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예인집단연희의 이해- 연희패의 집단적 성격과 삶, 사상에 대하여1. 개론남사당에 관한 옛 기록은 얼마 없다.해동역사에 남사당놀이 중의 하나인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사’나 ‘전영보전’이나 ‘지봉유설’이나 '허백당시집‘ 같은 것에 꼭두각시 놀음이나 광대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서민들을 위한 놀이이고, 게다가 천한 계급 가운데 하나인 광대들에 관한 것이고 보니 양반 계급 중심의 역사 기록에 상세하게 기록되어졌을 턱이 없다. 다만 윤리와 도덕을 모르는 천한 집단으로 몰아붙여 기록했다. 조선시대에는 공사노비, 승려, 무당, 상여꾼, 기생, 백정, 공장, 그리고 광대를 여덟 가지 천한 계급이라고 했다.옛기록에는 인형극 조종자, 가면극 연희자, 창하는 사람, 땅재주꾼, 줄타기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재인을 통틀어 광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뒤에 와서 광대라는 개념이 점차로 바꿔졌다. 흔히 광대라고 하면 좁은 의미의 광대 곧 일정한 곳에 집단으로 또는 가족 단위로 살며 양반들의 요구나 재력이 풍부한 양민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재주를 보여주고 그 대가를 받아 사는 붙박이 재인만을 가리켜 부르게 되었다. 구태여 광대와 남사당과의 다른 점을 찾는다면 광대는 줄타기 재주나 땅재주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쳤지만, 남사당은 재주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재담과 소리를 곁들여 더 극적인 놀이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광대는 조선시대에 ‘정제로 불려졌으며 주례 도감에 예속되어 주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영접하는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2. 전문예인집단의 형성과 충원1) 형성전문예인유랑집단의 형성은 유랑집단의 형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재주를 팔아 삶을 영위했던 집단이었다. 해동역사, 고려사, 문헌통고, 지봉유설, 허백당시집 등에 전문예인유랑집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으나 대개 단편적인 소개에 불과하여 전문예인유랑집단의 형성의 기원을 밝히기는 어렵다.전문예인유랑집단은 조선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남사당으로 대표되는 들이 있다. 거사는 여사당과 하나씩 짝을 이루어 움직인다. 거사는 사당을 업고 다닌다거나, 집단의 잔일과 뒷바라지 같은 잡일만을 할뿐 연희와는 무관했다. 사당패는 불사(佛事)와 관련을 맺었는데, 일정한 사찰에서 내준 부적을 가지고 다니며 팔아서 그 수입의 일부를 사찰에 바치고 나머지를 자신들의 비용으로 삼아 살아갔다.② 걸립패 : 비나리패로도 불렸으며 화주를 정점으로 비나리꾼·승려·보살·잽이·산이·탁발 등 15명을 내외로 한 패거리를 이루었다. 반드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이 있어 이들이 마을에 들어가 터굿·성주굿·조왕굿·샘굿 등을 할 것을 청할 때는 사찰에서 내준 신표를 제시하여 보증을 받았다. 마을에서 자신들의 기예를 보일 것을 허가받으면 풍물놀이부터 시작하여 몇 가지 기예를 보이고 끝으로 성주굿을 한다. 상 위에 놓인 곡식과 금품은 비나리가 끝난 후 그들이 챙겨서 수입으로 삼았다.③ 남사당패 : 꼭두쇠(우두머리)를 정점으로 구성한 연희집단이다. 남자만으로 구성되며, 풍물·버나·살판·어름·덧뵈기·덜미의 6종목을 연희 레퍼토리로 삼았다.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을 제공받으며 연희했으므로 남색패로 전락할 때도 있었다. 서민들을 중심으로 놀이를 하던 놀이패로 민중지향의 성향을 보이는 특별한 집단이기도 하다.사찰을 거점으로 하는 연희패와 남사당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1900년대 초반 남사당이 쇠퇴의 길을 걸었을 때 사당패나 걸립패는 사찰의 후원으로 일정하게 존립할 수 있었다.3) 구성과 충원남사당의 구성남사당의 조직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곰뱅이쇠와 여러 종목의 연희자 중에 선임자인 열네 사람 안팎의 뜬쇠가 있고 그 아래에 가열과 삐리가 있다. 그리고 연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저승패와 짐꾼이 있다. 한 패거리는 보통 35~50명까지이다.① 꼭두쇠 :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중의(衆意)에 따라 다수결로 선출되었다. 임기는 없으나 노쇠하여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거나 식구들의 신임을 잃어버리면 그 자리를 내놓았다. 안팎의 책임자로서 절대 권력을 가졌으며 그의 당패의 연희 내용남사당패의 연희는 풍물·버나·살판·덧뵈기·어름의 6종목으로 구성되어 있다.풍물로 판을 여는데 주로 웃다리 가락을 쓰며, 대접돌리기인 버나와 요술을 보여주는 얼른, 땅재주인 살판, 줄타기인 어름과 탈놀이인 덧뵈기, 인형놀이인 덜미로 판을 마무리한다. 전체 시간은 대충 저녁 무렵에 시작되어 새벽 3-4시까지 대략 7-8시간 정도였다.놀이판 전체가 마당놀이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되었다.남사당은 곰뱅이를 터주는 마을에 가서 놀이판을 벌이게 되면 먼저 마을의 넓은 타작마당 같은 곳에 놀이판을 만든다. 터 가운데에 멍석을 여러 장 깔아 풍물, 버나, 살판, 덧뵈기 놀이판을 만들고 한쪽에 작은 멍석을 깔아 버나, 살판, 덧뵈기, 어름 같은 놀이를 할 때에 장단을 치는 잽이들이 앉을 자리를 만든다. 작은 멍석 뒤로 덜미 포장막을 만들고 놀이판을 가로질러 어름놀 밧줄을 치는데 높이가 6자쯤 되고 길이가 30자가 채 못되게 한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풍물놀이패들이 옷을 차려 입고 마을길을 돌아다니며 길놀이를 시작하는데 집집마다 들어가서 마당씻이 굿을 해주기도 한다. 길놀이는 마을 사람들을 판으로 끌어들인다. 구경꾼들이 모여들면 기름을 적신 솜방망이 불이나 관솔불을 높이 피우고 풍물 판놀이를 시작한다.마당순서세 부 내 용풍물놀이-꽹과리/북/장고/날라리/땡각의 잽이와 벅구 따위를 포함하여 24명이 판을 이루며,-길놀이로 모든 놀이의 앞놀이에 해당하는 풍물은 구경꾼을 놀이판으로 끌어들여 구경꾼과 놀이꾼을 하나로 만드는 우리 놀이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놀이이다-웃다리가락:경기·충청도 지역의 풍물굿으로 느리고 빠른 쇠가락을 중심으로 진풀이가 다양한 풍물이다. 웃다리 가락이 가지고 있는 거칠고 강한 맛과 짜임새 있는 진풀이·무동타기·열두발상모 돌리기 등의 볼거리가 매력적이다.-악기:쇠·징·장고·북·날라리 등연희종류및순서-판굿:인사굿-돌림벅구-선소리판-당산벌림-양상치기-허튼상치기-오방감기-무동놀림-쌍줄백이-사통백이-가새벌림-좌우치기-위-처녀총각-외호모거리-허궁잽이-가새트름-외허궁잽이-쌍허궁잽이-양반병신걸음-양반 밤나무 지키기-녹두장군 행차 등으로 끝을 낸다덧뵈기탈놀음-남사당패에서 보유한 탈놀이를 덧뵈기라 부른다. ‘덧본다’는 것으로 탈을 나타내고 있다.-다른 지역의 탈놀이가 그 지역의 의식이나 행사와 일정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연희된 것에 비해 덧뵈기는 연희될 당시의 지역 주민의 필요와 흥취에 영합하였다.-남사당의 탈놀음은 다른 지방의 탈놀음에 견주어 춤보다는 재담과 동작 부분이 우세하지만 그것과 판의 줄거리나 짜임새가 비슷한 점도 많다. 이것은 남사당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탈놀음의 요소가 흡수되었음을 알려준다.-탈놀음은 직업적인 놀이꾼에 의해서 공연된 것이 아니지만 남사당은 직업이다구성-마당씻이-옴탈잡이-샌님잡이-먹중잡이의 네 마당으로 구성덜미놀이-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꼭두각시 놀음이다.-꼭두각시 놀음·박첨지놀음·홍동지놀음 등으로 불린 남사당패의 인형극이며, 인형을 조작할 때 ‘목덜미를 쥐고’ 또는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뜻에서 나온 호칭이다.-꼭두각시 놀음판은 포장으로 두른 채 앞면만 일정 높이에서 무대면을 향해 열어두었다. 포장 안의 꼭두각시 조종자인 대잡이(덜미대를 잡는 사람)를 중심으로 하여 그 양옆에 대잡이보가 앉아 인형의 등·퇴장을 돕는다.-포장 밖의 소리꾼인 산받이가 재담과 소리를 주고 받는다. 산받이 곁에 잽이들이 앉는다.-박첨지라 부르는 이유:박첨지가 극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서민상의 박첨지는 놀이의 해설자 역할과 등장인물로의 역할을 동시에 적절히 수행하여 놀이 전체를 이끌어간다.-홍동지:극중 상황이 위태롭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할 때면 젊고 기운이 넘치는 홍동지가 출현하여 위기에 처해 있는 서민들을 구해낸다. 홍동지는 전제적인 권력이나 부당한 억압에 대하여 과감히 저항하는 비판자이다.-꼭두각시:전통사회의 가족구조에서 여성의 위치를 적절하게 반영하여, 당대의 여성에게는 엄청난 부담의 봉건적 윤리의식이 부는 좌우치기를 한다. 다음에 다시 큰 원을 이루었다가 네 줄로 늘어서는 네줄백이가 되고, 다시 큰 원을 이루는 마당일체가 된다. 마당일채에서 벅구만이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씩 마주서서 밀치기벅구를 한다.★ 살판놀이-앞곤두 : 앞으로 걸어가다가 손 짚고 한 번 공중회전을 하고 서는 것-뒷곤두 : 뒷걸음으로 가다가-번개곤두 : 앞으로 가다가 손을 짚지 않고 공중회전을 하는 것-자반뒤지기 : 양발과 양손만으로 땅에 짚고 몬 전체를 틀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뒤집어 가는 것-팔걸음 : 두 팔로 거꾸로 가는 것-외팔걸음 : 한 팔로 거꾸로 가는 것-앉은뱅이 팔걸음 : 양발을 책상다리 한 채 거꾸로 걸어가는 것-쑤세미트리 : 앞곤두를 큰 원을 그리며 네 번 계속해서 도는 것-앉은뱅이 모말되기 : 양손은 엎드려 땅을 짚고 발은 책상다리로 오므려 붙이고는 옆에 말(斗)이 있다는 가상 아래 양무릎으로 퍼넣고 오른쪽 무릎으로 꾹꾹 누르는 흉내이다-숭어뜀 : 하늘을 본 채 양팔은 뒤로 땅을 짚고 양발은 땅을 디딘 채 손을 떼며 몸을 틀어 일어서서는 다시 양손만 짚고 팔걸음으로 섰다가 양발이 넘어가 처음 자세대로 된 후 다시 몸을 틀어 양발을 하늘로 올려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 가는 것이다-살판 : 껑충껑충 위로 뛰다가 몸을 틀어 공중회전하고 서는 것이다.살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연희 갈래이며, 연희자의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형이 가능하다.★ 어름놀이-앞으로가기 : 어름산이가 줄에서 떨어질 듯 고의로 실수를 해보이며 앞으로 걸어가기-장단줄(작단줄) : 타령장단에 맞춰 앞으로 걸어가기-거미줄 늘이기 : 한 쪽 발만 딛고 한 발은 밑으로 늘여 휘젓는 동작을 번갈아 하면서 앞으로 나가기-뒤로 훑기 : 두 발을 안고 뒤로 훑어가기-콩심기 : 두 발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콩심을 때 콩무덤 밟는 시늉을 계속하며 앞으로 가기-화장사위 : 줄 위에서 걸터앉아 화장하는 시늉-참봉댁 맏아들 : 양반집 아들의 병신 걸음걸이 흉내내기-억석에미 화장사위 : 병신 아전 마누라의 모양내기 모방-처녀총각 한다.
로마인 이야기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로마는 유럽의 문명과 정신사의 중심에 있으며 세계 문명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세에 유럽의 중심이 알프스 이북으로 이전되기는 하였으나 정신-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세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고수하였고, 근대 이후에도 신앙의 근원지로서 예술의 도시로서 로마의 위치는 확고했다.로마를 가리켜 ‘영원한 도시’, ‘우주적인 도시’, ‘세계의 머리’, ‘지구의 총체’라고 부른다. 특히 영원한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 로마가 정치적인 제국과 종교적인 제국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문화의 제국으로서 오늘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역사는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을 앎으로써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생각을 위한 힌트나 재료를 주게 됩니다.”고대 로마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적잖은 사료가 보여주고 있듯이,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다.그런데 왜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사람들은 흔히 로마인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 광대한 영역을 그토록 오랫동안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 덕분이라고. 또한 로마인도 결국 쇠망의 길을 걸은 것은 패권을 장악한 민족이 흔히 빠지기 쉬운 교만때문이었다고.그리스에서 로마로 인질로 잡혀왔던 폴리비오스는 40여장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저술했다. 그때까지의 역사 기록이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동지중해 세계를 주로 다룬 반면, 폴리비오스의 역사는 로마로 눈길을 돌렸다. 실증적인 시각에서 초점을 맞춘 최초의 역사 기록이며, 로마를 서술한 본격적-정치적인 평등을 누리고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들은 기원전 4-5세기에 발생하였다.역사를 통해 영원한 도시 로마는 제국의 희로애락을 주도하였다. 생존을 전제로 한 역경과 고난의 역사를 창출하기도 한 로마. 타종족의 여성들을 납치하여 인구를 증가시키고, 선진문물을 제공하던 에트루리아인들을 약탈자라는 명분으로 제거하였으며, 마침내는 일곱 명의 왕에 의한 통치를 마감하고 기원후 509년 공화정 체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공화정 시대에도 로마는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 즉 ‘로마의 원로원과 민중’의 역사에서 “하늘과 땅이 변하지 않는 한...”이란 평화조약의 표현이 얼마나 값어치 없는가를 목격하였다. 또한 ‘민중의 이름으로’ 민중을 탄압한 독재자들과 자신들의 피의 대가로 신분 향상에 노력하던 민중의 고독을 보았다.로마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통일 국가가 생긴 1871년 뒤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는 작은 언덕에 그 요람을 두고 있다. 팔라티노, 로물루스는 이 언덕에 둥지를 틀고 밭을 일구었으며 쟁기로 밭을 갈면서 자신의 영토를 확정짓는 경계선을 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경계선은 다름아닌 ‘solace sacro'라 불려지는 밭이랑이었는데 점차적으로 넓어져 제법 넓은 도읍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리비우스는 이를 가리켜 장방형의 로마라고 하였다.기원전 8세기 중엽의 이탈리아 반도에는 입지조건만 좋으면 당당한 도시도 쉽게 건설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민족이 적어도 두 개는 존재했다. 중부 이탈리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에트루리아인과 남부 이탈리아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한 그리스인이 그렇다. 그리스인은 통상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해양민족이었다. 바다에 면한 항구를 도시의 필수요건으로 생각하였다. 에트루리아인도 산업과 통상을 주로 하는 민족이었지만, 도시 건설에 관해서는 그리스인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높직한 언덕에 도시를 건설했는데, 바다와 가까운 곳이라도 배후에 언덕이 없는 땅에는 흥미를 보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과 그리스인이 자기네 세력권 안에 넣고 싶어할 만한 매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건국의 왕 로물루스레무스가 죽고 유일한 왕이 된 로물루스는 우선 팔라티누스 언덕 주위에 성벽을 쌓았다.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의사 표시다.로마를 건국하고 초대 임금이 된 로물루스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지 않고 왕과 원로원 및 민회, 3개의 기둥으로 국정을 떠받치게 했다. 종교제의와 군사 및 정치의 최고 책임자인 왕은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로물루스는 100명의 장로들을 모아서 그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원로원을 창설했다. 왕에게 조언하는 것이 역할이었으며, 원로원 의원들은 아버지를 의미하는 ‘파세르’라 불렸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귀족을 뜻하는 ‘파트리키’라는 낱말이 생겼다.로물루스가 이룩한 또 하나의 업적은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이었다.공화정에서 찬란한 제국으로고대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생했다. 대략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이탈리아는 철기시대에 진입했다. 고대 이탈리아의 주민 대다수는 인도유럽인으로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류는 이탈리아 중부의 라틴인이었다.기원전 8세기부터 이민의 물결이 이탈리아를 향해 흘러왔고, 에트루리아인, 그리스인, 갈리아인들이 있었다. 기원전 7세기에 그들은 이탈리아에 도시국가를 세웠다. 국왕이 있기는 했어도 왕권이 너무 약해 결국 귀족정치로 변화했다. 에트루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시종일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각자의 정권을 유지했다.로마는 기원전 735년에 건립되었다. 씨족부락별로 분산되어 있었으나 연합과 통일의 과정을 거쳐 도시국가로 성장했다.왕정 시대(기원전 753-510년)는 로마가 원시사회의 공사제(公社制)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왕정 후기에 이르러 에트루리아인이 로마를 통치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타르퀴니우스 왕조였다. 왕권이 강화되고 국왕이 최고의 통치자가 되었다. 소위 ‘파시즘’이 생겨난 것도 이 시기였다. 당시 국왕 주변에 머물던 12명의 시종들은 손에 나무 막대기이오를 정복하면서 이탈리아 정복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기원전 343년에서 290년까지 로마는 세 차례의 전쟁을 통해 삼니움족을 정복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기원전 272년에는 그리스의 이민 도시국가 타렌툼을 정벌하여 포강 유역을 제외한 전 이탈리아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로마는 더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적이 북아프리카의 강국 카르타고였다.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이 세운 식민지로 기원전 6세기에 이미 북아프리카 서부 해안, 스페인 남부, 발레아레스 제도, 사르데냐주, 코르시카섬과 시실리섬을 아우르고 있었다. 로마인이 카르타고인을 ‘포에니’라 불렀기 때문에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전쟁도 ‘포에니 전쟁’이라 부른다.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2-241년)은 로마와 카르타고가 시실리섬을 두고 일으킨 전쟁이다. 로마는 23년 동안의 힘든 전쟁을 통해 시실리를 점령했다.제 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년)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스페인에서 군대를 이끌고 출발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했다. 기원전 217년 로마는 트라시메노 호수에서 패배했고 그 이듬해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에서도 참패했다. 전국의 17세 이상의 공민은 모두 군대에 들어갔고 로마는 한니발과 공방전을 전개하는 한편 스페인으로 진격했다.기원전 202년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결전이 자마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생애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한니발은 자살했다. 기원전 201년 카르타고는 강제로 강화를 맺었고 전쟁 배상금 이외에도 해외의 모든 속지를 로마에 넘겨주었다. 이로써 로마는 서부 지중해에서의 해상 패권을 확립하게 되었다.카르타고가 재기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기원전 149년 로마가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다. 약자를 정복하는 강자의 전쟁으로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3년 동안 포위당한 끝에 5만에 달하는 주민이 노예로 팔리고 도시는 불모지로 변하게 되었다.서부 지중해의 패권종교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로마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로마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리스도교가 황제 숭배사상과 살인을 거부하면서 로마에서는 교인들에 대한 피의 탄압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제국의 통치이념으로 간주하여 제국의 재건에 필요한 핵심적인 사상으로 흡수하려는 노력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중세의 이념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로마의 역사는 교회와의 관계사 속에서 존재가치가 인정된다.그리스와 로마로 대표되는 다신교와 유대교 및 기독교를 전형으로 하는 일신교의 차이는 한가지이다. 다신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신에게 요구하지 않는 반면, 일신교에서는 그것이 바로 신의 전매특허이다. 로마인은 신에게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 대신 수호신 역할을 요구하였다. 신에게 수호를 요구하는 그리스-로마적인 사고방식은 인간성에 적합한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로마의 종교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로마에는 전임 신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로마에는 영원성이 간직된 문화유적이 많다.로마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아름다운 광장으로 평가받는 나보나 광장은 옛날 황제 도미치아누스 경기장이 있던 곳으로 모형 해상전투, 대중을 위한 대 무대, 놀이 등의 행사가 거행되던 일종의 매머드 스포츠 복합시설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경기장은 시민을 바보로 만드는 우민 정책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전차경기는 시민으로 하여금 체력을 단련토록 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철저한 프로 정신에 입각한, 죽이기 아니면 죽는 검투사적 전쟁 스포츠였다.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72년에 착공되어 8년 동안의 기적적인 역사를 거쳐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준공되었고 로마시대에 건립된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이었다.
왜 지금 여기서 한국미인가- 왜 조선 후기인가- 조선 후기의 예술정신: 샤머니즘적 자유분방성, 한국인들의 무질서에 대한 동경Ⅰ. 조선 후기의 역사적 배경1. 해체되어가는 중세 봉건 사회1-1. 비틀거리는 조선, 다시 서다1-2. 이앙법의 보급으로 변화하는 농촌1-3. 만들고, 팔고, 돈 벌고1-4. 돈으로 사고 파는 양반1-5. 모든 세금은 쌀이나 돈으로1-6. 서울에서 정권다툼, 지방에서 향권다툼2.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다2-1. 실학과 사회 개혁론2-2.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2-3. 서민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다2-4. 조선 후기의 신종교와 사상Ⅱ. 한국 무속사의 전개1. 한국무속의 기원2. 삼국시대3. 고려시대4. 조선시대Ⅲ. 무신(巫神)의 존재성과 그 실체1. 한민족의 무속적 기질2. 무신의 존재성과 실체 - 신병과 신들림3. 굿 문서(文書)를 통해본 무속 세계4. 무교의 좋은 곳Ⅳ. 굿, 그것은 삼신세상을 만들어가는 방편이자 길!Ⅰ. 조선 후기의 역사적 배경1. 해체되어 가는 중세 봉건 사회1-1. 비틀거리는 조선, 다시 서다16세기를 지나면서 농업생산력이 발달함에 따라 각 지방에 장시가 생겼으며,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눠주는 과전법이 붕괴되고 지주 전호제가 계속 확대되었다. 군역의 포납화와 공물 제도에서 방납이 새로이 나타났고, 중앙 정치는 훈구파 대신 사림파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임진왜란으로 노비의 도망을 비롯한 전국적인 인구이동으로 사회가 크게 흔들렸으며 전국의 많은 토지가 황폐하게 되었다. 군공이나 납속으로 신분을 상승한 자들이 많아 양반 사족의 지배 기반을 크게 약화시키는 한편 신분제를 흔들리게 하였다.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쟁을 통하여 주변 및 국제 정세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고, 청에 포로가 되어 갔다가 돌아온 이들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기도 하였다.정치적으로는 두 차례의 난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왕실의 권위가 크게 꺾였다. 이는 황폐된 토지를 새로이 개간하여 지주로서 기반을 다지고 유향소나 서원을 통해 집단을 송상, 만상, 경강 상인 등으로 불렸다. 경강상인들은 서울에서 소비하는 연간 100만석 이상의 쌀 가운데 절반 이상을 조달하였고, 개성 상인들도 전국의 상업 중심지에 ‘송방’이라는 큰 상점을 차려 놓고 물건을 매점하였다. 의주 상인과 동래 상인들은 각각 청 및 일본과 무역을 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생산지에 가서 물건을 매점하거나 생산자에게 원료와 자재를 대주고 생산된 물건을 걷어가는 방식으로 폭리를 취했다.시전상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금난전권으로 사상들의 상업 활동을 억제하고자 하였으나 사상들의 상업 행위를 막지는 못하였다.장시가 발달하여 유통량이 크게 늘어나고 왕래하는 상인이 많아지자, 강경?안성과 같은 육상 교통의 중심지와 각 포구 등 수상 교통의 요지에 객주와 여각 등이 발달하여 상품의 위탁 판매뿐만 아니라 도고 상업을 벌여 시전 상인이나 공인들의 특권 상업을 위협하였다. 전국적으로 형성되어가는 유통망을 이용하였고 또한 고리대금업을 통하여 상업자본을 축적하였다.조선 후기의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은 조선 왕조의 농업에 바탕을 두고 상업을 억눌러 봉건 지배 체제를 유지?강화하려는 경제 정책과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1-4. 돈으로 사고 파는 양반조선 사회의 신분제는 법적으로는 양천제(良賤制)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반, 중인, 평민, 노비의 네 계층으로 나뉘었고 봉건적 신분 질서는 성리학에 의해서 합리화되었다.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양반 상호간에 일어난 극심한 정치적 갈등은 양반층의 자기 도태를 가져와 다수의 양반들이 몰락하였다. 몰락한 양반들은 관직에 오를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향촌 사회에서 겨우 위세를 유지하는 향반이 되거나 더욱 몰락하여 잔반이 되었다.양반이 양반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정치, 경제적인 몰락 때문이기도 했지만, 양반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양반의 시세가 떨어진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군량을 모으기 위해 임시 방편으로 실시했던 납속책이나 공명첩의 발행이 전쟁이 끝난신라로 연결되는 삼한 정통론을 내세우고 민족사의 전개 무대를 만주로 확대시킨 역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안정복의 동사강목은 주자의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편년체 방식으로 단군 조선에서 고려 말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엄밀하게 고증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여 고증 사학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였다.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양명학의 국학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사서로서, 조선시대의 야사, 열기, 문집 등 400여종을 참고하여 기사본말체 방식으로 조선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조리있게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서술하였다.이종휘가 동사를 서술하여 고구려사에 관심을 보였고, 유득공이 발해고를 저술하여 본격적으로 우리 역사로 인식하였다.영역에 대한 관심이 지리학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역사지리 연구서로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신경준의 강역고, 한진수의 해동역사지리고 등이 있고, 인민지리 연구서로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산천, 인물, 인심, 풍속, 산물 등을 논하고 있다.당시 상인이나 서민들의 경제적, 문화적인 욕구가 반영되어 과거와 달리 수로, 도로 등이 잘 나타나 있는데, 정상기의 동국지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청구도 등은 그 전까지 지도 제작의 성과를 집약한 대표적인 것들이다.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천문, 역법, 지리, 의학, 동식물 등 자연과학 분야, 정치, 경제, 역사, 이학, 제도, 풍속, 종교, 철학 등 사회 과학 분야에 관한 지식을 일정한 분류 체계에 따라 백과사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유형원의 반계수록, 이익의 성호사설, 홍봉한 등이 영조의 명을 받아 만든 한국학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동국문헌비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으로 이어졌다.국어학은 음운, 문자의 연구인데, 특히 음운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글의 음운을 연구, 정리한 최석정의 경세훈민정음도설, 한글의 음운의 원리를 규명하고 발음 기관들에 대해 연구한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국학의 입장에서 음운을 연구한 유희의 언문지 등이 저술되었다- 유교 정치이념의 확립고려시대의 무교는 유교정치이념이 확립되면서 정치적 기능을 상실하고 국왕의 무왕적(巫王)적 성격을 탈피하였다. 무격이 국가조직에서 배제되며 국정 보좌 기능을 상실하여 국가의례에서의 역할이 줄어들었다.3-2 사회적 기능 유지지역의 특수한 신앙으로 향리들이 중심이 된 지역의례를 주관하면서 지역민의 결속, 지역의 지배질서를 뒷받침하였다.3-3 개인적 기능왕실은 별기은(別祈恩)을 두어 치병(治病)을 무격에 의뢰하였다.3-4 새로운 신앙 대상의 수용 - 산신과 성황신산신은 수렵문화 이래의 마을 수호신으로 농경문화와 더불어 거래신(去來神)이다.성황신은 중국 기원의 성황신과 전통적인 서낭신의 구별이 필요하다. 고려 초에 전래된 중국의 성황신은 중국 남북조시대 이래 성행하였으며 성벽의 수호신, 도시의 수호신, 행정구역의 수호신, 천기의 조절자, 사후세계의 관리자, 인간 기원신이다. 전통적인 서낭신은 지역의 수호신이라는 점에서는 중국과 같으나 사후세계의 심판자라는 관념이 없다. 한국에는 산이 많은 까닭에 산신과 융합하였다.조선시대에는 홍무예제(洪武禮制)의 영향을 받아 서울의 성황사는 산천, 풍운뇌우와 합사하였고, 지방의 성황사는 모든 행정단위마다 두어 기존의 신당을 읍치(邑治)의 성황사로 지정하여 돌무더기와 당목, 신당으로 이루어진 서낭당과 혼동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려 후기부터 특히 신흥사대부 집권 이후 무속 배척이 본격화되었다. 비합리성(淫祀), 비윤리성(불효, 풍기문란), 국가와 민을 궁핍하게 한다는 경제적 이유로 배척되었으며, 형벌을 가하거나 도성 밖으로 축출하였다.4. 조선시대성리학을 지도이념으로 한 조선왕조로서는 당연히 무속을 배척하였으며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무당을 처벌하여 도성 밖으로 축출하였으며 동서활인서에 배속시키고 각종 무세를 징수하는 등 각종 부담을 지워 서울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으나 지방으로 갈수록 무속은 사회적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였다.향촌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한 사림은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질서로 재편성하려 하면서 무속을적인 기능은 신을 부르고 교신하는 것이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무악기와 함께 굿음악을 연주하기도 하여 방울소리 그 자체가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방울 소리를 내는 무당은 바로 음악 연주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무속에서 사용하는 방울은 군웅방울, 칠성방울, 대신방울, 아흔아홉 상쇠방울의 4가지로 구분된다. 군웅방울은 두 개 또는 세 개를 한 묶음으로 하여 군웅대에 매달아 사용한다. 칠성방울은 총 일곱 개의 방울을 한 묶음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명과 복을 줄 때 쓰인다. 대신방울은 열 두 개의 방울을 한 쌍으로 하고 있으며 점이나 굿을 할 때 두루 사용된다. 황해도 무당들이 사용하는 아흔아홉 상쇠방울의 방울수는 총 아흔아홉개이며 이는 명을 주는 명쇠, 복을 주는 복쇠, 길을 여는 길쇠, 말문을 여는명두쇠,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짝쇠 그리고 재물을 주는 왕쇠로 이루어져 있다.방울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은첫째, 선몽에 의해 다른 무당이 사용하였던 것을 구애비로 떠온다던지,둘째, 신이 내렸을 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쇠걸립하여 온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거나,셋째, 돈을 주고 맞추거나, 넷째, 전문 만물상에서 구입하거나, 다섯째, 스승으로부터 물려받는 경우 등이다.무당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는 부채로는 성수부채 또는 대신부채이다. 성수나 대신은 신령님을 뜻하는 것이고 성수부채 또는 대신부채라 할 때는 신령님의 부채를 가리키는 것이다. 무당이 사용하는 부채는 대나무 살에 한지나 천으로 선을 붙여 신령의 화상을 그리며, 쉰살부채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채의 살이 50가닥으로 되어있는 접부채이기 때문이다.부채 밑에는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하는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의 기다란 삼색 명주천이나 노랑색의 짤막한 천믈 매단다. 동그랗게 원형으로 접도록 되어 있는 둥글부채도 있는데 둥글부채를 만성수 부채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채에다 만 가지의 성수님들을 그려놓기 때문이다. 둥글부채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강신무당들 중 주로 큰 무당들이 사용한다.무당이 사용하는 부채는 신을 부를 때다.
Ⅰ. 서 론 ····················· 2Ⅱ. 개방형 직위제도의 내용 ·············· 21. 의의2. 도입배경3. 개방형직위제도 추진경위4. 적용대상5. 제도운영Ⅲ. 외국의 개방형 직위제도 ·············· 61. 미국의 SES (Senior Executive Service)제도2. 영국의 SCS(Senior Civil Service) 제도3. 호주의 SES(Senior Executive Service) 제도Ⅳ. 우리나라 개방형직위제도의 현황 ·········· 71. 현황2. 비판3. 정부대책Ⅴ. 개방형 직위의 선정기준 및 우선순위 ········ 81. 개방형직위의 선정기준2. 선정기준간의 우선 순위Ⅵ. 개방형 임용제의 기대효과 및 부정적 요인 ····· 101. 개방형 임용제의 기대효과2. 개방형임용제도 도입의 부정적 효과Ⅶ. 개방형임용제도의 쟁점과 대응방안 ········· 111. 우수인력 유치방안과 대책2. 정실엽관임용의 가능성과 대책3. 민간임용자의 공직 적응문제와 대책4. 공직사회의 불안 및 저항의 가능성과 대책Ⅷ. 결 론 ···················· 13Ⅰ. 서 론현대사회는 광속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현대사회를 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전환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와는 달리 무한경쟁을 전제로 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조직구성원을 생산에 필요한 단순한 노동력으로 보지 않고 조직의 생존과 발전에 핵심적인 인적자원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지식사회에서는 조직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적자원을 어떻게 충원하고 양성하며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조직의 성공에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선진 제국 행정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신 공공관리론 역시 통제 위주의 집권적인 행정관리와는 달리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분권적이며 탄력적인 행정관리를 강조한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용절차에 있어서도 특별채용시 공고 및 제한경쟁하는 사례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기시험까지 부과하게 되어 고위직 채용에 있어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관리체계에 있어서도 총괄관리하는 부서 및 기능의 부재로 실제운영에 대한 관리가 곤란하고, 적격자 채용여부에 대한 검증절차도 미흡하였다.개방형 전문직위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상황하에서 그 동안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방형직위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국민의 정부」도 그 출범과 함께 국정 100대 과제의 하나로서 공직사회에 경쟁체제 도입과 함께 외부 전문가 채용확대를 천명하게 되었다.중앙인사위원회가 발족되기 이전에 기획예산위원회(기획예산처의 전신)는 1998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실시한 정부경영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161개의 개방가능직위를 선정하여 발표한 바 있고, 1999년 5월 24일 국가공무원법과 정부조직법의 개정으로 개방형직위제도의 근거가 마련됨과 함께 공무원 인사정책의 개혁을 추진하는 중앙인사위원회가 발족되어 개방형직위제도를 관장하게 되었다.중앙인사위원회는 기획예산위원회 경영진단결과를 토대로 관계부처 협의와 학계·언론계·시민단체·관계공무원 등 전문가가 참여한 패널회의는 물론 관계부처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1999년 11월 15일 38개부처 129개 직위를 개방형직위로 지정하였다.그 후 중앙인사위원회에서는 기획예산위원회에서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심의와 공청회 등을 통해서 정리한 의견, 각 부처의 의견 및 시민단체의 의견 등을 참고하여 개방형직위의 시행에 필요한 『개방형직위의운영등에관한규정(대통령령)』을 마련하였다. 동 규정은 학계 및 민간의 인사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의 심의, 입법예고,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의, 국무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 2000년 2월 28일 제정·시행되었다.2년여 동안의 제도운영 과정에서 민·관간의 보수 격차, 직업이동성(Job Mobility)이 낮고 유연성이 부족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 계약기간 종료 후의 신분에한편, 개방형직위는 일반직공무원을 주대상으로 하고 특정직공무원은 직무특성상 신중한 검토를 거쳐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하에 1단계에서는 배제하였으나, 외교통상직 공무원과 교육공무원은 직무특성과 민간의 대체인력이 풍부한 점을 감안하여 본부에 대해서는 적용하고 있다.5. 제도운영(1) 경쟁의 범위민간인과 공무원, 계급 등 신분에 관계없이 직무수행요건을 갖춘 자는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공개경쟁에 의하여 최적격자를 선발하여 임용한다.(2) 직무수행요건 설정개방형직위로 지정된 직위에는 소속장관이 중앙인사위원회와 협의하여 당해 개방형직위의 직무내용·특성 등을 고려한 임용자격요건, 심사대상요건인 능력요건과 특별요건을 사전에 설정한다.(3) 개방형직위 충원시기개방형직위를 지정한 후 최초로 임용하는 경우에는 당해 직위에 보할 수 있는 공무원의 직급에 결원이 발생하는 때에 충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개방형임용된 직위는 임용기간이 만료하거나 당해 직위에 결원이 발생하는 때에 지체없이 개방형임용하여야 한다.(4) 임용신분개방형직위는 원칙적으로 계약직공무원으로 임용하되, 개방형직위 임용 당시 경력직공무원으로서 당해 개방형직위에 전보·승진·전직의 방법으로 임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에 대하여는 경력직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다.(5) 임용절차개방형직위에 공무원을 임용하기 위하여 소속장관은 시험일 14일 전까지 일간신문과 인터넷 등에 시험공고를 하고, 민간위원이 50%이상 참여하는 선발시험위원회에서 가장 적격자로 판단되는 자 2~3인을 선발하여 소속장관에게 추천하게 된다.소속장관은 선발시험위원회에서 추천한 자중에서 임용(임용제청)하고자 하는 자를 정하고, 임용하고자 하는 자(1순위자)가 계약직 또는 승진임용자인 경우에는 선발시험위원회에서 추천한 자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여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임용(제청)하고, 일반직의 전보·전직, 특정직의 전보·승진의 경우 등 심사대상자가 아닌 경우에는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절차없이 임용(임용제청)하게 된다.(6) 임용기간개방형직위의 임 Rank Award) 제도도 있다.2. 영국의 SCS(Senior Civil Service) 제도영국 정부는 1996년 4월 SCS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였다. 이는 SCS 공무원 상호간은 물론, 정부 전체의 연계성, 통합성 및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종전의 SOS(Senior Open Structure)를 확대하여 Grade 5 이상의 공무원(약 3,000명)의 계급을 폐지하고 하나의 관리계층집단으로 관리하는 제도이다.공무원 급여 및 근무조건 등 공무원 관리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관장하는 공공서비스실(OPS: Office of Public Service)은 직무 특성 기준(Core Criteria)과 각 부처별 직무평가위원회가 산정한 직무 평가 요소(소속 직원 관리, 책임성, 판단력, 영향력, 전문성 등)를 기초로 개별 직위에 대한 JESP(Job Evaluation for Senior Posts)점수를 산출하고 있다. 여기서 JESP 점수는 SCS 직위를 선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되며 SCS 직위가 되기 위해서는 JESP 총점이 최소한 7점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OPS는 JESP 점수를 기준으로 고위 관리직에 대한 근무평정을 실시하며 급여 수준도 결정하고 있다.SCS 공무원의 임용절차는 공무원인사위원회의 채용규칙에 따라 각 부처별로 실시된다. 채용기간이 12개월 이내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공무원인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각 부처는 SCS 직위에 공석이 생길 경우 내부에서 임용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공개경쟁 방법에 의해 임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외부 공개 경쟁을 통해 임용할 경우에는 공무원인사위원회와 협의하여 참여방법 등 구체적인 선정 방법을 정하게 된다.SCS 공무원의 보수는 9개 등급(Band)으로 나뉘어진 봉급표에 따라 지급된다. 각 직위별 등급은 JESP 점수에 따라 결정되며 각 등급별 최고액과 최저액은 중첩되게 설계되어 보수지급의 유연성을 제고하고 있다. 또한 외부에서 채용할 경우, 해당직위의 등급 최저액을 주는 임용령 (제43조의 4)에서는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는 직위로 한정하고 있으나 국가공무원법(제28조의 4)에서는 전문성과 정책수립의 효율성을 선정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기획예산위원회가 주관하여 실시한 정부경영진단에서는 전문성, 중요성, 민주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방형직위를 선정한 바 있으며 기획예산위원회의 자료를 넘겨받아 현재 개방형직위의 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앙인사위원회에서는 기획예산위원회의 선정기준에 쇄신성을 추가하고 있다.(1) 전문성개방형직위의 도입취지가 행정의 전문성 제고를 통한 정부의 경쟁력 향상에 있음을 고려하면 전문성을 선정기준으로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개방형직위의 지정 기준으로서의 전문성은 업무의 다양성, 업무의 독창성, 업무의 난이도, 업무특성 자체의 변화정도, 기획업무의 비중, 업무에 대한 기대수준의 변화도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국장급 이상의 고위 관리직의 직무수행은 단순히 기술적 전문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한다.일반적으로 직무수행에 요구되는 능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모든 직무의 수행에는 세 가지 유형의 직무수행능력이 모두 요구되지만 일반적으로 하위직에는 기술적 능력이, 중간관리직에는 인간관리 능력이, 고위관리직에는 개념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l 기술적 능력(Technical Skill):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직무수행방법, 장비와 시설의 활용 능력을 말한다.2 인간관리 능력(Human Skill):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with)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through)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태도와 능력으로, 동기부여에 대한 이해와 리더십의 응용을 포함한다.3 개념적 능력(Conceptual Skill): 전체 조직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와 관리능력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 과 판단, 조직개혁과 발전에 대한 비전 제시, 의사결정 및 문제해결능력, 경쟁과 갈등의 조정, 불확 실.
..PAGE:1공무원노조의 주요쟁점노동부의 공무원노조법입법시안을 중심으로199612012 김수원199712025 박은석200112047 한만호..PAGE:2공무원단체의 구성에 관한 법제헌법 제33조 제1항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의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 제2항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PAGE:3공무원단체의 구성에 관한 법제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및 지방공무원법 제58조 제1항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5조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PAGE:4공무원단체의 구성에 관한 법제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제1조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5조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교원에 적용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공무원직장협의회의설립ㆍ운영에관한법률 제1조이 법은 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업무능률 향상 및 고충처리 등을 위한 직장협의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PAGE:5공무원 단체 구성 현황기능직38.5%121314보건복지부95.2%41,53843,637합계93.8%22,97724,489철도청97.9%18,44018,834정보통신부가입비율노조가입인원기능직 현원직종기관교원노조법에 따라 현재 광역단위·전국단위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음.직장협의회법에 따라 6급이하 공무원들을 조직원으로하는 직장협의회가 설립되어 있음..PAGE:6노동조합 필요성에 대한 주장근로조건의 향상기능압력단체로서의 기능사기앙양의` 기능대내행정의 민주화실적제의 보장..PAGE:7노동조합 인정의 한계에 대한 주장특별권력관계설국민전체봉사자설공공복리에 의한 제한설대상조시설근무조건법정설..PAGE:8공무원노조 설립의 논의경과1989년 노동법 개정안 공무원에게 노동기본권 인정, 군인과 경찰공무원 등은 제외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동년 2월 6일 이른바『26사회협약』이 체결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로 함1단계로 공무원직장협의회의 허용(99년부터 시행)2단계로 노동조합의 허용..PAGE:9공무원노조 설립의 논의경과정부(행정자치부 주관) 입법추진노사정의 논의결과와 국민여론 등을 토대로 「공무원조합의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안」을 마련, 국회 제출(02. 10. 18)주요내용 : 공무원조합 명칭, 단결권·단체교섭권(협약체결권 제외)인정, 쟁의행위·노동단체 가입 및 연합체 결성 금지, 06년 시행 등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중..PAGE:10공무원노조 설립의 논의경과대체입법안의 발의 1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제정안(02. 12. 04)노동관계법의 특별법으로 교원노조 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대체입법안의 발의 2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02. 10. 24) :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주요내용 : 노조 명칭 허용, 노동3권 보장, 즉시 시행 등..PAGE:11공무원노조 설립의 논의경과새 정부의 입법논의대통령 업무보고(노동부)시 노동부가 주관 하에 교원노조법 수준으로 노동기본권 보장 방안을 마련토록 결정(03. 03. 19)그간 관계부처회의 등을 통해 입법상의 쟁점을 논의, 노동부가 마련 중인 입법시안을 발표(03. 05. 21)..PAGE:12ILO 기준 및 각국사례 비교정리원칙적 부정원칙적 보장일반공무원의 경우 징계의 대상경찰 공무원은 형벌공공역무의 최소한을 확보하기위해 파업에대한 각종제한이없음교사와공무원및 기타집단의노동조합결성권과 파업권을 보장하도록 권고단 체행동권원칙적 보장예외적으로 제한되는 사항은 법에서 세부적으로 규율현업·비현업·교원 등을 불문하고 아무런 법적 규제 없이 자유롭게 단체교섭이 이루어짐노동 협약체결권을 인정, 협약의구속력은 없음원칙적으로는인정,예외적부정될수 있음단 체교섭권일반근로자와 같이 완전하게 보장최고위직 공무원에게까지 단결권 인정군인과 도지사등일부직책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인정군인,경찰외는원칙적으로인정단결권미국영국프랑스ILO 협약구분..PAGE:13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입법형식 : 노동관계법의 특별법으로 제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특별법으로 제정노동조합 명칭사용, 상급노동단체에 가입 등 허용공무원노조측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5조 단서조항 삭제를 통한 공무원노조 허용을 주장..PAGE:14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조직형태 : 최소 설립단위만 규정헌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최소 행정기관 단위로 규정2이상의 행정기관(헌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을 포괄하는 노동조합의 설립도 가능이에 대해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동조합의 조직형태 및 조직대상과 범위는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고유권한으로서 공무원노조의 자체 규약으로 정하거나 필요 시 단체협약을 통하여 정할 수 있다고 주장..PAGE:15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가입범위공무원은 노동조합에 자유로이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다음의 자는 가입을 제한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현업공무원특정직, 정무직5급이상, 지휘감독직행정기관의 관리운영업무, 공공 안녕질서유지 업무종사자구체적인 제한범위는 국회규칙, 대통령령 등 하위법령으로 정함..PAGE:16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공무원노조측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직종 및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공무원, 따라서 직급따라 일률적으로 가입범위를 제한하는 것에는 부정적 입장이는 노동조합의 자주적 단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노동법상의 직무 성격상 사용자의 행위자에 해당하는 자를 자체 규약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제한하면 될 것특히나 국가공무원의 경우 5급의 상당수가 일반 행정을 담당하고 있어 6급이하로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공무원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자주적 단결권을 제한하는 것이라 주장..PAGE:17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정치활동 금지현재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여러 법규에서 규정하고 있음그러나 정치관련법에서 노동조합에 대해 선거운동 등 일부 정치활동을 허용, 법 적용에 혼란이 우려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치활동 금지를 명시이 사안에 대해서는 큰 쟁점 없음..PAGE:18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노조전임자노동조합 활동의 편의를 위해 공무원의 노동조합 전임을 인정전임자는 무급으로 하되, 이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 금지전임기간은 재직기간을 통산하여 5년으로 제한공무원노조는 교원노조법은 유보되지 않음으로 인해 조합의 재정이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일반노동계와 동일하게 노조유급전임자를 인정할 것을 요구..PAGE:19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부당노동행위로부터의 보호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동관계법의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도입, 적용노동조합의 활동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 이를 이유로 한 행정기관의 불이익조치 방지 필요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도입·운영하되 공무원의 신분보장 등을 고려, 유니온샵 규정등은 제외..PAGE:20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노동위원회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있을 경우 부당한 인사처분 등을 구제하는 공무원 소청심사위원회에 중복신청을 금지, 절차상 혼란 방지이에 대해서는 단결력 강화를 위한 유니온샵 제도를 공무원노조에 적용하지 않을 논리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주장보다 확실한 구제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과 소청심사신청을 중복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주장 있음..PAGE:21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교섭당사자노동조합 측은 노동조합의 대표자, 정부 측은 헌법기관의 대표, 각급 자치단체장을 교섭 당사자로 명시(행정부는 행정자치부장관)정부측 당사자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관련기관의 장, 공무원으로 하여금 교섭에 참여토록 할 수 있음을 명시복수노조의 경우 각 교섭단위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토록 하되, 세부적 교섭절차는 하위법령으로 규정공무원노조는 행정부의 경우 국무총리(또는 부총리급)를 수반으로 하는 주무부처장 및 자치단체장으로 구성하는 교섭 단을 구성할 것을 주장..PAGE:22입법시안 주요내용 및 쟁점정리교섭대상교섭대상은 보수, 근무환경 그 밖의 근무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함기존 정부안에서는 정책결정사항, 관리사항이 교섭대상이 아님을 명시하였으나 이를 명시하지 않되, 동 사항은 일반적으로 교섭대상이 아니며 근무조건에 관련된 사항은 그 범위 내에서 교섭대상이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