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휴대전화는 현 시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품 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집전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구성원 각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이 보급되고 사용되고 있다. 이 휴대전화는 모토로라사에서 2차 세계대전 중에 군사통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휴대용 핸디토키(Handie-Talkie), 워키토키(Walkie-Talkie) 등의 무선통신기기를 개발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의 휴대전화가 된 것이다. 휴대전화의 주 목적은 전화하기, 그러니까 내가 아닌 다른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면 문자메시지, MP3, 카메라, 스케줄, 게임, 알람, 메모, D-day, 전화번호부, 인터넷, 전자계산기 등 너무나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그럼 이제부터 휴대전화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자.하나, 문자메시지요즘은 ‘엄지족’이라고 하여 문자를 매우 빠른 속도로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젊은 층들은 휴대전화를 전화하기보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열중하는가?문자 메시지에는 글자가 주는 매력, 글이 주는 미학이 담겨있다. '나는 당신을 사....'라는 문장을 받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음 메시지를 봤을 때 '...학년으로 알고 있는데 맞지?'라는 식의 유머는 문자 메시지에서 더욱 빛이 난다. 그리고 문자메시지는 이모티콘(Emoticon)을 사용해 자신의 표정도 풍부하게 나타낼 수 있다. 현재 각 통신사들은 젊은 층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는 공짜로 사용하거나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많은 요금제를 도입하고 있어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젊은 층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 메시지는 어떠한 특정 정보를 여러 명에게 한 번에 보낼 수 있어 효율적인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된다. 또한 기억력에 의존하는 음성통화와는 달리 문자메시지는 저장하여 재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보 보관이 매우 뛰어나다. 문자메시지는 언제, 어디서나 남의 눈을 피해 쉽게 주고받을 수 있어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한다. 큰소리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장소 같은 곳에서 문자메시지의 능력은 더욱 발휘된다. 하지만 이 능력은 단점도 가지고 있다. 수업에 열중해야할 학생이 문자를 주고받고 있는 것은 잘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위와 같이 나에게 문자메시지는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는지 가장 먼저 확인하고 멀리 떨어져있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고 전화를 할 만큼 친하지 않는 친구와도 문자로 수다를 떤다. 또 전화로 말하기엔 부끄러운 말도 문자로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지만 좀 더 맘 편히 할 수 있다. 지루한 강의 시간엔 문자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등 문자메시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둘, 게임모든 휴대전화를 보면 게임 기능이 있고 종류도 1~2개 정도 있다. 이런 휴대전화 게임의 장점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심심하고 할 일이 없을 때, 친구를 기다릴 때 등등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장소만 있으면 게임을 할 수 있다. 또 휴대전화에 있는 게임이 지겨울 때는 인터넷을 활용하여 새로운 게임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컴퓨터 인터넷엔 이런 모바일 게임을 미리 알아보고 바로 다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가 있다. 이런 사이트는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할 때 정보 이용료가 조금은 줄어들게 해 비싼 모바일 인터넷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휴대전화 게임의 단점은 쉽게,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또한 휴대전화 게임은 종류는 많지만 아직 그래픽이라든지 질이 많이 떨어진다. 나는 이러한 휴대전화 게임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나는 새로운 휴대전화 게임은 컴퓨터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찾아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살펴보고 휴대전화로 전송하여 다운 받는 편이다. 이용하는 것은 강의 시간에 계속한다던지 친구와 있을 때도 이야기 하는 것보다 게임을 하고,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게임에 빠져 산다. 휴대전화에 있는 게임이 지겨우면 새로운 게임을 찾아 다운 받고 또 그 게임에 빠져 계속 하고... 이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중독에 가까운 수준에까지 이른 것 같다. 앞으로 조심해서 게임을 해야겠다.셋, MP3 노래듣기MP3폰은 국내최초로 LG전자에서 만들어졌다. 처음의 MP3폰은 별로 인기를 받지 못하였다. 노래를 다운 받는데 사람들이 많이 서툴렀고 만든 사람 측에서도 많은 혜택이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처음에 사람들은 그냥 MP3를 많이 사용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MP3폰이 너무나 많이 활성화 되어 멜론, 도시락 등의 노래를 받는 사이트까지 만들어 질 정도가 되었다. 이런 MP3폰의 장점은 휴대폰과 같이 있으니 따로 MP3를 챙길 필요가 없어 매우 휴대하기 편하다. 또 휴대전화의 스피커로 크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스피커로 들을 시 음질이 많이 떨어지고 배터리가 쉽게 닳아지며, 노래를 받을 때 돈을 내야 하거나 MP3파일을 변환하여야 한다.내 휴대전화는 삼성 가로 본능인데 처음에 살 때 가격이 많이 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MP3기능과 카메라 기능이 좋아서 사게 되었다. MP3 기능은 처음에 이용할 때 많이 고생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MP3폰이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아서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잘 몰라서 많이 힘들었다. 내 폰은 멜론이라는 사이트에서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있는데 노래는 한곡에 500원이라는 돈이 들어간다. 나는 경제력이 없어서 그런 돈을 내기엔 너무 아까워 돈을 들이지 않고 음악을 받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MP3파일을 변환하는 것인데 그건 멜론 프로그램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이제는 너무나 간편하게 노래를 다운받는다. 그렇게 다운 받으면 휴대전화 용량이 작아 15곡 정도가 들어가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노래파일의 용량을 줄여 넣어 30곡까지도 들어간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MP3폰을 잠이 안 올 때나 친구를 기다릴 때 등 너무나 잘 이용하고 있다.이런 MP3플레이어, MP3폰의 출현으로 가수들이 많은 피해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사람들이 가수들의 CD를 사기보단 MP3를 많이 이용해서 그냥 다운 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가수들의 주장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옛날만큼 가수들의 노래가 좋지도 않은 것 같고 노래 좋다면 사람들은 CD를 사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요샌 이런 가수들의 저작권 침해라 하여 노래를 다운 받을 때 돈을 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수들은 [‘저작권침해 MP3폰 반대' 보아 등 '1인 릴레이 시위', 'MP3폰 분쟁', 제작자-음원단체-네티즌 칼끝 대립] 등 소비자들과의 논란이 끊이지 않을 듯 하다.넷, 사진 찍기요즘 휴대전화를 보면 카메라 기능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애니콜 디지털 카메라 폰 (SCH-V200)은 CDMA 단말기 중에서는 최초로 이동전화 단말기와 디지털 카메라가 복합된 카메라 폰이다. 이런 카메라 폰의 장점은 휴대하기 간편하여 아무대서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찍어 바로 보낸다.’와 같은 광고에서처럼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낼 수도 있다. 심심할 때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단점은 화질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카메라 폰은 60~100만 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점차 200만 화소, 심지어 500만 화소의 카메라 폰까지 등장하고 있다. 또 아무 곳에서나 찍을 수 있어 목욕탕 등에서의 촬영과 같은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전에는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아서 몰래 찍을 수 있었지만 요새는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소리가 나게 되어 있어 쉽게 띄게 되었다.
아랍세계,이슬람세계,중동 지역의 차이점『목 차』1. 중동 --------------------------------------11)의미2)지리적 개념2. 이슬람세계 --------------------------------21)이슬람2)이슬람 문명3)이슬람 세계3. 아랍 --------------------------------------31)의미2)지리적 개념4. 아랍세계, 이슬람세계, 중동 지역의 차이점---45. 참고 문헌 ---------------------------------5아랍세계, 이슬람세계. 중동지역의 차이점1. 중동1)의미:아시아 서남부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총칭이다. 동쪽은 아프가니스탄, 이란에서 서쪽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북쪽은 터키에서 남쪽은 아라비아 반도전역 내지 아프리카의 소말이아 반도, 수단, 사하라 지역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범위는 정확하거나 일정한 것이 아니고 확대되거나 축소되기도 한다. 중동에 포함되거나 제외되기도 한다. 중동에 포함되거나 제외되기도 하는 지역은 에티오피아 북쪽에 해당하는 에리트레아에서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부르는 지부티, 소말리아, 대서양에 면하는 모로코 남쪽의 서 사하라, 모리타니아이다. 지중해사의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깊은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에 포함되지만, 한편 몰타는 리비아와의 관계를 도외시 할 수 없으나 중동에 포함되는 일은 거의 없다.2)지리적 개념: 지역 개념으로서의 중동이 독립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19세기에 동방 문제의 전개 중에 생성된 지역개념인 근동 내지는 중근동이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근동 및 중근동은 주로 오스만 제국 미치 카자르 왕조 국가의 영역을 가리키고, 따라서 유럽적 어법에서 보면 ‘터키제국’ 및 ‘페르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근동 또는 중근동의 범위는 발칸, 아니톨리아, 역사적 시리아, 이집트, 헤즈, 이란 고원 등을 포괄하였다.‘근동’,‘중근동’은 ‘극동’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각각 유럽 쪽에서 본 ‘동방’의 한 구분이었으며, 당시 이미 영국 손에 들어간 인도 아대륙을 사이에 끼고 그 양쪽에 형성된 열강간의 이해가 교착하는 분쟁지역으로서 인식되었다. 이에 대해서 중동이라는 지역개념에서의 동은 냉전적인 입장에서 동서대립을 말하는 것이고, 중동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양체제간의 경합지역으로서, 혹은 사회주의로 전향할 위험을 품고 있는 문제지역으로서 스스로를 서라고 생각하는 쪽에서 생각해낸 전략적 지역설정이기 때문에, 전략을 펴야 할 대상지역의 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외부에서 중동이라고 규정된 지역에 속하는 사람들 쪽에서도 그와 같은 설정에 주체적으로 대항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들의 지역을 중동(아랍어로는 알샤르크, 알아우사트)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근동 혹은 중근동과 중동이 각각 가리키는 범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중근동에는 포함되었던 발칸이 중동에는 포함되지 않고 중근동에 포함되지 않았던 마그리브와 아라비아 반도(헤자즈를 제외)가 중동에 포함되기 때문이다.2. 이슬람세계1)이슬람: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순종’과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승화되어 인간이 유일신인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이슬람의 종교적 신조로 굳어졌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은 알라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복종자, 즉 ‘무슬림’이라고 한다. 보편종교는 대체로 종교의 창시자나 소속 지명 혹은 인종명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관례를 벗어나 종교의 고유이념인 순종과 평화의 뜻을 그대로 담은 ‘이슬람’이로 명명한다고 경전 ‘꾸르안’에서 규정하고 있다.2)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명은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범세계적인 성장문명이다. 이슬람교의 출현과 더불어 형성되기 시작한 이슬람문명은 이슬람교가 범세계적 종교로 확산됨에 따라 세계의 광할한 지역을 망라한 한 문명권, 즉 이슬람 문명권을 이루어 인류문명의 발달에 괄목할 만한 기여를 했다. 이슬람 문명은 여러 민족과 나라의 다양한 고유문과가 이슬람이라는 용광로에 녹아 만들어진 다원적인 문명으로서 그 구성요소가 복잡다기하다. 게다가 이 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이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이 겹치다 보니 그 실상을 올바르게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3)이슬람 세계: 이슬람 문명의 권역인 이슬람문명권이란 이슬람문명을 공동으로 창조하고 향유하는 범지역적 문명공동체로서, 주민의 과반수가 무슬림인 나라와 지역이 이에 속한다. 이슬람 문명권은 대체로 이슬람의 발상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원심으로 하여 동서로 활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권내 성원들은 지정학적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 이슬람 문명권은 이슬람이란 특정 종교를 공통분모로 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고유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및 문화적 성격이 깊이 베어 있으며, 지리적으로 서로 밀접히 연결됨으로써 집중성을 나타내는 것이 여타 문명권과 다른 특징이다.이슬람 문명은 7세기 초반 이슬람교의 출현과 함께 형성되었다. 교조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히즈라 한후 정교합일의 이슬람공동체인 움마가 건설되었다. 그가 죽은뒤, 정통 칼리파 시대에 대정복을 전개하여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그 주변국들이 점차 이슬람화함으로써 이슬람문명권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피정복지에 대한 아랍-무슬림들의 지배권을 확립한 아랍제국 시대를 거쳐 아랍인과 비아랍인이 이슬람교와 이슬람문명이라는 공통된 이념에 기초하여 통일된 이슬람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마침내 범지역적인 문명공통체로서 이슬람문명권이 형성되었다. 13시게 중엽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압바스조가 붕괴된 후 중앙집권적인 통일 이슬람제국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슬람교의 부단한 전파와 더불어 도처에 이슬람국가들이 세워짐으로써 이슬람문명권은 그만큼 확대되어갔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슬람문명권은 명실상부하게 범세계적인 문명권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흔히 이슬람하면 아랍이나 중동만을 연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이슬람 문명권에 속한 무슬림의 수는 세계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3억명으로, 세계 140여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중 주민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나라만도 50여개국인데, 이 나라들이 바로 이슬람문명권을 이루고 있다. 무슬림 수를 지역별로 보면 서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구소련에서 이탈한 중앙아시아 6개국과 중국, 북아프리카(이집트, 수단,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모로코, 모리타니), 서아시아의 비아랍국(터키,이란,아프가니스탄), 서아시아의 아랍국(사우디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아랍에미리트, 오만, 카타르, 에멘)순이다. 국가별로 보면 1위와 2위는 뜻밖에도 이슬람교가 국교가 아닌 인도네시아와 인도이며 그 다음으로 방글라데시와 나이지리아 순이다. 민족, 인종별로 보면 인도족, 말레이족, 터키족, 아랍족, 니그로, 한족, 이란족 순이다. 이러한 분포상황에서 보다시피 무슬림의 80%가 아시아에 편재해 있고, 게다가 이슬람의 발원지가 서아시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슬람의 주역은 분명히 아시아 무슬림이며 이슬람교는 다름아닌 아시아 종교라고 할 수 있다.3. 아랍1)의미: 아랍은 중동과 북부아프리카에 걸쳐 22개 국가에 2억 6천여 만 명이 살고 있는 광대한 지역으로 세계사적 발달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을 잇는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하면서 문명과 사상의 발상지로 역할을 맡아왔다. 이 지역은 세계 3대 종교중 하나인 이슬람의 발상지로서 중세 이슬람 문화가 찬란히 꽃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아랍은 또 현실적으로 아랍권이라는 강력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면서 국제 정치 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은 석유자원의 공급처로서도 그 중요도가 높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상품과 기술 및 인력 시장으로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역이다.2)지리적 개념①걸프 연안 및 아라비아 반도-이 지역은 홍해, 아라비아해, 페르시아만 등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에멘,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바레인, UAE,오만이 이 지역에 속한다.②레반트 지역- 1920년 프랑스가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점령한 이후 이 지역 국가들이 레반트 지역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레반트는 프랑스어의 ‘lever'즉, ’해가 뜨다‘는 동사의 파생어로서 ’해뜨는 곳‘을 의미한다. 현제 헤반트라는 명칭은 시리아, 레바논에 적용되고 있으며 간혹 이라크, 요르단도 포함되기도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업패러다임 이란 용어는 미국의 과학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쿤(Thomas Khun)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단어의 의미인 ‘보기, 모범, 시대지배적인 과학적 대상파악의 방법과 특정영역‘ 보다 깊고 넓게 이용되었다. 쿤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과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물과 상황의 지각(,perception)에 있어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의해 나머지는 잘못 보거나 안보게된다. 즉,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의해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선택적으로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 또는 인식하는데 있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의 역할을 하는 필터와 같은 지각체계를 패러다임이라 한다.한 시대의 패러다임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낡은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 경영에 있어서도 경영자들이 자신의 규칙과 법칙인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해 현상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패러다임에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배척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소비자나 새로운 환경요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이는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환상에서 기업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성공이 되풀이되지 않는 단절의 시대, 예측불허의 시대에는 기존 경영자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선입견과 경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기업들이 처해 있는 새로운 상황을 경영자들이 직시하는 사고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경영자들이 사물이나 현실을 지각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는 기존의 필터를 새로운 것으로 교환해야 한다. 즉, 기업조직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여건에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코 비교경쟁우위를 점할 수가 없다.과거에도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존의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정면대결을 해 왔다. 16세기 베니스의 갈릴레오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당시의 사상과 체제를 고집하던 사람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16세기건 20세기건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선 거부되는 쓴맛을 보게 된다세계적인 시계산업국으로 불리었던 스위스도 오만한 자신들의 패러다임에 빠져 오늘날의 영광을 일본에게 차츰 넘겨 주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세계 시장의 65%를 점유하는 성과를 기록한 스위스는 10년 후 세계 시장의 10% 정도로 시장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 시계산업의 성공요인은 스위스에서 먼저 개발된 전자시계의 판매에 있었다. 1967년 새롭게 탄생된 이 미래의 시계는 불행하게도 유수한 스위스의 시계업체들에게 거절당하는 서러움을 겪었다. 새로운 발명이나 개발을 보호하지 못한 스위스 시계업계는 연례적으로 열리는 세계박람회에 아무런 보안 조치 없이 전자시계를 전시했다. 이때 미국과 일본이 동시에 이 새로운 시계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해 왔고, 일본은 이 기술을 확대 발전시켜 오늘날 전자시계로 세계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일본의 성공요인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제품의 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했다는 데 있다.이미 확립된 패러다임을 스스로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점차 경쟁이 격화되어 가고 있는 시장의 변증법적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체념해 버리거나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존 패러다임의 창조적 파괴를 스스로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종업원의 장기적 고용확보라는 차원에서 기업의 패러다임 전환은 필수적이다.일렉트로닉스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기존의 가전기기메이커가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에 새로운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ME), 특히 반도체 직접회로(IC, LSI)의 발전에 따라 가전업계와 컴퓨터사무기기 및 카메라 업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 가전제품 그 자체의 성질도 변하여 ME,와 융합하기 시작했다. 가저네이커 가운데 이 변화에 가장 먼저 대응하여 기업의 패러다임을 혁신한 회사가 샤프이다1960년대까지 사프는 가전제품 중심의 조립메이커였다. 트랜지스터나 브라운관 등 주요부품을 자사 안에서 직접 제조하지 않고 조립하는 것으로 특화했다. '저코스트의 조립전업메이커'라는 것이 당시의 샤프의 패러다임이다. 그 이미지는 '좋은 물건을 싸게' 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지금의 샤프는 반도체 직접회로를 중심으로 가전제품, 사무기기 등 다양한 제품구성을 가진 '종합전기메이커'로서 '차별화 상품으로 특화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고 있다. '좋은 물건을 싸게'라는 패러다임으로부터 '특징 있는 상품을 내놓는다'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기업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원들에게 많은 노동을 시키고 적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유한킴벌리는 가동률 하락, 재고증가, 강경노조 등으로 표출된 경영위기를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깨는 접근법으로 해결했고 이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위기대처방안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4조 교대제와 평생학습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종업원의 역량강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유한킴벌리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4개조로 나누어 예비조를 운영하는 4조 교대제를 도입하여 종업원이 4일 근무하고 4일 휴식을 취함으로써 종업원에게는 여가활용과 재충전, 교육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사측은 고용안정과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1960년대 미국 커피 회사들은 포화된 시장을 탈출하기 위해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품질과 향은 뒤로 한 채 값싼 원두를 캔에 섞어 팔았다. 스타벅스는 이러한 커피를 소모적 경쟁이 아닌 ‘감성’으로 접근해 1000년 커피 역사를 새로이 쓰기 시작했다.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람과 사회가 만나는 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사도 무모한 경쟁보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성공했다.1971년,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업에 출사표를 던지며 기존 항공사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택하는 교통수단이 무엇인가에 주목했다. 그 결과 적잖은 사람들이 중단거리를 비행기가 아닌, 자신의 차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우스웨스트의 차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우스웨스트의 ‘언제든 출발이 가능하고 값이 싸며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초저가 중단거리 항공 여행은 그렇게 탄생했다.
♣ 작가 김영하에 대한 소개1. 프로필- 이름: 김영하- 생년월일: 68년 11월 11일 전갈좌- 혈액형: B형- 가족사항: 아내, 방울이, 깐돌이(고양이)- 사는곳: 서울, 상암구장 근처 불광천변- 고향: 강원도 화천- 특기사항: 하룻밤에 단편 한편을 써내는 속필로 유명- 학력: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주요작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1997), 《호출》(1997), 《사진 관살인사건》(2001), 《오빠가 돌아왔다》(2004) 등이 있으며, 산문집 《포스트잇》(2002) 이있다. 영화에도 관심을 보여 영화산문집 《굴비낚시》(2000)와 만화가 이우일과 공동작 업한 《김영하?이우일의 영화이야기》(2003)를 펴냈으며,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와 《말아톤》각색작업을 하였다. 또한 변혁 감독이 연출한 《주홍글씨》는 《사진관 살 인사건》과《거울에 대한 명상》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검은꽃》도 영화화할 예정이 다. 그리고 최근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엮어《랄랄라 하우스》라는 산문집 을 냈다.- 주요수상: 19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과 1999년 《당신의 나무》로 제44회 현대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검은꽃》으로 제35 회 동인문학상을, 2004년《보물선》으로 제4회 황순원문학상을, 2004년 《오빠가 돌아왔 다》로 제16회 이산문학상을 받았다.- 1995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2005년 현재 한국예술 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2. 성장과정- 유년시절: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 본적은 경북 고령이지만 그곳에서 산 적은 없다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전전하며 유년을 보냈다.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며 살지 못한 그는 기억을 빨리 소거하는 재능을 습득하고 기억을 대신하여 소설과 신문을 읽었다. 주로 계몽사판 세계문학전집과 백과사전을 탐독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탄가스를 마셔서 죽을 뻔하였으나, 고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데 결국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대학시절: 그 후 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경영학과가 대학에서 사라져야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대신 동아리 활동에 열중하여 국악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대금을 붐.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과 동기였던 이한열의 죽음을 목도 한 후 그후로 서서히 맑시즘에 관심을 가졌고 두 번의 연애와 두 번의 장기가출을 저질렀다. 3학년 때, ROTC 후보생이 되었다. 맑시 스트이면서 ROTC인 모순적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동아리연합회 총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89년 4월 19일, 을지로 백병원 앞 가투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ROTC 증명서를 보여 주며 거짓말로 둘러대고 풀려났고 그해 89년, 임수경이 평양에 입북하던 여름. ROTC 전방입소훈련에 불참함으로써 제명되었다.- 대학시절 그 후 : 대학원에 진학한 후인 1991년, 컴퓨터 통신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인간관계는 컴퓨터 통신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하이텔의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 문예분과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통신망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거기서 새로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문예지를 탐독하고 본격적으로 글 쓰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군 복무 중이던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제출했으나 낙선, 같은 해 같은 작품으로 「리뷰」를 통해 등단했다. 제대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원 영어강사를 했으며, 1995년부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같은 해 8월 장편 로 문학동네 신인작가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터키와 타이, 캄보디아와 유럽 등을 여행했고, 1996년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참고자료: 《포스트 잇》(현대문학), 《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김영하 홈페이지 www.cyworld.com/TimeMusiem♣ 김영하의 작품세계1. 도시적 감수성, 탐미적 악마주의의 세계와 새로운 서사적 시도- 초기 유려한 서사적 테크닉은 기존의 다른 작가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작법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지만, 근본적인 측면에서 소설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김영하의 소설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근대적 산문 형식으로서의 ‘소설’은 격렬히 부정 당한다. 고뇌에 찬 문제적 개인의 길찾기,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찬란한 감동의 세계를 열망했던 독자들은 그의 소설 앞에 당혹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세련되고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의 내적 세계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세계 안에는 단자화된 개인들의 피로와 권태가 일렁이지만, 정작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문학에 대한 작가의 흔해빠진 애정 고백이나, 신변잡기적 기록조차 찾기 힘들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휘장 속에 숨긴 채 오로지 화려한 가상 현실 속에서만 독자를 만나고자 한다. 즉, 작가는 현실보다도 더 교묘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허구를 우리 앞에 들이대는 것이다. 현란한 뮤직 비디오에 수많은 장면들이 모자이크되는 것처럼 광범위한 문학 소재들이 조립되고 모방되고 변형되어 소설에 등장한다. 그것은 재현의 원리에 기초하는 리얼리즘의 규약도, 정치한 미학을 자랑하는 모더니즘의 환상도 비켜서는 아슬아슬한 시도이다.2. 이야기꾼의 두려움 없는 질주- 두 번째 소설집《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김영하의 두 번째 소설집을 읽어나가는 데 ‘이야기꾼’ 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김영하의 이전 소설에서 선명한 형태로 드러난 나르시시즘적인 인물 유형이나,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구성 방식은 두 번째 소설집에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러나 몇몇 단편에서 되풀이 되었던 감상적인 후일담 모티프라든지, 영상적 문화 기호의 차용, 성과 욕망의 미학화라는 주제는 이번 소설집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예를 들어 이나 에도 죽음으 모티프와 에로티시즘적 시선, 나르시즘의 징후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소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작가는 ‘리얼한’ 소재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더욱 ‘허구적인’ 영토를 넓혀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그리하여《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그의 두 번째 소설집에서 그의 소설들은 일상인의 초월 욕구와, 그것을 기만하는 현실 사이에서 튕겨져나오는 삶의 아이러니컬한 에피소드들을 환각적 탈주의 형식으로 포착하였다고 결론을 맺을 수 있겠다.3. 구멍뚫린 ‘도너츠’ 같은 소설- 세번째 소설집《오빠가 돌아왔다》초기의 김영하는 그의 날카로운 촉수로 언제나 새롭고 자극적인 시대의 징후를 소설로 담아냈다. 빵 만드는 사람으로 치자면 그는 빵 속에 넣을 만한 더욱 달착지근한 잼과 크림을 찾았던 셈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도너츠를 만들었다. 도너츠가 도너츠인 것은 빈 구멍이 있기 때문. 그렇듯 이야기를 비워놓음으로써 이야기하는 방식이다.“도너츠가 도너츠인 것은 구멍이 있기 때문이죠. 소설도 구멍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제 소설이 질주하는 인간을 등장시킨 단선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의미들이 드나들 수 있는,구멍이 뚫려있는 다선적인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과거의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뒷골목을 헤매며 소리를 지르고 퍽치기하는 부류였지요. 거개가 흡혈귀가 나오고, 번개를 맞고, 절규하는 이야기였는데…저도 모르게 ?센 이야기? 중독에 걸렸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번 주인공들은 질주형 인간이 아니라 주변을 천천히 관찰하는 관조형 인간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뭔가 일어난 느낌 같은 것을 소설에 담으려고 했지요. 요즘은 그런 것에 끌려요.?라는 작가의 말처럼 김영하의 세 번째 소설집《오빠가 돌아왔다》에 묶인 8편의 단편은 한결같이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일상의 결정적인 단면을 포착한다. 일상의 디테일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묘사를 그냥 적당한 선에서 버무려놓는 데 그친 소설들을 통해 그는 오히려 일상의 이면에 숨어있는 텅빈 느낌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미뤄진 이야기, 대담한 생략의 나머지를 채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과 지성사)《오빠가 돌아왔다》(창비)2004. 03. 08 일자 국민일보 일부 발췌♣ 김영하, 문학적으로 다가서기* 소설가가 된 동기‘우연히'였다. 학창시절,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무협지에 빗댄 우스갯소리를 하이텔에 올렸고, 이것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이텔에 올린 글이 하이텔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이것을 본 출판업자가 장편으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발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협학생운동》(1992) 이었다. 이후 《월간중앙》《뉴스메이커》등에 당시의 정치현실을 빗댄 등의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글들을 쓰면서 이와는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자의식이 생겼다."정치소설을 쓰면서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소설에는 주문한 것 이외에는 쓸 수 없었으며, 또한 금기사항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이러한 글을 쓰는 동안, 현재 내가 쓰고 있는 글은 근대소설이 아닌 근대소설 전단계의 이야기이거나 로망에 불과하다는 회의가 들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쓰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는 자의식이 생겼다. 정치소설의 주문 생산이 결국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준 셈이다."이 후 작가의 관심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로 모아진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통로를 통해 시대의 본질을 향해 항해한다. 그가 시대를 바라보는 프리즘으로 선택한 것 중 눈에 띄는 것은 나르시시즘, 섹스, 죽음 등이다. 역사 시대 민족으로부터 거리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대학 시절 나는 국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또 민족의 주체성을 특히 강조하는 운동이념에 동조했었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와 민족 등의 개념틀은 이미 90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서 떠나버렸다. 역사와 민족 등이 90년대의 인간에게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역사다》中)
-김영하 ?검은꽃? 서평들어가며.김영하는 이른바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작가이다. 젊은이들은 담백하고 생기발랄한 그의 문체에 매력을 느낀다. 그는 다양한 글을 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작품에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던 김영하는, ?아랑은 왜?를 통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였다. 최근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역시 그의 맛깔스러운 문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포스트 잇?이라는 짧은 에세이집을 내는가 하면, 이우일씨와 함게 ?영화 이야기?를 내기도 했다. 사촌동생은 내가 추천해 준 책이 모두 너무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했지만, 유독 김영하의 ?검은꽃?만은 재미있었다며 작가의 다른 책을 또 추천해 달라고 했다. 확실히 김영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도대체 김영하가 대변하고 있다는 젊은이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은 그가 가벼워서 좋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부담스럽지 않다. 문체가 깔끔하고, 구성이 늘어지지 않으며, 이데올로기도 없고, 딱히 유머러스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카타르시스도 없다. 그러나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과식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소한 간식들이 영 부족하게 느껴지겠지만, 김영하는 자취방에 대강 차린 밥상처럼 진정한 삶의 터전인 일상을 무겁지 않게 담아낸다. 더 이상 민중가요가 울리는 후끈한 술자리가 그립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김영하는 일상만큼이나 편안하다.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 줄지어 ?허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허무는 무기력한 허무가 아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삶의 모습들을 발견한다. 오히려 그의 허무는 가슴 안의 부담을 덜어준다. 일종의 정형화된 감정들을 유발하는 ?객관적 사건?은 그의 글 안에서 여지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늘 예측했던 대로 살아가기는 힘든 일상 속의 사람들을 위로한다.1. 민족과 국가 - 이데올로기의 부질없음베네딕트 앤더슨은 에서 민족주의의 허구를 지적한 바 있다. ?민족?이라는 것은 국가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구성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니시카와 나가오는 을 통해 일본 근대 국가의 성립 과정과 그 안에서 ?국민?이 만들어지는 과정, 국민 개개인에게 ?애국심?이 학습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이 두 저자의 고찰은 우리의 이야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민족?이라는 것은 가슴 뭉클한 무엇이지만, 그것이 근대국가 초기에 이데올로기의 산물로써 타의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성시는 라는 책에서 고구려사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점을 살펴보며 우리의 민족의식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역사?는 문학 작품 속에서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물론, 역사는 현재와 대화를 하기에 의미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현재를 위해 억측하여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박제된 유물로서의 역사는 현재에 예속된 상태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현재와의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 시대의 정신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소설 속에서 인물을 가공할 때 또 한 번 역사의 ?왜곡?이 이루어진다. ?현대적인 재해석?이 아니라 ?현대에 의한 곡해?가 되는 것이다.김영하의 ?검은꽃?은 일제 강점기에 멕시코로 이주해 간 대한제국 국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애니깽?이라고 불리는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는 그들의 이야기는 민족주의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김영하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느꼈던 것만큼만 ?민족감정?에 대해서 관여한다. 이는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은 국가와 겹쳐서 투영된다. 황제 중심의 가부장적 종법제도는 ?국가?라는 외연을 쓰고 더욱 감정적인 구심점이 된다. 외세의 침략, 근대로 인한 혼란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 군인 출신의 조장윤은 멕시코에서 반상의 차별이 없는 새로운 국가 ?신대한?을 세우고자 하지만, 그 역시 마야인을 지배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지배자로서의 국가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에 이정도 국가를 세우기를 열망하지만, 작가는 민족의식의 제고를 위해서 이러한 일화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민족?과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을 배반하는지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2. 근대와 개인 - 미시적인 역사 고찰의 의의또한 그의 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근대?라는 화두이다. 근대는 거시적인 모습으로 고찰되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근대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것은 한편으로 ?침략?이면서 한편으로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딱히 한 방향으로 정형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분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그들이 근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고, 사회적 지위를 벗어난 개인의 층위에서 다시 한 번 다양하게 나누어졌다. 그는 같은 배에 탄 1033명의 조선인들 안에서 그 차이를 다양하게 드러낸다. 또한 개인의 내부에서 근대는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정은 멕시코(?)의 혁명군에 가담하는데 이는 돈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남자들만의 끈끈한 세계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그는 즉흥적이면서 이데올로기에 집중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다시금 국가를 세울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예측은 어긋난다. 연수는 시대가 변함으로 인해서 여성도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상주의적인 연수는 현실의 고난과 육체적인 쾌락 앞에서 변해갔으나, 작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변화?는 ?적응력?으로 기능하여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정과 연수의 로맨스는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지만, 결국 이 로맨스도 성사되지 않는다. 삶에서 예측할 수 있는 모든 일들, 많은 이들이 가슴에 품고 살고자 하는 ?위대한 이상?이 실제의 삶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작가는 주인공의 로맨스조차 아끼며 설파한다.근대에 살았던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근대에 살고 있다는 관념 없이 막연히 변화를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대에 대한 ?담론?들은 근대 초기나 그 이후나 소수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구성되었다. 근대 초기의 작품들은 근대를 받아들이는 지식인과 대중의 괴리를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영하는 근대에 대한 거대담론들이 무너져가는 현 시점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근대를 고찰하고 있으며, 그의 시선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살았는지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실패?와 ?한계?로 인식되었던 것들이 삶의 한 모습으로 당당히 소설 안에 등장한다.3. 조소와 허무와 삶 - 현실적인 해결책과의 괴리에 대한 김영하 비판에 대하여이 소설을 읽고 황석영씨는 ?한 줄기 바람이 휑 하니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책의 뒤편에 실린 남진우 시인의 서평 역시 ?무를 향한 여정?이라는 제목을 통해 이 작품의 허무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허무함은 ?당돌함? 혹은 ?젊은이스러움?으로 비춰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무는 아무 것도 낳지 않는, 생산적이지 않으며 무기력하다는, 문학이기 때문에 존재 가능한 멜랑꼴리한 정신세계로만 인정을 받기도 했다. 젊은 세대의 다소 과격해 보이는 허무는 세기말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요즘의 문단엔 걸출한 작가가 없이 감정만이 난무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영하 역시 그러한 허무한 감상들이 도대체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여러모로 진중하지 못한 작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그러나 ?검은꽃?이 각종 문단의 상을 휩쓸면서 김영하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의 허무를 ?깊이 있는? 허무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절절한 대의명분 없으면 쉽게 좋다는 느낌을 느끼기 힘든 문단도 근대 초기를 통찰력 있게 그려 낸 ?검은꽃?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사실 이런 경향은 근대 초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의 입장이기에 가능하다. 20세기 초기에 근대를 사유했던 중국의 소설가 욱달부의 ?피의 눈물?에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근대를 사유할 수 없는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중국은 ?주의?에 휩싸여 있었으며, 근대의 물결 속에 제각각 ?주의?를 주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근대 초기 지식인을 사로잡았던 ?거대 담론?에 대한 비판과 해체가 이루어졌다. 김영하의 ?검은꽃?도 이러한 작업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당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인 데다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이 무의미한 작업이 아니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