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제도와 인권사형이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형벌이다. 우리는 헌법에 개인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반하는 형벌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사형은 역사상 인간의 이성에 의한 판단이라기보다는, 복수심이라는 본능에 근거하고 있는 야만적 형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은 그 자체가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목적이기 때문에, 사형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또한, 인간이 하는 재판에는 오판이 있을 수 있고, 이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을 때, 그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없다. 따라서 이는 결국 죄없는 시민의 생명을 아무런 근거 없이 박탈할 수 있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형 제도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는 과정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누군가 내게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 영화, 를 떠올릴 것이다. 미국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 공장에서 일하는 셀마는 시력을 점점 잃어간다. 자신을 닮아 역시 눈이 멀어가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체코에서 이민 온 그녀는 아들이 열 세 살이 되기 전 눈을 고쳐주겠다는 소망 하나로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고된 노동에 몸을 맡긴다. 한편, 이웃에는 셀마 모자에게 집을 빌려준 빌 부부가 살고 있다. 경찰관인 빌은 아내 린다의 사치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떠날까 봐 재산이 모두 바닥났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어느날 밤, 빌은 셀마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놓고 셀마 역시 그녀의 아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뒤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셀마의 눈은 점점 나빠지고 직장에서마저 해고를 당한다. 그리고 빚에 허덕이던 빌은 결국 셀마의 돈을 훔치고 만다. 목숨보다 소중히 모은 돈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그녀는 빌에게 총구를 겨누게 된다.이 영화는 뮤지컬 부분과 현실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전자는 무척이나 신나고 경쾌하며 이상적인 치유의 공간이다. 주인공 셀마가 공장에서 일할 때 그 소음의 리듬이 음악으로 들리기도 하며, 사형대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구둣발 소리가 음악이 된다. 그러나 후자인 현실의 화면은 핸드 헬드로 촬영되어 끊임없이 흔들리는 어두운 다갈색 공간이다. 뮤지컬에서 셀마는 주인공이 되어 그녀가 사랑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존재지만, 현실은 비참하게도 관객의 기대를 모두 저버린 채 그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영화가 진행되어 가면서 관객들은 심리적으로 '셀마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셀마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아들의 수술비를 벌거나 아니면 어느 독지가가 모자를 도와주기를 바라며 혹은 셀마가 뮤지컬 배우로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재판을 할 때 관객들은 다른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무죄가 선고되기를 바라고, 변호사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변호사가 수임료 없이 일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 또 셀마가 법정에서 아버지라고 거짓 증언함에 따라 증인으로 불려 나온 올드리치 노비가 자신이 셀마의 아버지라고 거짓 증언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형대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전화가 걸려 왔을 때, 관객들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갑자기 셀마의 형을 감한다거나 하는 특사령이 내려 오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관객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를 결국 사형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그녀가 과연 사형 당해야 할만큼 무거운 죄를 지었는가? 그 판단을 인간이 내린다는 것은 정당한가? 빌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가진 경찰관이었지만, 셀마는 체코 출신이며 가난한 노동자였다. 법정에서 원고측 변호사는 셀마가 체코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며 배심원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피고는 우리의 이념과 사상마저도 부정한다’고 말한다. 셀마는 모든 돈을 아들의 눈을 고치는 데 쓰기 위해, 자신을 구할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택한다. 모든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했고, 정상이 참작될 수 있는 사건의 ‘진실’은 결국 묻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옳은 것일 수 없다. 이 문제는 또 다른 영화, 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고 질식할 듯 밀폐된 배심원실에 12명의 배심원들이 앉아있다. 이 영화는 강렬한 사회성, 현대 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심각한 인권문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이 인간을 옳게 재판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부조리를 보여준다. 사건은 비행 소년의 아버지 살해이고, 배심원들은 대부분 유죄라고 생각한다. 바로 표결에 들어가자 11 대 1로 유죄 의견이 압도적이다. 무죄를 주장한 단 한 사람의 배심원만이, 의심이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결국 조사를 계속하여 소년을 전기 의자에서 구해내게 된다는 내용으로, 사형 제도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이 소년 뿐만 아니라 셀마 역시, 사형을 당할 만큼 극악 무도한 범죄자가 아니었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범죄자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인간이어서는 안된다.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모든 사람은 그들의 죄악보다 가치가 있다.”루이지애나의 흑인 빈민가에서 헬렌 수녀는 어느날 매튜라는 백인 죄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이에 한번도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없는 헬렌 수녀는 교구 신부와의 면담 끝에 그를 만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에 나오는 셀마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그는 데이트 중이던 두 연인을 강간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이다. 그는 무척 비열하고, 불량스러우며, 자신의 죄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다. 하지만, 헬렌 수녀를 만난 매튜는 가난때문에 변호사를 대지 못해 주범은 사형을 면하고 자신만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을 뿐, 무죄라고 주장하며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수녀로서 감당하기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갈등 하던 헬렌 수녀는 무보수로 봉사하는 힐튼 바버 변호사와 함께 항소를 하고, 주지사에게 '사형 제도'의 불합리성을 호소해 보는 등 죽음만은 면하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인다.그러나, TV에 나오는 잔혹한 살해 현장 장면과 거친 욕설을 퍼붓는 매튜의 기자회견 모습에 헬렌 수녀는 손을 떼기로 마음먹는다. 설상 가상으로 그는 히틀러를 열렬히 사모하는 나치 추종자에,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유죄를 확신하면서도 사형만은 면하게 하려는 바버 변호사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사형 집행일이 결정된다. 사형 집행 6일전. 헬렌 수녀를 찾는 절박한 매튜의 호소로 다시 그를 만난 헬렌 수녀는 매튜로부터 사형장까지 함께 하는 영적 안내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일은 여자로서는 전례가 없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그를 회개시켜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자와 친구가 되려는 그녀를 빈민 지역의 아이들조차 외면하고, 죽은 아이들의 가족들은 그녀를 경멸한다.영화 전반에서, 감독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형수나 희생자 가족의 슬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선과 악의 양 측면을 모두 보여주면서, 얼마나 쉽게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마지막 30분은 실제 시간과 영화 속의 시간을 일치시켜 매튜가 사형당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매튜가 저지른 살인 장면과 매튜가 다시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병행시켜, 과연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관객에게 묻고 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법률 혹은 그 주체인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생명을 간단히 약물을 투여하여 끊어버린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였다고는 하지만, 마지막 순간 피해자의 부모에게 속죄의 말을 남기는 그는 또 한 사람의 피해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에,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특히 ‘개인주의’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천부 인권으로 강조하는 입장으로,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 우선한다는 사상이다. 개인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 의미가 혼동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정의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타적 개인주의와 이기적 개인주의가 그것이다. 이 때 이타적 개인주의란, 개인이 각각의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 목적적 존재라고 보는 입장이고, 이기적 개인주의란 그러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행사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주의가 이타와 이기로 나뉠 수 있었을까?이 물음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를 묻고 있다. 라는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먹고 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단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며, 이 기계의 목적은 오직 유전자의 보존뿐이다. 번식 역시 유전자 보존을 위한 것이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존재인 것이다. 특히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 양식마저도, 그의 이론에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유전자가 생존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양식’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부는 같은 자식에 대하여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 양육하는 것은 서로에게 유리한 ‘이기적인 행동’인 셈이다. 이 ‘이기적’ 행동들은 자기 자신(Self)에 대해서 성실하다. 이 때의 성실성은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려는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해결된다고 본다. 저자는 또한 Meme(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여, 문화적 요소 역시 유전자 복제의 원리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가?(원제 : The Origins of Virtue, 1996)에서는 위의 내용을 반박한다. 저자인 매트 리들리는, 많은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난 학기에 배웠던 경제학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게임 이론’이다. 먼저 언급된 를 전제로 할 때, 개체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과 직결된다면, 그 행위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체의 손해와 집단의 손해가 역시 동시에 일어난다면, 그 행위는 당연히 배제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체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이 반하는 경우, 특히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서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기와 이타가 갈리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때 합리적인 개인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집단의 이익과는 상반된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배신할 가능성이 있을 때 먼저 배반하여 이익을 챙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모두 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인 것이다. "왜 인간은, 혹은 협동하는 사회를 가진 다른 동물들은, 그런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서로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가?" 이 게임 이론의 가장 유리한 해결책은 이타적인 행위이다. 이 실험에서, 동일한 상대와 같은 게임을 계속하거나, 중간에 함께 대화를 하여 배신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상호 신뢰하는 것이며, 이는 동시에 가장 이타적이다.인간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과 유일성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만약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여 홀로 자신의 이익만을 누리려고 한다면, 그 사회는 갈등이 심화되어 서로 협력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모두가 협력하는 사회(즉, 아무도 배신하지 않는 상태)에 비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상호 신뢰는 상호 유대감에서 비롯된다. 이기적인 사고 방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감이 상실된 데 기인한다. 서로 의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존경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이나 그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협력하게 하는 유대감이 사라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개인의 편익을 추구하는 데만 열중하고, 그 이익은 타인의 이익과 상충하여 사회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은 사회의 분열과 불안정을 초래하므로 사회 구성원들은 불안감 속에 살게 된다. 결국 유대감 혹은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사회는 공존할 수 없다.이 때, 상호 유대감에서 파생되는 하나의 덕목은 자유와 책임 의식이다. 자유와 방종은 책임 의식의 유무를 기준으로 나뉜다. 방종은 무책임의 소산으로,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만으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달리 자유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까지도 고려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자유의 결과까지도 선택하여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책임이 어떤 행동의 결과까지도 수용해야 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책임이 있는 사람은 불안을 느낀다.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다른 결과를 초래할지 인간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불안 때문에 인간은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려고 신중을 기한다. 또한 자신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점에서도 무책임한 인간과는 구별된다.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 성실하다는 것과 직결된다. 많은 이타적 개인주의가 이러한 타인에 대한 성실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내가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직분에 대한 성실성이다. 까뮈의 에서는, 인간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각 개인의 서로 다른 대처 방식을 보여준다. 먼저 기자인 랑베르는 기자로서 오랑시의 불행을 정확하게 알릴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자라는 직분보다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파늘루 신부는 주어진 역경이 신의 뜻이라 받아들여 마을 사람들을 순응하게 한다. 그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을 사람들을 살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만, 상황에 순응하여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반대로 리유 의사는 의사로서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그는 역경에 적극적으로 맞서, 결과적으로도 사람들을 살려낸다. 결국 자신의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한 사회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하여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의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책임 의식이자 자신이 맡은 직분에 대한 성실성으로, 타인에 대한 성실성과 상통한다. 사람은 자신의 직분을 통해 자신은 누구이며 그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또한 인간이 근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전제 하에,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나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의 쾌감은 인간의 행복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관점에서도, 직분에 대한 성실은 결국 각자의 사회적 역할, 책임을 다하는 것이어서, 이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기도 하다. 이청준의 을 예로 들면, ‘줄타기’라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여 자신의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허노인은 그로부터 기쁨을 얻는다. 그러나 남 기자는 자신의 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부족했으며 그러므로 삶에 대한 애착도 없다. 남 기자의 경우 결국 자신의 일로부터 어떠한 성취감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에서의 노인이 자신의 ‘어부’라는 직분에 끝까지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물고기라는 결과물보다도, 끊임없이 역경에 대처하여 책임을 다하는 숭고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직분에 대한 성실성은 이타적 개인주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목민심서를 읽고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다. 이 '변명'의 내용은, 당시 지식인은 특수한 상황과 모순 속에 빠져있고, 이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지식인의 참다운 역할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 과 '지식 전문가'를 구별하여 설명했는데, 지식 전문가는 지배 계급이 통치수단으로 제시하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자신의 연구를 계속한다. 이 연구 속에서 보편적 진리를 얻은 지식 전문가는 그것을 전체 사회로 보편화시키는 과정에서 지식인이 된다. '자신의 권한 밖'까지 관여하는 사이에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목민심서'에 나타나는 정약용의 사상은 그를 참된 '지식인'으로 인식하게 한다. 목민관은 당대의 지방 수령을 일컫는 말로, 현대와는 행정 제도 상으로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역할과 책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약용은 목민관의 실천 윤리로 덕망과 위신, 총명을 제시한다. 목민관이 교활한 아전들의 부정을 방지하고 백성들이 진실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목민관의 생활은 청렴하고 절검해야 하며, 명예와 재리를 탐내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며, 절용(節用)과 함께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생활 신조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령의 마음가짐으로는 청심(淸心), 즉 맑은 마음을 들었는데, 이것은 어진 정치와 덕행의 근원이 되어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힘이기 때문이다.이처럼 그는, 귀양살이 중에도 당시 지배 계급과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여 '관여'를 시도했으므로, 사르트르의 관점에서도 참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중간 계급에 속하게 되어, 지배층도 피지배층도 아닌 위치에 서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모순' 이란, 그들이 터득한 '진리' 라는 보편이 지배계급이나 자신이 속한 계급의 특수주의를 파괴하려는 경향을 지닐 때 생겨난다. 이 모순은 궁극적으로 지식인이 '참여' 하여 전체 세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때 해결된다. 결국, 정약용과 같은 지식인은, 지배 계급의 부패를 막고, 그들만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여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지키는 '민중의 옹호자'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현대의 정치는 민중을 유리시킨 채 정약용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 예로, 금권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돈을 돌리거나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정약용 시대의 매관(買官)과 같은 것은 아닐까. 이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청렴, 절약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매관한 수령들처럼 본전 이상의 이득을 얻기 위해 유권자들을 위한 행정을 펴기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업에 대한 3가지 정책이 실업에 미치는 영향노동부는 실업급여,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 개발사업 등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 고용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실업 정책이 현실적으로 실업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1. 실업급여실업급여란 실업근로자에게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사회 보험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의 일부로, 실직 상태에 있는 동안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최저 임금 수준의 금액을 일정 기간 지원하며, 의료보험료 등을 지원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실업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지만, 과거 유럽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업급여의 과다 지급은 오히려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고 실업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근로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이 가능하다면, 노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실업급여의 지급은 단기적으로 볼 때 실업자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실업자들이 사회적 일탈 행위를 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업률을 늘려 취업가능한 사람들의 태만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장기실업자가 양산되면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정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마찰적 실업이나 구조적 실업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는 '실업'이 지속되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마찰적 실업의 경우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적당한 직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실업급여가 재취업의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구조적 실업의 경우, 실업자가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여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보다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로 인해 이러한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이 두 경우에 사회적 효율성이 달성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실업급여는 재취업을 유도하는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2. 고용안정사업고용안정사업이란, 경기불황이나 경영사정 악화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체를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업 가운데는 기업이 도산하여 대량 실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과 감원 대신 고용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 해고를 최소화하고 부당한 해고를 막는 것 등이 있다. 위의 실업급여가 이미 실업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 고용안정사업은 실업 전에 이를 미리 방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안정사업은 직접적으로, 또한 보다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 예로, 우리 정부가 벤처 기업을 지원한 것은 실패한 정책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벤처 기업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 고용 유발 효과가 매우 낮으며 도산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서도, 이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효율적인 경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혼율이 급증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책에 대해 서술하라.오늘날 한국에서는 결혼한 커플의 3분의 1 이상이 이혼을 한다. 이러한 이혼 문제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이혼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혼으로 해체된 가정은 단순히 한 부부의 개인적인 아픔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혼 후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청소년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혼 문제가 청소년 문제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결과 시설 보호 아동의 수가 증가하고, 가정 주부의 가출도 늘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먼저 1970년대 이후의 급격한 사회 변동에서 비롯된 가치관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이전의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미풍양속으로 받아들이고,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남성 위주의 가치관은 근대화 이후 급변하기 시작한 시대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 의 유입이다. 과거에 비해, 개인을 소중히 여기며 궁극적인 가치를 갖는 실체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사회가 그 집단의 구성원 의식 혹은 역할 지위에서 요구되는 권리와 의무에 기반하는 것이었다면, 그 후의 사회는 각 개인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에서 사회의 기반을 찾으려는 개인주의적 노력이 바탕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게 되었다.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노력 때문에, 여성들의 의식은 이제 가부장적 가정 형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적일 필요가 없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위치에 서게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일방적으로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법 제도를 갖고 있고, 남성들은 오히려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고집하게 되면서, 남성과 여성 간 갈등은 점차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이혼율의 증가는 사회 변동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일 따름이다. 특히 보다 합리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부부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경우, 더 이상 이혼 자체가 옳은가 그른가를 놓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특히 최근에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황혼 이혼의 예를 들면, 60~7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인내심이 없어 성급히 이혼을 선택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인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법적으로 한 쪽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 사후에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 관여하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남녀에 대한 유교적인 가치관을 대신할 새로운 가정 윤리를 정립해서 합리적인 가정을 새 패러다임으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