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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E. P. Thompson의 경험적 연구와 변증법적 분석방법에 대한 고찰
    머리말역사학자들은 어떤 사건이나 인간의 행동을 다룰 때 어떠한 흐름 속에서 그것이 존재했는지 그 맥락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는데, 똑같이 맥락을 중요시한다고 해도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연구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와 영웅’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의문 - ‘이를테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와 같은 의문- 은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많이 가져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을 강조하거나, 일방적인 방향의 영향만을 답으로 제시한다면, 그 각각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역사적 현상의 동인이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모범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열린 자세를 견지하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런 면에서 기존에 역사학 방법론의 주류를 형성하였던 스탈린 시대의 맑스주의 역사학에 의문을 제기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보다 균형적인 관점을 제시한, 1950년대 중엽 이래 영국에서 나타난 신사회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기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은 에드워드 파머 톰슨(Edward Palmer Thompson)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의 경험적 연구와 이론적 비판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 들어가면서학문이란 대화를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진실이 아닌 것들을 배제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선생님께서 정의를 내려주셨다. 학문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 얘기하느냐에 따라서 무수히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겠지만 선생님의 표현은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알아낸 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물론 이에는 타인이 알아낸 것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진실에 접근해간다는 말은 바꿔 말교재에 ‘언어와 인식의 관계’, ‘언어의 본질적 한계’ 등에 대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해 오던 것이 다른 사람의 체계적인 설명에 의해 확인될 때의 느낌이란, 내가 했던 생각에 대해 인정받는 느낌과 통하는 것 같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언어를 사용함으로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학문 활동도 가능해 진 것인데, 내가 앞에서 학문에 대해 언급한 바에 의하면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학문의 필요성이 생긴 꼴이 된다. 그러나 ‘역설’이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진실을 담고 있음’을 의미하는 만큼 방금 앞에서 말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언어의 장벽’이라 하면 보통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언어가 다른 것을 많이 말하겠지만, 나는 종종 각 개인의 서로 다른 역사적?경험적 언어 사용으로 인해 형성된, 저마다의 상이한 언어체계로 인한 언어의 장벽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한계 때문에라도 더욱 우리는 자신의 고유분야에 대해서만 알아서는 안 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지식의 창과 마음의 문을 열고 각 분야에서 이루어내는 전진(前進)을 공유하며 그에 참여하려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프랑스의 아날학파가 역사학 연구에 있어서 취했던 입장-그대로 실행했는가는 논외로 돌리고-에 동의한다. 인간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라면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논문의 머리말에서 제시하신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관계에 대한 견해들은 generalist와 specialist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추구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혹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들은 양자택일을 문제 삼을만한 대립 항은 아니다. 동일한 시점에서 비교를 한다면 당연히 specialist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둘을 절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specialist를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고 한다면, gene 폭넓은 독자층에게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역사학을 전공하기 이전에 20세기 전반의 가장 탁월한 비평가로 알려진 F. R. Leavis로부터 문학 지도를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2. 경험과 언어와 의식?윌리엄 모리스?에서 톰슨이 개진하는 논지는 모리스가 맑스를 통하지 않고서 낭만주의 전통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부르주아 문화의 패배주의를 돌파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문턱에 다다른다는 것이라고 한다.) 모리스가 스스로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늘 도덕적 결단을 내리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의 시대와 싸우면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한다는 점을 모리스의 경험을 들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경험의 확장을 통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아니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한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요컨대 모리스는 낭만주의와 맑스주의를 결합한 ‘공산주의적 유토피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 자신이 낭만주의를 앞서와 같이 부정하는 마당에, 어떻게 두 전통이 공존가능한가?)위의 말은 맑스 자신이 낭만주의를 부정했기 때문에 낭만주의와 맑스주의의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톰슨이 그 둘의 의미를 변용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톰슨은 맑스주의를 보는 입장을 교리, 방법, 유산 그리고 전통으로 분류하고 맑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려고 노력)한 것이지 그의 이론적 토대가 맑스주의 자체였던 것은 아니다.맑스의 이론에 대해서는 지난 여름학기 ‘마르크스 경제학’을 수강하면서 아주 조금 알게 되었는데, 나의 사고의 근간을 상당부분 맑스의 이론에서 발견하기도 했고 또 비판할 부분도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맑스의 방대한 이론에 대해서 여전히 거의 알지 못하는데, 내가 생각하던 바를 맑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거나 하면 나의 의사가 채 전달되기 이전에 상대는 맑스주의를 떠올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실을 정당화시키는 이에게 나의 이상을 얘기하면 마치 나를 낭만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속해 있었고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검토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이상하게 비추어지기까지 한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서 논하면 맑시즘, 사회주의를 떠올리는 것은 분명 편견에 근거한 사고일 것이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뿐만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국가가 선택한 모든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미 어느 정도 왜곡되어 있고 나의 생각은 그에 의해 상당부분 지배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1학년 때 ‘현대사회와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 생각했던 부분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국가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는데, 당시 한동안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국가와 사회가 부여하는 어떤 이미지를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철저히 그 안에서 사고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북한의 예를 들어주셨던 것 같은데, 국가 원수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요구되는 북한, 또 그에 잘 복종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그러한 면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이와 같이 경험에 의해 우리의 언어와 인식 및 의식은 영향 받게 되는데, 종종 그 영향관계는 ‘왜곡’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듯 하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즉 현대 사회에서 전혀 문제점을 못 느끼는 -못 느끼는 것인지 문제를 느끼는 자신을 문제화하는 것인지-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자본주의 이론도 맑스의 이론도 일면 옳고 일면 그르다고 생각하고 개선 및 보완을 통해 상호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을 거라 본다. 우리는 그 둘에서 좋은 점들을 취하 선택하면 될 뿐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무조건적으로 그에 따라야 하는 건 아닌 것이다.2.3.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 변증법적 관계톰슨에 따르자면 경험은,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사이에 있는 필수적인 중간 항(Peter Schottler)이다. 사회적 존재가 경험을 통해 면사무소에서 빌려 읽을 수 있어서 그나마 중고생 필독서 위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의 절대적인 양은 너무 빈약하지만, 나는 ‘배울 수 없는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통해서 접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접하는 것들이 모두 텍스트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텍스트 이외의 것들(경험하지 못한 것들)에까지도 나의 사고가 확장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는데 이는 참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그것을 좋게 승화시키느냐 나쁜 쪽으로 전락시키느냐는 사용 주체에게 달려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유추’라는 좋은 도구도 잘못 사용하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유추와 오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대립 항에 있으면서도 그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다.톰슨은 “나는 계급이라는 말을 서로 다르고 언뜻 보기에 관계없는 수많은 사건을, 경험이라는 원료와 또한 의식 속에서 통합시키는 역사적 현상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경험을 ‘원료’라고 하다니 그 표현의 적절함에 놀랐다. 똑같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도 양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경험 자체보다도 그 경험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가 하는 인간의 선택에 따라 그 경험의 결과, 그리고 그 경험 자체의 의미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계급의식의 등장 방식을 결정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톰슨은 이렇게 말한다.[계급]경험이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계급의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유사한 직업 집단의 반응에서 어떤 논리를 찾아낼 수는 있지만, 어떠한 법칙도 단언할 수 없다. 계급의 의식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등장하지만, 꼭 같은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거리감 유지의 능력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거리감 유지의 능력이란 자신의 경험에 따른 분노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달리 말해 경험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함이다. 이
    인문/어학| 2005.12.15| 7페이지| 1,000원| 조회(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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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유가와 도가의 (교화에 대한) 입장 차이
    -유가와 도가의 입장 차이-Q. 중국의 오지에는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밖으로 여행하지도 않고, 어떠한 문명의 이기의 혜택도 받지 않은 채 교육의 기회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또한 중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인가? 이들의 삶의 양식에 대해 유가적 입장과 도가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이 둘 중 하나의 입장을 택해, 이들의 삶에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지 논하시오.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서의 유가적 입장과 도가적 입장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공자의 정명론과 그에 상반되는 노자의 무, 무명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공자가 말한 정명이란 각자의 지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으로,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서인(庶人), 모두가 자기의 직책에 맞게 모든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가 각자 자기의 명분을 지키고 침범하지 않으면 사회의 질서는 확립된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공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사실판단을 인정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상대주의적 입장과 대비되는 면이 있다. 유가는 봉건국가였던 주 나라의 문화를 계승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국가라는 개념은 봉건제도 하에서 천자가 나누어 주는 봉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천자가 직?간접적으로 통치하는 이 봉토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공동체-국가-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유가적 입장에서는 중국의 오지에 사는 ‘문명권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중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중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들에게 이름에 맞는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려 할 것이다. 또한 유가에서는 인격적으로 완벽해지고 학문이 완성된, 군자(君子)의 도를 넘어선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본다. 공자는 당시 사회가 혼란한 이유를 도덕성에서 찾았으며, 어지러움, 아노미 상태를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예(禮)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도덕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학문)에 의해서 함양되는 것이라 말했는데, 이와 같이 유가에서는 ‘배움’이 매우 강조되기 때문에,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도 없이 사는 이들이 인간다움을 발휘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이와 관련해 도가에서는 유가, 특히 맹자가 주장한 유(有), 규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존재원리로서의 무(無)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道)라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 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도가의 기본 입장은 도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것과 분별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상대적인 것은 다른 것과의 의존 관계에서 성립하므로 영원할 수도 없고 따라서 도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도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규범과 질서 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언어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진정한 사실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 공동체’라는 개념과 그것의 구분에 대해서도 객관적,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구성원들 스스로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가에서의 이상적인 삶은 구분 짓지 않고 사는 삶이며, 인위조작(人僞造作)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전개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를 가장 큰 도라 여기며, 무욕과 허무의 방법 등 부정적 사변법을 통하여 자연대도(自然大道)에 순응하는 삶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실제적으로 중국 사람들과 같은 양식의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을 단지 이들이 ‘중국’의 오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중국 사람으로서의 삶의 양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부정된다. 또한 노자는 “인간의 모든 근심과 걱정, 국가 사회의 혼란과 분쟁은, 말하자면 지(智)를 존중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인위적인 학습을 거부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 ”근본으로 되돌아가 애초의 상태를 회복(返本復初)” 할 것을 주장하여, 유가적인 “學”과 “思”의 방법으로는 본성을 회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학습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이러한 입장에서는 흔히 우리가 “문명의 ‘혜택’과 교육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을 오히려 환영하고, 이들 삶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힘쓰려 할 것이다.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와 인간중심적 사상이 유가의 본질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러한 유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볼까 한다.논어 선진편에서 공자는 “사람의 천성은 어떤 사람이라도 거의가 비슷한 것이다. 단지 그 후의 습관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립된 땅에서 세상과 유리된 삶을 사는 이들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선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물론 동일한 선호를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물론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양식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선택의 여지없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문화의 상대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방관적이며 무관심한 처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그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보호 조처를 취해가는 입장에 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인 것이다. 국가가 개인이 원치 않는데도 도움 받기를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만, 기회는 동등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공자는 “배움이란 도를 배우는 것이며, 가르침이란 도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스림이란 도를 행하는 것이므로 이 셋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았다. 나는 진리에 있어서만큼은 ‘모르는 것이 낫다’가 아닌 ‘아는 것이 힘이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침이 해가 되는 상황이란 가르침의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가 정당하지 않아 피지배자의 무지함이 도움이 되는 경우일 것이다. 즉,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와 가르침을 베푸는 자의 도덕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현실에서 종종 이러한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교육’만 강조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무엇이 도, 진리이며, 가르침을 베풀려는 자가 가진 지식이 정당한 것인가 등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무엇을, 어떠한 정당성을 근거로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축소시켜서 볼 때 우리가 ‘옳은 것’만을 배우려고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지 않을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통해서도, 그 반대의 경우에도, 우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다. 친구 셋이 같이 있으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항상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배움’이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배우기도 하고 자신이 가르치기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문이란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아니면 보다 소극적으로 진리가 아닌 것을 가려내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다. 조금이라도 더 배운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가서 배우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결코 상대방의 지식이나 문화, 상대방의 고유의 것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이는 상호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발달과 인류의 지적 진보와 함께 우리는 점점 더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되었고 오늘날은 교육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동등한 기회’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을 더해 가고 있다.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될 때 나타난 여러 현상들 중 하나가 바로 ‘아동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이었다. 어린아이를 그냥 자연스럽게 두어야 가장 바람직하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교육이 올바른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그리고 어떠한 상대에게든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각 상황과 대상에 따라 가르침의 내용과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오지에 사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 나름의 문화를 보존해야 세계적으로 문화의 다양성이 보존될 수 있다거나 그들은 그러한 삶으로부터 더 큰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원래부터 그러한 삶의 양식만 경험해 보았으므로, 그리고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고립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일단은 그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인문/어학| 2005.12.15| 3페이지| 1,000원| 조회(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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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스 경제학]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평가B괜찮아요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읽고-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고등학생 때 들은 이후로 나는 절대로 후자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읽으면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그야말로 ‘사는 대로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그들이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이 오로지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인간의 본능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맡긴 역사의 결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자본가적’인 사람이기를 거부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뿌리를 알게 된 듯해서 기쁘면서도 슬펐다. 어떻게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데올로기에 대해 나는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사고?지각 능력에는 정말 한계가 많아 자신이 만들어 놓은, 또는 태어날 때부터 속해 있던 틀 안에서 벗어나보기 전에는 그 틀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나마 몸소 체험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했던 맑스가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대상을 해석하려고만 했지, 대상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제는 철학자들도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에는 정약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수차례 모함을 받아 유배생활을 하게 된 억울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일, 아니 후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잘 알았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묵묵히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맑스 당대에는 맑스가 가지고 있던 사상?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점을 감안할 때 맑스가 한 일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 범위, 아니 그 이상의 일이었을 것이다. 맑스의 기본과제는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한계를 해명하는 것)이었다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더군다나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그리고 맑스의 말대로라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데, 사회의 발전 단계로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어느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더 좋지 않은 효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를 볼 때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 체제하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를 모든 주변 환경과 독립시켜서 사고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수없이 언급 했을, 맑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다른 삶의 방식 또는 원리’에 내가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다음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째 방법은 ‘자본주의적으로 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개인의 전문화, 특수화는 결코 개인의 천부적인 능력이나 적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학생들은 진로를 결정할 때 직업에 대한 사회적 ‘서열’, ‘장래성’ 등만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개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이 돈과 관련된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 사회가 낳은 많은 문제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제를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보존하고 단합하려는 본능’과 ‘파괴하고 죽이려는 본능’의 두 가지 형태의 본능밖에 없으니, ‘인간의 공격적인 성향을 없애려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해버릴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사회, 타인 등으로부터) 정신적인 자유까지 얻게 되고 의식이 한층 성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는 오늘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19c 중를 딱 한 가지의 고유한 진리, 이치를 상황에 따라 그 원리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고 할 때 "아는 것이 힘이다"가 원리이고, 이치에 따라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기디의 말처럼 ‘교육이 오히려 해가 되는’ 상황이란 그 교육이 잘못되었거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사회가 잘못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맑스가 설파하려했던 것은 일신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지극히 사실적인 것이었으며 윤리적으로 볼 때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부자들은 ‘이윤’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들을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어쩌면 기계보다 더 못한 존재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출현한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기 이전에, 양심적?윤리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아도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적’인 자본가들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과 인간을 착취의 대상, 이윤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것이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모든 사람은 정의의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은 자기 방식으로 자기의 이익을 완전히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고, 자기 공업과 자본으로 다른 사람이나 법인과 경쟁할 수 있다.”는 애덤스미스의 말, 그 외에도 여러 중농주의자들의 저작)에서 그들 행위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했다. 설령 그들의 행위가 정의의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지는 않았으며, 정의의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의 안위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독한 사람일수록 부자가 되기 쉬운 것 같다. 즉 자본가다운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자본가의 지위에서 별로 오래 못 견딜 것이다(먼저는 스스로의 마음이 그것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비교우위에 따른 세계무역을 생각해보자. 기술수준도 상이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유롭게 경쟁한다면, 이제 전 세계적 차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그야말로 회복 불가능한 극도의 공황 상태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양상들이 과거에도 다 있었고 그 형태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발생 초기에만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과거 부자들이 하던 생각, 말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실로 어떤 학문이든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 어떤 역사적 업적에 대한 평가도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고 그러한 사고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있으며, 일정기간동안, 혹은 어쩌면 평생 동안 그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살아가게 된다. 선택이나 그 어떤 회의(懷疑)과정도 없이 우리는 이미 현 사회체제에 종속된 존재였다. 철저히 세뇌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이 세뇌되어 있음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것이 원래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것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언어가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해충’이라 이름 지은 생명체는 철저히 인간을 중심하여 지어진 이름일 뿐이다. 그 곤충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해충’이라 이름 지은 이상 우리는 그것을 해로운 것으로 느낄 가능성이 많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었다. 어렸을 땐 ‘공산당’은 뿔 달리고 도깨비 같이 생긴 줄 알았다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어른들이 조금 무서운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범생’이 정말 모범생인 줄 알았고, ‘비주류’라는 것은 ‘주류’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파악했었던 듯 하다. 착하고 근면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줄 알았고, 가난한 사람은 들이 자본주의적인 사회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사회화 과정에 불과한 것인 듯 하다.개별적 수요의 합을 사회적 수요라고 파악하는 신고전학파의 이론에 대한 반론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사회가 개인에게 특정한 패턴을 강요하고, 개인은 그 안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갖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는 소비?수요에 대한 내용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비단 소비에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위 명제는 현 사회의 문제 해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부정적인 요소가 될 여지가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소극적인 개인들의 정당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알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아도 ‘사회가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 살아야지, 별 수 있나’ 하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심지어는 ‘억울하면 돈 벌어서 자본가가 되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반 친구가 다수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것도 공범과 같다고 배웠었는데, 현실에서는 그 가르침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잘못되었다면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도 잘못된 궤도에 맞춰서 살아가야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상한 소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 간에는 일방적인 방향으로의 영향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사회의 특정 패턴 안에서 제한된 자율성을 갖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들의 행동방식에 따라 사회 또한 변화한다. 맑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 혁명을 통한 사회 변혁을 제시했지만 나는 개인들 하나하나가 바뀐다면 사회 또한 바뀔 거라고, 그리고 그 방법이 가장 온건하면서도 적극적인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할 때에도 제도나 관습이 나중에 바뀌었고,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 활동 변화가 앞섰다. 사회가 먼저 바뀐 것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욕구와 그들의 행동에 따라서 변한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가르
    경영/경제| 2005.08.20| 5페이지| 1,000원| 조회(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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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작문] 영문 essay
    1. What's the consistency?Have you thought about a teaching method of Confucius?You know, Confucius answered differently,Whenever each disciple asked questions.Why did he?He taught his disciples based on ability.Each disciple has various levels and personalities.What's your opinion about consistency? It says when parents teach their children, they should speak with one voice. But that does not means they should treat their children the same way at the whole situation. Just that means they should treat their children the same way only at the same situation.I don't like a tutor who always teach their different students as the same way.I admire Confucius at this point.2. Change yourself!How could express this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in English?"My present self is different from my former(yesterday) self.", all right?It has been my favorite motto.Because the same as everybody else does, i had some personality i didn't like and i had stereotype which had been conformed by environments i grew uthe world around you will be changed."3. Let's take it one step at a time.Thesedays i have a lot of things to do. Because i'm attending summer semester, 2 subjects.Next week, there is an upcoming exam again(last week, i took chinese mid-term exam).Every school hours, teacher gives us homework.I have to study english, especially during this vacation.(Surely, english study should be continued eternally.)Aand now i'm acting as an et-hunter.Moreover soon i'll have a part-time job; extracurricular activities.Next month, i have to study my special subject, economics.Last night i wanted to cry out at this thought.But i'm not crying."Let's take it one step at a time."4. What kind of hobbies do you like?My hobbies are writing some kinds of composition, dancing to music, going to the movies, swimming, hiking, singing songs, reading books. And after i was selected as a et-hunter, the categories of my hobbies are being added.Such as, visiting ET-house, writing not only in english but in korean, coas been ruined a hundred times.Owing to an exam(in my case, unless i exercise everyday, i gain weight. maybe, it because i have done exercise, since i was a middle school student. it is just like choice between exercise and weight), a meeting, etc.After repeated, intermittent and continual trial, i have practically become an expert in losing weight.For two weeks, from starting taking an exercise, there is no change in weight on the weight scale. Because during that time exercising contributes to the development of the muscles.That is, fat is changed into muscle.You'd better not check your weight during that term.But, since then you can lose weight with increasing speed, if your steady exercise exists. You begin to like it after a while. And afterwards you'll enjoy exercising. Nowadays i can't bear without daily exercising.Whenever i recommend some sports to one of my friends, i tell her."At first you can feel tired more, but soon working out restores your spirits."I think that the moression more and more.Now I'm performing a service for our community. What sort of service?Exactly tutoring how to write an essay.And I've got to know "teaching is learning".Confidence in writing is beeing built gradually.It makes me feel happy.If there is anything you want to be getting on well, try to teach somebody that.Then you'll get it.7. Do you have a planner?Hello, guys~How was your today? It was sizzling hot.Anyway, do you know the girl, 금나나, who was selected as Miss Korea in 2002. She is the same age as me. As you know, she wrote a book, "Either you or I can do it", and the story of that book was about her life. While I was reading it, I was really touched by her challenging, positive thinking and a habit of planning.She said she was not a genius, but she kept at it. Though she wasn't good at multiplying and dividing when she was a primary schoolgirl, she acquired a taste for mathematics because from her childhood, her mother used to spend much time solving complicate math probabout subsequent events related to her. Once she made up her mind to do something, she went at it full tilt.After reading her book, I bought a Franklin planner. A "planner" is different from a diary, more comprehensive.After her example, I am trying to make a plan before doing anything. It seems to be a very efficient way to achieve my goal.____________________________That is a great story, and she is very right. Anyone can accomplish anything, if they set their minds to it. Set yourself a goal and a plan to accomplish that goal, and never give up. Maybe you want to lose weight, or learn English, or save money. Whatever that goal is, make a plan about how you are going to do it, and STICK to your plan. Sometimes you might stumble and stray away from your plan, but that does not mean you should quit. Get back onto your plan and NEVER GIVE UP. - Mike8. Imbalance breeds another imbalance.Though many people have been trying to find answersfor educational matters, but they can't find way ou?
    인문/어학| 2005.07.19| 3페이지| 1,500원| 조회(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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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론] 오르피즘
    1. 서론20세기에 들어 현대미술은 다양한 모색과 실험 속에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재현으로서의 미술은 점차 의심받게 되고, 비가시성을 표현하는 문제, 회화의 조형요소에 대한 순수한 성찰 등의 작업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미적 자율성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어떤 면에서 이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의 우월함을 천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조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데,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추상’의 문턱을 넘는다. 이를테면,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에 의해 도입된 본질적인 추상은, 곧 그와 가까운 동료들을 통해 멀리 퍼지게 된다.1911년부터 1914년까지 약 4년간 파리에서 일어났던 오르피즘orphism은 ‘순수한’ 회화를 추구한 운동이었다. 그들은 물체와 인간의 형상들을 선과 색채를 이용해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정적이고 제한적인 세계에 역동성을 부과하려고 했다. 오르피즘은 입체파 운동과 여러 모로 맞닿아 있었는데, 색채에 둔감했던―혹은, 둔감하려고 자의적으로 노력했던― 입체파와는 달리, 오르피즘에서 색채의 리듬은 순수한 단계에 도달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처럼 여겨졌다. 가령 오르피즘에 있어 보색대비는 운동과 멈춤을 표현하는 요소로, 이는 입체파가 추구했던 다 시점에 해당하는 것이다.이 글에서는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프랑크 쿠프카Frank Kupka 등 오르피즘을 이끌었던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오르피즘을 규명할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는 입체파와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순수한’ 회화를 추구했던 오르피즘이 20세기 회화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2. 본론가. 개념 및 성격오르피즘은 1911년-14년 초 파리에서 발생한 순수주의 회화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시인 아폴리네르가 ‘인식할 수 있는 주제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던 화가들의 무리를 정의하기 위해 오르페우스적 큐비즘(Orphic Cub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 회화양식을 발달시키면서 창작행위를 통해 이 같은 의식과 더욱 심오하게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의식의 내부에 몰입함으로서 그들은 외부세계의 징후에 무관심해 졌다.나. 배경오르피즘 운동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과 배경은 용어들이 어려우니 여기서 좀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들은 동양 신비주의와 神智學(Theosophy)), 현대과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대의 예술들 속에서 인본주의에 대한 거부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는 그 시대의 과학적 발전들과 많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상호 긴밀한 영향관계에 있고 또 이외에도 다양한 변수들이 있을 것이므로 딱히 무엇이 무엇에 영향을 주었다고 직선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순서와 상관없이 부분적으로나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고,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갔다). 물질에 대한 분자식 이론과 시간 공간 그리고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은 인간이 유일한 창조의 중심이며 절정이라는 이념을 바꾸어 놓으려는 오랜 작업을 완성시켰고 이러한 발견들에 대한 예술가들의 주된 반응은 인간의 고립성을 포기하고 모든 존재들 사이에 충만한 힘들 속에 융화되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예술 전반에서 인본주의에 대한 거부가 일어났고 이는 현대사회 내부의 변화로 가속화되는 경향이었다. 즉, 군중운동의 강화는 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문학적, 미술적 시도를 장려했고 이 모든 문화적 운동들이 개인적인 의지의 약소(弱小)화와 자신을 신비스러운 힘과 융화시킬 것을 지향했다. 오르피즘 화가들에게 있어 그들이 자신의 개별적인 의식을 넘겨주어 버리려고 했던 힘의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다. 쿠프카는 신비적 삶-힘에, 들로네와 레제는 현대생활의 역동성에, 피분화라는 기법을 사용했지만 오로지 색채의 탐구에만 전념하여 ‘청기사’운동) 에 참가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912년 [폭풍]지에서 아폴리네르는 오르피즘을 언급함으로써 청기사파에게 구성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면이 있는 국제적 예술운동과 자기 동일시 되도록 했다. 그 중에서도 칸딘스키는 물질세계에 등을 돌리고 정신세계로 예술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물질 발달에 비중을 두어 생긴 불균형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미술의 시각적 요소를 인간의 내부의 삶과 직접 관련시키고자그림 나무가 있는 에펠탑, 1909했고, 추상을 통해서 예술가 내부의 정감적, 정신적 충동을 시각화하고 조율했다는 점에서 오르피즘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09년경의 에펠탑 연작에서 분석적 큐비즘의 영향을 보여 주지만 피카소나 브라크와는 달리 색채를 지양하지 않는다. 300m에 이르는 거대한 탑을 장방형의 캔버스 안에 넣기 위해 탑을 해체하고 자르고 구부러뜨렸다. 열개의 시점과 15개의 원근법을 적용하는 등 들로네는 이 탑을 끌어안고 고심했지만 입체주의가 그랬듯 오랜 재현 규칙을 깨는데 그쳤다. 1910년 앙리루소는 “로베르는 에펠탑을 부수지 못할 걸세”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점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추상미술의 역사에 적용되어온 결정론과 아폴리네르가 내린 정의의 모호성 등으로 오르피즘은 결코 진지한 호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앞에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가 그의 그림을 보고 사용한 ‘순수한 그림’이라는 용어가 전적으로 비재현적 그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연주의적 구성 양식에 의존하지 않는 그 자체의 내부구조를 가진 그림을 의미했다. 들로네의 오르피즘은 채색체계를 이르며 ‘동시대비의 법칙'에 따라 빛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채색체계가 작품의 형태이자 주제가 된다. 이것은 우리의 지각 인식에 발맞추어 현대사회의 리듬을 표현하려는 비구상회화(원반, 1912~13)에 이른다. 들로네의그림 에펠탑, 1910그림에는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그가 생존하고 활동하고 있는 도시의 소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등을 동시에 동일 화면에 표현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큐비즘과 미래주의의 융합된 모습으로 매우 추상적인 경향을 띤 것이었다.) 화면은 직선과 곡선으로 분할하는 면으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유채색을그림 파리도시, 1910~12사용하여 표현하였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밝고 선명한 스펙트럼의 원색이 다채롭게 사용되었다. 그는 무한한 물체들과 사고?감흥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마음과 그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그림 Sun and Moon, 1913그림 블레리오에게 경의를, 1914 시리즈와 연작에서는 비구상 계열의 순수 색채 회화를 보여준다. 연작들이 그의 첫 비재현적 작품들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계기로 입체파의 물체에 근간을 둔 구조에서 손을 떼었다. 그림 8은 블레리오가 칼레와 루브르 해협을 비행기로 횡단한 지 5년 뒤에 제작한 그림으로, 자신이 몸담고 사는 시대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보기 드문 작품으로 꼽힌다. 나는 기계를 이용해서 삼차원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비행은 당대의 큰 관심사였다. 이 그림은 채색한 원형들을 모아놓고 이 원들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고 끊어지기도 하면서 시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동감을 발산한다. 이는 빛의 혼합, 빛의 탐조인데, 전통적인 원근법이 주는 깊이 대신에 움직이는 비행체를 중심으로 공간에 넓게 펼쳐지는 빛을 암시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펠탑, 비행기, 공군 조종사의 표지 등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회전하는 엔진 소리가 울려 우리 귀에 노래를 부르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 그는 보다 폭넓은 관객들을 상대로 한 그 림 속에서는 인식이 가능한 영상들을 쓰는 반면 앙데팡당전에 전시되었던 이 작품과 같은 추상적인 영상으로 존재의 무언의 상태를 탐구하였고 이런 것은 소수의 추종자들 즉 그의 친구들과 베를린에서 열린 작은 전시회에서 그가 파리사람들보다 더 호감을 주는 관객들에게만 보여주었다.그림 Rhythm sans Fin체주의에 접근하게 된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후에도 색채와 생동감을 중시하는 입체주의를 전개시켰다. 그림 12는 강력한 실재성을 띠는 야수파에 가깝다.그림 형태들의 대조, 1913레제는 현대적인 것의 정수가 범세계적인 역동성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역동성은 들로네의 조화와는 사뭇 다르게 힘과 힘 사이의 마찰이라는 표현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물체들의 특정성을 색채, 선과 색조의 파열적인 대조로 압도해 버렸다. 그는 들로네와 같이 정물화다운 제재 보다 자연과 인간생활의 큰 구도를 즐겨 다루면서 단순한 명암이나 명쾌한 색채로써 대상을 간명하게 나타냈고, 원통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기계문명의 다이내미즘과 명확성에 이끌려 그것을 반영한 다이내믹 큐비즘이라는 경지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레제는 이라는 작품에서 미래파적인 동시성을 표현하였다.(3) 쿠프카(Frantisek Kupka, 1871~ 1957)보헤미아 오포티노 출생의 체코 화가로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이다. 프라하와 빈의 미술학교)를 거쳐서 1895년 파리에 정착하여,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공부를 하였는데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공부한 것이 오르피즘 화가들 중 쿠프카가 가장 먼저 순수성에 도달하게 하는 요인이 된 듯하다. 그는 운동을 영상화하는데 집착했는데, 특히 회전적 운동들이 그의 초창기 작품들 속에서 점차 주도적 역할 담당해 나갔다. 형태적 배열의 내적인 의미는 다른 의미와 연상 작용을 끌어들였고 당시 시인)들의 영향으로 형태의 진화가 쿠프카에게는 자신의 내적 의식의 내용을 형태로서 재현하는 수단이 되었다.그림 Disks of Newton, 1911-12다른 오르피즘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도 인식할 수 있는 영상들을 재현하고 있었지만, 그 영상들을 역동적이고 비자연주의적인 구조들로 분쇄해버렸다. 그림 14에서 그는 완전히 비자연주의적 구성법을 이룩했다. 그는 모든 생명이 단 하나의 정수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본래의 단일체로 되돌아 갈 이른다.
    인문/어학| 2005.06.15| 8페이지| 1,500원| 조회(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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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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