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비평론 보고서 : 독후감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고국어국문학과 학번 2000001245 이름 김용세이어령 교수-, 그다지 관심이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우연히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읽고 참 똑똑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이어령이라는 사람은 국문과 교수이외의 것으로 사회적으로 더 알려진 사람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어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난 지금도 그의 전공이 뭔지 모른다. 이제 막 읽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하 『흙 속에-』)를 봐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그의 전공이 무엇인지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의 전공이 궁금해지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글에 작가의 전공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가? 현대면 현대, 고전이면 고전 아무 거라도 좋으니 작가의 전공이 무엇인지 빨리 알고자하는 심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물론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막 국문학 공부를 시작한 내가 안타깝게도 사고방식이 너무 경직된 것 같다. 왜 고전문학 전공자는 고전문학만 이야기하고 현대문학 전공자는 현대문학만 이야기 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나의 잘 못 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현대문학을 폄하하고 또 현대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반대의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강물과도 같이 면면히 흘러내려 온 문학을 두고 왜 고전과 현대라는 파벌이 생겼는지 안타깝다.그런 의미에서 이어령 교수의 글이 더욱 빛난다. 그는 그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일뿐 고전과 현대의 벽은 무시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모습이 좋아 보이다가도 한편으로는 편견을 갖게 하기도 한다. 국문학 전공자이면서 외국문화(특히 일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더 나아가 한국문학과 문화를 제 2의 것으로 제쳐두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이런 생각은 (솔직히 『흙 속에-』를 읽기 전에는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또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흙 속에-』를 대출했다. 얼른 읽고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도서관에 앉아 전공서적 보듯이 읽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들어오고, 책장이 슥슥 넘어가고...... 몇 장 넘기지 않아 난 금새 책을 만지는 손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이렇게 딱딱하게 생긴, 외국문화나 동경할 것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를 두고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썼다니! 이미 이야기에 빨려든 나는 쉽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1/3 정도 읽었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올라 맴도는 두 사람이 있었다.지난 가을 답사를 다녀오면서 서정주 시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같이 간 아이들과 함께 서정주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두 번 서로 상반된 탄식을 했다. 한 번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는지에 대한 감탄이었고, 또 한 번은 그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탄식이었다. 나는 서정주 시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해방 후에 그가 보인 반성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흙 속에-』를 읽으면서 의문이 조금씩 풀려갔다. 서정주, 그는 바로 못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서정주 시인은 한국의 감정을 그의 주된 소재로 삼았기에 한국인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고, 반대로 한국인이었기에 사회적 문제로 한국인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면(일본이 제 3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가 그 제 3국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면) 해방 후에 앗싸리 하게 할복 자살을 했을 것이고, 서양인이었다면 점잖게 고개 숙여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었다. 그랬기에 우리의 문화는 완전한 폐쇄도 완전한 개방도 아닌 어중간한 지대에서 싹텄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며,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몽롱한 반 투명체 그것이 한국인이 지닌 본질이었던 게다 {)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p.69, 이어령 전집 1, 삼성출판사 1986,.(이하 페이지만 표 시)는 이어령 교수가 이미 1963년도에 한 말을 죽을 때까지 몸소 실천한 것이다.이어령 교수가 본문에 자주 언급한 한국의 가난과 자연과의 동화 등은 서정주 시인에게도 계속해서 시적 소재가 되었던 것들이다. 또 이어령 교수의 다음 글을 읽을 때는 미당의 시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가 좋다는 말 대신에 괜찮다 는 말을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 는 긴 말이 줄어서 된 것이다. 현실에 관계하기만 하면, 나라 일에 관계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었다. 죄 없는 처자식까지도 억울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혹은 쓸쓸한 귀양살이에서 눈물을 거문고로나 달래야 했다. 즉 관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자연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이 반드시 풍월을 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 서는 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pp.30-31)...(생략)...울고웃고수구리고새파라니 얼어서運命들이 모두다 안끼어 드는 소리.……큰놈에겐 큰 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오는 소리……괜찬타,……괜찬타,……괜찬타,……괜찬타,……...(하략)...두 사람이 자신의 글 속에 괜찮다 는 말에 사용하게 된 배경이 완전한 일치점을 갖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유사한 분위기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와 맞물려서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괜찬타 는 말만으로 감동을 주는 이 시의 비밀은 한국인 만이 갖는 서러움이 녹아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책을 읽다가 떠오른 두 번 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난 틀림없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끄러움이다.『흙 속에-』를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내게 와 닿는 게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족족 내 자신의 모습 아닌 것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완벽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한국을 비하한 것도 아니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평소 살피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느끼지는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살피지 못하며 살고 있었는지.......여러 이야기 중에 특히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은 눈치로 산다 는 제목의 이야기였다.{)주요부분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눈치는 언제나 약자가 강자의 마음을 살피는 기미이며, 원리 원칙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없어서 아니될 지혜이다...(중략)... 눈치 란 오히 려 불합리한 것 일 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나의 하루는 눈치보는 것에서 시작해 눈치보는 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할 일만 성실하게 하면 눈치란 필요가 없는 것인데 나는 판단에 앞서 습관적으로 눈치를 본다. 물론 눈치 없는 사람 이라고 하면 그리 좋은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가 온통 눈치 로 뒤덮여 있다면 그것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이야기에 민감했던 것은 평소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내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난 앞으로도 계속 눈치보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것을 그냥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부끄러움은 더욱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가슴 뻐근한 부끄러움이 많이 솟아났는지 알 수가 없다. 저자가 한국의 못난 것만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다. 돌담의 의미 , 기침과 노크 , 군자의 싸움 , 화투와 트럼프 등의 이야기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만의 정겨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이야기들조차 즐겁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난 책에 푹 빠져 있었고 이미 이 책은 나의 속내를 모아놓은 이야기라는 것이라는 착각 아닌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부끄러움의 근원을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은 이 책의 첫 이야기- 풍경 뒤에 있는 것 -에서부터 시작할는지 모른다....이지러진 초가의 지붕, 돌담과 깨어진 비석,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 서낭당, 버려진 무덤들, 그리고 잔디, 아카시아, 말풀, 보리밭......, 정적하고 단조한 풍경이다...(중략)...위확장에 걸린 시골 아이들의 불록한 그 배를 보지 않고서는, 광대뼈가 나온 시골 여편네들의 땀내를 맡아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무심히 지껄이는 말솜씨를 듣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중략)...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클랙슨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랐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던 것이다...(중략)...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중략)...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없이 엄습해 왔을 때에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가야만 했던 것일까?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가?...(pp.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