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맥래런 지음. 『피임의 역사』- 현시대 여성사를 조명하는 새로운 방법들어가며상품 스펙타클과 네트(net)를 통한 기호들의 빠른 이동과 함께, 가상의 세계가 실재를 압도하며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현대인의 정체성은 전근대인의 그것과는 분명 비교할 수 없게 복잡한 지표들의 순열 조합을 거쳐 산출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가문과 혈통의 카스트에 따라 개인의 신분이 확정되지 않는다. 마치 시즌에 따라 다른 색깔과 다른 외관으로 포장되는 상품처럼 각 인식 주체가 속한 사회 문화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형체를 달리 한다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의 구성원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 보듯이 남성 중심 질서가 공고한 이 땅에서 페미니즘 이론은 수입된 어휘로 되었건 자국어로 되었건 언제나 이미 이질적인 것이라는 혐의를 받기 쉽다. 이질적인 것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매혹은 기존의 틀을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고 혹은 그 틀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 페미니즘 이론의 힘은 그런 양가성에서 얻어질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페미니즘 이론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일은 기존 사회의 왜곡된 여성 문제에 대한 올바른 방향 제시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며 현 시대 여성사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게 할 것이다.98년 책세상 에서 펴낸 『피임의 역사』는 4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현재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앵거스 맥래런, 캐나다 역사학자이고 빅토리아 대학 역사학 교수로서 그는 피임 이라는 인간 행위를 프리즘 삼아 서양의 성문화를 역사적으로 훑어보고 있다.역사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게 있어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억압된 타자로 존재하여 왔다. 남성이 정해 놓은 가부장적인 세계관 속에서 순종했어야 한 것부터 시작하여 서로 상대성을 띠게 되는 성적(性的)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그러한 사실이 단순한 힘의 논리와 함께 교묘한 성의 타자화 교육을 더욱 공고히 이루어졌다.이 책은 역사적으로 여성의 생식력,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 대 여자와 아이 뿐 아니라 노예와 재산도 포함되며 그 주인은 늘 남성이다. 이처럼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문학에서 자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표현한 구절이 등장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심지어 어성이 생식 능력조차 없으며 수동적으로 태아를 양육할 자궁만 제공한다고 주장했다.여성이 생식에서 능동적일 수 없는 이유를 가장 학문적으로(?) 설명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여자를 불임의 남자이자 실패작 이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성행위 과정에서 남성이 정액을 방출하는 반면 여성은 외견상 변화가 없다는 피상적 관찰에 근거한 것이다. 즉, 여자들에게는 열이 없기 때문에 정액을 생산하지 못하고 정액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열이 없기 때문이라는 순환 논법을 펼침으로써 수동적 존재인 여성은 피임이나 낙태의 권리 를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남자 태아는 임신 후 30∼40일, 여자 태아는 80∼90일이 지나야 비로소 이성과 영혼을 갖춘 존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낙태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남편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리스 여성들 사이에는 삼나무 수액이나 황산 알루미늄 등 피임약과 낙태약이 알려져 있었다. 오늘날 이런 약물의 사용 자체가 지극히 어이없겠지만, 저자는 여성들이 이런 처방을 서로 교환했다는 사실을 "최소한 여성들이 생식과 출산의 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대했음을 보여주는 것" 이라고 해석한다.2장 에서는 저자가 많은 자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개한 점에서 주목된다. 원 자료를 직접 해독하고 소개한 점은 대단한 가치를 지닐 것인데, 자세하게 주(note)를 달아 알기 쉽게 설명해놓고 있다.로마인들은 그리스인의 의학을 바탕으로 생식을 이해하였는데,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력이라는 개념에 집착한 그들의 의식 특성상 국가 권력이 결혼이나 아이 유기, 피임, 이혼 등의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제한할 수 있었다. 또한 결혼 다름없이 합법적인 아이를 갖기 위한 것이었으나 아내의 자리가 동반자로 인식되는 승격을 거침으로써 아이를 버린 부모들은 쾌락을 위해 교미하는 동물로 묘사되기 시작한다.3장 에서는 일단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가족 형태 및 생식 관계에서 여성들이 여성 자신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침묵하였다고 전제하면서, 서구 기독교 시대를 살펴보면 또 다른 장벽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아도 가족을 제한하는 방법에 대한 단순한 서술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이런 특징은 원래 사회, 경제적이었던 관심사들이 종교화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되면서, 과거 고대인들의 가부장적 구조 종속 목적으로서의 성(性)단속이 아닌 세속적인 야망과 가족 분쟁의 얽히고 설킨 세계로부터 기독교도들을 자유롭게 하려는 급진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가 성욕을 단속하고자 했던 이유로 인해 나타났다는 것이다.그러나 사실 교회는 도시의 남성 귀족을 개종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금욕적인 교부들은 두려움과 혐오를 가지고 여성을 바라보았기에 절제력 강한 기독교인들의 여성 혐오는 매우 두드러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여성들이 고통스럽게 짊어진 결혼과 출산의 부담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식을 조절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용서하지 않았다. 도리어 성직자들은 대체로 오직 아내들만이 이처럼 죄스러운 일에 대해 책임을 지닌다고 고집했다. 생식력 조절이 기독교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전체 가족의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는 계속해서 유지된 것이다.기본적으로 기독교도들은 피임약을 일반적으로 매춘과 간통, 변태 등과 연관시켰기 때문에 그것은 여성들의 욕망 또한 생식 제한의 결과와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임신한 아내가 자연에 반하는 방법 을 사용하는 것은 지독한 범죄로 인식한 것이다.저자는 비록 기독교가 확실한 종교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생식 조절을 비난함으로써 가져온 영향을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피임과 낙태에 의지하던 경향이 줄략의 변화 발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여성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에 의지하면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의사 결정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했으며 사랑 의 수호자가 되면서 종교가 여성들에게 결혼 생활로부터의 도피할 수 있는 합법적인 피난처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이처럼 특이한 중세의 가족 형태의 출현은 여성의 생식 조절에 일정하면서도 규칙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이다.하지만 여성의 생식력에 대한 남자들의 걱정과 두려움이 중세의 두드러진 결혼 혐오를 가속화시켰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 비록 결혼과 임신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이 여성의 건강과 복지를 위협하긴 했지만, 교회가 여성의 성욕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저자의 주장에 일정한 한계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저자 역시 이런 점을 언급하고 있다.)그러나 중세 후기로 들어가면서 피임은 그 자체로는 중요한 도덕적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피임이 야만적인 형벌에 처해지진 않았다. 생식 조절에 대한 교회의 비난은 단순히 결혼을 새롭게 하려는 일반적인 움직임의 하나로, 그것은 결혼 전례의 발전, 좀 더 폐쇄적으로 윤리를 단속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고해의 증가, 그리고 올래된 성적 관습을 여전히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기독교 경전의 부담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교회가 주도했던 생식 논쟁은 근대 초기에 대중적 논쟁으로 세속화되었다. 국가는 유아 살해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성직자들을 대신하여 모성을 단속했고 남성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파들을 대신 하여 분만을 담당하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중절 성교에 관한 논문이 등장하고 콘돔생산자들은 사실상 피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출산의 양상도 변화하여 18세기까지 체계적으로 가족 규모를 제한하는 부부들의 숫자가 계속 증가하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늘 그래왔듯이 출산을 미루고 출산 간격을 조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등장할 수 있게 하였는데 중절 성교의 논쟁이라든지 스펀지와 탐폰이 등장하였고 콘돔이 발명되었다. 물론 콘돔의 경우 근대 초기에 등장하였는데 초기에는 그것이 출생률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성병 예방의 측면이 강했다. 어쨌든 간에 콘돔의 발명으로 인해 출산에 대한 남성의 영향력이 조용히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 와서 피임은 아이들 수를 제한하고 그들의 건강을 보증(출산시의 산모 사망률을 감안할 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것은 피임이 왜 출산을 끝내려는 목적보다 출산 간격을 조정하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되었는지를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6장 에서는 신맬서스주의자로 알려진 산아 제한 옹호자들의 주장과 사회 변천을 다루고 있다. 서구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으면 더 큰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에서 인구 증가를 환영했지만 맬서스는 이런 믿음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논변을 발전시켰다. 그는 인구가 많으면 자원의 고갈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사회가 개선되려면 하층 계급이 조혼과 무분별한 결혼을 신중하게 고려해보는 도덕적 절제를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이런 맬서스의 주장은 생식 결정이라는 문제 자체를 훌륭한 대화 주제로 바꾸어 놓았고 피임에 대한 결과적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즉 맬서스 주의자들은 피임을 과잉 인구로 야기된 빈곤의 문제에 대한 대응 양식의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이 시기에 와서 서구 유럽에서는 각종의 피임기구들이 의사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와 상품 개발업자에 의해 등장하였고 (페서리, 격막 피임 기구, 질 세척제, 콘돔 등의 상업화) 여성들이 생식 조절에 있어 여러 적극적 대응 양상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다.19세기에 이르러 신맬서스주의 학파가 각 개인의 의사 결정을 강조하고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보충되면서 서구 유럽은 보편적인 피임 방법의 확산과 함께 인구 감소가 일어나게 된다. 파리가 왕의 것이라면 나의 몸은 나의 것이다 라는 중세 재판장에서의 죄인 여성의 목소리가 드디어 현실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또한
채만식의 태평천하국어국문학과 3학년 9711100321 지환채만식은 우리 근대 소설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 대표성을 지닌 작가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소설 이외에도 희곡, 방송극본, 평론 등 문학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은 장르를 막론하고 뛰어난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풍자나 반어 같은 특유의 방법과 고전 소설의 재해석 작업이나 판소리 사설의 적극적인 계승과 작업을 통해 서사 문학의 전통과 활발히 교섭하려고 한 시도는 당시 작가들에게서 쉽사리 발견할 수 없는 그의 독특한 소설 미학을 형성한다. 또한 이는 역사와 현실의 진보에 대한 분명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그 중에서도 태평천하 는 반어에 의한 풍자와 전통 문학과의 상호 연관성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중 하나이다.1. 풍자적 작품이라는 해석풍자란 골계나 해학, 기지 등과 같은 비슷한 희극적 범주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웃음을 이끌어 낸다. 골계나 해학이 끝에 가서는 화해와 유대의 善意로 매듭지어지는 것에 비해 풍자는 근본적으로 적대적이어서 공격의 주체와 그 대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채만식은 이런 방법을 즐겨 썼으며 그의 태평천하 가 그 중에서도 풍자가 아주 훌륭하게 구사된 작품이다.태평천하 는 일제하의 대지주 윤두섭(윤직원) 일가를 다룬 일종의 가족사 소설 유형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염상섭의 삼대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가족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서술되는 장대한 서사적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소설이 서술되고 있는 시점은 어느 날 오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겨우 열 대여섯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이 짧은 시간동안에 작가의 시선은 참으로 분주하게 시간과 공간의 축을 이동하면서 독자들에게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보여준다.윤직원은 아버지 대에 일군 재산을 더욱 늘려 만석꾼 소리를 듣는 대지주에 엄청난 현금 자산을 밑천으로 가진 당대의 내노라하는 고리대금업자이다. 그는 수령의 가렴주구와 화적패가 날뛰는 한말에 비한다면 사유 재산을 보장해주고 더욱이 그것을 경찰과 군대의 힘으로 철저히 보호, 유지해 주는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시대가 태평천하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인물이다.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지내가고오....자-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남은 수십만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으응?....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그런데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집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땅땅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말이여, 으응?"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윤직원은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양반 혈통과의 정략 혼인을 통해 대리 보상받으러 애쓰고 있기도 하다.외아들(서자 하나가 있기는 하니까 외아들이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창식은 나이 근 오십 세요, 벌써 옛날에 시골서 아전집과 혼인을 했던 터이라 치지도외하고, 딸은 서울 어느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오막살이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데, 그나마 방정맞게시리 혼인한 지 일년 만에 사위가 전차에 치여 죽고, 딸은 새파란 과부가 되어 지금은 친정살이를 하지만, 아무려나 양반혼인은 양반혼인이었습니다.또 맏손자며느리는 충청도의 박씨네 문중에서 얻어 왔습니다. 역시 친정이 가난은 해도 패를 찬 양반의 씹니다.둘째손자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시구문 밖 조씨네 집안이나, 그렇다고 배추장수네 딸은 아니고, 파계를 따지면 조대비(趙大妃)와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된다고 합니다.손자 둘을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출세시켜 부와 권력을 세습시킬 꿈에 부풀어 있는 인물이다.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나가는 품목입니다.집안에서 정말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하기야 군수보다는 도장관(도지사)이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부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러지라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 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윤직원은 갈데 없는 친일 지주이며 일제 강점 하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반민족적인 인물이다.작가의 시선은 이런 주인공과 그의 식솔들을 한 폭 회화의 대상으로 올려놓아 그들의 윤리적 타락과 정신의 황폐함, 낭비벽과 보신책 등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열 다섯 난 동기 춘심이를 윤직원과 그의 증손자인 경손이가 동시에 쾌락과 연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 아버지(윤창식)의 애첩을 그 아들(윤종수)이 유곽에서 오입질의 상대로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동네 사내아이의 오줌을 사서 그것으로 세수하고 마시고 눈을 닦는 윤직원의 기벽, 그리고 온 식구가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는 적대적 인간관계 따위가 그러한 예에 속한다.그러나 채만식 문학의 가장 이채로운 소설 미학을 형성하는 이 풍자 는 섬세하고 주의 깊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의 풍자가, 다시 말하면 그가 공격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단순하지 않으며 아주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이다. 윤직원 영감이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로 인식하게 된 연유도 그 역사적 맥락을 거슬러 올라 가보면 구한말 지방 수령들의 가렴주구를 혹독하게 겪은 뒤에 생겨난 반봉건적 성향의 일면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이념이나 윤리에 의해 도식적으로 나누지 않으려는 작가의 현실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부정성을 극복할 만한 적극적 대안의 모색보다는 부정성 자체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극복의 전망을 내면화시키는 그의 독특한 창작 기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2. 전통문학과의 상호 연관성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겨우 우리는 식민 사관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고 우리 민족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의 입지를 만드는 여러 가지 학문적 작업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소설사의 핵심 줄기에서 비켜나 있던 작가 채만식과 그의 작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일약 근대 소설사의 중심 항목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 1970년대 이후부터였음은, 그의 소설 미학이 지니는 개성이 이런 일련의 일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방법론적인 입장에서,채만식의 태평천하는 판소리 사설의 서술 양식을 소설에다 훌륭하게 접목시켜 새로운 서사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서술양식은 화자가 작품 속에서 인격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소설 읽기의 평면성을 깨뜨리면서 돌연 화자와 독자와의 거리를 사뭇 가깝게 형성시키게 된다.
희곡 감상문 - 내용요약국어국문학과 3학년 9711100321 지환1920년대의 김우진의 일련의 연극적 실험들은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특히 1925, 26년도에 대표작들을 생산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당시는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깊은 시름을 경험한 후 조국 광복을 위한 전망으로서 사회주의를, 그리고 그 주체로서 민중과 민족을 내세우던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사회 과학적 사실주의를 요구하던 이 시기에 김우진은 다소 엉뚱하게도 독일의 표현주의로 대응한다.희곡 에서 그는 당시의 보편적 문법이었던 사실주의 희곡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주인공 최원봉 은 사회와 현실의 개혁을 주장하는 친구 앞에서 극히 개인적이고 본질론적인 양심을 내세운다. 김우진의 주인공들은 바로 분열된 자아이고 역사의 합법칙적 진보에 회의하는 내면적 인물인 것이다.의 그 줄거리를 보면서울에서 가까운 어느 군의 읍내. 최원봉은 정숙과 애인 사이였는데 정숙은 다른 남자, 즉 이광은의 꾐에 빠져 일본으로 도망쳐 버린다. 원봉은 청년회의 상무 간사인데, 바자회의 수입금 중 일부를 유용했다고 하여 청년회로부터 불신임을 당한다.성장 과정이 순탄치 않은 원봉은 그의 별명 '산돼지'처럼 괴팍하고 저돌적인 면이 있다. 원봉의 친아버지는 동학 운동에 가담했던 동학군 박정식이었다. 원봉의 아버지는 관군(官軍)에게 잡혀 죽고, 또 어머니 역시 원봉을 낳자마자 죽는다. 그래서 원봉의 아버지와 같은 동학군이었던 최 주사가 원봉을 어릴 때부터 데려다 키운 것이다. 그러므로 누이동생 영순과는 친남매 사이가 아니다.최 주사는 죽으면서 원봉과 자신의 딸 영순을 결혼시키라고 유언(遺言)을 남기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원봉은 정숙과, 영순은 차혁과 각각 교제를 한다. 원봉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갈등, 특히 죽은 부친의 유명(遺命)인 동학 이념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으로 끝내 신경 쇠약증에 걸려 몽환병(夢幻病) 환자처럼 오락가락 한다.결국 일본으로 도망갔던 정숙이 돌아오고, 초봄의 양지바른 들녘에서 원봉과 정숙이 다시 만나 서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희곡 산돼지는 1926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한 3막의 희곡 작품이다. 주인공 '최원봉'은 구국 전선에 나섰다가 죽은 동학군의 아들이다. 그러나 일상(日常)에 갇혀 있음으로 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산돼지'가 '집돼지'로 길들여지고 있는 1920년대의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며, 그가 쓴 5편의 희곡 중 자살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김우진은 이 작품을 통해 1920년대 후반기를 살아가는 조선의 지식인 청년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방향 모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 새로운 방향 모색의 한 대안으로 작가는 동학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주인공인 최원봉의 부친이 동학 운동가였다는 상황 설정으로 미루어 보면, 작품의 저변에 깔려 있는 작가의 역사 의식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곧, 역사의 방향이 동학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3.1 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허무와 나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일에 대한 꿈도, 현실을 살아갈 기력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좌절의 나락에서 헤어나기 위해 청년회(靑年會)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여 힘을 모으려고 하였고, 이 단체들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 모색의 발판을 삼으려고도 했다. 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3.1운동 이후 일본이 조선인을 유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표방했던 문화 정책과도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2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단체 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고, '죽을 때 죽더라도'라고 하는 강단을 가져야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작품 발단 부분에 원봉과 차혁이 바둑 두는 장면이 나오는 데 이 부분이 매우 상징적이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길이 막혀 있는 현실은 마치 바둑판에서 바둑알을 놓을 자리가 없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없는 길을 찾으려다 보니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맹목적 의지를 다질 수밖에 없다. 당시 지식인 청년들의 절망 의식을 엿볼 수 있다.최원봉 : 넓은 세상에 길 없을까봐. 넓은 세상에 길 없을까봐.(놓는다) 넓은 세상에......차혁 : (웃으며)길만 찾지만 하는 수가 있니. 다 죽어가는 놈이 (놓는다)최원봉 :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놓는다)그러고 보면 최원봉의 신경 쇠약증이라는 정신적 파탄도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것이 원인임도 알 수 있게 된다. 반봉건의 기치를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동학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혈연적, 시대적 과제였는데 이를 실현하기엔 너무 열악한 조건 속에 놓여 있기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산돼지'이지만 무기력하고 답답하게 지내다 신경 쇠약증에 걸린 '집돼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최원봉 : 천만에, 걱정마세요. 이것 봐요. 혁이는 산돼지도 못되고 집돼지예요. 그러니까 더욱 탈이지요. (웃으며) 그런데 어머니 대답 좀 하세요. 처음에는 그 집돼지를 미워해서 그리 떼 버리려고 애를 쓰더니 요새 와서는 왜 또 그리 가까이 하려고 애쓰시오? 아 대답 좀 해 보세요. 혹은 집돼지가 진화해서 들돼지가 되는 모양이요? 진화란 말을 아시오, 진보한단 말예요. 그러면 더 이상하지, 집돼지가 들돼지로, 들돼지가 집돼지로 진화하는 법은 있지만 집돼지가 들돼지로 퇴화하는 수가 있어요? 한번 집돼지가 되어서 구정물 얻어 먹기 시작하면 영영 집돼지로밖에 못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시종이 변해져요. 왜 아무말도 없어요. 대답 좀 해보세요. 어머니는 내 가슴이야 하시잠, 내 가슴은 어떤 곡절을 몰라서 더 아파 못 견디겠어요.
로비(Lobby)활동에 대해1. 이익집단과 시민사회엄격한 분석 기준을 세운다면 압력 단체와 이익 집단은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익 집단을 기본으로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 사회(civil society)를 검토하고자 한다.개방 사회의 민주 정치는 시민 사회의 정치 참여와 간섭을 전제로 한다. 시민 사회는 국가 사회와 개인 사회 내지, 가족 사회의 중간에 다리를 놓아주는 가교그룹(bridge groups)으로서 일명 비정부단체(NGO){) Seyon Brown, "Building the World polity : The Role of the NGOs," a paper presented at the 1999 Seoul International Conference of NGOs, October 10-16, 1999, pp. 1-12라고 부른다.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모든 시민 사회에 포함되는 시민단체(NGO)들의 존재 목적은 정치 과정에 참여하여 소속 그룹의 가치 또는 이익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로비(Lobby)를 하는 것이다.이처럼 이익 집단 및 공익 집단 등은 압력 단체로서 시민 사회를 이루며,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을 이루게 된다. 이들은 그들의 영향력 행사 과정에서 특히 의회 및 의원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압력 단체와 이익 집단은 그들의 로비 활동을 통하여 의회와 의원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의회와 의원은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자신을 밀어준 계층 또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국가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태반의 의회와 의원은 결과적으로 어느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 또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서비스를 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로비를 하는 개인 또는 그룹을 로비스트(lobbyists)라고 하며, 로비스트는 압력단체의 이익활동을 대행하는 일을 전문직업으로 하고 있다.미국 이외에도 영국을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및 캐나다 등의 국가들은 대부분게 되며 크게는 정권과 유착된 정치비리와 부패정치로 이어진다 수서비리사건 과 한보비리사건 그리고 최근의 옷로비사건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따라서 실제 로비 활동이 합법화된 미국의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올바른 로비의 활동과 그 의의를 알아보는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뒤에서부터는 이런 점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미국의 대표적인 주요 대기업과 무역 협회 그리고 노동 조합과 지식 산업계는 하나도 빼지 않고 워싱턴 DC에 전문 로비스트를 두고 있다. 특히 노동 조합은 조합비 중에서 관비장학금 형식으로 일년을 4분기로 나누어 매번 80여명의 의회 인턴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노조는 견학과 실습을 통해 의회를 안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하고 있다.{) Mathew Tully, "Union Program Fields Blue-color Washington Lobbyists," CQ Daily Monitor, Narch 29, 1999,p. 7.로비 또는 로비활동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뜻을 고무시키기 위하여 시민 또는 집단스스로가 정부 정책 결정자에게 직접 접근하지 않고 대행자로 하여금 그 일을 하는 것 의 의미한다.{) Lester W Milbrath, The Washington Lobbyists(Cicago : Rand McNally, 1963), p. 8.그러므로, 의회와 로비스트와의 관계는 사실상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구조적 연계성이 있다. 조직적 이익 집단과 기타 민간 단체들이 의회에 접근하는 이유는 국민 청원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떤 국민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첫째, 법정에서 소송으로 해결하는 방법둘째,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공정한 법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하는 관계법을 개정토록 입법부에 졸라대는 일.셋째, 행정부의 법 집행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되어도 일차적으로 의회에 가서 압력을 가하는 방식.두 번째 세 번째 방식적인 봉사를 하게 된다. 의원의 정치 생명은 피선(被選)에 있기 때문에 의원은 이들 로비스트의 물주(이익집단)들을 동원하여 선거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들 이익 집단과 압력 단체가 원하는 법을 제정하거나 원하지 않는 법의 의회 통과를 저지할 때마다 의원과 로비스트간의 상부상조하는 고객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2. 미국의 로비정치1998년 1월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워싱턴 정가에 등록된 로비스트 단체는 총 14,912 개라 하고, 1998년 6월을 기준 하여 워싱턴 DC에서 등록된 로비스트는 약 20,500명이라고 한다.{) Francesca Contiguaglia, "GAO Finds That Lobbyist Registration Has Soared," Roll Call, May 14, 1998, p. A20.이토록 워싱턴 로비스트는 해마다 늘고 있다.미국의 로비가 제도적으로 안착하게 된 배경에는 헌법 정신에서 유래된 원칙적인 국민권에 해당하는 문제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1791년에 제정된 개정헌법 제1조의 국민청원권 (petition the government for redress of grievances)은 오늘의 로비정치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로부터 그룹정치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이익집단과 압력단체, 그리고 기타 시민 단체 등이 이루는 시민 사회가 이른바 제 4부 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하지만 로비제도로 인한 갖가지 시대적, 사회적 부작용이 대두되자 새로운 로비법의 개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때 발생된 것이 1995년의 로비공개법"(Public Disclosure Act)이었다. 한국도 언젠가는 로비법의 제정이 불가피한 시대가 불가피한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하며 미국의 경험을 검토하기로 한다.1945년의 로비규제법의 주 핵심은 로비 행위가 가급적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전에 하원과 상원에 등록하도록 하는 강제 규정을 두었고 다음으로는 1년을 4분기로 나 firms)들이 그들의 주목적이 의회의 입법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데 있지 않다면서 등록을 회피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의 재심 결정은 의원을 직접 접촉하는 행위만으로도 로비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석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의원을 직접 콘택트(contact)하지 않고 유권자(대중)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회에 로비행위를 하는 풀뿌리 로비 를 제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결국 1995년에 새롭게 제정된 로비공개법 은 로비 활동을 견제하는 내용의 로비개혁을 단행한 것이다.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November 30, 1995, p. A14.지가 요약한 1995년의 로비공개법 을 보면 다음과 같다.1. 로비스트란 누구든지 그의 업무 중 20% 이상을 보수를 받는 로비활동에 소비하는 자를 의미한다.2. 로비 행위란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작업 및 연구를 포함하여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또는 정책 결정 자와 그의 스태프에게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3. 로비스트는 의회에 등록해야 한다. 로비스트는 그의 고객의 이름과 로비 내용의 이슈 등을 공개하여야 하 며, 로비 서비스에 대하여 대략 얼마 정도의 서비스료를 수수하는가를 밝혀야 한다.4. 로비스트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로비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여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최상 50,000불까지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5. 국세청 규정 제 501조 4항에 의해 비영리단체인 경우 로비는 직접적인 연방정부 지원금을 수수할 수 없다.6. 전직이 미국연방정부 무역대표 또는 부대표이었으면 평생동안 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외국로비스트 가 될 수 없다.결과적으로 95년에 제정된 로비공개법 은 로비를 상당 수준 규제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로비활동을 제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새로운 로비법은 개인이나 기업체가 의회와 고위 행정 부서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으며. 로비스트의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로비법ining A Dim Light," Legal Times, December 21, 1998, p. 26.주지하는 바대로 로비스트와 의원은 상부상조의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3. 로비의 유형1) 직접 로비미국의 로비 정치를 중심으로 직접로비 (direct lobbying)는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아직도 널리 쓰이는 효과적인 로비형태이다.직접 로비는 로비스트가 고객의 청탁 안건을 직접 특정 의원 또는 의회 유관 전문위원에게 가지고 가서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로비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로비를 하는 측과, 로비를 받아주는 측 쌍방이 모두 인지도와 영향력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며, 서로간의 친분이 두터우면 더욱 큰 도움이 된다.직접로비에 포함되는 로비활동은 다양하다. 로비활동의 성격상 모두를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이를 분류하면 대가 다음의 다섯가지로 구분된다.첫째, 커미티의 상황과 커미티 공청회 증언 내용을 모니터링한다둘째, 고객에게 의회의 결정 상황을 설명하고 의원에게는 고객의 관심 사항을 설명한다.셋째, 의원에게 유익하고 관심이 있는 입법안을 작성해 준다.넷째, 의원에게 커미티에서 할 질문서나 기타 연설문 초안을 만들어 준다.다섯째, 의원의 선거 운동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한다.이렇듯, 직접 로비에는 로비스트들이 마치 의원의 개인 스태프처럼 몸으로 봉사하면서 의원에게 접근하여 로비활동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워싱턴 DC의 직접 로비스트들과 의원의 보좌관들의 관계는 친근한 동료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로비스트는 단순한 이익 집단의 고용원이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가 생동하도록 하는 동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Sam Walker, "Who's in and Who's out Among Capitol Lobbyists," Christian Science Monitor, November 8, 1995, p.32) 풀뿌리 로비와 의회로비미국의 경우 풀뿌리 로비(grass-roots lob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