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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계도와 오복제도와 상례문화
    Ⅰ. 가족법에 따른 친족관계의 이해1. 친족2. 친족의 범위1)혈족2)인척3)배우자3. 친족의 가계도1) 부계의 가계도 및 친족의 범위2) 모계의 가계도 및 친족의 범위4. 친족의 호칭1) 부계 족의 호칭2) 모계 족의 호칭3) 기타호칭①시댁 및 친정② 기타호칭1. 친족혼인과 혈연을 기초로 하여 상호간에 관계를 가지는 사람을 법률 용어로 친족이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친척이라고 말한다.개정 이전의 가족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①8촌 이내의 부계혈족 ② 4촌 이내의 모계혈족 ③남편의 8촌 이내의 부계혈족 ④ 남편의 4촌 이내의 모계혈족 ⑤처의 부모 ⑥ 배우자로 부계중심의 가부장제 가족제도의 원리에 근거하고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규정들이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1989년 12월 일부 개정된 친족의 가족 범위는 ① 8촌 이내의 혈족 ② 4촌 이내의 인척 ③ 배우자로 되어(민법 777조) 법률상 인정되는 친족관계에 대하여서는 친족이란 신분에 의하여 부양관계, 상속관계 등 여러 가지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다.2. 친족의 범위1) 혈족친자, 형제, 자매, 숙질 등의 관계에 있는 자와 같이 상호간에 사실상 자연혈연관계가 있는 자연혈족을 말한다.그러나 민법상 양친자의 관계와 같이 혈연관계는 없지만, 법률상 혈족으로 의제되는 법정혈족이 있다. 이를 준혈족 또는 인위혈족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민법상 혈족이라 할 때에는 자연혈족과 법정혈족을 포함하여 말한다.자기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을 직계혈족이라 하고, 형제자매와 형제자매의 직계비속(조카), 직계존속의 형제자매(삼촌, 고모 등)와 그 형제자매의 직계비속(4촌, 6촌 등)을 방계혈족이라 한다. 또한 아버지 계통(친가)의 혈족을 부계혈족, 어머니 계통(외가)의 혈족을 모계혈족이라 한다.민법상 혈족은 모두 친족이지만(767조), 친족관계로 인한 법률상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으로 한정되고 있다(777조).2) 인척혈족인 형제자매와 삼촌, 고모 등의 배우자인 형수, 계수, 매부, 숙모, 고모부, 아내에 대한 남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배우자는 민법상 친족으로 되어 있으나 촌수는 없다. 배우자의 지위는 혼인에 의하여 생기게 되며, 혼인은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효력이 발생된다(민법 812조 1항).따라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내연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법률적으로 보아 배우자라고 할 수 없다. 배우자 사이에는 부부관계에 따르는 여러 가지 권리, 의무 관계가 발생한다.3. 친족의 가계도분류의 기준이 부모와 부부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또한, 자기의 성이 남성인가 여성인가에 따라 범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1)부계의 가계도 및 친족의 범위(숫자: 촌수, 청록: 有(生) 적색: 有(死) )조부모4증대고모5증조부모3종증조5대고숙모4조부모2증조부모4재증조6진내종숙5고숙모3부모 1백숙부모3당숙부5재종숙7진내재종6내종4자매2나형제2종형제수4재종형제6삼종형제8진내재동질7내종질5생질3딸1아 들1조카3당질5재종질7진내삼종손8내재종손6생종손4외손자2손녀2손 자2종손4재종순6삼종손82) 모계의 가계도 및 친족의 범위 (숫자: 촌수, 청록: 有(生) 적색: 有(死) )외고조부모4외증조부모3외종증조5외조부모2외종조부모4외재종조6이모부3모1외숙모3외종숙5외재종숙7이종4나외종형4외재종6외3종형8이종질5외종질5외재종질74. 친족의 호칭친족의 호칭을 직접면접호칭과 관계지시호칭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1)부계 (청록: 有(生))친 족관계호칭직접호칭친 족관계호칭직접호칭부가친,엄친아버지자 (子)자식이름모자친,모친어머니여(女)여식이름조부조부할아버지당질,종질질,사질이름조모조모할머니종조부증조부할아버지백부백부큰아버지종조모종종조모할머니배모백모큰어머니종숙부종숙,당숙아저씨숙부숙부작은아버니종숙모종숙,당숙아주머니숙모숙모작은어머니종형종형오빠형(兄)오빠오빠종제종제이름형수올케새언니고모고모고모제(弟)동생이름고모부고모부고모부자 (姉)언니언니고종사촌고종오빠,언니,동생매 (妹)여동생이름2) 모계 (청록의 음영: 有(生), 無(死,無))친 족관계호칭직접호칭친 족관계호칭직접호칭외조부외조부 기타 호칭①시댁 및 친정친 족시 가 족친 족친 정 가 족관계호칭직접호칭관계호칭직접호칭아버지시아버지시부아버님아버지바깥어른아버지어머니시어머니시모어머님어머니안어른어머니형시숙아주버님형백남,중남오라버님동생시동생도련님서방님동생남동생이름자(姉)시매형님자(姉)백씨,중씨언니매(昧)시누이아가씨매(昧)백씨,중씨언님매부시매부새아주버니매부형부(형)O서방(제)형부(형)O서방(제)② 기타 호칭기 타관계호칭직 접 호 칭관 계남 편여보,당신친정어른-O서방시가어른-O아범아래 수하에게는 호칭 관계로말한다.부 인여보,당신처가식구-O애비친가부모-O애비사 돈사돈사돈아들,며느리 부모간사 형OO씨사형사돈간, 형수나 자매의 형제간과의 호칭사 장사장어른사장10세 이상의 사돈간형수, 제수, 자형, 매부의 부모사위의 조부모,며느리의 조부모곁사장곁사장곁사장형수,제수,자형,매부의 숙부모사하생사하생사하생사위며느리의 형제< 참고문헌 >>김외선 외 1명 [한국가정생활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3유영주 김경신 김순옥 공저 [가족관계학] 교문사 1996최연실외 [새로보는 가족 관계학] 서울하우1995전현숙 유계숙 [가족관계] 학지사 2001박용성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주)두산 백과BU 2000년 1전통상례의 오복제도와 현대 상례문화1. 상례1)전통상례복① 남자의 상복② 여자의 상복2) 오복제도①참최②재최③대공복④소공복⑤시마2. 현대상례1)현대상복①남자상복②여자상복3. 변화된 상례 문화1. 상례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일생동안 함께 살아 온 가족, 친척, 친구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참으로 슬프고 애절한 일이다. 이런 애절하고 슬픈 심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는 이별의 예로써 통과의례 가운데 가장 전통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하겠으며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태에 직면하여 그 사자를 정중히 모시는 절차인 만큼 가장 중요한 예법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세계이 공통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1)전통 상례복상복은 상을 당했을 때 가족 친지가 입는 의례복이다.상복에는 오복이 있는데 죽은 자에 대한 유복자의 친소원근 과 존. 중단은 거친 마포로 만드는데 소매는 넓고 가슴왼편 에는 눈물받이를 단다. 그 위에 앞이 3폭, 뒤가 4폭으로 된 치마를 입고 삼띠를 띠며 베 로 만든 행전을 치고 굴건을 쓰고 상장을 짚는다.②여자의 상복여자의 상복은 최복, 상, 족두리, 수질, 요질, 교대, 미투리 등인데 남자의 상복과 마찬가 지로 거친 마포로 된 치마 저고리에 대수장군을 입는다. 대수장군은 소매가 넓고 길은 앞에 여섯 뒤에 여섯 개를 달고 등바대는 겉에 댄다.상복은 친소원근에 따라서 옷감과 바느질법을 달리 했다. 종가의 며느리나 기혼자는 대 소장군에 흰 족두리를 쓰며 미혼자는 수질을 쓴다.※ 참고사항 : 상관 - 두꺼운 종이로 심을 넣는데 폭은 5인치 2푼반을 베로 쌈.수질 - 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두르는 둥근 테의 일종으로 삼과 짚을 고 아서 만든다. 남자는 두건 굴건과 함께 쓰고 여자는 수질만을 쓰며 상장중에 가장 특징적인것.요질 - 혁대위에 두르는 것으로 수질과 같이 꼬아 만들되 작은 끈을 좌우로 매단다.상장 - 주술적인 도구로 악령을 쫓는 도구로 상을 당하여 애통이 지극하 여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 사용.2) 오복제도오복제도가 우리나라에서 문헌으로 나타난 것은 경국대전으로 오복제도가 널리 알려지고 일반에 시행되기는 성종 16년(1458년) 이후라고 한다. 오복은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를 말하는데 이것은 복을 입는 기간을 표준으로 한 것으로 참최와 재최는 3년이고, 대공은 9개월, 소공은 5개월, 시마는 3개월로 상복을 짓는 마포의 베 가닥의 곱거나 거칠거나 하는 상복의 생김이나 형태를 표준으로 해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질이 나쁜 옷을 입었는데, 상제들은 죄인이라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① 참최참최는 정상적인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이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 혹은 아버지가 안 계시는 아들이 할아버지 상을 당하였을 때 3년 동안 입는 상복이다. 증조부고조부상을 당하였을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상복을 입게 된다.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자녀 모두 가한 사람 등이 이에 해당된다.또한 시부모가 죽었을 때 며느리도 참최를 입었으며, 아버지가 안 계신 남편이 할아버 지의 상을 당하였을 때 그 부인도 참최를 입는다. 이처럼 정상적인 친족관계가 아닌 사람, 즉 의리로 맺은 성이 다른 친족에 대한 복상으로 입는 것을 의복이라고 한다.아들이 아버지 상을 당하여 상복을 입다가 나쁜 병에 걸려 상주 노릇을 못하거나 초상 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소상 전에 죽으면 부득이 그 아들이 상복을 받아 입고 주상 노릇을 하는데, 이것을 대복이라 한다.참최의 상복은 가장 거칠고 굵은 삼베로 만들되 아랫단을 깁지 않는 게 특징이다. 참최 에는 건 위에 쓰는 수질과 교대 위에 매는 허리띠의 끈은 삼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며, 대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는다.② 재최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자녀 모두가, 조모증조모에 대하여는 장손이 재최라 하여 3년 복을 입었다.재최는 이 밖에도 재최 장기 13개월, 재최 부장기 13개월, 재최 5개월, 재최 3개월 등 친족인족의 친소에 따라 복을 입는 기간이 다르게 제정되었다.장기는 상제가 지팡이를 짚는다는 뜻으로 대개 직계에 해당되고, 부장기는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는 뜻이며 대개 방계가 이에 따랐다.③ 대공복9개월 동안 입는 복으로 참최나 재최 때의 베보다 베의 결이 곱고 가늘다. 대공복을 입는 친족의 범위는 종형제 자매, 장손 이외의 손자 손녀, 장자부 이외의 자부 질부 및 동모이부의 형제자매이다. 남의 아내 된 자는 시조부모, 시백부모, 시숙부모, 질부의상(喪), 남편이 양자갔을 때에는 남편의 생가 시부모의 상에 입는다.대공, 소공 이라는 공은 삼베를 짠다는 뜻으로 거칠고 가는 베를 말한다.④ 소공복소공은 종조부모와 종조고, 형제의 손자, 형제의 처, 종형제의 아들, 재종형제의 상에 입는 상복이다. 백숙조부모, 외조부와 외숙, 생질의 상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 형제의 손자, 남편 종형제의 아들을 위해서 입는다. 형제의 부인과 남편 형제, 남편 형제의 부인, 즉 맏동서와 손아랫동서끼리도 역시 소공복.
    사회과학| 2003.05.13| 15페이지| 1,000원| 조회(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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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애의 지하촌 평가A좋아요
    目 次Ⅰ. 序 論 ‥‥‥‥‥‥‥‥‥‥‥‥‥‥‥‥‥‥‥‥ 2Ⅱ. 本 論 ‥‥‥‥‥‥‥‥‥‥‥‥‥‥‥‥‥‥‥‥ 21. 강경애의 일생 ‥‥‥‥‥‥‥‥‥‥‥ 21)빈궁 속의 성장과정(1906~1921)2)혼란과 열정의 여학교(1921~1924)3)작가수업과 간도 방란(1924~1932)4)결혼 생활 그리고 죽음(1932~1944)2. 강경애의 작품『地下村』‥‥ 5Ⅲ. 結 論 ‥‥‥‥‥‥‥‥‥‥‥‥‥‥‥‥‥‥‥ 8Ⅳ. 參考文獻 ‥‥‥‥‥‥‥‥‥‥‥‥‥‥‥‥ 9Ⅰ. 序 論내가 강경애의 소설『地下村』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1900년 대 초 식민지 시대의 사회에 대해 알고싶은 이유도 있고, 여성작가라는 신 분으로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이전까지의 소설들과는 좀더 다른 느낌을 받 아서 이다. 그리고 그 작가가 어떤 이유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나를 강경애의 작품 속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그가 살았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강경애는 황해도 장연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간도 지방에서 살면서 작품 창작을 했으며 해방전인 1944년에 38세로 요절했기 때문에 지금 남한에서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란 대단히 곤란하고 그 작업에는 한계가 있다. 비록 정확히 알려진 것들도 있 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상황에 따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는 근대소설 문학사에 길들여진 나의 여성 작가에 대한 성적 편견을 깨뜨려 버린 존재였 다. 이런 강경애의 일생과 그의 작품『地下村』에 내용, 소설의 줄거리,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本 論1. 강경애의 일생1)빈궁속의 성장과정(1906~1921)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 다. 그의 아버지는 힘 꾀나 쓰던 청장년 시절 거의 대부분을 지주 집 머슴 살이로 보냈으며 평생을 두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순박하고 정 직한 농민이었다. 딸이 있어 아들과 강경애는 곧 잘 싸우곤 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상처 탓인지 강경애의 작품에는 온전한 형태의 가정도 온전한 상태의 부모 자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가난 때문에 파괴된 가족과 뒤틀린 심정에 대한 묘사를 그 의 소설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강경애는 여덟 살 나던 무렵 의붓아 버지가 던져 놓은『춘향전』에서 한글을 깨우쳐 구소설(고전소설)을 읽기 시 작하여『삼국지』,『옥루봉』,『조웅전』,『숙향전』,등 구소설을 거의 독파하 고 동네 사람들에게 불려 다니며 소설을 읽어 주어 ‘도토리 소설장이’라는 별 명을 얻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강경애는 어릴 때부터 문학 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재능을 나타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년 후 그녀는 1915년 10살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애원과 간청으로 겨우 장연 여자 청년학교를 거쳐 장연 소학교에 들어갔다. 그녀의 가난은 여전하였고 돈, 물건을 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학교를 다녔다. 학용품이 없어서 시험을 칠 수 조차 없는 어린 소녀 강경애에게 사회는 냉담했고 담임 선생님까지도 냉담했다.2)혼란과 열정의 여학교(1921~1924)강경애는 온갖 고통 속에서 눈치 공부를 하면서 보통학교를 마쳤다. 그녀를 박대하던 의붓아버지 최도감이 죽은 뒤 열여섯 살 무렵인 1921년 형부의 도 움으로 평양 숭의 여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빠듯한 학비로 기숙사 생활을 했던 그녀에게 여학생 시절은 여전히 슬픔과 울분에 찬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작가로서의 준비 과정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기이다. 그녀는 1923년 봄방학을 맞아 찾아간 고향 장연에서 양주동이란 사내를 만나게 된 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 나던 3학년 때였다. 이해 10월 그녀는 학 생들의 동맹휴학과 관련하여 퇴학을 당하고 1924년 봄에는 양주동을 따라 서 울로 와서 양주동이 주재하던《금성》사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동덕 여학교 3 학년에 편입하여 1년 간 공부를 했다. 1년여에 걸친 양주동과의 관계가 끝나 자 양주동은 강경애를 장연 관계 도 결혼을 통해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3)작가수업과 간도 방란(1924~1932)1924년 말 양주동과의 헤어짐으로 인하여 그녀는 장연으로 돌아와서 언니가 일하는 서선 여관에서 지내면서 문학 공부를 했다. 그런데 양주동과 헤어진 이후 장하일과 결혼하여 간도로 이주하기까지의 즉 1920년대 후반부터 1930 년대 초까지의 강경애의 생활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록은 물론 타인의 회고도 없다. 이 시기에 한 기존 연구 또한 간략하다. 위의 장하일이란 사람은 강경 애의 남편으로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녀는 여학교 시절 생각 했던 문학소녀로서의 꿈은 양주동과의 관계가 파탄이 나면서 일단 꺾인 셈이 다. 이 시기에 강경애는 주로 장연에 거주하면서 문학 공부를 하는 한편으로 굶주린 무산 아동을 위한 “훙풍 야학교”를 개설하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 한다. 집에서 습작 활동을 하면서 독자 투고를 통해서 문단에 나서고자 했던 강경애는 1931년 6월에는 만주로 이주했다가 1932년 6월에 귀국을 한 다. 이 방랑시기에 대해 김헌순이란 사람은 강경애가 중국간도 용정 일대에 서 있으면서 때로는 임시 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무직과 가난의 고초를 겪 기도 하다가 귀국했다고 한다.4)결혼생활 그리고 죽음(1932~1944)그녀는 간도에서 떠돌아다니다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1932년 6월 장연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기 전에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장하일이란 사람을 만나 결 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하일이란 사람은 같은 장연 사람으로 수원 농림학 교를 나와 장연 군청 서기로 있다가 간도로 이주한 인물이다. 그는 구여성을 전처로 가졌던 사람으로 강경애와는 연애결혼을 하였으며 간도로 이주한 후 에는 용정의 ‘동흥 중학교’ 수학교사로 있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남들이 보기에 전혀 ‘여류작가’로 보이지 않고 살림살이에 열심인 수수한 아내와 술 좋아하는 호인인 교사 남편의 평범한 생활처럼 보였다. 또한 장하일은 강경 애로 하여금 현실에 대해 늘 날카로운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도록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1939년에 안수길의 아내가 길에서 강경애를 만났을 때 “병으로 몸이 비대해지고 머리가 아파서 아무 일도 못하고 고통 중에 있다” 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맡고 있던 간도 지국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장연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남편 장하일은 조금 뒤에 뒤따라 왔다고 한다. 1940년 2월에는 상경하여 제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원 산의 삼방 약수터를 다니기도 했다. 이때 이후로는 전혀 작품을 쓰지 못했다 (소설 작품으로서는 1938년 5월에 쓴 삼천리라는 작품이 마지막이었다. 그녀 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1943년 가을 그녀를 방문했던 사람의 기록을 통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느낄 수는 있다. “이 여류 선배는 어찌된 영문인지 시력이 분명치 않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의 중환자이다. 나는 하도 엄청난 놀라움과 그 분 자신에게서 옮아오는 절망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지체할 염치도 없음에 서 이내 장형과 몇몇 그분을 다르던 문학청년들의 손을 잡고 하직을 고했 다.” 이 대목에서 이미 강경애 죽음의 문 앞에 다가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4년 4일 26일 작가 강경애는 38세의 나이로 그의 생을 마쳤다. 일찍이 대 표작『인간문제』의 연재가 끝났을 때도 프로문학 쪽의 비평가들이 카프 검 거 사건으로 경황이 없었고 단행본 출판도 빛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작가로 서 정당한 조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죽음도 쓸쓸했다. 를 제외한 한글로 된 모든 신문잡지가 폐간된 일제 말기인지라 그의 죽음은 세인의 그리고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추모 특집 기사’같은 것도 없었 다. 그러나 문단의 사교 활동으로 살아 생전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많은 작 가들이 사후 문학사의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강경애는 오 히려 높이 부각되는 영광을 사후에 누리게 되었다.2. 강경애의 작품『地下村』그의 대표적인 작품인『地下村』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하여 리 없이 말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것 이 아니라 사실적 수법으로 가난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냉정한 묘사도 현실의 사회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주제 는 칠성과 큰년이의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이외에는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의 고통과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 대한 강경애 자신의 내면적 고통이 잠재되어 있는 듯 하다.그리고 이 글의 주요 등장인물로 다섯명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칠성 이와 큰년이, 어머니, 그리고 칠운과 영애에 대한 성격을 알아보도록 하자. 칠성이라는 인물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팔다리가 병신이 된 인물이며 그는 옆집에 사는 눈 먼 처녀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칠성은 팔다리가 병신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며 그래서 그는 마을로 동 냥을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나간다. 강경애도 칠성이 행동과 심정 을 통해 가난한 현실을 냉정하게 전달하고 있다. 칠성이는 아기를 ‘미워했다’ , ‘발길로 찼다’ , ’칵 밟아 죽였으면’ 한다. 얼마나 가난이 끔찍하고 미웠으 면 병든 동생이 차라리 죽기를 바랐을까? 자신이 병신이라는 처지와 가난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동네 처녀인 큰년이도 눈 먼 병신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병신이 되었고 결국 큰년이는 읍내 부잣집 첩으로 팔려간 다. 이 소설 전체적 분위기는 암울하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 도 따스함이 있는데 그것은 모성애이다. 어머니의 모습은 땅의 여신 이미지 이다. 병신아들에게 보여준 크나큰 사랑,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노동하는 가 난한 여인, 좌절하지 않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칠성의 동생들인 칠운과 영애는 칠성이와 마찬가지로 비극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병들 고 나약한 아기인 영애를 죽임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의미한 다. 그럼 강경애의『地下村』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해는 서산 위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다. 칠성은 오늘도 여전히 동냥자루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비틀비틀 동각한다.
    인문/어학| 2003.04.12| 10페이지| 1,000원| 조회(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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