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잭슨 폴록의 생애(1912.1.28 ∼1956.8.11 )잭슨 폴록(Jacson Pollock)은 와이오밍 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다가 퇴학 처분을 받고, 1930년에 뉴욕으로 와서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업한다.(1939∼1933) 그 후 뉴욕에서 토마스 하트 벤톤과 함께 그림공부를 하였다. 토마스 하트 벤튼의 제자였으나, 벤튼의 사실주의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와는 반대로 이 시기의 폴록은 광활한 미국 서부를 소재로, 지욕주의 성격이 보이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이미 전통화법과는 거리가 먼, 물감을 두껍게 채색한 예외적인 화풍을 보이고 있다. 2차 대전 중 뉴욕에 망명중인 초현실주의자들과 만나 인간정신의 자동기술법에 매료되었다. 신화와 상징,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안의 회화 기법에서 영감을 얻고, 구스타프 융식의 정신분석법에서도 영향을 받은 폴록은 점점 더 폭력적인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송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붓 놀림이 더욱 강해지고 폭발적이 되어감에 따라 그의 그림에서 형체가 사라지게 된다. 마치 그의 고뇌를 감추기라도 하는 듯, 그림의 중심에 나타나던 토템과도 같이 위협적이던 인물들을 해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상형문자와 같은 것으로 뒤집어 씌워버린다.대공황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토마스 하트 벤튼·호세 클레멘테 오로츠코·데이빗 알파로 시퀘이로스· 파블로 피카소 등의 영향을 소화해 간다. 1943년 작 가 이에 속하는 작품으로 이는 그 이듬해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의해 구입된다. 페기 구겐하임의 화랑에서 1943년에 첫 개인전을 갖으며, 1947년부터는 베티 파슨스 화랑이, 1952년부터는 시드니 제니스 화랑이 그의 전속 화랑으로 일한다.1945년 롱아일랜드로 이주한 폴록은 헛간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그 유명한 뿌리기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가 뿌리기 기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930년대 말 시퀘이로스의 실험 공방에서였다. 그러나 뿌리기 기법이 실험적 의미를 넘백 구상화, "블랙 페인팅"을 발표하다가 다시 1940년대의 작품과 유사한 드리핑 작품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 작품은 대표작으로 알려진 에서 알 수 있듯, 대개 복잡하게 얽힌 선들만으로 이루어졌다.그러나 이미 이 때에 그는 음주와 신경쇠약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심리 치료를 받는 등 불운한 삶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이 시기 폴록의 작품을 그의 심리적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특히 1970년대 휘트니 미술관이 폴록이 정신치료를 받으며 그렸던 드로잉을 전시하면서 그의 작품을 융의 정신분석학에 입각해 해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폴록의 치료를 맡았던 조셉 헨더슨이 “도입기에 있던 융의 정신분석학을 대중화시키기 위하여 폴록을 이용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좀더 폭넓은 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로 대체되었다.그리고 1956년 8월 11일 폴록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과속으로 운전하다 롱 아일랜드의 이스트 햄튼에서 차량 전복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Ⅱ. 잭슨 폴록의 작품세계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전 세계적인 양식으로 발전시키면서 유럽의 조형적 이론에서 자유로운 미국적 미술양식의 기틀을 세운 사람은 폴록이다. 폴록의 활동 자체가 추상표현주의로 귀결될 만큼 폴록은 미국의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드리핑(뿌리기) 기법이라는 자동 기술법을 사용해서 회화를 전통적인 구속에서 해방시킨 가장 선구자적인 인물이다.벤튼의 벽화 강의를 통해 폴록은 호세 오로즈코와 알파로 시퀘이로스의 벽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또한 19세기 미국 회화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에 속하는 라이더(Albert P. Ryder)의 어두우면서도 낭만적인 바다 풍경화에 감명을 받기도 하였다.폴록은 페기 구겐하임의 화랑 '금세기의 미술'에서 1943년 개인전을 가졌을 때, 14점의 회화를 보여주었는데 비평가들은 규율을 무시하고 용솟음치는 폴록의 넘치는 에너지에 주목했다. 그 당시 폴록에게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토양에서 자라난 미술로서 당연히 폴록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폴록은 인디언들이 대상의 외적 형태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에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그들만의 독특한 기호로서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무의식이 미술의 근원이 되는 자동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는 1936년 시퀘이 로스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은 신화와 관계된다. 그는 초기회화에서 자동기술법을 이용하여 우리가 꿈속에서 보는 새들이나 로마를 창건한 늑대 혹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 파시파에(Pasipae)등의 주제들을 다루었다. 폴록의 신화는 환상적인 환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과 결합되면서 일종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영양분이 된다. 또는 신화는 유기체와 순수한 인간 내면에 관심을 갖게 한다. 폴록은 회화라는 것은 미술가가 어떤 개인적인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고백이 때로는 상징적인 형태가 되고 때로는 작품 제목이 되기도 한다. 폴록은 초기작품에서 융의 인간 내적인 심리를 바라보는 눈을 자주 표현하였다. 공중에 떠있는 눈은 신의 눈이자 자아의 눈이며 정신분석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폴록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만든 실업자 구제기관이 제공하는 일을 하다가 윌리엄 바지오츠를 알게 되었고 곧이어 바지오츠를 통해 로버트 마더웰을 알게 된다. 이 세 명의 화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동기술법을 탐구하기 위한 그룹을 만들었고 '자동주의적 시(詩)'를 쓰기도 하였다. 마치 초현실주의 자동 기술법의 효과처럼 시도 한 구절씩 써서 논리적 순서를 따지지 않고 결합시켜 한 편의 시를 만든 것이다.이 그룹은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하였지만, 세 사람이 채택한 자동기술법은 뉴욕 화단의 풍요로운 형태의 다양성으로 발전하였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자동기술법을 다양하게 응용하여 받아들였고 마더웰은 '초현실주의 제 1차 보고서'(First Papers 행위의 흔적으로 뿌리기를 시도하였다. 이 뿌리기에 의해 여러 가지 형상들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과 같은 작품을 창조하였다.폴록은 드리핑 기법의 효율성을 위해 전통적인 유채물감 대신에 공업용 왁스인 듀코 에나멜 물감을 사용하였고, 이젤 위에다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또한 캔버스를 팽팽하게 잡아당기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못, 집게 등을 이용하여 고정한 후 사용한다.그의 작업은 유럽의 이젤 회화의 전통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보여준다. 캔버스는 행위의 전투장으로 정의되기 위해 땅바닥 위에 평면으로 누워있다. 캔버스는 이젤 위에서 그려지는 대신에 땅위에서 직접적으로 화가와 함께 호흡한다. 땅바닥에 펴놓고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와 화가는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화가는 그림의 일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바닥에 펼쳐져 있는 캔버스는 대지와 밀착되어 촉각적인 공간이 되고 화가와의 육체적 투쟁 끝에 스스로 결정되는 회화적인 공간이 된다. 화가는 화폭의 주변을 걸어다닐 수 있고 어느 방향이든 화가가 원하는 위치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리하여 화가는 진정으로 그림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부 인디언들이 모래 위에다 작업했던 방법과 흡사하다. 폴록은 이젤 위에서 그리는 전통적인 회화에 질식할 것 같은 구속감을 느꼈고 폭발할 것 같은 행위를 통해 자유로운 본능과 정신의 해방감을 표출하였다. 그는 광활한 대지 위를 달리는 서부의 사나이처럼 거대한 캔버스 주위를 달리거나 천천히 걷거나 속도를 조절하며 계속 돌면서 물감을 흩뿌리거나 던진다. 신체의 제스처는 이미지가 되고 회화의 완성점의 한계를 넘어 제스처의 즉흥성이 예술의 정체성이 된다. 감성의 터져 나오는 힘과 신체의 에너지를 회화로 구현하는 태도는 미국 개척자들의 정신과 태도에 비유되기도 한다.폴록이 추상표현주의의 발전에 미친 결정적이 영향은, 캔버스를 이미지가 탄생되는 '무한의 장(場)'으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회화의 공간은 화가, 물감, 캔버스간의 관계에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고 화가는 이 생명이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생각했다.현대미술을 과거처럼 화가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세계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의 격렬한 싸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폴록은 진정으로 현대미술의 확고한 정립자라고 할 수 있다. 폴록은 회화를 위해 풍경, 정물 등의 대상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고 격렬한 자기와의 싸움을 주제로 하였을 뿐이다. "새로운 필요가 새로운 기법을 요구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감정의 순수성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필요로 했고, 자동기술법이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폴록은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표현하길 원했다. 동시에 신체행위로 뿌려진 물감은 조형적 리듬을 보여준다.폴록의 작업은 신체행위를 강조하지만 결코 해프닝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폴록의 경우 중요한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로부터 창조된 예술의 결과물인 화면이다. 그렇지만 폴록의 작품은 해프닝이 끝난 흔적이나 결과가 아니다. 퍼포먼스의 경우에는 행위가 강조되지만 폴록의 경우는 에너지와 내적 생명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체의 제스처가 이용될 뿐이다. 그러므로 화면은 신체 행위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정신적 사고, 예술적 의도로써 창조된다. 신체의 제스처 사용은 폴록으로 하여금 숨쉬는 것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회화에 몰두하게 만든다. 화가가 창조하는 순간 몰입한다는 것은 결국 화가와 회화가 하나로 일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가의 호흡과 생명이 회화에 직접적으로 이입되어 회화는 독자적인 고유의 생명을 갖게 된다.폴록은 회화의 창조란 화가가 수정하고 계획해서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며 회화 그 자체가 고유의 생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화가는 회화가 완성되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화폭과 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화가와 화폭의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면 회화는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화는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결된다.
디지털 시대와 미술Prologue... 0 과 1 의 디지털 회화 디지털 아트 디지털 영상 회화의 확장 디지털 매체의 수용양상 영상세대의 디지털 언어 대안 매체로서의 인터넷 디지털 문화의 명암 ...나의 소견Prologue...현대는 네트워크의 '속도'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인터넷은 이미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다 미술의 영역에서 작품창작에 디지털 매체를 직접 도입, 도구적 활용0 과 1 의 디지털 회화생각하는 속도 와 일하는 속도 가 근접 디지털 파이아트가 미술계에 일으킬 변혁 1. 미술창작의 새 기법은 새로운 발상을 이끌어 내며 Red .Green .Blue 의 색광으로 제작되는 작품의 시각효과와 예술성은 미술의 새 장르 2. 회화의 장르에 속하기 곤란했던 서예와 사진도 회화적 표현이 가능 3. 디지털방식의 작업에서는 추상과 구상의 표현양식의 벽이 무너져 서로 넘나들며 작업이 용이 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리없이 표현 4. 작품 수준을 21세기형으로 한차원 높일 것 5. 미술작품을 문화상품화 하여 미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기여 6. 새로운 미술시장과 가격구조 그리고 유통시스템이 구축 7. 디지털 문화가 곧 국력의 원동력으로 변모디지털 아트뉴미디어 시대, 멀티미디어 환경, 하이미디어 등의 용어로 표현되는 정보화 시대에서 디지털은 그 기본원리이자 새로운 하부구조 작품의 진품성과 유일무이성이 부정된지 오래고 개별 예술 장르는 디지털 세계에서 멀티플 방식으로, 물질세계에서 전자 정보의 비물질계로, 현실계에서 가상현실로 이동디지털 영상비디오 아트 작가들이 후반작업(post production)을 컴퓨터상에서 처리하게 됨으로써 디지털 영상은 더욱 보편화 최근 디지털 영상은 2D·3D, CD-롬, 인터액티브 영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박현기 만다라 시리즈 6김재웅 나르시즘한승희 배고파박활민 김동섭 노경애 컴퓨터 합성 이미지최은경 모션 픽처와 디지털 미디어최은경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회화의 확장컴퓨터를 회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는 무한하다. 그래픽 프로그램의 개발과 프린트기의 비약적인 발전 등은 정통 회화적 질감을 컴퓨터 상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뉴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다.오 영재석영기 탈출3강민권 여인열전석영기 달의 몰락-비광 3김윤 가상 공간에서의 유희디지털 매체의 수용양상1. '분절과 조합(絶合)'의 양상이다. 2. 반복과 무한복제적 양상이다. 3. '차용과 혼성'이다. 4. 변형과 변성, 그리고 응축과 변조이다.신일섭 한 마리의 개이윰 하이웨이한계륜 말영상세대의 디지털 언어결국 컴퓨터를 이용한 이미지의 (재)생산은 우연성과 임의성의 개입을 극대화, 대수학적 언어의 연산과정에서 나타나는 획일성과 표준화의 이중적 특성 디지털 환경의 최대 수혜자는 시각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하여 영상적 감수성을 키워온, 이른바 '비주얼 세대'가 될 것이다.황규태 컴퓨터 프린트홍승혜 유기적 기하학대안 매체로서의 인터넷인터넷의 무제한적 확장성과 상호작용성, 실시간 즉시성이라는 매체의 특성 대안적 소통의 가능성과 탈제도적 매체로서의 잠재력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유형화나 양식적 분류가 사실상 불가능, 미술제도적 분석이나 형식주의적 접근 자체를 거부양진식 로그인 이미지 Ⅱ제니퍼 조 마음의 길디지털 문화의 명암탈물질화되고 탈개인화된 디지털 이미지- 개인적 작가의 주체성을 교란시켜 복수적 작가의 가능성을 대두, 생산자-수용자의 관계를 재정의공성훈 머리굴리기공성훈 무지류...나의 소견디지털 아트는 컴퓨터나 미디어매체를 통한 생각의 표현이다. 전통 형태의 예술은 직접적 예술이라 정의한다면 디지털 아트는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예술이다. 이에는 서로 장단점이 있다. 전통적 형태의 예술이냐...현대의 디지털 아트이냐... 이 문제는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할 문제이지만 난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 독립적인 예술로 발전하기보다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좀더 질적이고 양적인 예술시대에 맞는 새로운 아트가 창조되었음 한다.{nameOfApplication=Show}
제목 : 디자인, 비즈니스로 승부하라 / 저자 : 장동련 / 출판사 : 디자인하우스이책은 장동련이란 디자이너가 자신의 성공 일대기 같은 것을 쓴 책이었다.자신이 대학 때부터 지금 마흔 살까지 살아오면서 디자인을 하며 겪었던 경험,충고 아쉬웠던 점.등이 잘 적혀있었다.그는 대만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꽤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는 캐나다에서 UBC라는 서양학과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파슨즈라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꽤 유명한 학교라 한다. 그렇게 순수미술에서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많은 혼란을 겪었다 한다. 순수미술이야 작품에 자신의 감정을 쏟아 넣어 남들이 작품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해도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디자이너는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발표하고 또 그것을 인정 받아야 한다. 그는 지금 현재 주로 CI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작업한 작품 중에는 우리가 많이 알고있는 작품도 굉장히 많았다. 신라호텔의 CI, 한솔M.COM, 음악프로그램인M.NET, 삼성의 래미안, 크라운베이커리, 중앙일보 등..우리가 많이 접하던 회사의 로고들이 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온작품이라 생각하니 어마 어마 했다. 이책에는 주로 디자이너로서 알아야할점과 충고 등이 많이 쓰여져 있었다.자세히 살펴 보면...디자이너가 회사를 경영하거나 디자이너 자체로서 가져야 할 정신은 무엇보다도 자기만의 또는 회사만의 특유의개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그가 맡은 네가지 프로잭트에선 네가지 모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멈출수 없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 하다고 말하듯 디자이너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기회가 아니가! 라고 말하며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그리고, 클라이언트는 상호교감의 바탕아래 서로간의 신뢰와 적절히 호흡을 맞춰 상호 교환의 중요성을 말한다.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쟁점으로 말하는 디자인 디랙터의 10계에서는, 고정관념의 벽을 깨라! 크리에티브 능력보다는 디자인 회사의 외형만으로 등급을 나누려는 고정관념은 깨버려야 한다, 중립의 지혜를 가져라! 디자인 디렉터는 시간계획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균형을 잡아 나가야만 한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라! 테크놀너지는 다만 감각을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열쇠일 뿐 답은 바로 감각에 있다, 팝 컬처에 민감하라! 디자인 디렉터로서의 안목과 지식을 갖추고 항상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의 귀를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실험정신을 가져라! 기존의 인식을 타파해 나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험정신이다, 프리젠테이션의 연출자가 되라! 프리젠테이션의 효과적인 연출은 디자인과 디자인 디렉터의 능력을 돋보이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소대장 정신을 가져라! 디자인 디렉터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불안해지고 만다, 감각과 지식을 얻기위해 여행을 떠나라! 낯선 문화와 환경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다, 유머감각을 지녀라! 유머감각은 디자인을 표현하는 좋은 도구이지만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신바람을 가져라 적절한 휴식과 끊임없는 변화 그 결과인 신바람은 밖으로 표현할 것.내가(장동련) 만난 새계적인 디자이너들은 John Follis , Henry Steiner , Lou Danzinger , Alan Fletcher , April Greiman , Bruno Wiese , Carlos Diniz .를 소개하며 그들의 정신세계나 그 작가 특유의 디자인적 활동 방향에 대해 말한다.적절한 디자인이란 디자이너의 지식과 능력은 융통성이 있는 것이어야 하며 적합성의 문제는 완전히 디자인 디자인 디렉터의 정확한 판단력에 달려 있고 무조건 창작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일단 정보를 확보하고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선 혼자고민 하는 것 보다는 여러서람의 머리를 맞대는 것이 낫다고 얘기한다.
빛3D애니메이션 이라서 그런지 우선 빛의 느낌은 굉장히 사실적이었다. 원근의 느낌 또한 잘 느껴졌다. 하지만 눈은 조금 다른 듯 하다. 배경으로 나오는 눈이지만 제목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여기에서의 눈은 좀더 특별한 듯 하다. 그래서 눔은 빛의 느낌이 잘 드러나며 눈에 띈다. 그리고 빛은 상황표현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한가지 예를 들면 엄마와 로산이 디애고에게 쫑기는 장면은 이른 새벽의 느낌으로 조금씩이지만 강하게 비추는 새벽 햇살은 긴장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색캐릭터들의 전반적인 색깔은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벼운 이미지의 밝은색과 무거운 이미지의 어두운 색의 표현이 잘되어있다.좀더 캐릭터들을 자세히 보면시드는 실수투성이인 성격을 아주 얇은 느낌의 그린을 써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는 듯 하다. 코의 색깔에 보색에 가까운 포인트를 주어 한층 더 성격이 잘 드러난다. 얇은 느낌은 색은 분위기 메이커역할을 잘 보조 해주고 있다.맨프레드는 덩치만큼이나 듬직한 느낌으로 무거운 색으로 짙은 갈색을 쓰고 있다. 하지만 상아색은 밝은 흰색으로 처리하여 상아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드러낸다. 그의 덩치와 무거운 몸 색깔은 무리의 리드 느낌을 준다.디애고는 날렵한 느낌으로 같은 갈색톤이지만 채도를 많이 높여 맨프레드와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또한 눈동자색에서는 보색 느낌의 그린을 써서 음흉한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드의 코에서 보색처리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디애고는 눈을 보색처리 하였기 때문이다. 노려보는 듯한 눈의 표현이 색에서 아주 잘되어 있는 것 같다. 얼굴에서의 흰색은 꼭 펄 같은 느낌으로 맹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로산은 옷 색깔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람들과 동질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볼에서 보이는 붉은느낌의 터치는 아기의 귀여운 이미지를 한껏 보여 준다. 눈동자는 크고 짙은색인 검정에 가까운 색으로 처리하여 해맑은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여기서 잠깐 시드가 아침에 머드팩을 하며 데이트하는 두 여자의 눈의 색깔은.....분명 칼라 렌즈를 한 것 같다.^^두 코뿔소는 전체적으로 돌의 느낌이나는 회색톤으로 모두 처리되어 있다. 단색과 탁한 갈색이 가미된 회색은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다열질인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로산의 아버지는 가장의 무거운 느낌으로 전체적으로 채도를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한 탁한 느낌으로 조연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