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RULES FOR GREAT CUSTOMER SERVICE知 PLUS김은지1.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객의 좋은 경험은 우리와의 거래가 이어지는데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하게 된다.CUSTOMER'S POSITIVE EXPERIENCE좋은 서비스고객에 대한 헌신2. 우리의 상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객에게서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사전 준비와 응대CUSTOMER'S TRUST3. 고객에 대해서 알아라고객의 니즈고객의 소비 형태고객과의 충분한 대화불만족의 원인을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고객응대가능CUSTOMER'S TRUST4. 고객의 예절과 존경으로 대하여라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주문에 감사드립니다천만에요이렇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생활화 해야 할 문구들5. 절대 고객과 논쟁하지 마라10명중 7명의 고객들은 그들의 불만이 해결되었을 경우에 다시 당신과 일할 것이라는 것은 조사들은 입증하고 있다.CONCENTRATE ONNOT고객이 무엇을 잘못했는지…YES!!어떻게 고칠 수 있을 것인가?6.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말아라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항상 빠르게 진행해야만 한다다시 거래를 희망한다(95%)서해안 안면도 해병대캠프 백사장 해수욕장불만고객의 경우 불만이 즉시 해결된다면?7. 항상 당신이 약속한 것을 이행하라약속고객신뢰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CUSTOMER'S TRUST8. 고객은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하라이런 사람도 고객인가?거짓말을 하는 사람 괜한 트집을 잡아내는 사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우기는 사람YES!!!!고객은 나의 불평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 들은 항상 자리를 박차고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CUSTOMER'S TRUST9. 판매가 아닌 고객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매출(판매)기존고객의 유지고객의 신뢰확보성공하는 세일즈맨은 현재의 상품의 판매보다는 미래의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서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판매한다.새로운 고객을 만드는것은 기존고객을 지켜내는 것보다 6배의 비용이 소요된다.중요성10. 구매하기 쉽도록 한다구매하기 쉽도록!!!형식적인 서류작업 제거제품이나 서비스 사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전달을 위해서는 무엇이든!!항상 내가 아닌 고객의 마음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위해서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내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며 고객은 우리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nameOfApplication=Show}
1. 미스코리아 재벌가와 결혼 이혼 이걸보구 외모와 남녀관계에 대한 생각정리우리는 어릴 때부터 외모지상주의로 가득 찬 동화책을 보면서 자랐다. 콩쥐팥쥐,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어린이들의 필독서라고까지 여겨지는 이러한 책들을 잘 살펴보면 착한 인물들은 모두 예쁜 공주이거나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그러나 나쁜 팥쥐나 백설공주의 마녀, 그리고 신데렐라의 언니는 모두 못생기고 뚱뚱하고 욕심 많은 인물이다. 이렇게 정리하고나니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균보다 체중도 많이 나가고 오똑한 콧날은 물론 쌍꺼풀 진한 큰 눈도 없기 때문이다.얼마 전, 드라마에 복귀선언을 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고현정은 미스코리아로써 미의 상징이었다. 보통의 연예인과는 다른 정숙해 보이는 이미지와 지적인 느낌까지 있었기에 그녀는 더욱 완벽했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를 뒤로하고 그녀는 재벌가에 시집을 갔다. 삼성이라는 대단한 그룹으로 시집을 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은 또다시 역시 사람은 예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삼성이라는 대단한 문 속으로 들어가 여성잡지 이외에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이효리, 성유리, 한가인 등의 새로운 미의 여신들이 우리 눈앞에서 춤추고 노래할 때, 그녀의 이혼 소식이 들렸다. 물론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서 평생이 같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녀의 이혼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증명되지 않은 소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고현정이 바람을 폈다,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등의 소문들은 일파만파 퍼졌지만 우리는 아직 그 속사정을 알지 못한다. 짐작만 할 뿐이다.나의 주변의 남자 선배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옆 테이블의 여자들, 혹은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서 예쁘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눈은 괜찮은데 코가 별로이다. 등의 여자 품평회를 한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로써는 지겹기까지 하다. 가끔은 짜증을 내보기도 한다. 저 여자들이 당신네들한테 관심이나 있는 줄 아느냐, 그러면 그들은 어차피 사귀지 못할 텐데 그냥 말이나 해보는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남자들의 여자를 평가하는 것은 외모이다. ‘얼굴만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 말이 공식이 되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2. 에이즈의 확대와 성적욕망의 추구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현대인을 이끌어가야 하는가?성문화가 점차 개방되면서 한 신문기사 중에 20~30대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성의식 조사를 한 결과 40%이상이 사랑한다면 혼전 성관계도 가능하고, 30%는 이미 이성과의 성관계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성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남자들(혹은 여자들도)의 경우 즐기기 위해서 여자와의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 성적 욕망에 의한 성매매,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성관계는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법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하고 또한 단속을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연인들의 성관계까지 단속할 명분도 또한 그럴 의무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프리섹스를 통한 문제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가장 무서운 병이라 알려진 에이즈(AIDS)가 이러한 성관계를 통해서 퍼진다는 것이다. 아직은 치료법도 없고 걸리면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이 에이즈가 성스러운 성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게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모두 에이즈가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것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우선 성관계를 가질 때,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에이즈뿐만 아니라 여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결국 상처받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콘돔의 어감을 위해 ‘愛必’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다가 愛必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로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약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콘돔에 대한 반감도 그리 심하진 않을 것이다. 약국뿐 아니라 어느 상점에서도 콘돔을 판매하고 또한 직원들의 머리 속에 콘돔을 사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둘째, 방종을 버리고 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카사노바도 아니고 이 여자 저 여자 바꿔가면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상대 여성에게도 좋지 않다. 쾌락을 위해서 많은 상대와 성관계를 가지면 그만큼 에이즈뿐만 아니라 다른 성병에도 걸릴 염려가 있고 또한 자신이 매개체가 되어 다른 이에게 전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처음 에이즈라고 판명된 사람이 동성애자였기에 동성애를 통한 바이러스 전염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상대가 이성인지 동성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요즘 성관계를 갖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추세이며, 어린이들을 상대로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제 각성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3.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자신이 꿈꾸는 남녀관계 모델이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회사를 마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서 TV를 켠다. 그곳에는 많은 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힘든 일도 있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그들의 사랑을 지켜나간다. 그들은 TV라는 작고도 넓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와는 다른 곳에 살고 있다.어제 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을 봤다. 한달 전부터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보게 되었다. 브리짓, 그녀는 33살의 미혼여성이다. 말로는 프로 방송인이라 부르짖지만 그녀는 실수투성이 기자초년생이다. 그녀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 그는 잘나가는 인권변호사이다. 그녀는 그와 사귀는 8주 동안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 잠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완벽한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뚱뚱하고 예쁘지도 않은 노처녀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신데렐라와 왕자님 이야기만 가득한 세상에 브리짓 존스와 마크 다씨의 이야기는 다른 것 같아서 오랜만에 즐겁게 영화감상을 했다. 물론 브리짓 존스가 예쁘고 날씬한 전문 기자의 모습으로 나와 마크 다씨라는 저명한 인권변호사와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신데렐라와 왕자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영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 같은 평범한 여자의 눈에는 그것은 또 나와 다른 세상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브리짓 존스는 분명 그녀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은 엉뚱하고 실수투성이이지만 그녀의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이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망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세상 속의 여자들이 사랑하는 남자들은 그들의 재력과 배경이 드라마 속 가득히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마크 다씨의 재력과 배경은 그다지 잘 보이지 않았다. 브리짓 존스의 매력에 빠진 마크 다씨의 모습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물론 해방꾼도 있었고 억지로 끼워 맞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이 마냥 아름다웠다.현실적으로 인권변호사라는 직업이 대단한 직업일지는 몰라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는 그의 직업보다 그가 브리짓 존스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게 나타났다. 브리짓 역시 변호사 애인을 가졌다기 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에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들처럼 서로의 단점이 보여도 그것까지 아껴줄 수 있는 사랑을 할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브리짓 존스의 혼잣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마음이 중요하지!!’
삼국시대 인물에대한 인식의 전환담당교수님 : 양윤모 교수님한국사의 재조명-목차-Ⅰ.역사 속의 인물에 관한 인식은 과연 정확한 것인가?Ⅱ.역사관 & 삼국사기 집필시기의 시대적 배경1. 역사관과 역사의 올바른 인식태도(1)역사관(2) 사관은 불필요한 것인가(3) 올바른 역사 해석의 태도(4) 과거의 역사가와 사관2. 김부식과 삼국사기 편찬시의 배경(1)김부식(2)『삼국사기』 편찬시의 시대적 상황3. 김부식의 역사의식과 『삼국사기』의 문제점Ⅲ.삼국시대의 인물들에 관한 보편적인 인식1.의자왕2.김유신Ⅳ.역사속의 인물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1.의자왕(1)의자왕과 삼천궁녀(2) 삼국사기의 진실 혹은 거짓(3) 존경받는 의자왕(4) 당나라의 힘과 백제 멸망2.김유신(1) 김유신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2) 김유신의 군 통솔자로써의 역량(3) 김춘추,김유신 세력등 신라 지도층의 친당 사대주의Ⅴ.결론※ 한국사의 재조명 설문 조사 결과※ 참고 자료Ⅰ.역사 속의 인물에 관한 인식은 과연 정확한 것인가?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해주시는 많은 선물을 받는다. 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위인전집이 아닐까 한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나라나 외국의 많은 위대하다는 사람들의 인생을 읽으면서 자그마한 감동과 꿈을 키우곤 했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면서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누가 이들을 위인으로 정했으며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우리역사에는 삼국시대라는 시기가 있었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각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대립하던 시기이다. 그리고 그 시기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김춘추라는 인물을 보게 된다.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의 이바지한 훌륭한 위인이며 신라의 정치 지도자 . 김춘추.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인물을 보게 된다. 향락에 취해 나라와 충신을 버리고 결국자신의 국가를 신라에 헌납한 의자 왕이 그이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시대가 존재했다는 것처럼 매우 상식적인 것이다. 우리가 보던 위에 임명되었다. 그뒤 김부식 4형제가 중앙관료로 진출할 때까지의 생활기반은 경주에 있었다.아버지 김근(覲)때부터 그의 가문은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네 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고, 그중 둘째형 부일(富佾), 동생 부철(富轍) 과 김부식은 당시 관직 중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한림직(翰林職)을 맡아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김부식은 1096년(숙종 1)에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 대도호부(安西 大都護府)의 사록(司錄)과 참군사(參軍事)를 거쳐, 직한림(直翰林)에 발탁되었다. 이후 20여년 동안 한림원 등의 문한직(文翰職)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켰고, 한편으로 예종인종에게 경사(經史)를 강(講)하는 일도 맡았다.그는 자신을 공자 맹장의 학문을 받든다고 표방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 윤리의 실천을 주장하였고 유교이념의 실현에 노력한 유학자였다. 이자겸이 인종 초년에 왕의 외조부 겸 장인으로서 참람한 행위를 하고, 예에 어긋난 일을 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또, 《삼국사기》의 사론에서 유교적 이념의 제시를 보여 주었으며, 예종인종 때의 강경(講經)에서도 유교적 이념을 강조하였다.그의 정치가로서의 활동은 이자겸의 난을 거치면서 재상으로 승진한 때부터 시작됐다. 이자겸 일파의 정계축출로 인하여 승진이 용이해져 1130년 12월에는 정당문학 겸 수국사(政堂文學兼 修國史)로 승진되어 재상이 된 뒤 다음해 9월에는 검교사공참지정사(檢校司空參知政事)로, 그 이듬해 12월에는 수사공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守司空 中書侍郎 同中書門下平章事)에승진하였다.이즈음 묘청(妙淸)일파가 서경 천도설(西京 遷都說)을 주장하고 천도가 실현되지 못할 듯하자 난을 일으켰다. 이때 그는 중서시랑평장사로서 판병부사(判兵部事)를 맡고 있었는데, 원수(元帥)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三軍)을 동원하였다. 그는 출정하기에 앞서 재상들과 의논하여 먼저 개경에 있던 묘청의 동조세력인 정지상(鄭知常), 김안(金安), 백수한(白壽翰) 등의 목을 베었다.그 입장을 취했고, 의자왕과 김유신에 관한 인식은 대학생이 된 20대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걸로 조사됐다. 하지만 역사가와 사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역사적 사실이 왜곡. 거짓이었던 경험은 없었냐는 질문에서 또한 많은 학생들이 그러한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인하대 학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학우들 대부분이 올바른 역사 인식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 그들이 어떠한 역사관에 의하여 자신들의 역사인식이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역사관에 의한 역사인식이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렇다면 현재 삼국시대의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삼국시대 내에서의 이 두 인물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1.의자왕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의자왕은 즉위 전부터 재위 15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자못 긴장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재위 15년 고구려,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 북쪽 변경의 30여성을 점령하면서 전제왕권의 확립을 공고히 하여 권력 독주가 가능해졌다. 국왕을 견제할 수 있는 귀족공동체의 결집력을 와해시킨 의자왕은 이때부터 심한 매너리즘에 빠졌다.『15년(655) 봄 2월에 태자궁(太子宮)을 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다.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 여름 5월에 붉은 색의 말[馬]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 울면서 법당[佛宇]을 돌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 가을 7월에 마천성(馬川城)을 고치고 수리하였다.』『16년(656) 봄 3월에 왕은 궁녀와 더불어 주색에 빠지고 마음껏 즐기며[淫荒耽樂]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평 성충(成忠)이 극력 간언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성충이 옥중에서 굶어 죽었는데[死] 죽음에 임고는 감히 진격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여 벼슬과 상을 더하여 주었다.』이로써 그가 인심의 움직임을 명민하게 파악하는 탁월한 통솔력과 더불어 풍부한 연극성의 소유자임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김유신은 분명 예사 인물이 아니다.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는 그 자체만 봐도 그렇다. 정치적 감각과 수완 역시 뛰어났다. 신라군의 사기가 떨어지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머리를 베기도 했을 정도로 용맹스러웠다. 불길한 징조가 여러 번 나타나도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군심과 민심을 안정시키는 능력도 놀랍다. 즉 심리전에 뛰어났다는 증거다. 또한 혹독한 추위 속의 행군에 지친 군사들의 앞을 윗옷을 벗어 던져 어깨를 드러내놓고 앞장서서 몸소 말을 모는 모습은 군사들에게 기적과 같은 힘을 샘솟게 했다. 아들인 원술이 당나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해 오자 왕에게 참수형에 처하라고 건의하고 끝까지 용서하지 않은 일등은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하며 신라 다중의 사기를 북돋우려 노력한 것의 단면들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Ⅳ.역사속의 인물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1.의자왕(1)의자왕과 삼천궁녀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왕에 대해서 얘기할 때 낙화 암에서 떨어져 죽은 삼천 궁녀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백제 멸망의 상징으로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의자왕은 삼천궁녀를 거느리며 방탕한 생활을 누렸던 타락한 왕이었을까?우선 삼천궁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당시 백제의 수도 사비에는 1만호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한 가구당 5명이 살았다고 가정하면 대략 5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절반을 여성 인구라고 하면 2만 5천이 여성인데, 그중 궁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나이의 여성을 대략 1만 5천명 이라고 하면, 삼천궁녀는 사비 전체 젊은 여성 인구의 20%나 된다고 할 수 있다. 실로 엄청난 인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 발굴된 궁궐터를 보고 추정해본 그 당시 왕궁의 규모가, 때에 와서야 태자궁의 존재를 알리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태자궁이 의자왕시대, 그것도 655년부터 기록이 남게 된 것일까? 이것도 그 당시 의자왕의 사치와 향락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 기록이 객관성을 잃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역사 기록의 객관성 여부를 떠나서 태자궁은 그 자체가 강력한 왕권강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의자왕은 태자로 책봉될 때부터 정치적으로 곤궁한 위치에 있었다. 그가 태자로 책봉된 시기가 무왕 33년인데(632년), 632년이면 의자왕의 나이가 40세 가까이 된다. 태자 책봉시기가 매우 늦은 것이다. 이는 의자왕의 어머니가 신라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백제는 신라를 적국으로 생각하였는데 적국의 왕녀가 나은 아이를 태자를 책봉한다는 것이 아마도 매우 거북하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유로 왕권에 있어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왕위에 오른 의자왕은 제위 기간동안 특히 왕권강화에 주력하게 되었고, 태자당 역시 그의 이런 주요 정책 노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왕권강화를 위해 지은 건축물의 화려함은 어느 정도 당연한 사실이며, 그것을 왕의 사치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656년의 의자왕이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는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의자왕의 나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의자왕의 정확한 나이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자왕의 아들이었던 태자융의 지석을 보면 태자융이 68세가 되던 영순 원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태자융이 615년생임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아버지인 의자왕은 그보다 20여년 빠른 595년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595년생 이라면 패망할 즈음의 나이는 60세가 넘어버린 나이다. 지금이야 60대는 아직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 당시에는 60대이면 지금의 80대나 다름없는 나이이다. 그런 나이에 그 이전까지 행실 바르기로 소문났던 의자왕이 탐락과 황음을 일삼았다는
내가 좋아하는 광고-국순당의 백세주 TV광고1. 제품 소개찹쌀과 좋은 누룩으로 빚은 “백세주”는 열 가지 한약재를 넣어 함께 발효시킨 술로서 선조들이 즐기며 향유했던 고유의 풍유문화와 같이 서로를 생각해주며 술자리의 멋과 흥취를 북돋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2. 백세주 광고내용어느 주말 오후 송강호는 소파에 누워있다. 집안 청소에 바쁜 아내가 청소기 좀 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남편은 소파에 누운 채 건성으로 청소기의 손잡이를 돌려댄다. 아내가 “빨래도 좀 개주고…”라고 부탁하는데도 이번엔 소파 위에 앉아 있던 강아지에게 빨래를 던져준다. “개 줬다…”라는 짓궂은 말과 함께. 이런 모습을 눈치 챈 부인이 “백세주 사야겠네.”라고 하자. 남편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양말을 허겁지겁 신고 백세주를 사러 달려 나간다. ‘백세주가 뭐 길래…’라는 광고카피에 이어 송강호의 “술 맛나?”라는 물음에 “살맛나!”라는 대답을 하는 아내로 광고는 끝을 맺는다.3. 백세주 광고 분석1)광고의 대상광고는 평범한 부부들을 주요 타깃으로 남편과 아내 두 인물을 등장시켜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어필하고자 한다.2)광고의 메시지그렇다면 무엇을 어필하고자 한 것일까? 이 광고의 메시지는 집안일 돕기 귀찮아하는 남편도 백세주 사러 가자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남편에게 직접 술을 사러 가자고 말하는 아내를 등장시켜 백세주가 그만큼 매력적이고 맛있는 술, 살맛나는 술이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3)광고의 목표기존의 백세주 광고는 맛있고 좋은 술이라는 이미지를 목표로 했다면 이번 백세주 광고는 기존의 백세주이미지에 더불어 살맛나는 술, 남녀 모두 좋아하는 술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목표로 하였다.4. 백세주 광고가 좋은 광고라 생각하는 이유1) 술 광고= 술집?밤 시간대에 TV에서 주로 보는 주류광고는 대부분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번 백세주 광고는 ‘술 광고=술집’이라는 등식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건강열풍과 함께 약제주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는 ‘좋은 술-백세주’ 광고는 주류 광고의 정설을 깨고 광고배경을 업소에서 가정으로 과감하게 바꿨다.따라서 퇴근 후면 언제나 동료나 친구들과 마시던 남편들을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문화를 살며시 권하는 것이 아닐까?2) 웃음으로 공략한다.주류광고는 대부분 멋진 남자·여자들이 나와 한껏 매력을 발산시키는 것이 공식화되어있는 지금의 풍토에 백세주는 배우 송강호를 100%활용한 코믹광고로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시킨다. 청소기 돌리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청소도구를 돌려버리는, 빨래 좀 개어달라는 소리에 빨래를 개에게 던져버리는 남편 송강호. 여기에 더불어 ‘술 맛나?’를 ‘살맛나!’로 매치시키는 등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코믹대사와 송강호의 능청스러운 표정이 시청자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이다.
목차1.서론2. 디지털 영화의 정의3.디지털 영화의 특성4. 디지털 영화의 발전 과정5. 한국의 디지털 영화(1)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도 대학로에 있다.(2) 기타 밴쿠버 영화제 출품작품6.디지털 영화 한계7.디지털 영화의 활성화 방안8.결론1.서론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흔히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 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디지털이란 용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고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디지털시계를 비롯해서 우리들 주변의 것들이 디지털을 포함하여 이름이 지어지곤 한다.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캠코더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친구인 영화도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영화가 개발된 지 100여 년 동안 큰 변동 없이 발전해 온 영화산업이 최근 변화를 맞고 있다. 촬영을 마친 필름을 현상소에서 현상하고 인화한 뒤 그 결과물을 자르고 붙이는 방식으로 후반 작업이 진행되는 기존 영화의 제작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채 몇 십 년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영화 제작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 영화라는 것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영화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1998년 칸 영화제에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것은 촬영 전반이 소니 PC-7이라는 손바닥만한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으로 시작된 디지털 영화에 대한 관심은 같은 해의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1999년의 로테르담 영화제 등으로 이어졌으며, 최근 한국의 주요 국제영화제의 주요 화두도 다름 아닌 디지털 영화였다.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서 디지털 포맷의 가능성에 눈 뜬 사람들은 디지털 영화혁명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영화가 대부분인 인디펜던트 영화제작자들로 하여금 좀더 싸고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작비나제작방식의 거대한 규모 때문에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던 영화제작이 좀더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게 된 것이다.3. 디지털 영화의 특징과거의 영화, 즉 고전적 필름 영화는 영화가 발명된 이후 1980년대까지 계속되어 온 전통적인 셀룰로이드 필름 영화의 제작방식이다. 아날로그로 촬영해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후반 작업을 마친 뒤 아날로그 방식으로 영사하기 때문에 줄여서 A-A-A(Analog - Analog-Analog)방식이라고 부른다. 카메라에 네거티브 필름을 넣어 촬영하고 현상된 네거티브로부터 포지티브 프린트(러시)를 만든다. 이 프린트를 편집자들이 자르고 붙인 뒤 후반 작업을 거치면 영화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순서에 맞추어 차례대로 쇼트를 붙여야 하는 선형 편집 시스템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곧바로 필름을 디지털 트랜스퍼 하여 디지털 편집기와 특수효과기로 온라인 편집을 한 뒤 그 완성본을 필름으로 출력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 경우를 A-D-A(Analog-Digital - Analog)라고 하는데 이것은 입 출력 시 해상도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해상도가 지원되어야 가능하다. 촬영된 필름 전체를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은 아니고 특수효과가 필요한 장면들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지털 컬러수정, 필터효과, 페인팅 등 채색작업이 가능하고 디지털 합성과 손상된 이미지의 복구가 가능하다.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거나 생물체를 창조할 수 있는 반면 스턴트 장면에서 쓰이는 와이어를 제거하거나 화면에 불필요한 인공물을 제거할 수 도 있다 .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촬영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점이 위의 단계와 다르며 통상 디지털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 단계 이후부터다. 디지털로 촬영 편집 후 필름에 키네스코핑하여 상영하게 된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성한 상태며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탕 타니엔 가있다. 그 러나 중국 최초의 디지털 영화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삼인삼색’에서 소개된장 유엔의 이다. 한국 영화사 디지털 네가는 프루트 챈의 , 나카다히데오의 , 박기형의 으로 3개국 3인 디지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네덜란드의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2000년 2월 1일 ‘디지털 영화제작과 개발도상국’이라는주제로 “디지털 혁명”에 관한 토의가 있었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죠지 산체스는 아르튀로립스타 인 감독의 신작 를 디지털로 제작한 프로듀서이다.그는 “립스타인 감독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18∼20 테이크 씩 가는 것을 즐긴다. PAL방식으로 작업해 프랑스에서 필름으로 옮길 예정이며 스태프도 보통 50∼55명이 아닌 21명이다. 이 방식으로 제작비가 약 50% 절감됐다”고 말했다. 1999년 멕시코 영화시장은600만 명 의 멕시코 관객을 끌어 모으며 성공했다. 산체스는 디지털 영화가 넓어진 시장에 많은 영화를 제공 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디지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좀더 많은 작 품을 제작하고 작가를 발굴하는 데 유용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한 영화제에서립스타인은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영화감독이 나이가 들면 죽든지 비디오를 찍든지 해야 한다”고했 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영화는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매체로 생각하고 있지만 영화작업 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노장감독들에게도 디지털영화는 환영받고 있다. 에릭 로메르도 79세의나이에 디지털로 전환해 을 만들었다.5. 디지털 영화의 국내 현황국내에서도 디지털 비디오를 이용한 극장용 영화를 기획 중이거나 촬영 중인 감독이 상당수에 이 르고 있다. 로 데뷔한 임상수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을 디지털비디오로 찍어서 필름으로 전환해 지난 20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박철수 감독은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해서 필름으로 전환한 작품 를 극장에서 개봉했다. 강제규 필름에서도 디지털 영화달 아래, 담임선생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여고생은 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용돈이나 벌려는 철없는 여고생으로 알았던 그 소녀는 이렇게 달도 좋은데... 선생님 아기를 갖고 싶어요. 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그러한 여고생의 꿈은 아랑곳하지 않고 점박이 삼형제를 사주해 그녀를 토막살해 한다. 한편, 몰래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체 모를 남자는 토막 난 시신을 자루에 담아 어디론가 향한다. 토막 난 몸은 재봉사 노파에 의해 다시 부활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인간이 아닌 암살용 기계인간일 뿐이다. 킬링머신으로 현장에 투입된 여고생, 살해지시를 수행한다. 격렬한 총격 중에 가슴에 관통상을 입은 그녀는 자신이 기계인간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억들, 점박이 삼형제를 찾아내어 피의 복수를 한 여고생은 담임선생을 찾아간다. 섹스와 살해의 공간, 정미소에서 마주친 그들, 그러나 담임선생이 자신을 프로그래밍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 틀에 박힌 일상,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사이버 이미지의 결정판이자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기총'이다. 여고생이 킬링머신으로 부활하면서 여성을 포기하는 대가로 받은 쇳덩어리 성기 모양의 총은 기계신체의 이미지에다 가치 전복적인 섹슈얼한 이미지를 부가시킴으로써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담임선생님을 죽일 순 없다며 자신 만만해 하던 그에게 부인의 교장선생님으로의 승진을 축하한다는 인사는 곧바로 킬링머신이 된 여고생의 표적에 들어 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이 영화는 디지털 영화가 갖는 이점, 편집의 손쉬움을 무기로 이 영화는 현란한 색보정으로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향 또한 기괴스런 배경음악과 함께 찢어지는 듯한담임선생의 목소리, 목소리에 힘이 없고 일정한 톤의 여고생은 분명 이 영화가 내용을 이끌어 가는 데 한 몫을 했다. 또한 SF적 타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저예산 영화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우렁각시는 밤 촬영과 실내촬영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적절한 조명과 디지털질감의 활용으로 따뜻한 판타지의 느낌을 훨씬 적합하게 표현해 내었다.또 다른 설화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얘기를 연상시키는 용백의 거대한 귀, 선녀 같은 의상과 머리에 뿔이 달린 예쁜 우렁각시, 총천연색의 우렁이인간 무리 등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분장은 또 다른 볼거리. 특히 우렁이 무리들의 무늬는 모두 한국의 전통문양에 기초했다.음악까지 직접 담당한 고구마는 유쾌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주요 변환점에 징소리가 등장함으로서 유쾌한 마당놀이의 분위기도 묻어나고 멜로디언, 피리, 북 등 초등학생이 많이 쓰는 악기들을 사용함으로서 동화적인 판타지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제20회 벤쿠버국제영화제에 5편의 한국단편이 추가로 'Dragon and Tigers (용호 부문)' 부문에 초청되었다.이번 5편의 한국 단편의 초청은 남기웅 감독의 디지털 장편 에 이은 것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시아 영화 프로그래머 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다녀가면서 추가되었다.독립영화집단인 '젊은 영화'에서 활동 중인 이송희일 감독의 은 작년도 부산 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게이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후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이 남성의 이야기를 결혼, 가족의 문제로 풀어나가고 있다.이송희일 감독의 또 다른 최신작 는 '원조교제'로 다른 애정, 다른 관계성을 왜곡하는 세간의 담론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영화로 2001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임과 동시에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인디포럼2001과 제5회 부천 국제 영화제 단편 걸작선에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또한 이번 한국 영화 아카데미 16기 출신 감독들의 졸업 작품 세 작품이 연달아 초청되었다. 이 세 작품은 모두 이번 제5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단편걸작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