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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교와 유교의 신화적 의미 평가A+최고예요
    < 도의 신화적 의미와 신화의 유가적 포획 >>동아시아 철학사의 두 물줄기 가운데 하나인 도가철학의 도는 그 기원에 대해 연속적이다. 개념을 통해 사물을 대체함으로써 단절을 이루었지만 그 개념이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부터 주조되었으며, 따라서 그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앞에서 논증한 것이 이것이다. 만약 이런 논증이 타당하다면 도, 혹은 도가적 우주론은 여전히 신화의 세계인식을 그 저변에 놓아두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문제를 구체적 형상을 통해,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노자』를 계승한 『장자(莊子)』의 혼돈에 관한 이야기이다.남해의 제를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를 홀이라 하고 중앙의 제를 혼돈이라고 한다. 숙이 홀과 때로 서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아주 잘 접대했다. 숙이 홀과 더불어 혼돈의 덕을 갚을 일을 의논하면서 이르기를, "사람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만이 그것이 없으니 시험삼아 구멍을 뚫어줍시다"라고 했다. 매일 한 구멍씩 뚫어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었다.) 南海之帝謂 , 北海之帝謂忽, 中央之帝謂混沌. 與忽時相與遇于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與忽謀報混沌之德, 曰 "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 此獨無有, 嘗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莊子·應帝王』이 이야기는, '혼돈'이라는 신[帝]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우의적으로 다루고 있어 창세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신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 우의적 성격 때문에 창세신화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도가적 세계관의 접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 우언(寓言)은 남해의 신과 북해의 신이 과분한 접대에 대한 보답으로 얼굴이 없는 혼돈신의 얼굴을 빚어 주었는데, 말하자면 착한 마음으로 한 행위가 오히려 행위의 대상을 죽게 했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다. 이 혼돈의 죽음에 대해서 신화를 원초적 상징의 현현으로 보는 신화 이해를 빌어 '새로운 세계는 죽음을 통해 탄생'한다는 식의 상징적 해석이 가능) 리쾨르는 바빌로니아의 창세신화를 보여주는 「에누마 엘리쉬」를 해석하면서 티아맛을 죽이고 승리에 이르는 마르둑의 형상에 대해 그는 '창조하기 위해 파괴'했다고 말하고 있는데(자세한 것은 폴 리쾨르, 양명수 옮김, 『악의 상징』, 문학과 지성사, 1994, 1장 참조), 원초적 상징으로 해석한다면 혼돈의 죽음도 티아맛의 죽음과 방사한 데가 있다. 리쾨르의 이런 종교현상학적 사고는 엘리아데와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혼돈의 죽음을 원초적 사건에 대한 상징으로만 이해한다면 '혼돈'의 본령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할 것이다. 죽음과 생명이 잇닿아 있다는 것이 자연계의 원리이고 신화서사에 두드러진 인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이 이야기를 신화적 문맥으로 적극 끌어당긴 결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신화가 아니라 우화라는 관점에서 견인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신화와 우화(寓話), 혹은 우언(寓言)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할 터이나 논지를 벗어나는 문제이기에 차후의 과제로 돌린다. 다만 여기서는 신화는 상징의 언어를 통해 다의적 의미를 환기하지만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방식으로 조직된 우언은 항상 어떤 의미로 번역되어 쉽게 풀리고(의미의 단일화) 한번 풀리고 나면 알레고리 자체가 필요 없는 옷으로 전락한다는 관점을 취한다는 것만을 언급해 두기로 한다.장자는 이 이야기를 다의적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유가 등의 철학적 관점에 대한 명백한 정치적 우언으로 던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02.12.03| 5페이지| 1,000원|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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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문해자에 대하여 평가A좋아요
    1. 의 명칭이 책 명칭의 뜻은 바로 文字를 說解했다는 의미이다.說解는 각각 한자의 뜻과 음이 설명할 ‘설’, 풀이할 ‘해’자이다. 즉, 文字(문자)를 설명하고 풀이하였다 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한자의 모양(形)과 소리(音)와 뜻(義)을 자세하게 해설한 책이라는 의미이다.2. 의 구성총 15편.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편찬하였다.이 책은 敍(서) 1편(그러니까 요즘 책의 서문), 본문 14편으로 총 15편으로 100년부터 121년 사이게 걸쳐서 만든 최초의 한자 자전(字典)이다.그 중 말미의 서(敍) 1편은 진한(秦漢) 이래 문자정리의 연혁을 밝힌 것으로 100년에 완성되었다. 그 당시 통용된 모든 한자 9,353자를 540부(部)로 분류하고, 친자(親字)에는 소전(小篆)의 자체(字體)를 싣고, 그 각 자(字)에 자의(字義)와 자형(字形)을 설해(說解:訓解釋)하였다. 소전과 자체가 다른 혹체자(或體字:古文·文)는 중문(重文)으로서 1,163자를 수록하였다.*허신(許愼) - 자 숙중(叔重). 여남군 소릉(汝南郡召陵:河南省) 출생. 고전학자 가규(賈逵)에 사사하여 널리 유 가(儒家)의 고전에 정통하였으며, '오경무쌍(五經無雙)의 허숙중'으로 세간에 이름이 났다. 학파 로는 선진(先秦)의 고서체(古書體)에 의한 원전(原典)을 중시하는 고문가(古文家)에 속한다. 상 세하고 정치한 학풍은 특히 문자학에 대한 깊은 조예에서 특색을 발휘하였으며, 《설문해자(說 文解字)》(30권)는 한자의 형(形)·의(義)·음(音)을 체계적으로 해설한 최초의 자서(字書)로서 불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경의 해석에 관한 이설(異說)을 집성한 《오경이의(五經異義)》 (10권)도 있었으나 산일(散逸)되어 전하지 않는다.3. 의 체계이 책은 한자를 풀이하면서 먼저 한자의 본래의 뜻을 살펴보고, 그것으로부터 바뀐 뜻이나 변한 뜻을 살펴보고, 그런 다음 해당 시대에 사용되었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 한자(漢字)를 가지고 기록한 모든 서적의 진정한 뜻을 알 동물, 식물, 옷, 건축, 여러 가지 기구와 같은 우리가 사는 세상 물체의 모양을 그려내는 방법인데 원래 모양을 그대로 그려내기도 하지만, 원래 모 양에 다른 모양이나 부호를 더하거나 생략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대표 적인 상형자를 살펴보면(1) 물체의 원래 모양대로 그려서 만든 상형자(象形字)- 日(해(일)) -해의 요점을 그렸다. 이그러지지 아니함을 강조하여 해의 둥근 모양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月(달(월)) -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지러진 달의 모양을 그렸다.(2) 물체의 원래 모양에 다른 모양을 더하여서 만든 상형자(象形字)- 果(과일(과)) -과실나무의 열매 모양을 그려낸 「田」에 나무를 뜻하는「木」을 더하여과실나무의 열매라 는 의미의 漢字가 되었다.- 母 (어미(모)) -女子를 뜻하는 「女」자에 젓가슴을 나타내는 두 개의 점을 더하여 젖을 먹여서 어린 아이 를 키우는 것이 어머니의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의미의 한자가 된다.- 眉(눈썹(미)) -눈을 뜻하는 「目」자에 혼자서는 漢字의 3요소(모양, 뜻, 음) 를 갖추지 못하고 단순히 눈 위의 눈썹과 이마의 주름살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을 더하여 눈위에 있는 눈썹을 뜻 하는 漢字가 되었다.(3) 물체의 원래 모양에 다른 모양을 더하여서 만든 상형자(象形字)- 烏(까마귀(오)) -새를 뜻하는 「鳥」자에 까마귀는 온 몸 전체가 까맣기 때문에 까만 눈이 분영하게 구별이 되지 않아서 「鳥」자에서 눈에 해당하는 하나의 획을 빼서 까마귀를 뜻하는 漢字가 되었 다.② 지사(指事):추상적인 기호로 특정한 사태를 암시한 문자(→下 ·→上)글자의 뜻(가리키다指(지), 개념事(사)) 그대로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다.에는「指事者, 視而可識, 察而見意, 上下是也」라고 說 明되어 있다. 즉, 자세히 드려다 보고,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애써 살펴보아야 그 뜻이 보인다 는 뜻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고대 사람들은 하늘의 형상, 땅의 모양, 사람의 몸, 동물, 식물, 옷, 건축, 여러 가지 양을 더하여서 만든 지사자(指事字)- 本(근본(본)) -「木(나무(복))」자 밑에 「一」을 더하여 나무의 뿌리가 있는 부분을 가리켜 「밑」,「근본 (根本)」이란 뜻을 나타낸다.- 末(끝(말)) -「木」에 나무끝을 나타낸 지시부호「一」이 더하여져있다. 즉, 나무의 위쪽인 가지 끝에 「一」을 더하여 '끝'이란 뜻을 나타내었다.(여기서 一은 하나란 뜻이 아니고 나무끝을 나타내주는 지시부호임)- 甘(달(감)) -사람의 입을 뜻하는 「口」에 「一」을 보태 입 속에 음식물을 씹어 맛을 보는 행위를 통해 「맛있다」, 「달다」는 뜻을 나타냈다.(3) 이미 있던 글자에 모양을 바꾼 지사자(指事字)- 交(사귈(교)) -「大(이 글자는 사실 사람이 두 팔과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죠)」에서 양쪽 다 리를 서로 엇갈린 모양으로 획을 약간 모양을 바꾸어 나타냈다.(4) 이미 있던글자 모양을 줄여서 나타낸 지사자(指事字)- 夕(저녁(석)) -달에서 글자의 획일부를 생략하여 해가 진 뒤 달이 희미하게 나타난 저녁을 나타내고 있다. 즉, 초저녁에는 아직 덜 어두워서 달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月」자에서 한 획을 빼서 아직 밤이 되지 않은 무렵이란 뜻을 나타냈다.③ 회의(會意):기성 친자(親字)로 합성한 문자(人+言→ 信)글자의 뜻(모을會(회)), 뜻意(의)) 그대로 두 개 이상의 글자를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나게 해주는 것이다.에는「會意者,比類合誼,以見指,武信是也」라고 說明되 어 있다. 즉, 여러 가지 종류(類)의 한자를 배열(比)하여 새로운 한자의 뜻을 합한(合誼) 후 새 로운 뜻을 나탸내준다는 (以見指) 뜻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木은 뜻과 음은 나무(목)이다. 그러면 木 + 木은 나무에 또 나무가 합쳐있으니 바로 숲이 되죠. 바로 수풀(림)자입니다. 林은 나무라는 뜻을 가진 한자 둘을 어울려 숲이라는 한자를 만들었답니 다. 그러면 木 + 木 + 木은 나무에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었고 다시 숲에 나무가 있으므로 이 숲은 굉장히 빽빽하다. 그래서 빽빽할(삼)자이다을 나타내는 「又(또(우))」와 대나무 가지의 일부분을 생략한 「十」을 합하여 대나 무 가지를 손으로 쥐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④ 형성(形聲):해성(諧聲)이라고도 하며 발음을 나타낸 음부자(音符字)에다 유별(類別)을 나타내는 변(邊)을 첨 가한 문자(江 ·河 등)글자의 뜻(모양形(형)), 소리聲(성)) 그대로 두 개 이상의 글자를 결합하되 모양을 나타내는 부분 과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을 합하여 한자를 만든 것이다.에는「形聲字, 以事爲名, 取譬相成, 江河是也」라고 說 明되어 있다. 그 의미를 풀이하면 즉,상형과 지사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한자(事)로써 한자(名) 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으로 삼는다는 뜻이다.좀더 쉽게 설명하면,江자를 한번 보자. 물을 뜻하는 한자와 工(장인(공))이 합해진 모양이다. 工은 우리 소리로는 '공 '이지만 중국 발음으로는 '꿍'이다. 물줄기가 협곡의 바위에 부딪칠 때 중국 사람들은 '꿍꿍'한 다고 한다. 따라서 江은 工 + 水 즉, 꿍꿍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水는 물줄기라는 뜻을, 工은 '꿍꿍"거리는 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한 쪽 부분은 뜻을 다른 한 쪽 부분 은 소리를 나타내고 있다.이처럼 두 개 이상의 글자를 결합하되 한부분은 소리를 나타내고 다른 부분은 뜻을 나타내도록 짝짓는 원리를 형성이라고 하고 이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자를 형성자(形聲字)라고 한다.형성자(形聲字)들은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한 경우외에도 문자의 획을 더하거나 생략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형성자를 살펴보면,(1) 둘 이상의 글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형성자(形聲字)- 依 (의지할(의) -사람이 옷에 의지(依支)하여 몸을 지킨다는 뜻으로 人은 뜻을 나타내는 부분, 「衣(웃(의 ))」는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의 기능(機能)을 담당(擔當)하고 있다.- 放(쫓아낼(방)) -죄를 지은 사람을 멀리 쫓아 버린다는 뜻이다. 회초리를 들고 톡톡 친다는 뜻의 한자와 소 리를 나타내는 부분인「方(모(방))」이 짝지어져 있다.(2) 둘, 令은 長이라고 주석한다)글자의 뜻(구를轉(전)) 물댈注(주))그대로 두 개 이상의 글자를 가지고 같은 글자로 인정하여 사 용하는 방법이다.에는「轉注者, 建類一首, 同意相受, 考老是也」라고 설 명하고 있다. 즉, 類를 세우고 首를 하나로 하고, 뜻이 같으면 서로 통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類」는 「律(법률(률)」즉, (성률)聲律의 개념이다. 「律」을 「聲律」로 擴大 解釋했을 때 이 聲律은 또다시 雙聲·疊韻·同音의 槪念을 內包하게 된다. 왜냐하면 「聲」이란 단순히 소리라 는 개념으로부터 닿소리(聲), 홑소리(韻) 등 音韻論적으로 가치(價値)있는 소리를 의미하기 때문 이다.한편 「一首」의 「首」에 대해서 그는 이것을 어기(語基)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建類一首」란 성률(聲律)로써 하나의 어기(語基)를 삼는다. 즉 쌍성(雙聲)·첩운(疊韻)·동음(同 音)으로 두 문자(文字) 사이의 공통점(共通點)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해석(解釋)할 수 있으며 「同 意相受」는 같은 뜻의 경우 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建類 一首, 同意相受」란 두 문자 사이에서 자음이 같거나 모음이 같은 경우, 혹은 동음일 경우, 이것을 공통점으로 삼되 뜻이 같기 때문에 서로 그 의미를 통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즉, 전주라는 원리는 자음이 같거나, 모음이 같거나, 혹은 자음과 모음이 같은 글자가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두 글자를 같은 글자로 인정하여 통용하는 방법이다.예를 들어보면,「考(살필(고))」「老(늙을(로))」를 통하여 이를 확인해 보면 좀 더 쉽게 전주의 개념이 납득되어 질 것이다. 「考」의 음은 「고(kao)」이고 「老」의 音은 「노(lao)」이다. 「考」와 「老」는 첩 운 (ao)를 어기(語基)로 삼아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이 두 문자는 서로 바꾸어서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考」를 쓸 자리에 「老」를 쓸 수 있고 「老」를 쓸 자리에 「考」를 쓸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전.
    인문/어학| 2002.11.30| 8페이지| 1,000원| 조회(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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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선호사상의 인구학적측면에서의 분석
    < 남아선호사상이 인구학적인 측면에서우리 나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 >흔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인구정책을 수행한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제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0.94%이며, 2028년에는 인구가 마이너스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허점이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이제는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로 구호가 바뀐 것에서 알 수 있지만 성비불균형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는 결혼 적령기 즉 25-34세의 남성들이 결혼 적령기인 20-29세인 여성 100명당 117명이 된다고 한다. 이는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남녀 성비의 불균형의 원인을 과거 우리 나라에 만연했던 남아선호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아이를 낳으면 아들을 낳기를 바라고, 아기가 딸이면 아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거나 심지어는 아들이 아닌 경우 임신 중절을 시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전통사회의 씨받이 같은 풍습도 그 예의 하나이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상이 남아 있어 여아보다 남아의 비율이 많은 남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남아선호사상이 남녀의 성비 불균형이라는 결과를 낳기위해서는 매우 많은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염색체는 x.y 염색채로써 남.녀 가 태어날 수 있는 비율은 수학적으로 따지면 정확하게 1:1 인데도 불구하고 태어나게 될 "잘못된 성"에 속하는 태아를 낙태시킴으로써 성비의 불균형이 야기된 것이다. 국내의 한 연구에 의하면 성감별에 의한 인공유산이 90년 이후 연간 2만5천여건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선별적인 성 선택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성비불균형은 가속화되어 인구 구성상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이다.물론 위의 예들에서만 본다면 단순히 남아선호사상은 단지 과거의 우리의 전통이 세습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시대의 우리들의 잘못된 고정관념 또한 남초현상의 한몫을 하고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여아 낙태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으며 여아 낙태가 오히려 이미 출생한 여아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는 수단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만연한 남녀 불평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만약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계속된 상태에서 단지 성비의 균형만은 강압적으로 맞추려 든다면 이미 태어난 여아에게는 차별이 강화되고 일상화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에 높은 남자의 비율로 인하여 실제로 남녀 불평등이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고학력의 젊은 세대 여성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더 이상 부여된 역할에만 순응하려 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그러하고 또 서구의 남녀 평등사상이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고 이에 대하여 특별한 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아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향상되어 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한 사회적 지위의 향상이 상대적인 관점이라는데 또한 문제가 있다. 즉 여자의 상대적 비율이 낮기 때문에 "여자의 지위가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실질적인 지위의 향상을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1999년 초 여성 공무원은 26만3853명으로 전체 공무원의 29.7%를 차지한다. 전체 여성 공무원 중 55.0%는 교육공무원, 17.9%는 기능직에 몰려 있다. 정무직(0.8%), 외무직(3.3%), 법관.검사직(4.7%)의 비중은 매우 낮다. 일반직 공무원 중 여성은 20.8%로 그 중 98.3%가 6급 이하이다. 1급은 1명도 없고 2급 3명(0.7%), 3급 19명(1.8%), 4급 137명(2.0%), 5급 825명(3.8%)에 불과했다. 유엔이 정한 여성 권한척도(GEM)또한 매년 점점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과학| 2002.10.29| 2페이지| 1,000원| 조회(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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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택동의 분석 평가B괜찮아요
    毛澤東 (mao2 ze2 dong1 : 1893~1976)마르크스 주의자, 무산계급 혁명가, 전략가 및 이론가, 중국 공산당원, 시인, 서예가 이기도 했던 모택동은 '위대한 중국 지도자'로 칭송 받는 인물.◈주요 정치 이력1936~1976 :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43~1945 : 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주석1945~1976 : 중앙 위원회 주석1949~1954 :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주석1954~1959 :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모택동 사상의 시작子는 윤지(潤之), 필명은 자임(子任)인 모택동은 1893년 12월 26일 호남의 농민 집안 태생이다. 초기 혁명활동은 1911년 신해혁명 후, 호남에서 봉기한 신군에 가입하면서 부터이다. 1913~1918년에는 호남의 제 1 사범 대학을 다녔으며, 1920년 에는 신민학회 와 러시아 연구회를 조직하여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호남에서 공산주의 조직을 창건하였고, 1921년 제 1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 대회에 참석하였다. 1924년에는 손중산의 국민당 재건 활동에 참여하였고, 국민당 1기, 2기 활동중 중앙 후보집행위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선전부 장관대리를 역임하였다.1927년에는 무한에서 전국 농민 협회 총간사를 역임했으며, 중앙 농민운동 강습소를 주관하였다.이 무렵, 그는 과 라는 글을 발표하였으며, 무산계급 지도자층과 농민동맹에 의한 혁명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명확이 밝혔으며, 진독수(陳獨秀)의 우경투항주의를 비판하였다.(우경투항주의 : 右傾投降主義 , 사회주의를 견지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굴복한다는 뜻.)◈모택동 사상의 형성 초기1928년 4월에는 중국 농공 홍군 제 4군을 만들고, 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5월에는 중앙 상감 변방의 제 1차 대표대회에서 특별위원회 서기로 뽑혔고, 후에 중국공산당 제 4군 전적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으며, 6월에는 중국공산당 6 기 중앙위원으로 뽑혔다. 이 시기의 혁명 실천을하면서 모택동은 실로 많은 경험을 하였고, , , 등등의 저작을 남겼다.◈모택동 사상의 성숙기1936년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으로 있었으며, 1937년에는 항일전쟁을 맞이하여 간부들 수준을 끌어올리고, 극복교무주의를 위해 과 이란 철학책을 썼으며, 마르크스 주의의 '인식론'과 '변증법'을 알리고 발전시켰다. 1943년 3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주석, 중앙서기처 주석 으로 당선되었으며 후에, 계속하여 중앙위원회 주석자리를 죽는 날까지 역임하였다.항일 전쟁 무렵, , , 등 중요한 저작을 발표하였고, 중국 신 민주주의 혁명의 이론과 정책, 정치, 경제, 문화 강령을 천명하였다.◈ 건립일본에 맞선 인민해방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모택동은 장개석의 공산당 소멸 기도와 그의 무장력 실현에 겨냥하여 "침봉상대(針鋒相對) " 라는 투쟁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45년 8월 중경으로 가서 장개석과 담판을 지어 을 체결하였다. 1946년 여름, 장개석은 전면 내전을 발동하였는데, 이에 모택동은 쌍방의 힘을 비교 분석하고, 전략상 적을 얕보아야하지만, 전술상으로는 적을 중시해야 한다, 라고하며 장개석의 정치방침과 군사원칙을 물리치고, 장개석의 전면 공격을 분쇄하고, 진공 후에는 즉시 전략적인 역공을 가하는 등 전략 결전의 승리를 얻었다. 1949년 6월에 을 발표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의 성질 및 그 내외정책을 천명하였다. 9월에는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제 1 차 전체회의를 주도하여 를 제창하고 통과시켰으며, 중앙인민정부를 만들어 주석이 되었고, 마침내 10월 1일, 북경 천안문 에서 전 세계에 성립을 선포하였다.(針鋒相對 : (成語) 바늘 끝과 끝이 마주 대하다, 첨예하게 대립하다.)◈모택동의 공헌과 오류1953년 모택동의 건의에 따라, 중국 공산당 중앙은 과도기에 있는 당의 총 노선을 선포하고, 체계적으로 사회주의 공업화 실현과 생산품 사유제의 사회주의 개조를 시작 하였다.1954년 제 1차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서 그가 주관하여 기초한 이 통과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임명되어 1959년까지 임했다.1958년 대약진과 농촌 인민 공사화 운동을 발동하여, 1960년 겨울부터 1965년까지 중국 공산당 중앙의 지도 하에 국민 경제의 "조정, 견고, 충실, 제고" 의 방침을 실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일련의 조치를 내 놓아, 농촌 작업중이나 기타 방면의 "좌"의 오류를 대체적으로 바로 잡았다.
    인문/어학| 2002.10.30| 3페이지| 1,000원| 조회(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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