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기든스 著 「제3의 길」을 읽고...Ⅰ. 서론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가속화되는 요즘, 앤서니 기든스가 쓴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흔히 말하는 서구식 복지주의와 신자유주의... 현재 가장 유력한 사상의 흐름이다. 그러나 복지주의는 정부식 비대 관료주의와 지나친 복지비용으로 인하여 신자유주의는 그 속에 담긴 철저한 비인간적 경쟁으로 문제가 커지는 상황이다.앤서니 기든스는 제 3의 길에서 중도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생기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그는 5가지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사회민주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제시한다. 범세계화, 개인주의, 생태주의 등 현재 부각되는 주제를 제시한 것이다. 집단적인 측면이 강한 사회민주주의와 개인적인 측면이 강한 신자유주의 사이에 적절한 중간을 제시한 점이 돋보였다.구소련의 붕괴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극체제가 해체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만 존재하게된 현대사회는 긴장의 완화와 함께 그 동안 내재되어 있던 자본주의 체제내의 많은 문제점들이 표출되었다.서구 사회의 산업혁명과 함께 성립된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 사상을 토대로 개인주의와 함께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시장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정책은 많은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야기하였다.이에 공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와 대립하면서 스스로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주의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 정의, 연대 등의 가치를 기본 틀로 하며 복지국가를 추구하여 인류의 이상을 실현한 것 같은 성공을 거두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자체의 문제가 발생하며 그 평가가 바뀌기 시작했다.누적되는 국가의 재정 적자, 비대해진 국가 관료제, 시민사회기능의 약화, 국민의 노동의욕 감소, 국가 경쟁력 하락 등으로 사회민주주의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경쟁과 효율, 보았다. 서구에서의 사회주의는 복지국가를 공고히 다진 바탕 위에 세워진 사회민주주의 즉, 온건하고 의회주의적인 사회주의였다.이러한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응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 하였다. 또한 시장이 구매(수요)자와 판매(공급)자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정보장치로서 갖는 중요성을 포착하지 못했다이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는 약화되고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의 등장으로 자유 시장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3. 구식 사회민주주의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자유방임시장이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국가의 시장개입을 통하여 완화 또는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시장이 조달할 수 없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는 공공재는 국가가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과 혼합경제이론은 그대표적인 실천 방법이었다.대체로 구식사회민주주의는 생태적 관심사에 적대적 태도를 갖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구식사회민주주의는 코포라티즘적 강조, 완전고용지향, 복지국가의 실현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당면한 생태계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또한 범세계적 전망도 갖고 있지 못하고 지향하는 바가 국제주의였던 사회민주주의는 범세계적 문제들에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서로 뜻을 나누는 정당들 사이의 연대를 창출하려고 하였다.그렇지만 사회 민주주의는 강력한 양극적 세계에 묶이게 되었고 미국의 복지 최소주의와 공산주의의 통제경제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4. 신자유주의적 견해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정부의 추구이다. 국가가 지나치게 확대되면 관료주의가 팽배하며, 개인의 자유와 자립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조하여 시장은 끊임없는 성장을 조달하기 위해 법적인 틀과 정부의 불간섭만을 필요로 하는 영구적 운동 장치라고 표현한다.또한 전통적 제도, 가족, 민족 등을 존중하는 보수를 표방하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는같은 일련의 변화를 겪으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최근 들어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유럽국가의 여기저기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또는 중도좌파 연합이 집권하고 있다.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아직 새롭고 통합적인 정치 전망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그동안 제3의 길이란 말은 20세기초에 생겨나서 대체로 사회민주주의자 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사용해 왔는데 저자가 본서에서 사용한 제3의길은 지난 20년 혹은 30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한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하는 사고와 정책 형성의 틀을 가리킨다. 이것이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시도라는 의미에서 제3의 길인 것이다.Ⅲ. 다섯 가지 딜레마제3의 길 정치의 전반적 목표는 시민들로 하여금 우리시대의 중요한 혁명적 변화들 즉, 범세계화, 개인주의, 좌우개념의 재정립, 정치 행위체의 위상 재정립, 생태 환경적 제 문제들에 대해서 올바른 길을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다.1. 범세계화범세계화는 10여 년 전부터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화두가 되어있다. 범세계화에 대하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한 발명품으로 간주하여 경시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관점과 현실적으로 깊숙이 진전되고 있는 새롭고 중요한 변화로 보는 관점인데 이미 세계적으로 뻗친 결합관계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국제무역의 점진적 증가도 중요하지만 금융시장의 세계화는 초고속 전자통신망의 발달로 금융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면서 그 규모나 영향력이 국가경제를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인공위성과 컴퓨터 기술의 결합으로 촉발된 통신혁명과 정보처리기술의 확산은 범세계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우리들 개인의 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을 근본적으로 변형 확대시키고 있다고 하겠다.범세계화는 정치적 경제적 영향들의 혼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과정의 복합적 영역이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현대정책들의 가? 우리는 권력의 지방이양에 찬성해야 하는가? 유럽연합의 장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들 중 어떤 것도 명확한 좌우파의 쟁점이 아니었다. 이러한 고찰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정치적 중도주의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함을 나타낸다. 이는 기존의 온건좌파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중도를 의미하며 쇄신된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중도좌파이어야 한다.4. 정치적 행위체정치쇄신을 위한 모든 시도에는 행위체의 문제가 제기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막론하고 저자가 나열하는 다음의 11가지 정부 존립목적에 입각하여 볼 때 시장이나 사회운동이나, 다른 비정부기구들 역시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본다.①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을 대표하기 위한 수단들의 제공② 이해관계 있는 당사자들의 경쟁적인 요구들을 조정하는 공론장의 창출③ 정책 쟁점에 관한 토론이 제한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개방된 공공영역의 창출과 보호④ 집단의 안전과 보호를 포함한 다양한 공공재의 공급⑤ 공공이익에 입각한 시장규제, 그리고 독점의 위협에 맞서 시장경쟁을 촉진⑥ 폭력수단의 통제와 치안의 제공을 통한 사회 평화의 진작⑦ 교육제도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인적자본의 적극적 개발을 촉진⑧ 효율적인 법률제도의 유지⑨ 사회간접자본의 공급 외에도 거시적, 미시적 경제개입 속에서 주요한 고용자로서 직접적인 경제적 역할 담당⑩ 보다 논쟁적인 것으로 문명화의 목표를 담당 - 정부는 교육제도와 그 밖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규범과 가치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형성을 조장⑪ 지역적 초국가적 연합의 추진과 범세계적 목표의 추구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운동, 단체, 비정부기구, 거대기업들이 압력단체로서 정부를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위의 비정부단체들이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영역들을 인수하거나 정당의 지위를 대체할 수는 없으며 국가와 정부가 끊임없이 그 형태와 질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을 보존하는 것이다.평등과 개인의 자유는 충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등주의적 조치들은 종종 개인에게 열린 자유의 범위를 확대한다.이러한 관점에서 제3의 길 정치는 다음과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① 평등② 약자 보호③ 자율성으로서의 자유④ 책임 없이 권리 없다.⑤ 민주주의 없이 권위 없다.⑥ 범세계적 다원주의⑦ 철학적 보수주의Ⅳ. 국가와 시민사회1. 제3의 길 프로그램제3의길 정치의 프로그램은 국가와 정부를 개혁하여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시민사회의 행위체와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협력해야 한다.제3의 길 정치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으며 이는 미완성이어서 많은 논쟁을 거쳐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① 급진적 중도② 새로운 민주국가(적이 없는 국가)③ 활발한 시민사회④ 민주적 가족⑤ 신혼합경제⑥ 통합으로서의 평등⑦ 적극적 복지⑧ 사회투자 국가⑨ 세계주의적 민족⑩ 세계적 민주주의2. 민주주의와 민주화제3의 길 정치가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국가는 적이 없는 국가로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구하는 국가를 말한다.① 권력의 지방 이양② 이중 민주화③ 공공영역의 쇄신④ 행정적 효율성⑤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⑥ 위험성 관리자로서의 정부3. 시민사회의 문제제3의 길 정치는 시민사회의식의 쇠퇴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이 쇄신정치를 추구해야한다.① 정부와 시민사회의 동반자 관계② 지방 주도를 통한 공동체 쇄신③ 제3 부문의 관여④ 지방 공공영역의 보호⑤ 공동체에 기반을 둔 범죄예방⑥ 민주적 가족4. 범죄와 공동체범죄를 막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것은 모두 공동체의 쇄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범세계화의 권력이양의 효과는 치안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법 집행보다는 범죄예방을 다시 강조하는 새로운 경향은 치안유지와 공동체의 재통합과 병행될 수 있다.5. 민주적인 가족가족은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제도이다. 따라서 가족정책은 새로운 정치의 핵심적인 시금석이다.제3의길 정치가 추구하는 민주적 가족정책은 다음과 같다.① 정서 한다.
사마천의9번째 이야기...1. 사마천의 ...는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지은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그 내용은,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영웅과 호걸, 간웅으로부터 협객, 자객, 그리고 아래로는 점쟁이, 건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보는 , 제왕들의 연대기에 따라 발생했던 사건들을 서술한 , 제후들의 역사를 그린 , 당대의 생활상을 분야별로 그린 ,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는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방식을 가장 먼저 채용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기전체란 본기와 열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이다. 특히 의 열전편은 유명하며 그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역사서요, 전기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런 방대한 내용 중 열전의 9번째 이야기... 동양고대사 수업을 들으며 알고 싶었던 합종가인 소진의 이야기, 즉 ‘계구우후(鷄口牛後)’라는 고사성어가 유명한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2. 소진열전(蘇秦列傳)...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 사람으로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 배웠지만 농사를 돌보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형제, 형수, 누이, 아내 등...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학문에 뜻을 둔 자가 스승에게 배우고 서책을 익히면서도 높은 벼슬자리나 영예를 얻을 수 없다면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보아 그는 학문을 자신의 출세에 이용하려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소진은 진(秦)의 혜왕(惠王)을 만나 유세를 하였으나 상군을 주살한 뒤에 변설을 잘하는 선비를 쓰지 않으려 하여 진을 떠나 조나라로 갔다. 조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나라의 문후(文候)을 찾아간다. 소진은 연나라가 나라를 평안히 하고 정사를 오래도독 보존하기 위해 조나라와 합종(合從)해야 함을 주장하고 소진의 연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문후는 소진에게 거마와 금백을 주어 조나라로 가게 한다. 조나라의 숙후(肅侯)를 만난 소진은 한(韓)?위(魏)?제(齊)?초(楚)?연(燕)?조(趙)나라가 합종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함을 주장하였다. 숙후는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여 각종 선물을 내리고, 소진에게 합종의 맹약을 맺도록 각국의 제후들에게 보내었다. 소진은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를 다니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려한 언변으로 6국 모두가 합종의 맹약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소진은 합종 맹약의 장(長)이 되고, 6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소진의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 지자 그이 형제와 일가친척들이 그를 올려다보고 감히 함부로 하는 자가 없었다. 합종의 맹약을 경계하던 진은 15년간 함곡관 동쪽을 엿보지 못했으나 그 후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조나라를 치게 하였다. 조나라왕의 추궁을 받고 소진이 연나라로 떠나자 합종 맹약은 아주 해소되었다. 문후의 뒤를 이어 연나라의 왕이 된 역왕(易王)은 소진에게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아 올 것을 당부한다. 이에 제나라에 간 소진은 제나라의 왕에게 연나라에서 빼앗은 10개의 성을 돌려 줄 것을 권한다. 아무 희생 없이 바라던 10개의 성을 되찾은 연나라는 제나라를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고 자기 때문에 연나라가 성을 되찾았다고 생각한 진나라 또한 기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제나라는 세력이 너무 커짐으로써 진나라의 경계를 받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소진의 말을 합당하다고 여긴 제나라 왕은 연나라에 빼앗았던 땅을 돌려준다. 하지만 소진은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연나라로 돌아와서 예전 지위의 관직조차 얻지 못한다. 소진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 때문이었다. 소진은 증삼과 같은 효자, 백이와 같이 청렴한 인물, 미생과 같이 신의가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자신만한 공은 세우지 못할 것이라고 역왕에게 강조한다. 실로 그들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라면 현실에 타협하고 일신의 안위나 나라의 안녕을 구하기보다는 대의를 위해 죽는 길을 택할 것이므로 소진과 같이 각국 제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사를 계획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음이 움직인 역왕은 소진에게 본래의 관직를 내린다. 역왕의 어머니이자 선왕의 부인과 밀통하던 소진은 그것이 탄로 나면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연나라를 위하여 제나라로 가서 제나라를 피폐케 하여 연나라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연나라에서 죄를 얻은 것처럼 꾸며 제나라로 망명한 소진은 예의 뛰어난 언변으로 말미암아 제나라 선왕(宣王)의 마음을 얻어 관리로 등용된다. 선왕 다음에 즉위한 민왕(?王)을 설득하여 선왕의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고 궁정을 높고 크게 짓고 식물원, 동물원 등을 넓혀 제나라의 정치가 안정되었음을 널리 알리게 하였다. 백성을 부리는 일은 때를 따라 적당하게 해야 하지만 궁정이나 식물원, 동물원을 꾸미는 일에 치중하는 것은 그야말로 백성의 생활고를 돌아보지 않는 처사라고 하겠다. 소진은 그렇게 제나라의 국력을 낭비하고 민심을 잃게 만들어 제나라를 피폐케 하고자 한 것이다. 후로 소진은 그를 질시하는 무리가 늘어나 끝내는 자객에게 중상을 입고 죽음에 처하게 된다. 그가 죽은 뒤 제나라는 소진이 정말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들어온 첩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분개하였고 연나라는 이 일로 인하여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3. 소진 분석① 철저한 일신의 출세?소진의 유세의 목적은 철저하게 일신의 출세였다.? 결국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대다수의 유세꾼들의 공통점이었을 것이다.? 다만 일신의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욕심이기에 소진이 일가를 이루지는 못했다.?공자는 노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지만 그의 정치철학이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다시 말하면 너무나 뜬구름 잡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의 현실정치는 실패했다.? 공자가진실로 원했던 것은 노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면서 자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자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공자가 후세에 높이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많이 하고 자신의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든 공자는 그러했기에 일가를 이루었다.?노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신의 출세와는 정반대의 철학을 논했기에 일가를 이루었다.? 법가 역시 마찬가지였다.??② 차곡차곡 올라가느냐 한 번에 대박이냐?소진의 출세는 여불위와 비교할 만하다.? 여불위는 볼모로 와있는 진나라의 왕자를 돈으로 사기 이전에 이미 농사와 장사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여불위는 농사는 두 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열 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지만, 사람을 사는 것은 그 이익을 가늠할 수 없다 라고 하며 사람을 잘 사는 장사을 가장 높게 쳤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사는 장사로 성공하기 전에 농사와 장사로 큰 재산을 이미 만들어놓았다.? 그런 후에야 사람을 사는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올라간 인물이다.?소진은 가족과 친척들이 하는 말은 절대 듣지 않았다.? 농사니 공업이니 장사니 하는 것들은 애시당초 생각이 없었고, 책만 계속 읽어서 한 번에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으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요즘 말로는 인생역전을 꿈꾸던 사람이었던 것이다.??③ 위기도 세치혀로 벗어난다?소진이 성공시킨 합종은 15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 동안에 종종 위기가 있었다.? 그 위기를 그는 역시 세치혀로 넘기게 된다.?또한 소진은 부정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단은 세치혀로 벗어난다.?연나라 이왕의 어머니는 [연나라] 문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사로이 정을 통하였다.? 연나라 이왕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소진을 더욱 잘 대우했다.?소진은 죽게 될까 두려워하여 연나라 왕을 이렇게 설득했다.“제가 연나라에 있으면 연나라의 지위를 높일 수 없지만, 제나라로 가면 연나라를 반드시 비중 있는 나라로 만들 것입니다.”왕의 어머니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다니, 거의 안하무인에 가까운 행동이다.? 의아스러운 건 왕의 태도인데, 그 사실을 알고도 소진을 더욱 잘 대우했다는 것은 소진이 왕의 어머니도 육체적인 관계와 세치혀로 구워삶았다는 정도로 이해해도 될런지.??하지만 연나라의 신하들은 소진을 제거하려고 호시탐탐하던 차에 마침 이 일이 걸렸으니 이 때다 하고 소진을 모함했을 것이다.? 그러자 소진은 제나라로 몸을 빼버리는 것이다.??애시당초 그에게는 한 왕을 끝까지 섬긴다거나 혹은 그가 합종을 성사시킨 여섯나라를 모두 돕는다는 따위의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유리한 대로 이리저리 몸을 빼고 높은벼슬과 영예를 유지하려 할 뿐이었다.??4. 에 대한 사마천의 견해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소진의 형제 셋 모두는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들의 병론술은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에 능한 것이었는데 소진은 반간(反間)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게 되자 천하가 그를 조소하여 그의 술법을 배우기조차 꺼려했다. 그런데다가 세상에서 소진의 행적
불의 고리 (Ring of Fire)-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대, 환태평양조산대 -Ⅰ.머리말?조산대는 일반적으로 좁고 긴 띠 모양을 이루며, 지구상의 변동대(變動帶)에 해당하는 지대이다. 지진대 및 화산대와 일치한다. 지향사(地向斜)를 이루는 두꺼운 퇴적층이 판구조론(板構造論)에 의거한 판과 판의 충돌이나, 하나의 판이 다른 판 밑으로 침강할 때 작용하는 큰 횡압력을 받아 습곡을 만들며 융기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조산대의 지층들은 심한 습곡과 역단층(逆斷層)이 발달되어 있고, 아래쪽은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하여 변성작용을 받는다. 이곳에 나타나는 염기성 화성암류는 해양지각을 이루는 염기성 암류가 판이 침강할 때 그 일부분이 긁혀서 습곡대에 노출된 것으로, 이를 오피올라이트(ophiolite)라고 한다.환태평양조산대는 해양지각판이 대륙지각판 밑으로 침강함에 따라 형성되었고, 히말라야 ·알프스조산대는 판과 판이 충돌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선캄브리아기에도 같은 방식으로 조산대가 만들어졌고, 고생대 중기와 말기에 각각 만들어진 칼레도니아조산대, 바리스칸조산대가 있다. 한국의 평북육괴 ·경기육괴와 영남육괴는 선캄브리아대에 최소한 2∼3회에 걸쳐 조산운동을 받은 것으로, 지금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또한 중생대 초기의 지층들은 송림변동(松林變動)과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으로 심한 습곡을 이루고 있으며, 강원의 탄전지대와 그 부근의 지층도 이들 변동으로 심한 습곡을 형성하고 있다.??지금부터 지진대와 화산대가 일치한 것을 바탕으로 불의 고리가 형성 된 원인과 과정에 대해 총괄적으로 살펴보고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대, 환태평양조산대에 알아보려 한다.Ⅱ. 지진지진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원인은 판의 활동과 관련 있습니다. 지구의 지각은 십 수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판들의 경계부는 판과 판끼리 부딪치기 때문에 지진활동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태평양지진대와 알프스지진대가 판의 경계부라고 알려져 있다.1. 발생 메커니즘과 발생지대부분의 지진은 단층( 남북 방향을 따라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한편, 화산의 분포 지역도 지진의 분포대와 거의 겹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진이나 화산은 특정 지역에 집중하여 발생하거나 동일 지역에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 지진은 지각을 구성하는 판들이 각기 움직일 때 판 경계부에서의 상호 작용에 의한 충격이며 화산도 그 부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판구조론의 핵심은 판과 판들이 상호 작용하는 무대인 판 경계부의 종류를 구분하고 판구조 운동의 산물인 화산이나 지진 같은 지질 현상을 통하여 다양한 판 경계부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판의 경계를 확장 경계, 수렴 경계, 및 유지 경계의 3가지로 통상 구분 하는데 수렴 경계를 다시 침강 경계와 충돌 경계로 구분하여 4가지의 경계로 나누기도 한다.■ 확장경계상부 맨틀의 뜨거운 마그마는 끊임없이 외부로 빠져나가려 하는데 주로 지각의 갈라진 틈을 통하여 분출하게 된다. 이러한 지각의 틈들은 주로 두께가 얇은 해양판(지각)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일직선상으로 연장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분출된 마그마가 해수에 의해 냉각되어 암석으로 굳어지면서 새로운 해양 지각을 만들고 새로운 해양 지각은 계속되는 마그마의 분출에 의해 판의 일부가 되어 점점 멀어지게 된다. 바로 이곳이 판들이 멀어지는 확장 경계이며 새로운 해양 지각이 생성되는 곳이라 하여 생성(constructive) 경계라고도 한다. 또한, 이곳은 마그마의 분출에 의해서 열곡(rift valley)과 해저 산맥을 이루게 되는데, 해령(oceanic ridge)이라고 부른다. 한편, 확장 경계는 해양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두꺼운 대륙판 내부에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발달된 동아프리카 열곡대이다 이 열곡대는 해령의 확장축 부근에 존재하는 열곡의 형성과 동일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판의 동서 두 부분이 서로 멀어지고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해령에서처럼 맨틀 기원의 마그마가 분출하여 생성된 암석이 나타난다. 한밀접한 관계가 있다.1995년 1월 8일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진도 7.8의 큰 지진은 5천여 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와 함께 수만 채의 집이 파괴되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일으켜 전 세계를 경악시킨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23년 9월 1일, 동경과 요코하마를 괴멸시킨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지난 50년간 10회의 대지진이 일어나 1만7천명이 넘는 인명과 10만 채의 건물을 잃었으며, 매년 천 회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바로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을 파고들면서 두 판의 충돌과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판의 경계부에 놓인 일본은 지진이 발생하는 무대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뿐만 아니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은 주로 지중해와 태평양 주변의 육지와 섬, 인도 히말라야 산맥, 중국의 산악 지대 및 북미 대륙 서해안 등 특정 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은 바로 판 경계부에서의 판구조 운동의 결과인 것이다.대륙판과 충돌하여 해양판이 침강해 들어가는 수렴 경계의 경우, 해양판이 침강해 들어가면서 일으키는 마찰은 지속적이며, 다양한 강도의 지진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태평양 동쪽으로는 태평양판이 북아메리카판 밑으로 침강해 들어가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해안선을 따라 내륙 쪽으로 지진을 일으키고, 나즈카판이 남아메리카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안데스 산맥을 따라 지진을 발생시키는 한편, 서쪽으로는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침강해 들어가면 서 일본, 필리핀을 지나 인도네시아, 뉴질랜드를 이르는 환태평양 지진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지진은 발생 깊이에 따라 천발 지진, 중발 지진, 및 심발 지진으로 나뉘는데, 주로 침강 경계의 대륙 쪽으로 점점 멀어질수록 지진의 심도는 깊어진다. 이들 지진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베니오프(Benioff) 지진이라 하며, 환태평양 조산대를 따라 띠 모양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일명 베니오프대라고도 한다.한편, 확장 경계에서는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분출할 때, 충격으로 지진이 발 끓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마그마에서 유리한 기체는 갑자기 팽창하고, 그 압력이 급격히 증대하여 마침내 위의 암석을 단숨에 날려 보내고 화산폭발을 개시한다. 일단 통로가 트이면 마그마는 한층 더 발포를 일으키며 나머지 마그마가 속속 세차게 분출한다. 분화의 메커니즘은 대략 이와 같으며, 분화는 2차적인 마그마 굄을 전선기지(前線基地)로 삼아 반복되는 것 같다. 분화 때의 출구를 분화구(噴火口)라 하고, 분화구까지의 지하 통로를 화도(火道)라 한다.분화구 안에는 화공(火孔)이라는 주활동부가 흔히 있으며, 평소에도 적열(赤熱) 용암이 노출되어 있거나 화산기체가 타고 있는 수가 있다. 또 분화할 때에는 거기에서 분출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분화구 안이나 산허리 등에는 수증기나 그 밖의 화산기체를 분출하고 있는 곳이 흔히 있다. 고형물이 없이 기체만을 내는 경우는 분화라고 하지 않고 분기(噴氣)라고 한다. 화산의 분연(噴煙)은 화산기체만이 있는 경우(주로 흰색)와 화산재 등의 쇄설물이 섞여 있는 경우(회색?검은색 등)가 있다. 보통의 분화와 달리 지하의 마그마로부터 수증기나 지하수가 가열되어 생긴 수증기가 차츰 축적되어 압력이 높아지고, 마침내 주위의 암석을 폭파하는 현상을 수증기폭발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분화의 일종으로 간주된다.2. 화산의 형태와 분화 형식화산은 형태도 다양하지만 용암의 종류나 분화의 형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① 폭렬화구(爆裂火口) : 단기간에 소수의 폭발만으로 활동을 그치고, 화구만이 대략 원형으로 움푹 패어 있는 것으로 여기에 물이 고인 것을 마르(maar)라 한다. 남부 독일의 아이펠지방에는 폭렬화구가 125개나 있다.② 분석구(噴石丘)?구상화산(臼狀火山) : 분석구는 화산쇄설물만으로 구성된 원뿔모양의 작은 언덕이다. 높이에 비해 화구가 큰 분석구를 구상화산(호마테)이라 한다. 하와이 다이아몬드헤드화산이 전형적인 예이다.③ 성층화산?원추화산 : 성층화산은 용암류와 화산쇄설물이 쌓여 생긴 화산으로, 안산암이나 현무암 화산에 많다. 그 니노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 터키의 카프카스 산맥, 이란의 저그로스 산맥, 아시아의 티베트 고원 등이 있다.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의 형성은 판구조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데, 대륙지각과 대륙지각의 충돌에 의한 지각의 변형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억 5,000만 년 전, 현재의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인도·아라비아 등과 같은 대륙들 사이에는 테티스 해라는 큰 바다가 있었으며 테티스 해의 북쪽에는 유럽과 아시아가, 남쪽에는 아프리카·인도·아라비아가 있었다. 한편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이란과 함께 현재보다 수천㎞ 정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는 테티스 해 주변의 대륙들이 테티스 해가 닫힘에 따라 서로 충돌하여 형성된 것으로 설명되는데, 충돌은 약 1억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조산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테티스 해에 퇴적된 퇴적암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변성암도 많이 나타난다.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을 비롯한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의 동부는 인도와 아시아의 충돌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지를 이루고 있다. 이란의 저그로스 산맥과 터키의 카프카스 산맥을 포함하는 조산대의 중부는 아라비아와 인도와의 충돌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알프스 산맥을 비롯한 조산대의 서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충돌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조산대를 이루고 있는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는 서로 다른 대륙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충돌해서 형성된 산맥들이 모여 구성된 복합적인 조산대라고 할 수 있다.Ⅴ. 환태평양조산대고생대 말부터 현재까지 조산운동을 거듭하고 있는 환태평양지대로서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과 코르디예라에서 시작되어 북아메리카 서부 산맥군·알래스카로 이어지고 다시 알류샨열도에서 쿠릴열도·일본열도를 거쳐 필리핀·뉴기니섬·통가 등의 호상열도(弧狀列島)에 이르는 지대를 가리킨다. 판(板, plate)이 충돌하여 조산운동을 받는 알프스-히말라야조산대와는 달리, 해양 지판의 침강(沈降;해양 지각의 함입)에 따른 조산운다.
한비야의 를 읽고...많은 이들의 가슴에 ‘여행’이라는 씨앗을 퍼뜨렸던 한비야. 내가 ‘한비야’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 이라는 책을 선물 받으면서 였다. 전문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글은 감칠맛이 있고, 정직하고, 소박하며, 인정이 넘치고, 유쾌했다. 그녀는 글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주변 상황들을 아주 정직하면서도 재밌게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변함없이 끓어 넘치는 열정과 용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며, 용기를 품게 한다. 그래서 난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의 책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는 그녀의 일곱 번째 책으로 기존 그녀의 책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알려주는, 내 우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들을 심어주었다면, 이번 책은 얼어있던 내 심장을 뛰게 했고, 순간순간 내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나 자신, 내가 처한 상황에만 온갖 관심을 쏟으며, 정작 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곳은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나에게, 살아 있으나 심장이 얼어버린 듯 나 자신 밖에 모르는 냉정한 삶을 살았던 나에게 나를 벗어나 내 주변을, 이 세상을 돌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대한민국의 국토는 물론이요 세계 곳곳에 숨겨진 오지까지 서슴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었던 그녀는 ‘여행자의 로망’의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름에서는 자연스럽게 지도가 떠오른다. 또한 한비야, 하면 지도와 호흡하며 당찬 걸음걸이가 상상된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새로이 내놓은 에서 ‘지도 밖’을 이야기하고 있다. 뜻밖이다. 그녀가 긴급구호 활동가로 변신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행에 관한 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이 사실은 약간은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 ‘여행자의 로망’이 지도 밖을 이야기하는데 어찌 쉽게 받아들이겠는가?는 겉모양새만 본다면 이제껏 그녀가 말했던 테마를 비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순수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줬던 그녀인 만큼 그녀의 작품을 제목만 보고 판단하는 걸 곤란하다. 더욱이 자신의 긴급구호활동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사실만 갖고 한비야가 외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 것도 곤란하다. 속내를 살펴본다면 는 이제껏 그녀가 부른 여행의 노래 중에서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의 로망’이라는 테마 속에서 말이다.도전하는 이에게는 장애가 없다. 나이가 많기 많이 때문에, 돈이 없어서, 여자라서 등등 무언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도전하는 이는 그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버린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고 할까. 그녀가 멋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5년 전부터 긴급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더해주고 싶었다는 그녀는 월드비전의 제의를 받고 선뜻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 잠비아, 이라크, 네팔, 시에라리온 등 세계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된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생동감 넘치게 해 주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녀의 삶이 우리의삶과는 무언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둥바둥, 삶 그 자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녀의 삶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그것보다도 더 바쁘다. 세계 곳곳,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도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서 내가 여유를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녀의 그 바쁨이 그녀 자신에게만 귀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역시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보다 넓은 세상을 접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 세상 그 어떤 사교육으로도 불가능한, 자기 안에 큰 그릇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활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와 맞물려 돌아가진 않는다. 걸어서 세상을 경험하는 그 순간에도 그랬지만, 긴급구호 활동을 하는 것 역시, 경제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우리와는 달리 자유로울 수 있다. 그녀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이유이다.지도 밖 그곳은 지도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고통이 스며들어간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이 원조 잘해주는 나라들도 아예 외면하는 그곳은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의 악순환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권력자들 때문에 총성과 폭음이 사방을 뒤흔드는 그곳, 먹을 것이 없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그나마 먹을 것이 있어도 허무하게 총성 소리와 함께 귀한 목숨을 떠나보내야 하는 그곳, 그곳은 분명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면 받는 곳이다. 그런 그곳에 인간 한비야가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하는가?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씨앗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라크에서는 식수대를 만들어 물과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그곳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금을 모금하는데 앞장서려고 한다. 그리고 네팔에서는 환한 미소를 만들게 해주는 식량을 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다.그녀는 인간이다. 그래서 마음은 예수처럼 약간의 음식으로 많은 이들을 먹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신음한다. 그 안타까움은 그녀의 가슴을 찢는다. 너무나 거대한 재앙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인간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타들어갈 뿐이다. 처음은 홀로 들고 있는 그 희망의 빛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고 몸과 마음이 고단하기도 하지만 작은 그 빛이 사방을 비출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오늘까지도 긴급구호 활동을, 지도 밖으로의 행군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또한 이 책에서는 소년병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고 삶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아이들, 전쟁과 가난으로 고생 받는 사람들에겐 한방울의 물, 한톨의?쌀만큼 중요한 것이?없다. 그런데 그것은 거창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돈 단돈 2만원이면 굶주리는 아이의 한달 생계가 해결된다. 가난과 질병이 이들이?게으른 탓이 아니라, 재해나 환경, 또는 정부의 탄압 등등 외부 조건 때문임을 안 이상, 그리고 자력으로는 그 죽음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알게 된 이상,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잠깐만 손을 뻗쳐주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 한비야는 이들이 삶의 끈을 놓치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책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시작해 말라위,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네팔, 팔레스타인, 남아시아, 북한 등에서 펼치는 구호활동이 주는 현실적 생동감은 물론, 현지 직원들간의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우정과 사랑,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갈등 등등이 웃음과 눈물로 범벅되어 마음을 관통한다.그렇다고 긴급구호활동이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굉장히 힘든 일임을 자신의 세계여행 첫발을 내디뎠던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견딜 만큼 견뎠으니 누구도 욕하지 못하리라는 생각 한편으로 몸은 편해도 자신이 꿈꾸어 왔던 것을 쉽게 포기했다는 것 때문에 쉽게 자신을 용서할 수?없는 마음의 불편함으로 끝내 목표를 향해 뛰어갔던 모습 속에서,?의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또 한편 시에라리온의 아이들이 다이아몬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준비나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무엇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지 모른다는 헛된 꿈이 어떻게?아이들의 발목을 잡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로또와 같은 복권이나 주식, 집값 폭등 등에 목말라하는 한국이라는 곳의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져 씁쓸함을 건네준다.사실 말이 쉬워 긴급구호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이지, 그녀의 결심들을 오늘날까지 지키는 것이 쉬웠겠는가?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전쟁과도 같은 내전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위협하는 총성 소리에 두려운 밤을 보내야 했던 날도 있을 정도로 목숨까지 위협을 받기도 한다. 더욱이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인물인데 어째서 그런 것인지 에서 가슴 쓰린 장면들을 보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할 수밖에 없다.
목 차논쟁의 시작Ⅰ-1. 고대중국의 역사인식Ⅰ-2. 통사의 주창자들Ⅱ. 서양중심의 세계사Ⅲ . 순환론에 대한 근대적 해석Ⅳ-1. 근대의 발전론적 역사관Ⅳ-2. 마르크스의 영향Ⅴ. 동양적 전제주의Ⅵ. 회고와 전망결어논쟁의 시작장구한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시대 구분이 중국의 역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는 고대 중국의 역사가뿐만 아니라, 서양학자들 및 현대 아시아 역사가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로 제시되어 왔고, 의외로 현대의 정치논쟁으로 발전되기까지 했다.Ⅰ-1. 고대중국의 역사인식1. 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자가 사회 질서 중에서 가장 높은 이상으로 생각한 천하위공의 세계(모두에게 공유되는 세계) 즉 ‘大同’의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과거에 황금시대가 전개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화합과 평화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마침내 이 대통일의 시대는 가고, 사람들은 서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대통일시대가 끝나고 역사가 시작되면서 인류의 타락한 행위는 제왕의 흥망, 제군대의 승패 등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변화과정들로 전개되어 나갔던 것이다. 즉 황금시대의 기준은 통일?질서?공유가 적용되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B.C. 2205년부터 대동의 시대가 끝나고 왕조지배가 나타나게 되었다.2. 왕조의 순환전 계승 - 사마천漢代에는 자연(천하)의 모든 사상이 순환한다는 이론이 중국인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고대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인 사마천 역시 왕조의 순환을 보통의 5단계 - 德의 순환 - 가 아니라, 3단계로 관련지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통일 이후 역사시기의 특징적인 변화를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와 같이 왕조가 역사순환 가운데 한 시대를 형성한다는 생각이 관습으로 굳어지면서 고대 역사가인 반고(A.D. 32-92)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한계는 한 왕조에 대한 역사서술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각 왕조마다예를 정하여 그 음란한 것을 막고, 그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워서, 그 무질서를 막게 하였다. 이것이 3대(三代)까지의 법이었다. 3대(三代)의 법은 인민을 위해 천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다스리는 사람은 있는데 다스리는 법은 없다”라고 한다면, 나는 “다스리는 법이 있은 연후에만,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일이 행해져도 단지 자신의 분수에만 머물러 사소한 성취에만 만족하고, 공명(功名)을 세울 수는 없다. 선왕(先王)의 법이 회복된다면 인간들 사이에는 법을 초월한 어떤 정신이 가득 찰 것이고, 그 사람이 그릇되어도 포악하게 다스려서 백성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잘 다스리는 법이 있은 연후에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라고 할 것이다.5. 봉건제와 군현제만약 봉건제도가 군현제로 바뀐 이류를 이해한다면, 군현제도 역시 쇠퇴하여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봉건제의 결함은 지방적 차원에 권력이 집중되는 데 있고, 반면 군현제의 결함은 중앙에 권력이 집중됨에 있다.Ⅱ. 서양중심의 세계사1. 역사의 유아기 - G.W. 헤겔현대 유럽의 사상조류가 영향력의 크기를 확실하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사 서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서양의 중국사 연구자들이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서양의 중국사연구 성과가 별로 없다. 대표적인 인물로 헤겔은 역사는 세계를 범위로 하여 진보하는데, 중국에서 시작하여 태양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하고 마침내는 유럽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또한 중국의 역사는 비역사적으로 진행되어, 변화는 계속되었으나 진보는 없어서, 쇠퇴와 침체라는 반복적인 순환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역사는 ‘중국제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는 정보를 제공하는 한에 있어서 중국제국이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리’는 실체성으로서 이 제국에 있어서는 최고의 것 이에 반해 양자강은 항상 항해가 가능했다. 홍수의 피해 또한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황하만큼 크지는 않았다. 더욱이 겨울의 추위도 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문명은 양자강변이 아닌 황하유역에서 발생했다.중국문명: 좌절과 세계국가“중국사회”의 해체에 관해서 살펴보면, 그 좌절의 순간이 기원전 634년 양대 강대국 진(晉), 초(楚)의 대립과 일치되고, “중국적 세계국가”의 건설은 기원전 221년 진(秦)이 제(齊)나라를 멸망시키고 제국의 통일을 이룩한 순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중국문명: 해체와 세계교회“중국사회”의 쇠퇴와 몰락의 와중에서 서기 300년경 황하분지에 “중국세계국가”의 유라시아 유목 후계국가들이 성립되고 동시에 대승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바로 “야만주의와 종교의 승리”를 의미했다. 대승불교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한, 발상지였던 ‘비헬레닉 사회’는 개종시키지 않은 채, ‘헬레닉 사회’에 들어와 그 활동영역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일치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그 발상지로부터 두 차례의 이동을 거친 후 중국의 내적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교회가 되었던 것이다.극동문명: 새로운 땅의 자극“극동사회”의 기원은 “중국사회”에 있다. 극동문명은 그 영역 가운데서 어느 지역이 가장 큰 활력을 보여 주었을까? 오늘날 이 문명의 가장 활기찬 대표자가 일본인과 광동인인 것은 분명하다. 이 극동문명의 한 지류가 일본이라는 처녀지에서 크게 성장한 것은, 그리스 정교회 문명의 한 지류가 아나톨리아 고원을 넘어 러시아라는 처녀지로 이식되어 성장?번성했던 것에 대비될 수 있을 것이다.극동문명: 좌절에 이은 화석화극동사회는 세계국가, 공위기를 경유하여 급속하게 해체?소멸의 경로를 밟는 대신, 화석의 상태로 그 존재를 연장시켜 오고 있기 때문이다.Ⅲ. 순환론에 대한 근대적 해석1. 중국 대내란의 주기적 발생 - J.S.리새로운 서구적 역사해석에 있어서 다른 접근법이 종종 채택되곤 했다. 중국의 과거를 조명할 때, 중국역사에서 순환이란 개념을 빼버린 경우제위를 넘겨주는 통상적인 과정이었다. 외적 중복은 한인?이민족을 막론하고 두 왕조 사이 혹은 다수의 왕조나 국가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 왕조상을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는 상호 공존을 촉진하는 요인들과 정복 활동은 촉진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문제는 측정의 기준이나 분류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뚜렷한 판단 기준은 통합과 팽창, 그리고 평화와 번영, 다른 말로 하면, ‘문지(文治)와 무공(武功)’ 즉 문무의 공적이다. 물론 이런 두 종류의 공적은 서로 모순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통합과 팽창은 이따금 평화와는 대조되는 전쟁을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중국사가들은 번영의 시기를 철학, 예술 및 문학과 같은 분야의 문화적 활동이라는 견지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의 타당성 여부는 재미있는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문화발전이라고 할 때 ‘문화’라는 용어의 정의 문제이다. 둘째, 양과 질에 관한 문제이다. 문화의 한 분야가 특히 기성 사회에서 지지를 받았는지의 여부, 그리고 역사상 빨리 발달했는지 늦게 발달했는지의 여부 등은 쉽게 일반화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사상적인 것 뿐 아니라 물질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논의에서 왕조의 연대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개관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며, 황제가 초점이 되기는 하지만,우리의 모든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명목뿐인 황제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물론 대단히 정력적인 황제조차도 중국과 같은 방대한 제국을 독단적으로 통치할 수는 없었다. 한 왕조 하에서 협력 세력과 대립 세력이 어떻게 작용하였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가들의 의무라 하겠다. 왕조상에 관한 연구들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문제로 접근하게 한다. 마치 인간의 운명처럼 왕조도 흥하고 망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숙명적인 왕조의 성공과 실패, 즉 내력을 통하여 유용한 것을 배우는 데 있는 것이다.4. 시대구분 : 중국사와 세계사 - 뇌해종뇌해종은 사항이 언급되어야겠다. 첫째는 유럽의 봉건제와 비슷한 발전이 중국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다른 모든 곳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처음부터 봉건적 구조 속에 관료 행정적 요소가 있었다. 어쨌든 토지소유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는 봉건제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도덕적 요소(충성) 즉 권리?의무라는 쌍무적 계약관계가 결여되어 있어서 봉건제와는 다른, 지주-소작 관계를 창출하고 있었다. 대체로 순수한 경제적 관계였다. 또 하나의 결과는 군주가 지주들을 그의 행정체제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경제적으로 구귀족의 종말, 혹은 다른 사람들과 유사한 토지소유자로서의 변환(전환)을 의미했다. 이 경우 구사회의 파괴를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이미 다른 계층구조를 지닌 사회가 새로운 통치계급, 즉 사인과 함께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치자는 더 이상 ‘봉건영주’라고 불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원전 3세기에 나타나 기원전 1세기에 확립된 이 ‘사인사회’의 전형적인 특성 중의 하나는 귀족 정치와 귀족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층지배 계층의 권력기반이 사회경제적 바탕이었다. 중국 사이사회의 극도의 안전성은 중국 문명을 오래 지속하게 하고, 또 외국이 쉽게 중국을 지배할 수 없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 점이 또한 변화를 가로막고, 그 변화의 도구인 근대과학의 발전도 저해하였다.Ⅵ-2. 마르크스의 영향1. 주요 경제지역에 의해 지배된 역사 - 기조정‘주요경제지역’이란 개념을 사용하면, 중국 내 부차적인 경제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위한 지렛대로서 역할을 행하는 경제 기초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1) 주요 경제지역의 개념우리가 대상으로 삼고 잇는 이 장기간 동안 중국경제는 기본적으로 행정?군사적 활동을 위해 대규모 집단으로 편성된 수만 호의 자급 자족적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을 지배한 집단이 전 중국의 정복과 통일을 위한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역이 ‘주요경제지역’으로 지칭될 수 있을 것이다.2) 통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