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MNC: Multinational Corporation)Ⅰ. 서론1990년대 이후 국제정치경제의 핵심성격은 세계화현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세계화 현상 중심에는 다국적기업이 존재하였고, 다국적기업은 국내사회 및 국제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1990년대 이전의 종속이론 시각에 따른 수탈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다국적 기업은 각 국에서 국내투자, 기술이전, 고용촉진과 자문을 위한 유치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다국적기업은 국가 자율성의 침해라는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 활동에 대한 국제적 규범 제정의 문제도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따라서 2차대전 이후의 다국적기업 활동의 시대적 전개와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다국적기업의 이해를 통해 다국적기업과 국민국가와의 관계를 알아보고 나아가 다국적기업이 한국의 정치경제에 던져주는 함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Ⅱ. 다국적기업 활동의 전개와 이론적 배경다국적 기업이란 “부가가치 창출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해외직접투자를 수반한 둘 이상의 국가에서 경제단위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 으로 학자들의 정의를 요약할 수 있다. 단순히 여러 나라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해외직접투자를 수반한다.”는 설명이 붙게 된 이유는 이전 금융기관들이나 보험회사, 투자신탁 등의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포트폴리오투자가 아닌 투자기업들이 직접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참여하는 해외직접투자가 오늘날 다국적 기업을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다국적 기업의 역사는 18세기 이전 1200년대 지중해 연안 상인들의 은행업 개설을 시작으로 18세기 이후 상업뿐만 아닌 농업, 광업, 제조업 분야에 걸쳐지면서 해외직접투자의 형태가 등장했다고 본다. 이후 19세기에서 제1차 대전까지의 영국을 주도로 한 캐나다, 미국, 오세아니아 등에 해외포트폴리오 투자가 주를 이루었고 2차대전 이후, 교통과 통신과 같은 해외직접투자의 기초가 되는 산업들의 발달로 미국 1980년대 일본의 활발한 해외직접투자의 전개가 이루어졌다. 이는 1980년대 초반 미국정부의 점증하는 대일 무역적자해소를 위한 직접적인 무역압력과 환율조정압력이 가해진데서 비롯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본의 투자가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동남아 지역경제는 일본을 중심으로 수직 통합되는 일종의 연성(軟性)지역경제블럭이 형성된다. 이러한 결과로 다국적기업 활동은 미국적 패권에 기인한 활동이 아닌 상호 선진국간의 교차 투자의 양상을 띄게 되고 지역주의의 경향이 심화되면서, 1987년 유럽시장단일화 추진(Single European Act)과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지역주의의 경향이 심화되면서, 다국적기업은 해외직접투자를 통한 지역블럭을 극복하려했다.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국적기업은 지사에게 소유권과 생산공정의 일부를 일임하는 수직적 투자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이를 통해 기업내부무역이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또한 외국시장에 대한 접근의 용이와 자본비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다른 국적의 기업들간의 조인트벤처와 기업동맹의 숫자가 증가하였다. 이외에 타국 기업과의 기술의 상호교차 라이센싱, 상호교차 주식소유, 시장배분 협정 등 다양한 기업간 제휴도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을 길핀은 신다국적기업주의(new multinationalism)이라 정의했다.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규모의 경제에 따른 조직의 관료화, 작업자들의 소외 등의 원인과 소비 수준의 향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유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집중 및 유연화 전략을 추구하였고, 그동안 유지되었던 수직적 통합대신 스스로를 자체 분할하여 독자적인 권한을 대폭 넘기는 단일 기업간 수평화를 통해 현지 문화와 소비자의 수요, 경쟁자들의 동향 등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지금까지 역사적 전개로 알아본 다국적 기업의 활동에 대한 이론적 설명들은 2차대전 이후 다국적기업 활동, 해외직접투자의 원인과 투자본국과 투자대상국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히 진행되는 이유 설명부족상품주기이론(product cycle theory)한 상품은 도입(선진국의 수출), 성숙(기술의 확산), 표준화(상대국에서의 역수출)의주기를 가지고 있다해외직접투자의 유기적 연결과 기술발전의 중요성, 비교우위의 이동 설명제조업부문의 수평적 통합전략 설명70년대 일본기업들의 비교우위 변화에 따른 자동화 대처,반도체 전자분야의 기업들의 비교우위 이전의 생산설비 이전 등의 설명부족독점적 우위독과점적 거대기업들의 자본력, 기술력에 따른 우위로 거래비용을 지불하고도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해외직접투자가 가능하다패권중심의 해외직접투자 설명 용이한국, 대만 등 신흥공업국이나 일본의 중소규모 기업들에 대한 설명 부족오늘날 독점적 우위가 아닌 독점적 약점으로 규모의 비경제 논란화에 따른 중소기업적 유연성 확보 노력더닝의 OLI모델특정 지식의 소유권(ownership)에 근거하는 시장력, 해당 지역(location)에서 갖는 특별한 우위, 해외직접투자를 선호하는 내부화(internalization)의 세 가지 조건이 다국적 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가능한 요인독점적 우위이론의보충적 설명종속이론다국적기업이 주변부의 투자대상국의 경제를 왜곡하고 종속시킨다투자국이 아닌 투자대상국의 관점에서의 부정적 영향에 초점을 맞춤다국적기업의 해외투자는 주로 선진개발국 상호간 이루어졌고, 개도국에 대한 투자는 비중이 낮음개도국들이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투자 유치에 노력신중상주의다국적 기업의 해외투자현상은 국제체제에서의 패권적 지위의 반영해외투자자본이 패권을 쇠퇴시키고 주변부의 성장을 가속시켜 권력의 이동이 일어난다는 케인즈의 견해다국적기업의 패권중심시대의 설명에 설득력을 지님80년대 이후 투자대상국의 해외투자유치 경쟁 설명 용이다국적기업의 교차투자 현상과 글로벌화 경향 등의 세계화 현상에 대한 설명 부족 세 가지 이론에 따른 다국적기업의 활동의 이론적 설명Ⅲ. 다국적기업과 국민국가다국적기업과 국민국가 간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장과 국가자율성과의 관계, 현실주의라인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주로 국내의 반독점법 내지 경쟁법을 통해 통제하려 하였다.미국의 경우 1980년대 해외투자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를 통제하는 장치로서 엑손-플로리오 법안(Exon-Florio Amendment of 1988, 1993년에 재개정)을 마련하고 그 법안에 따라 해외투자위원회(CFIUS: Commitee of Foreign Inverstment in the United States))를 만들었다.유럽연합의 경우 EU출신의 기업에게 상대방 국가가 동일한 혜택을 허용하지 않는 한 EU도 외국기업들에게 동일한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등의 상호적인 입장을 취했고, 1989년 이후 모든 새로운 합병이나 조인트벤처의 경우 이사회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했다.이렇게 국가 단위의 규제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국제적 차원에서도 규제의 노력은 전개되었다.1971년 닉슨조치 이후 1973년을 전후한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이 다국적기업들로 하여금 국제금융시장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고, 다국적기업은 국제통화를 교란시키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하게 되어 다국적 기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고, 1972년의 IT&T사태) 이후 다국적기업의 부정적인 측면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었다.)그 결과 미국의 주도로 OECD에서 다국적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만들었다. 이 규범에는 다국적기업들의 적극적인 정보공개와 투자대상국 정부의 의 법률과 정책에 협력할 것 등에 대한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1995년에는 OECD 25개국들이 다자간 투자 협정(MAI: 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이라는 국제투자에 관한 새로운 규범제정을 위해 협상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해외투자의 권리를 분명하게 하고 장벽을 제거하며, 분쟁해결절차를 만들려 하였으나 1998년 '자국문화의 보호'를 주장한 프랑스 등의 반대와 NGO들의 항의운동으로 MAI의 체결을 위한 지속적인 협상은 중단되었다.이처럼 국가, 지역블럭, 국제적 차원에서 다 같이 다국적기업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과 그 관계는 앞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심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은 자본이라는 생산요소 뿐만 아니라 무역, 기술, 금융, 노동 등의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 활동의 활발한 전개로 세계무역의 3분의 1이 다국적기업 내부간의 기업내부무역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국가와 국가는 무역을 통한 연결뿐 아니라, 투자, 기술, 자본 등의 흐름으로 다양하게 연결되게 된 것이다. 또한 다국적기업의 글로벌화와 함께 특정시장에서 단순히 얼마나 물건을 파느냐 못 파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그 회사가 전세계 시장에서 몇 퍼센트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그래서 각 투자지역의 장점, 특성 등의 여건을 파악하여 현지에 적합한 특정 생산활동을 배치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대상국 정부가 어떠한 조건을 붙인다면, 더닝의 OLI 모델이 함축하듯 다국적기업이 더욱 적절한 투자대상국을 선정해서 쉽게 이동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과거의 국민국가가 해외직접투자를 규제하고 선발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다국적기업이 특정 국가를 선택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짓는 상황으로 바뀌었다.이처럼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세계경제의 상황이 바뀌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의 다국적기업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국적기업 주도하의 자유주의 경제질서에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1968년 한국남방개발(주)이 인도네시아에 산림개발을 위한 임업투자를 함으로써 시작되었고, 1973년 제조업 투자가 이루어짐으로써 본격화 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의 해외투자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로 인한 투자여력이 없어 1980년대 중반까지는 그 수준이 미미하였다.이후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된 198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의 수입 규제 강화, 원화절상, 임금 및 지가상승, 노사분규 등 국내 생산 및 수출 여건 악화에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감상문-김재진-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실제로 누구나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해도 다 허상일 뿐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그렇듯 순간일 뿐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수긍해야 할 일.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인생이란 다 그런 것.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그것을 사랑하라.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투명한 슬픔 같은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별들은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온 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떠나라.이 詩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한 인터넷 카드 사이트에서였다. 친구에게 보낼 카드를 고르던 중 쓸쓸하게 보이는 한 그루 겨울나무와 함께 조용히 내려오는 이 글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말이 어쩜 그렇게도 내 마음에 와 닿았던지 난 이후로 힘들거나 외로울 때면 항상 이 詩를 읊게 되었다.나에게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다. 이는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누구나 한번쯤은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봤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치거나,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어딘가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지만 함께 얘기 나눌 이가 아무도 없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술 한잔하고 돌아와 울적한 마음에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막상 전화 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누구도 날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외롭다”고 한다. “나는 혼자구나..내 곁에는 아무도 없구나..”세상에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또한 그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 부질없는 바람을 하고, 또 하고, 끝없이 한다. 그리고 그 채워지지 않는 마음 또한 끝없이 안고 살아야한다.내가 혼자일 적에는(따져 말하면 사람이 오롯이 혼자일 적이 있겠냐마는) 친구들과 하루종일 재밌게 놀다와도,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데이트를 해도,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나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더욱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기대지 못할 때, 내 곁에는 든든히 지켜줄 그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그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이 詩를 읽으며 위로 받곤 했다. “그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고, 내 가족과 친구들이 어느 때 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날 감싸 안아주고 있는데도 난 이 詩를 버릴 수 없다.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이 詩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어느 때부터인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내 주위엔 항상 친구들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하리만큼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내 생일날이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왠지 모를 밀려드는 슬픔으로 정말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한없이 행복해해도 모자란 날, 마지막엔 슬퍼서 울어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예전에 어느 가수가 은퇴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제가 가장 사랑 받고 있을 때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그랬다. 그는 한 나라를 뒤흔들 만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을 즈음 은퇴를 선언해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마도 그는 그 다음이.. 인기 후에 앞으로 자신에게 남은 것이 내리막길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엔 혼자 남게 되리라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어렴품한 기억의 그 가수가 생각났던 건, 나 또한 그런 완벽한 행복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다시 쓸쓸하게 홀로 남겨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금 우연히 이 詩를 읽게 되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詩를 읽으면 내가 혼자라는 것이 결코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을..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慾心이라는 것, 무엇이든 제 것으로 만들려는..所有하려는 그것의 슬픔은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즉 無,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無所有에는 두려움이란 없다. 잃어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집에 도둑이 들어온 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잃어버릴 것도 없는 것을..”
김유정 소설의 매춘 모티브 연구- 「산골 나그네」,「소낙비」,「가을」을 중심으로3조 : 기명훈, 천정희, 최효선, 황미선Ⅰ. 서론김유정의 작품에는 흔히 떠올리게 되는 해학과 아이러니 외에도 사실성(reality) 이 들어 있는 작품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돈에 대한 탐욕과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춘을 사주하거나 매매하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매춘의 양상을 보면 가정을 지키는 수단으로서의 매춘 즉, 아내의 매춘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그는 소외된 농민들의 현실적 극한상황을 매춘이라는 비정상적인 대응책으로 그려내고 있다. 건전한 방법으로는 살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매춘이라는 방법으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려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이는 한 작품의 소재로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에 걸쳐서 등장하게 되는데 본고에서는 김유정 소설에서 드러나는 매춘은 사회적 배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전제로 「산골 나그네」,「소낙비」,「가을」 세 작품을 중심으로 김유정 소설의 매춘 모티브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사회적 배경(1930년대)김유정이 활동하던 1930년대는 식민지 정책과 자본주의가 상보적으로 진행되던 수탈경제의 시대이다. 조선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일본은 이전보다 조선에서의 착취를 보다 강제적으로 집행하였다. { 강만길,『한국현대사』,창작과 비평사, 1985, p.88일제의 경제 수탈 정책들은 조선의 농민들과 노동자 계층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식민지 지주제가 강화되면서 소작농민들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가로막히게 되고 농민들의 몰락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강만길, 위의책, p.99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때문에 이농자들의 수가 증가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토지에 뿌리를 두어 삶을 일궈왔던 농민들의 생활양식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농민에게 있어 토지는 단순한 생활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이었기 단순한 사실만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2. 가정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매춘1) 산골 나그네「산골 나그네」1933년 『제일선』에 발표된 작품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나그네는 남편을 위한 매춘과 위장결혼을 감행하고 있다.고적한 산골 주막에 나그네가 찾아오고 의지할 곳 없는 나그네는 주막에 머물면서 술손님의 시중을 들게 된다. 나그네의 태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자, 저패들이 새댁을 갈보로 횡보고 찾아온 맨이다. 물론 새댁편으론 망칙스러운 일이겠지만 달포나 손님의 그림자가 드물던 우리집으로 보면 재수의 빗발이다. 술국을 잡는다고 어디가 떨어지는 게 아니요, 욕이 아니니 나를 보아 오늘만 좀 팔아 주기 바란다, 이런 의미를 곰살궂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그네의 낯은 별반 변함이 없다. 늘 한 모양으로 예사로이 승낙하였다.(중략)술들이 담뿍 취하였다. 두 사람은 곯아져서 코를 곤다. 계집이 칼라머리 무릎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올릴 때 코웃음을 흥 치더니 그 무지소러운 손이 계집의 아래 뱃 가죽을 사양없이 움켜잡았다. 별안간 하고 퍼들껑하더니 계집의 몸뚱아리가 공중으로 도로 뛰어오르다 떨어진다.이자식아, 너만 돈 내고 먹었니?한 사람 세두고 앉았던 상투가 콧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맨발 벗은 계집의 두 발을 양손에 붙잡고 가랑이를 쩍 벌려 무릎 위로 지르르 끌어올린다. 게집은 앙탈을 한다. 눈시울에 눈물이 엉기더니 불현 듯이 쪼록 쏟아진다. 방안에서 왱마가리 소리가 끓어오른다. { 김유정, 「산골 나그네」, 『동백꽃』, 어문각, 1993, p.25만약 덕돌모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면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나그네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결코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다.덕돌과의 결혼에서도 이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난다.그럼 와 그러는 게요? 우리지이 굶을까봐 그리시유?......어머니도 사람은 좋아유...... 올해 잘만 하면 내년에는 소 한 바리 사놀 게구, 농사만 해두 한 해에 쌀 넉 섬, 조 엿 섬, 그만 주섬주섬 꺼내오다가나의 며느리가 되어 줌이 어떻겠느냐고 꽉 토파를 지었다. 치마를 흡싸고 앉아 갸웃이 듣고 있던 나그네는 치마끈을 깨물며 이마를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두 볼이 빨개진다. 젊은 계집이 나 시집 가겠소 하고 누가 나서랴. 이만하면 합의한 거나 틀림없을 것이다.{ 김유정, 앞의 책, p.29덕돌과의 대화나, 덕돌모와의 대화에서도 나그네는 거절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후반부에 그러한 나그네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거지는 호사하였다. 달빛에 번쩍리는 접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물방앗간을 등졌다.골골하는 그를 부축하며 계집은 뒤에 따른다. 술집 며느리다.옷이 너머 커, 좀 작었으면...잔말 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계집은 부리타케 그를 재촉한다. { 김유정, 앞의 책, p.32~34나그네의 위장 결혼은 남편의 의복을 구하기 위한 수단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남편의 옷가지 하나를 얻기 위해 술꾼들에게 희롱을 당하면서도 고분고분 술꾼들의 술시중을 들고 덕돌과 결혼까지 한 것이다. 남편의 의복을 위해 매춘을 하는 상황 속에서도 남편에 대한 정신적인 정조는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의 해동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나그네는 의복을 훔쳐 달아나면서도 값비싼 은비녀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그네의 위장 결혼이 단지 남편의 의복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임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그네의 매춘이 더욱 절망적이다. 허황된 욕심이 아닌 단지 옷가지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매춘. 이것이 김유정의 시대적 아픔을 드러내는 방식이다.2) 소낙비「소낙비」는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으로「따라지 목숨」이라는 원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1930년대 한국 유랑 농민의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소낙비」의 춘호는 이농한 유랑민으로 아내에게 노름 밑천 이원을 구해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욱이 돈 이 원을 줄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으로 넌지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맙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 김유정, 「소낙비」, 『동백꽃』, 어문각, 1993, p.16춘호의 아내는 매춘을 모욕과 수치로 여기면서도 남편에게 매맞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양치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처음 당하는 봉변 으로 지랄중에도 몹쓸지랄 이라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남편에게 매나 맞지 않고 남편과 의좋게 살수만 있다면, 이따짓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사양치 않을 것 이라는 생각에 이주사를 하늘같은 은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 매질은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되었고 매춘으로 얻는 돈 이원은 이 모든 것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쳐먹을 농토까지 제공한다니 큰 횡재인 셈이다.그러나 아무리 빈곤하다지만 자기의 아내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는 행위나, 몸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이어가려는 아내의 행위는 보편적인 우리의 윤리 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극한 현실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윤리나 도덕성을 따지기에는 그 시대의 빈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춘호 아내에게 이주사와의 관계가 수치스럽고 봉변이라 생각되는 관계일지라도 돈 이원을 구할 수 있기에 이를 참고 감행하여 벅찬 지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것이다.춘호는 아내의 매춘을 단순히 돈만을 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춘호 역시 아내와 잘 살아보고나 아내의 매춘을 조장하고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에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덕 이나 윤리 라는 감정들은 이들이겐와 잘살아보려고 밤도주하여 살기 좋은 곳을 찾으려 했고 노름 돈 이원으로 돈을 따 더 나은 곳으로 떠나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내에게 돈 이원을 독촉하는 것이다. 춘호도 역시 아내의 매춘으로 인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한다. 산구석에서 아내와 굶어죽을 바에야 차라리 매춘을 해서라도 그 목숨을 부지하는 편이 낫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부정한 관계가 무분별한 육체적 쾌락의 추구로 여겨진다면 1930년대의 아내의 매춘은 어쩔 수 없는 생계수단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낙비」에는 성이 경제적 교환 가치의 수단으로써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기, 『김유정 - 그 문학과 생애』,지문사, 1992, p.302이러한 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대의 사회적 모순의 구조에서 출발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아내를 매춘의 길로 나서게 하는 남편의 행위는 극한적인 궁핍 앞에서 인간의 도덕적 사고와 윤리적 행위가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비극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한상화, ,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2, p.303) 가을「가을」은 1936년 『사해공론』에 발표된 작품으로 매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조복만은 먹을 게 없으면 변통할 생각을 않고 부처님 같이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하는 주변없고 무능하고 가난한 산골 농부로 주막집 할멈의 중개로 자신의 아내를 소장수 황거풍에게 돈 50원에 팔기로 한다. 황거풍은 매매 현장인 주막에서 아내를 사고 파는 데 증거가 되는 매매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복만이 친구인 내 가 복만의 요청으로 황거풍이 기다리고 있는 주막으로 가 매매 계약서를 대필해 준다.소장수인 황거풍에게 팔려간 조복만의 아내와 아내를 파는 남편은 섭섭한 빛도 없이 달아나 버린다. 이미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비윤리적 관계로 그려진다. 더욱이 이런 비윤리적인 행위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관여하고 참여한다는 사실이 당시의 참혹한 가난과 그로 인한 사회의 도덕성95
동-서 무역의 이질성과 세계무역기구1. 서론2차 대전 후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무역질서를 확립하려는 미국은 소련을 포함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참여를 요구 하였다. 처음엔 서로 다른 경제와 정치체제, 그리고 기나긴 냉전체제의 지속으로 인해 동-서무역이 활발해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데탕트라는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동서무역은 점차 활발해 지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범세계적인 기구 WTO (세계 국제 무역 기구) 가 출범하게 되었다. WTO는 그 규모가 거대하고, 아직도 국제 정치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구이다. 그렇다면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나타난 WTO의 성격과 성립배경 등과 시대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장경제와 중앙계획경제로 대표되는 동-서구 무역의 변화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2. 본론(1) 동-서 무역의 변화2차대전이 끝나고 이데올로기와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는 크게 동구국가와 서구국가 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른 체제들은 서로의 무역에도 장애를 만들게 되었다. 동구권 국가들은 만성적 외환부족현상의 내부 경제적 문제점과 자유경쟁의 부재와 기술개혁에 의한 품질향상에 대한 유인제도의 결여로 인해 상품이 서구국가들의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였다. 한편 서구 국가들은 동구권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내부적 특징, 약점에 기인하는 경제적 요소와는 다르게 반공 보수 세력의 요구와 같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따라서 소련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개방적 무역체제에 참여를 거부하였고, 미국도 냉전이라는 정치, 군사적 이유로 하여 소련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공산권경제의 고립화를 통한 공산주의 세력의 약화를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자유진형은 GATT)체제로, 공산진영은 COMECON)으로 각자 독자적인 무역권 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70년대 국제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다원화 되었고, 동-서 양진영내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판도가 변하면서 동서긴장완화정책이 냉전정책을 대치하게 되미국은 마침 경제적 이익과 노동조합의 압력, 행정부 내의 압력 등의 배경으로 동-서 무역관계가 다시금 개선 될 수 있었다. 오늘날 동구권국가들은 정치경제적 자유화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신보호무역주의의 극복과 사회주의 경제권의 결합의 큰 과제를 안게 되었다.(2) 세계 무역기구의 탄생과 무역 질서? 세계 무역기구 (WTO)의 성립배경* 도쿄 라운드와 이후의 국제 무역질서1970년 중반, 선진공업국들은 신보호주의와 붕괴되어가는 자유무역체제를 확립하고자 새롭고 강력한 다자간 운영체제를 위한 무역협상을 시작하고, 그 결과 1973년 1월 GATT의 후원 하에 100여국의 대포가 도쿄에서 세계무역의 지속적인 성장과 자유화를 위한 제 7차 다자간무역협상 즉, 도쿄라운드를 시작하였다. 도쿄라운드는 1980년 관세율 31%인하와 비관세장벽의 규제를 문제점으로 삼고 이 비관세장벽의 제거방법 및 이의 감시 장치를 마련하려고하였다. 하지만 이미 케네디 라운드에서의 관세는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으며, 비관세장벽에 대한 규약은 협정에 서명한 나라에만 적용되므로 GATT의 비차별원칙에 위배되며, 저개발국가들의 서명거부에 의해 효과가 의문시 되었다. 또한 긴급수입제한에 대한 문제와 함께 농산물교역의 자유화 문제가 대두 되었다. 주로 미국은 자유화를 주장하였고, 유럽경제공동체는 농산물의 국제가격과 장기적 공급의 안정을 위한 상품협정의 체결을 주장하였다. 일본 역시 국내정치적 이유로 회피하였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쿄라운드는 1930년대와 같은 보호무역 정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타국에 전가시킬 수만은 없게 되었음을 경험한 국가들이 1970년대 이후 다자간 협력을 통해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각국에 심어주었으며,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로 우루과이 라운드가 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우루과이 라운드도쿄라운드의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 GATT무역체계의 위기가 계속되고 특히 긴급수입제한조항자유무역을 재확립하고 합이 된 관리 무역 체제라도 도출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하자, 일본과 GATT사무국의 지원 하 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1986년 9월, 우루과이 라운드를 정식 출범시켰다. 다자간무역협상의 제 8자 라운드에 속하는 우루과이 라운드는 다시 한번 긴급수입제한조항과 정부 보조 등 소위 새로운 쟁점 (new issue)인 금융 및 통신과 같은 서비스 분야와 지적 소유권 문제, 무역관련 투자문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농산물 문제를 둘러싸고 수출국) 과 수입국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되고 있었고, 농산물에 관한 협상의 타결 없이는 우루과이 라운드의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농업분야의 협상에서 유럽공동체는 1986년을 기점으로 10년에 걸쳐 농업보조금의 30% 감축안을, 미국은 1991기점으로 수출보조금의 90%, 생산보조금의 75% 삭감을 주장하였다. 한편 한국과 일본 같은 농산물의 주요 수입국은 개방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쌀 문제가 국내 정치적 기반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쌀 시장의 개방 반대를 주장하였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공여부가 GATT무체제의 존폐에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고, GATT의 다자주의원칙이 퇴색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다자무역기구를 창설하자는 유럽공동체의 주장과 세계무역기구를 새로이 설립해야 한다는 캐나다의 주장이 제시됨으로써, 세계무역체제는 GATT이후체제로 접어들게 되었다.? 세계무역기구의 출범그간 7년여를 끌어오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우루과이 라운드가 1993년 12월 15일 큰 줄거리의 협상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그리고 회원국 비준과정을 거쳐 1995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WTO)가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는 미국의 이것의 타결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놓고 적극적 추진을 하였고, 유럽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연합을 배제시킨 가운데 새로운 자유무역질서를 구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농산물 협상에 대한 양보를 하였다.첫째,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더욱 감축함으로써 많투매법 사용을 개선키 위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보조금과 상계 관세에 대한 법규를 개선하였다.넷째, 새로운 쟁점 (New Issue)에 대한 규칙을 설정하고 국제 무역체제를 현대화 하였다.다섯째, 무역 관련 투자 조치가 최초로 토의되어 투자에 관한 국제적 규칙의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여섯째, GATT의 절차를 현대화 하여 WTO에 규칙과 결정을 강요하고 그 수행을 감시하는 권력을 부여 하였다.이와 같이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로 출범하게된 세계무역기구(WTO)는 GATT의 원칙과 규범들을 확대 시키고 분명케 함으로써 21세기 세계무역을 이끌어갈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③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도전1995년 출범당시 회원국이 124개국이었던 WTO는 무역의 자유화와 성장에 기여하여 1998년 132개국으로 확대 되었다. 출범이후 세계경제의 성장률을 초과하는 세계무역량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원거리 통신, 금융, 및 정보기술 분야의 무역장벽을 제거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쟁점을 다루기 위한 뉴라운드의 신속한 개최에 합의하고 있어, 2000년대 세계무역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아직 섬유와 농산물 분야의 관세가 높게 유지되고, 수입할당제의 제거노력은 부진하다. 또한 해상운송과 외국노동자에 대한 접근은 제한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은 강대국은 저임금의 빈국이 자국의 실업률을 증가 시키고 경쟁력이 약한 국가는 시장의 상실을 우려하고 있어서 확실한 해결이 되질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보호주의 무역정책의 압력에 대비하여 WTO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첫째, 교역대상 상품에 대한 관세를 지속적으로 인하 시킬 것.)둘째, 상품교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용역 부분의 무역을 더욱 촉진 시킬 것.셋째, 반독점법, 외국인투자법, 노동법, 환경보호 등과 관계되는 민감한 문제의 해결.이 외에도 WTO하의 무역의 자유화와 세계화는 지역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다. 지역무역블록이 교역을 증대시 수호 등을 위해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인 뉴라운드를 출범하게 된다.④ 뉴라운드의 출범1. GR (Green Round) :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해 환경을 무역과 연계하는 다자간무역협상.2. BR (Blue Round) : 노동여건과 근로기준을 무역거래에 연결시키는 다자간무역협상.3. TR (Technology Round) : 기술 개발정책을 무역규제에 연관시키는 다자간무역협상.4. CR (Competition policy Round) : 경쟁정책, 공정거래 보장을 무역거래에 연계.GATT체제 하의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고 WTO가 출범하였지만, 타결이 미진한 분야의 추가 자유화와 새로운 무역쟁점의 등장으로 후속 무역협상이 불가피 하게 되었다. 1994년 4월 15일 모로코에서 일부 논의 되었으며, 뉴라운드의 준비단계에서는 각국의 이익,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새로운 협상 문제)가 대두 되었다. 뉴라운드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기본원칙을 가지고 있다.이후 2001년 11월 14일 뉴라운드 협정에 공식합의 함으로서, 시애틀 제 3차 각료회의의 실패)를 극복하고, 세계의 자유무역의 촉진과 21세기 다자간 무역의 틀을 마련하였다는 평을 받는다.3. 결론2차 대전 이후 끊임없는 자유무역의 갈망과 노력은 끈임 없는 도전을 받고 그에 따른 세계적 협상과 대화로 인해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었다. 언제나 지속될 것 같았던 냉전체제는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데탕트 시대가 열렸으며, 그 전까지 동구와 서구로 나뉘어 있던 세계가 다시 하나로 뭉쳐가고 그에 따라 시장역시 거대해져 새로운 국제무역의 길을 필요로 하였다. 처음 시도에 있어서의 실패와 문제점을 계속해서 극복해 나가 세계무역기구를 창설시켰고, 그 안에서의 수많은 다자간회의 끝에 어느 정도 지금의 자유무역체제를 이룩하는데 성공해 냈다. 지금도 WTO는 여러 새로운 도전을 당면하고 있지만, 지난 시간동안 배워온 협력과 대화의 모습은 뉴라운드를 넘어서 새로운 도하라운드)의 시대를 열었다. 이렇듯 계속되는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선택의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절대자 앞에서 스스로가 유한하다고 생각한다지만 난 이런 선택의 순간 속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실감한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묘한 이치. 아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원리인 듯도 하다. 이렇게 삶의 연속성 아래서 선택의 순간은 항상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수많은 선택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으리라.어렸을 적에 나는 내가 다른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모두 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은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던 언젠가 사춘기 시절의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나란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저 평범한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가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 또한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다 이루기가 힘들며,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기에 선택의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던 그 단순하고도 거스를 수 없는 진리를 알아냈을 때는 이미 내 유년 시절이 모두 지나간 후였다. 그리고 그때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중요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리라고. 그냥 남들 사는 대로 그렇게 살자고. 그 단순했던 다짐이 내 짧은 인생을 한번 바꾸어 놓았단 생각이 이제야 든다.그런데 여기서 좋아하는 시에 대해 쓰는 이 소중한 시간에 지면을 할애해가면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시에 대한 개인적 견해 때문이다. 시라는 것이 쓰는 순간에는 시인의 이야기지만 시인의 손을 떠나면 시는 읽는 사람 개개인을 대변하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감상에서 나는 내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들을 접하게 된다. 굳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시들을 빼놓고라도 각자 마음속에 품고 사는 시가 있을 것이다. 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무엇일까?‘시의 이해’의 레포트를 쓰기 위해 심각하게 생각해 봤다. 그동안 시를 좋아한다고 떠들어 놓고서는 가장 좋아하는 시조차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이 날것만 같았던 시. 그것은 프로스트의‘가지 않은 길’이다. 그렇다. 나는 이 시를 봤을 때 나도 나중에 이런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이 시를 알게된 건 고 3때 수능을 볼 당시 시험장에서였다. 시험을 치르는 그 정신없을 순간에도 이 시를 보면서 공감했던 걸 떠올려 보면 참 남다른 인연이란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때 처음 이 시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표현상의 기교는 별로 없는 시이다. 하지만‘무기교의 기교’라는 말이 있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도 비유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 나에게 보기 드문 감동을 안겨 주었다. 여기서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어쩌면 처음에 나는 시에 의도적으로 감동을 부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진부한 사랑 얘기가 아닌 인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 있을 나에게는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의 이야기는 조금 미뤄 두기로 하고, 이제 이 시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하겠다.시를 읽을 때 우리는 어떤 이유로 감동을 받을까? 그것은‘빛나는 한줄기 빛’과 같은 시 구절에서 밀려오는 감동일 수도 있고 심금을 울리는 시의 내용에서 올 수도 있으며 시인의 탁월한 문체에서 일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시적 감동을 말해보자면 첫 번째는 무엇보다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질 때 오는 감동이다. 짧은 글 속에서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감동은 단순히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시의 내용이 시인에게서 독립하여 내 삶의 경험과 아픔으로 스며들 때 받는다. 내가 프로스트의‘가지 않은 길’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시를 봤을 때 시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제목을‘가지 않은 길’이라고 했다. 왜 가지 않은 길이라고 했을까?‘가지 못한 길’이라고도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서도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포기하는 것 또한 우리가 선택한 것이란 점이다. 사람에게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은 훗날 너무도 안타까운 맘으로 돌아오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순간에 포기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슬프도록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는 것을 말이다.그렇다면 이제 그토록 감동했다는 시의 내용을 내 생각과 더불어 살펴보기로 하자.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이렇듯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곤 한다)나는 두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꺽어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사람의 맘이란 게 이런 걸까? 두 길을 다 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축복을 신은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한참을 고민한다. 그것도 오랫동안 서서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며.)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나는 이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던 사람이란 것 밖에는.. 앞에서 나는 내가 어릴 적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고 말한 적이있다. 그런데 어쩌면 난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내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 같다.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그 길은 걸음으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그렇다. 어릴 적 내가 걷고자 했던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길도 언젠가는 평범하게 닦아진 길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닦아질 길. 그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 내가 그토록 힘들게 걸어간 길이 훗날 평평하게 닦아진 길이 될 것이라는 그 사실을 알기에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으리라.)그 날 아침 두 길에는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이게 시인이 제목을 ‘가지 않은 길’이라 쓴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가지 못한 것이 아니기에. 다음 날 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너무 아름다운 길이어서 다음 날이라도 꼭 다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슬퍼졌다. 이 시인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지나간 순간을 되돌리기 어려움을. 아니 되돌린다 한들 지나갔던 순간의 마음까지 되돌릴 순 없기 때문임을. 결국 갈림길을 지나서고 나면 다시 돌아오기도 힘들고 다시 돌아온다 한들 그때는 나는 예전에 갈림길에 서있던 내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란 말이 있던가..? 알고 있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마음.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오늘따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