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13가지 질문1.점포선정은 어떻게 하는지?점포선정은 개설문의자가 직접 물색하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일부 추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본사가 추천하는 경우 부동산 시세가 상승하여 점포 임대가 어려워지고 높은 임대료로 인해 손익부분에서도 불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점포를 직접 물색하실 경우에는 인근에 기존점이 있으면 그 주위를 피하여 검토하시고 본사로 시장조사 의뢰하시면 됩니다.개설문의자가 의뢰한 위치에 대해 본사에서 승인이 되지 않는다면 임차조건이 양호하거나 자가 건물이라 할지라도 개점할 수 없습니다.2.일평균 매출은 어느 정도인지?점포의 상권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점포별 매출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각 상권별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본사에서 가맹점을 개점할 때에는 본사가 시장조사한 예상매출이 손익분기점 이상이 될 때 개점승인이 됩니다.3.적정한 점포 임대가는 어느 정도인지?기준은 없습니다. 상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점포 물색후 본사로 상권과 임대가를 알려 주시면 본사가 시장조사후 적정 임대가를 파악하여 그 상권에 맞는 임대가를 통보해 드릴 것입니다.4.점포 마진율 및 재고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점포별로 마진율은 다르며 평균 50%내외(상권에 따라 차이) 정도 됩니다. 마진률이 다른 이유는 도너츠류, 커피류, 음료류의 매출이 총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른 차이입니다.도너츠 재고는 개점 후 15일 동안은 기간 중 총 주문량의 15%내에서 본사가 재고 부담을 하게 되며 그 이후에는 점포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셔야 합니다.재고처리 방법은 인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시면 연말 소득공제 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품을 익일 재판매할 경우 본사와의 계약해지 사유가 된 유의해야 합니다.5.지하철, 거리 자판에서도 판매가 가능한지?던킨도너츠는 전문매장 이외에서는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전문매장이 아닌 매장에서 납품받아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그 이유는 바로 제품 신선도 때문입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판매하는 것은 던킨도너츠가 아닌 타사 유사제품입니다.6.개점 시 투자한 금액은 얼마나 회수가 가능한지?실평수 20평 기준으로 점포임대 비용을 제외하고 15,000만원 내외로 투자비용이 소요되며 폐점시 회수 가능한 금액은 투자비 내에서 본사보증금 1,000 ~ 1,500만원이 전부입니다.나머지는 자체적으로 처분하셔야 합니다.7.타인에게 점포양도, 양수는 가능한지?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이유는 본사에서 점포관리가 곤란하게 되며 점포양도, 양수시 권리금부분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 던킨도너츠를 빌미로 권리금차액의 이익을 노리고 점포개설을 하는 가능성을 방지하는 차원입니다.8.배스킨라빈스 31과(와) 같이 매장을 꾸밀 수 있는지?불가능합니다. 초기에는 본사 영업전략상 같이 꾸민 경우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단독점으로만 개점합니다.9.영업시간은 조절 가능한지?영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입니다.특수 상권(극장, 백화점 등)에 따라서는 영업시간의 조절이 가능합니다만 그렇치 않은 경우는 반드시 영업시간을 준수하셔야 합니다.단, 영업시간의 연장은 가능합니다.10.주고객층 및 매출 발생 시간대는 언제인지?주고객층은 20대 여성층(직장인, 대학생 등)이며 부가적으로 중,고등학생, 30대 주부층입니다. 매출 발생 시간대는 상권에 따라서 상이하지만 주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입니다.11.매장규모가 반드시 실20평 이상이어야 하는지?네, 그렇습니다.단, 매장 형태에 따라서 1~2평정도 부족해도 가능할 수 있으며 상권에 따라서는 30평 이상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12.일반형 매장과 카페형 매장은 어떻게 구별하는지?
대중 가요가 청소년에게 끼치는 영향들어가며언제부턴가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대중 가요의 우람한 전파력으로 인해 현대는 바야흐로 음악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공간이 되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가요는 없어서는 안될 것이 되었고 심지어는 가요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단계까지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과 음악의 관계는 친숙해졌고 이에 따라 가요를 향유하는 사람의 폭과 계층은 무한정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가요 향유의 양적 수준은 실로 엄청나다. 쏟아져 나오는 대중 가요 분량의 47%가량을 청소년들이 소비하는 추세이며 가요 자체도 청소년을 겨냥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이러한 사실들을 전제할 때 대중 가요가 청소년의 심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물음은 장차 우리 나라가 어떠한 모양새로 변화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가요 문학의 측면에 있어서도 이 장르가 어떤 방향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는 자료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청소년과 대중 가요1. 음반 시장 규모와 소비 연령층2000년 현재 음반 시장의 총규모는 에 따르면 4,104억원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편 시장을 형성하는 소비 연령층의 현황은 아래의 표와 같다.)10대20대30대기타47%31%16%6%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대의 음반 시장 장악력은 전체 사회의 절반 가까이 되며 금액으로는 1,929억원에 달한다. 또한 20대 초반의 청소년기를 막 벗어난 인원의 수를 감안하면 청소년층은 전체 가요 소비율의 50%를 좌지우지하며 가요 향유와 시장 형성에 가장 중요한 계층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계층이 되는 것이다.2. 가요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청소년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세대라 할 수 있다. 이 신세대라는 계층은 기성세대와는 여러 가지의 기준이 달라진다. 가치관, 감성, 생활 태도 등이 그것이다. 신세대건 X세대 건 간에 중요한 것은 이들은 이미 '여기' , '지금'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지칭할 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그 주변의 존재물이라는 인식하에 ‘주변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일반적이고, 틀에 박힌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 즉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성질 자체를 몸으로 꺼린다는 것이다.그러한 청소년 계층의 출현과 맞물려 가요계에는 대중 문화 범주의 선두에 나서서 앞으로의 가요와 대중 문화를 오로지하게 될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이 센세이셔널한 충격과 함께 나타난다. 그들은 거의 한 순간에 전 국민의 입에서 '난 알아요!'라는 흥얼거림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또한 야구 모자와 푸대자루같은 반바지, 그리고 손을 앞으로 구호 외치듯이 휘젓는 동작을 유행시켰다. 그러면서 이른바 '랩' 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1년후 TV를 떠나 버렸던 그들은 갑자기 태평소를 요란하게 휘날리면서 일반인들의 구강 구조로는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는 노래로 '하여가' 를 불러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신세대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그 기관총 같은 가사를 넉넉하게 따라 불렀다. 여기서 이른바 파격적인 유행들은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통바지, 머리모양, 댄스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것들을 보고는 '잘못되었다' , '나쁘다' , '절대 안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청소년 즉 신세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우리들만의 문화이고 우리가 형성하는 새로운 문화의 원소이기 때문이다.대중 음악은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그 예로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을 거론하겠다. 그들은 불경하게도 수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총격을 다해 돌파하려 애쓰는 통일이라는 문제를 자신들의 제목과 주제로 삼았다. 그들의 콘서트에서는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각기 하얀 티셔츠에 새긴 무용가들이 거대한 태극기를 배경으로 춤추는 가운데 이들은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고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그 앞에는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손을 흔들며 공감을 표시했다. 당연히 이 순간에 최루탄이 터지고 폭동이 일어났어야 하겠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청소년들의 우상이라는 점도 약간은 배제되어 있지만, 역시 청소년들은 그들과 분단의 아픔을 마음속에 새기며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만이라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당당하고 자신있는 청소년의 모습을 출현시켰으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고민해 나가는 풍토를 조성해 나갔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이었다.그러나 마냥 대중 가요가 청소년에게 좋은 생각만 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요는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반드시 존재한다. 결국 가수도 대중 가요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그 가수를 따르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다지 좋은 것이 많지 않다. 그 첫 번째 예로 인기 가수의 콘서트와 가요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어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을 한다고 하면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는 청소년들이 많다. 인터뷰를 해봤더니, 학교를 가지 않고 교복 차림 그대로 왔다는 것이다. 또한 왠만한 인기 가수의 콘서트에서도 이러한 청소년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들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스타를 기다리고 사인을 받기 위해 서성이며 집까지 찾아가 만나달라고 행패를 부리는 과정에서 이웃 주민에게까지 피해를 주어 집값이 떨어지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나아가 알게 되면 대중 가요가 청소년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두 번째 예로 모방심리를 들 수 있다. 어느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가수가 상을 받고 '여러분 사랑해요' 라고 하면 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더 열광한다. 과연 그 가수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1위를 하게끔 해준 여러분들에게 소속사로부터 돈을 더 받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로 해석하면 어떨까? 결국 가수는 가요팬의 사랑과 인기를 돈으로 바꾸어 먹고 사는 직업이다. 하기에 시쳇말로 가요가 한 번 ‘뜨면’ 자연히 생활이 호화로워 질 수 밖에 없고 이 모습들은 가수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청소년들에게 대부분 공개된다. 모두가 다 이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 모습들을 보고 동경하며 그에 반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심히 여기게 된다. 결국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가수들이 협찬을 받아 착용하고 나오는 의상이나 액세서리는 거의가 명품이다. 왠만한 중산층 집안에서도 구입을 망설이는 고가품들이지만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저질러 가면서까지 가수들의 그것과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자연히 공부는 뒷전이 된다.모방 심리는 다른 면에서도 작용한다. 예전에 해외에서 인기있었던 ‘글루미 선데이’ 라는노래가 발표되었다. ‘글루미 선데이’ 는 1935년 음반으로 발표돼 이 음악을 들은 헝가리인 187명이 자살하고,또한 작곡자 레조 세레스를 비롯하여 가수,연주자들이 잇달아 목숨을 버려 '자살의 송가'로 불리는 유명한 곡이다. 이 노래는 실제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반사회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노래를 듣고 죽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노래를 듣고 자살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의 수가 더욱 늘었던 것이다.
「미디어의 이해」(1964)를 저술한 마셜 맥루한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며 문화 비평가이다.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는 지금까지도 미디어 이론의 거대한 틀이라 할 수 있는 마셜의 미디어 이론을 정립한 결정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4년에 씌어진 책이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거의 모든 대학에서 개설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정보사회 관련 수업에서 텍스트로 읽혀지고 正典으로 평가받는 것은 실제의 현대적인 양상들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그의 견해가 그만큼 탁월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미디어의 이해」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대전제 하에 미디어를 다시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나누고 있다. 간략히 정리하면 핫미디어는 높은 정세도(精細度: definition)를 지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수용자가 메시지를 재구성하는데 투입하는 상상력의 정도가 떨어지는 반면 쿨미디어는 정세도가 낮기 때문에 메시지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져서 수용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따라서 인간은 핫미디어에 비해서 쿨미디어와 같은 테크놀로지를 새롭게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맥루한은 대표적인 쿨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을 꼽았다. 그것은 텔레비전이 과거 원시시대의 인간이 행했던 청·촉각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내며, 음성언어와 인쇄술이 만들어 놓은 조각난 인간을 전인으로 복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2부에서는 이렇게 1부에서 논의한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확장이라는 핵심적인 그의 견해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갖가지 매체나 현상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전제가 되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즉 모든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확장이며, 이 미디어가 미치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영향은 곧 우리들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은 우리의 삶에 도입되는 새로운 척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책을 읽고 난 후의 파장은 나에게도 대단했다. 40년 전의 인간이 예견할 수 있었던 오늘을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고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의 여러 이론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공감하면서 관심이 갔던 것은 바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였다. 이 말은 내가 파악하기에 미디어가 담고 있는 내용이 메시지라는 말과는 달리 미디어 그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미디어들은 자체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와는 관계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과 수단에 있어서도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들의 메인 홈페이지를 가보면 ‘링크’라는 기술을 이용한 수많은 볼거리와 뉴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관심 있는 정보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하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과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미디어 형식은 현대인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동시다발적인 사건과 현상들을 그다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한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간편하고 직선적이길 바라며 실제로도 그러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윈도우 시리즈의 프로그램과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전, 모뎀을 사용할 당시 D.O.S 환경의 통신 유저들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입력 해야만 하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했다. 예를 들면 1990년 초중반 당시 한창 인기 있었던 천리안이나 나우누리의 유머 게시판을 보기 위해서는 터미널을 통해 로그인을 하고 각종 색인을 확인한 후 게시판으로 이동하고 다시 거기서 유머 게시판으로 가는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수고를 거쳤다. 그러나 요즘에도 이러한 형식을 도입한 업체가 있다면 창업 자체가 어렵거나 힘들게 창업을 하더라도 일주일안에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현상은 이제 사회 전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컨텐츠 산업의 첨병으로 인정받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도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지 않게끔 하기 위해 각종 정보로 가득 찬 홈페이지를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게임 안에서도 갖가지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유저들이 플레이를 함에 있어 혼선을 빚지 않게끔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정보가 불명확한 게임은 비록 그 게임성이 뛰어나고 재미있다 하더라도 사장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들의 메시지 전달 형식을 보면 각 미디어가 구매목표 층으로 설정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표제를 크고 굵게, 요란하고 튀는 색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를 오늘날의 모습에 적용해 볼 때 현대의 미디어 자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신속성과 간편성, 합리성인 것이며 이러한 추세 속에서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어렵사리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 것이다.두 번째로 공감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확장이라는 측면이었다. 맥루한은 도로, 주택, 인쇄물, 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 모든 매체가 인간을 확장시킨다고 믿었다. 즉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 이고, 전자신호는 중추신경 계통 확장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이 인간을 시각 중심적으로 만들었다. 즉 인간의 감각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인간은 감각균형을 다시 찾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전신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 미디어가 청각 촉각 등의 약해졌던 감각을 살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미디어를 통한 끝없는 감각기관 확장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결국 인간 삶을 변화시켰다. 깊이 들어가자면 책에서 시작된 눈의 확장은 인터넷 화면을 비춰주는 모니터까지 이르렀고, 다리의 확장이었던 바퀴는 무형적 관념으로까지 확장되어 무선을 통해서도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전자신호는 이러한 기반을 제공하고 나아가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을 구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장된 것이다. 즉 맥루한은 1960년대에 오늘날의 가상현실이 일반적인 관념으로 수용되고 있는 사회상을 예견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의 가치이론.1) 마르크스주의와 노동가치론자본주의적 생산 양식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바탕으로 레닌의 제국론, 그리고 그 후 반세기에 걸친 약간의 자본주의론이 추가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하고 잉여가치론을 분석 장치로 삼아 자본축적의 법칙, 자본집중의 법칙,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빈곤 증대의 법칙, 공황론, 계급론, 제국주의론 등등의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도출, 정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설명, 주장하고 있다.전술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이론체계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것은 공산주의 경제학이며, 이 경제학 가운데서도 그 토대 내지 설명원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노동가치설이다. 즉,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기반으로 잉여가치론을 유도하고 거기서 착취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 이러한 착취에 의해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로 급기야는 몰락한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물론 공산주의 경제학에 있어 노동가치설은 그 토대 내지 설명원리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노동가치설이 무너지면 착취의 이론적 근거가 소멸되고, 공산주의 경제학 자체의 이론체계가 무너져 결국 공산주의 이론체계가 존립되기 어렵다. 노동가치설은 한마디로 모든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데 가해진 노동의 분량에 의하여 결정되고, 그 크기는 노동시간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공산주의 경제학의 노동가치설은 기계가 충분히 발달되지 못하여, 제품생산에 있어 노동이 주가 되고 기계가 보조역할을 하던 시대에는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었으나. 기계문명의 발달로 오늘날처럼 기계가 주가 되고 노동이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 하에서는 노동가치설을 적용하기 어렵다. 결국 경제가치는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나 발명, 자본, 그리고 기계의 효율적 사용 등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임에도,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된다는데 노동가치설의 근본적인 모순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가치설은 이질적인 노동을 모두 등질의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또한 정신노동의 소산인 발명기술이나 눈에 띠지 않는 이론 활용의 노동 가치를 인정치 않음으로써, 정신 내지 의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바, 이는 유물론적 입장에 근거한 것으로, 만약 정신적인 노동을 물질적 육체노동보다 앞세우거나 우위를 인정하면, 유물론이 무너지고 이에 바탕을 둔 노동가치설 자체도 이론적 근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자체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데, 상품의 가치는 노동자의 노력이 노동가치가 정당하다는 윤리적 요청에 호소하고 있으나, 사적 유물론에서 물질적 의미에서의 역사적 필연성만을 주장하고, 정의나 도덕은 관념적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2) 잉여가치론잉여가치론은 노동가치설을 기초로 수립된 이론으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론에 의거하여 자본가가 자본을 가지고 획득하는 이윤의 원천을 밝혀내려 하였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가 계급은 그들이 소유하는 생산수단과 고용된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생산 활동을 담당하게 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 활동을 위하여 소모되는 생산수단과 노동의 가치를 초과하는데, 그 차액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고 명명하였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러한 잉여가치는 노동자계급이 생산해낸 것이므로 노동자계급에게 분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은 소위 산업예비군의 압력을 이용하여 그것을 지대 이윤 또는 이자의 형태로 착취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따라서 공산주의 경제학에 있어, 잉여가치론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는 잉여가치의 생산이 그 직접적인 목적으로 되어 있는데, 잉여가치론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에 의해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비밀을 폭로하여, 이러한 착취의 제도인 자본주의로부터 노동자계급이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본주의제도 자체의 폐지, 즉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길뿐이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에 그 존재의 이유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3. 총평살펴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논리적 준거로 존재했으며, 과거 지구의 절반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이론으로 기능했다.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가장 근원적인 곳에서 자체의 이론을 지탱하고 나아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활발히 활용되었다. 한편 잉여가치론은 노동가치설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가 궁극적으로 꾀하고 있던 것,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유를 밝히는 근거로 적용되어 전 세계의 반을 마르크스의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약 150년 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폐해와 문제의 심각성을 꿰뚫어 보았으며 이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조모색과 문학의 다양한 분화국어국문학과 980036 정대홍193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1. 시대 개관당시 조선을 점령하고 압제의 칼날을 휘두르던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약간의 변화는 있었으나 일관적으로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를 위한 탄압, 영구 예속화를 위한 민족 고유성의 말살과 철저한 경제적 수탈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대체로 일제 강점기는 무단 정치기(1910~1919), 문화 정치기(1919~1930), 병참 기지화 및 전시 동원기(1931~1945)의 3기로 구분한다. 이러한 일제의 조선 통치 정책에 따라 1930년대의 한국 문학은 어쩔 수 없이 극도로 억압받는 상황을 맞이하였으며 결정적으로 당시 문단을 주도해 오던 KAPF가 1935년에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사실 KAPF의 해체는 이미 1930년대 초반부터 어느 정도 그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김기진의 대중화논쟁으로 시작된 1930년대의 KAPF는 이미 자체적인 모순이 어느 정도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문학을 이념과 사상의 선전 도구로 삼으려 했던 KAPF 작품들은 그러나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어려웠다. 왜냐하면 읽었을 때 재미가 없어서 대중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의식한 김기진이 KAPF 소설의 창작에 대중소설의 작법을 도입하여 더 많은 대중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나 당시 KAPF를 주도적 위치에서 이끌던 임화는 오히려 이를 맹렬히 비난한다. KAPF 문학의 본령(本領)은 한낱 흥밋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그 자체로서 사회를 제도하고 사회주의 혁명 이념의 강조 및 실천과 함께 독자들의 의식화를 충실히 돕는 것에 있다는 것이 임화의 주장이었다.이러한 갈등 속에서 일제는 문화정치기를 정리하고 대동아공영권의 망상을 위한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을 점차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곧바로 KAPF 맹원들의 1차 검거 사건으로 이어진다.) 도쿄에서 발행된 「무산자」와 영화 「지하촌」사건으로 김남천을 비롯한 맹원 11명이아래 사회성이 배제된 예술성 위주의 작품 활동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멀리 역사적 소재를 택하여 거기에 작가의식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거나 하게 했으며, 한편으로는 농촌의 현실에 눈을 돌리는 소극적 항거의 방향으로 변모하게 하였다.1930년대 문학계는 이렇게 당대 문단을 마르크시즘이 가진 강력한 지도성으로 이끌던 KAPF가 해체되면서 미미하게나마 반KAPF의 선봉에 서있었던 국민문학파도 흐지부지 되어 버린 가운데 정신적 공황 상태를 맞이한다. 이런 공황 상태는 포스트 KAPF를 모색하기 위한 당대 문인들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노력들은 1920년대 말에 등장한 모더니즘 문예 사조와 함께 1930년대의 매우 다양한 문학적 양상을 이끌어 냈다.2. 문단의 정황과 소설의 경향1930년대의 문단의 정황과 소설의 경향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이 시기에 이르러 새로운 세대의 문인이 다양해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신문학의 초창기에 활동한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등이 여전히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신경향파 문학에서 KAPF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이에 등장한 이기영, 최서해, 채만식, 이효석, 유진오, 계용묵, 이태준 등이 중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3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문학인으로는 이무영, 김동리, 이상, 김유정, 김남천, 박태원. 심훈, 정비석 등이 있었다. 이들에 의해 씌어진 작품이 그 경향의 다양성을 드러내게 되면서, 1930년대의 문학은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둘째, 1930년대 문학은 저널리즘의 발달과 함께 증가한 문학 인구와 경향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조가 현저히 드러나 있지 않았다. 이 시기에 서구의 문학 이론이 보다 직접적으로 수용되고 그 실천적 활동이 확대되었으며 창작의 기법도 점차 세련되어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제의 식민지 상황이라는 당대적 현실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며, 대부소설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삶의 총체적 의미를 추구하고,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출해내기 위해서는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소설이 더욱 필요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창작기법에 대한 논의와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은 소설의 장르를 더욱 포괄적인 것으로 확대시켜 놓았으며, 그 결과 주목할 만한 장편이 대거 출현하였다. 염상섭의「삼대」, 채만식의 「탁류」,「태평천하」, 이기영의 「고향」,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김남천의 「대하」, 박태원의 「천변풍경」등은 모두 이 시기의 소설문단에 발표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었다.넷째, 1930년대 소설의 보여주는 소재의 다양성은 이 시기 문학세계의 폭을 말해주는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도시적 공간이 제기하고 있는 세태의 특징을 그려내는 채만식, 박태원, 유진오 등의 작품은 풍자와 비판을 드러내게 되면서 지적인 세련미를 더했다. 한편 이와는 달리 농촌의 삶을 그려나간 작가들도 많았다.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그린 이광수, 심 훈이 있고, 농민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을 추구하여 농촌의 궁핍현상을 비판하고 타파하고자 했던 이기영, 이무영 등의 작품도 발표되었다. 한편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한 일종의 우회적 접근을 시도한 역사소설도 많았고, 개인의 내면적 심리를 추구하는 소설도 나왔다. 애정의 테마를 바탕으로 사회현실을 그려나간 대중소설도 이 시기에 대거 등장하였다.다섯째,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는 30년대 소설문단의 경향은 그 가능성을 드러낸 소설적 기법의 세련을 가져왔다. 세태에 대한 풍자의 방식이 문제시되면서 채만식에 의한 풍자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치밀한 묘사와 세련된 언어의 구사는 이효석, 박태원, 김유정 등의 소설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등장했다.3. 소설 작품의 다양한 양상1930년대의 소설은 어떤 일관된 기준으로 나누기에는 그 작품들의 내용과 형식면에서 볼 때 적절한 기준을 찾기 어려울 만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1표적인 소설로 윤직원 영감과 그의 가족들을 통해 사회의 부정적인 면모를 통렬하게 풍자, 비판한 작품으로 제목과 작품의 상황 설정에 반어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효과를 더하고 있다.② 이효석 - 「메밀꽃 필 무렵」,「산」,「들」,「개살구」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서정적이고 참신한 감각의 세련된 문장 표현이 유명하며, 이국적 정서와 성의 육감적 묘사에 따른 에로티시즘으로 고유의 문학적 특색을 나타냈다.③ 유진오 - 「김강사와 T교수」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식민지 하에 놓인 지성인의 고민을 주로 다루었다.④ 이 상 - 「날개」,「종생기」,「지주회시」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자학적, 절망적 자의식 속에서 심리주의 기법을 사용한 특색 있는 작품을 남겼다. 이상은 근대 문학의 위상을 한 계단 끌어올린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⑤ 이태준 - 「복덕방」,「까마귀」,「달밤」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태준의 작중인물은 주로 구세대의 노인이며, 이태준에게 근대화라는 세계의 변화는 가치 있는 것의 소멸로 수용된다. 근대화라는 거대하고 막강한 사회적 변혁 앞에서 구세대의 노인들은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태준의 작품은 몰락하는 구세대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처리하는 상고주의를 전형적으로 내보인다.⑥ 박태원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천변풍경」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반 계몽, 반계급주의 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히 묘사함으로써 작가적 위치를 확보하였다.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정신과 「천변풍경」에서 신변의 풍속 세태를 카메라의 시선과도 같이 파노라마식으로 표현한 것은 이른바 풍속소설의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⑦ 김유정 - 「소나기」,「동백꽃」,「산골 나그네」,「금따는 콩밭」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주로 벽지 농촌의 소박한 인물을 등장시켜, 토속적인 어휘 구사로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했다.⑧ 이기영 -「고향」,「서화」,「신개지」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KAPF 작가에 속했다, 「고향」은 1930년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작이라고까등 불구나 이색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암시적으로 풍자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⑪ 김동리 - 「화랑의 후예」,「바위」,「무녀도」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는 주로 샤머니즘을 비롯한 토속적,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어 그 안에서 휴머니즘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이 외에도 「젊은 그들」등의 역사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⑫ 현진건 - 「빈처」,「운수좋은 날」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정밀하고 사실적인 상황의 묘사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운수좋은 날」은 한국 리얼리즘 단편소설의 전범이 된다. 한편 그는 장편으로「무영탑」과「흑치상지」등의 역사소설도 집필하였는데 이를 통해 민족의식과 민족적 저항의식을 은근히 고취하고 있으며 식민지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민중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였다.4. 1930년대 문학의 한계점.1930년대 문학은 소재의 다양화 및 표현 기교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오늘날의 현대문학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930년대 문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도 적지 않다.식민지 치하라는 특수한 시대 배경으로 인해 우리 소설은 서구의 문예이론을 비판적,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주로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을 서구의 문예이론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몇몇 유파의 것들만이 전부인 듯 인식되었다. 모더니즘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서구의 예술 사조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말로는 근대주의 혹은 현대주의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문학이라는 한 영역에 한정해서 정의한다면 근대 낭만주의나 리얼리즘, 마르크시즘을 극복하고 보다 이성적이고 문명적인 언어로 모더니티를 의식하면서 새로운 언어의 미학을 추구하려는 모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1910년대부터 제기된 새로운 문학운동으로 입체파, 미래파, 이미지즘, 주지주의, 다다이즘, 신 심리주의, 초현실주의를 총칭한다.) 그러나 우리 소설사에서의 19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