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는 여자도 아니고.....중성적인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다."(극중 은호정의 전화통화 中)사회적으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던 영화인 '바람난 가족'은 카피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아내에게 절대 보여줘선 안될 영화". 영화를 보기 전에 궁금했다. 왜 아내에게 절대 보여줘선 안될영화인가.영화에서 보여지는 가정은 변호사인 남편과 무용수(아마도)인 아내, 입양된 아들. 어찌보면 외적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류층이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애인과의 성생활을 즐기고, 아내를 속이고 외도를 일삼는다. 여기서 바로 아내에게 보여줘선 알될 첫 번째 이유가 나타난다. 남편의 외도. 사회적으로 이미 신기할 것도 아닌, 그런 일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기혼의 70%가 애인이 있다고 대답할 정도로 이미 퍼져있지만, 어느 누구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춰진 그런 일이 영화에서 여과 없이 나타난다.아내인 호정은 남편의 외도에 가만히 상심해 있지 않는다. 그녀가 택한 일은 바로 '맞바람' 이다.이게 바로 아내에게 절대 보여줘선 안될 두 번째 이유인가 싶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서 아내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저 참고 또 참는 존재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아내는 남편의 외도에 비관하기보단 스스로 다른 상대를 찾아 똑같이 외도를 한다.스님이 고기 맛을 알면 사찰에 파리가 안 남는다라고...그저 참는 게 미덕인 아내들에게 이러한 호정의 모습은 아마도 충격일것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대리만족 역시 느꼈을 것이다. 그런 대리 만족이 현실로 오게 될까봐.. 남편들이 경계해야 할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나는 호정의 맞바람을 소위 말하는 '쿨(Cool)하다'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생각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혹자는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받아온 사회이다. 어느 나라건 그랬겠지만, 우리 나라의 유교 문화는 여성을 묶어두는 족쇠였을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갑자기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한순간에 문화가 개방되면서, 여성의 자유에 대한 문화는 성(性)문화에 촛점이 맞춰지고 자유로운 성관계가 마치 자유로운 여성의 척도인양 생각되어지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단편적이지 않은가.요즘 세상에 보수적이다, 꽉 막혔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개방적이게 되고, 각박해질수록 모든 문제의 해답은 바로 "가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방에 개방을 거듭해서 아무 상대하고나 잠자리를 하는, 그런 삶이 과연 만족스러울까. 최근 전문직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스와핑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었다. "성관계를 왜 꼭 부부간에만 해야 하는가"라고 그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쳤었다. 사람들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정말 멋진 삶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의 문제 제기는 옳다. 실제로 한국의 남성들은 영화의 표현대로 바람났다. 한국의 아내들 역시 바람난 여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바람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으로 해답을 찾고 있다. "당신은 아웃(Out)이야. 이 아이, 당신 아이 아냐"(호정의 마지막 대사 中)예전에 구성애씨의 강의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은 성폭행 발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한국의 성문화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구성애씨는 주장했다. 부부간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난 이러한 생각에 적극 공감한다. 한국의 성문제. 이것이 과연 소위 지식인들이 말한대로 성문화가 유교에 의해 꼭 꼭 숨겨지고, 억압되어졌던 것이 폭발한 것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저 하나의 문화 쇼크정도로 본다. 여성에대한, 그리고 성에 대한 억압은 어느 나라,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받아들이는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게 쿨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혼률이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이것은 문화 개방의 속도를 의식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라는 한국에서 십년 넘게 살아온 일본인이 쓴 책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한국의 여성은 결코 차별받고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한국의 여성은 남성을, 남편을 좌지 우지 하고 있다. 사회적 진출 또한 마찬가지 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의 인권 신장"을 외치는 소리가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는걸 보면, 수백년간 억압받아온 여성으로써의 피해의식이 크긴 컸나 싶기도 하다.
원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최근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다지 많은 공연을 보진 못했다. 최근에 본 몇몇 공연중 가장 인상깊었던 공연인 보리스에이프만 발레단의 러시안 헴릿을 소개 하고자 한다.2002년 12월 9일과 10일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러시아에서 새롭게 떠오른 이른바 '공인된'발레단인 보리스에이프만 발레단의 공연이 있었다. 9일에는 2001년 초연된 《러시안 헴릿을》10일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공연했다. 두 개의 공연을 다 보고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9일에 있었던 《러시안 헴릿》을 보게 되었다.먼저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공연 홍보를 위해 소개한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 대한 소개문을 보면『보리스 에이프만에 의해 1977년 창설된 에이프만 발레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러시아 고전댄스의 혁명을 이룬바 있다. 그의 창의력은 새로운 유형의 예술적 인물과 작품을 끊임없이 창출하며 실험정신을 추구하고 있다.에이프만 발레는 탄탄한 개인역량과 강렬하며 인상적인 안무로 철학적 소재와 드라마틱한 모티브를 유니크한 아방가르드로 승화시켜 관객들에게 영적 교감을 전해준다. 에이프만은 음악적 표현, 라이팅 효과, 무대배경 등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으로 모든 극적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에이프만 발레의 초기스타인 Alla Osipenko , John Ma rkovsky, Valery Mikhailovsky, and Valentina Morozova등에게 영감을 받은 에이프만은 새로운 예술적 표현에 대한 욕망으로 그의 초기 걸작(Two Voices, Boomerang, The Idiot, Crazy Day, Twelfth Night, The Duel,and The Master and Margarita)등을 창작하게 된다. A strong corps de ballet 역시 이시기에 구성된 것이다.Igor Markov, Albert Galichanin, Vera Arbuzova, Yelena Kuzmina, Yuri Ananyan 등의 현재의 솔로이스트들은 이러한 에이프만의 창의적 예술성의 산물이기도 하다.결성 후 러시아 공연을 시작한 에이프만은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얼마 되지않아 인민예술(Soviet art)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압력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초기 10년 동안 에이프만은 혹독한 정치상황으로 일체의 외국공연이 불가능하였으나 1988년 파리의 the Champs Elysees Theatre에서 폭발적 호응을 받고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순회공연을 하게된다.1998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20주년 기념공연을 마친 후 에이프만 발레단은 러시아 최고의 타이틀인 "Academic Theater, 를 부여 받는다. 그 해 1월이 끝나기 전 에이프만은 뉴욕시티센터 초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볼쇼이나 키로프와 같은 러시아의 전통발레에익숙했던 뉴욕관객에게 충격과 전율을 안겨주었다.』사실 공연 보는걸 좋아한다곤 해도 뮤지컬이나 연극 정도였지 발레에는 전혀 문외안이었던 내가 발레를 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을까. 1막을 보는 내내 배우들의 몸짓이 무엇을 뜻하는건지..도대체가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2001년 내한공연때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대단한 호응을 얻은 발레단이라기에 보러 갔었는데 1막 내내 후회를 떨칠수가 없었다. 1막이 끝나고 내 옆에 앉아있던 한쌍의 남녀는 가버렸다. 난 1막이 끝나고 공연 팜플렛을 꼼꼼히 읽어봤다. 팜플렛에는 줄거리와 함께 몇가지 소개가 나와있었다. 팜플렛을 읽어본 후 2막이 시작되었다. 팜플렛을 읽은 덕분일까 난 2막이 끝날때까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만 보이던 배우들의 춤동작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면서 정말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다. 여러 배우들이 함께 나와 하는 군무는 정말 화려하고 멋있었고 남,여 두 배우가 나와 함께 춤을 출때는 두사람의 춤동작이 한데 어우러져 무대를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2막을 보고있노라니 1막이 끝나고 가버린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 공연을 계기로 예술이란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태어나서 처음 발레란걸 보러 갔을때는 정말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공연이 사전지식을 갖고 2막을 볼 때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는만큼 즐긴다는게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난 공연이 끝나고 보리스 에이프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사들고 주연을 맡았던 두명의 남녀 배우에게 가서 싸인을 받았다.끝으로 내가 본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러시안 햄릿》의 줄거리를 소리문화의 전당 홈페이지에서 인용해 소개한다.Catherine은 술고래에다 난봉꾼인 그녀의 남편 Tsar Peter 3세에게서 굴욕감을 느낀다. 그녀의 조신 Favorite 은 쿠데타를 일으키며 황제로부터 그녀를 돕는다. 어린 왕자 Paul 은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피살을 목격하게 된다.18세기 중반 러시아 황궁 집무실어린 왕자 Paul 은 계략, 헌담, 하녀들의 공허한 수다들로 가득찬 분위기와 위선적인 아첨꾼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의 어머니, 황후는 그녀의 Favorite 보호 하에 있으며 가까이하기 어렵다. 권력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Catherine은 그녀의 아들을 왕좌에서 멀리하게 한다. 왕자를 왕실 생활의 타락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Favorite의 시도들은 기대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황후는 결혼이 왕권 상속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게 할 것이라 고 결정했다. Paul 은 아내와 행복했으나, 그의 아내는 야심 찬 계획들로 가득 차 있었다. 권력을 꿈꾸며 러시아 왕권을 쟁탈하도록 남편을 압박한다. 황후는 젊은 신부의 의도를 알아챈다. 권력을 위한 다툼과정에서 거짓말과 배신은 다반사이다. 그 다음 계획으로 Catherine 은 왕자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깨뜨린다. 왕자의 아내는 Favorite의 희생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치 못해, 왕권을 쫓은 대가로 왕자의 사랑하는 아내는 죽는다. Paul은 배신과 범죄의 끝없는 사슬 속에서 두려워한다.과거 사건들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Paul을 따라다닌다. 그의 환상들은 현실과 뒤섞인다. 왕실의 대립적인 관계들이 그를 위협하며 황후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희망을 앗아간다. 여전히 황후는 후계자를 국가 정사에서 멀리하게 한다. Paul은 어릴적부터 좋아해 온 명령에 의해 통치되는 훌륭한 장병들의 장난감 병정 세상 속에서만 그의 야망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단지 권력의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대항하기로 결정하나 다시금 꺾이게 된다. 흑기사들에 둘러싸인 아버지의 유령이 Paul에게 복수를 요구한다. 괴로운 살해 기억은 아들을 격분시키고 돌출구를 찾는다. 왕실은 새로운 형태의 연회들이 이어진다. Catherine 황후는 가면 무도회를 주회하고 이는 곧 난교파티로 변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5~6년쯤 전에 본 영화인데 아직까지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 영화가 있다바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76)》 란 영화다. 먼저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이탈리아에서 극악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말, 귀도(Guido Orefice: 로베르토 베니니 분)는 운명처럼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Dora: 니콜렛타 브라스키 분)를 만난다. 도라에겐 약혼자가 있지만 그 사랑을 운명이라고 생각한 귀도는 그녀와 함께 마을을 도망친다. 귀도의 순수하고 맑은 인생관과 꾸밈없는 유머에 이끌렸던 도라는 그와 결혼하여 아들 조슈아를 얻는다.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들 가족에게 닥쳐온 불행,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귀도와 조슈아는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는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자원하여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조슈아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실은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속인다. 귀도는 자신들이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라며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탱크를 좋아했던 조슈아는 귀가 솔깃하여 귀도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는다.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셀 수도 없이 넘기며 끝까지 살아남는다. 마침내 독일이 패망한다. 그러나 혼란의 와중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한다. 1,0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마지막 숨바꼭질 게임에서 독일군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믿는 조슈아는 하루를 꼬박 나무 궤짝에 숨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적만이 가득한 포로 수용소의 광장에 조슈아가 혼자 서 있다. 누가 1등상을 받게 될지 궁금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조슈아 앞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탱크가 다가온다." 《Hitel Films(http://www.films.co.kr) 인용》이 영화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아버지가 잡혀들어가던 장면이다.(왼쪽)독일군에 잡혀 사살당하러 가는 길...아들을 살리기 위해 작은 상자에 아이를 숨겨두고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독일군에 잡혀 사살 당하러 가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