의 무리로서 잠시 머물렀다 가는 존재라면 미국인들은 장기 체류를 하며 마을에 심각한 불안을 조성하는 존재이다. 이들의 존재는 마법사(자연을 바꾼다는 의미에서)임에는 틀림없지만 집시들과는 달리 미국인들은 자연의 파괴자로 나타난다. 마콘도에서 일어난 변화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당시의 마르께스의 모국, 콜롬비아가 직면한 사회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시기에 콜롬비아에 진출한 미국 회사들은 식민지의 원료와 원주민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플랜테이션을 했다. 플랜테이션으로 막대한 이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에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량학살로 대응했다. 그리고 대량학살된 노동자들을 화물차에 싣고 바다 속에 수장시켜 버린 것이다."...『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었을 겁니다.』 여자는 불쌍하다는 듯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긴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요.』..."사건의 전모는 정부와 미국 회사에 의해 은폐되고 호도되었다.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역 앞의 노동자들이 학살된 사건뿐 아니라 바나나 농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그들의 애매한 기억력에 얽힌 문제들은 노무자들의 학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더욱 심각해졌다. 아우렐리아노가 이 문제를 꺼내기만 하면, 포주뿐만이 아니라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역 앞에 끌려와 꼼짝없이 붙잡혔던 노무자들이나 시체를 잔뜩 실은 2백 개의 차량이 달린 기차 얘기를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떠들어댔고, 그들은 결국 법적인 증거물이나 기록들, 그리고 국민학교 교과서에 적혀 있는 글을 인용해서, 마콘도에는 바나나 회사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비단 마콘도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콜롬비아, 나아가서는 남미 대륙 전체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어떻게 지배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바나나 농장의 대학살 사건(1928년)은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기억조차 힘이나 권력관계에서 조작하여 왜곡하거나 삭제시킬 수 있다는 것은 힘없는 자들의 침묵을 요구했고, 요구에 응하지 않는 자에게는 (역 앞 광장의 노동자들처럼) 죽음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이와 같은 힘없는 식민지 생활이 400여 년에 걸쳐 희망없는 좌절의 역사로 점철되면서 그 자체의 숙명적 고독을 내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고독의 양상은 인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우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경우 어느날 갑자기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화요일이라고 생각했어. ... 그런데 난 아직도 지금이 어제처럼 월요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늘을 봐. 벽을 보고 베고니아꽃을 봐. 오늘은 월요일이기도 해. ... 저 하늘을 보라구. 태양이 내는 소리도 들어봐. 어제하고도 똑같고, 그저께하고도 마찬가지야. 오늘은 월요일이기도 해. ..."가문의 덧없는 고독의 순환을 예감하고 정신 이상이 되어버린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경우 '영원히 연기만 되는 부식성 전쟁'에서 느낀 허무를 견디지 못하여 황금 물고기를 반복적으로 빚어내는 행위로, 아르카디오의 경우 유년 시절의 소외와 고독이 후의 광폭한 통치로서 나타나게 되고, 아마란타의 경우 그녀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결정적인 순간에 거부하게 만드는 자신의 근원적인 자폐성으로 나타나며, 레베카의 경우 호세 아르카디오의 의문의 죽음 후에 '스스로 산 채로 집안에 파묻혀버리는' 극단적인 형태의 고립으로 나타난다. 날마다 주연을 베풀며 방탕을 일삼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조차 '흥청대는 잔치에서 느껴오던 뼈아픈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이윽고 마지막 세대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에 이르면 그의 전 세대들이 어떤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으로 인해 고독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게 된 것과는 달리 '스스로 폐쇄된 고적함을 즐기는' 생래적 고독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고독에 휩싸여 고립된 객체들에게도 고독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性行爲)의 순간이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광적인 성(性)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지만, 이들의 성행위는 단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은 배제되어 있어 결코 고독을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광적인 사랑에 빠진 인물들은 지속적으로 극단적이고 왜곡된 근친상간적인 요소를 지니게 되는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마콘도가 외부와의 단절로 가지게 된 자폐성이나 소설의 서술 구조가 가지는 순환성과 무관하지 않다. 부엔디아 집안에 흐르는 고독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사이에서 혹은, 마콘도에서 잉태된 자생적 유전이라서 -비록 결과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고독이었지만- 근원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톨릭 전통의 '원죄'로서의 근친상간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1대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의 관계에서부터 100여년에 걸쳐 부엔디아 가문을 긴장시키고 있으면서 운명적으로 그 긴장은 순환하게 되고, 그것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순간(이모와 조카 사이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와 아마란타 우르슬라)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 저주가 실현됨으로써 마콘도와 부엔디아 집안은 비극적으로 멸망을 맞게 되는 것이다.또한 형식상으로 작품이 가지는 순환적 구조도 작품 내에 고독이 흐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이야기는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연결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순환하는데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병과 같이 앞뒤나 상하의 구분도 없고 같은 곳을 맴돈다는 의미에서 자폐성을 가진다. 소설 전체에서 7대에 걸친 부엔디아 집안이 같은 이름을 반복해서 쓰고 있고) 등장하는 부엔디아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호세 아르카디오'나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과거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거나) 오래 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시절에 이미 멜뀌아데스가 가져왔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시절 집시패거리가 망원경과 확대경, 자석과 틀니를 가져와 선전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들을 바빌로니아의 현인들이 최근에 발명한 물건으로만 알았다.,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 이루어지는 것)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황금 물고기를 주조했다가 용해하고, 또 그것을 반복하는 행위, 아마란타가 수의를 짰다가 풀고, 또 짜는 행위 등 소설 속의 인물들의 똑같은 행위의 반복도 이러한 자폐성을 보여준다."...아우렐리아노가 자기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열 한페이지를 건너뛰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순간에 대한 얘기를 해독하고, 해독하면서 바로 그 해독한 순간을 살아가는 얘기와,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기가 그 양피지 원고를 해석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에 마콘도는 이미 무서운 회오리바람에 휩싸여서, 성경에서 얘기하는 태풍처럼 먼지와 돌조각들을 하늘로 뿜어올렸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신의 섭리는 멜뀌아데스라는 존재가 꾸민 계획에 의해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이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멜뀌아데스는 작가 마르께스 자신을 소설 속의 인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양피지를 해석하고 있는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독자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읽고 있는 시선은 '쓰고 있는' 최초의 마르께스 자신과 그 속에서 형상화된 '쓰고 있는' 멜뀌아데스와 '읽히고 있는' 자신을 '읽고 있는' 아우렐리아노와 그 장면을 읽고 있는 독자의 것이 중첩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선의 엇갈림은 모두를 소설 속의 세계로 몰아넣거나 튕겨나오게 한다. 문학적 체험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이런 구도는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독자는 종말에 가서 멜뀌아데스의 양피지가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과 겹쳐질 때, 소설 속의 부엔디아 사람들과 완전히 동일한 고독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3.05.30| 4페이지| 1,000원| 조회(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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