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합은 성립하지 않았다--------------------------------------(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조약 강제)서양사학과 안기수1. 머리말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일본의 한국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을 계속 펴고 있다. 한국병합 에 대한 일본 정치지도 자들의 망언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1) 병합은 어디까지나 동양평화를 위한 것으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2) 침략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책임은 있으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위의 사실 가운데 (1)은 병합 당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으로서, 한국은 본래 허약한 , 완미한 나라이기 때 문에 중국·러시아 등이 한국 지배를 노려 한국의 존재 자체가 동아시아의 화근이었는데 강국 일본이 그 나라들을 차례로 물리친 다음 한국을 병합함으로써 동양평화를 이룩하는 한편 시정개선으로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 다. (2)는 근자에 역사인식의 변화 로 수정을 거친 것으로서, (1)의 인식에서 동양평화론을 버리고 도덕적인 잘못은 인정하면서 법적으로는 사실상 (1)의 입장을 견지하는 인식형태다. 보호국화를 실현한 을사보호조약 이나 병합을 가 져온 일한병합조약 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이와 더불어 일본인들 가운데는 한국병합 을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간주하여 한국지배를 일본인의 죄악 으로 간 주하기를 거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침략은 서양의 제국주의처럼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밖으 로 분출된 외침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침략주의를 발동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사실 에 가깝다. 한반도 장악을 처음부터 목표로 삼고 있던 그들은, 대한제국이 뒤늦게나마 근대화의 기틀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추세가 뚜렷해지자 자신들의 목표가 이로써 크게 방해받을 것을 우려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켜 그 무력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국권침탈에 나섰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국권 탈취과정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조약 강제의 실상, 조약문어진 조약 은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는 규정과 관례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에 이루어진 이 협정들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는 이러 한 대표위협의 사실 외에 각 협정들의 절차와 형식에도 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1) 議定書 (1904. 2. 23) [일본명칭 : 日韓議定書, 영문번역 : Protocol]한국정부는 1903. 8월에 이미 일본이 러시아와 일전을 벌이게 될 것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1904. 1. 21 급히 중립 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2월 6일 러일전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미리 편성해 둔 한국임시 파견대 5개 대대를 한반도에 진주시켜 군사강점 상태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군사강점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된 이 협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남기고 있다.(가) 이 협정을 체결일자를 1904. 2. 23로 하고 있으나『일본외교문서』에 실린 자료들에 따르면 2일 뒤인 2월 25일 에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 쥬타로가 완성된 협정문안을 현지의 하야시 겐죠 공사에게 전문으로 하달하고 있다. 즉 협정문안이 일본측에 의해 협정일보다 늦게 일방적으로 지시되고 있는 것은 협정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나) 이 협정은 제 3조에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 및 영토 보전을 확실히 보증할 것 이라는 규정을 명 시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년 뒤인 1905. 11. 17에 을사늑약 을 강제하여 가장 중요한 독립권인 외교권을 박탈 함으로써 이 협정의 약속을 위반한다. 의정서의 독립보장의 약속이 허위라는 것은 2개월 뒤인 5월말의 각료회 의에서 결의한 대한방침 및 대한시설강령결정의 건 에서 그들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의 존망 은 제국안위에 결부되므로 단연코 이를 타국이 집어삼키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 이것이 곧 제국이 항상 한 국의 독립과 영토보존 유지를 위하여 전력을 기울인 까닭2) 協定書 (1904. 8. 22) [일본명칭 : 第1次日韓協約, 영문번역 : Agreement]일본국정부가 이때 이미 일본정부에게 외교권을 사실상 내준 것으로 판단하게 만들었다. 일본정부는 이렇게 상황을 이렇게 왜곡해 놓고 이듬해 미·영 정부에 대해 한국의 보호국화를 용인해 달라는 요청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 7. 27), 제2차 영일동맹 (1905. 8. 12) 등을 성립시켰다.(나) 이 협정도 의정서 와 마찬가지로 협정일자인 8월 22일보다 십여 일 뒤인 9월 4일에 일한협약이란 명칭이 붙은 완성된 협정 전문이 재한공사에게 하달되었다. 지시문은 한국정부가 이를 9월 5일자 관보 에 싣도록 조치하는 한편, 열국정부에도 이것으로 알릴 것을 지시하였다. 일본 외무성의 이러한 사후지시에 의한 협정문의 완성과 공표는 이 협정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증거다.3) 乙巳勒約 (1905. 11. 17) [일본명칭 : 第2次日韓協約 또는 日韓新協約, 영문번역 : Convention]일본정부는 러일전쟁의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1905년 7∼8월 사이에 미·영 등과의 밀약을 통해 한국 보호국 화를 용인 받은 다음, 보호적 협약 체결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실천단계에서 한국정부의 완강한 반 대에 부딪혀 협정에 다음과 같이 많은 하자와 결격을 남겼다.(가) 이 협정도 무력시위 및 위협 아래 강요되었다. 일본정부는 1905. 10. 27 각료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보호국화 실행조치로 8개 사항을 정하고 그 협정의 문안까지 미리 별지로 준비하였다. 8개항 중 제6항은 하세가와 한국 주차군 사령관에게 전권공사 하야시 겐죠를 군사적으로 지원토록 명령을 내릴 것, 제7항은 일본으로부터의 증원부대의 수송을 신속히 추진할 것 등을 규정하여 처음부터 군사위협으로 성사시킬 것을 계획하였다. 1905. 11. 17 협정일에 일본군은 경운궁을 포위하고 회담장에도 직접 들어가 한국측 대신들을 위협하였다.(나) 일본은 처음부터 보호국화에 대한 한국측의 동의를 받아내기 어려울 것을 예상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방침을 세웠다. 그리하여 협정정부는 이 협정문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11월 22일에 미·영 등 협조 강대국 정부에 통보하였는데, 그 번역 문에는 원문에 없는 협정의 명칭을 Conven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붙였다. 굳이 명칭을 붙일 필요가 있었다 면 그들이 협약에 상당하는 Agreement란 단어를 썼어야 했다. Convention은 특수한 사안에 관한 협정에 사용 되는 용어로서, 형식상으로는 Agreement보다 한 격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측이 Agreement를 피하고 굳이 Convention이란 용어를 택한 것은 Agreement가 사안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Convention이란 용어조차 외교권 이양과 같은 정치사안에 사용된 예는 찾아볼 수 없다.(마) 일본측은 협정을 협약 형식으로 처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한국 외부대신의 서명과 날인을 강제로 처리하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관 마에마 교우샤쿠가 헌병을 대동하고 한국 외부로 들어가 외부대신 직인을 탈취해 한국 외부대신에게 서명을 강요한 다음 직인을 강제로 날인하였다. 한국 외부대신이 협정을 강요받는 현장에 직인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협정대표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 고종황제 는 이 협정을 위한 전권위원을 위임한 적이 없었다. 서명란에 하야시 겐죠의 직함이 전권공사로 되어 있는 반면 박제순의 직함은 외부대신으로만 되어있다. 고종황제가 스스로 밝히듯이 전권위원 위임장과 비준서가 없고 조약 문에서 조차 이렇게 많은 하자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이 협정은 누가 봐도 법적 효력을 가질 수가 없다.4) 韓日協約 (1907. 7. 24) [일본명칭 : 日韓協約, 영문번역 : Agreement]을사늑약 강제 이후 고종황제는 을사늑약 무효화 운동을 벌였으나 미·영 정부의 비협조로 이의 성공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만국공판소의 변리에게 맡길 계획을 세워 1907년 4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도 특사를 파견하였다. 이 사실 이 표면에 드러나자 일본정부는 이를 18 까지는 한국정부 조직개 편과 재정권을 강탈하는 60개에 달하는 중요법령을 새로 제정하면서 이에 대한 황제의 이름자 재가 서명을 통 감부 문서과 직원들이 위조하도록 방치 내지 조종하였다.5) 병합늑약 (1910. 8. 22)[일본명칭: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영문번역:Treaty Regarding the Annexation of Korea to the Empire of Japan]이 조약을 추진한 일본측 당사자들은 을사늑약 , 정미조약 등이 가지고 있는 조약형식상의 결격들을 의식한 탓인 지 이 조약만은 완전한 형식을 갖출 수 있도록 배려를 기했다. 이 조약으로 이전의 모든 협정들은 효력을 정지하게 되므로, 이 조약의 형식요건을 제대로 갖추면 이전의 협정들이 가졌던 결함들도 모두 해소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조약의 관련문서 한국측 보관본 일습은 모두 4건으로 다음과 같다.1 순종황제가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한 위임장2 양국 전권위원이 서명·날인한 조약문3 조약문을 조칙과 함께 공포하기로 한 양인의 각서4 병합을 알리는 한국황제의 조칙위 4개의 문건들은 정식조약(Treaty)의 요건, 즉 위임장 1, 조약문 2, 비준서에 해당하는 한국황제의 조칙 4 등을 갖추고 비준서에 대신해 양국 황제조칙을 작성해 공포하기로 한 양 대표의 각서 3까지 첨부되어 있는 상태다. 이런 구 비상태는 이 조약의 합법성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듯 하지만, 내용검토에서 4에 결정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한국황제의 조칙은 재가란에 어새만 찍히고 그 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황제의 이름자( ) 서명이 없다. 통감부는 정미조약에 근거해 1907. 11. 18부터 대한제국의 공문서식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어새를 찍고 그 위에 황제가 직접 이름자 서명을 하도록 했다. 이후 황제의 재가를 받는 공문서들은 모두 이 서식에 따르고 있다. 1의 위임장도 국 새가 찍힌 위에 황제의 이름자가 떨린 필체로 서명되어 있다. 그런데 병합 을 알리는 조칙에만 그것이 없다.한국황제의 어새는 실상 1907.거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의 단편집 을 읽고------------------------------------------------------------------------- 엠마 순스 와 알렙 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렙 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가 강박적으로 인간이 가지는 혼돈의 현실을 보다 다루기 쉬운 규모로 축소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들어있는 단 편들 중 다수의 작품들이 신, 영원, 시간, 우주, 언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 으며, 이러한 주제들을 고도의 압축성으로 상징화 해놓은 것이 단편 알렙 에서의 알렙과 같은 것이다.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 , 신학자들 , 신의 글 , 독일 진혼곡 , 자이르 , 알렙 등은 모두 위와 같은 특징들로 묶여질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물론 작품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와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서 동일한 메타포로 같은 작품에 동일하게 또는 상 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신이라는 존재가 우주라는 말의 동의어 또는 진리라는 단어 로 또는 사회, 또는 국가라는 이미지와 동일한 구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편 '독일 진혼 곡'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였던 형이상학적 개념이 '독일'이라는 국가로 형상화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나타난 그의 우주관 중 중요한 것이 ‘영원'과 '불사'에 관한 개념들이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그 는 '순환'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즉 세상의 피조물은 유한할 수밖에 없지만 세상 은 무한하다라고 설명한 후, 그러므로 세상은, 많지만 한계가 있는 구성체들이 무한하게 순환하는 영원체임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죽지 않는 사람'은 서기 전 8세기에서 현 대에 이르기까지 약 28세기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등장하는 인물 또한 복 잡하다. 우선 화자는 까르타필루스의 책에서 문서를 발견한다. 이 써 작품은 완결된다. 이 작품의 인 물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해보면 호머, 루포, 까르타필루스, 화자이며 결국 모두 죽은 사람 들이다. 그러나 호머는 루포이고 까르타필루스이며 화자이고 신이며 영웅이고 악마이기도 함으로서 이들은 이른바 분신 관계를 유지한다. 결국 작품 속의 '불사의 강'이란 것은 영 겁 회기에 대한 일종의 해석적 상징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해석들 과 고뇌들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주류적 색채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나 우주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룬 작품 이외에도 단편집 에는 '엠마 순스'나 '기다림' 같은 순수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는 작품들도 자리잡고 있다. 또한 구체적인 공간적 미로를 설 정하고 있는 '아벤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와 '두 왕과 두개의 미로' 또한 다른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 단편집의 주류적 색채를 가 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작품 과, 어느 정도 그러한 색채에서 벗어나 있는 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2. Emma Zunz - 非性的 수단으로서의 에로티시즘- 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보르헤스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 엠마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 던 로웬탈을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객관적인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살해 과정 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것이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는 비성(非性)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성교(性交)의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로웬탈에게 복수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했듯이 그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면서 복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게다가 살인범으로서의 죄를 벗어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일반적으로 사람들 이 지니고 있는 성적(性的)정의'를 도구로 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전까지 처녀였던 엠마에겐 성엠마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였다. 작품 속에서는 이 부분을 가리켜 “그녀는 그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고, 그는 그녀의 정의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엠마가 만약 자신이 순결을 로웬탈에게 주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그녀의 공포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더욱 커졌을 것이고, 그녀는 영원히 그를 자신을 강간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엠마가 계획 한 것은 로웬탈을 제거하는 것이지, 자신의 구상과 어긋나게 그를 자신의 기억 속에 영원 히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익명의 스칸디나비아 선원은 그의 계획을 위한 적적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즉 엠마는 선원의 성욕을 비성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였으며, 그의 목적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를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와의 성 교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그는 엠마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였다.이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공금 횡령'의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하여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아 버지가 자신의 애정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침대로 데려갔을 때에 느꼈던 '횡령 당함, 자 신이 희생자라는 느낌' 등의 상실감을 위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것인지 스스로 의아해 한 다. 그녀의 나르시즘적 환상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잠시 위탁 보관하는 사람일뿐이 며, 감히 어머니를 난폭하게 강탈하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부당하게 누명을 쓴 사람에서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사람으로, 유린당한 자로부터 유린하는 사람으로 희생자에서 가해 자로 변하게 된다. 즉 부모의 성적인 관계는 엠마에게 자존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지며, 결과적으로 증오와 범죄적 욕망의 실현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된다. 어찌 보면 엠마 는 살인 충동으로 인하여 로웬탈을 죽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겁탈자'로 자신의 내면 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같은 등장하는 추리소설의 형식은 우리 가 접해왔던 추리소설의 형식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갖 추고 있다 할지라도 추리소설의 재미의 원천이라 할 긴장과 써스펜스, 작가와 독자와의 치열한 두뇌싸움 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바도 그런데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르헤스가 의도한 바는 누가 범인인가 하는 물음, 또한 무엇 이 진실인가 하는 데 대한 대답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 되는가 하는 과정에 대한 독자 의 계속적인 주시를 요구하고 이러한 계속적인 주시와 집중을 인도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과정 이 중시되는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엠마의 사건에서 객관적 인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엠마가 살인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는 진실 은 무엇인가? 그것은 르웬탈이 강간미수범이라는 것이다. 즉 보르헤스는 우리가 객관적 진 실 이라고 믿는 것들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진실 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단지 그렇게 믿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진실 은 엠마의 어조, 수치감, 증 오이고, 통상 추리소설에서 객관적 진실을 보증하는 정황, 시간, 이름들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난다. 즉 이 소설에서 보르헤스는 진리를 진리이도록 하는 것은 주체의 객관적 이성 이 아니요, 주체의 주관적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3. Aleph - 작품 속 베아트리스를 중심으로- 단편집 의 표제작이기도한 '알렙'은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혼돈의 현실을 다루 기 쉬운 규모로 축소하려는 보르헤스의 노력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보르헤스는 언어라는 직선적이고 연속적인 매체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관점을 동시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모든 점을 포함한 공간 속의 점이며, 세상의 모든 장소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장소 이고, 따라서 동시에 모든 각도에서 보여질 수 있는 알렙이 바로 위에서 말한 동시적 종 합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 복잡한 이야기는 알렙과 베아트리스를 비교하면 좀 더 쉽게 이 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련 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세세히 묘사되고 있다. 비록 화자(허구적 보르헤스)는 시간이 지 나면서 베아트리스를 잊어가지만, 그가 그녀를 묘사한 부분은 독자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 를 제공하며, 실제의 보르헤스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것 같다. 알렙(세상, 우주)의 동시적인 이미지를 연속적 언어로 집어낼 수 없었던 작품 속의 허구적 보르헤스가 행하였던 방법대 로, 실제 보르헤스도 알렙의 메타포로써 베아트리스의 개성을 포함한 그녀의 다양한 면들 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독자가 작품을 끝까지 읽었을 때, 각 부분들 모두 가 전체적이고 동시적인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서 직관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다. 따라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베아트리스의 총체적인 인상은 카를로스 아르헨 티노의 지하실에서 알렙이 전달한 완전한 세계에 대한 메타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메타 포적 알렙 -베아트리스의 이야기를 지칭함- 는 카를로스 아르헨티노가 자기 지하실에서 알렙을 보면서 영감을 받아 저술하였던 끝없는 현학적 색채의 시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 다. 왜냐하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알렙(이야기)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논리의 장애 를 뛰어넘는 동시적이고 영원한 시각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알렙의 이야기 는 문학의 메타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아트리스라는 이름은 작품의 곳곳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단테가 사랑하였던 베아트리체를 연상시킨다. 단순히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천국에서 경멸적으로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전에 베아트리스가 보르헤스를 경멸적으로 대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 이다. 그리고 보르헤스가 묘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미학을 대표하는 알렙의 메타포 역할 을 하는 그녀는 신비적인 절대자를 향해 영혼의 여행을 떠나는 단테의 알레고리를 회상케 한다. 카를로스가 식당 지하에 있는 알렙을 보도록 보르헤스를 인도하고 있는 모습은, 단 테를 지옥을 통해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와 동일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초의 휴머니스트 페트라르카-----------------------------------------(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유토피아즘)1. 들어가며르네상스가 지니는 특성은 많은 중세적 요소를 여전히 내포하면서도 역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새로운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특성은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지적 운동 의 하나인 휴머니즘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휴머니즘은 본래 완전히 신학적인 것도 혹은 완전히 합 리적인 것도 아닌 중도적 세계관을 포괄하고 있었다. 고전고대의 위대한 인물, 사상, 예술을 연구해 온 휴머니스트들은실제로 고대의 가치기준 못지 않게 전통적인 크리스트교 가치기준을 존중하였다. 그들은 최상의 고대 도덕설과 최고의 크리스트교 이상에서 일종의 공통인자를 찾으려 하였다. 그러므 로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특징은 중세적 요소와 새로운 근대적 요소,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 요소와 의 대립과 공존이 현저한 점이라 하겠다.이상과 같은 이원적인 시대성을 전제로 할 때, 과연 최초의 휴머니스트 로 일컬어지는 페트라르카가 근대 유럽의 정신사에 어떠한 공헌을 하였는가를 평가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그는 키케로와 아우구스 티누스를 다같이 진리의 표준으로 삼았고 크리스트교 세계와 고대세계의 대립을 넘어서는 조화와 완 성을 위한 생활철학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페트라르카는 고대의 가치관과 크리스트교 이 상을 치밀하고 조화로운 지적 체계로 확립시키지 못하였고, 새로운 철학과 고유한 사상을 창조한 탁 월한 철학자나 위대한 사상가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학문의 연구와 몰두 속에서 자위와 만족을 찾았 고 철학도 단순히 키케로의 영향을 받아 생활기술을 가르치는 실천적 훈련 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 써 도덕교육의 전달자 이상의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사상은 그 형성 및 발전과정에 있어 독자적으로 발생하기보다는 부단한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이전의 제 관념들을 받아들인 소산이다. 이 러한 의미에서 페트라르카를 비롯한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가상이 근대 정신사의 발달에 기여했다면 그것은 어떠한 면에서 그러하였는가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2. 페트라르카의 고전연구르네상스期에 있어 페트라르카는 고전문학 연구의 가장 대표적 선구자였다. 그는 고대인의 문체를 모방하고 그들처럼 잘 쓰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특히 그가 모방의 최고 목표로 삼은 인물들은 키 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문체와 형식이었다. 그러나 문학의 형식과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 에, 고전문학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고전의 미적 형식뿐만 아니라 지적 내용으로 관심을 이끌어 갔다. 페트라르카는 고전문학과 언어의 연구가 고대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지혜와 덕성을 배우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부활시키고자 한 것은 고전의 형식뿐만 아니라 그 속 에 담긴 정신이었고 그러한 정신은 높은 수준의 미적·도덕적 생활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 다. 이로부터 페트라르카는 고전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고 그러한 태도를 보카치오를 비롯 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페트라르카가 고전을 단순한 문학적 모방 이 아닌, 생활과 도덕의 지표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르네상스의 정신사, 특히 휴머니즘 운동에 다음 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1) 역사의식페트라르카의 고전에 대한 열광과 로마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은 새로운 역사의식을 초래하였다. 그는 로마의 몰락 이래로 세계는 암흑 속에 잠기게 되었고, 따라서 4세기는 역사의 과정에 하나의 단절을 이루었던 시대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의 출현 이전 시대를 암흑시대로 단정한 중 세인들과는 달리, 그는 최초로 중세에 암흑시대(Dark Age)라는 개념을 적용시켰다. 이로부터 역사 의 구성과 시대구분에 있어 재래의 종교적 영역으로부터 문화적 영역으로 넘어가는 역사해석의 새 로운 세속적 경향이 출현하였다.(2) 휴머니즘페트라르카의 이같은 신념은 고대부활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자극을 주었다. 그것은 기본적으 로 교양과 인문교육을 강조하는 문학적·교육적함양하는 데 있고, 덕의 함양은 인문교육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런데 덕과 교양의 이상형은 고전 속에 들어 있었으므로 페트라르카는 고전연구 그 자체가 곧 덕을 사랑하고 교양을 쌓게 만든다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그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고전연구와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대를 부활시키려는 강한 신념에 차 있 었다. 그를 최초의 휴머니스트 로 평가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하고 있다.(3) 개성과 자아의 발견휴머니스트들의 개성과 자아에 대한 자각은 고대세계의 자유로운 지적 분위기로부터 크게 영향받 았다. 페트라르카는 자각이 외계에 대한 어떠한 지식보다 참다운 지혜에 이르는 시초이며 덕을 함 양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인간이 자체의 한계 내에서 스스로 인격과 덕성을 발 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간의 관계, 즉 나와 타인과의 관계 에서 자신을 의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중세인들이 신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였다면, 르네상스인 들은 개인의 공명과 영예를 위해 헌신하였다. 페트라르카 또한 불후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강한 세 속적 야망에 불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소신을 피력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항상 자아를 분석하여 표현하고자 노력하였 으므로 중세에서 결여되었던 인간 내면세계의 객관적인 심리묘사에 탁월하였다.민감한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던 그는 항상 수도원생활의 이상과 현세생활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의 생애는 이와같이 서로 상반된 관념들을 조화시키려는 오랜 투쟁이었던 것으로 보인 다. 페트라르카의 심적 분열과 정신적 갈등 자체가 바로 이전의 중세인들에게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서 주관적 의식과 자아발견의 반증이라 하겠다. 이러한 자각의식의 확대는 동시에 외계에 대한 인식영역의 확장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수반하였다. 페트라르카가 전원과 자연 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찬하였음은 그한도 내에서의 윤리와 도덕 문제를 강조한 것에 불과하였다.(5) 세속적 관심개인과 인간에 대한 자각은 세속적 생활과도 밀접히 관련되었다. 인간의 주관적 의식의 충만과 외 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확대는 내세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크리스트교 세계관과 종교적 경건을 중시하는 중세의 사상으로부터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현세의 생활로 돌리게 하였다. 페트라르카의 세속적 관심은 신앙에 대한 무관심이나 회의와 직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경건을 강조하고 세 속성의 추구를 배격하는 중세의 윤리관에서 볼 때 공공연히 현세성의 추구를 표출하는 그의 태도에 는 괄목할만한 새로운이 있다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하나의 변화이며 고대의 이념에 의 한 중세관념의 수정 내지 변화로서 중세에서 이탈하려는 경향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3. 페트라르카의 철학14세기까지 고전전통에 기인한 휴머니스트적 경향 혹은 세속적 경향이 점차 확산되어 나갔으나 사실 상 매우 한정적이었고 또 신학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종교적 계시와 인간 의 경험적 지식 사이에 구분이 점차 대두되면서 이 양자간의 대립적 관계가 확립되었다. 여기에 페트 라르카를 괴롭힌 정신적 갈등과 딜레마가 있었고, 이론과 생활사이의 괴리를 조화시키려는 부단한 노 력과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국면은 무엇보다도 인간생활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경건한 신앙과 현세생 활의 지표로서의 인간의 덕성, 이 양자 사이의 대립을 배제하려는 그의 철학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 다. 이에 따라 페트라르카의 철학은 형이상학 그리고 체계적인 신학을 내포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경건과 덕성에 관한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1) 경건과 지혜페트라르카의 도덕철학은 한마디로 경건은 지혜이다.(Piestas est sapientia) 라는 문구로 집약될 수 있다. 그는 경건과 지혜를 동일시하여 경건은 신을 알고 경배하는 것이며 지혜는 신을 경외하는 데 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최고의 철학은 인간이 항상 경건한 마력에 있었고 이것은 또한 초월적 내 세를 신봉하는 중세인과 인간의 경험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르네상스인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을 야기했다.페트라르카는 이 문제를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지설(主志說)을 도입하여 해결하려 하였다. 페트라르 카에 있어서의 주지는 욕망이 아닌 그 자체의 본성에 의하여 움직이는 동적인 힘이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신의 선물이라고 하였으나 그렇다고 인간본성의 자율성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 다. 그는 인간본성의 자연상태가 신의 은총에 의하여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은 구원을 바랄 수 없는 비천하고 부정한 것이라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이 신에 귀의하여 선을 향하느냐, 아니면 신을 외면하고 악에 물드느냐 하는 것은 인간 의지의 진지한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페트라르카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정신의 한계 내에서 자신의 영혼의 설계자이며 자신의 세계의 창 조자일 수 있었다.(3) 진리의 원천페트라르카는 지혜를 추구하려는 진지한 의지만 있다면 인간은 현세생활에서도 그가 목표로 하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 증거로서 이미 많은 고대인들이 독자적으로 진리에 어느 정도 도달하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고대인들은 크리스트교 이전에 살았으면서도 그들 자신 의 노력에 의하여 크리스트교인과 다름없는 참된 지식을 스스로 소유하였다. 따라서 고대의 위대한 사람들의 교훈과 모범적 행위는 많은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페트라르카는 현세생활에 서 인간이 지혜에 접근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소크라테스에서 키케로에 이르는 세속적 지혜의 원천을 추구하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솔로몬으로부터 예수에 이르는 크리스트교적 지혜의 원천인 것이다. 세속적 지혜의 추구는 인문교육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페트라르카는 지혜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고전문학 연구의 필요 불가결성을 주장하였고 결과적으로 휴머니즘 운동에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4) 식자(識者)의 경건함페트라르카는 1362년 보카치오에게 보낸 서한에였다.
국제관계론-----------------제 1 절 국제관계와 국제관계학. 국제관계학 : 국가수준의 정치적 단위들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정치학의 하위분야. 국제관계는 정부간의 정치적 상호작용에 국한되지 않음1. 국제관계의 행위자들은 각국 정부들만이 아님 (국제협력기구들, 초국적 기업, NGO)2. 국제관계는 정치적 관계뿐 아니라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영역에서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일어나는 폭넓은 교류와 관계를 포함 → 최근 국제관계학은 전통적 안보연구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접학문분야와의 학제적 연구 지향. 국제관계학은 실용적 성격이 강하고, 현실적 필요성이 국제관계 연구에 큰 영향 끼침 → 국제관계의 현실과 그 변화로부터 커다란 영향받음⇒ But 실용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이론적 성찰이 이루어져야 함∴ 국제관계학은 많은 실용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인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국내정치의 이해에까지 연관된 학문임제 2 절 국제관계이론의 발전1. 첫 번째 대논쟁 : 자유주의와 현실주의. 자유주의. 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자유주의적 처방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의식 팽배 → 집단안보체제의 구축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국제연맹이 창설되었고(집단안전보장이론), 국가간의 분쟁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제도들과 국제법이 강조됨(기능주의). 국제관계는 압도적인 국가나 초국적 행위자에 의해 비교적 위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국가들간의 상호주의와 협력 및 교류도 이뤄지며, 국제법이나 규범, 제도 등에 의해 통제되기도 한다고 봄. 또한 국내세력, 초국적 기업, 국제기구, 국가간 기구, NGO 등이 점차 국제관계의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함에 따라 국제관계의 핵심적 행위자는 국가만이 아니며 국가만이 국가이익을 극대화시키는 합리적 존재가 될 수 없음 → 다양한 행위자들의 대립, 흥정, 타협을 통해 국가의 선택이 결정된다고 봄. Immanuel Kant(영구평화론) : 국제질서의 무정부상태가 일종의 집합행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봄. 현실주의. 2차대전 이전까지는 국제관계에서 국제도덕과 여론, 국제법 및 국제기구 등 자유주의적 개념이 중시되고 힘에 의한 해결이 경원시됨⇒ But 자유주의는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규범론에 치우침으로써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움. E. H. Carr : 객관적인 국제정치의 협상에서는 힘이 중심이 된다고 봄. Hans J. Morgenthau : 힘의 효과적 조직체인 국가는 국가이익을 추구하며 이 국가이익은 힘으로 규정됨. 국제정치는 본질적으로 힘으로 규정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들간의 힘의 투쟁이라 봄. Morgenthau의 세 가지 가정1. 국제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국가 또는 국가의 정책결정자이다2.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사이에는 엄격한 구분이 있다3. 국제관계는 권력투쟁이고 따라서 권력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2. 두 번째 대논쟁 : 전통주의와 행태주의 (방법론에 대한 논쟁과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전통적 접근. 역사적 서술 중심의 접근 → 외교사에 대한 연구가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고, 역사분석을 통해 일반화된 이론이나 교훈을 도출⇒ But 연역적 이론이나 인과관계의 논리가 선행되지 않은 역사분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1 특정한 역사적 사례에 대한 분석이 한 측면에 치우칠 수 있음2 연구자들마다 서로 다른 측면을 보고 서로 다른 일반론을 이끌어낼 수 있음. 행태주의. 인간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고 보고, 이러한 규칙적 행태에 대한 가설을 수립한 후 이를 체계적, 경험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국제관계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 용어의 정확한 사용과 데이터를 통한 명제의 검증을 중시⇒ But 방법론에 치우쳐 연구문제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음.ex> 민주평화론의 명제 :『민주주의는 서로 평화적이다』연구결과로 얻은 사실 : '민주주의 국가가 개입된 전쟁에는 사상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구결과는 위의 사실만을 입증할 뿐, 민주평화론의 명제 자체를 입증한 것음 아님.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외교정책 결정이론- 현실주의 :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분리.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국가이익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 But 외교정책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정책결정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결정 (Snyder). 커뮤니케이션 이론- 현실주의 : 국제정치 행위의 주체자를 국가로 한정- But 국제기구·다국적기업·NGO 등 국가 이외의 새로운 주체들 대두 ⇒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특정한 시공에 위치 지워져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속되며, 객관적인 일반이론은 존재치 않음⇒ 국가나 주권, 무정부, 합리성 등 기존이론들의 주요 기본개념들을 해체하고, 이에 대해 다수의 현실과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3. 세 번째 대논쟁 : 국가중심론과 범국가론 (분석수준의 문제에 따른 논쟁)- 1960년 이후 세계체제가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함에 따라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현실주의에 대항하여 국제정치는 국가수준에서만 분석할 분야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대두됨으로써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분석수준 문제가 거론됨- 특정한 분석수준의 따라 시각, 문제, 연구영역과 연구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분석수준의 선택은 매우 중요ex> 전쟁의 원인을...1 개인의 수준에서 찾는 경우 지도자의 사고와 심리, 정치적 판단 등을 분석2 국가의 분석수준에서는 정치체제의 성격, 관료정치, 사회세력과 집단들의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성격 등에 초점을 둠3 국제체제의 수준에서는 현실주의자들처럼 힘의 분포나 동맹관계, 지정학적 조건, 국제청치경제적 요인 등에 초점을 둠. Kenneth N. Waltz (구조적 현실주의)- 국제관계 고유의 구조적 특성에서 힘의 정치가 비롯됨. 미시경제학과 같이, 국제정치 역시 구조에 따라 행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설명, 예측 가능- 이러한 구조에서 각 단위들간의 능력, 곧 힘의 배분이 가장 중요. 다양한 능력 분포상태에 따라 각 단위들의 행동 변화⇒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구조에서 국가들은 평화를 유지하며,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는 전쟁이 유발됨. Robert Gilpin (패권안정론)- 국제질서의 안정과 개방성을 가져다 주는 것은 힘의 우위. 따라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패권국의 힘이 상승하고 있을 때 전쟁이 방지되고 국제질서의 안정이 유지⇒ 힘의 경제적 근원과 국제관계에서 경제관계의 중요성 인식. George Modelski(패권변동론) : 근대 국제체제가 형성된 16세기 이후 100년 주기로 패권국가 교체.- 패권의 주기 : 패권전쟁 → 정당성 확보기 → 패권 쇠퇴기 → 패권도전과 군웅할거기 (각 25년)⇒ 패권국가가 패권을 오래 유지 못하는 원인1) 생산성 체감의 법칙에 따른 압도적 경제력의 우위 상실2) 무임승차의 문제- 패권국은 현질서를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필요한 공공재를 계속 만들어내고, 이에 비용을 대지 않은 다른 국가에게도 공공재의 혜택이 돌아가면서 패권국의 힘은 상대적으로 쇠퇴3) 패권국 내부의 부패와 타락∴ 신현실주의는 국제관계의 힘의 분포라는 단순한 변수로서 국가들의 행동을 설명함으로써 이론적 경제성 달성. But 1 국가간 힘의 배분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무시2 변동보다는 현상과 균형을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새로운 균형상태로 변동하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부적합3 강대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를 정당화해주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때문에 비판받음※ 현실주의·신현실주의의 공통 전제1. 국가를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간주하며 핵심적 분석단위로 취급- 국가 내부의 각 사회세력이나 비정부집단, 혹은 관료집단들이 국가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안보와 같이 중대한 국가이익의 문제에 있어서 국가는 단일한 행위자로서 단일한 정책을 추구하며, 국가이익을 극대화시키거나 최선의 결과를 만족시키는 대안을 선택2. 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이며 이 속에서 국가의 최우선적 국가이익은 안전보장에 있음- 국가간의 교류와 협력이 갈등을 완화할 수도 있으나, 이를 통한 상대적 이득의 차이로 인해 힘의 균형이 변화될 정도의 국제협력은 이루어질 수 없음. 신자유주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 (반복게임)B게임의 전제조건ab1) 게임이 반복되어져야 한다2) 게임 참가자의 수가 너무 많지 않아야 한다
1. 역사학에서의 신화 읽기에 대하여역사학을 전공하는 이에게 있어 신화는 상당한 매력을 가지는 사료이면서 동시에 곤혹스러운 자료이기도 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 속에 담긴 허구와 상상의 요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판단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는 특히 구전의 기간이 길거나, 채록의 과정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많이 개재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본인의 전공인 한국사에서도 그러한 자료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한국사에서도 고대사 재구의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많은 기이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널리 알려진 단군신화를 비롯한 건국설화들과 초기의 왕에 대한 기록들, 그리고 奇異편에 실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믿기 어려운 사료들 역시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료들을 단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저 팽개쳐 버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서사라는 장르가 역사가 문학과 분리되어 기록되기 이전의 시기에 있어서 신화는 역사이면서 문학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역사가의 임무는 바로 신화라는 사료에서 어떻게 역사를 읽어낼 것인가하는가라는 부분이 된다. 결국 문제는 신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압축된다.역사학에서 신화를 읽는 방법의 첫 번째는 신화가 발생한 시대가 아니라 그것이 읽히는 시대의 맥락에서 신화를 보는 것이다. 단군 신화가 기록된 시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의 대몽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국난의 시기였다. 그 史實性이 의심스러운 단군이 민조의 비조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를 방증해 주는 또 다른 사료는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평양을 수도로 삼고 있는 북한이 한국과의 체제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을 벌여오면서 고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며 고고학적 신뢰서이 없는 단군릉 발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신화의 존재 내지는 그 내용이 시대에 따라 가지는 정치적 함의라는 측면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관심을 가지고 민속학을 공부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샤먼이었다. 고대사에서 샤먼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사상사의 시원에 대한 접근이면서 동시에 정치사의 시작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랍·로마 신화를 수강하며 보고서의 주제로 오르페우스 신화를 선택한 것 역시 그러한 이유였다.2. 오르페우스: 순정파 연인, 뮤즈 그리고 샤먼(1)Emmet Robins의 견해오르페우스와 유리디케의 이야기,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희랍·로마 신화 전체를 통해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사람하는 연인을 되찾기 위해 저승을 찾아간 순정파의 이미지로 우선 떠오르며, 두 번째로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천지자연을 감복시키고 저승의 망령들과 하데스마저 누그러뜨린 음악가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문학으로서의 형태를 갖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에서 또한 유추해야 할 세 번째의 사실은 그가 샤먼이었다는 사실이다.여기에 대하여 Emmet Robins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신화, 민간전승 그리고 전설은 서로 배타적인 카테고리가 아니며 희랍·로마 신화에는 그러한 장르들의 성격이 이미 뒤섞여 있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오르페우스의 사제로서의 성격은 위의 세 장르 중에서 신화적 특질이 가장 강한 것이라고 본다. 또 오르페우스의 연인 이미지는 민간전승 과정에서 얻은 성격이며, 음악가로서의 이미지는 전설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들에 비해 실제의 역사적 사실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mmet Robins, 「Famous Orpheus」그의 견해는 오르페우스의 세 가지 이미지(the triple personality)를 사실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정 정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그러나 나의 견해는 다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오르페우스의 세 이미지는 모두 동등한 정도의 史實을 담고 있는다는 것이다.(2)음악의 신과 접신의 제의우선 음악의 신인 오르페우스가 왜 샤먼인가라는 문제는 현대의 샤먼과 그의 제 woods and creatures of the wildTo follow, sudenly, as he swept his stringsIn concord with his song, a frenzied bandOf Thracian women, wearing skins of beasts,From some high ridge of ground caught sight of him.①의 장면은 에서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케를 찾아 지옥의 강인 스틱스(Styx)까지 내려가 페르세폰을 만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그가 페르세폰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노래였다. 접신의 장면에서 오르페우스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음악이었던 것이다.또 ②의 장면은 《The Death of Orpheus》의 도입 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음유시인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시와 음악을 통해 이끌어낸 열광적인 반응(frenzied band)이다. 음악과 시가 사람들을 광란(frenzy)의 상태로 몰아 넣고 있는 것 역시 제의에서 도무와 음악이 참가자들에게 일으키는 효과와 유사하다.②와 유사한 상황에 대해 Zornicaja는 〈야쿠트족의 샤먼〉에서 "굿을 하는 데는 일정한 극적인 형식이 있다. 그리고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적이며 신비스러운 힘이 있는 노래와 주문도 곁들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북을 치면서 특별하고도 음울한 춤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무당의 방울소리와 몸짓이 수반된다"라고 기록하며 음악과 춤이 샤머니즘의 본질적인 것이며 그것이 제의의 참가자들을 엑스터시의 상태로 몰고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홀거 칼바이트, 《세계의 무당》이러한 의례에 배어있는 춤과 무악의 예술성은 강신 체험에서 대립되는 샤먼 자신의 모순된 성향을 조정하는 심미적 감수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 샤먼은 불멸의 존재인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며 탄생과 죽음에 관한 제의를 주관하는 자였다. 또한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유한성과 자연 앞에서의 한계를 가장 잘 아는 랜스, 엑스터시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랜스란 보통의 기질성이 아닌 각성, 거의 불가능한 異常熟睡 상태를 말하며 호흡이 감퇴하고 감각도 소실되어 수동적으로 되며 자의로 복귀할 수 없는 긴장 상태를 말한다. 트랜스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샤머니즘과 관련이 깊은 것은 황홀성 트랜스이다.) 김태곤, 《한국의 무》, 대원사, 1997이는 완전한 죽음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정도의 상태다. 이 강신의 과정에서 샤먼은 여러 상징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중 오르페우스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상징은 解體가 아닐까 한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샤먼의 강신과정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중요한 상징이 바로 해체다. 야쿠트 족의 언어에서 "그는 몸이 세 번 찢겼다"라는 말은 그가 큰 샤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실제로 그의 육체가 절단되고 죽음을 당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의 심적체험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목이나 사지의 절단이 일어난다면, 실제로는 무의식 속에서 그것과 동일시되었던 알려진 것의 해체가 일어났다가 보아야 한다. 즉 해체란 무의식에 의한 자아의식의 해체가 되는 것이다. 즉 완성을 지향하는 해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체는 …인간완성에 이르는 도상의 모든 전환기적 위기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부영, 〈입무과정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고찰〉즉 오르페우스의 죽음은 구체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상징의 해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그의 죽음을 해체로 이해한다면 바쿠스가 살인을 행한 여인을 참나무로 변화시키는 과정도 샤먼의 주술적 치료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샤먼은 정신병의 치료자로서 죽음에까지도 이를 수 있는 환자의 질병의 성질을 미리 체험한 자이고, 제의를 통하여 자신의 체험을 심미적 감수성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환자와 제의의 참가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환자의 엑스터시를 유도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이끌어 낸다. 참나무로의 변화라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오르페우스의 연인 유리디케는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난다. 깊은 비탄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연인을 찾으러 저승에 이르는 여행을 한다.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샤먼으로서의 오르페우스가 강신의 과정을 거쳐 입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샤먼이 되는 과정은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 첫 번째는 내면의 소리로서 신령과의 교섭을 시작하는 경우다. 둘째는 징후들을 통해 영감에 빠져들고 신령의 소명을 얻는 경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불행을 통해서 샤먼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다. 오르페우스의 경우는 이 중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개인적 불행 중에서도 분명히 가장 극한적인 형태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적 아픔은 그를 타계로의 여행으로 이끈다.이러한 타계여행의 모티프는 강신무들이 경험하는 무병에서 상당한 빈도로 나타난다.) 홀거 칼바이트, 전게서이는 망아의 경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현대의 죽음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는 假死狀態에 대한 연구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라스무센의 연구에 따르면 에스키모의 여자 샤먼인 키날릭은 처형의 경험, 즉 죽음의 환각을 통해 샤먼이 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샤먼인 아기아르토끄의 경우도 물에 빠뜨려져 죽는 체험을 하였다고 보고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샤먼의 후보자는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생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택받은 자로 거듭난다.일반인이 할 수 없는 경험, 즉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죽음의 경험과 지옥의 정령들과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케 이야기가 단순히 문학적 상상력만으로 구성된 허구가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5)유리디케의 귀환: 디오니소스의 귀환오르페우스가 유리디케를 찾아 떠났던 이야기를 샤먼의 입무과정으로 해석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유리디케가 귀환하지 못하였다는 비극적인 결말이다.샤먼이 실신 또는 가사상태를 통해 강신의 체험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